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고전 1:26-31)

2016.09.11. 주일4부예배

<서론>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교만하게 되어 자기를 자랑하고 높이는 것을 금하십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높이는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려고 하다가 자기와 후손들의 삶을 망쳐버렸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사십주 사십야 금식하셨을 때, 마귀가 와서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등되게 만들어주겠다고 자기보고 절 하라고 꾄 일이 있습니다. 사람이 언제나 자기의 비천함을 깨달아 알고, 천지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도록 하나님은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자기의 잘난 것보다 자기의 못난 것을 두드러지게 알아 겸손하게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본론>
1. 유일무이하신 하나님의 능력
천지간 유일무이한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이외에 하나님처럼 섬기고 예배드리고 경배할 상대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야훼 하나님은 유일한 창조주요, 만물을 다스리는 운행하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절로 2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0장 26절에는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이 되니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나사로야! 나오라!”하는 말씀 한 마디로 살아나게 하신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포도주 말을 하니깐 내 눈 앞에 포도주 병이 보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무언지 잘 모르시는 분이 선물로 추석에 잘 마시라고 저에게 포도주 두 병을 보냈어요. 고맙습니다. 좋은 추석을 맞이하라고 자기가 아는 바 전심을 다해서 선물을 주신 것이니 나도 그 선물을 도로 잘 포장해서 보낼까 싶었습니다. 이 모든 사건들은 바로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의 특징
그러면 하나님이 택하신 우리들의 신분은 어떠한 것입니까. 고린도전서 1장 26절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며칠 전에 텔레비전에 인터뷰하는 데 보니깐, 우리 한국이 발전을 하려면 머리가 좋은 사람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어가지고서 사회 각지에서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야 된다고 말한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거기에 아멘을 안 하는 것은 우리 한국에 예수를 믿어 나라의 중추가 된 사람들은 다 중간쯤 된 사람인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도 많지 않고, 총명이 있는 사람도 많지 않고, 문벌 좋은 자도 많지 않고, 교육을 잘 받은 자도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을 우리가 보면,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미안한 말이지만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굉장히 지혜로웠으면 하나님 믿고 안 나와요.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하여서 무엇인지 착착 일을 잘 만들어 내는 분도 많지 않습니다. 가문이 좋은 자도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 믿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가 잘 되느냐? 우리는 우리가 잘나서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잘난 분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잘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다스리는 모습을 보면,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 자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잘나서 자랑하지 아니하고, 주님 때문에 자랑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로 29절에 보면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미련한 사람을 택해가지고서 지혜로운 자를 물러가게 만드는 하나님의 섭리가 대단한 것입니다. 별로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큰일을 맡아서 잘 해나가는 것을 보면 희한합니다. 하나님이 약한 자를 택하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한다. 강한 자가 일어나서 큰 소리를 하는데, 약한 자가 그보다 더 큰 일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이 약한 자를 택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천하고 멸시 받는 자가 세상에 높고 귀한 자보다 존경 받습니다. 없는 것을 택하사 있는 것보다 더 높게 해 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기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 무소부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손에 얹혀 놓으면, 하나님과 같이 전지전능 무소부지한 능력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의지해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못났다, 못한다, 안 된다.”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못나고 지혜롭지 못하고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났으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생각이 긍정적이게 돼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못났으나 잘났고, 약하나 강하고, 천하나 예수님 때문에 지혜롭게 된다고 우리가 입으로 시인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꼭 해야 될 꿈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에 소원하는 꿈, 여러분 마음에 소원하는 꿈을 안 가진 사람 없을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다 마음에 간절히 소원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꿈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믿음을 주셔서 그 꿈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백성들이 그 마음에 꿈을 성취하고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고 잠언서 29장 23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언서 15장 33절에는 ‘야훼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교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앞에 진실로 어떠한 존재인지 우린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30절로 31절에 보면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예수님 안에 넣어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만세 전번에 보시고 사랑하셔서 예수님 안에 넣었습니다. 예수님의 품에 안겨서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고, 의로움이 되고, 거룩함이 되고, 구원함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나서 우리를 돕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지혜로운 자로서 함께 하시고, 의로운 자와 거룩한 자가 구원 해주는 자로서 하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예수님은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활용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디 계시느냐? 내 속에 계신 것입니다. 그러고 예수님은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우리의 지혜가 되기 위해서 와 계십니다. 의로움, 죄를 다 청산하고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만들어주는 의로움이 되셔서 오시고, 거룩함이 되어서 허물을 다 벗겨 버리고, 거룩함이 되어서 우리에게 와 있어요. 영생을 얻어 영원히 사는 구원자로서 우리와 함께 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혼자 있지 않습니다. 우리 플러스(+)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예수님 플러스(+) 우리.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과 더불어서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고, 의로운 자로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 같이 인정을 받는 신분을 갖고 거룩한 예수님의 성품이 우리의 것이 되어서 거룩한 신분을 갖고, 구원 받은 사람이 되고, 버림 받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하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 예수님의 것이 내 것이 되었으니깐 ‘난 이래봬도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의로움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함을 가지고 있다. 나는 구원 받은 사람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가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은 자랑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자랑해야지 내 인간으로서 자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9장 23절로 24절에 ‘야훼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야훼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야훼의 말씀이니라’ 자랑하는 사람은 자기와 같이 계신 하나님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인간의 지혜를 자랑하거나 용감한 용맹성을 가졌다고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돈 많다고 자랑하지 말라. 여러분이 자랑할 것은 명철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자랑스러운 것이고,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가 하나님이신 줄 깨닫고 아는 자가 자랑할 만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계셔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사랑과 은혜를 가지고 자랑해야 될 것입니다.

