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내진설계
(시 91:14-16)

2016.11.20. 주일4부예배

<서론>
‘내 영혼의 내진설계’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눕시다. 금년 들어 우리나라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여러 번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제는 한반도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제까지 지진은 일본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우리나라에는 그런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이제는 지진이 일어난다고 생각을 바꿔먹어야 됐습니다.

<본론>
1. 마음속에 일어나는 영적 지진
마음속에 일어나는 영적 지진은 우리는 항상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진, 지진, 하니깐 환경의 물리적인 지진을 생각하는데, 영적인 지진으로 삶의 터전이 다 무너지고, 깨뜨려지는 비극을 늘 우리는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영혼을 흔들어놓는 사회적인 갈등과 진동, 그 결과로 토지가 무너지니깐 그 위에 있던 사람들은 자살하고, 인생을 포기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기주의가 넘치고, 탐욕은 파탄을 가져오고, 노사분쟁의 충격, 북한 김정은의 압박, 협박,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 정치의 혼란.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 사람들이 만드는 세계가 평안하지 않습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마음에 요동함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마음에 지진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시편 127편 1절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집도, 성도, 하나님께서 지키셔야 무너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생명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살지,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의 생명의 근원을 온통 흔들어놓아 이 세상에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 마음에 내진설계를 해 놓아야 인생에 지진이 다가와서 날 흔들어놓아도, 끄떡없다. 당황하지 않습니다. 속에 내진설계가 안 되어 있으면 바깥에 나가면 시련과 환난이 파탄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약 15년 전에 내 생애 무엇을 집중해서 일하려고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칼로써 찌르는 듯이 아플 때가 종종 있어요. 그래서 병원 심장전문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온 결과에, “아, 목사님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되겠습니다.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동맥이 있는데, 그 동맥이 막혔습니다. 완전히 막히진 않았지만 조금밖에 피가 통할 수 없게 됐기 때문에, 동맥에 피가 안 통하니 갑자기 뇌에 사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혹은 두뇌에 피가 공급되지 않으므로 졸도할 수 있습니다. 사람 심장은 고속도로와 같은데, 그 옆에 많은 작은 지역적인 혈관은 막혀도 급사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심장의 고속도로가 막히면 그건 뭐 끝장나는 것입니다. 약으로만 치료하지 말고 수술을 합시다.” 그래 내가 “나는 더 좋은 의사 선생님이 계시니, 그 의사 선생님하고 협조하고 의논하여 수술은 나중에 할 수 없을 때 그때 가서 봅시다.” 그러고 농담 반, 진담 반 “심장아, 왜 나를 따라다니면서 창피를 당하게 하노? 조용하게 있지” 그러고 지냈는데 1년에 한 두 번씩 건강진단을 하면 꼭 의사 선생님이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목사님 이 문제를 극복하든지, 안 그러면 이 문제에 파탄을 입어 절단강산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 심장 주무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건강할 때 손보는 게 좋습니다.” 그대로 지나오는 동안에 50대에 그런 소리를 듣던 사람이 80대가 되어서 그래도 팔팔 살아 있으니깐.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내가 가만 생각해봐도 안 되겠다 싶어요. 왜냐면 젊은 후배들과 함께 운동을 할 때, 나 혼자 좀 높은 데 걸어 올라갈 때 숨이 차서 “헉~헉~” 같이 운동하는 사람에게 그 모습을 안보여 주려고 “헉~헉~” 노력을 해도 안 되지요. 그래 금년도에 병원에서 진찰을 하니깐 의사 선생님이 막 고개를 흔듭니다. “목사님 언제(든지) 죽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언제 심장이 막혀버릴지 모르게 조금 통과된 지방도로같은 혈관이 동맥이 되어서 피를 공급하니 심장이 화가 납니다. 좋을 때 수술을 합시다.” 날 만나는 심장전문가마다 그런 소리를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나도 마음에 좀 하나님께 대해서 불만족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김정은이같은 저 녀석도 튼튼한 심장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저는 복음전도 한다고 오대양 육대주를 건너다니면서 불철주야 노력하고 사는데 왜 내 심장은 이 모양으로 안 돌봐 줍니까?” 아무리 말해도 대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전문가되는 의사선생님이 “목사님은 심장만 잘 다스리면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심장 수술 합시다.” 그런데 내가 수술이 겁이 나서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왜 하나님을 잘 믿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회적 지진을 일으키고 고약한 사람들 저 사람들은 심장이 끄떡없는데, 왜 나는 그래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아들의 형편을 안 살펴보는 아버지가 있겠습니까? 그래 아버지가 왜 이 아들은 못 들은 척 합니까? 할 수 없이 아버지가 안 돌봐주니 세상의 사람의 돌봄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조용기가 용기를 내가지고서 “수술하자”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우리 장로님들에게도 알리지 아니하고, 내가 수술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날짜를 정해서 입원을 했습니다. 