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1982년 10월 31일
제목 : 얕은 삶과 깊은 삶
성구 : 눅 5 : 4 - 6


저는 여러분과 함께 "얕은 삶과 깊은 삶"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베드로는 갈릴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는 고기를 잡는 것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배운 것은 모두 다 배를 타고 그물을 던지고 고기를 잡는 것을 배웠었습니다. 그가 장성하매 그도 고기잡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 생애를 아무 불편 없이 배를 저어 나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아 그로써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어부생활을 해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도 베드로는 저녁 늦게 그물을 어깨에 걸머지고 그는 집을 나섰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늘은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득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배에 그물을 싣고 그리고 갈릴리 호수 얕은 곳으로 배를 저어갔습니다. 왜 깊은 곳으로 나가지 않았냐 하면 갈릴리 바다는 육지보다 600척이나 낮습니다. 갑자기 헬몬산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30분 이내에 풍랑이 대작해져서 배들이 미처 해안에 나오기 전에 파선돼버리고 맙니다. 더구나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치다가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틀림없이 파선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해서 깊은 데에 안 들어갑니다. 그 뿐 아니라 그 당시에 그물이란 것은 바다에 던져도 깊은 바다 밑에 있는 고기까지 잡을 수 있을 만큼 좋지 못했기 때문에 그물이 나빠서 깊은 물에 던져도 소용이 없습니다. 또 그뿐 아니라 저녁이 되면 대개 생선들이 이 얕은 곳에 나와서 놀기 때문에 얕은 곳에 나아가서 그는 그물을 던졌습니다. 던져서 당기고 던져서 당겨서 한밤중이 되어도 한 마리도 걸리지 않습니다. 새벽녘에는 그래도 잡히리라 생각하고 그래도 인내를 가지고 계속 그물을 던지고 던졌으니 손만 트고 물만 덮어쓰고 한기가 들고 배만 고팠지 한 마리도 새벽같이 잡은 것이 없습니다. 그는 빈배뿐이었습니다. 빈배를 저어서 해안가로 나오니까 그의 배도 더 고파지는 것 같고 그 인생이 이렇게도 허탈할 수 있느냐는 그 인생의 깊은 허기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는 해변가에 배를 대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물을 씻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수많은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보니 군중이 떼를 지어오는데 그 앞에 예수님께서 쫓기듯이 오시더니 성큼 베드로의 빈배 위에 올라앉으셨습니다. "베드로야, 배를 좀 육지에서 떠나게 해다오." 그래서 베드로가 육지에서 배를 좀 떠나게 하니까 거기에 예수님이 앉으셔서 군중을 향하여 말씀을 증거 하셨습니다. 베드로도 그만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난 다음 거기에 취해있었습니다. 한참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야" 부르시는 음성에 소스라쳐 놀라서 정신 차렸습니다. 예수님을 쳐다보니까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아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 말을 들으니까 기가 막힙니다. 예수님은 종교가요 선생이시요 갈리리 바다의 고기잡이는 모르시는 어른이십니다. 나는 이 곳에서 살았고 뼈가 굵었고 갈리리 바다를 내 손바닥처럼 알고 있는데 내가 못 잡은 고기를 선생님이 어떻게 잡을까? 그러나 예수님의 그 태도와 모습과 말씀에 얼마나 위엄과 권위가 있었던지 거기에 눌려서 "예, 주님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잡은 것이 없으되 주께서 하신 말씀을 좇아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배를 저어서 깊은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깊은 곳에서 그물을 던져서 당기니까 마치 바위가 걸려오는 것처럼 무겁습니다. 힘차게, 힘차게 당겨 보니까 그 배속에 고기가 가득했습니다. 열심히 주워담아서 자기 배에도 가득해졌는데 그것만도 채울 수가 없어 동료의 배를 불러서 동료의 배에도 가득하게 채워졌습니다. 이 베드로의 체험은 우리에게 중대한 인생 문제를 시사해 줍니다.

첫째로,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얕은 물가에서 그물을 던지고 삽니다.
