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월 17일
제목 ; 눈에 안보이는 보배들
성구 ; 고린도전서 13장 13절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눈에 안보이는 보배들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오셔서 "당신의 재산이 얼마나 됩니까?"라고 물으며 여러분의 재산을 평가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재산을 평가하려면 먼저 동산을 내놓아야합니다. 돈과 금은보석과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재산, 이 동산이 얼마이냐.... 그 다음 부동산, 집이나 토지 같은 부동산이 얼마냐? 그 다음은 여러분의 학력이 얼마이냐? 이것도 자산입니다. 그 다음 여러분께서 어떠한 특별한 기술이나 기능이 있는가? 이러한 자산에 관해서 말씀을 하게될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인생을 성공시키거나 실패시키는 일은 이렇게 눈에 보이는 자산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동산, 부동산, 학력이 높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특별한 기능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움직여주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자산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자산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리 동산, 부동산, 학력이 많고 기능이 있다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실패한 인생을 살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눈에 안보이는 불 가시적인 자산 이 위대한 자산에 관해서 여러분에게 말씀해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로, 우리 눈에 안보이는 자산은 영적, 종교적, 신앙의 자산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이것 별 깊은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마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굉장한 자산. 이 자산은 금세와 내세까지 미치는 자산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뿌리가 얕은 겨우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심한 바람이 불고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그 나무가 송두리째 뽑혀 버리는 것처럼 인생에 풍파가 다가오고 고통과 낭패가 다가오면 파멸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의지하는 사람은 영원과 무한의 하나님께 뿌리를 내고 있어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며 부딪쳐도 흔들리지 않고 요동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에게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눈에 안보이는 영적인 자산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럼 믿음이 있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믿음을 갖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흔들리고 깨어지고 추하여지고 없어질 것을 믿습니다. 청춘을 믿었으면 얼마 있지 않아 청춘이 시들어 져서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돈을 믿었으면 요사이 같이 인플레가 심한 세상에서 돈 가치가 떨어지고 또 언제 무일푼이 될지 모릅니다. 권력을 믿었으면 권력이란 10년을 가지 못하고 바뀌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느 것 하나 흔들리고 흔들리며 깨어지고 깨어질 토대 위에 서지 않은 믿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믿음이라는 것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만세 만대 변치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어떻게 믿는 것입니까? 여러분, 우리 하나님 앞에 죄를 용서하심을 믿습니다. 오늘 모든 사람들은 다 그 마음속에 죄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든 안 믿든 유실론 자든지 무실론 자든지 인간은 그 양심의 법관 앞에 죄책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죄를 짓고 그 마음속에 죄의 판정을 받고 이것을 아무리 잠재의식 속에 눌러 놓아도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머리를 들고일어나서 우리를 정죄하고 물고 찢습니다. 더구나 이제 이 세상 삶이 다 끝나고 죽음의 자리에 드러누웠을 때 그 일생의 지은 죄악이 마치 독사와 같이 머리를 들고일어나서 우리를 정죄하고 물고 찢어서 질풍같이 하나님 앞에서 지옥으로 몰아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이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그 아들이 여러분과 나의 죄를 하나도 남김없이 머리털보다 많은 죄를 다 깡그리 책임지시고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못 박혀 피 흘리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해 버리고만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아들 예수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하나도 남김없이 용서해 주시므로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갈 때 편안히 두 다리를 뻗고 죄 없이 용서받은 사람으로 자고 아침에 깨어나 일어날 때 용서받은, 마음에 용납 받은 기쁨으로 깨어날 수 있고 죄악이 관영하고 파도치는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항상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고 용서받아 양심의 가책 없이 깨끗하고 맑은 양심으로 살수 있는 이러한 은총을 우리가 받는 것을 믿습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주신 하나님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살면서 아무리 부귀, 영화, 공명을 많이 가지고 자기 환경을 찬란하게 꾸미었다고 할지라도 그 속은 텅 비어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저 농촌에 가면 밭이나 들에 허수아비를 세워놓은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새를 무섭게 하기 위해서 짐승을 쫓기 위해서 여러 가지 찬란한 옷을 입혀서 세워놓았지만 그러나 그 속은 전부다 텅 빈 지푸라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으로 우리의 환경을 아무리 찬란하게 꾸미어놓아도 그 마음속에 삶의 의미와 목적과 가치를 모르는 사람을 텅 빈 인생을 살게 됩니다. 