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1982년 3월 28일
제목 : 우리가 알거니와
성구 : 롬 8 : 28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가 알거니와 이와 같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옛 철인은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오늘날 사회는 지식과 정보의 사회입니다. 사람들은 지식을 개발하고 이것을 신속히 전달하는 것을 온 세계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신속히 지식을 전달받고 또 새로운 지식을 개발하고 이것을 산업화 사회에 적용함으로 말미암아 생존 경쟁에 이기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현재 전 세계는 지식에 뒤떨어지면 후진국이 됩니다. 지식에 선진국이 되면 생존경쟁에서 이겨나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에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더 많은 성경 적인 지식을 깨닫고 하나님의 계시인 지식이 여러분의 마음 속을 밝혀 줄 때 여러분은 더 큰 믿음을 얻게되고 더 깊은 하나님의 은총 속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축복과 자유를 얻어서 누리게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가운데 보면 바울이 "우리가 알거니와" 그와 같이 말했었습니다. 바울이 여기 말하는 "우리가 알거니와"라는 것은 우리가 추측하거니와가 아닙니다. 우리가 또 "희미하게 이해하거니와" 라는 말도 아닙니다. 여기에 바울이 우리가 안다는 것은 우리가 실제로 확실하게 틀림없이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알 수 있는 지식을 바울은 말한 것입니다. 여기 바울 선생이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말한 것처럼 과연 여러분과 나는 오는 이 세상에 살면서 흔들리지 않고 깨어지지 아니하고 변화 받을 수 없는 그러한 지식을 알고 있나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지식과 학문을 많이 배우고 연구 했지만은 세상 지식과 학문은 한 세대가 지나가면 또 변화되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사라질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에서 영원까지 변치 아니하고 흔들리지 아니하고 깨어질 수 없고 사라지지 아니하는 이와 같은 지식을 여러분 가지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 선생은 말하기를 "우리가 알거니와" 이와 같이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오늘 그러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아는 사람들입니까? 세상 사람들과 달리 무엇이 우리에게 영원한 지식으로 알려져 있는가? 이 사실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담대하게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인간 피조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아메바에서 점점 진화해 가지고서 사람까지 되어 왔으니깐 인간은 하나의 물질에 불과하고 인간이 죽고 나면 정신도 그림자처럼 사라져버린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지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거나와" 우리는 인간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 지 인간 피조의 비밀을 압니다.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속 사람은 육신의 장막 집을 쓰고 있지만은 죽지 아니한 영원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도록 만들어진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겉 사람은 후패하나 이 속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날로 새로워지고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육신의 장막 집을 떠나게 되면 믿는 자는 영원한 영광으로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수치와 죽음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존 귀를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인간이라도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으며 영원한 존재입니다. 온 우주를 주고도 바꿀 구 없을 만큼 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온 우주는 낡은 옷을 벗어버리듯이 벗어버릴 수 있으나 인간의 생명 하나하나는 천국에서 거하든지 지옥에서 거하든지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피조의 비밀을 압니다. 인간은 아메바에서 생겨서 원숭이를 통해서 또 인간으로서 진화해 왔다고 말하는 다윈의 진화론 같은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고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확실한 지식은 사람은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죄악의 이유를 압니다. 왜 세상에 이렇게 죄가 들어와서 사람은 서로 미워하고 분노하고 살상하고 음란하고 방탕하고 이 세상이 이렇게 수렁텅이 속에 빠져들어 가느냐? 그 이유를 압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죄악을 만든 것이 아니고 사람이 원래 지었을 때부터 죄에 떨어지도록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사람을 에덴에 두었었으나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에 반역해서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마귀의 뀜에 빠져 따먹고 반역했기 때문에 반역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버림을 당하고 마귀와 짝지어서 에덴에서 쫓겨난 이유로 그때부터 오늘날 죄가 시작했다는 것을 압니다. 죄라는 것은 빗나갔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죽으심으로 살고 하나님을 섬기고 살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면서 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살아야될 것인데 하나님 중심으로 살 것이 그만 빗나가서 자기 중심으로 살고 정욕 중심으로 빗나가고 마귀 중심으로 빗나가서 세상 적이요, 죄악 적이요, 악마적으로 빗나가버렸기 때문에 그때부터 출발해서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올바름이 살아져 버리고 그래서 마귀로 말미암아 병과 도덕과 마음과 생활이 도둑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당하고 부패하고 이 결과로서 오늘날 죄악이 세상에 관여한 것을 압니다. 