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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982년 1월 24일 제목 : 삶을 실패케 하는 마음가짐 성구 : 딤후 1 : 6 - 7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삶을 실패케 하는 마음가짐이란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우리를 성공케 하는 무한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음을 잘못 먹으면 끝없는 파괴를 가져오는 무서운 폭발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밝히 말씀하기를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오느니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의 삶을 실패케 하는 잘못된 태도를 살펴보고, 그 폭탄의 내관을 뽑아버려서 여러분과 저가 인생을 살면서 우리 마음 하나 잘못 먹으므로 말미암아 내가 망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이웃과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이러한 요소에서 놓여남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을 파괴하고 생활을 파괴하는 부정적인 감정 중에 가장 무서운 감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미움과 분노의 감정인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미움과 분노는 우리를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움과 분노는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그 다음에 상대방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 미움을 폭발시키고 분노를 발하면 당연하게 다가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세한탄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미워하고 분노하고 난 다음에 마음속에 탄식이 생기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왜 나는 이와 같이 되었는고. 왜 우리 가정은 이렇게 되었는고. 왜 우리 이웃은 이렇게 되었는가? 나는 왜 이러한 환경 가운데서 이러한 운명에 부딪쳐야만 되는가? 이와 같은 탄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탄식은 얼마 있지 아니하여 그 마음속에 우울증을 일으켜 삶을 부정적으로 몰아넣고, 그 결과로 불행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미워하고 분노하는 사람 치고 그 마음이 우울증으로 짓눌려 있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사람이 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 미움과 분노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먼저 자기의 마음을 파괴하고, 자가의 일생에 속에서 그나마도 행복이 남아있는 것을 낱낱아 다 빼앗아 가버리고 말고, 그 여세를 몰아서 가정과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파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우리 가장 무서운 파괴적인 감정인 미움과 분노의 감정을 이겨야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움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용서받게 없는 것입니다. 미움이라는 것은 아무리 안 미워하려고 해도 안되고, 분노라는 것도 아무리 억제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오직 용서만이 이것을 해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내가 미워하는 사람, 분노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가 있을까요? 여러분 예수그리스도의 용서함을 받은 자만이 남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자신의 삶을 생각해 볼 때 우리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추하며 위선자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나같이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자도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으셨으므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과를 다 짊어지고, 우리의 잘못을 다 책임지고, 그리고 고통을 통해서 이것을 다 갚아주고 용서해 주었거늘 하나님 앞에 용서받은 우리들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 용서를 스스로 취소하는 길이 되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너희가 너희 이웃을 이와 같이 용서해 주지 아니하면은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죄를 용서해 주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기도문에도"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미움을 이길 수 잇는 유일한 길은 용서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체험한 우리들은 진정코 내가 용서받은 것처럼 남도 용서해 주어야 나의 용서를 유지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고리텐블 여사의 놀라운 이야기를 읽어보고 마음의 깊은 감동을 느꼈었습니다. 고리텐블 여사는 화란이나 세계적인 복음전도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제 2차 대전 당시에 그의 아버지, 어머니, 그의 동생인 베스이와 함께 도망치는 유대인들을 집으로 숨겨서 무사히 외국으로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독일의 헌병대에 잡혔었습니다. 이래 가지고서 그는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수용소에 수감되고 말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수용소에서 한없는 고통은 당한 것입니다. 그 수용소는 굶겨서 죽이는 수용소입니다. 