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환자 네 사람의 선택
(왕하 7:1-8)

2016.12.11 주일4부예배

<서론>
‘나병환자 네 사람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오늘은 어디에 가서 하루를 보낼까?”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누구를 내 평생의 반려자로 삼고 살까” 중대한 선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현재 내 모습은 과거에 행했던 수많은 선택의 결과로 오늘 내가 돼 있는 것입니다. 선택이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저는 요사이 제가 고등학교 때 선택을 조금 잘못했으면 공장 기술자가 되든지, 그 길로 갔을 것입니다. 지금도 기계를 만드는 선반을 돌리라면 제법 돌립니다. 선반 이름이 가팅, 미팅, 판칭, 아브라씽, 앤드 업 헤어링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님을 섬기는 주의 종으로서 일생을 보내도록 선택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는 매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인도하실 때 그 인도를 따르면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을 따르지 않고 내 마음대로 했다가는 나중에 후회하게 되지요.
헨리 비처 목사님은 “우리는 매일 두 개의 손잡이를 잡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고 말했습니다. 한쪽 손으로는 두려움의 손잡이요, 다른 한쪽은 믿음의 손잡이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의 손잡이를 가진 사람이나, 믿음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것이나 자기의 삶에 크나큰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데, 두려움을 선택하여 늘 마음이 옹졸해지고, 담대함을 잃어버려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지 못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실오라기만한 희망을 가지고도 믿음으로 담대히 나가서 기적을 체험하고, 좋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본론>
1. 절망이 땅거미처럼 사마리아 성을 점령하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을 보면,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자꾸 공략했습니다. 그런데 이 벤하닷이 대군대를 거느리고 사마리아를 첩첩이 포위하고, 포위를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갇혀서 있으니 점점 먹을 것이 없어지고, 나중에는 자식을 잡아먹는 경우에까지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임금님이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하는가 그 정황을 보기 위해서 성 위를 걸어가는데, 여인이 고함쳐서 “왕이여. 재판을 좀 걸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배가 너무 고파서 어제 내 자식을 삶아 먹자 해서 이웃들과 삶아 먹었습니다. 오늘은 이웃의 자식을 삶아 먹기로 했는데, 자식을 숨겨버리고 내놓지 않으니 이 어찌 된 일입니까” 그 왕이 옷을 쫙 찢어 버립니다. 사람이 너무 답답하면 옷을 찢지 않습니까. 어떻게 사람을 잡아먹되, 자기 자식을 잡아먹은 비극이 다가왔는지 탄식스럽습니다. 그러고 그들이 산 사마리아에 하나님의 종 엘리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자기 부하를 보고 “엘리사를 찾아가서 죽여라. 하나님의 종이 신령한 종이 있다는데, 하나님 도움을 청해서 도움을 가져오지도 못하고 뭐 이런 놈이 있느냐” 자기 나라가 잘못되는 걸 선지자에게 책임을 짊어지우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오늘 교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 한국의 일천만 성도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정말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될 때가 왔습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으면 닫을 자가 없고 닫아놓으면 열 자가 없다는데, 하나님이 우리 오천만 동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하늘 문을 열어 주시면 우리가 잘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한국은 과거를 돌아보면 안 되는 것이 지나고보니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안 되면 어쩌나 걱정을 하는데, 촛불시위도 폭력도 아닌 질서정연한 마음을 가지고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 추운데 불구하고 외치고 나가는 것을 보게 될 때에 잘 되겠구나. 우리 한국이 이런 다급하고, 고통스럽고, 억울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질서정연하게 우리 국민들이 뜻을 표현하는 것을 보게 될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이만큼 자라게 해 주셨다.

