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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빛이신 예수님 (요 1:9-14) 2017.01.08.주일4부예배 설교.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빛이십니다. 우리는 그냥 빛이 비추면 어두움이 사라지고 어두움 안에 있던 정체들이 밝게 드러난다고만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지 않고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 되셔서 그가 비취는 곳마다 생명과 축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두움이 가득한 이 세상에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의 세력을 철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빛이 비추면 어둠이 물러가듯이, 빛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삶에 오시면 모든 어두움을 이기고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론> 새해가 밝았지만, 우리나라의 경제전망이 그리 밝지 않습니다. 최근 발표된 2017 대한민국 중산층 보고서에 의하면 중산층 10명 중에 6명은 자신을 빈곤층이라고 생각하고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고민을 했습니다. 청년들은 취업난 때문에 미래가 보이지 않아 앞이 캄캄하다고 말합니다. 가장들은 식구들을 먹이고 살리기 위해 앞이 막막하고 캄캄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현실이 어두워도 예수님을 우리 삶에 깊이 모시면 어두움을 이기고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본론> 1. 어둠을 멸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실 때 어두움을 멸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종교를 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고, 무슨 학문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그 마귀와 일판 싸워서 그를 내쫓고 여러분을 살리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마귀는 죄와 허물을 갖다 덮어씌우고 질병과 고통을 몸에 매어 달며, 저주와 궁핍의 수렁에 빠지게 하고 죽음과 멸망을 여러분 삶에 가져오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들어와서 우리 생활을 도둑질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요한복음 10장 10절은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마귀가 우리를 마음속에 부정적으로 말을 하도록 행동을 꾑니다. “너는 안 된다. 너는 못된다. 너는 패배자가 된다. 너는 얼마 안 지나서 죽는다. 너는 무서운 병에 걸릴 것이다.” 뭐 이런 것, 밤에 잠이 안와서 깨면 곁에 와서 이야기를 자꾸 합니다. 여러분은 안하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자꾸 와서 해요. 그러면 여러분 진짜로 옆에 와서 말을 하는 것으로 마음이 움츠러지고 공포감이 생겨나와 소름이 끼칩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형편없이 절망되게 만듭니다. 저는 그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흘리신 보혈로 인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니 물러가라! 물러가라!” 내 옆에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물러가라. 그러면 귀신이 “쓸데 있는 일인지 없는 일인지 두고 보자.” “ 내가 두고 볼 테니 너는 내 곁에 있어봤자 소용없다. 물러가라!” 마귀는 항상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여기에 와가지고서 자꾸 끌어내리는데요.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생활적으로 끌어내려서 나무 위에 있는 사람을 끄집어 내리는 것 같이 자꾸 괴롭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은 참 빛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빛이란 것은 어두움을 멀리 해주는 것이 빛인데, 빛이 있으면 우리 마음속에 생명의 빛을 따라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어둠에 속한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46절로 보면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어둠은 마귀가 가져오는 파괴적인 일인데 예수님이 오시면 파괴적인 일을 멀리하고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5절은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 이 세상에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을 주님은 이기게 하신다. 십자가를 통해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주심으로 세상 통치자들이 주지 못하는 것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요한 1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기독교 역사에서 유명한 초대 교부 크리소스톰은 십자가의 고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주님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으로 고통을 받으셨다. 왜냐하면 우리의 온몸 구석구석에 있는 모든 죄를 다 씻어내기 위함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용서와 의의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굉장히 아팠던 때가 있습니다. 가족들은 다 자는데 저는 몹시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고 또 마귀가 와가지고서 “이제 우리 한 건 했다. 너 요번에는 우리 손에 들어왔다. 죽을 줄 알아라.” 그럼 마음에 긴장도 되고, 제가 응접실에 나와서 걸상에 자리를 깔았습니다. 저는 걸상에서 잘 자기로 유명합니다. 매일 저녁 2/3는 잠자리에서 자지만 1/3은 걸상에서 잡니다. 왜냐면, 옛날에 새벽기도를 일찍이 나올 때 잠자리 옷을 입고 새벽기도에 나온 적이 있어서. 그 다음에는 안심이 안돼요. 2/3는 편안히 자고, 1/3은 아예 넥타이 까지 다 묶고 자리에 누웠다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그냥 뛰어나가면 되거든. 오늘 아침도 깨보니까 넥타이 다 매고, 완전한 옷 입고 나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날도 아파서 방 안에서 기도하는 것 보다도 응접실에 나와서 걸상에서 기도를 하는데, 새벽 2시쯤 됐는데, 성령께서 마음에 가득히 임하시더니 내가 성령님 바라보고, “성령님, 좀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니까 성령께서 제 마음속에 “이 사람아, 십자가를 보라. 전쟁은 끝났는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게?” “우리가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 하나님 보시기에는 너는 이미 이긴 사람의 땅에서 살고 있는데, 무엇을 도와 달라는 말이냐?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으니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성령께서 “어떻게 할 게 있느냐? 들어가서 자라.” 아니 너무 태연하게 말씀한 것 같아요. 그래서 “아 그렇습니까? 그럼 잘못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싸움이 끝났으니 더 고통당할 것도 없겠군요.” “용기야, 너 잘못 알았다. 