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1월 14일
제목 ; 성도의 궁극적 승리
성구 ; 요한계시록 12장 11절

저는 성도의 궁극적인 승리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신앙생활로 들어오게 되면 곧장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립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세계의 문입니다. 신앙생활에 들어오기 전엔 우린 감각적인 세계속에서만 살고 영적인 세계는 무식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고 해서 벌써 예수를 믿자 말자 눈에 안보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 우리 아버지시여.... 하고 부르기 때문에 영적인 세계와 접촉을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전에 몰랐던 마귀의 영적인 존재도 알게 됩니다. 마귀와 그 종자들이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노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영이기 때문에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기도해야 될 것이고 마귀의 영은 우리를 파괴하는 영이기 때문에 저를 우리가 경계하고 대적해서 이길 수 있는 차비를 차려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악마는 먼저 우리의 생각을 뚫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 속에 미움을 일으키고 불안과 공포를 일으키며 낙심과 좌절감을 갖다 주며 죄책과 정죄감에서 자기 스스로를 포기하게 만듭니다. 이래서 내적인 우리 정신세계를 파괴합니다. 사람이란 그 내적 세계가 파괴되면 그 외적 세계는 두말할 것 없이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이미 불구가 되고 파괴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아무도 외적으로 도와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성경에 사람이 심령이 상하면 누가 저를 일으키겠느냐 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내적으로 마귀가 우리 정신 세계를 파괴하는 이것을 능히 막고 또 외적으로 우리가 나아가서 창조적이고 승리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오늘 계시록에 주신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들이 어린양의 피와 그 증거하는 말씀으로 저를 이겼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언제나 마귀와의 싸움에서 보혈의 증거를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판을 할 때 확실한 증거가 있으면 정죄를 받지 않고 이겨 나옵니다. 이와 같이 마귀와의 싸움에도 마귀가 끊임없이 참소해서 내적으로 미움과 공포, 불안, 좌절과 절망과 죄책과 정죄로 내적 세계를 허물려고 할 때 우리가 확실한 증거를 내세워서 대적하면 내적 세계를 침공하는 원수 마귀를 완전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적 세계의 증거는 무엇일까요? 보혈입니다. 히브리서 12;24절에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피는 우리의 중보인으로서 말을 해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에 내적으로 예수의 피를 증인으로 내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내세울까요? 예수님이 제일 먼저 피를 흘린 곳은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인류를 대신해서 대제사장으로서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서 최후의 기도를 드리실 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이것은 중대한 기도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가장 문제는 모두다 아버지 뜻보다 내 뜻을 세우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해주시옵소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것도 아버지 뜻을 짓밟아 버리고 자기의 뜻대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에덴을 등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인간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문제는 이것이야, 저것이야, 선택할 때에 내 뜻을 버리고 아버지 뜻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끊임없이 와서 아버지의 뜻을 포기하고 먼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세상 자랑을 좇아 탐욕의 정욕을 좇아 결정하라고 압력을 가합니다. 보통압력이 아닙니다. 이걸 이겨낼 제간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그렇게 탄식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가 예수의 보혈의 증거를 내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실 때에 그 이마의 땀방울이 굵은 핏방울이 되어서 떨어져 그 옷에 번졌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한 방울도 무효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그 속에 정결케하는 능력과 우리를 대속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는 여러분과 나의 고집을 꺾고 불순종의 의지를 대속한 피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살이를 살면서 이것이냐, 저것이냐 결정을 못하고 방황합니다. 마귀는 정욕으로 끌어당기고 하나님은 하나님 편에서 이렇게 하라고 합니다. 그럴 때 마귀가 주는 정욕을 이기고 우리가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증거를 내세워야 합니다. 그때 증거를 내놓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흘린 피를 증거로 세워야합니다. 