겉으론 웃는 것 같으나 속으론 울고 겉으론 행복한 것 같으나 속은 쓰디쓴 실망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 할 때는 우리는 진실로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가 삶의 의미와 목적과 가치를 하나님 안에서 분명히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어려워도 낙심하여 절망하지 아니하고 부하고 귀해도 이로 말미암아 음란하고 방탕하고 허랑하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삶의 의미와 목적과 가치를 얻고 참 내적으로 부자가 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죽음을 건너 영생을 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사람은 속사람과 겉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나의 속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속사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우리 육신의 사람은 태어나서 전셋집 인생을 살다가 전세기한이 차면은 이 집이 무너지고 떠나가야 하지마는 이 속사람은 영원히 삽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종착역에 도착하면은 인생의 종착역에 내린 이 속사람은 천국 아니면 지옥, 하나님 아니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영원히 버림받은 처소로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운명의 기로에서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삶을 준비해 놓았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이 세상 건너편 영원한 세계를 예비해놓은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에는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죽음과 앓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이별하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 그 나라를 주님께서 예비해놓으시고 난 다음 여러분과 나에게 두 손을 활짝 내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할 때 우린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믿는 것만이 믿는 것이 아니라 무덤 저 건너편에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주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고 말할 때 우리는 삼박자 구원이 올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게 해주시는 은총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십자가 밑에서 결정이 나는 것입니다. 오늘 믿지 않는 사람은 십자가 밖에 있고 믿는 사람은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령의 세계속에 들어온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 밖에는 성령이 계시지 아니하고 십자가를 통해서 들어온 사람에게는 성령이 계시는 세계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바로 천국의 영이신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 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사도바울선생은 말하기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말씀했는데 여러분과 내가 십자가 밑에 나오면 죄악의 인생을 벗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질병의 인생을 벗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주의 인생을 벗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절망의 인생을 벗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새로 지음을 받습니다. 용서받은 인간으로 지음을 받고 치료받은 인생으로 지음을 받으며 저주에서 축복을 받은 인생으로 지음을 받고 멸망과 지옥에서 영생과 영원한 구원을 얻은 사람으로 지음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무슨 종교나 의식을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내가 십자가 밑에서 존재적으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달라지고 우리의 삶의 철학이 달라지고 우리의 삶의 방향과 목적이 달라지고 삶의 방법도 달라집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다면서 그저 종교적으로 의식적으로 교회에 왔다갔다하고 그 마음의 생각도 변하지 아니하고 그 행위도 변하지 안는다면 이 사람은 아직까지 구원을 못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십자가 밑에 와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고난 당한 것을 바라보게 될 때 혁명적이 변화를 성령께서 갖다주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다윗은 노래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도다."