여자들만 수용한 유대인 수용소이데 그곳에 자기 동생하고 들어가서 날로날로 쇠퇴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럴 뿐 아니라 시간마다 독일 남자 군사들 앞에서 온 몸을 발가벗겨서 나체로서 이리 저리 걸어다녀야 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동생 베스이가 발가벗고 남자의 휘둥그래진 눈을 뜨고 있는 그 앞을 지나 갈 때 그 뒤를 따라가면서 처참한 비극을 느꼈었습니다. 너무나 뼈만 앙상하고, 너무나 해골만 남은 그 동생을 보고서 세상에 사람이 저렇게 피골이 상접 할 수가 있는가? 하고 그렇게 느꼈습니다. 기어코 동생은 굶어서 그 수용소에서 죽었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독일이 패전하고 마침 그 고리텐블 여사는 기적으로 살아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고리텐블 여사는 뜨겁게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더구나 독일에 건너가서 그러게 전쟁을 일으킨 전범인 독일 국민에게 "회개하라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용서해 준다" 이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리텐블 여사가 독일의 뮌헨에서 복음을 증거 했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회개만 하면 여러분의 그 전쟁을 일으킨 비참한 죄악도 주님이 용서해 준다"고 그렇게 말을 하고 예배를 드렸었습니다. 예배를 필하고 난 다음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나와서 고리텐블 여사하고 악수를 하는데 갑자기 고리텐블 여사에게 나타난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눈이 두리번두리번하고 광대뼈가 나온 이 사람 키가 크고 어깨가 쩍 벌어진 이 사람 양 포켓에 손을 얹고 앞으로 걸어나오는데 그만 거기에서 고리텐블 여사의 심장은 얼어붙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라벤서브르크의 수용소에서 자기와 자기의 동생 베스이를 발가벗겨 놓고 난 다음에 그 앞에 지나가게 하고 그를 못살게 괴롭히던 고통을 주던 바로 수용소의 간수였던 그 사람 이였었습니다. 그 사람이 앞으로 걸어 나옵니다. 이럴 때 이 고리텐블 여사는 온 천하를 다 용서할 수 있는 심정이었지만 그 사람이 실제로 나와 섰을 때 갑자기 그 심장이 얼어붙고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온 몸에 진땀이 나오고 긴장이 되는 것을 느꼈었습니다. 물론 그 남자는 수많은 여자들을 수용을 시켰기 때문에 고리텐블 여사를 몰랐지마는 고리텐블 여사는 그 사람의 핍박으로 말미암아 동생이 굶어서 죽고 자기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을 역력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포켓에 손을 얹고 앞으로 나오면서 손을 내밀고 말았습니다. 고리텐블여사 여사의 설교를 들으니깐 라벤서브르크의 수용소에 있었다지요. 나도 수용소 거기에서 간수병으로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 몹시 악한 일을 많이 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지긋 지긋 합니다. 그러나 나는 전후 예수를 믿게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 준 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수용소에 당신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거기에서 고생 당한 당신의 입에서 직접으로 나는 용서를 받고 싶습니다. 나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하면서 손을 내미는데 고리텐블 여사는 순간적으로 손을 내밀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그 손을 자기 포켓에 넣어 무엇을 찾는 척하면서 단지 그 순간이 10초에서12초밖에 안되었을지 몰라도 고리텐블 여사에게는 영원히 지나가는 것 같았었습니다. 그는 그 순간에 자기와 자기 동생이 발가벗고 그 남자 앞에 지나가던 것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동생이 못 먹어서 온 전신이 바싹 말은 피골이 상접한 처참한 모습으로 처참한 모습으로 뼈만 앙상해서 그 남자 앞에서 희롱을 당하는 것을 기억했었습니다. 그는 그러자 온 마음속에 분노가 올라 오르고 피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부다 쏟아져서 현기증을 느꼈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마음에 불어닥쳤답니다. 용서할 수 없다. 내가 열두 번을 죽어도 이 사람만은 용서 할 수 없다. 이렇게 무자비하게 우리를 짓밟은 이 사람을 내가 어떻게 용서하느냐? 온 마음속이 분노와 미움으로 끓어오르더랍니다. 그런데 그 마음 속게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이 "나는 나에게 침 뱉고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나를 향하여 온갖 모욕을 하는 그 모든 사람을 위해서 용서해 주었다. 네가 나의 제자라면 네 감정은 둘째 문제 치고 이 사람을 용서해 주라." 그래서 그는 마음속에 생각했습니다. 만인 네가 죄인 한 사람을 용서해주지 아니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네게 이렇게 하리라. 그래서 그는 결심했습니다. 마음에 미움이 있든 분노가 있든 이것은 내 마음의 감정이고, 하나님의 명령이니깐 나는 용서하는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부리나케 손을 내밀어서 그 사람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아무렴 내가 당신을 용서해 주고 말고요. 당신들은 우리를 짓밟고 우리를 수많은 여성들이 그 곳에서 원한을 품고 죽었지마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다 용서해 줍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해주셨으니 난들 어떻게 당신을 용서해 주지 않겠습니까? 나는 당신을 용서해 줍니다. 그렇게 고리텐블 여사가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할 때 그 영혼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마치 쇳물을 녹인 것같이 그 영혼을 지나가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 모든 원수조차도 회개하면은 용서해 주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마음을 점령하고 순간적으로 그는 미움과 분노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하나님의 오직 사람만이 강물처럼 그 마음속에 출렁이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그 글을 기록한 것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악명 높은 그 수용소의 감시원을 만났을 때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해 줄 수 있는 그래서 그 용서로 말미암아 그 분노와 미움이 다 사라지고 말았다는 이 간증은 놀라운 간증입니다. 