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날짜 : 1982년 12월 19일 제목 :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자 성구 : 벧후 1 : 1-4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 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마다 천차만별의 성품의 다른 점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자손들은 그 성품의 밑바탕이 피할 수 없이 부패하고 탐욕과 썩어짐의 종이 돼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성품의 그 바탕에 미움과 분노 시기와 질투 불안과 초조 좌절과 절망 죄책등이 회오리 바람이 되어 불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모시게 되면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모두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특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자 영생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고 영생에 접붙여지자 신의 성품이 우리를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시켜 주는 놀라운 은총의 세계 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 이 시간에 도대체 신의 성품이란 어떠한 것일까? 물론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신 그 한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가 다 논할 수는 없지만은 우리의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관계되는 신의 성품에 관해서 여러분과 함께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신의 성품은 평안입니다. 우리 하나님께는 형언할 수 없는 측량할 수 없는 깊은 평안이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불안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전세계가 마치 불안의 회오리 바람 속에 감겨 들어가는 그런 느낌입니다. 국가 사회적으로도 불안하고 전쟁과 전쟁소문은 세상에 끝없이 퍼져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또 말세의 징조로 지진과 처처에 기근이 오늘날 전세계 매스컴과 신문지상을 덮고 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 신문을 본 사람은 북회귀선을 중심으로 해서 세계적으로 지진의 공포가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대에 어느 곳에 가나 불안하고 초조하고 절망적이 아닌 상황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한걸음더 나아가서 인간은 그 개개인 누구를 불구하고 그 마음속에 불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난 다음 죄를 범하자 죄의 결과로 그들이 제일먼저 체험한 정신적인 고통은 불안과 공포였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피해서 나무 뒤에 숨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냐고 할 때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고 말한 것입니다. 죄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불안과 공포심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자손 이후로 오늘날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그들이 마음속에 불안과 공포의 병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사야서 48장 2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였나니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과거에 이런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한 부자가 늘 마음이 불안합니다. 돈은 많고 호화롭게 살 지만은 마음에 늘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마음에 평안을 갖다주는 그림을 한폭 가질 수가 없느냐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화가들에게 큰 상금을 걸어서 그는 부탁을 했습니다. 아주 바라볼 때 마음에 평안을 갖다주는 이러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는 거액의 돈을 주고 그 그림을 사겠다고 그랬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화가들이 전력을 기울여서 평안을 가져오는 그림을 그렸었습니다. 그 그림을 전시하는 날에 이 부자가 화랑에 와서 보니깐 어떤 그림은 정말 평안한 시골 전경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한폭의 그림 속에 호수가 그려져있고 호수 속에는 두둥실 떠가는 하늘의 구름이 비춰있었습니다. 보기에도 평안이 꽉 들어찬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그 앞에서 한참 보더니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또 다른 한폭의 그림은 시골의 전경입니다. 소는 여물을 씹고있고 개는 긴 하품을 하고있고 장닭은 목을 쭉 빼어서 오정의 노래를 부르고 있고 온 천지는 조용합니다. 하나도 불안의 기미가 없습니다. 그 그림앞에서서 잠시동안 음미하더니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평안을 갖다줄만한 그림은 하나 없이 다 지나쳐버리고 말았었습니다. 맨 나중에 오니깐 이것은 평안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그림 한폭이 있었습니다. 벼랑에서 폭포가 우렁차게 쏟아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옆에 조그만한 흔들흔들한 나무가지에 로빈 새가 둥우리를 치고 거기에 알을 품고 앉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일진광풍이 불어온 다면은 그 폭포에 물이 넘쳐온다면은 그 둥우리는 폭포의 물에 쌓여서 천길 만길 떨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날픈 가지에 둥우리를 쳐놓고 난 다음 로빈 새가 앉아서 알을 품고 있는데 그 눈 속에는 불안과 공포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한참 그 그림을 바라보고 있더니만 그 부자는 그 화가에게 거액의 돈을 주고 그 그림을 샀었습니다. 사람들은 저 사람이 돌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이 세상 환경에 평안이란 것은 사실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세상 어느곳에가나 환경에 진실로 평안을 가져올 수 있는 처소가 어디 있는가! 오직 참 평안은 이 로빈새와같이 이 불안과 공포가 꽉 들어찬 환경 속에도 마음속에 요동치 않은 평안을 가질 수 있으면 그것이 참 평화라고 말했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내가 오늘날 천하에 어느곳에가나 진실한 평안을 가져올 수 있는 처소는 없다는 것을 우리가 잘알고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참된 평화를 갖기 전에 이 세상 어느곳에가서 우리가 참된 평화를 얻을 수 있겠는 것입니까? 그런데 마음의 평화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습니까? 이거는 지식이나 학문이나 그렇지 않으면 사회 제도나 물질로서 마음에 평화는 오지 않습니다. 