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사랑, 정죄와 심판
(욘 3:3-10)

2016.10.23. 주일4부예배

<서론>
‘용서와 사랑, 정죄와 심판’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속사람과 겉사람 사이의 갈등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대개 속사람을 정의롭고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겉사람을 죄짓고 방종하고 세속적인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속사람은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을 칭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에 반해 겉사람은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미워하고 책임을 전가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속사람을 따라 살며 하나님이나 사람 앞에서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본론>
1. 요나의 분노와 하나님의 자비 (요나가 하나님을 피하여 달아나다)
성경에 보면 요나시대 중동일대는 앗시리아가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이웃나라를 다 궤멸시키고 그 나라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서 자기 수도로 끌고 가서 종노릇 시키고 그렇게 했습니다. 더구나 유대나라의 국경이 아주 가까워서 앗수르에게 온통 발가벗겼습니다. 그래서 유대 사람들은 앗수리아 사람을 아주 미워합니다. 그런데 그 유대 선지자 요나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하셨습니다.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가 돌이키지 아니하면 40일 후 무너질 것이라.”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니 네가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지 아니하면 40일 이내에 니느웨 수도가 무너질 것이라고 선언하라는 것입니다. 그래 요나가 가만히 그 말을 들어보고 “야 그렇게 좋을 수가 있나? 국가의 힘을 다 내어서도 앗수르를 막지 못하는데 하나님이 직접 치겠다고 하는데 내가 거기 가서 왜 말려? 북 치고 장구 치고 오히려 따라가 놀지” 하나님 그 말씀을 듣자마자 “예 안녕히 계십시오.” 그러고 욥바에 내려가서 욥바는 항구입니다. 인천처럼 항구인 것입니다. 항구에 내려가서 니느웨는 북쪽으로 가야 하는데 다시스 남쪽으로 영 반대 도시로 삼십육계를 놓습니다. 하나님이 가서 회개시키라는 니느웨는 가지 않고 정 반대인 다시스로 배표를 사서 배 타고 그것도 배 제일 밑창에 내려가서 사람들 눈에 안 띄는데 가서 구부리고 하나님 말씀에도 안 깨어나려고 잠이 들었어요. 그런데 배가 어찌 됐던지 그 선원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다 가운데로 들어가자마자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엄청난 바람이 불어서 배가 박살이 날 정돈데 그 배 선원들이 배를 바로 잡으려고 무수히 애를 써도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털어버리고 멀리 도망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도망가겠습니까? 그러기에 뱃사공이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고, “틀림없이 이 배에 불순한 사람이 타고 있다”고. 그래서 전부 끌어 모아가지고서 “우리 배가 이 지중해 일대에는 안 갔다 온 곳 없이 가도 이런 일은 안 당했는데, 오늘은 욥바에서 다시스로 가는 이 항로에 이런 험한 파도가 생기는 것은 틀림없이 하늘의 벌을 받은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누가 무엇 때문에, 이 벌이 내리는지 우리 고백하자. 혼자 뜻을 이루기 위해서 여기 배 탄 사람들 다 물에 빠져 죽도록 할 수 없지 않느냐?” 그래서 제비를 뽑으니까 요나에게 걸렸어요. 제비를 뽑는 것, 어릴 때부터 우리는 거기에 잘 익숙해 있습니다. 어려우면 제비를 뽑아서 사람을 지적하는데 여러분은 그거 하지 마십시오. 그거 성령이 인도하셔야지 아니면 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주 극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제비를 뽑으니까 요나에게 걸렸습니다. 그 요나를 선장이 붙잡고 “당신 무엇 때문에 이 폭풍우를 몰고 오느냐?”고. 그러니 “하나님 날보고 니느웨에 가서 40일 이내에 회개시키라는데 우리 원수이기 때문에 박살나기를 원해서 다시스로 내가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나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를 처치하십시오.” 그래 “너를 처치하자니 살려달라는 말 안하고 처치하라고 하느냐 우리 한번 힘써서 더 배를 바로 세워보자.” 그러고 열심 으로 배를 바로잡으려고 해도, 배가 바로 잡혀지지 않습니다. 옛말에 ‘파도가 바다에 일면은 돛대부터 찢으라’고 말합니다. 그건 사람의 지혜와 총명으로는 배를 바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큰 환난을 만나면 인간의 지혜와 총명을 벗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요나가 “나를 바다로 던지십시오. 나는 죽었으면 죽었지, 앗수르 좋은 일은 안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너희 하나님이 너를 심판한 것이니 우리는 어찌할 수 없다. 