그 피는 외칩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그 피의 증거를 내세워야 합니다. 우리 찬송에도 있지 않습니까? 그 피가 맘속에 큰 증거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증거로 내세워지면 마귀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가 흘린 그 피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대신해서 피를 흐렸기 때문에 그 대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그 대가는 마귀에게서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우리는 채찍에 맞은 피를 우리 증거로 내세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로마 군인들에게 잡혀서 갈기갈기 등이 찢어지시도록 채찍에 맞았습니다. 이미 예수님 오시기 600년 전에 이사야는 이것을 설명하여 말하기를 저가 친히 우리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우리 병을 짊어지고 가셨다고 말하였으며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느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채찍에 맞아 흘린 피는 여러분과 나에게 건강을 보증하는 피요 치료를 보증하는 피입니다. 사람들은 병이 들어야 하나님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병이 들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이 건강을 지켜주시기를 부르짖어야 될 것입니다. 병드는 것보다 안 드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채찍에 맞아 흘린 피를 우리는 증거로 내세워야합니다. 저는 최근에 제 건강이 갑자기 저하된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왜 건강이 저하될까..... 생각해 보니 내가 늘 내세우기를 이제는 이십대 청춘도 아니고 삼십대의 왕성할 때도 아니고 이제는 오십대에 들어선 내가 뭘 그렇게 젊은 건강을 요구하겠는가..... 너무 무리하고 너무 몸을 써서 그렇다.... 그래서 인지 자꾸 몸이 병들을 것만 같고 마귀가 와서 자꾸 말을 합니다. "너는 이제 심장병 걸린다. 너는 암에 걸릴지도 모른다. 너는 고혈압인지도 모르고 당뇨병인지도 모른다." 온갖 생각을 다갔다 넣어줍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런 시험을 당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못하나 박는 것도 나는 노인이 되어서 못을 못 박는다 너희가 해라.... 내 마음속에 점점 내적으로 파괴됩니다. 내적으로 나는 이제 자신이 없다 나이가 먹었다... 이제는 힘이 없다. 내적으로 파괴됩니다. 그런데 하루는 성령께서 오셔서 너를 고쳐 주셨습니다. "이 사람아.... 너는 그 마귀에게 속고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아브라함이 120세가 되어서 죽을 때까지 눈도 어둡지 않고 귀도 어둡지 안았다. 모세가 120세가 넘어서 느보산에서 죽을 때도 눈도 어둡지 아니하고 귀도 어둡지 아니하고 그 몸의 기력도 떨어지지 않았다. 예수 믿는 사람은 건강하게 살다가 때가 차면 그대로 가는 것이지 왜 병들기를 바라느냐! 그리스도의 보혈을 내세우고 대적하라." 그때 제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때부터 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내 연약과 질병에서 대속해 주었다. 피가 증거다 마음속에 마귀의 느낌이 올 때마다 예수의 피가 증거다 채찍에 맞아서 흘린 피가 나의 증거다 그러므로 나는 일반적인 세속적인 생각대로 살지 않는다. 초자연적으로 초인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다. 그 피가 큰 증거다. 얼마 있지 않아서 그런 마귀의 시험은 떠나가고 내적인 연약함이 사라져버리고 내적으로 강하여져서 요사이는 이십대 청춘입니다. 그 사람이 정신적으로 연약해 진다는 것은 굉장하게 연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정신적으로 마귀가 연약과 질병으로 파괴하지 못하도록 그리스도가 채찍에 맞아서 흘리신 피를 증인으로 내세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피로서 마귀를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가시관과 거기에 따라서 흘리신 피를 우리가 내세워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가시관을 쓰시고 그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가시관이란 어떤 것일까요?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으로 인하여 이 땅을 저주해 버리셨습니다. 이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겠다고 하셨으니 가시와 엉겅퀴는 저주의 표상인 것입니다. 저주받으면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게 되어있습니다. 저주를 받은 사람이 개인적으로 실패하고 가정적으로 파괴되고 사업이 안될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께서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서 처음 아담이 저지른 저주를 모두다 거두어서 가시관을 쓰시고 흘리신 그 보혈은 여러분과 나로 하여금 저주에서 해방을 얻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저주의 거센 바람과 풍랑이 휘몰아쳐 오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내 개인과 가정과 생활에 휘몰아쳐 올 때 그만 이것을 보고 마음이 약해져서 나는 실패다. 나는 절망이다. 나는 패배다. 나는 망했다고 생각하면 내적으로 붕괴되고 파괴됩니다. 마귀는 와서 말합니다. 너는 이제 망했다. 너 같은 사람은 자신이 없는 사람이다. 너 같은 사람은 축복을 못 받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단호하게 내적으로 원수 마귀를 물리치고 그 증거를 내세울 것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시고 흘리신 피. 그 피가 큰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가시관을 통해서 피를 흘리셨으니 그 피의 대가로 가시가 청산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개인이나 가정이나 생활에 가시는 관계가 없다. 가시 체는 이미 정리되고 청산되고 말았다. 