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1983년 1월 2일
제목 : 믿음을 실천하며 새해를 살자
성구 : 히 11 : 1 - 6


"믿음을 실천하며 새해를 살자" 란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인본주의의 숲 속에서 과학만능주의와 인간 이성만능주의의 늪에 빠져서 사람들은 허우적거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마치 인간 과학과 이성을 통한 천국이 지금껏 우리 가운데 다가올 것 같은 착각 가운데서 수면성의 보험을 전파하고 거기에 취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세계는 끊임없는 분쟁 속에서 날로 미움과 불신이 만연해가고 있습니다. 종국에는 인류종말의 파멸적 전쟁의 위기감속에서 한사람도 빠짐없이 전율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악은 점점 더 기성을 부리고 삶의 의미와 목적은 상실되고 죽음이 공포는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진실로 문제의 해답은 어디에 있을까요? 문제의 해답은 온 세계 인류가 진실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며 신본주의로 살고 사랑으로 살며 믿음으로 실천하는 이길 밖에는 인류의 문제에 해답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나의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했었으며 고린도후서 5장 7절에 보면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한다"고 그와 같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새해에 우리들은 진실로 믿음으로 살 수 있을까요? 저는 그 길을 여러분에게 안내해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여러분과 저의 생애 속에 성령으로 사는 길을 배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자기가 아는 지식을 쫓아 삽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란 두 가지 형태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그 처음 형태가 감각적인 지식인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손으로 감각해보고 이성으로 추리해서 얻는 물질세계에 속한 이와 같은 지식이 있습니다. 오늘날 소위 우리가 말하는 과학적인 지식, 이성적으로 추리해서 얻는 지식이란 모두다 감각적인 세계 속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은 초등 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연구실에서 연구해서 우리는 비상한 과학적인 지식을 얻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감각적인 지식으로서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의 지식이 있습니다. 이것은 계시적인 지식인 것입니다. 이성과 과학의 분야를 완전히 초월한 영적인 세계 신학적인 세계의 지식은 과학으로써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지식은 성령의 계시를 통하지 않고서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소위 말하는 예수를 믿는 믿음이란 것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닙니다. 연구실에서 연구해서 얻은 지식도 아닌 것입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속에 계시된 지식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단연히 말하기를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그리스도를 주시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었습니다. 여러분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이것은 과학적인 지식도 아니요, 이것은 이성으로 추리한 지식도 아니요,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과 나의 가슴속에 들어와서 계시해준 지식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의 계시를 통하지 않고는 믿음이란 우리에게 상상 할 수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성경말씀 그 자체도 그러한 것입니다. 이 성경말씀은 과학적인 대타를 모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성적인 추리를 해서 적은 철학 책도 아닌 것입니다. 이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로서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로 10절에 보면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해 놓은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했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하나님의 깊은 것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기록됐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가르침을 좇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인간의 지성이나 이성이나 과학을 통해서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세계 신학적인 세계는 성령과의 관계 속에서만이 우리가 취득될 수 있는 세계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령을 모르는 세계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으며 예수그리스도가 구주인 것을 알 수도 없으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전혀 깨달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비웃고 성경의 말씀을 비웃는 이유는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령의 계시가 없는 세계 속에서 인간의 감각적인 지식을 통해서 어떻게 계시적인 지식을 깨달아 알 수 있단 말씀인 것입니까? 이러므로 믿음이란 계시적인 지식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가 계시되고 하나님 말씀이 계시되지 아니하면 여러분 믿음이란 전혀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해에 여러분께서 깊은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충만한 계시를 받고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체험하지 않고는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 곁에 우리를 감화 감동하기 위해서 계시는 성령님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들 세계 속에는 곁에 와서 우리들로 하여금 감화 감동을 시키는 것입니다. 