3. 육체의 가시와 은혜 안의 삶(바울의 육체의 가시와 극진한 영적은혜를 보존하기 위하여)
우리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제자 중에 가장 존귀하고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건 사도 바울이라고 우리는 생각할 것입니다. 근데 바울 선생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사도로 사역을 하는데, 사람들이 핍박을 많이 했습니다. 사도라고 이름을 불러주지도 아니하고, 지식도 별 볼일 없고, 사람들이 사도 바울 선생은 진짜 사도는 아니라고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바울은 겸손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전도한 사람인데, 바울이 나중에 하나님의 특별한 허락을 받아서 자기가 열두 사도보다 못한 점이 없고, 하나님이 자기를 사도로 만들어서 내어 보내주신 것을 자랑하는 자랑을 여기 좀 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울 선생을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종으로 만들어 놓고 난 다음에도, 교만하거나 인간자랑을 하지 않도록 단단히 돌보시고 계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 선생의 생애를 바라보고, 우리도 그에게 배워야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이 고린도 인들이 “바울 선생은 무자격자”라고 비난할 때, “나도 내 자신을 자랑할 수가 있다”고 그가 자랑을 적어 놓은 것을 우리가 읽어 보십시다. 고린도후서 11장 16절로 33절에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없이 자랑하노라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고린도후서 11장 16~29절)’ 사도 바울 선생을 사람들이 무시하고 멸시하니깐 “내가 바보 같은 말이지만은 나도 자랑을 해보겠다.”고, “위대한 사도 지도자들하고 내 인생을 비교해 보아서 못된 적이 어디 있느냐”고. 사도 바울 선생은 여러분 읽은 것을 들은 거와 같이 고생을 많이 한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기를 자랑하지 아니하고, 훌륭한 주의 종으로서 일을 하신 것입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고린도후서 11장 30~33절)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예수님께 직접 배운 것이 아닌 엉터리라고 비난하니깐 사도 바울 선생은 고린도후서 12장 1절로 6절에 어떻게 그가 하나님의 나라의 지식을 배웠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린도후서 12장 1~2절)’ 자기가 하늘나라로 삼층천으로 올라갔는데, 자다가 올라갔는지, 깨어있어서 올라갔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하게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고 말을 했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린도후서 12장 3~4절)’ 사도 바울 선생은 천당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상상할 수 없는 말을 듣고, 구경을 하고 왔기 때문에 천당에 대한 의심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몸 안에 그대로 올라갔는지,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와서 올라갔는지 구별을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사도 바울 선생의 이야기를 통해서 장차 우리 몸을 떠나면 셋째 하늘이 우리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수고하고 고통을 많이 당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앞날에는 확실한 천국의 소망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즐겁게 인생을 재출발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고린도후서 12장 5~6절)’ 더 이야기는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왜 사도 바울 선생은 몸에 병이 들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사도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안수해서 병을 고쳐주면서 왜 자기는 병들어서 고생을 하느냐? 사도가 아니다.”고. 그런데 사도 바울 선생은 무슨 병이란 말은 안 했었으나, 아주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도 바울 선생이 시력이 나빴던 것 같아요. 눈병이 있어서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냐. 그가 편지를 쓰는데 직접 편지를 안 쓰고 전부 대필을 시켰단 말이에요. 눈이 밝으면 자기가 직접 쓰지 왜 대필을 시킵니까? 그런데 바울 선생의 편지는 모두 다 대필인 것입니다. 좌우간 살아가는데 그렇게 어려운 것으로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를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그의 눈이 나빴던지 다른 몸에 무엇이 나빴는지, 나쁘게 해서 교만하지 않도록 만들었단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로 10절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후서 12장 7절)’ 여러분 묵시를 크게 받고 계시를 크게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계시나 묵시를 크게 받으면은 “이것 봐라.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아예 교만심이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그 교만을 낮추기 위해서 하나님이 마귀에게 적당한 권한을 허락해서 치게 만듭니다. 그러니까는 고통스러우면 교만해질 수가 없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게 되거든요. 그러므로 묵시를 많이 받고 고통당하고 사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런지 모르겠어도, 나는 묵시를 덜 받고도 건강하게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병들어있다는 것은 참 심히 괴로운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병드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글에 보면 죄 사함을 줌과 동시에 병든 자를 고치는 말씀이 늘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죄인에게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을 말씀하시고, 병든 자를 고쳤습니다. 심방해 가면서 병든 자를 고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별나게 계시를 받지 않은 우리들로서,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병든 사람 고쳐달라고 떼를 써야 됩니다. 