들어가 자자.” 그래서 이부자리 덮고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까 병은 온데 간데 없어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미 이겨놓은 전쟁을 싸우는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깨우쳐 주려고 애를 많이 쓰는데 좀처럼 깨우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야 이 사람아 내가 너를 위해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고 싸웠는지 아느냐?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했지 않느냐? 그런데 또 뭘 이루려는 것이냐?” “아이 주님 그런가요? 잘 몰랐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조금 지나면 또 잘 모른 그것을 행하고 있어요. 물질적인 생활 문제도 농사를 짓든지, 사업을 하든지, 여러분에게 늘 말해야 될 것은 “너에겐 아브라함의 복이 임해 있다. 아브라함의 복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네가 하는 일에는 복이 솟아오른다. 그러므로 자꾸 너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말을 해라.” 그래 들어가며 나오며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그렇게 말을 하면 그 말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좀처럼 말로써 우리 스스로 축복하지 아니하고 “나는 축복 못 받은 사람이다. 고통 받는 사람이다. 복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말을 무의식중에 자꾸 해요. 그래서 우리가 고통을 많이 당하는 것입니다. 2. 생명을 주신 예수님 예수님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마귀의 일을 다 멸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흑암의 권세는 우리에게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괴로운 세상에 던져 넣었는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그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었습니다. 자꾸 건져내지 않았다고 하는데,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서 “내 아들아, 내 딸아, 좀 평안을 느끼고 기뻐하고 웃어봐라. 내가 다 이루어놓았다.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건져 놓았으니까 담대하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초행길입니다. 모두가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할 지 방향을 알지 못한 채 좌충우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빛이신 주님께서 우리 삶에 오시면, 주님께서 우리의 갈 길을 알려 주시기 때문에 낯선 인생길에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시편 119편 105절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면밀히 연구하고 공부하면 그 주의 말씀이 내 발에 길이 되고 등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면 주님께서 죄 사함과 축복과 영생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듭났다는 것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되는 것입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한복음 1장 9절~13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고, 독생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용서받은 의인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죄가 한 번도 짓지 않은 것처럼 청결하게 해주시고, 의인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서 의인들입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가 의인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보혈로 씻어서 거룩하게 하시고 성령 충만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을 때는 하늘나라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여러분과 같이 하늘나라에 진리를 따라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치료와 건강을 주시는 것입니다. 가지가지 병으로 고생을 하는데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 병을 짊어지시고 건강을 주셨다는 것을 말씀에 거듭거듭 말씀해 주고 있지만, 우리가 누리질 못하고 있습니다. 축복과 형통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시와 엉겅퀴를 제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어 놓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형통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여러분을 내려다보니 여러분은 모두 다 형통한 사람들이예요. 더구나 2017년에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형통하셔서 집에 심방을 오라고 좀 요청을 해주십시오. 제가 서대문에 있을 때는 점심과 저녁은 다 성도들 집에 심방 가서 때웠는데, 요사이는 그렇게 오라는 사람이 없어요.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축복과 형통 받는 사람인 것으로 가르쳐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부활과 영생, 천국을 누리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중복음은 참 굉장히 귀중한 복음입니다. 용서와 의를 주시고, 거룩함과 성령 충만을 주시고, 치료와 건강을 주시고, 축복과 형통을 주시고 부활과 영생 천국을 주시는데 이것을 주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댓가를 지불하고 주신 것이므로 아무도 여러분에게서 뺏어가지 못합니다. 3. 우리의 갈 길을 비추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의 빛을 우리에게 비춰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나를 따라다니면 어두운 데에 빠지지 아니하고 밝은데 살겠다고 말하셨습니다. 밝은 데라는 것은 어두운 데가 아니고 밝은데,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과 약속을 얻은 것을 누리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동네마다 캄캄했습니다. 그래서 밤길에 웅덩이에 빠지는 사람, 나무 가지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도 있고, 담벼락에 부딪혀 코가 깨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사이는 새벽에도 가로등이 있어서 어둡지 않습니다. 신문 돌리는 아저씨도 가로등이 있어서 잘 걸어지고, 우유 배달하는 아주머니도 그 빛 때문에 안전하며, 밤새 야근하고 돌아가는 직장인도 그 빛 때문에 짐을 잘 짊어지고 집을 잘 찾아갑니다. 어두운 밤길에 빛이 있어서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어두운 세상을 살아갈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갈 길을 비춰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에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를 때 예수님은 자기가 가지고 온 축복을 나누어주십니다. 