양심을 통해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감화감동을 시키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서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돌이켜 예수 앞에 나오면 성령께서는 예수를 구주로 믿도록 도와주시고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의 영을 성전 삼고 거하게 되어서 성령이 내주 하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마음속에 확실히 증거 해주는 것입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내주하고 구원받는 체험을 했으면 성령의 충만함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비로소 성령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되면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능력 있게 기도할 수 있고 능력 있게 전도할 수 있고 계시로 충만해서 말씀을 알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의 충만은 계시를 통하여서 우리가 진리 속에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과의 인격적인 교제관계를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우리 가정에 함께 우리 가족이 같이 살고 형제가 같이 산 다면은 서로, 서로 인격으로서의 대우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중대한 문제는 사람들과 인간 관계 속에서 나와 너의 인격적인 관계가 되지 아니하고 서로 이용만 하려고 하는 나와 그것의 관계를 맺기 때문에 세상에 문제가 생깁니다. 남편이 아내를 인격으로 대하지 않고 그것으로 대하고 아내가 남편을 인격으로 대하지 않고 나와 그것으로 대하며 또한 우리 사회 생활에도 이용가치를 생각해서 나와 너로 대하지 않고 나와 그것으로 인격을 대할 때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가 하나의 신학적인 대상으로서 나와 그것으로써 한 체험의 대상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성령은 살아 계신 엄해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우리 가운데 와 계십니다. 이러므로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의지하는 삶을 살 때 성령님과 인격적인 교제가 이루어질 때 여러분 속에 성령이 충만하며 여러분은 성령과 손을 잡고 행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계시해주시고 말씀을 더 깨닫게 해주실 때 여러분의 마음속에 믿음은 충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데 여러분은 이 들음이 성령의 해석을 통해서 들어야지 인간의 과학적이나 이성을 통해서 아무리 들어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새해에는 여러분께서 위대한 실천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 성령으로 충만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여러분께서 위대한 믿음을 실천하고 살기 위해서는 꿈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꿈이라 하면 막연하게 꿈꾸고 잊어버리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 오늘 이 시간에 나는 믿습니다. 믿고 말고요. 그렇게 말씀한다면 내가 여러분께 질문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믿습니까? 무엇을 믿는다는 대상이 없이 아무리 믿습니다 라고 고함 쳐도 그것은 헛된 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내가 믿습니다 하고 말할 때는 여러분이 믿는 대상이 분명히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지 창조하려고 하면 그 창조적인 대상은 현실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미래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란 언제나 현재에 꿈과 환상으로 마음속에 가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집을 하나 사기를 원하면 좋은 집을 꿈꾸면서 나는 집이 하나 내네 올 줄 믿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꿈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막연하게 믿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꿈을 받고 난 다음 그 꿈을 믿은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75세가 되었었을 때 하나님께서 갈데아 우로에서 아브라함을 불러 내셨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3절에 보면 그 장면이 기록돼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 말씀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그 가슴속에 벅찬 꿈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는 나이 75세에 은퇴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롭고 찬란한 미래에 대한 꿈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가나안땅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그로 창대케해서 큰 민족이 되게 해주겠다는 꿈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자기의 청춘을 믿은 것도 아니요, 자기의 체력을 믿은 것도 아니요, 자기의 인간 계획을 믿은 것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위대한 꿈을 믿었던 것입니다. 꿈이 없이는 믿음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이유가 거기 있는 것입니다. 꿈이 없이는 믿을 것이 없으면 아무런 창조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다음 그 꿈을 믿었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가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비록 갈 바를 모르고 나갔지마는 그러나 그는 그 꿈을 믿고서 나간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제 2의 체험을 보면 그가 또다시 자녀 얻을 꿈을 가졌습니다. 나이 100살이 되고 아내의 나이 90살이 되어서 인간적으로 자녀를 가질 그러한 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꿈을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하심이라 그때 그는 100세에 아들을 낳아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아름다운 꿈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가 그 꿈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가 그 꿈을 어느정도 믿었는지 한번 보십시다.