피가 증거가 된다.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나는 두렵지 않다. 왜? 예수의 그 피가 내 속에 큰 증거가 되어서 나는 저주에서 해방이 되고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할렐루야! 이것이 피의 증거인 것입니다. 그 다음. 십자가의 피가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여섯 시간동안 온 몸에 물과 피를 다 쏟으시지 않았습니까? 그 피는 우리에게 큰 증거가 됩니다. 그 피는 여러분과 내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가 다 청산되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와서 너는 죄인이다. 너는 천국 못 간다. 너는 기도해도 소용없다고 말할 때 그 피를 증거로 내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피를 흐렸음으로 나는 가치가 없지만 예수의 보혈로 나는 가치를 얻게 되었다. 예수께서 죄악의 몸이 십자가에서 찢어짐으로 말미암아 그 피를 흘리심으로 죄의 권세를 멸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예수님의 몸에 우리의 죄를 정하사 그 죄의 세력을 꺾어 버리신 것입니다. 성경에 육체의 고난을 당한 자가 죄를 그쳤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유혹하는 죄악의 힘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악이 마치 소용돌이치는 물결처럼 우리에게 흥분을 일으키고 탐욕과 정욕으로 이끌어 가려할 때 우리는 증거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이 찢어짐으로 흘린 피가 나의 증거가 된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성케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이 피가 나의 증거다. 이 피의 증거를 대니 나가라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은 밝히 말하기를 어린양의 피로서 저를 이기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과 나는 겟세마네 동산에 보혈 채찍에 맞은 피 가시관의 피 십자가의 피를 가지고서 증거를 삼아 우리의 내적인 세계속에 미움이나 불안 공포나 절망이나 좌절감이나 죄책감이 들어와서 내적인 세계를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도록 방위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이제는 그 입으로 시인한 말씀으로 인하여 이겼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희한하게 동물들은 말에 대한 개념이 없지마는 사람은 언제나 말을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처럼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그냥 공기를 진동하고 나가는 소리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할 때에 그 말씀이 빛을 지었습니다. 궁창이 생겨라 할 때에 말씀이 그 궁창을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온 천하의 물은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고 뭍에는 각종 열매맺는 나무와 실과가 나오라고 할 때에 그대로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시고 공중의 새와 물 속에 물고기와 땅에 기는 짐승들을 지었습니다. 말씀은 그 배후에 이러한 창조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창조력을 여러분과 나도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에서 나와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시장하신지라 무화과나무 밑에 가서 열매가 있는가 하고 살펴보니 열매가 없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지금으로부터 아무도 너에게서 다시는 열매를 먹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튿날 제자들과 다시 지나가는데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랐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주께서 어제 저주하신 그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하니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시고 하나님을 믿으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우라 명하고 그 말이 이룰 것을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 여기에서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무한정한 위력에 관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은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셔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생명 영생이 속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하는 말은 그 말에 위대한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는 가능성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친히 예수님께서 파도를 잠잠케하셨고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게 하셨고 말씀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말씀으로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 된 나사로도 말씀으로 살렸습니다. 성도들도 말씀으로 운명을 변화시킨 일이 많습니다. 회당장이 자기 딸이 죽었을 때 예수께서 와서 내 딸이 당장 죽었으니 와서 손을 얹으면 낫겠나이다..... 낫는 다고 말했습니다. 나을지 안 나을지 모른다고 그렇게 말하지 않고 주께서 오셔서 손을 얹으면 내 딸이 낫겠나이다. 그 말에 주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주님이 고쳐주었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병을 앓던 여인도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내가 주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낫는다. 