했는데 우리의 푸른 초장과 우리의 쉴만한 물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인 것입니다. 이 십자가 밑에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의 인생의 운명을 영원히 변화시켜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과 나는 생각을 바꿔야합니다. 여러분은 옛사람이 아닙니다. 옛사람을 십자가 밑에서 벗어버리고 지식에까지 새롭게 함을 입은 새사람으로 갈아입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과 나는 이제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로 십자가를 통해서 옮겨지고 만 것입니다. 이래서 십자가 밑에서 우리는 삼박자 구원의 축복의 보장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노라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서 우리는 세상에 담대함을 가지고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위대한 영적인 자산입니까? 죄를 용서하시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주시고 죽음 건너 영생을 주시고 십자가 밑에서 삼박자 축복의 새로운 인생을 옷 입혀 주시는 이와 같은 영적이 변화가 다가오고 영적이 자산을 얻게 됩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또 하나님 앞에서 소망을 얻게 됩니다. 소망이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압니까? 소망이 있을 때 사람은 열심히 삽니다. 소망이 없어지면 인생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될 대로 되라 던져버리는 것입니다. 요사이 부모들이 자식을 교육시킬 때 자식이 절대로 공부를 안하려고 하고 소망이 없는 그러한 것을 억지로 부모욕심으로 자꾸 시키면은 그만 그 아이는 공부 안합니다. 왜? 소망을 잃어버리고 난 다음에 부모가 강제로 시킨다고 공부하나요? 법률가가 되고 싶지 않은데 강제로 법과 대학에 넣어놓으면 공부 안합니다. 미술가가 되고 싶은데 상과 대학에 넣어서 장사하라고 강요하면 그건 장사 안합니다. 왜? 자기가 소원하는데 가야 열심히 생깁니다. 그러므로 소망이 있어야 사람은 열심 있게 살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세상에 소망이 없이 절망에 처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이 인생을 살다가 절망의 벽에 부딪치면 이것은 나라도 일으켜 세워줄 수도 없고 학문도 일으켜 세워줄 수 없습니다. 절망의 벽에 부딪쳤을 때 여기에 소망을 넣어주어서 다시 일어나 열심히 인생을 살게 할 수 있는 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말씀 밖에 없습니다. 성경에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절망에 부딪쳐서 갈 길이 없는 사람에게도 주님께서는 소망을 주십니다.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왔노라." 나는 요사이 형무소에서 아주 종신형을 받은 사람이나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에게서 놀라운 편지들을 받습니다. 우리 방송을 듣고 혹은 신앙계 혹은 복음 뉴스를 듣고 변화를 받아서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서 편지를 보면 소망 찬 편지를 보내옵니다. 요며칠 전에도 사형수 한사람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그가 하는 말이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이 세상에 살며 목숨이 산화될 때까지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동료 죄수들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이다가 자기는 이 세상을 떠나가겠다고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러면 죄악 가운데서 절망의 벽에 부딪친 사람에게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용서의 소망을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야 의원이 쓸데있느니라." 예수께서 의원으로 자처하시기 때문에 세상의 의원들이 다 당신은 소망이 없다고 말할 때 예수 안에서 소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어서 나는 이제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나는 이제 인생이 끝장났다고 생각할 때 주님은 그 사람을 향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심으로 예수 안에서 기도하고 부르짖고 나아갈 수 있는 소망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의 모든 말씀은 소망의 씨앗입니다. 이 말씀을 읽고 받아들이는 자 마다 그 가슴속에 소망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우리 마음속에 소망이 더욱 넘쳐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소망이 타오를 때 인생을 긍정적이며 적극적이고 창조적이며 생산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안에서 어떠한 사람도 소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은 위대한 자산인 것입니다. 소망을 잃은 사람들이 주저앉아 타락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데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알자말자 그 가슴속에 소망이 넘쳐 나서 인생을 일어나 절망을 향해서도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습니다."로 전진해 나가서 인생을 재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신앙의 위대한 자산이 바로 그 사랑의 자산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참 기쁨이란 사랑 가운데에만 있습니다. 뭐, 돈 좀 벌었다고 갑자기 기쁩니까? 권력이나 지위 얻었다고 기쁩니까? 그러한 기쁨은 잠시있다 사라집니다. 항구적으로 가슴속에서 솟아나는 기쁨은 사랑입니다. 내가 사랑을 받고 있고 내가 사랑을 할 때 그때 기쁨이 넘쳐납니다. 여러분, 어떠한 가정도 좋은 집을 지어놓고 무슨 좋은 전기 제품을 갖다놓고 산다고 행복하지 않아요. 