미안하다.” 잡고서 하나, 둘, 셋 밀어 던졌어요. 그러니까 아주 집채만한 물고기가 한 마리가 공중에 얼른 떠가지고서 받아먹어버렸어요. 하나님이 요나가 도망치면 못 따라올 줄 알았는데, 물고기를 통해서 따라오니 감당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요나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텅 물고기 뱃속에서 떨어졌는데, 아주 널찍하고 여의도순복음교회 기도원 기도굴 보다 큽니다. 아주 심장 소리가 벌컥벌컥 나고 숨소리, 그다음에는 뭘 먹어놨는데 소화가 안 되고 배 안에서 요동을 치니까 이 소화시키려고 또 물을 많이 마셔서 아주 빠져 죽을 지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준비해서 요나를 살렸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가면 어려운 문제를 당했을 때 도저히 인간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도 하나님은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성격 중에 제일 좋은 성격 하나는 예비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예비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예비를 해서 우리가 큰 상처 입지 않도록, 멸망하지 않도록 그렇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예비해서 물고기가 요나를 마시게 했는데, 마시고 나면 보통 걸리면 마시면 하루 만에 소화가 되는데 하루가 지나도 소화가 안 되고, 이틀이 지나도 소화가 안 되고, 사흘이 지나니까 회개한다고 배속을 두드리고 끌리고 하니깐, 이거 뭐 공짜라고 먹었더니만 죽을 지경이에요. 그러니 물고기가 ‘해변가로 나가서 토해버려야지. 이렇게 배가 아플 때는 소화시키려하면 안 된다, 토해야 되겠다.’ 의과대학에 가서 좀 배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람도 소화가 안 되고 고통스러우면 토해버리면 시원하고 좋습니다. 토하는데 그것도 힘들게 웩~ 하고 토해버리는데, 사람이 튀어 나오거든. 이 물고기는 ‘아따 돌아도 보지 말아야 되겠다!’고 돌아서 물속으로 도망쳤어요. 그래 요나는 그 길로 니느웨 성을 가로질러 가면서 외칩니다. “40일 이내에 회개하지 아니하면 니느웨는 멸망 받는다.” 미친 사람이 와서 길거리에 그렇게 외칠 것이지,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물고기 배속에서 나와 가지고서 온몸에 비린내가 나는 그 처지에서 회개하라고 고함치는데 우습지 않습니까? 여러분 하늘나라의 능력은 성령께 있습니다. 성령이 그 사람을 사용해서 이야기하면 굉장한 가슴에 부딪히고,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60이 넘으면 굉장히 외로워지고 고독해집니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외로워지고 고독해집니다. 그리고 우울증이 생깁니다. 우울증이 생기면 굉장히 괴롭습니다. 우울증이 뭐가 그렇게 괴롭냐? 자기가 감당하지 못하게 마음속에 슬픔과 좌절과 절망감이 다가오고, 불안과 공포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고 성령님을 모셔드리면, 성령은 산골짜기 목동의 집에서 우유를 받아 마시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사르르~ 깔아지면서 아주 달큼하고 조용한 은혜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정말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서 운행한다는 것은 체험을 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마음을 꽉 점령해주면, 마음이 완전히 새로워지고, 쾌활해지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렇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꼭 성령 충만 유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해 달라고 기도하고, 그리고 일어서고 앉는데도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님이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이 요나가 사흘 길을 걸으면서 회개하라고 고함을 치니깐 시중 일반 사람들도 요나의 꼬락서니는 말이 아니지만은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이 입에서 나오는 이런 말은 입이 말을 옷 입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이라는 것은 여러분 그 자체가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가 여러분 생각을 통해서 말이 되어서 나오는 거예요. 그래 그 소식이 니느웨 왕에게 들어가니 왕이 그 말을 듣자 마음에 충격을 받고, 당장 베옷을 입고 잿더미 위에 올라앉고, 이런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교회가 해야 될 것은 구제활동도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도 하지만은, 우리가 첫째 할 것은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가 불어나가서 안 믿는 사람들이 마음이 다 깨어지는 것입니다. 니느웨 성 깨어지듯이 깨어져야 돼요. 미국에서 성령운동이 일어날 때도 온 도시가 깨어졌습니다. 우리 한국도 평양의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서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깨어졌습니다. 