그는 나았습니다.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믿음의 선언이야말로 얼마나 힘이 있는지 모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미문이라는 곳을 지나가는데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구걸하는지라 베드로가 말하기를 우리를 보라 금과 은은 내게 없으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 팔을 잡고 일으키니 그 말씀이 발목과 발에 힘을 주어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누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할 때 앉은뱅이를 보고 네 발로 일어서라. 했습니다. 그런데 발로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입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는 말씀이 얼마나 위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 주 예수께서 말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와의 싸움에도 그 증거하는 말로서 이기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리들의 생활과 입의 시인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살고 죽는 권세가 혀에 있다고 했음으로 우리는 내적으로 보혈로써 강화하고 외적으로는 말씀으로 우리 운명을 조정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죽이는 말을 씁니다. 자기 입으로 나오는 말로서 자기를 죽입니다. 왜냐? 긍정적인 믿음의 말은 살리는 말이고 부정적인 믿음의 말은 죽이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오늘 예수를 믿으면서도 얼마나 자기를 죽이는 말을 하는지 모릅니다. 건강을 죽이는 말을 합니다. 나는 약하다. 나는 허약하다. 나는 나이가 많다. 나는 못한다. 나는 소망이 없다. 자기의 입술의 말로 건강을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자기의 건강을 입술의 말로 파괴합니다. 그리고 나서 병이 들면 왜나는 병들지? 합니다. 여러분의 입술로 여러분의 건강을 파괴하는 일을 하지 말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진실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 한마디에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입에서 나오는 말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말로 자기 건강을 죽이지 말아야 됩니다. 또, 자기 말로 성공을 죽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벌써 자기 말로 그럽니다. 나는 실패했다. 나는 패배자다. 나 같은 게 뭐 잘 될 라고.... 내가 못사는 것도 팔자야.... 이렇게 해서 성공을 죽이는 말을 합니다. 그렇게 말은 하면서 속으로는 성공해야지..... 속으로 성공하고 싶어도 말로서는 성공을 죽여버립니다. 이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어린 아기를 낳고 싶어해서 낳아 놓고는 무릎에 앉혀놓고 죽이면 낳은 수고가 없지 않습니까? 이러므로 말로서 성공을 죽이는 그런 말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됩니다. 환경을 마귀가 만들어서 자꾸 성공을 죽이는 말을 해라. 말을 해라. 해도 환경을 바라봐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주의 진리의 말씀에 서서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축복을 죽이는 말을 합니다. 나는 복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복이 없는 나라에서 태어났다. 복이 없을 때 태어나서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축복을 죽이는 말입니다. 행복을 죽이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시집을 잘못 왔어...마누라를 잘못 얻었어.... 이 가정에 잘못 들어왔어.... 우리 가정은 불행해.... 우리 가정은 지옥이야.... 사람을 들들볶아 말로서 행복을 다 죽여버리고 뭘 기대하겠습니까? 여러분, 말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일생을 저주해 버리고 가정을 저주해 버리고 행복을 산산조각으로 죽여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말로서 신앙을 죽여버리고 난 다음 신앙을 아무리 가지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나는 기도할 줄 모릅니다. 기도 좀 하는데도 모른다고 하니까 다 죽여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믿음이 없어요. 나는 신앙이 약해요. 교회에 그저 왔다갔다하지요. 나는 아직까지 신앙이 약해 아무 것도 모릅니다. 왜 그런 말을 합니까? 그래서 조금 있는 것까지 다 죽여버립니다. 죽이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입술에서 일체 죽이는 마을 제겨버리고 지금부터는 살리는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살리는 말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나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해서 어떻게 된 사람인가를 분명히 알고 난 다음에 살리는 말을 강하게 해야합니다. 여러분과 나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내어난 그대로의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새로 태어난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새로운 사진을 찍어주셨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롭게 된 사람이며 십자가를 통해서 여러분과 내가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가난과 저주에서 벗어난 사람이며 십자가를 통해 여러분과 내가 질병에서 고침 받고 건강을 얻는 사람이요. 십자가를 통해서 마귀의 굴레에서 벗어 나온 사람이요. 