그 가정에 부부간에 서로 뜨겁게 신뢰하고 사랑하게 될 때 그때 그 사랑 속에서 끝없는 기쁨이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그 기쁨이 바로 행복입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쁨 속에 살았는가? 이것이 그 사람이 행복한 인생을 살았는가 아닌가를 판가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게 완전한 사랑이 있나요? 도시화되고 산업화 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전부 이기주의로 살고 이러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수많은 사람 속에 살면서도 마음에 고독하기 짝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외롭고 고독하고 좌절되고 낙심되고 열등의식으로 짓눌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인생을 살아갈 힘이 없어지고 인생이 침울해 집니다. 그러나 갑자기 그가 눈을 들어 하나님을 쳐다보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사랑 받고 있다. 나는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 이것을 깨닫게 될 때 내 가슴속에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인생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나도 사랑하지 않는데 우리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예수 이름으로 찾고 계시다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아들을 주기까지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가 예수를 만날 때 깨달아 지고 불꽃같이 타오르기 시작하면 이 하나님의 사랑가운데서 비로소 나의 삶의 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좌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열등의식에 짓눌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시기 때문에 나는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와 기쁨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온 세상 다 날 버려도 좋다. 모든 사람이 나를 인정하지 않고 나를 밀쳐버려도 좋다. 그래도 나는 사랑 받고 있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 받고 있으므로 결코 버림받지 않았다는 마음속에 자신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활한 하늘 아래 광활한 대지 위에 서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 받고 있다고 외칠 수가 있고 그렇게 할 때 자기와 자기 운명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자학을 하고 이 버림받은 인생, 망한 인생, 쓰레기 더미와 같은 인생..... 자기를 구박했으나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아를 발견하자 말자 그래도 나는 살 존재가 있다. 가치가 있다. 내가 귀하다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 운명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기를 생각할 때 자기 스스로가 귀하고 예쁘고 좋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고 감사하게 될 때 그 다음에 이웃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못난 이웃, 나를 욕하는 이웃, 나를 괴롭히는 이웃이라 할지라도 저것은 몰라서 그러는 것이구나.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동정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사랑하고 기도해 주고 도와줄 수 있는 힘이 나의 속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답고 위대한 힘이 사랑인데 이 사랑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깨닫게 되고 난 다음에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점령하고 내가 그 가운데서 불타기 시작할 때 비로소 내가나를 사랑하게 되고 그리고 내가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 즉, 영적으로 믿음을 갖고 소망을 얻었으며 사랑을 깨달은 사람. 이런 사람은 굳센 사람이 되고 밝고 맑은 인생을 살게 되고 이해와 동정이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사람을 남편, 혹은 아내, 혹은 같은 동료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사람이 있으므로 요동하지 아니하는 굳은 인격과 밝은, 긍정적인 인생과 이해와 동정의 깊은 사랑을 가지고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나온다는 것은 비단 천당 가는 먼 장래의 일 뿐 아니라 현재에 있어서 여러분과 나의 생애를 살아가는 위대한 삶의 자원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믿음의 자원, 소망의 자원, 사랑의 자원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위대한 축복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쳐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인생을 성공시키는 자원은 인격적인 자신인 것입니다. 저는 홍콩에 갈 때마다 나에게 또 나와 같이 가는 이 실업인들에게 벤츠 차를 몰고 나와서 언제나 호텔까지 바래다주는 미스터 구라는 이 테일러가 있습니다. 양복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별로 인물도 잘나지 못하고 몸 스타일도 좋지는 않지마는 꼭 벤츠 차를 타고 밤 11시 12시에라도 연락만 하면 우리를 데리러 나옵니다. 그리고 홍콩에 무슨 사무나 볼일이 있어서 차를 내달라면 자기 일을 다 제겨놓고 차를 내주어서 우리 일을 다 돌봐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마워 가지고는 나중에 올 때에는 꼭 양복 하나 안하고는 올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여름 양복이라도 하나 하고 사파리라도 하고야 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나는 중국 산동성 출신인데 공산당이 들어오자 그 압제 하에서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 탈출을 했습니다. 