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39-43)

2016.10.02. 주일4부예배

<서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마음에서 만나고 난 다음, 내가 느낀 바를 입술로 고백할 때 그 고백이 지금부터 영원까지 운명을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상황으로 누가복음에 기록된 강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 자기의 신앙고백을 하고, 영생을 얻는 행운을 얻게 된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위대한 소설가 톨스토이는 인생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들은 지옥이라는 열차를 기다리고, 어떤 사람들은 천국이라는 열차를 기다린다.” 예수님 옆에 매달렸던 두 사람의 강도는 똑같이 죽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지옥을 선택하고, 다른 한 사람은 천국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본론>
1. 끝까지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끝까지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죄인의 고백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그 고통을 당하고 나무에 달려있으면서 그 사람을 구원을 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죄인 두 사람이 좌편, 우편에 못 박혀 있는데, 죄인 한 사람은 예수님께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고 도전을 했습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누가복음 23장 39절)’ “왜 그리스도이면서 나무에 달려서 죽어가고 있느냐?” 그런데 다른 죄수가 이 말을 듣자 분노해서 대답을 했습니다. 그 다른 죄수는 마음에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누가복음 23장 40~41절)’

2. 주님께서 귀하게 보신 죄인의 고백
주님께서 귀하게 보신 이 죄인은 다른 동료 죄인과는 달랐습니다. 죄에 대한 꾸짖음을,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기 동료 죄인을 꾸짖었습니다. “자기가 정죄를 받아 십자가에 매달린 벌은 마땅한 것이다. 우린 마땅하게 정죄를 받아서 십자가에 매달렸는데 무슨 잔소리를 하느냐?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다. 죄라고는 지은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와 똑같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느냐? 어떻게 우리와 똑같이 취급할 수가 있느냐?”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그 고백에 포함시켰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1절에 보면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대단한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가 되시고 다가오는 나라의 절대 주권자가 되심을 고백을 했습니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장 42~43절)’ 십자가에 같이 매달려 오늘 죽을 것인데, 오늘 죽고 난 다음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낙원에 함께 만날 것이라고.
사람이 예수를 믿고 거듭나면 겉사람과 속사람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겉사람은 육체의 사람이고 속사람은 우리 영혼의 사람인데, 믿지 않을 때는 속사람은 죽어있기 때문에 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혀 모릅니다. 겉사람만 살아서 마귀의 유혹을 좇아서 살았는데,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속사람이 살아납니다. 우리 영의 사람이 살아나서 자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영의 사람이 자라나면 천국에 대한 사항을 더 깊이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장막집이 쓰러지면 속사람, 영의 사람이 있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강도에게 넘치는 희망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당하고 있는 그 장면에서도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나 없이 너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3. 중생하는 과정
우리가 중생을 하는 과정은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면 영혼이 살아납니다. 누가복음 5장 8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베드로가 구원받기 전에 고깃배에서 예수님 시킨 대로 그물을 던져서 고기를 많이 잡으니 “아~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그 날에 그물을 놓아두고 꿇어 엎드려서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구원받는 첫 단계가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이에요.
어느 날,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왔는데, 한 사람은 바리새교인이고, 또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유대인의 사회 속에 바리새인은 철저히 율법을 지키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세리는 굉장히 미움을 당하고, 손가락질을 받고, 사회생활 중에 아주 저층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이 세리와 함께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는데, 그는 사람들이 다 듣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여, 제가 여기 왔습니다. 저는 바리새인 신자로서, 십일조를 떼먹지 않고 꼭 바치고, 때를 따라 금식을 하고, 의롭고 훌륭한 생활을 합니다. 저 아래에 있는 세리처럼 죄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리는 한쪽 구석에 가서 앉아서 머리를 손으로 감고, 멀리 하나님을 쳐다보면서 감히 눈도 들지 못하면서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듣던 청중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바리새인을 칭찬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선언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누가복음 18장 14절)’ 자기를 자랑하던 바리새교인은 의로움을 받는 것이 아니고, 자기 죄인인 것을 알고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린 이 세리가 의롭다함을 입고 집에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는 하나님 앞에 낮아진 마음으로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는 그것이 첫 단계인 것입니다. 마음에 죄인인 것을 깨닫고, 입술로 예수님을 시인하면 어떤 사람도 구원을 받습니다.