이것은 아무리 사람들에게 교육을 해도 죄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도덕적 훈련을 시켜도 이 죄를 정복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사회의 제도를 바꾸고 인간의 생활을 향상을 시켜도 죄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왜 죄는 그와 같은 사회 환경 적으로 온 것 아니라 죄는 영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반역한 것이기 때문에 반역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 전엔 원수 마귀를 알고 그를 대적해서 내어쫓기 전에는 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원인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한 종교가로서 성명가로서 철학가로서 인생의 교사로서 와서 원수들에게 잡혀서 십자가에서 처참한 종말을 맺었다고 말하고 있지만은 우리들은 십자가의 의미를 압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허물과 저주와 절망과 죽음에 내어 던져버린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죄 없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태어나게 하시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 계시면서 사람에게 죄에 대한 용서와 질병에 대한 치료와 마귀로부터의 해방과 저주에서의 자유와 죽음에서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선포하시고 그리고 여러분의 죄 나의 죄 우리의 불의와 추악을 친히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인류 역사의 처음 아담과 하와 때의 죄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인생의 죄까지를 다 친히 책임지고 이 죄를 십자가에서 청산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이란 단순한 희생적인 죽음이 아님 것입니다. 대속의 죽음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그 흘린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일생의 죄를 한번도 안 지은 것처럼 청산해 버리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조금도 부끄러움 없이 설 자격을 부여하여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손과 손을 마주 잡고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문으로서 열려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지식을 안다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 압니다. 역사의 내적 역학 관계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 역사는 어떠한 것이냐? 역사란 영원히 직선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냐? 역사란 것은 반복하는 것이냐? 사람들은 여러 가지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서를 통하여 역사를 압니다. 인간 역사는 하나님의구속사인 것입니다. 죄악으로 타락해서 마귀는 어찌하든지 인류를 끌어다가 하나님 반역하게 하고 하나님 없는 세계로 이끌어 들어가고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고 서로 싸우고 파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악마의 세력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인간의 마음을 회개시키고 그를 구속시켜서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 중심으로 이끌려는 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역사의 배후에는 두 가지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인류를 때내고 하나님께 반역하게 하고 그리고 인류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악마적인 세력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성령께서 인류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회개시키고 변화시키고 그리고 주의---------관계 속에서 인간의 역사는 진행돼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며 이 세상에 어떻게 선이 승리하는가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의 세계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 세상에서 이대로 영원히 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제 일본의 시루코(?) 한 사람이 오사카에서 제게 와서 아침 식사를 같이 하면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내가 듣기에는 이 세계가 종말이 다 돼 왔다고 생각하는데 이 세상 종말이 이제 곧 눈앞에 다가왔다니 깐 이 이상 장사할 필요 없죠. 사업하지 말고 이제부터 다 정리해서 주님오실 날을 기다리는 게 좋지 않습니까? 조목사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런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 미래의 세계가 종말에 가까워 왔다는 것은 사실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이 세상이 환경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또 신앙적으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가 사는 세계가 종말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주께서 호령과 천사 등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쫓아 강림하실 때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우리들도 변화되어 공중으로 끌어 올려서 주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이러므로 주님의 공중재림이 가까워졌습니다. 