역시 고리텐블 여사는 전후에 화란에서 독일사람에게 고난 당한 사람을 위한 수용소를 개설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정신병 환자들 많은 육체적인 불구가 된 사람들이 그 정신병 환자에서 그 불구수용소에서 치료를 받고 나갔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독일 사람들에게 고난을 당하고 매를 맞고 짓밟혀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고리텐블 여사가 기록하기를 마땅히 미워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땅히 분노를 터트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수용소에서 끝까지 용서해 주지 못하고 분노를 가진 사람은 정신병에서 육체의 불구에서 그곳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러고 난 다음 용서해 주고 그리고 원수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사람은 정신병에서 고침을 받고 육체적인 불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음을 받아서 자기가 경영하는 수용소에서 걸어나가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세상에서 용서와 사랑은 위대한 심리적인 치료와 육체적인 치료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움과 분노는 끝까지 우리를 파괴하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의 희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들이-----------우리의 삶을 파괴케 하는 가장 무서운 감정 중의 하나인 미움과 분노는 용서로서 모두다 청산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고 인간으로 사는 이상 미움과 분노가 있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기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질 때까지 분을 품지 말라"고 말하셨습니다. 우리는 분이 나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 용서해 주고 그것을 예수의 피로 씻는 이러한 일이 있어야 우리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삶을 실패케 하는 마음가짐은 불안과 공포인 것입니다. 불안과 공포는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악마적인 억압인 것입니다. 누구나 불안과 공포를 체험해 본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파괴적인 감정인 것인가를 쉽게 기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대한 증언자는 우리 성경에 욥기의 욥인 것입니다. 여러분 욥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크게 받은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었었습니다.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욥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서 소생 중 남자가 일곱 명이요, 딸이 세 명이었었습니다. 그는 소유물 중에 양이 칠 천이요, 약대가 삼 천이요, 소가 오백 결이요, 암 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고 동방에서 가장 큰 부자요, 권세 있는 사람이었었습니다. 그는 이와 같이 하나님께 큰 축복을 받아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의 자세로서 사는데 그만 마귀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었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보니 마귀가 하나님께 와서 욥을 참소 했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마귀는 욥에게 부정적인 생각으로 공격을 했습니다. 마귀가 욥을 공격 할 때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이 마음의 불안과 공포였었습니다. 그 마음 속에 폭풍우처럼 불안과 공포가 휘몰아쳐 왔었습니다. 너는 너의 가정이 파괴되고 너의 자손들이 다 죽을 것이고 너의 재산이 다 잃어버리게 되고 너는 처참하게 병들어서 패가망신하고 말 것이라는 이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욥의 생각을 주야로 공격했던 것입니다. 욥이 만일 하나님의 생각을 올바르게 알았더라면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마귀의 생각을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인데 이 욥은 마귀의 생각을 받아들였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불안에 떨고 초조해 떨고 공포에 어찌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 했었습니다. 불안과 공포는 마귀를 초청하는 바로 초청장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불안과 공포에 짓눌려서 얼어붙은 마음같이 되어 버리고 무기력하게 되어 버리면 그야말로 마귀가 그를 통하여 여러분 생에 들어와서 여러분을 휘어잡고 하나님에게 여러분을 참소하고 여러분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욥이 바로 불안과 공포의 노예가 되고 말은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욥은 하나님 앞에서 그 보호받을 자격을 상실하고 말은 것입니다. 오직 믿음만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 사람이 아무리 윤리적, 도덕적으로 온전하더라도 믿음의 세계를 떠나서 불안과 공포증에 빠지면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증거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불안과 공포에서 놓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윤리적, 도덕적인 종교 적에 있을지라도 불안과 공포에 빠지면은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진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와서 점령하는 것입니다. 욥은 비극을 당했었습니다. 