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찾으면 산다
(고전 2:9-10)

2016.09.25. 주일4부예배

<서론>
‘하나님을 찾으면 산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한 평생을 살면서 좋은 일만 체험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큰 돌멩이와 작은 돌멩이를 물에 던지면 둘 다 물 밑으로 가라앉지만 다른 점은 빠지는 소리입니다. 굵은 돌은 풍덩, 작은 돌은 퐁당 소리를 낼 따름입니다. 고통의 크고 작음만이 다름이 있지 고통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최근 안전지대라고 여겨지던 우리나라도 지진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진을 당하고 나니까 그 동안 지어진 건물들이 내진설계가 되어 있는지, 또 원자력 발전소의 노후 시설은 문제가 없는지, 다시 점검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진을 겪지 않았을 때는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을, 지진을 겪고 나니까 다시 점검하고 살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안할 때는 세상 정욕에 잠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흔들리는 지진을 겪고 나면 그제야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정욕에 잠이 들어 혼돈 속에 휘말려 갈 때 고통은 세상 잠에서 깨어나 삶에 진리와 빛을 주시는 주 예수님께로 찾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고통이 내게 다가오고 있다 할 때 우리는 그 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우리의 삶의 과정에 상상을 뛰어 넘는 시련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과정에 상상을 뛰어 넘는 시련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 시련을 잘 이겨내면 좋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심한 낭패와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전도서 7장 13절로 14절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 사람이 알아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난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고난을 당한다 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그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파스칼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인생은 불쌍한 우주의 고아”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도움을 부탁할 곳조차 없는 고아와 같은 삶을 살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난 우리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고난 중에도 우리는 혼자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누가복음 12:29-30)’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기도로 구하여 하나님이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시편 9편 10절에 ‘야훼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우리가 주님 의지하고 주님을 찾으면 주님은 우리를 버려놓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당할 때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2.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고난의 풍랑이 다가옵니다. 그때는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고난의 풍랑이 다가옵니다. 그때는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야 돼요. 예수님과 같이 있으면 고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도 고난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자는 사람은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 일으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다 폭풍 속에서도 말씀 한마디에 폭풍이 잠잠해지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4장 39절에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부패한 냄새가 나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니까 살아서 나왔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사로의 누이 동생 둘에게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무덤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오라비를 살리러 왔는데도 살릴 것이라고 믿지 못해서 주님 앞에 변명을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변명을 듣고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주님께서 벼락같은 호령을 하시니까 마르다가 놀래가지고서 오라버니를 장례 지낸 묘의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사람들 때문에 합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항상 같이 계시고 나를 하나님의 아들로 임명했다는 것을 증명해주기 위해서 이 말을 합니다.” 그러고 난 다음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있을 때 마음에 의심을 하고 있으면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능력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우리와 같이 계신 예수님은 우리가 믿을 때 그 믿음을 통해서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가 마음속에 믿어야 돼요. 그러면 마귀는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부정적인 마음을 갖게 하고 불신앙을 갖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마귀를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오중복음을 늘 인정하고 예수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을 사함 받고 의로움을 얻고 거룩함을 얻는 것을 감사하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병이 나은 것을 마음속에 인정하고 예수님 십자가에서 우리 저주를 다 청산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에게 죽음이 다가오더라도 예수님은 사흘 만에 죽음도 음부도 이겨내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겨내지 못했으면 부활을 못하지요. 부활한 것이 이겨낸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사망과 음부가 누르지 못합니다. 우리는 죽어도 예수님이 대합실로 만들어 놓은 낙원에 들어가서 그리스도와 함께 재림할 것을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으나 마귀는 항상 이것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오중복음을 마음에 믿고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있을 때라도 귀신을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귀신은 여러분을 부정적이 되게 하고 자꾸 불안하게 만들고 불신앙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아 물러가라! 악한 귀신아 물러가라!” 한번 두 번만 하지 말고 4번 내지 5번 동안 그러면 끈질긴 귀신도 쫓겨나갑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네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했습니다. 요사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너무나 귀신을 내버려둡니다. 안 쫓아내니까 귀신이 잠자리에 같이 들어가서 자고 같이 밥 먹고 같이 행동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신앙에서 낙오되고 예수님 기적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귀신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가만히 앉아 계시지만 여러분에게 귀신이 붙어서 있는 사람 많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연히 대결해야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고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면 성령과 같이 행하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앉은뱅이와 절름발이가 낫고 병이 고침을 받고 즐거움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여러분이 환경을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입니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야훼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입술로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입술로 하나님 말씀을 고백하면 그 말씀이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많이 읽고 될 수 있으면 많이 마음속에 간직하여 외워두었다가 어려울 때 그 말씀을 입으로 고백하면 굉장한 도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시험과 환난은
시험과 환란이 우리에게 다가오면 우리는 그때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서 대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험과 환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 하나님 별로 찾지 않습니다. 시험과 환난을 당하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로 13절에 보면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이 이렇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안을 주고 재앙을 주지 아니하고 미래의 희망을 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는 더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던지 평안을 주고 재앙을 당하지 않기를 원하시고 내일의 희망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로써 그러므로 주님을 깨워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작가 맥스 루케이도는 우리의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하나님 왕국에서 대단한 존재다. 왜냐하면 당신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몸을 일으켜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너 같이 별 수 없는 사람이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친히 일어나셔서 그 말씀을 따라 역사해 주시니 얼마나 기도가 위대합니까? 우리가 땅에서 기도하면 하늘의 하나님께서 일어나신다니 이 얼마나 놀랍고 멋진 일입니까?