얕은 물가에서 그물을 던져서 잡아당기고 또 그물을 던져서 잡아당깁니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가서 그 결과는 텅빈 마음과 마지막 저 죽음의 피안에 인생 배를 댈 때는 그 배속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배밖에 남은 것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얕은 물가에서 살기를 좋아하고 살고 있습니다. 정욕을 따라 사는 삶, 모두 다 얕은 물에 그물을 던지는 삶인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사는 사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만 생각하고 그리고 난 다음 식욕, 성욕을 위해서 만족 때문에 정신없이 뛰어가는 그런 삶, 안목의 정욕으로 세속의 화려한 것만 바라보고 더 화려한 옷을 입고 더 화려한 차를 운전하고 더 화려한 집을 짓고 세상의 더 화려한 것으로써 살아야 되겠다 허영에 들떠서 정신없이 세속의 풍속을 따라 사는 사람, 이성의 자랑을 얻기 위해서 명예나 지위나 권력 때문에 자기의 양심도 저버리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짓밟아버리더라도 어찌하든지 명예나 지위나 권세를 얻어야 되겠다고 거기에만 취해서 사는 삶, 이러한 삶들은 모두 다 허탈하기 짝이 없는 얕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삶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현세 중심의 생활, 무신론적인 생활로써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아니하고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지도 아니하는 삶 그리고 완전히 자기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 남이야 살든 죽든 상관할 것 없이 자기의 중심만 살고 그리고 이 지상주의로만 사는 사람들은 얕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지상에 살면서 세상에서 복만 받으면 되었지 더 이상은 생각하지 않는 삶인 것입니다. 감각주의에 서서 내가 쾌락만 얻고 살면 되었지 그 이외에 내일에 삶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삶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들은 모두다 한결같이 얕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삶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얕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삶은 아무리 던져서 그물을 잡아 당겨보아도 그 마음속에는 언제나 텅빈 삶인 것입니다. 유명한 인생철학자 나폴레옹 힐에게 80세가 되는 유명한 부자 한사람이 왔습니다. 그는 그 재산 전체가 2천 5백억 달러 가까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분이 나폴레옹 힐에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속에 참된 만족과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까?" 나폴레옹 힐이 쳐다보고 웃었습니다. "여보십시요. 2천 5백억 달러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분이 나에게 마음의 평화와 만족을 얻기를 원합니까?" 그는 말하기를 "나는 재산은 2천 5백억 달러를 모았으나 2천 5백억 달러가 내게 매일같이 염려와 근심만 주었지 내 마음속에 만족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얕은 곳에 물을 따라 다니면서 그물을 던져서 부귀 영화 공명을 아무리 취해본들 그 가슴속에 언제나 텅빈 허무와 무의미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 나아가서 종국적인 인생은 빈배를 가지고 해안에 대게 됩니다. 태어날 때 빈손 들고 태어난 인생이 이 세상에 아무리 긁어모으고 아무리 감투를 썼다고 할지라도 죽음의 피안에 배를 갖다 댈 때는 하나도 그 배에 지고 가고 이고 가고 싣고 가지 못합니다. 그는 빈손 들고 하나님 앞에 서야 되고 거기에는 심판밖에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제국을 세운 저 시저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는 하늘에 나는 새들조차 떨어질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천하가 그 호령에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 시저도 얕은 곳에 인생의 그물을 던지고 죽고 난 다음에 남은 것은 뭡니까? 그의 무덤조차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습니다. 그는 영원한 지옥에 떨어진 것밖에 없습니다. 천하를 정복하려는 나폴레옹도 그리고 세계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히틀러도 얕은 곳에 그물을 던지고 한 세대에 소용돌이 쳤지마는 그 세대가 지나고 난 다음에 오늘 남은 것은 오직 악령 높은 그들의 생활밖에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절박하게 이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부자는 무신론자였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아니하고 이 삶 저 건너편의 삶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운 베옷을 입었으니 부자요 자색으로써 입었으니 권세 있는 자요 그래서 그는 밤낮으로 쾌락 중심으로 연락하면서 살았습니다. 그와 같은 삶이 영원히 계속될 줄 그는 기대했었습니다만 성경은 말씀하기를 세월이 흘러서 이 부자가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배가 죽음의 피안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가는 베옷도 없고 자색 옷도 없었습니다. 연락도 없고 그가 인생의 얕은 물가에서 그물을 던지며 산 것은 다 일장춘몽으로 변화돼버리고 만 것입니다.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물거품 같은 삶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는 빈손 들고 하나님 앞에 심판에 서고 버림을 받아서 음부에 내려가 불꽃 가운데 고민하고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리는 얕은 물가에서 그물을 던지며 허무맹랑하게 인생을 살다가 빈 가슴을 그대로 안고 빈배를 피안에 대고 하나님께 버림받는 멸망의 처지에 들어가야 할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제가 말씀하고 싶은 것은 베드로와 같이 얕은 물에 실패했으면 깊은 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싶은 말인 것입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인생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배가 텅 비어서 빈배가 되어 허기에 차 있을 때 그 빈배 속에 예수님이 성큼 들어오신 것입니다. 