또다시 진찰을 해보니깐 확실히 내 심장동맥이 막혔어요. 그래서 의사선생님이 수술하기 전에 서류에 결재를 하라고, 도장을 찍으라고 하는데, 그거 보니깐 수술하다가 잘못되어서 죽어도 책임 안 진다는. 아니 마음이 기분이 아주 이상해요. 그래서 창문을 열고 서울 시내를 한번 쭉 돌아보았습니다. 마지막 보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래서 수술실로 휠체어에 실려서 지난 수요일입니다. 들어갔어요. 들어가서 수술을 받는데, 희한한 일이, 여기 아주 표가 있는데, 여기에 기계를 집어넣어서 수술을 하려고 보니깐 큰일이 났습니다. 막힌 동맥이 없어요. 의사선생님 말로는 한 2년 동안 돌보지 않아도 끄떡없겠다고. 하나님이 장난을 좀 치고 싶으셨어. 아예 깨끗해요. 그래서 금요일날 걱정하던 것은 주일날 강단에 못 설까 싶어 걱정을 했는데, 이제 서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안 돌봐주는 줄 알았더니 아직 돌보아 주신다고요. 심장에 문제 있거들랑 제게 오십시오. 우리 아버지에게 잘 소개해 드릴 테니깐. 육체적으로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이 내진설계를 지어놓아서 그를 통해서 낭패되지 않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서 걸어다니고, 일어나서 밥 먹고, 옷 입고, 성경책 가지고 교회 올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내 손녀딸이 내게 와서 “할아버지, 나 간증할 것이 있어요.” 내가 “너 꼬마가 무슨 인생을 살았기에 간증할 것이 있냐. 무슨 간증이니?” 그러니까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중간에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중지해서 아무리 해도 문이 열리지 않더랍니다. 아무리 해도 문은 안 열리고 겁이 나서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아, 내가 예수님을 잊었구나.’하는 생각이 나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예수님,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살았어요, 회개합니다. 날 살려주세요.’ 그러고 버튼을 누르니깐 엘리베이터가 문이 확 열리더랍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난 다음, ‘야, 얘가 나보고 설교를 하는 것이다.’ 자기가 무슨 인생이 있어서 걱정거리를 회개로써 고쳤다고 말할 수 없지만은, 엘리베이터 문을 통해서 이런 간증을 할아버지에게 함으로, 할아버지 회개하고, 주님을 의지하고 살으라고 하는 것을 간증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인생도 삶의 위기를 만나면, ‘예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도, 정작 어려운 일을 당하면 마음이 흔들려서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생일생의 지진을 십자가를 통해서 다 극복하셨습니다. 죄로써 일어나는 지진, 질병으로 일어나는 지진, 저주로 인해서 일어나는 지진, 죽음으로 일어나는 지진, 온갖 지진을 예수님은 몸으로 정복해서 극복해버리고, 그러고 난 다음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장담하고 우리를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십자가 중심을 튼튼히 붙잡고, 눈을 다른데 뜨면 안 됩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를 얻는 수단으로써 교회 다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것도 안 되고, 십자가 중심으로 교회 와서 내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예수님과 더불어서 섬기는 생활을 하는 그것이 내진설계를 따라 자기를 지어가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3절로 45절에 보면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교회 와서 섬김을 받으려고 생각하지 말고, 모두 섬기려고 노력을 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돈벌이하려는 상업적인 생각을 하는 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이용해서 돈벌이하려고 하는 그러한 개인도, 교회도, 지진이 일어날 터전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편 가르기, 회개 없는 분쟁, 이것은 다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고린도전서 1장 11~12절)’ 이러한 편 가르기. 교회에서 너는 이 편이고, 나는 이 편이고, 편 가름 하는 것은 지진이 다가올 징조를 확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린도전서 1장 10절)’ 우리가 서로 화목하고, 사랑으로써 하나가 되는 것이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흔들리고 부서지는 기반들
흔들리고 부서지는 기반에 인생을 건설하면 반드시 지진의 참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서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한복음 8장 10~11절)’ 율법주의적인 신앙은 우리 교회 서로 정죄하고, 반대하고, 생활을 파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루 성전 근처에서 말씀을 전하는데,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서기관들이 한 여자를 잡아서 머리채를 손에 잡고 끌고 옵니다. 여자가 안 끌려오려고 발버둥치고, 이 사람들은 끌고 와서 예수님 발밑에 내동댕이치고, “주님 이 여자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우리가 다 증인입니다. 성경에 간음하는 자는 돌로써 쳐 죽이라고 그랬습니다. 당신은 뭐라고 말합니까?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손에, 손에 돌멩이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엎드려서 손가락으로 글을 쓰고 있다가 허리를 펴서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춰보고 난 다음에, “당신들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치십시오.” 그러고 난 다음에 주님이 허리를 굽혀서 손가락으로 또 씁니다. 무얼 썼겠습니까? 감추인 죄를 주님이 써내려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쓰는가 싶어서 어깨 너머로 보니깐 자기가 돌로써 이 여자를 쳤다가는, 예수님이 그 돌 가지고 자기를 치게 돼있습니다. 