이 평화는 하나님의 성품으로서 신의 성품에 참여할 때 우리의 영혼의 영혼에 가장 깊은 속에 선물로서 평화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왔다고 말씀했는데 우리 마음이 회개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과 나의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져서 그래서 비로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 영혼 속에 채워질 때 신의 성품인 평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의 성품의 평화가 다가올 때 우리는 이 평화를 앉고 그 다음에는 매일같이 깊은 기도의 생활을 해야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불안 요소를 끊임없이 아뢰어서 주님의 그발앞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때마다 우리 지성을 초월한 하나님의 평화가 마치 바다 물같이 우리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의 평화가 마치 군대와 같이 출동해와서 여러분과 내 마음을 둘러싸고 불안과 공포가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 주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의 성품은 이 무한한 평화를 가지고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에 신의 성품을 받은 사람마다 매일같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일을 끊임없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신의 성품은 여러분과 내 마음을 지켜주시고 여러분과 내 영혼 속에 세상에 형언할 수 없는 가장 깊은 바탕 속에서의 평화가 넘쳐납니다. 머리 속에 염려와 근심이 소용돌이친다고 하더라도 이 뱃속에서 넘쳐 나오는 평화 때문에 여러분은 평강에서 평강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신의 성품은 바로 기쁨인 것입니다. 인간은 삶의 환희를 얻기 위하여 혹은 술을 마시고 환각제를 먹어보고 성적인 방종 속에 몸을 던져 보기도 하고 세상의 환락을 추구해 보지만은 그런 것 속에서 다가오는 환락이란 순간적인 것뿐이고 그 뒤에 다가오는 것은 깊은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과 회오와 절망과 슬픔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가장 음란한 죄악이 알콜중독이요 성적인 도착이요 그리고 약물중독이요 세상에 향락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든 발버둥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참기쁨과 즐거움을 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개인이 파탄에 이르고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가 이로 말미암아 얼마나 중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지 형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마음속에 진실한 엑시더시 환희가 없이 기쁨의 체험을 얻지 못할 때 삶의 힘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가정주부가 매일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동안에 그 마음속에 환희를 체험하지 못하면 그만 마음속에 심리적으로 억압을 당하고 병들고 고통 속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에 산업화되고 도시화되고 기계화된 곳에서 기계적인 부속품으로서의 한가지 일을 계속 반복하고 마음속에 아무런 환희를 체험하지 못하면 그로 말미암아 그는 지쳐버리고 절망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사회에 진실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기름을 치는 것은 그 마음속에 엑시더시의 체험 환희의 체험을 가질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진실한 기쁨의 체험을 얻을 수 있어야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삶의 힘을 얻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쁨은 삶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에서 건전하고도 영구하며 참된 기쁨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까? 신의 성품가운데 바로 가장 중요한 것이 기쁨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기쁨인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는 슬픔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천국에 올라가면 천국에는 슬픔이 없고 항상 기쁨으로 충만하고 넘칠 것이란 이유가 거기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러므로 신의 성품에 들어가서 마음속에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역시 우리가 철저히 죄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죄가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같이 할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내 구주로 철저히 모셔들이고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할 때 성령은 하늘의 기쁨을 우리의 마음속에 갖다 부어 넣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우리가 사랑의 계명을 지켜나가면 기쁨은 우리 속에 샘솟듯이 넘쳐납니다. 요한복음 15장 10절로 12절에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한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며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이것을 너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서 너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에게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주어진 신의 성품이 넘쳐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즉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품인 기쁨이 넘쳐 나서 우리의 마음속에 즐거움이 있고 그리고 살아나갈 수 있는 생의 용기와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성품인 기쁨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회개하고 성령을 충만히 받으며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고 그 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사랑의 실천을할 때 기쁨은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의 생활 속에 넘쳐나는 것입니다. 셋째로 신의 성품은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세상에 염려 근심 불안 공포는 마치 유행성 감기처럼 유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계에 그 무엇하나라도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불확실하고 일시적이며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이것이라고 해서 전적으로 생을 내어 전지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사람들은 아무 것도 신뢰할 수 없음으로 말미암아 일시적이고 상대적이며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신실한 믿음을 줄 수 있는 것입니까?