오늘날 빈배가 되지 아니하면 절대로 예수님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이나 탐욕으로 가득 채워진 뱃속에는 예수님께서 들어오실 자리가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빈배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먼저 구원을 받기 위해서 그 배가 비워져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빈배를 만들기 위해서 혹은 시험과 환난과 고통을 당하게 하는 것, 개인적인 시험, 가정적인 시험, 사업적인 시험, 생활에 환난이 다가와서 인생으로써 얕은 물가에서 그물을 던져 모은 것이 모두 다 없어지고 물거품 같이 사라지고 일장춘몽이 되어서 인생의 빈배를 안고서 땅을 치며 통곡할 때 그 빈배 속에 예수님이 들어오실 수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습니다. 빈곳이 없는 곳에 주님께서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배가 비워져서 나는 죄인이요 나는 죄밖에 지은 것이 없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허무맹랑한 인생을 살아간 허무한 인생을 살아왔다. 나는 결국 이렇게 죽어서 한줌의 흙으로밖에 돌아갈 수 없는 아무 자랑 할 것이 없는 비극적인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 빈배 속에 오늘날도 예수님께서 성큼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빈배가 되지 아니하고는 주님께서 찾아오지 않습니다. 빈배가 되면 어떻게 찾아오시나요? 옛날에는 육신으로 찾아오신 예수께서는 오늘날 빈배가 된 사람에게는 전도자를 통해서 찾아오는 것입니다. 예수의 복음 증거를 통해서 혹은 목사, 전도사, 장로, 권사, 집사, 조장, 구역장을 통해서 혹은 평신도를 통해서 성큼 여러분에게 그 배에 예수님을 올라타게 하도록 전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여러분이 그 발 앞에 엎드려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면 그 길로 얕은 물에서 돌아서서 깊은 곳으로 향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했는데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 우주에 가장 깊은 곳에 계신 분이신 것입니다. 깊은 인생을 사는 것은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구의 표면에서 나무와 티끌과 검불 같은 것을 가지고 사는 인생은 얕은 인생이지마는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께 잡힘바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깊은 곳에 들어가서 그물을 던지는 인생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되고 믿게 되고 모시게 되면 그 다음에 우리는 깊은 곳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안에 안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품에 안기신 사람들에게 문제의 해답을 주십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깊은 곳에서 고기를 던질 때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무슨 기적적인 해답을 줄 수 있습니까? 얕은 곳에서 그물을 던지는 사람에게는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문제의 해답도 되지 않습니다만 여러분께서 깊은 곳에 들어가서 그물을 던지기 시작하면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일생에 모든 문제의 해답을 예수님으로 제시해주시는 것입니다. 죄악의 문제에 대해서도 예수님이 해답을 줍니다. 우리는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아왔었습니다. 우리 죄가 머리털 보다 많습니다. 이 죄악의 문제를 인간의 선한 행위로 아무리 처리할래도 처리 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삶 자체가 죄악 가운데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하겠습니까? 그러나 깊은 곳에 들어가면 하나님께 이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예수님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로써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서 33년 동안 쉬이 없이 사시고 율법을 다 완성하시고 그러고 난 다음 여러분의 죄, 나의 죄, 우리의 일생의 죄를 짊어지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다 청산하기 위해서 의인으로써 죄인의 자리에 그리고 선한 인으로써 악한 이의 자리에 들어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찢어진 살과 흘리신 피의 대가를 통해서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용서하시고 탕감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 손든 그대로의 인생이 그 배에 예수님을 모시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의 일생의 죄를 탕감하시고 예수를 통해서 의롭다는 선물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죄를 한번도 짓지 않은 상태의 의로움, 그리고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는 자격의 의로움, 마귀에게 참소를 받지 않은 자격의 의로움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앞에 나아가면 또한 질병의 문제를 깊은 곳에서 해결해 줍니다. 이 세상에 많은 좋은 약들이 나오고 좋은 의사, 의술이 발달되어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만 그러나 수없이 많은 마음의 병을 누가 고칩니까? 미움의 병을 누가 고치며 공포의 병을 누가 고치며 좌절의 병을 누가 고치며 죄책의 병을 누가 고칩니까? 거기에 나아가서 오늘날 인생으로써 손 댈 수도 없는 수많은 성인병들과 병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고치지 못하고 인간은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배를 저어 깊은 곳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엎드려 기도할 때 그곳에서 치료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치료로써 제시해주시는 것입니다. "저가 너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고 너의 병을 짊어지고 갔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병 고침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깊은 곳에 들어가면 인간으로써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저는 요번 홍콩에서 성회를 열었는데 참 하나님께 감격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첫날은 한 2천명 들어가는 누트란 교회에서 성회를 열었는데 어찌나 사람이 많이 왔던지 인산인해가 되었습니다. 