2. 절망에 처한 네 사람이 희망을 선택하다
사마리아 성이 사람을 잡아먹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그들은 처참한 지경에 있습니다. 엘리사의 집에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는데, “너희들 빨리 저 문을 닫아라. 임금이 나를 죽이라고 해서 사람을 보냈지 않았냐.” 그래서 나가서 문을 닫는데, 사람들이 칼을 들고 와서 “왜 왔냐?”, “엘리사 어디 있나? 목을 치라 한다. 하나님의 선지자인데, 이 어려움을 면하게 해주지 못하고 있는 선지자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 죽이라고 왔다.” 그러니깐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면 밀가루나 보리나 먹을 양식이 주체할 수 없이 많이 주어질 것이다.” 그러니깐 임금님의 오른팔 같은 장관이 “하나님이 창문을 열어놓은들 당신이 말한 그렇게 큰 양식이 성문가에 있을 턱이 있느냐?” 그러니깐 엘리사가 하는 말이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먹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여 놓은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것을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다 보고, 듣고, 생각해서 아는 걸 말할 바에야 선지자라고 볼 수 없지요. 우리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선지자는 미리 알고 말해주니깐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역사할 때는 희망을 가진 사람을 데리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은 희망, 절망, 언제든지 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쪽 손에는 희망을 잡고, 한쪽 손에는 절망을 잡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성 안은 희망이 없습니다.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저는 세계 여러 곳에서 젊은이에게 목사가 되려면 어떻게 돼야 된다는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여러분, 주의 종이 복음을 전하러 학교를 떠나서 출발하면, 언제든 희망을 주는 메신저가 되어야 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 고통이 벌써 다가와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곳에 주의 종이 가서 다른 말 해서 통과 안 됩니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독일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아주 독일에서 유명한 신학자인 몰트만 박사가 나에게 찾아왔어요. 그분은 유럽에서 제일가는 신학자인 것입니다. 그래 나보고 만나서 이야기 좀 하자고, “그래, 조 목사 설교하는 것을 보니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소망이 주어진다. 어디서 배웠나?”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라고 배웠는데, 몰트만 박사 당신은 어디서 배웠느냐?” 자기는 2차 대전 때 포로가 되어서 영국인의 포로수용소에 있었는데, 자기가 포로수용소에 있는 그동안에 함부르크가 폭격을 당해서 다 파괴되고, 자기 애인이 죽고, 가족들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고, 전체 어디를 가도 절망밖에 없었다. 그래서 죽으려고 작정을 했는데, 영국 군목이 자기에게 성경을 하나 갖다 줬답니다. 성경을 펼치고 읽은 것이 바로 예수님이 인류를 위해서 이 땅에 와서 십자가 걸머지고 못 박혀 죽었다가 살아난 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내 마음속에 희망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예수님만이 절대절망에서 선 자리에서 절대소망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그가 죽음을 포기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신학을 전달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한국에서 온 조용기 목사가 희망의 메시지를 증거함으로, “내가 당신 집회에 몇 번 참석해보고, 당신 같은 말씀을 증거 하면 수많은 사람을 살리겠구나 그렇게 생각을 한다.”고 그래서 “나는 희망의 메시지를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를 먹고 산다. 돈도 없고, 건강도 없고, 화려한 것이란 것은 하나도 없는 한국에도 6.25 사변 전쟁 난 이후에 겨우 목숨을 건진 국민들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저들에게 희망을 줘야 된다. 그런데 나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십자가에서만이 희망이 있다. 십자가에서 죄와 허물을 예수님이 대신 갚아 주셨으니, 죄인이 되어도 구원받을 희망이 있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 우리 병을 청산해주었으니 건강해질 희망이 있고,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아서 매달려서 저주를 청산해주었은즉 우리가 축복을 받아 살 희망이 있고, 예수님이 죽어서 3일 만에 부활하셔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니 이를 믿느라’하는 그 말씀 속에 영생의 희망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희망을 얻었고, 그 희망 때문에 나도 살아있다.”고. 그래서 둘이 마음이 맞아가지고서 서로 얼싸안고 기도해주고, 내가 독일에 가면 그분에게 “잘 삽니까? 희망차게 삽니까?” 그 사람이 한국에 나오면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희망찬 메시지를 전하는 주의 종이 “나와 같이 점심이나 같이 먹자.” 서로 통화를 하고, 그 사람이 “조용기 목사 같은 희망의 목회자가 한국에 있어서 참 마음이 든든하고 좋다.”고. 그런데 저는 학자도 못 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공부를 한 흔적도 없지만은, 희망만은 내 마음속에 꽉 들어차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주의 나라에 들어온 이후로, 항상 하나님이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요번에 심장수술도 그렇습니다. 어제 텔레비전에 의사선생님들이 모여서 심장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유 심장에 피가 떡이 되어서 심장을 막아버리면 백발백중으로 죽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반드시 수술을 해야 된다고. 그런데 그걸 보고 있다가 진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나는 수술대 위에 올라가 누워서 수술칼을 대었는데, 피떡이 사라지고 없으니깐 ‘아 하나님이 사랑해주셨구나.’ 하나님께 감사함이 이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희망을 갖고 있으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나 희망을 저버리면 참 기가 막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성에 있는 임금님부터 시작해서 백성들이 다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희망을 말하는 엘리사를 칼로써 쳐 죽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네 사람이 해거름에 성문 곁에 와서 앉아서 탄식을 합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어서 네 사람은 성에서 쫓겨나서 한가한 산비탈이나 시냇가에 사는데, 그 집안에서 형편없는 음식이라도 음식을 날라다 주니깐 먹고서 삽니다. 그런데 이제는 성 안에 굶어 있으니, 아무것도 주지 않아서, 성 밖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그곳에 네 사람이 앉아서 서로 토의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이렇게 배가 고프고 얼마 안 있으면 죽을 것인데, 성 안으로 들어가자!”,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성 안에 있는 사람들도 우리보다 더 많이 굶어 있어서 우리에게 줄 음식이 어디 있느냐? 성 안에 들어가면 죽는다. 앉아서 기다리자.”, “어떻게 앉아서 기다리노? 언제 적군이 물러갈지 모르지 않느냐?” 그러니깐 그중 한 사람이, “야, 들어가도 죽고 앉아서도 죽을 바에야, 항복하고 적군의 앞에 나가서 적군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면 살고 죽으면 죽을지라도, 마지막 희망이 생명을 주는 데가 있으니 그곳에 찾아가자. 