주께서 공중에 재림하셔서 주께서 나팔부실 때 구원받은 사람은 영의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따라갈 것이요,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다 들려간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모르고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와 같이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는 역사가 일어나고 난 다음에 이 땅에 7년 환난이 있어서 하나님의 심판이 7년 동안에 하나님을 반역한 세계에 처참하게 나타나시고 난 다음에 그 다음 휴거된 백성들과 함께 7년 후에 이 땅에 강림하여서 이 땅에 천년 동안 우리가 함께 왕 노릇하며 천년 왕국이 이루어지고 천년 왕국이후로 무론 대소하고 모든 하나님을 반역하여 죽은 사람들이 다 다시 살아 일어나서 하나님의 백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버리고 그리고 하늘과 땅은 새롭게 개조되고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영원 무궁세가 되어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담대하게 바울 선생과 같이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지식은 이 세상 학교에서 배울 수가 없습니다. 어떤 대학교에서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지식은 실험실에서 혹은 연구실에서 연구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지식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지식인 것입니다. 이 지식은 변하지 않습니다.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고 사람이변해도 변하지 않고 나라가 흥망 성쇠에 있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 지식은 영원한 지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도 바울 선생과 함께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어두운 가운데 빛과 같아서 이 세상을 살면서 방황하지 아니하고 어두운 가운데 허둥지둥하지 아니하고 우리는 담대한 인생을 바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또 우리가 아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알까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서 만이 우리가 회개하고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만이 깊은 하나님의 진리의 세계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서 만이 우리가 성공적인 기도를 하고 믿고 전도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 생활을 헛트로 한 다음에 신앙 생활엔 인간의 형식이나 제도를 통해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으로 된 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성령의 무릎에서 회개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손길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품에 안겨서 우리는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시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 속에 보내셔서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시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 없는 사람, 성령 없는 교회는 형식과 의식은 있어도 오늘날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비 없는 구름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물 없는 우물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열매 없는 나무가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성령 없는 교회와 성령 없는 교인들은 형식만 가졌지 내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기독교의 신앙이란 성령으로 말미암아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학교에서 가르쳐도 머리 속의 지식으로 예수를 주로 대언(?)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종교 의식을 다 집행해도 의식을 통해서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이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오셔서 여러분과 나의 영혼 속에 계시를 부어주실 때 성경의 계시적 지식을 통해서 비로소 그리스도가 우리 구주인 것을 알게 되고 십자가의 진리를 알게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된 것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 오늘날 성령 운동은 마지막 운동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령 운동을 통해서 죽은 영혼들이 깨어나서 예수를 믿게 하고 믿음 사람들은 성령을 통하여 깊은 신앙의 지식 속에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 이 성경책을 들면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는 골치 아픈 잔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무리 읽어 봐도 하나도 영광성도 없고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요번에 오키나와에 가서 교역자 세미나를 하는데 아주 지식이 많은 일본 교역자였습니다. 이분은 아주 똑똑하고 냉철하고 학문이 많은 분인데 그분이 일본의 자유주의 신학교에서 수련을 받으러 들어갔다가 아예 예수를 안 믿기로 자기가 마음에 작정을 했답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신학에는 성령이 없습니다. 인간의 지식 중심으로 고등 비평으로서 인간의 학문과 역사와 고고학과 지식으로 성경을 판단하고 자기가 하는 말이 거기서 강의를 듣다보니깐 성경은 전부 거짓말이고,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하나도 믿을 수 있는 책이 아니고 자유주의 신학에서 신학을 연구하다가 나날이 신앙이 없어지고 나날이 신앙이 없어서 나중에는 신앙을 포기할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이제는 예수를 안 믿기로 작정을 하고 목회생활을 그만두기로 작정을 했는데 눈이 어두워져서 점점 시력이 상실되어서 안경을 끼고도 눈이 보이지가 않아 인제 낭패가 났습니다. 병원에 가니깐 병원에서 의사들이 당신은 의학적으로는 이 눈을 고칠 수가 없다. 신경이 죽어 간다. 