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깨어져도 사회가 변천하고 세계 경제적인 크나큰 변화가 다가와도 우리의 마음속에 요동치 않은 확신과 신념을 어디에서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이러한 신념이란 절대자 저 하늘을 지으시고 이 땅을 지으신 하나님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 하나님 하늘이 변하고 땅이 변해도 일점일획도 변할 수 없는 하나님 이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 마음속에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바로 신의 성품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안과 공포에 떠는 사람들을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있는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변화무쌍하고 *** 떠는 세상 사람들에게 영원한 처소를 주님께서 친히 예비하겠다고 하심으로 말미암아 내일에 대한 염려와 근심 불안과 초조를 제하여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나에게 하나님 말씀을 주셔서 우리가 말씀과 늘 접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주신 신의 성품인 신념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영양분을 얻어서 점점더 성장하고 자라고 확고하게 되도록 주님께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럴 뿐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위해서 피흘린신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점점 체험하면 체험할수록 우리의 마음속에 믿음이 강해집니다. 성경에 바울은 말하기를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 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나 칼이나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될 때 내 마음속에 끝없는 신념이 넘쳐나고 신의 성품인 이 믿음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성령이 충만하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점점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여러분은 불안과 공포와 절망에서 놓여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의 성품인 믿음을 담대하게 가지게 되면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게되자 그는 팔십 노구에 삼백만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광야로 나올 때 홍해 수에 교량도 없고 배도 없었지만은 믿음으로 삼백만을 육지같이 바다 가운데를 갈라서 지나게 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요동치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매 삼백만 백성을 거느리고 광야에 나와서 물도 없고 양식도 없지만은 그 믿음을 재료로 해서 만나와 물을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엿새동안 돌고 이레째 여섯 바퀴를 돌고 일곱바퀴째 고함치니 여리고성이 믿음 앞에서 무너지고 말은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할수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못하심이 없나니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진실로 여러분과 나의 개인과 환경과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위대한 삶의 자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야 말로 신의 성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께서 이 신의 성품인 믿음을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함으로 말미암아 불일 듯이 마음속에 자라나도록 해야만 할 것인 것입니다. 그럴 때 믿음 속에 서면은 우린 이 세상에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운명을 정복하고 환경을 변화시키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할수없다는말은 거짓말인 것입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믿기만 한다면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신의 성품은 사랑인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근원적인 삶을 보게될 때 인간의 근원적인 삶속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탐욕적이요 탐욕은 오직 자아중심밖에 모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근원적인 이유는 탐욕 때문에 지은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한 것처럼 오늘날 사람들은 욕심으로 말미암아 개인을 망치고 가정을 파괴하고 오늘 사회와 세계를 절망가운데로 끌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죄중에 가장 근원적인 죄가 욕심인 것입니다. 자기의 분수를 넘어서 자기의 자격에 미달하는데도 불구하고 욕심으로 사물을 취할려고할 때 이것이 파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여러분 욕심인 것입니다. 욕심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것은 자기를 내어주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의 의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죄악이 없는 사랑이어야 진실한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이란 불의한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의가 없는 곳에 아무리 사랑한다 사랑한다해도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도둑놈들이 물건을 훔쳐와서 우리 사랑하고 서로 나누자고 한다고해서 도둑놈의 사랑이 사랑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의로운 곳에야 비로서 참 사랑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과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당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하늘 보좌를 떠나시고 여러분과 나의 속에 와서 거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것은 내게 주시옵소서. 내게 주시옵소서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남편은 아내에게 무엇을 해줄 수가 있을까?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을 잘해줄수 있을까? 자녀는 부모의 마음에 평안을 주고 기쁨을 주기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지 받을 것을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의 받을 것만 생각하는 것은 이기주의요 이것은 탐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내가 상대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진실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여러분과 나의 생활 속에 얼마나 남에게 주기를 원하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가정에서부터 출발하십시오. 남편들들은 여러분 아내에게 나는 무엇을 줄려고 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아내는 여러분이여 남편에게 나는 무엇을 해주어야만 할 것인가? 이것을 생각하고 살고있습니까? 이것이 여러분에게 신의 성품인 사랑이 정말 얼마나 활동하여 있는가를 증명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거기에서 한걸음더 나아가서 그러면 내가 이웃에게 무엇을 줄 수가 있는가? 