예레미야 33장 2절로 3절에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야훼 그의 이름을 야훼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는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만날 때 우리는 부르짖어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일어나시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자복하며 믿고 순종함을 환난을 만났을 때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소서(시편 71:20-21)’라고 시편 기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보면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우리가 고난당하면 고난에서 건져줄 자를 찾습니다. 하나님은 찾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찾지 않는 사람에게 따라다니면서 돌봐주지 않습니다. 욥기에 보면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기 42:5)’ 좋을 때는 그냥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귀로 듣지만 시련과 환난을 당하면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발버둥을 치고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기 42:5)’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좋은 일은 좋아서 좋고 나쁜 일은 좋게 만들어주니 좋습니다. 그 나쁜 일을 당했을 때는 회개하고 자복하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는 좋은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이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였으면 우리 영혼은 벌써 침묵 속에 잠겼을 것입니다. 하나님 저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부르짖을 때 주님께서 나를 붙잡아 주셨으며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 주의 위로가 성령으로 우리 영혼에 평안과 소망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50년의 긴 세월을 목회하면서 언제 가장 하나님 곁에 있고 신령한 생활을 했나보면 고난당할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고난을 당하게 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은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회개하고 자복하게 하고 헌신하게 만들고 그 다음에는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생활에 시련과 환난이 다가오거든 하나님께서 좋은 일을 해주시기 위해서 징조를 보였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무 고난도 없으면 그냥 오케이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무엇을 해줄 것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에 소원하는 꿈이 있을 때, 그 꿈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지 않습니까? 야곱의 열한째 아들인 요셉이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약속을 받았습니까?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를 향해서 절하고 곡식단 거두는데 열한 곡식단이 자기를 향해서 절을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지 않습니까? 언제 꿈이 이루어졌습니까?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기 위해서 붙잡아서 마른 우물에 던졌을 때 요셉은 기가 막혔습니다. 아버지의 피를 나눈 형제간인데 자기를 죽이려고 마른 우물에 던졌다. “이 자식 이 꿈이 이루어지는지 어디 보자.” 이러면서 마른 우물에 던졌습니다. 요셉으로서는 치명적인 마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고통이 다가오면 꿈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꿈이 조금 후에 아라비안 대상들에게 물건을 이스라엘에 와서 팔고 애굽에 들어가서 또 물건을 가지고 가는 장사꾼에게 삼십 냥을 주고 팔아먹어 버렸습니다. 마른 우물에 들어간 것도 고통스러웠는데 끄집어내서 종으로 팔아먹었습니다.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만 더 큰 고통이 다가왔기 때문에 더 큰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집에 가서 가정 종이 되어서 살만하니까 또 모함을 받아서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시위대 뜰감옥에 투옥이 됐습니다. 축복이 아니고 자꾸 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감옥 에서 떡 장관, 술 장관을 만나게 되고 그 꿈을 해석해주어서 그 소문이 바로왕에게까지 들렸는데 바로왕이 꿈을 꾸고 해석하지 못해서 괴로울 때 요셉이 그 곳에 가서 꿈을 해석하고 일격에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나중에 형들이 다 와서 자기 앞에 절하고 자기가 꾸었던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소원하는 꿈을 가지고 있으면 그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고난이 다가와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당하고 나면 괴롭지요. 어떻게 도움을 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고난을 보내어서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94편 17절로 19절에 ‘야훼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다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 야훼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우리가 백척간두진일보라고 벼랑에 떨어져서 미끄러져 죽을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처할 때 그때 주님이 손을 내밀어 여러분을 붙잡아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좋은 일을 많이 체험하는 사람들은 나쁜 일 많이 겪은 사람인 것입니다. 나쁜 일에서 당하여서 죽는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 성령께서 좋은 일로 건져 오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북한 김정은이가 원자탄을 만들어서 협박 공갈을 하니까 굉장히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기다려 보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이 오히려 선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나의 삶 속에 개인적으로 다가오는 시련도 그로 말미암아 뒤로 물러가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매달리면 그 시련이 좋은 것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합쳐서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매일같이 하루를 맞이하기 전에 여러분 가슴속에 오중복음의 십자가 은혜를 꼭 가르치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에게 가르치십시오. “너는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이 사함을 받고 구원받고 성령 받은 사람이 되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너는 병 고침을 받았다. 예수님이 저주를 당하여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도록 해주셨다. 예수님이 죽었다 부활하심으로 너도 예수님 안에서 부활의 생명을 얻고 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이와 같은 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람이다.” 그것을 꼭 마음에 꼭 주장하십시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서 여러분에게 해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꼭 그것을 주장하시고 그 다음에는 귀신을 쫓아내십시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에 나에게 시험과 환난을 가져오는 원수 귀신은 물러가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을 때도 예수님은 귀신들린 사람을 절대로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주시고, 그다음 다른 병들을 고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귀신 쫓아내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꼭 모셔들이십시오. 그러고 하나님의 치료의 은혜가 넘치도록 여러분 축복해주시고, 여러분이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크고 좋은 일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고통스러운 시련도 당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원망과 불평과 탄식하지 말고 감사와 찬송을 부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거친 세상에서 실패가 다가올지라도 우리는 예수님이 계심으로 버림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얼마나 심하셨습니까? 그 십자가 고통이 그 십자가 고통이 여러분의 축복으로 변하여서 여러분 발 앞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