설교할 줄 몰라도 그가 강단에 서면 내 영혼이 움직이는 성령의 콘택트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나타나심은 또다시 80만 성도가 되어서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될 것입니다. 요나서 1장 1절로 2절에 보면 ‘야훼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불순종하여 니느웨의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배를 출발함과 동시에 보기 드문 태풍이 불어 닥친 사실이 성경에 기록돼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 요나는 분노해서 앗수르에 가서 수도 니느웨로부터 망하기를 원했으나, 하나님은 그 사람들이 다 벌을 받아 전쟁에 짓밟히고 찢겨서 죽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그들의 재산과 함께 멸망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습니다. 요나는 원할지라도 하나님은 원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저보고 “왜 조용기 목사는 주의 종이면서 오랜 세월동안에 짓밟히고, 욕을 얻어먹고, 고통을 당하면서 저주를 안 하느냐? 성경에 보니깐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축복을 주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하리라고 했으니, 목사님도 강단에서 성도들 앞에서 저주하라.”고. 그래서 “나는 주의 종으로 부름 받았을 때, 축복하라고 부름 받았지 저주하라고 부름 받지 않았다.” 내가 평신도 같으면 마음대로 저주도 해보고, 저주도 받아보고 하겠지만은, 주의 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과 자비를 전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저주를 하면 안 됩니다. 저주하고 싶은 생각이 여기까지 올라옵니다. 그래도 나는 하나님의 마음에 슬픔 느끼시는 일을 하지 말아야 되겠다. 여기에도 요나는 니느웨가 망하게 되기를 그렇게 원했으나, 하나님은 원치 않았습니다. 40일이 지나고 난 다음에, 이 요나는 성 밖에 나가가지고서 높은 데 올라가서 움막을 하나 지어놓고, 움막에 쭈그리고 앉아서 하나님이 혹 실수를 해 가지고서 벌을 안 내리다가 ‘아차 내가 잘못했구나!’ 깨닫고 벌을 내리면 얼마나 좋겠나, ‘하나님 어찌되던지 좀 돌이켜서 치십시오!’하고 앉아 있는데, 하루저녁 자고 일어나니까는 호박넝쿨이 칡넝쿨하고 초막을 덮어서 하루 만에 푸른 풀밭을 이루어 놨습니다. 하나님께서 호박넝쿨 같은 칡넝쿨, 넝쿨을 초막에다가 덮어 씌웠더니 “아 좋다. 그거 참 좋다. 햇빛이 가려져 시원하고, 상쾌하고 이렇게 좋을 수가 있느냐?” 그러나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깐 벌레가 와서 다 깎아 먹어서 풀이 다 말라 버렸습니다. 그러니깐 “아니 하루저녁에 벌레가 와서 깎아 먹을 바에야 뭐 하려고 이걸 내게 주었습니까?” 그 다음 하나님이 아침에 해가 떠오르자 동풍을 불게 하여 얼마나 날이 더운지 요나가 정신을 차리고서 혼미한 상태에서 “차라리 날 죽여주소!” 그러니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야훼께 기도하여 이르되 야훼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야훼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요나 4장 1~3절)’ 박넝쿨, 벌레, 뜨거운 동풍, 태양이 뜨거워 요나가 정신이 혼미하게 되었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메시지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박넝쿨도 쓰시고, 벌레도 쓰시고, 뜨거운 동풍도 쓰시고, 태양도 쓰시고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 써서 여러분을 설득시키는 것입니다. 무슨 큰 사건만 일어나야 하나님이 계신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집에 귀뚜라미도 사용하신다고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를 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필요하면 벌레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하나님 야훼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요나 4장 5~8절)’ 하나님은 요나를 꾸짖으시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보이십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요나 4장 9절)’ 하나님에게 대듭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나님에게 대들어가지고서 좋을 것 하나도 없습니다. ‘야훼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요나 4장 10~11절)’ “너는 박넝쿨 시들은 것 하고 햇빛 비추는 것을 불평을 말하고, 네가 이 성이 무너지기를 기다리는데, 내가 왜 성을 못 무너지게 하느냐?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십이만 명이다. 이 십이만 명의 애들을 심판을 내려서 죽는데, 치어서 다 죽으면 얼마나 비참한 일이냐? 그러니까는 너의 박넝쿨 보다는 내가 불쌍히 여기는 애들이 더 중요하다. 너 좌우간 설교를 잘해서 온 도시를 바꾸는 것은 잘 했지만은, 그렇게 자꾸 뾰로통하고 화를 내서 나에게 달려드는 것은 좋지 않다.” 그 말은 안 적어 놨지만 했을 거예요.

