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는 자도 고난을 당하는가
(롬 8:28)

2016.09.18. 주일4부예배

<서론>
‘예수님을 믿는 자도 고난을 당하는가’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세월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고난을 안 당한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고난은 다가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고난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님께로부터 받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고통당할 때, ‘내가 다 이루었다.’ 그 말씀을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극복하지 못할 어떠한 원수도 없이 주님께서 다 이겨서 승리의 길을 열어놓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대신 짐을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과 은혜를 주셔서 모든 환경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본론>
1. 예수님도 당하신 고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사람이 당하는 시험이나 고난을 다 당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사람이 당하는 고난을 다 당하셨습니다. 한번 예를 들어보면, 갈릴리 호수에 풍랑이 다가와서 배들이 전복되고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예수님도 배를 타고 그 강을 바다를 건너면서 주무셨습니다. 그렇게 풍랑이 심히 일어났는데도 배 안에서 주님께서는 주무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당하신 모든 고난을 바라보고, 그 의미를 알고,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 35절로 38절에 보면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절망적인 음성으로 주님을 깨웠었습니다. 제자들이 절망적이 되어 주님을 깨우니 일어나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즉시 잠잠하게 되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마가복음 4장 39절)’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풍랑을 당하나 다스리시는 권세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마가복음 4장 41절)’ 우리는 예수님께서 마귀를 다스리시고, 우리 주변에 있는 여러 가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원수들을 다스려주시지, 바람과 바다를 다스린다고는 생각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바람도 다스리시고, 바다도 다스리신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다 주님은 다스리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고난을 극복하는 십자가의 은혜
고난을 극복하는 데에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고난을 당하나 골고다 십자가의 은혜를 믿으면 환경을 믿음으로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였은즉 시험 받는 자들이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브리서 2장 18절)’고 성경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그 고난을 피하라고 하진 않습니다. 고난을 올라타야 됩니다. 고난은 우리의 수레인 것입니다. 고난이 우리를 태우고 고난에서 고난으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때가 오면 그 고난이 순식간에 큰 축복으로 변화돼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서 우리가 큰 기쁨으로 살 때에 고난이 다가옵니다. “주님 왜 고난을 주십니까? 내가 나쁜 일도 안 했는데. 이 고난을 멀리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면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고난이 네가 꿈꾸고 있는 영광에 도달하는 시발점이다. 고난이 있어야 너의 운명이 출발하여 성공으로 가는 길에 있다.” 여러분, 야고보의 아들 요셉은, 형들 앞에서 곡식단들이 일어나서 자기보고 절한다는 것을 말하고,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절하더라고 해서 가족들이 꿈꾸는 자로 굉장히 멀리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꿈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 꿈이 황금수레를 타고 도달했으면 좋겠는데, 그 꿈을 꾸고 난 다음부터 고난이 다가왔습니다. 형들에게 붙잡혀서 마른 우물에 던져져서 죽게 된 고난의 출발로 행상들이 물건 팔러 애굽으로 가는데 종으로 팔아먹어 버리고. 종으로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서 있어 고난 중에 사는데,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쳐서 그 다음 문제가 되어 더 큰 고난 시위대들 감옥에 들어가서, 보통 사람 같으면 “내 팔자가 왜 이러냐? 내가 하나님 꿈을 꾸고 약속을 받은 사람이 영광에서 영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고난에서 고난으로 가니 웬일이냐?” 알고 보면 고난이 영광으로 가는 수레인 것입니다. 고난이 와야 돼요. 여러분 큰 꿈을 가지고 있는데 편안하기만 하면 발전 안 합니다. 큰 꿈을 가지고 있는데 정반대로 고난이 다가와서 ‘이 길로 가다가는 망하지 않는가.’ 싶을 때, ‘아 출발이구나.’ 그렇게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고난 지나면 또 다른 고난이 다가오고, 다른 고난이 지나면 또 다른 고난이 다가오고. 요셉은 종으로 팔린 그가 나중에는 시위대들 감옥에 종신형을 받고 들어가 있습니다. 거기에 들어가면 나오질 못합니다. 이거 하나님의 축복의 꿈을 가졌는데, 실제 생활은 버림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떡장관, 술장관 만나고, 꿈 해석 해주고, 그것이 바로의 귀에 들려서 이제 바로가 꿈을 꾸어서 꿈을 알려고 할 때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해주고, 그 고난이 급속도로 변해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됐어요. 영광에 도달했어요. 형들이 와서 누군지 모르고 절하고, 도움을 구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 좋은 일만 좋은 것이 아니라 고난이 좋은 일이 일어나는 곳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큰 영광은 큰 고난을 가져오고, 적은 영광은 적은 고난을 당하게 하는데, 고난을 당할 때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지 마십시오. 요셉은 고난당했을 때, 불평 한 마디도 안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만 의지했었습니다. 