로마서 4장 19절로 21절에 보면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것을 또한 능히 이룰 줄을 확신하였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믿은 것이지 자기의 청춘이나 자기 아내의 청춘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성적으로 가능한 생각을 믿은 것도 아닌 것입니다. 꿈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이 없이는 아무런 믿음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꿈은 바로 여러분의 믿음을 불러내는 것입니다. 꿈이 작으면 믿음도 한량없이 작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꿈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믿음이란 꿈을 담아서 가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이 없으면 믿음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꿈을 얻을까요? 여러분의 꿈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음으로 얻을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읽을 때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 상상 할 수 없을 만한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들이 성경에 주어져 있습니다. 성경에 약속의 말씀을 씨앗으로 내 마음속에 심을 때 내 마음속에 보통 인간으로 상상 할 수 없는 꿈의 꽃을 피울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을 떠난 꿈을 헛된 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여러분 영혼에 찬란하고도 영롱한 꿈을 꾸십시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꿈을 꾸십시요. 그 꿈을 가지고서 그 꿈을 믿으십시요. 우리 순복음 중앙교회는 꿈을 피우고 꿈을 심으며 꿈을 따라 믿고 있습니다. 우리 1983년 새해의 우리 교회의 꿈은 우리는 2만 구역의 35만 성도에 도달하는 꿈인 것입니다. 이것은 금년의 꿈입니다. 우리가 이 꿈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가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꿈이 없다면 우리가 아무 것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이 26만 성도가 모두 합쳐서 금년도에는 35만 성도에 도달하는 믿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은 꿈을 가지고 그 꿈을 항상 마음속에 영롱하게 바라보며 그 꿈을 믿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꿈이 없으면 믿음도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여러분이 위대한 믿음의 새해를 살기 위해서는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기 속에서 숨을 쉬며 삽니다. 4분만 숨을 쉬지 아니하면 우리의 육체는 죽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기도는 믿음의 호흡입니다. 믿음이 살아있기 위해서는 기도로써 숨을 쉬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성령을 마실 수가 없고 성령을 마시지 않는데 믿음이 살아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같이 하나님 앞에 시간을 내어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께 권면하고 싶은 것은 아침에 일어나면 최소한도 1시간 이상 기도를 해야 여러분의 강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1시간 이상 기도하지 아니하고 여러분께서 강한 믿음을 보존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2시간, 3시간 기도할 수 있으면 얼마나 더 좋겠습니까? 1시간 잠을 줄이더라도 여러분께서 1시간동안 기도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세계 어느 교회보다도 믿음이 강하고 모범이 되는 이유는 한국 교회가 새벽기도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하나님께 나와서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는 그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믿음의 호흡이 있었기 때문에 믿음이 활성화되어 살아서 역사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나와서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많이 드려야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오자 마자 자꾸 달라고만 하는데 이것은 아직 어린아이의 기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좀 성장하면 하나님께 나와서 우리가 매일 매일 받은 복을 감사해야 됩니다. 저는 하나님께 나오면 매일 매일 어제에 받은 복을 하나 없이 헤아려서 그날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제 이러한, 이러한, 이런 일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계셔서 축복해 주셨음으로 유능하게 그 일을 이룰 수 있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 없이 들어서 주님께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여러분께서 도구 해야 됩니다. 