나는 이웃에게 무엇을 주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이웃 것을 빼앗고 할퀴고 탐욕을 가지고 미워하면서 살고있는가? 내가 이웃에 사랑을 표현할 수 있으면 그 다음 나아가서 원수에게 까지라도 원수가 주리면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고 원수를 저주하지 않고 축복해주는 사랑을 베풀 수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신의성품인 이 사랑을 우리는 자꾸 풍성하게 만들어서 이 사랑이 우리 가정과 이웃과 사회에 충만해질 때 이 세계는 살아갈수있을만침 즐거운 곳이 되어버리고 말 것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같이 신의 성품인 사랑을 구하고 우리 속에 이미 들어와있는 이 사랑을 풍성하게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인 것입니다. 다섯째로 신의 성품은 거룩함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는 악하고 추합니다. 생각이 더럽고 말이 더럽고 행동이 더러운 것이 죄인 것입니다. 죄가 들어오면 죄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부부간에 사이를 갈라놓고 부모 자식간의 사이를 갈라놓고 이웃간에 사이를 갈라놓고 자기의 양심과 자기의 생각을 갈라놓고 죄는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가장 추악한 것이 죕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것이 바로 죕니다.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셨는지 죄를 멸하기 위해서는 그 아들 예수까지라도 내어보내어서 십자가에 못박아 온몸을 다 찢으면서도 그 아들 예수께서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통곡을 해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 아들 몸에 얹어놓은 죄를 파멸하기 위해서 그 아들을 함께 파멸시키고 죽인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죄를 짓는 영혼은 죽으리라고 말했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례 요한도 회개하라고 말했고 예수님께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왔다고 말씀하셨고 제자들도 나가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왔다고 말했었습니다. 회개하지 아니하고 여러분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습니다. 신의 성품은 거룩한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죄악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죄악과 타협하면서도 주여 주여 하면 하나님께서 늘 같이해서 동거동행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회개하고 자복하면 주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이 하실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그 죄를 버리지 아니하고 죄악가운데 그대로 있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을 때 우리의 속에 신의 성품인 거룩함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무엇이 다릅니까? 예수믿는다고해서 교회만 왔다갔다하고 기독교의 형식과 의식만 그대로 지키지 그들의 개인의 생활 속에 윤리적이요 도덕적인 행실에 있어서 음란하고 방탕하고 세속적이며 죄악을 그대로 실천하고 산다면은 그 사람이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고 말했었으며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라고 했는데 오늘날 우리 한국 강산에 우리 일천만에 가까운 신자들이 모두다 과연 빛이 되고 소금이 되었더라면 오늘날 한국사회가 얼마나 변화되지 않았었습니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 주여 주여 하면서 그 행위로 그 마음으로는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에 이사야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저들이 입술로만 나를 경외하니 헛되이 나를 섬긴다고" 말했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 진실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면 우리의 마음속에 참된 변화가 다가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악을 씻어내고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정결함을 받으며 성령의 거룩케 하심이 의식들 어와 있는 이상 계속 성령의 거룩하심을 추구해서 생각이 거룩하고 말이 거룩하고 행위가 거룩하고 거룩한 모임에 찾아가고 거룩한 장소에 가있으며 거룩한 일을하고 거룩한 생활을 살아야 그 사람이 참된 신자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내가 하나님께 복받기만 바라고 나의 생활전체는 비윤리적이요 비도덕적이요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서 거침없이 살아간다면은 이러한 사람은 진실한 신자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신의 성품인 거룩함에 참석하기 위해서 우린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 다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거룩함을 잃어버리면 우리 하나님께 버림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기를 너희는 거기에서 나와서 나와 함께 있고 더러운 것에 손을 대지 말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길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비거룩한 생활 더러운 생활을 우리가 청산하고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쫓아서 매일 거룩하게 되기를 노력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처음에 났을 때는 작은 핏덩이나 점점 자라 장성한 어른이 되는 것처럼 우리들도 처음에 충성했을 때는 마치 갓난아이같이 신의 성품이 미약하고 연약한 상태에 있으나 여러분께서 노력하고 애씀으로 말미암아 점점 신의 성품이 우리 속에 자랄 수 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기도할 때 신의 성품으로 크게 성장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살아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상식 외식만 가지고 주를 믿는다고 하지 말고 진실로 우리의 생활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시고 죽음의 고통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예수를 구주로 모신 우리들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신의 성품을 영혼 속에 깊이 받아들이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신의 성품인 평화를 얻게 도와주시옵소서. 신의 성품인 기쁨을 가지고 항상 기뻐하며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신의 성품인 믿음을 마음속에 깊이 가지게 도와 주시옵시고 신의 성품인 사랑을 가지고 실천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신의 성품인 거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를 보는 사람마다 저 사람은 크리스챤이다. 저 사람은 중생한 사람들이다. 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저 사람들은 신의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