그러니깐 그들이 예수님을 골탕을 먹이려고 왔다가 도로 혼비백산하고 돌을 다 그 자리에 내버리고 갔습니다. 돌로써 쳐야 율법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근데 예수님이 죄를 짓는 것을 격려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주님께서 오신 것은 죄인을 잡아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붙잡아서 용서해서 새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죄인을 죽여 버리면 새 사람을 만들 꺼리가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은 용서와 사랑을 집행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돌로써 치기 위해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돌로 칠 바에야, 갈보리산 십자가를 걸머질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돌로써 다 쳐 죽여 버리면 되는 것이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을 대신해서 갈보리 십자가를 걸머진 것은 죽이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는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왜냐, 내가 온 것은 정죄하러 온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 온 것이니까. 집에 돌아가서 죄를 다시는 짓지 말라.” 주님께서 용서와 사랑,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용서와 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에, 비평하고, 평론하고, 죽이고 그렇게 함으로, 교회에 지진이 일어나고, 사회에 지진이 일어나고, 우리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서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한복음 8장 10~11절)’ 우리가 남을 평론하면 그 평론으로 자기가 정죄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의식주의를 주님께서는 파멸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제사 중심의 종교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교회에 모이는 것입니다. ‘화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태복음 23장 13절)’ 교회에 목사와 예배가 있는 것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 사람을 죽이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무슨 제도를 세우기 위해서, 인간적인 문화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교회 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사람에게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오늘은 내일보다, 못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주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이 바라는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셔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마태복음 12장 9~12절)’ 참 위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안식일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율법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도 예수님이 치료하면 하나님 법을 어긴 것으로 정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손 마른 사람이 팔을 못 쓰고 있으니깐 얼마나 불쌍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손을 고쳐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날 병을 고쳤다고 사람들이 비난을 할 때, 예수님께서 “너희들은 양 한 마리가 구덩이에 빠져 있으면 안식일날 건져내지 않겠느냐? 양보다 사람이 얼마나 귀하냐? 사람에게 치료를 행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니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지진설계를 따라 인생이 지진에 부딪히지 않도록 하려고 애를 쓰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형식, 이것에 정반대되는 일을 주님께서 가르쳐주시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을 하시는 분이지, 율법을 진전시키려고 오신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흔들리고 부서지는 기반들, 율법주의적 신앙, 제사 중심의 종교,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만세 반석으로 삼고 기대지 아니하면, 무너지고 흔들리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절로 3절에 보면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이 말은 하나님은 우리를 종교의 노예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인생으로 만들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십자가, 영원무궁하신 반석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으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이 의지하고 살 수 있는 영원무궁한 반석이 되시는 것입니다. 죄를 대신 지시고, 허물을 대신 씻어 주시고, 보혈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하고 허물을 씻으시고, 용서와 의를, 거룩하고, 성령 충만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서 병 고침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병 고침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병을 고치시기를 원하셔서 채찍에 맞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시편 91편 14~16절)’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건져주시고, 높여주시고, 응답해주시고, 건지고, 영화롭게 해 주시고, 장수하게 하시고, 행복하게 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주님인 것입니다.