우리가 네 사람이 스크램을 짜고 아람 군대가 있는 곳으로 가자.” 네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스크램을 짜고, 가다가 몸이 병들었기 때문에 한 사람이 넘어지면 네 사람이 줄줄이 다 넘어집니다. 서로 격려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희망을 갖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같이 조인을 해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네 사람이 스크램을 짜고 걸어가는데, 그 그룹 속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함께 가는데, 이들이 넘어져서 “아유 정신 차리고 걸어라. 똑바로 걸어.” 이런 소리 하면 그것을 확대해서 하나님이 아람군대들에게 이렇게 들리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야, 대군대가 질서를 지켜라. 야, 병거가 문을 닫고 운전을 해야지 문 열어놓고 운전하니깐 떨어지지 않느냐? 전진해라. 싸워 이길 각오를 해라.” 온갖 무서운 소리가 다 나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람군대가 저녁을 먹기 위해서 식탁을 준비하고 있을 때, 아 갑자기 대군대의 행진소리가 들리고 “빨리 가자. 일어나라. 씩씩하라!” 아이 이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는 “아, 이스라엘 왕이 애굽이나 주변에 있는 왕들에게 검을 주고 군대를 세 내어가지고서 우리를 포위해서 잡으러 온다. 달아나자.” 그래 몇 사람의 아람군대가 밥상을 그대로 둔 채 달아나기 시작하니깐 모든 군대들이 다 달아나는데, 그중에 진실로 적군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너 적군 봤나?”, “보나마나 대군대가 오고 있다.” 그러니 서로 편안한 길을 가기 위해서 싸움이 붙었어요. 자기들 동료들 창칼에 찔려 죽고 비극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 절망적이 되어서 도망을 쳤는데, 절망을 이긴 사람이 누구냐? 희망을 말하는 네 사람의 나병환자의 희망 때문에 승리가 다가온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절망적인 처지에 있더라도, 마지막 희망을 저버리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이 사람들이 나아간 것을 우리 한번 봅시다. 열왕기하 7장 3절로 4절에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잠언서 4장 23절에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절망이 다가오게 될 때, 절망을 받아들이지 말고 소망을 바라면, 마음에 소망이 꺼지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같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3. 천지를 진동시키는 믿음의 행진
그들의 행진은 천지를 진동시키는 행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같이 행진에 참여해서 공격한 군대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병환자와 합쳐서 행진을 한 것이 천지를 진동하는 행진이었습니다. 우리 희망을 잃지 않고 나아갈 때 하나님이 같이 계신 것은 이사야 41장 10절로 16절에 잘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야훼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야훼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구더기 같은 사람도 하나님과 같이 계시면 버림받지 않는 것입니다. ‘야훼의 인자하심과 인생에서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편 107편 8~9절)’

<결론>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무엇보다도 마음을 잘 붙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다(잠언 25장 28절)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벽은 안전을 상징으로, 성벽이 있어야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벽이 없다면, 적의 침범에 무방비 상태가 되고, 적들이 들어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킬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제어하지 않는 사람은 성벽이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악한 마귀가 틈을 타 우리의 삶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마음속에 인생의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뒤로 물러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홍해도 가르시고, 요단강도 가르시고,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후진이 아니라 전진인 것입니다. 후진하면 벌써 망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끝까지 믿어야지 뒤로 물러갈 순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않습니다. 절망을 딛고 일어나 희망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작가인 맥스 루케이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팡이를 들어야 홍해 바닷길이 열리고, 성을 두루두루 돌아야 나중에 성이 무너지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야 예수님께서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바닷길이 열리게 되고, 성이 무너지게 되고, 예수님이 뒤를 돌아보시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 된 것이니, 여러분 무슨 일이든지 먼저 행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못 한다, 나는 안 된다, 할 수 없다.” 하지 말고,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적은 오병이어라도 가지고 나와서 주님 앞에 행하면 주님이 30배, 60배, 100배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하나님을 믿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우리 편에 들어서 같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낙심하고 앉아있거나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세상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백성들을 준비하고 그 백성들과 함께 큰일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아시아에서 우리 대한민국을 선택해서, 어떤 시련이 있어도 대한민국 국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이 지구상에 나타낼 줄 믿습니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기도가 하늘 보좌를 진동하게 할 줄 믿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들어가서 철고랑을 차고서 노래를 부르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니깐 천지가 진동해서 그 감옥 문이 열리고, 철고랑이 다 끊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믿음의 선언을 하고 나가면 하늘이 진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결심을 하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는 것입니다. ‘너희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두 세 사람이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그 자리에 하나님도 와서 조인해서 손잡고 같이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그 환난 중에 우리를 건지는 하나님인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좋은 일만 있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닙니다. 시련과 환난이 있을 때 하나님이 같이 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