있는 재산을 다 빼앗기고 빈손 들고 탈출해서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에서 고용살이하고 있다가 거기에 있는 중국계 여인하고 결혼해서 일본에만 있을 수 없어서 홍콩으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무슨 부모에게 받은 상속이 있나요 피난살이 다니면서 내가 무슨 공부를 했나요 내게는 아무 밑천이 없습니다. 그래서 홍콩에 와서는 남의 양복집에 점원으로 들어갔었을 때 내 마음속에 결심을 했습니다. 나는 물질적인 자산도 동산, 부동산도 없다. 배운 것도 없다. 기술도 없다. 그러나 나는 세 가지 것을 가지고서 인생을 살아보겠다. 절대 정직하고 무슨 일을 하던지 절대 충성스럽고 세 번째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근면하겠다. 이 세 가지 정직, 충성, 근면. 이 세 가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마음에 자산을 갈고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주 정직하고 그저 충직스럽기가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아주 충성스러워요. 그리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이제는 홍콩의 하얏트호텔 앞에 가면 이 사람의 양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양복점이 잘됩니다. 양복점이 잘되니 벤츠 차를 타고 다니지요. 돈도 꾀 모으고 잘 살게 되었습니다. 요번에 나를 만났을 때에도 비행장에서 나를 안내해 주고 또 비행장에 데려다 주면서 그가 나보고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내가 하도 예수를 믿으라고 하니까 거의 믿을 작정을 해요. 그러면서도 내게 하는 말이 "목사님. 내게 아무 재산이 없지마는 지금도 내가 빈손 들고 홍콩에서 쫓겨나서 저기 백사장에 갖다 놓아도 나는 먹고살 자신이 있습니다. 왜? 나는 눈에 안보이는 재산이 있거든요. 나는 어느 곳에 가더라도 정직하고 나는 충직스럽게 충성하고 그리고 난 다음에 나는 근면하여 열심히 일합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홍콩에서 쫓겨나면 서울로 오십시오. 내가 양복점 차리는데 도와주어서 우리 20만 성도들이 당신 양복점에 양복을 하도록 할 테니까" 왜냐하면 그만큼 사람이 충직스럽습니다. 나하고 언제 알았다고 해서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옵니까 왜? 그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이 있기 때문에 그것에 내가 깊이 감동한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 인생은 혼자는 못삽니다. 두 사람 이상의 사람과 교제하고 살아가는데 만일 사람이 정직하지 못하고 부정직한 사람이라고 판명이 되면은 그때부터 기피인물이 되고 맙니다. 일시적으로 사람에게 거짓말하고 이용해서 그것으로 자기가 이익을 얻을 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는 그 사람은 기피인물이 되어서 아무도 그 사람하고 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 사람은 인생에 패배하고 맙니다. 지식이 있고 아무리 그가 동산, 부동산이 있더라도 사기꾼이 되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은 출세할 수 없습니다. 나는 큰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내게 돌아와서 이런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동남아에 수출을 하고 있었는데 주 수출 품목이 인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이 그가 인삼을 속여서 수출을 해서 꾀 재미를 봤다고 해요. 인삼에 곰팡이가 피고 썩고 이런 인삼을 밑에 넣고 좋은 인삼은 위에 넣고 해서 제일처음에 와서 인삼장사를 할 때는 좋은 인삼만 넣은 것을 보여주었다가 나중에 실제로 수출할 때는 나쁜 인삼을 섞어 넣어서 꾀 재미를 봤데요. 그래서 재미를 보았는가 했는데 그만 그것이 걸려서 클레임을 당하는데 전에 팔아먹은 것까지도 모두 다 클레임이 들어와 인삼을 다 물어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말자 그만 거짓말쟁이라고 소문이 나서 자기하고 거래하던 모든 상사들이 모두다 기피인물로 거래를 끊고 이제는 그와 함께 일을 하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클레임은 당하고 빚은 지고 다른 사람들은 그와 장사를 하려하지 않고 이렇게 되어서 완전히 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전도를 받아서 우리 교회에 와서 회개를 하고 제게 말하기를 "목사님, 결국에는 일시적으로 사기를 처서 잘되는 것 같지마는 나중에는 그것이 망하는 길인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람이 정직해야 합니다. 거짓말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살 때 지금은 외로운 것 같아도 정직한 사람에게는 친구가 끊이지 안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산이 충성의 자산인 것입니다. 사람이 모여 살 때 서로 친구간에 또 상사와 하사간에 서로 충성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저 사람을 기회주의나 방편주의로 이용만 하려고 하면 그 사람이 그 당시에는 출세를 할지는 몰라도 장구한 미래가 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친구간에라도 충성스럽고 상하관계라도 진실로 충성스러운 사람은 내일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은 비록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일본 사람이 세계적인 기술 왕국이 되고 잘살게 되고 똑같은 동양민족인데 지척간에 있는 우리 한국은 그렇게 공업입국으로 기술입국이 되지 못한 이유가 어디 있는지 압니까? 단순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기회주의나 방편주의입니다. 한국사람은 무슨 생산업을 하던지 무슨 장사를 하던지 일시적으로 적당히 수단을 써서 상사에게 잘 보여서 출세하려는 그 생각 밖에 없지 무슨 일이든 이것을 천직으로 알고 그것을 대를 물려가면서 끝까지 충성스럽게 잘해보겠다는 마음이 한국사람에게는 없습니다. 