이튿날부터 스타디움에 나가서 성회를 열게 되었는데 한 보름째 홍콩에선 짐 비가 오고 있습니다. 비가와도 그냥 줄기차게 내리는데 홍콩 역사상 최대의 강우량으로 비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스타디움에 나가서 성회를 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막 장대같이 비가 오는데 사람들마다 끝장났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설마 했는데 아, 점심때가 넘어서 저녁이 되 오는데도 비는 그대로 쏟아집니다. 이제 스타디움 성회는 못하겠구나 그러나 저의 과거 경험에 언제나 하나님이 비를 중지해주셨기 때문에 엎드려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성회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해거름이 되니까 비가 더 거칠게 오더니만 성회 장소에 나가니까 달이 비취기 시작합니다. 아마 요번에 제가 가서 복음을 증거한 것보다도 비가 그침으로 홍콩에 있는 신자들이 더 은혜를 받았습니다. 굉장히들 감격하고 한 5천 여명이 첫날 모여서 6백 여명이 결신을 하고 이튿날에는 6천 여명이 모여서 일천 여명이 예수 믿겠다고 나왔었습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병자들 얼마나 병자들이 많이 낫는지 깊은 곳에 나아가서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치료의 영을 비와 같이 부어주셔서 심신이 병고침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미신과 공포의 문제의 해결로 제시해주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미신에 묶여서 살고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나는 홍콩 보니까 이제 끝장이 났습니다. 옛날에는 여러분 홍콩에 가면 비행장에 내리면 무언지 마음이 흥청, 흥청해집니다. 이것은 온 세계 사람들이 다 모여와서 흥청거리니까 그런데 이제는 홍콩에 가면 가을바람이 불어와서 낙엽이 떨어져 가는 것처럼 아주 한산합니다. 15년 후면 영국이 홍콩을 조차한 조차 권이 끝나서 중공이 홍콩을 접수하게 됩니다. 15년 후면 접수한다고 말하니까 사람들의 가슴속에 지금 벌서 공포가 들어와서 부동산 값이 30%나 떨어지고 돈 값이 10%나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사람들이 물건을 사지 아니하고 그리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다 주변 동남아 국가나 구라파로 돈을 빼돌리고 도망 갈 준비를 하고 그래서 홍콩은 지금 공포가 휩쓸어서 그들 경제가 수렁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10년이 지나면 중공이 민주주의 국가로도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리부터 겁을 집어먹고 완전히 좌절돼버린 것을 보았습니다. 인생을 파멸케 하는 것은 바깥에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마음속에 미신과 불안과 공포가 들어오면 여러분이 부정적이 되고 그리고 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깊은 곳 하나님께 나가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시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속에 깊이 서게 되면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공포가 다 물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는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속에 있고 하나님을 신뢰하면 미신과 공포는 떠나가고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삶의 패배의 문제도 예수 앞에서 하나님께 나가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의 성공의 바탕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저가 부유하신 자로써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하심으로 말미암아 너로 부요케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인간의 수단과 방법의 문제해결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깊은 곳에 들어갈 때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가난과 저주를 다 청산하고 정리해버린 위대한 삶의 바탕으로 제시해줌으로 예수 믿고 중심으로 살며 마음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활태도로 살면은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인간의 가장 처절한 절망인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답도 하나님은 예수를 제시해주신 것입니다. 아무리 죽음이 다가와도 예수께서 죽었다 부활하심으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 사망이 우리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바울은 사망을 보고 조롱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어디 있느냐"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는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깊은 곳에 들어가면 예수로 말미암아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고 죽음이란 한 과정에 불과하고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입문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돌아서서 예수님을 우리 배에 모시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삶이 영원하고도 무궁한 자원으로 삼고 살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또 볼 것은 베드로가 깊은 곳에 들어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아보니 어찌나 고기가 많이 에워 났는지라 자기 배만 채운 것이 아니라 동료까지 불러서 동료의 배에도 채워주었다.