2.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와 하나님의 용서 (아브라함의 대속기도와 심판 천사의 정죄)
대속기도는 효과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따라 나온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 들어가서 일가족을 잃었는데, 소돔과 고모라가 너무 부패하고 파탄에 이르러 윤리와 도덕적으로 무너진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시찰을 하시고, 그 다음에 여리고 성을 멸망한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 성도 멸망하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착실한 종이니깐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무너뜨리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먼저 알려주고 그렇게 하려고 아브라함에게 와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오늘 무너뜨리겠다고. 그러니 아브라함이 중보기도를 한 것입니다. “이 성에 50명 의인이 있으면 50명 때문에 용서 해 주겠느냐?”, “50명 있으면 용서 해 주겠다.”, “그러면 5명이 덜 해서 45명만 있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래도 살려주겠다.”, “그러면 건방진 저를 용서해 달라”고, “40명만 있으면?”, “40명만 있어도 용서해 주겠다.”, “그러면 30명만 있으면?”, “30명이 있어도 용서해 주겠다.”, “그러면 20명만 있어도?”, “20명만 있어도 용서해 주겠다.” 어지간히 기도를 하나님께 하는데 거기에 롯이 얼마나 신앙생활을 안했던지 20명도 전도 못 해놨습니다. 나중에는 “10명만 의인이 있어도 심판하시겠느냐?”, “10명만 있어도 심판 안하겠다.” 열 명의 의인이 없어서 소돔 고모라성이 지진이 일어났는지, 지진이 일어난 것 같아요. 완전히 뭐 흔들려서 무너져서 박살나버렸어요. 심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지금은 은혜의 시대라. 우리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푸는 시대이기 때문에 시련과 큰 재앙이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경중에 일어나는 지진을 보니 얼마나 무섭습니까? 우리는 기도할때마다 지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이 돌보아 달라고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하시고, 정결케 하시고, 성령 충만을 주셔서 이 땅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살아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해도 그 일 가운데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면서 일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께 찬양하는 일을 하시면 하나님 목적달성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무엇을 하다가 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죽음이라는 것은 안 죽으면 좋을 텐데 죽으면 어떻게 되나? 그것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 예수님께서 오셔서 죽음 저 건너편에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부활해서 40일 동안이나 제자들 가운데 나타내 보이시고, 사람이 죽어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주님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다 죽어서 육신의 장막집을 벗어버리면, 손으로 짓지 않은 낙원과 낙원보다 더 높은 천국이 있습니다. 낙원에는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있는데, 우리가 낙원에 들어가는 것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그 믿음으로 낙원에 들어가면, 낙원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준비한 삶이 얼마나 기쁘고 즐겁던지 사도 바울 선생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지 아니한 사람, 하나님을 반역한 사람은 음부로 내려갑니다. 음부는 지옥에 내려가기 전에 대합실입니다. 낙원과 천국처럼 음부는 지옥의 대합실로써 음부에서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내려갑니다. 그러면 그 번뇌와 고통이 말로 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차라리 안 태어났으면 좋았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서 순교를 당하면 천국에서 제일 큰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 것이 순교자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많은 사람을 의롭게 돌아오게 한 전도자가 큰 상을 받습니다. 그러고 여러분처럼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한 사람들도 천국 시민으로서 말로 할 수 없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주님을 감사하고, 하늘나라가 우리에게 임하도록 노력을 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