고난이 다른 고난으로, 또 다른 고난으로, 바통을 넘겨주면 그 고난이 수레가 되어서 하나님이 예비한 영광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 위에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당한 형태를 바라보고 마음속에 믿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게 되고, 허물을 사함 받고, 성령을 받게 되고, 예수님 채찍에 맞으시므로 무서운 고통을 당했는데, 그것이 우리 병 고침 받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또한 나무에 매달려서 저주를 받아서 고통을 당했는데, 예수님은 우리들 저주를 대신해서 나무에 달렸으므로, 우리의 생활에 아브라함의 복이 오게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했으니 죽음의 음부를 이기고 부활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이 겁나지 않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는 부활의 생명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오중복음만 자세히 살펴보아도 거기에 소속된 병이나 고통은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은혜를 통하여 죄와 허물을 극복하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신 그 공로를 우리가 믿고 받아들여서 병을 정복해버리고, 가난과 저주를 예수님 십자가에 매달린 은혜를 받아서 이기고, 죽을 때에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음으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낙원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떠한 고통이 다가오더라도 예수님이 다 이제 정복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하면 우리 귀에 대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나를 바라보고 고통을 바라보지 마라. 내가 다 이루어 놓았다. 나를 보면 내가 네게 은혜와 축복을 주어서 넉넉히 이기게 해 주겠다.” 그러므로 고난을 극복하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인 것입니다. 죄와 허물, 병, 저주, 죽음을 예수님께서 다 다스려 놓았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하면 우리가 넉넉히 다스리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야고보서 5장 13절)’
긍정적인 생각, 확고한 꿈, 흔들리지 않는 믿음, 창조적인 말씀의 선언을 성령께서 받으시사 우리를 위해 다스려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4장 12~13절)’ 우리가 조금만 더 깨달으면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큰 축복으로 이끄는 수레인 것입니다. 저주가 아니라 수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올 때, 너무 피하려고 애쓰지 말고 감사를 하셔요. “하나님 고난을 보내셔서 내 운명의 출발점을 알려주심을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다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있지요? 이 꿈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지만은 마음에 꿈을 가지고 있는데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시련이 많이 다가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은, 이 고통스러운 시련이 꿈에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고통이 없으면 출발을 안 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출발하는 표시인 것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야고보서 1장 2~7절)’ 우리가 고난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언약을 이루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3. 예수님을 모신 성도의 정체성 (예수님을 모신 성도(질그릇)의 정체)
성경에 보면 우리를 질그릇으로 표현한 때가 있습니다. 그러고 예수님은 질그릇에 담긴 황금보화고요. 우리 몸이 질그릇이면 예수님은 보배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고린도후서 4장 7~8절)’ 우리를 도적질하고 멸망시키려고 원수들이 사방으로 우겨싸도 우리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 속을 들여다보니까는 예수님이 들어와 앉아 계시는 것입니다. 기절초풍을 할 지경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린도후서 4장 8절)’ 답답한 일이 많이 있지요. 그러나 처음과 시작이요, 나중과 끝이 되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늘 답답하지 않습니다. 환한 곳으로 곧장 인도해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고린도후서 4장 9절)’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아도 마음에 버린 바 되지 아니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주가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린도후서 4장 9절)’ 완전히 넘어뜨려도 안 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장 10~11절)’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사는 동안에 예수로 말미암아 죽을 고생을 많이 하면, 그 다음에는 예수를 통해서 부활의 생명의 넘치는 은혜를 체험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을 내가 받아들이고 의지하면 예수의 부활도 내게 다가와서 나에게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기근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는 예수님을 위해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 8장 35, 37절) 이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을 죽인 세상에 마귀의 도구가 어디든지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죽인 것을 우리가 당하게 되면, 예수님의 살아있는 생명의 역사가 그 뒤를 따라서 우리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이 되면 ‘예수 부활 내 부활’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하나가 되어 있으므로. 놀라운 체험을 그리스도 안에서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풍성한 열매를 가지려면 그 조건을 구비해야 되는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사과나무가 무조건 사과를 열매 맺지 않습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적당한 햇빛도 있어야 하고, 적당한 비도 내려야 하고, 온도도 적당해야 합니다. 또 병충해의 해도 입지 않아야 합니다.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면 나무에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저절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되고, 확고한 꿈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야 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선언도 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께서 같이 일하시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이 있어야 성령께서 그 속에 들어와 있을 수 있어요. 