신경이 죽어 가는 눈은 고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하나님께로 나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 만일 살아 계시거들랑 내 육신의 눈을 떠주시고 내 영의 눈을 떠주셔서 성경이 진짜이신 것을 보여 주시옵소서. 부르짖었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 때로부터 눈이 도로 밝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육신의 눈이 밝아지자 비로소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알게되고 그리고 회개하고 깨닫고 주님께 부르짖고 예수를 모시고 성령을 모시자 그만 성경이 전부 살아나서 그가 인간 역사학적으로 고고학적으로 인간 과학적으로 성경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던 그 모든 지식은 다 내어 던져버리고 이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계시로 주는 이 지식을 받아들여서 목사가 되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주께 충성하고 있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여러분 똑같은 사람인데 인간의 감각적인 지식에 지나지 않을 때 성경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오직 회개하고 성령에 의지할 때 성령의 계시적인 지식으로 우리에게 깨닫게 할 때 이 하나님 말씀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모든 것을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도 듣지도 못하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했다함과 같다고 성경은 말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곳이라도 통과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령 없이는 예수를 알 수도 없고 성경을 알 수도 없고 성령 없이는 이 진리의 말씀이 마음속에 양식이 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의 생활 속에 성령을 인정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환영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모셔들이면 아멘 하십시다. 의지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성령으로 충만한 생활을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성령 없이는 그리스도의 신앙생활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또 우리가 아는 것이 있습니다. 바울 선생이 말씀하기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절대 긍정적인 삶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면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좋지 않은 것은 합력 하여 좋게 될 것이니깐 우리가 어떤 환경이든지 낙심하지 아니하고 뒤로 물러나지 아니하며 부정적인 생각하지 아니하고 불평과 원망, 탄식하지 아니하고 밝고 맑고 환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면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삶의 태도를 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으니깐 현재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우리가 알고 있을 때 무엇을 아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하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미 선하게 될 것을 알고 있는 우리가 현재 잠시 잠깐 어렵고 고통스럽고 괴롭다고 해서 울고불고 탄식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하게 될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의 문제가 선하게 될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의 문제가 선하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업의 문제가 선하게 될 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역사가 처참한 오늘날 전쟁과 전쟁소문이 나고 전체 지진과 기근이 있지마는 그러나 종국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귀결될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 긍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결국은 선을 이룬다는 이러한 삶은 어디에서 출발할까요? 성경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몇 가지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마음에 24시간 늘 머물러 계셔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머리 속에 24시간 늘 갖고 있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것 아닙니다. 잠시 서로 만났다가 깜빡 잊어버렸다가 나중에 만나면 "올아, 잊었다가 만났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24시간 잊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함입니다. 하나님께서 24시간 나의 마음속에 늘 와서 거하시고 내 생각의 중심이 되시고 내 생각의 전체를 점령하고 계실 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받기만은 해서 주시옵소서. 달라고 하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 섬깁니다. 시간 내어서 섬기고 몸 드려서 섬기고 나의 귀한 물질 드려서 섬기고 마음을 다해서 섬겨서 사랑하는 상대를 기쁘게 해주는 것 이것이 있어야 사랑인 것입니다. 나는 오키나와에서 어떤 노부부를 만났는데 아주 굉장히 오키나와에서 부자입니다. 그는 아주 재산이 많았는데 남편은 팔십 여세가 되고 부인도 칠십 여세가 됐는데 그 가족을 예수께로 인도하고 남편도 예수 믿기로 작정을 하고 했는데 그 부인이 나보고 이런 말을 해요. 목사님 우리 영감이 네게 돈을 안 줘요. 우리 영감이 네게 돈 좀 많이 주게 기도 좀 해주십시오. 돈은 은행에 다 넣어 놓고 나에게 안 주는데 내가 젊었을 때는 나를 귀하게 여겨서 나를 안아주고 두들겨주고 이끌어주고 그렇게 좋아하더니 이제 늙어서 이렇게 쭈굴쭈굴 해지니 이젠 나를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그저 나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것처럼 생각하고 그런 다음 나에게 돈을 안 줘요. 돈을 안 주니깐 내가 살수가 없어요. 