그 구원을 받는 단계에 하나님의 성령이 감동을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을 한다는 것은 성령이 마음에 감동을 해주지 아니하면 그럴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이 마음을 싹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아주 성령이 말하면 마음이 달큼해지고 고요하고, 평안한 가운데 희한하게 마음에 깨달음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성령의 계시가 오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장 8절)’ 구원은 우리 행위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놀라운 구원을 선물로 주실 때, 받는 사람은 공짜로 받지만 주는 사람은 대가를 지불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공짜로 구원을 받지만은, 구원을 주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고난을 받아야 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성품상 인격적으로 큰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옛사람은 사라지고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로 6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 말씀에 보면 이 세상을 짓기 전에 이미 하나님은 여러분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이 땅이 생기기 전에, 하늘이 생기기 전에, 여러분은 벌써 하나님 손바닥에 기록해놓고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한 것도 우연히 구원한 것 아닙니다. 여러분의 존재의 뿌리가 어머니 배속에서 “으아~”하고 떨어질 때 비로소 생긴 것이 아닙니다. 창세 전에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연히 굴러다니다가 교회 와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오해인 것입니다. 여기에 서서 설교하는 조용기가 우연히 목사가 되어서 서있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이 선택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이 자리에 앉아 계신데, 외모적으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창세 전에 하나님이 이미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고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께서 또 예정을 하신 것입니다. 창세전에 선택을 한 여러분을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으로 예정을 하셨어요. 그러니 보통 중대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하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구원받도록 예정을 해 놓으시고, 그러고 온갖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복을 주시니 우리는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굉장히 귀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창세전부터 선택하여 사랑하고 돌보아 주시고, 우리 태어날 때에 우리를 예정을 해서 “너는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가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것을 깨닫게 되면 삶의 중심 목적이 깨달아 지는 것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에베소서 2장 2~3절)’ 예수 믿지 않고 우리가 죄인으로 살 때는 마귀가 우리를 유혹해서 잡고서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타락한 마음의 인도를 따라서, 마귀와 함께 지는 우리들이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에베소서 5장 8~9절)’ 그래서 우리는 어두움에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령이 마음에 깨달음을 주심으로 빛 되신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셔드려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라서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우리의 삶의 중심이 달라져서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속사람, 영의 사람이 살아나고, 4차원의 신령한 세계를 깨닫게 되어 마귀와 흑암의 세계를 쫓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영의 사람, 속사람. 여러분 마음속에 영의 사람이 살아나면 영의 세계에 접촉하는 세계가 따로 있습니다. 3차원의 세계인 물질세계는 입체의 세계 속에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이 이상은 더 몰라요. 4차원의 세계라는 것은 3차원의 육체적인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무언지 모릅니다. 그러나 3차원과 4차원 사이에 굉장한 간격이 떨어져 있습니다. 4차원에 들어가서 대화를 하려면 생각이 다르고, 꿈이 다르고, 믿음이 다르고, 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4차원은 영의 세계인데, 3차원까지는 물질세계고, 물질세계하고 영적인 세계하고 대화가 안 됩니다. 그러므로 짐승들은 하나님 영적 세계하고 대화를 전혀 못하지 않습니까. 사람도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물질세계에서 영적인 세계와 대화가 전혀 안 됩니다.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셔도 못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영이 살아난 사람은 4차원의 세계에 함께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살아나고, 꿈이 살아나고, 믿음이 살아나고, 하나님과 신앙고백의 언어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4차원의 세계 속에 들어가서 영의 세계에서 대화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면 십자가의 내면적인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벌을 받아 죽었다고 생각하는데, 영의 사람이 살아난 여러분은 영의 눈을 떠서 보면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시고 허물을 씻어주시고, 의롭게 만들어 주시고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십자가를 바라보면 또 여러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달렸는데, 왜 매를 맞았느냐? 영의 깨달음은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도다(베드로전서 2장 24절)’ 여러분 병 고쳐주기 위해서 그렇게 치욕적인 고통을 당하여서 대가를 지불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중생하여 영적인 4차원의 세계에 들어간 사람은 예수님이 그 고통을 당한 것은 여러분에게 건강을 주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 세계의 생각과 언어를 정말로 알아야 돼요. 여러분의 병을 예수님은 대가를 지불하고 치료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병은 예수님이 대가를 지불해 놓았습니다. 자격이 없이 그냥 고쳐달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대가를 지불했으니까 그 대가를 여러분이 취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도 달라져야 돼요.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언제나 나았다는 말을 해야 돼요. 생활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저주를 받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저주 받아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다. 얼마나 치욕적인 고통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저주의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주가 떠나가면 가시와 엉겅퀴가 여러분의 생활에 사라지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것이 축복으로 변화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4차원의 영성에 따라서 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나는 잘된다. 나는 성공한다. 나는 축복 받았다.” 그렇게 말이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영적인 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대화를 하는데 죽음이 다가와도 예수님은 죽을 수 없는 분입니다. 죄의 값으로 죽는데 예수님은 죄를 안 지었기 때문에 못 죽어요. 예수님이 죽은 이유는 여러분의 죄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는데 삼일동안 걸려서 예수님이 삼일동안 죽어서 음부에 내려가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고 부활한 것입니다. 