십자가를 통해서 천국백성들이 된 사람인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했는데 우리 여호와께서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로 데리고 와서 푸른 꼴을 먹고 변화시키셨으니 내가 십자가를 통해서 어떠한 사람이 되었는가를 알고 이것을 가지고서 건강을 살리는 말. 성공을 가지고 오는 말. 축복을 가져오는 말. 행복을 일으키는 말. 신앙을 살리는 말을 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네 말로 묶인 바 되었으며 네 말로 사로잡힌바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살리는 말씀을 해야 됩니다. 야고보서 3;1-5절에 보면 이 혀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나님이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말을 좌우로 움직이기 위해서 입에 자갈을 씁니다. 말은 참 훈련하기 어려운 짐승입니다만 입에 자갈을 넣어서 좌우하면 그대로 움직입니다. 우리 혀도 말의 입의 자갈 같아서 우리의 몸을 좌로 가던지 우로 가던지 운명의 방향을 바꾼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광풍에 큰 선체가 바다를 갈 때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가지 아니하고 밑에 있는 적은 키로서 조정하는 자의 생각대로 움직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세월이 나쁘기 때문에 풍파가 나쁘기 때문에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망했다..... 아니올시다. 어떠한 인생풍파가 다가와도 혀가 우리 가는 방향을 움직여 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혀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끌려가던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대로 운전을 해서 혀를 바로 잡으면 운명을 바로 잡아갈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말처럼 혀는 지극히 적은 불이 큰산을 태우는 것처럼 혀를 잘못 쓰면 운명을 불태우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혀는 지극히 작은 것이로되 큰 것을 잘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경은 말씀하기를 어린양의 피와 그 입의 증거하는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피를 가지고서 우리는 내적으로 피의 증거를 세워 강하게 하고 우리는 입술의 말로서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이 구속하여 주신 것을 힘차게 말씀으로 시인하므로 말미암아 흑암을 광명으로 무질서는 질서로 죽음은 생명으로 무는 유로 절망은 소망으로 변화시키는 창조적인 역사를 해야만 될 것입니다. 최근에 나는 하나님께 꾸중을 듣고 계시를 받고 난 다음에 저의 운명도 달라졌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우연히 시험에 들어 가지고서 자꾸만 나를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나는 이제 이십대가 아니다. 삼십대도 아니다. 나는 약하다. 나는 몸이 너무나 과로를 해서 병이 들지도 모른다. 혹시 당뇨병인지도 모른다. 나는 약해졌다. 그리고 나서 예배를 드리는데 내려가면 피곤하거든요. 설교를 하고 나서 피곤 안할 턱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것 봐라 피곤한 것을 보니 이제 영감이 다되었구나. 이제 끝났구나. 자꾸 이런 소리를 했어요. 그러나 성령께서 저에게 오셔서 강하게 말씀하셨어요. 네 입술의 말로 네가 너를 파괴한다. 입술의 말로 너를 늙게 하고 너를 죽이고 너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오늘부터 입술의 말을 바꾸어라. 그래서 성령님의 계시를 받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꿇어앉아서 눈을 지긋이 감고 이래봬도 이십대 청춘이다. 내 심장도 폐도 간장도 신장도 내 전체도 이십대다. 아직 하나님의 생기가 발랄하고 충만하다. 겁날 것 없다. 예수의 보혈이 증거가 되고 하나님 말씀이 증거다. 그것을 제가 계속 시인하면서 이번에 일본에 가서도 아주 힘든 선교사업을 계속하면서도 하나도 지치지 안았습니다. 그리고 어제 저녁에 돌아와서 오늘 이 강대상에 섰어도 하나도 지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말씀으로 내 자신을 변화시키고 말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이 남은 가르치면서 저는 못 가르친다고 남보고는 부정적인 말하지 말라고 늘 해놓고서 나는 나 혼자서 부정적인 말을 늘 했다고요! 그래서 조용기를 가르칠 자는 성령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성령께서 꾸짖어서 그것을 변화시키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치고 일어나기가 싫고 그랬는데 말을 바꾸고 나니 아침에 일어나도 새롭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도 새롭고 까딱없어요. 네 말로 네가 사로잡힌 바 된다고 성경에 말한 것처럼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는 것입니다. 마귀와의 싸움에는 재적 증거로서 보혈과 외적 증거로서는 승리의 말씀을 가지고 나아갈 때 우리는 저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과 운명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방향으로 끌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그 증거하는 말씀을 여러분께 주셔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예외 없이 승리자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주의 빼어내시고 사랑하는 백성들 함께 하나님 말씀을 나누고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승리자로서 부름을 받았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 했사옵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제 3부 예배에 출석한 사람들은 한 사람도 패배자가 없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