칠십 먹은 할머니가 팔십 먹은 영감이 돈 안 준다고 불평을 해요. 그래서 내가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할아버지 마음이 감동되어서 할머니에게 돈을 좀 주게 하여 주옵소서. 그 할머니 말이 젊었을 때 자기를 사랑할 때는 온갖 것 다 주더니 이젠 늙어 쭈굴쭈굴해서 사랑이 사라지니깐 내게 좋은 것 안 섬겨준다. 사랑이 사라지면 섬기는 것도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섬기지 사랑이 없는데 섬겨지나요. 그리고 또 사랑하게되면 자랑하게됩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게되면 하나님을 자랑하게됩니다. 그저 앉으나 서나 우리 하나님께 대해서 전도하게되고 자랑하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게 되면 그 다음 자랑이 푹 식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게되면 어떻게 하든지 사랑하는 대상을 기쁘시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앉으나 서나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대상을 기쁘시게 해줄꼬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마음에 늘 모시고 섬기며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힘을 쓰는 이러한 삶이 있을 때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것은 인생을 살 때 내 마음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소명을 가지고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죄짓고 살 때는 내 마음대로 살았지마는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해서 부르셨기 때문에 이제는 여러분은 부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께 부름 받아 나선 사람이기 때문에 이젠 내 마음대로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인생을 살 때 뜻대로 부르심을 받아 산다. 소명을 받아 사는 것입니다. 목사로서 부름을 받았냐? 목사로서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집사로서 부름을 받았냐? 섬기는 일로 살아야되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느냐? 가르치는 자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비를 베푸는 자로 부름을 받았느냐? 자비를 베푸는 자로 살아야되는 것입니다. 구제하는 자로 부름을 받았느냐? 구제함을 받은 대로 살아야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모두 다 예수 믿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소명이 있습니다. 자기의 소명을 알아내어서 나는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 섬기며 산다. 사업으로 소명을 불렀으면 사업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살고, 정치가로 소명 받았으면 정치가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고, 군인으로 소명 받았으면 군인으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고, 교사로서 소명을 받았으면 교사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고, 목사로서 소명 받았으면 목사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고, 여러분의 인생에 이제는 모두 다 소명을 가지고 사는 여러분이 되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일생을 이것을 통해서 영광 돌리라고 부르셨다. 내가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을 가지고서 인생을 메시지를 가지고서 뛰고 살아갈 때 비로소 나의 삶의 가치가 있습니다. 자기의 삶에 의미가 없고 자기의 삶에 가치가 없는 사람은 곤 고한 인생을 살면서 절망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어떻게 어렵고 힘들고 괴로운 삶이라도 삶의 의미가 있고 삶의 가치가 있으면 위대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아 소명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게 될 때 모는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알고 확신한대 거하라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알고 확신하지 거하지 못할 때 두려워하며 떨고 시험에 빠집니다. 그러나 내가 바울 선생같이 우리가 알거니와 확신을 가지고 살게 될 때 위대한 승리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 기 도 -
살아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주님께서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계시의 지식을 우리에게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이 계시 지식은 학교에서 배운 것도 아니요, 실험실에서 얻은 것도 아니고, 과학자의 증거로서 얻은 것도 아니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 보좌로부터 우리에게 성경을 통하여 계시해주신 말씀이니 감사하옵나이다. 이러므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확실하게 우리는 알거니와 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가 있사오니 감사하옵나이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압니다. 인간이 왜 지어진지 압니다. 우리는 죄가 왜 있는지 아니다. 십자가가 무엇인지 압니다. 역사의 내적 역적 관계를 압니다. 미래의 세계의 모든 일어날일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절대로 신앙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소명 받아 그 소명 안에서 살게 될 때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이런 지식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이며 적극적이고 승리적이며 밝고 맑고 환한 기대에 살게됨을 감사하옵나이다. 우리 아버지여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성도들 모두 다 많은 사람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바울 선생처럼 우리가 알거니와 라고 우리가 담대히 그 지식을 갖고서 어두운 가운데 빛으로 걸어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