그는 그의 자녀들이 회오리바람을 만나 가지고서 집에서 잔치하고 있다가 집이 무너지므로 다 죽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천지지변을 만나서 양떼가 뺏기고 원수가 쳐들어 와서 소 떼를 잃고, 일시에 그는 패가망신하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 자기 아내는 분통이 터져서 욥을 보고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하고서 떠나가 버리고, 욥은 온 전신이 병들어 가지고서 온 전신에 종기가 생겨서 그는 집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잿더미 위에 앉아서 기왓장으로 그 몸을 긁으면서 처참한 탄식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욥은 직접 그가 탄식해서 말하기를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것이 내몸에 미쳤구나!"라고 했던 것입니다. 욥이 그 두려워하는 것과 무서워하는 것에서 나중에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되기 전까지 무수한 고통을 겪었지마는 나중에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 믿음을 회복하고, 불안과 공포를 쫓아내자 하나님께서 다가오셔서 욥을 다시 복구 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경 요한일서 4장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하셨습니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세상에 죄만 지어야 형벌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두려워하면 두려워하는 데 똑같은 형벌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망할 것을 두려워합니까? 그렇다면 망하는 형벌이 다가옵니다. 늘 질병을 두려워하면 질병의 형벌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늘 나는 실패 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으면 실패의 형벌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두려움을 내어쫓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 디모데후서 1장 6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면 누가 준 것이겠습니까? 마귀가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갖다 준 것에 불과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서 두려움을 내어쫓아야 됩니다. 어떻게 해야 두려움을 내어쫓을 수 있는 것입니까?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는다고 말하셨으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와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을 때 성경은 말하기를 "성령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은바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기도 할 때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워 주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온전한 사랑의 마음을 점령하게되면 그 마음속에서 모든 두려움은 다 사라지고 마음의 능력과 건실한 마음으로 꽉 들어차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과 능력과 건실한 마음이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에게 주시는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요, 마귀는 나쁜 마귀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옴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두려움을 내어쫓고 그리고 우리의 생활의 활기찬 능력과 그리고 건전한 마음을 가지고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의 생애를 파괴하는 감정은 탐욕인 것입니다. 인간에게 정상적인 욕망은 큰 축복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욕망을 잃어버리면 그로부터 발전을 그칩니다. 학생이 공부를 잘하겠다는 욕망을 버리면 그 학생은 이미 버림받은 학생인 것입니다. 실업가가 열심히 사업을 성장 발전시키겠다는 욕망이 없다면 그 실업가로서는 그로서 끝장난 것입니다. 목사가 여러분 교회를 끊임없이 성장시키고 발전시키겠다는 그 의욕이 없으면 그때로부터 목사는 기도하지 않고 게을러질 수 있습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저를 참소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교회를 이십만, 삼십만, 사십만, 오십만으로 키우려는 것은 조 목사 스스로의 교만을 조장하는 것이고 자기 자랑을 하려는 것이다. 사람이 교인을 이십만, 삼십만, 사십만, 오십만으로 키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의 목숨을 하나의 밀 알로 던져놓자 아니하고는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만일 주의 종이 교회를 성장시키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수건에 싸서 밑에 넣고 편안한 생활을 하겠다고 하자말자 욕망을 잃어버린 그 사람은 이미 하나님을 떠나고 퇴폐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야말로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이 이상 더 교회를 성장시키겠다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인생을 편안하게 살겠다고 생각하면 함 없이 편안하게 살수가 있습니다. 아무도 그렇다고 해서 손가락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 달란트를 주시면 적게 준 자는 적게 구하고 많이 준 자는 많이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한도 내에서 전력으로 좋은 욕망을 가지고 전진해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쁜 욕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탐욕입니다. 