여러분 우리가 깊은 곳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삶의 바탕으로 삼으면 우리에게 영생이 들어오지요. 무한한 삶이 의미가 가득 채워지지요. 축복 받은 삶이 채워지지요. 그리고 사랑의 삶이 채워집니다. 이래서 내가 영육간에 가득하게 채워지고 나니라. 그때부터 시작해서 남이 배에 채워주는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무엇인지 내게만 다오. 내게만 다오. 내게만 다오. 탕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중심으로만 살고 자기 이기주의적으로만 살고 내게만 다오. 내게만 다오. 하는 사람은 자기도 죽고 남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을 삶의 자원으로 삼고 이 깊은 곳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나면 이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 속에 들어와서 이 영생과 성령의 역사는 이제 하나님 중심으로 살게 하고 그리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면서 살게 해줌으로 말미암아 내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남의 배도 채워주려고 애 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기도해주게 되고 남에게 사랑의 손길을 베풀어서 도와주게 되고 남의 상처난 곳을 치료해주게 되고 그리고 내게 남는 것을 남에게 같이 나누게 되고 나의 행복과 나의 기쁨을 남에게 같이 나누어서 같이 가지기를 원하는 이와 같은 삶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득한 삶을 사는 인생의 생활 태도인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하여 안겨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심고 거두며 먼저 사람들에게 주고받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남에게 사랑을 주십시다. 믿음을 주십시다. 소망을 주십시다. 치료를 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살리려고 할 때 하나님의 축복은 내게로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먼저 채워주신 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배를 먼저 채워주신 것과 같습니다. 먼저 내가 채워짐을 받으면 그 다음에는 이제는 남을 채우기 위해서 남은 여생을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 은혜 받았으니 은혜를 나누어주기 위해서 여생을 살아야 됩니다. 구원받았으니 남을 구원하기 위해서 여생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았으니 남에게 축복을 나누어주기 위해서 여생을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이 자기만 알고 자기 중심으로 서면 또다시 깊은 곳에서 얕은 곳으로 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됩니다. 내가 축복 받은 데로 남에게 축복을 나누어주는 이와 같은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우리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축복은 끝이 없습니다. 영적인 축복도 끝이 없고 물질도 자꾸 나누어줄 때 내게 끊임없이 물질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다수가 얕은 곳에 그물을 던지고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직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만이 삶의 전부요 행복의 근원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 삶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참 삶은 그 깊은 곳에 있습니다. 얕은 곳에서 텅빈 가슴 가지고 몸부림치다가 내 배가 죽음의 피안에 도착할 때 아무 것도 없는 텅빈 손 가지고 하나님께 서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인생이 아닙니다. 참 삶은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곳에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모시고 영원하고 무궁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들어갈 때 이것이 영원하고도 무궁한 깊이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깊은 하나님의 자원 속에는 여러분 가뭄이 없습니다. 메마름이 없습니다. 경제공황도 없습니다. 죽음도 없습니다. 그 속에서는 예수를 통해서 무궁하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약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얕은 물가를 떠나 예수님을 모시고 깊은 하나님께 들어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얕은 물가에서 약삭빠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기가 인생의 승리자처럼 착각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 인간 중심으로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얕은 물가에서 약삭빠르게 그물을 던져 먼지와 티끌을 잔뜩 모았다고 생각하지마는 그것은 착각이요 얼마 있지 아니하여 피안에 배를 대고 보면 베드로처럼 텅빈 배밖에 없사옵니다. 그리고 영원한 파멸과 멸망이 입 벌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오늘 인생의 배에 예수님을 모셔서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얕은 곳이 아닌 깊은 곳에 들어가서 근원적인 삶의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 품에 안겨서 깊음 속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믿음으로 사랑으로 큰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여 주옵소서. 얕은 사람되지 말고 깊은 사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