꿈꾸는 사람이어야 성령이 와서 같이 꿈을 꾸어주지요. 믿음을 가져야,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으면 성령이 와서 같이 역사해 주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선언해주면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말을 이루어지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면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 저 북쪽에 사과단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금년에처럼 비가 많이 와서 사과가 다 떨어졌어요. 모든 농부들이 발을 뻗고 통곡을 했습니다. ‘일 년 농사가 풍랑 파도가 치는 나쁜 기기후 때문에 망해서 이제는 뭘 먹고 어떻게 사느냐.’ 주님을 잘 믿는 농부 한 사람이 역시 사과 밭에 사과가 다 떨어졌습니다. 근데 그는 “하나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는데, 일 년에 농사 지은 사과 열매가 다 땅에 떨어져도 이것도 합동하여 선을 이룹니까?” 마음속에 성령이 말하기를 “이루고 말고.”, “우리는 알 수가 없는데, 왜 하나님은 모르게 이루어 줍니까?”, “네 지혜가 모자라니깐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듣지 않느냐. 모든 것이 합동하여 어떻게 된다고? 선을 이룬다.” 그러다 기도하는데 머리에 지혜가 들어왔어요. 이렇게 큰 폭풍우가 불어와서 사과가 다 떨어졌어도 그 중에 안 떨어지고도 매달려 있는 사과가 있단 말입니다. 그래 날이 맑아지자 안 떨어진 열매를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뭐냐 하면, 대학입시 시절이라 부모들이 자식들의 합격을 위해서 밤잠을 안 자고 고생을 하는데, 이 사람 아이디어가 생겼어요. “바람이 불어도 안 떨어지는 사과. 낙제하지 않는 사과 열매를 사 잡수시라”고. 그러니깐 부모님들이 이 집 대문 앞에 줄을 서요. 그 사과 사 먹으려고. 사과 한 알을 보통 때 보다도 열 배나 비싸게 불러도 깡그리 다 팔았어요. 그는 풍년에 사과 수입을 한 것보다 더 많은 수입을 얻었어요. 내가 그 이야기를 읽다가 상당히 나 혼자 웃었습니다만, 입담이 없어서 내 오늘 여러분을 웃기질 못 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기 때문에, 바보같은 생각이라도 하나님 손에 들어가면 천재같은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는 일하지 않으십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살리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의 말을 믿지 않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그 부모와 제자들만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마가복음 5장 38절로 41절에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그러므로 주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굳게 믿고 나아갈 때, 성령께서 그 믿음 안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갖지 않은 곳에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고난은 우리가 장차 받게 될 영광과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로 18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환난이 다가와도 우리가 환난을 바라보고 낙심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환난은 영광으로 나아가는 길 안내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
시편 119편 67절에 보면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편 71절)’ 잠언서 17장 3절에는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야훼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은 우리의 원수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용하셔서 우리들을 교육시키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우리를 깨뜨려서 순종과 믿음의 삶을 살게 합니다. 그리고 주님에 대한 믿음이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비로소 하나님을 찾는 기도를 하게 되고, 주님 옆에 무릎을 꿇는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이 없는 사람은 고난도 필요 없습니다만, 꿈이 있는 사람은 고난이 다가오면 육상경기를 할 때 “준비~ 호로록” 뛰는 것처럼, 고난이 곧 호루라기인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합니다. 그 고난 하나하나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예수님이 다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니라(로마서 8장 28절)’ 그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꿈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이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과 꿈과 믿음과 입술의 고백이 여러분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서 예수 믿고 구원 받게 해 주셨어도, 이 인생이 만들어지는 법칙을 따라서 우리가 살아야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역사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찾아와서 여러분에게 고통을 가져오면 곧장 그 뒤에 보혜사 성령이 따라와서 그 고통을 우리가 타고 가는 수레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두고서 마귀와 성령께서는 늘 씨름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붙잡아서 이제는 죽이겠다고 생각하면, 성령이 그 뒤를 따라와서 성공의 깃발이 휘날리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8장35, 37절) 이 세상에 환난, 고통 없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다 환난,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어디 계십니까?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곳에 계신 것입니다. 소원을 갖고 꿈을 꾸고 있는 사람에게 성령이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령이 같이 와 계시고, 입술로 고백하는 데 성령이 함께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항상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귀신이 와서 역사하지만, 그 뒤를 성령께서 따라와서 만사가 합동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과 곤고나 시련 당했을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통해서 성공을 갖다 주는 것을 알고, 믿고, 감사드리게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