탐욕은 자기의 분수를 넘는 욕심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대게 탐욕은 탐욕의 포로가 되면 그 사람은 분별없이 행동하고 패망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욕의 감정, 자기 분수를 넘어서 뛰어넘으려는 감정,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나누어주신 믿음을 따라 생활하지 아니하고 자가 분량을 초월해서 생활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미국의 템플 대학을 창설한 코넬박사는 이러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떠한 한 농부의 가족이 저 이란 북부에서 아주 농사를 짓고 추수를 해서 배불리 처자를 먹이고 행복하게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스님 한 사람이 그 집을 방문해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는 중에 "이 사람아! 이렇게 농사짓고 배불리 밥만 먹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는 다이아몬드라는 것이 있다. 이 다이아몬드는 산 사이로 물이 흐르고 백사장이 있는 그런 곳에 가면 캐낼 수 있는데 이 다이아몬드를 캐내면 당신의 자녀들을 일류 대학에 공부시키고, 그리고 제 왕까지 만들 수가 있다. 그러므로 다이아몬드를 캐라." 농부는 말했습니다. "스님, 나는 농사짓고 이렇게 처자를 배불리 먹이고 편안하게 잘사니 그러한 이 외의 욕망을 나는 같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스님을 돌려보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그만 그 농부는 그 마음속에 설레어지고 행복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두더지같이 땅만 파고 배만 부르면 되겠는가? 그 스님이 말한 것처럼 다이아몬드를 발견해서 큰 부자가 안 되어야 하겠는가? 그래서 이 농부는 그만 농사짓겠다는 자기의 분수를 뛰어넘어서 배운 것이 농사인데 그 때어 놓고 다이아몬드를 찾겠다고 서 생각하고서 그래서 자기에 있는 농토를 다 팔고, 그리고 집도 팔고, 자기의 가족들을 친구에게 부탁을 하고 돈을 꾸려서 그는 다이아몬드를 찾으러 나갔었습니다. 영국을 다 돌고 구라파를 다 돌았었습니다. 나중에 다 노비가 다 떨어지고 지치고 피곤하고 이제는 실패한 빈 손 들고서 초췌한 모습으로 고향 땅에 돌아갈 수가 없어서 이태리의 나포리항까지 왔었습니다. 나포리항에서 배는 고프고 지치고 몸은 병들고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처지여서 절망에 처해서 불어오는 바람 따라 넘쳐오는 파도에 몸을 던져버리고 자살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땅을 산 사람이 이제 밖에 놀러 나갔었습니다. 그 농부가 있던 집은 바로 높은 산 깊은 계곡의 물이 흐르는 해변가 강가 모래사장 옆에 있었습니다. 그 논은 사고 집을 산 사람이 나가서 발로 이러 이렇게 해보니깐 검은 돌덩이가 반짝반짝하는 것이 나오거든 무언지 모르게 캐서 그것을 집에 정렬을 해 놓았습니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나고 그 스님이 또다시 그 집에 찾아왔다고 보니깐 다이아몬드 원 광석이 번쩍번쩍하는 것을 많이 갔다 놓았거든 그래서 아 이 사람이 다이아몬드 캐러 갔다가 왔냐고 하니깐 아니올시다. 소문에 의하면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거 어디서 캤느냐? 이 앞뜰 저기에 나가서 모래밭에 발길로 차보니깐 뭐가 번쩍번쩍한 것이 나오기에 그래서 장식하려고 갔다 놓았었습니다. 그 스님이 하는 말이 이 사람아! 이것이 장식품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다. 그래서 그 다이아몬드가 바로 소련의 황제의 왕관에까지 박은 다이아몬드라고 합니다. 세계에서 아프리카 다음으로 큰 다이아몬드 광이 발견됐는데 바로 그 광인데 그 다이아몬드 광산이 어디에 있었냐? 다이아몬드를 캐기 위해서 온 유럽을 다 누비다가 죽어버린 그 농부의 집터가 바로 다이아몬드 광산이었었습니다. 그는 온 구라파를 다 헤매지 말고 자기의 집터에서 부지런히 파헤쳤으면 그 자리에서 다이아몬드가 나왔을 것인데 자기의 집터를 버리고 자기 있는 그 자리가 다이아몬드 광산인 것을 모르고 멀리 다이아몬드를 파다가 인생을 마쳤다는 그러한 코넬박사의 이야기를 읽어보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다이아몬드 광산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과 내가 현재 맡고 있는 그 자리에 충성을 다하여서 그 자리에서 가장 착실하게 정직하고 성실하고 근면하게 인생을 살아가서 거기에서 창조적인 삶을 살 때 그곳이 바로 우리의 다이아몬드 광산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괜히 남의 밥에 콩이 굵어 보이기 때문에 끝없이 유랑하면서 어떤 좋은 기회를 가지고도 방황할 때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신문에 보니깐 한국사람들은 부모의 직업을 자손대로 연결해서연결해서 대를 누려가면서 일하는 법이 없고 언제나 철새처럼 떠돌아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직업에 안정이 없고 깊은 기술을 닦은 그러한 조예 깊은 이러한 직장이나 직업을 갖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은 자기의 앉은 그 자리가 다이아몬드 광산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그 직장이 하나님의 천직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곳에서 정직 성실 근면을 다하여 일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끝없이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다 놓쳐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쳐서 빼앗는 용사보다 낫다고 한 옛말이 있습니다. 미움과 분노 불안과 공포 그리고 마음에서 불길처럼 일어나는 탐욕 이러한 것을 다 내어쫓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지고 성실과 근면과 충성과 인내를 가지고서 인생을 살아가면 이 사람은 어느 곳을 갔다놓아도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되는 삶을 살게되는 것입니다. - 기 도 - 사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고 내 자신을 파괴하고, 내 이웃과 사회를 파괴하는 미움과 분노 불안과 공포 탐욕을 모두 다 쫓아내게 도와 주시옵소서. 회개로서 모아 쫓아내고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사랑으로 쫓아내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여 자기의 현재 맡은 일에 전력을 기울여 정직하게 성실 충성되게, 그리고 열심히 일하므로 말미암아 신실한 삶의 다이아몬드를 찾아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제 2부 예배 성도들을 축복하여 주셔서 삶을 실패케 하는 부정적인 폭탄의 내관을 오늘 다 뽑아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