조그마한 음식점을 가보아도 일본은 삼대 사대 그 음식점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음식 그대로 연구를 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장난감이면 이 장난감에 전 심혈을 다 기울여 넣습니다. 이것을 천직으로 알고 자기의 있는 심혈을 기울여 다 세계에서 제일 좋은 장난감을 만들겠다. 세계에서 최고로 좋은 화장품. 세계에서 최고로 좋은 전자제품. 그래서 그 한가지 자기 일을 천직으로 삼고 그것에 전력을 기울여 충성을 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만든 제품이 곧 유명해 지고 온 세상에 팔리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고 유복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적당히 눈치보고 자꾸 부장자리나 계장자리, 과장이나 부장자리에 올라가서 일확천금이나 해보자. 이래서 위에 눈치나 보고 진실로 어떠한 일에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 보겠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한국사람이 지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 한국에 TV기술자로 일본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사람이 일본에 들어가기 전에 탄식을 합니다. 한국의 모 전자회사의 TV기술자로 와서 한국에 5년 동안 있었는데 5년 동안에 한국 기술자를 한 사람도 양성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자기가 한국에 와서 보니 한국 사람은 머리가 참 좋은데 한 사람도 TV하나에 매달려 그것에 일평생을 그 기술을 연마해 나가는 것이 안보입니다. 그저 위에만 쳐다보고 언제 어떻게 눈치를 봐서 계급이 높아져 기술자가 되지 않고 계장, 과장, 국장이 될 수 없나 그것만 쳐다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저쪽회사에서 조금만 돈을 더 얻어준다면 이곳을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고 옮겨간다는 것입니다. 5년 동안을 여기에 와서 기술자를 양성하려고 해도 기술자 한 사람도 양성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 사람도 그 기술을 천직으로 알고 충직스럽게 기술을 연마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거대한 결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기술이 이렇게 낙후됩니다. 언제나 남의 기술을 흉내만 내었지 남보다 기술적으로 전진할 수 없는 것은 그것에 전문가가 없습니다. 조금 있다가는 도망쳐 버리고 조금 있다가는 도망쳐 버립니다. 여러분, 충성스러운 것. 충직스러운 것. 이것이 바로 오늘날 바로 축복을 받는 눈에 안보이는 자산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오늘날 무엇을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최고가 되십시오. 오늘 사람들이 제게 많이 불편을 합니다. 순복음 중앙교회는 조목사가 심방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만나주지 않는다. 그래서 내게 불평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자꾸 늘어납니다. 왜 그런가? 제가 심방을 하러 아침저녁으로 돌아다니면 저녁에 지쳐서 들어와서 그냥 자버리고 그래서 수요일, 금요일 말씀 증거할 시간은 자꾸 다가오는데 준비하지 아니하고 적당히 준비해서 성경 몇 구절 읽고 난 다음 아이고 적당히 하자 천당을 가든 지옥을 가든 내가 알게 뭐야.... 그렇게 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여러분은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심방을 안 온다. 개인적으로 면담을 안 해준다. 만나기가 힘들다. 뭐. 대통령 만나기 보다 더 힘들다. 그렇게 말 하지만 나는 내게 사명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만나거나 심방보다도 내게 가장 중대한 사명은 수요일, 금요일, 주일마다 하나님의 살찐 꼴을 먹여야 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 일에 충성하지 못하면 내가 다른 일에 아무리 인품이 좋고 심방을 잘해도 그것은 결과에는 내 임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전력을 기울여서 성경 읽고 기도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그래서 우리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맛있는 꼴을 먹인다. 영양실조가 되지 않게 한다. 이일에 욕을 먹어도 충직스럽게 합니다. 제가 외국에 여행을 가더라도 기를 쓰고 토요일에는 돌아오려고 합니다. 주일에 이 강당을 안 비우기 위해서 이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20만 성도가 된 것입니다. 만일 메시지에 전력을 다해서 전하지 안았다면 저는 목회자로서 실패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누가 내게 무어라고 불평을 해도 나는 내 의무를 합니다. 내 의무란 매시간 내가 강당에 설 때 살찐 꼴을 먹이는 것이 나의 의무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일을 위해서 충직스럽게 충성을 할 작정인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께 말합니다. 먼저 할 일을 먼저하고 나중 할 일을 나중에 해야지 이것을 바꾸어서 자신의 천직으로 충직하게 할 일을 제겨놓고 난 다음에 인생을 기회주의로 방편주의로 사는 이 사람은 절대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 다음 근면해야 합니다. 사람이란 부지런하고 봐야지 기술이 좋고 학력이 높다고 할 지라도 게으른 사람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열심을 다하고 애를 쓰는 사람이 성장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근면은 황금인 것입니다. 홍콩에 있는 미스터 구처럼 이 세상에 정직하고 충직스럽게하며 근면하면 못살 사람 없습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양복을 세 벌했는데 그 사람 양복을 입어보면 몸에 잘 맞아요. 