마귀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려고 할 때, 예수님께 나아가서 우리가 치료 받고, 건강하고, 명대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병든 사람들이 제게 안수 받으려고 하는데 겁이 나서 못 온다고 그러는데, 내가 협박하고 공갈하는 사람 아니니깐 안수 받고 싶은 사람은 오세요. 언제나. 서로 안수 하면 내 힘으로 안 될 것은 다른 사람의 믿음을 빌려서 기도해서 나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간곡한 기도가 하나님을 감동하시고, 하나님이 그 믿음을 통해서 기적을 행하여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린도후서 12장 7~10절)’ 교만하면 하나님 은혜는 떠나는 것입니다. 교만하지 않기 위해서 마귀의 공격을 허락해 놓아서, 마귀가 다니면서 자꾸 공격을 하니깐 약할 때 하나님을 찾고 매달리고 그러므로 은혜가 떠나지 않고 몸에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하나님의 은혜가 같이 있지 기도 안 하면 안 되는데, 교만해지면 기도를 안 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교만하지 못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과 전쟁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 따르는 32,000명의 장정들 가운데 300명만 데리고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적군이 수 만 명이 쳐들어 오는데, 기드온은 32,000명을 데리고 그도 적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는 “300명만 데려와라. 300명.” 그 이유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내 힘으로 이겼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인간을 자랑하고 인간을 뽐내는 것을 참으로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해서 일을 해서 성공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만은, 인간 자랑을 하는 것은 하나님은 크게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사사기 7장 2절에 보면 ‘야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구원을 얻었다고 자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잠언 6장 16~19절에 보면, ‘야훼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거 다 심히 어려운 것입니다. 교만한 눈, 교만해서 번쩍번쩍하는 교만한 사람을 미워하시고, 거짓말 잘하는 자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무죄한 죄의 피를 흘리는 손과 죄 없는 사람 죽이는 것,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말 하는 망령된 증인 이런 것을 하나님께서는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하나님께서 매우 미워하고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곤고한 백성을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을 낮추시겠다’고 말씀(시편 18편 27절)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바울 선생은 말씀의 지식과 영적체험을 놀랄만치 조화롭게 받았습니다. 인간으로서 바울 선생만치 영적 세계를 두루 가보고 체험한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으로나 영적으로나 교만하지 못하도록 사탄의 사자, 육체의 가시가 주어졌습니다. 육체의 끊임없는 고통이 자기 인간이 스스로 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 선생은 그렇게 묵시를 많이 받은 사람이고, 그렇게 지식이 많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겸손하고 하나님 앞에 자기를 낮추고, 겸손하고, 교만하지 않은 삶을 살아서 바울 선생과 같은 생활을 우리가 옳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천지에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분이 계시지 않으므로, 유일무이한 하나님을 섬기고 그 다음엔 자기 스스로를 낮추어서 겸허하게 지나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어서 예수님이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이 되어서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꿈을 갖게 되고, 믿음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 선생 같은 사람 이방인의 사도로 나가서 거대한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다 예수 믿는 것 바울 선생의 덕분입니다, 이방인인데. 그렇게 해서 계시를 엄청나게 많이 받았고, 지식도 너무나 크기 때문에 하나님이 낮추기 위해서 마귀를 보내가지고서 늘 치게 한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육신의 가시, 사탄의 사자가 그를 늘 괴롭히므로 하나님께 늘 기도하고, 하나님 도움을 받고, 겸손하고, 하나님 앞에 오만하지 아니하고, 착하게 살므로 하나님이 끝까지 바울 선생을 축복해주시고 복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서 교만하지 마십시다. 스스로 낮추시고, 겸허하게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이 나의 지혜가 되시고, 주님이 나의 의로움이 되시고, 주님이 나의 거룩함이 되시고, 주님이 나의 구원이 되신다. 내가 잘나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내 안에 들어와 계시고, 우리는 하나님께로서 나서 예수님 안에 있어 예수님과 우리는 하나가 돼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칭찬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 속에서 우리와 더불어 함께 살므로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아서 우리가 잘 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교만하지 않고 오만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여러분과 같이 해서 살아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좋은 대학을 못나오고 일등 생활을 못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이 계시면 그리스도의 지혜가 그 모든 것을 다 이기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교육이요, 여러분의 재산이요, 여러분의 자랑이요, 모든 것 중에 모든 것이 다 예수님인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