사람들은 모두 후회하지 않을 인생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불확실하며 우리는 내일 일어날 일조차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잠언 14장 12절에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말합니다. 인간적인 판단으로 바른 길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사망으로 인도하는 나쁜 길이라는 것입니다. 길조심 하라는 것이지요.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후회하지 않을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시편 119편 165절에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됩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님의 말씀이 나의 길이요. 등이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에베소서 5장 8절~9절)’ 빛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살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주님께서는 일생동안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갈 길을 환히 비춰 주십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이젠 어두움에 거하지 않고 빛 가운데 행합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 위 처에 살고 아래 처에 농부들이 살았는데, 그 아래 처에 농부의 애들이 우리와 같이 초등학교에 나가는데, 그래서 우리가 일찍이 밥을 먼저 먹고 막 아침밥을 먹는 집에 언젠가 들어가서 밥 먹는데 그 머리에 앉아가지고서 독촉을 합니다. “빨리 먹어, 늦어지지 않게.” 그런데 매일 보면 아침밥에 멀건 죽도 아니고 아주 밥도 아니고 음식이라고 볼 수 없어요. 미음같이 됐는데, 그것을 그 어머니가 보급을 해주면 애들은 징징거리고, 큰 사람들은 훌떡 마셔버리면 그만 이예요. 그런데 그 방에 안채에 구석에 보면 쌀가마니가 있어요. 두 가마니, 세 가마니, 쌀가마니를 쌓아놓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무개 아버지요. 아 여기 쌀가마니를 쌓아놓고 저렇게 죽도 아닌 것을 먹고 어떻게 살아갑니까? 이거는 왜 안 먹습니까?” 하니까 하~ 그렇게 성을 내는 사람 처음 봤습니다. “야 이놈의 자식, 너희는 잘 사니까 그런 소리 하는지 몰라도 저거는 우리 생명이야. 저것은 양식이 생길 때까지 생명을 보장해주는 생명이야. 이것을 먹으면 안 돼. 이것이 있어야 저런 미음이라도 쑤게 되는 것이다.” 시골에서는 참 그때 잘 못살았습니다. 그 말에 내가 가난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게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입니다. 지금은 쌀이 너무 거둬져서 어떻게 처치할지 모르는 처지에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그렇게 축복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릴 때 저주를 받았다고 말했었습니다. 아담이 우리 대신 저주를 받아서 우리가 아담 안에서 다 저주 받은 사람이 됐는데 예수님이 저주를 청산해버리고 말았다. 예수 이름 있는 곳에는 축복이 따른다. 예수 믿은 생활이 달라져야 될 것 아닙니까?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로서 하늘에서 이 땅에 오셔서 몸 찢고 피 흘려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이 되셨는데 아무 일도 안 생기고 그냥 왔다 가셨다면 우리가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자기 생명을 내놓고 우리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복을 주어서 그래서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일도 범사에도 삶에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주님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이 우리 만든 보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여러분 뒤로 물러가면 안 됩니다. 뒤로 물러가면 내가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갈 수가 없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가 앞으로 나가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뒤로 물러가지 않고 앞으로만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 삶은 믿음, 소망, 사랑, 의, 평안, 희락, 행복을 누리며 서로 사랑하며 사는 삶입니다. 또 성령님과의 교제 속에서 꿈과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이러한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우리는 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어야 우리 마음이 힘을 얻고 튼튼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서를 보면, 골짜기에 마른 뼈다귀가 가득한데,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 뼈들이 다 서로 맞추어지고, 힘줄이 생겨나서 큰 군대가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늘 읽고, 듣고, 기도하는 그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속에 많이 간직하고 의지하고 살면 삶의 힘이 있어요. 제가 해외여행을 많이 해보면 느낍니다. 내 포켓에 달러가 가득하면 겁이 안 나요. 길을 잃어버리면 택시를 탈 수도 있고, 집을 잃어버리면 호텔을 찾아서 잠을 자고 거기서 연락을 할 수도 있고, 좌우간 여비가 있으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인생의 여비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여비는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 죄를 사하시고 불의를 사하시고 병을 청산하시고 저주를 물리치시고 죽음을 정복하신 이 크나큰 축복이 여러분에게 보배로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간직하고 있으면 인생을 살아가는데 두려움이 없이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두운 데서 빛 속에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새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서 새사람이 되어서 두려워하지 않고 뒤로 물러가지 않고 다 함께 나누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은 누굽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무슨 구원을 받았습니까? 죄와 허물에서 사함을 받았습니다.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저주와 가난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사망과 음부에서 영생복락을 얻었습니다. 나는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나는 성령님과 함께 생각을 긍정적으로 가지고 살고, 성령님과 더불어 꿈을 꿉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는데 꿈을 꿉니다. 나는 믿음을 믿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창조적인 선언을 하면서 삽니다.” 새해에는 이와 같은 마음의 변화를 가지고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우리가 운전을 하고 갈 때가 많습니다. 남이 와서 말해주기 전에 자기가 자기 운명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