그리고 그 바느질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다른 옷은 많이 입으면 단추가 떨어지는데 그 사람 옷은 몇 년을 입어도 단추하나 흔들리지 않아요. 그는 바느질 하나라도 전력을 다해서 만듭니다. 그 사람에게서 옷을 만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주고 나도 많은 사람을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양복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왔다하면 밤늦게라도 비행장으로 오고 해서 이 충성스러움으로 그 사람은 성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인격적인 자산인 정직하고 충성스럽고 근면하면 그 사람은 앞으로 걸어가는 길에 빛이 비춥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기본적인 자산이 건강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일하며 살고 죽을 때까지 가장 기초적인 삶의 자산이 건강입니다. 아무리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이라도 건강을 잃고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건강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던지 주님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 복음의 2/3은 병든 자를 고치는데 소모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건강이 여러분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기초적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오늘날도 주님은 예수께 나올 때 제일먼저 해 주시는 일이 병을 고쳐주시는 일인 것입니다. 건강이 있어야 아버지 어머니로서 또 사회인으로서 국가 국민으로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병들어서 들어 누워있으면 모든 사람에게 짐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니다. 이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성전을 우리가 건강으로 잘 보존해야 인생을 살면서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의 일생을 노아의 홍수 이후로 120세까지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올바르게 건강관리를 잘하면 오늘날도 120세까지 살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70, 80세에 거꾸러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건강관리를 하나님의 법칙을 좇아서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일과 휴식에 대해서 엄격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여세 동안 일하고 이래 째는 쉬어라. 그렇지 않기 때문에 육체가 망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었을 때 여세 동안은 일하고 이래 째는 쉬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이상 더 일하면 그 육체가 나중에는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젊을 때 건강하다고 해서 이 하나님의 법칙을 무시하고 7일 내내 황소같이 일을 하고 그래서 4-50대 되어서 한창 일을 할 때 텅텅 넘어지고 죽는 것입니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옛날에 어리석은 자랑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사실 말이지 아직까지 목회생활에 들어오고 나온 다음에 진실로 휴가를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여름철에 월요일에 애들하고 출발하면 금요일에 돌아오는 그런 휴가는 애들이 성화를 해도 진짜로 쉬어본 적은 없습니다. 휴가를 가기 위해서 주일날 쉬어본 적이 없는데 그것을 늘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나는 25년 목회생활에 한번도 휴가를 가본 적이 없다. 나는 교회 강당을 휴가 때문에 비운 적이 없다. 이렇게 자랑을 하고 미국에 가보니까 미국의 저명한 목사들이 여름에 두 달 겨울에 두 달씩 휴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저것도 목회라고 하느냐고 했는데 가만히 보니 나처럼 황소같이 일한 사람들이 대게 40-50이 되어버리니까 죽어버립니다. 그런데 여름 두 달 겨울 두 달씩 휴가를 가면서 서서히 목회를 하는 사람을 지금 내가보니까 90이 되어도 창창하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사이는 생각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면 나도 휴가를 가지고 인생을 좀 일과 휴식을 가지고 살아야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인생이라는 것은 살기 위해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건강하게 하나님이 주신 연대대로 살기 위해서는 건전한 운동과 오락은 절대 필요합니다. 이것은 소모가 아닙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각자가 건전한 운동을 하고 건전한 오락을 하여서 일과 휴식을 반드시 취해야 이것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식생활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우리가 너무 과식하고 편식하고 또 이 세상사람들은 술 먹고 담배피고 여러 가지 화학적인 약품을 많이 먹고 해서 성인병인 당뇨병이나 고혈압이 만연해서 사람이 죽어갑니다. 사실 요사이 죽어 가는 것은 성인병이 들어서 죽지 자기 수명대로 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왜? 식생활이 잘못되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적당히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말하기를 아침식사 잘하고 점심 적당히 먹고 저녁은 거의 안 먹다시피 하고자는 것이 가장 건강식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굶어서 죽는 사람은 별로 없고 배불러 죽은 사람은 허다히 많습니다. 많이 먹어서 죽지요. 