살아야 부활하지 죽으면 부활 못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난 다음 승리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부활하셔서 여러분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죽음이 다가와도 죽음이 아닌 것입니다. 낙원으로 들어가는 기차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낙원에서 예수님과 함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곳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말하기를 “낙원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의 말로써는 설명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너무 좋은 곳이어서... 그래서 바울이 기록하기를 “만일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는 우리의 집이 영원히 있다.” 그러므로 죽음을 겁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곳에 들어가서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기쁨 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속사람 영의 사람이 살아나서 신령한 세계를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영의 사람은 생각이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구체적인 요구를 할 때 4차원의 꿈을 꾸고, 꿈을 꾸고 여러분 꿈이 있지요? 하나님 앞에서 구체적인 꿈을 가지고서 기도하고 그것을 믿고, 그러고 믿은 그것을 말로 표현하고, 영적인 새로운 세계를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3차원의 물질적인 세계에서 살던 우리가 영적인 4차원의 영의 세계 속에 생각하고, 꿈꾸고, 말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과 믿는 사람의 세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생각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와서 사는 사람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세계를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지고, 창조적인 언어가 달라지면 여러분은 4차원의 세계 속에 성령과 교제하면서 살게 되고, 물질적인 세계 속에 살던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왔다갔다 형식적으로 믿으면 변화된 삶을 살지 않게 되는 것인데, 4차원의 영성을 따라서 살게 되면 여러분의 세계가 확실히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가 그때는 여러분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총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적생활에 들어온 사람은 마귀가 쫓겨나가거든요. 어떻게 하든지 꾀어서 타락을 시켜야 되겠다고 예수를 믿는 사람의 영적 생활을 파괴하려고 달려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는 그런 일을 안했지만, 믿고 난 다음에는 계속해서 귀신을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누가복음 10장 19절])’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그러므로 우리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러 오는 귀신을 늘 쫓아내고 4차원의 영성 속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여러분 언제나 십자가의 오중복음을 통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사십시오. 그러고 하나님 앞에 소원하는 꿈을 마음속에 품고 사십시오. 꿈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고, 창조적인 말을 하고, 그러면 여러분은 완전히 달라지고 새사람이 되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과 목적이 달라지고 굉장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삶의 목적이 분명하고 삶의 가치가 확실하게 됨에 일반의 말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 동안 천국과 마귀의 유혹이 나를 중심에 두고 맹렬히 싸웁니다. 나에게 어떤 부형이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목사님 나는 내 아내가 나를 집요하게 인도해서 교회에 왔는데, 목사님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상당히 마음이 감동이 되어서 내가 일어나서 기도를 따라서 하고, 내 집사람이 좋다고 박수를 치고 내 등허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그 다음에 출근하고 보니 믿은 것은 다 잊어버리고 옛날 생활 그대로 했습니다. 그다음 주일날 교회 나가서 또 예수 믿을 사람 손들라고 해서 또 손들고는 일어났습니다. 그 다음 일주일 지나고 난 다음 또 교회 가니까 또 마음에 가책이 옵니다. 왜냐하면 변화된 생활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네 번째 일어나니까 내 마누라가 확 쥐어박고, 나를 쥐어박더니 “구원을 매 주일 마다 받느냐?” 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고,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4차원의 세계에 들어왔기 때문에 생각을 십자가를 통해 붙잡고 있으면 구원 받은 것입니다. 한꺼번에 완전 100% 구원에 이르지는 못하니까 좀 넘어졌다 또 일어나고, 또 넘어졌다 일어나고, 마귀하고 씨름을 하면서 승리해 나가는 것이 구원이지, 매번마다 구원을 새로 받고 새로 회개해야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회개하고 다시 넘어지면 내일 또 일어나서 나가고, 모레 또 일어나서 나가고, 마음속에 성령이 들어와서 도와주심으로 장성해 가면서 마귀를 완전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꾸짖고 나가면 점점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난 다음에 그 이튿날 당장 천사가 되지 못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마귀 비슷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회개하고 또 일어나고, 회개하고 일어나서 자라는 것이지. 완전히 죄인이 되었다 새롭게 구원을 받아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요한일서 1장 9절)’고 말씀했는데, 일어났다, 넘어졌다를 끊임없이 하더라도 예수 십자가를 가슴에 끌어안고 있으면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시고 피를 흘리시고 죽음의 고통을 당하셨는데, 그 모든 은혜가 성령으로 여러분에게 부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가 되었다고 고백했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4차원의 영적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서로 생각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여러분의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꿈을 같이 꾸고, 하나님과 같이 믿고, 하나님과 같이 창조적인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선언이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빛이 있으라! 궁창이 나타나라!” 창조적인 선언을 하는 것인데, “우리 집안에 평안이 있을 지어다! 우리 집안에 마귀는 물러나가라!” 그래서 여러분은 영적인 세계 속에서 신령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생활과 운명을 변화시켜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에 백성이 창세 전에 선택함을 얻게 되었고, 지금 믿은 것은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 사랑해서 구원하셔서 3차원의 세계에서 살던 우리가 영의 세계인 4차원 영적 세계 속에서 살게 됨으로 놀라운 일이 우리 속에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4차원의 영성을 갖고 예배를 드리게 되면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집니다. 묵시가 오고 그 다음에 기적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4차원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창조적인 역사를 베푸는 세계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기적이 나타납니다. 기적을 여러분이 여러분의 것으로 알고,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우리는 성찬을 맞이하게 되는데, 예수님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시고, 예수님과 여러분이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 사람이 되어서 오중복음을 생활 속에 실천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을 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비한 삶을 살게 된 여러분은 축복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