그리고 4차원의 영성 속에 하나님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3차원까지는, 1차원, 2차원 3차원까지는 우리가 정해놓은 법칙을 통해서 하나님과 신앙을 같이 합니다. 4차원이라는 것은 붙잡을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바람과 같은 분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자는 다 이와 같다’고, 성령은 바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바람과 같은 성령을 우리가 모시려면 우리도 바람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적인 인간인 붙잡고, 만지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바람 같지 않습니다. 그럼 우린 바람과 같은 보지도, 만질 수도, 손으로 붙잡을 수도 없는 분을 어떻게 모실 수 있습니까? 니고데모가 예수님 천국이야기를 하는데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바람과 같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바람이 아니고는 대화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이 바람 같은데 성령을 보았나요? 성령하고 대화를 해 봤나요? 성령님과 악수를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면 여러분도 바람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어야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있지요. 사람이 동물하고 대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도 바람 같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래는 여러분은 바람이에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람 같으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바람 같은 하나님을 따라 지음을 받았지만은, 타락해서 영이 죽었기 때문에 이제는 바람 같은 존재를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거듭나서 바람 같은 옛 사람이 살아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은 예수를 구주로 모셨지요? 여러분은 바람 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왜? 바람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제가 바람 같은 이야기를 해도 앉아서 듣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와서 “저 조용기 돌았나? 되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다.”고. 왜? 자기는 바람이 없으니깐 바람 같은 이야기를 몰라본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깨달아 알아도 맛이 있고, 몰라도 재미있습니다. 왜냐? 바람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저도 바람 속에 있고, 여러분도 영혼에 바람이 속에 있기 때문에, 물질적인 인간은 물질적인 인간과 대화를 할 수 있고, 물질적인 세계와 대화를 할 수 있어도, 영적인 세계는 모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몰라요. 차원이 다릅니다. 여기에 여러분은 육체적인 차원에 있지만은, 바로 이 차원을 뛰어서 영원한 차원인 영적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참 깊고 오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만리장천 멀리 계신 줄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3차원으로 계산을 하면 그렇게 멉니다. 바람과 같은 우리들은 그런 차원에 있지 아니하고 아주 무차원적인 세계에 살기 때문에, 이러면 천당이고, 이러면 세상이고. 거기에 무슨 계산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시간에 하나님이 구만리장천 멀리 계신다고 생각을 하지만은, 차원이 달라서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해도 좋아요. 그러나 실상은 안 그렇습니다.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제 말씀 듣고 있는 이 자리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를 하므로, 우리의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이 되어야 하나님이 우리와 같게(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장 23절)’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하나님이 그 생각을 통해서 같이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꿈과 환상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서 2장 13절)’ 소원은 꿈입니다. 뜨거운 마음의 소원은, 바로 여러분 뜨거운 소원은 꿈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마음의 꿈을 통해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만리장천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또 믿음으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장 23절)’ 여러분이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믿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 믿음, 여러분 믿음, 함께 믿음을 통해서 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말 속에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을 하면 하나님이 그 믿음의 말을 통해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정적인 생각하고, 꿈을 꾸고, 믿고, 창조적인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나는 건강하고, 튼튼하다. 나는 좋다, 행복하다.” 이 말은 손으로 붙잡아볼 수는 없지만은 그것이 바로 차원이 다른 영적인 세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하나님 세계에 필요한 존재로 목적을 두고 인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목적 없이 오신 분은 아닙니다. 에베소서 1장 4절로 6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세계가 지어지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우리를 택하셔서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수님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고,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만들어 주셨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 말은 장차 다가올 세월이 지금보다 끝없이 좋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세계를 만들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데리고 영원무궁토록 살게 하고자 해서 여러분을 이 세상에 불러냈다는 것입니다. 목적이 있어서 여러분을 부르신 것이지, 무목적적으로 여러분을 부른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녀들이 되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거느리고, 행복한 세계 속에 살려고 뜻하신 것입니다.

<결론>
내진설계를 따라 짓지 않은 건물들은 지진에 감당 못 합니다. 우리 인생도 내적 깨달음이 있어서 예수님을 삶의 주초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삶의 목적이 되지 못하면, 수없이 무너지고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만세 반석을 세워놓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살게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을 세워놓아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린도후서 4장 8~9절)’ 하나님이 여러분과 같이 있어서 여러분의 기초석이 되어주시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4차원적 영적 생활을 붙잡고 있으면 예수님이 여러분과 생각을 같이 하시고, 같은 꿈을 꾸시고, 같은 믿음을 가지시고, 입술로 같은 신앙고백을 하고 있으면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고, 깨어지고 깨어져도 여러분 파멸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살아도 사람 눈에 안 보이는 4차원의 영적 존재인 여러분, 중생한 여러분, 이 세상에서 두려워할 필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만세 반석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