그러므로 너무 기름진 것 많이 먹고 너무 단 것 많이 먹어서 인생을 망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오래 살려면 우리는 과식도 피해야 하고 편식도 줄여야 합니다. 요사이 우리 한국에 가난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왜냐하면 일년에 한국 사람이 술을 마셔서 소모하는 돈이 얼마인줄 압니까? 7000억 원입니다. 일 조 억 원에 가깝습니다. 만일 7000억 원을 사람에 투자했다면 오늘날 직장이 없는 사람은 우리 한국에 없을 것이요. 한국 사람모두가 잘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무려 일년에 7000억 원을 마셔서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 없어도 사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담배까지 피우니 담배 피우는 것도 얼마나 많은 돈이 듭니까 그래서 술 먹고 담배 피워서 우리의 환경도 나쁘게 만들고 생활도 가난하게 만들고 자기도 망치는 것입니다. 내가 요번에 홍콩에서 돌아오면서 내 옆자리에 독일 사람 두 사람이 점잖이 앉아 있어서 전도를 해야겠다 싶어서 점심을 먹고 난 다음 내가 전도를 하는데 전도를 내가 잘못했어요. 기도를 하고 난 다음 성령의 인도로 전도를 해야하는데 내가 내 마음대로 전도를 한 것이 뭐냐하면 "당신은 예수 믿고 담배피고 술 마시지 말아야 한다. 술 먹고 담배 피우지 않고 예수 믿고 살면 참 좋다."고 하니까 두 사람이 얼굴이 새빨개져서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우리 두 사람이 담배회사 사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얼굴이 빨개서 조목사 생각해봐라. 세상사람들이 담배를 많이 피움으로 담배공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얻어서 먹고사는지 아느냐? 그런데 담배를 피우지 말라니 말이 되느냐? 그러기에 내가 여보시오. 그 담배를 피워서 날려버리는 그 돈으로 공장을 세워서 일을 하면 그 담배공장보다 더 많은 사람이 직업을 얻어서 살수 있다. 그 다음에는 전도가 안되고 입 싸움이 되었습니다. 담배가 좋다 나쁘다로 싸우니 내 생각에 이제 이 사람은 전도할 필요가 없다. 전도해도 끝장이 났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식생활을 절제를 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신 이 건강을 유지해야 하고 또, 위생도 그렇습니다. 공해가 심한 이 시대에 우리가 사회적 정부적 차원에서 이 공해를 제거해서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는데 있어서 공해를 없게 하고 물도 깨끗한 물을 마시게 하고 또 가정생활을 조성해서 꽃 한 포기라도 심고 나무 한 그루라도 심고 풀이라도 심어서 우리의 정신 위생, 건강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것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건강을 가져야 그것이 자산이 됩니다. 국민 전체가 건강할 때 그 나라가 튼튼한 나라가 되고 발전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지 온 국민전체가 병들어 있으면 그 나라는 망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무병십년에 못살 가정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가족이 돈을 많이 벌어도 가족식구가 전부 병들어 쓰러지면 못사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하나님께 나와서 우리가 스스로 일과 휴식, 식생활, 위생 같은 것을 조심하고 주님께 기도해서 우리 병이 치료받고 건강을 얻고 튼튼한 몸으로 살아갈 때 이 사람은 또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위대한 자산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보배만 취하려고 애쓰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안는 보배를 닦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보배가 풍성해 지려면 눈에 안보이는 영적인 자산인 믿음 소망 사랑이 넘쳐나야 하고 인격적인 자산인 정직과 충성과 근면이 풍성하고 그 다음 우리 건강이 하나님께 치료를 받고 우리 스스로가 조심하므로 튼튼해지면 이러한 사람은 어떠한 곳에 가져다 놓아도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축복해 줄 수 있는 기초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눈에 안보이는 자산이 없는 곳에 축복을 해주면 그 축복과 함께 망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이 한해를 잘 살아가려면 영적인 자산, 인격적인 자산 그리고 건강의 자산을 잘 연마하고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꾀어야 보배라고 영적인 자산이나 인격적인 자산, 건강은 모두다 여러분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잘 갈고 닦아서 풍성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눈에 안보이는 자산이 풍부했을 때 여기에 기초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눈에 보이는 온갖 자산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을 불러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더 얻되 풍성히 얻도록 해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오늘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믿음 소망 사랑을 더 강하게 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우리를 정직하고 충성스럽고 근면하게 만들어 주시옵시고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건강을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잘 돌보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런 것들이 없이는 이 세상에서도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수가 없고 또, 영원한 천국의 영광도 누릴 수가 없사옵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 각자가 깊이 깨닫고 올바르게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