이웃을 위한 기도를 해야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족을 위한 기도도 해야 될 것이요, 여러분의 친구를 위한 기도도 해야 될 것이요, 교회를 위해서 교회 각 부서를 위해서 선교 사업을 위해서 그리고 주의 사업을 위해서 도구 하는 기도가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나아가서 자기 자신을 위한 간절한 기도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여러분이 기도할 때 묵상기도도 좋지마는 묵상기도를 할 정도가 되려면 이 사람은 기도에 통달한 사람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에 통달한 사람은 묵상 기도할 때 마음을 가다듬어 집중해서 깊은 기도로 들어갈 수 있지만 기도에 통달하지 않은 사람이 묵상을 한다고 하면은 그는 졸다가 말고 세상의 모든 허탈한 생각이 마음을 바로 잡아서 그래서 기도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통성 기도가 좋습니다. 자기 귀에 말이 들리도록 소리내어서 부르짖어 통성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 기도에는 또한 개인기도도 있고 대표기도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방법으로서는 철야기도가 있고 금식기도가 있고 새벽기도가 있고 또 무시로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기도를 하시든지 여러분의 마음속에 간절한 마음이 있어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젊은 청년이 어느 주의 종에게 찾아왔었습니다. "목사님, 자구 간절히 기도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간절히 기도합니까? 좀 가르쳐 주십시요" 목사님이 "내일 내게 오면 가르쳐 주지" 그래서 그 이튿날 왔습니다. 목사님이 그를 데리고서 강가로 나갔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난 다음에 그 청년의 손을 잡고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아니 목사님, 수영하는 법을 배우러 온 게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간절히 기도하는가 그것을 가르쳐달라고 했는데요" "그래. 내가 바로 간절히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이 물로 데리고 왔다." 그래서 물이 목까지 채워지는데 즈음 오더니만 갑자기 목사님이 그만 뛰어 올라서 머리를 손으로 눌러서 물 속에 집어넣어 버립니다. 물 속에 들어가니 숨이 답답해서 이 청년이 막 죽을 지경이 됐었습니다. '아이구 이목사가 살인하려나보다 나는 간절한 기도하는 법을 배우려고 왔는데 그만 이 목사가 미쳐 가지고서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사람 살려 라고 발버둥치고 숨이 턱에 닿아 넘어가려고 할 때 목사님이 스윽 놔줍니다. 일어나서 "허억" 숨을 쉬고 또 숨을 쉬고 또 숨을 쉬었습니다. 얼굴이 새빨개져서 목사님을 보고 "목사님 이럴 수가 어디 있습니까? 잘못하다가 사람 잡겠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 가르쳐 달라고 했지 누가 물 속에 들어가서 숨 못 쉬게 해달라고 했었습니까?" 목사님이 껄껄 웃으면서 "물 속에 들어가니 어떻던가?" "어떻긴 뭘 어때요? 숨이 다 떨어져 죽을 지경이지" "너 정말 공기가 마시고 싶지? 간절히, 간절히 마시고 싶지?" "말이라고 합니까?" "바로 그게 내가 가르치는 교훈이다. 니가 물 속에서 숨을 쉬고 싶고 공기가 마시고 싶어 죽을 지경인 것처럼 그와 같은 간절한 마음이 있어서 부르짖으면 그것이 간절한 기도다." 그렇게 가르쳐 주었다는 글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진짜입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간절한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도달하지 간절한 기도가 아니고 기도하다가 장난도 하고 기도하다가 물끄러미 온갖 잡생각도 하고 그리고 또 조금 기도해보고 하는 이러한 기도를 해서는 안됩니다. 정말 물에 빠진 사람이 호흡을 하기를 간절히 사모해서 목을 물위로 내놓기를 결사적으로 애를 쓰는 것처럼 여러분께서 영적으로 너무나 갈급해서 하나님을 향하여 땅 끝에서 부르짖는 그런 기도를 할 때 이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할 때 여러분의 믿음은 살아나고 여러분의 믿음에는 생기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넷째로, 여러분께서 믿음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말을 삼가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로 여러분이 입으로 말하는 그 말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2절로 5절에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몸을 어거하며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여기에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야곱을 통해서 우리의 혀가 얼마나 중대하게 우리 인생의 생활에 영향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말이 입에 있는 작은 재갈하나로 그 다스리기 힘든 짐승이 좌우로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큰배가 광풍에 밀려가면서도 그 밑에 있는 조그만한 키로써 방향을 찾아가는 것처럼 작은 불이 온 도시를 태우는 것처럼 이 혀는 지극히 작은 것이지마는 말을 움직이듯이 배의 방향을 잡듯이 온 도시를 태우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 운명을 좌우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이 입에 있는 혀를 올바르게 놀리지 아니하고 승리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거대한 착오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혀가 끊임없이 부정적인 해독에 붙여있어서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는 말이나 하고 남의 흉이나 보고 남을 원망하고 탄식하기나 하고 이와 같은 생활을 한다면 그 혀로 말미암아 그 사람의 영 전체에 생활 전체가 부정적이 되고 파괴적이 되고 절망적이 되고 그리고 사탄의 공격을 받아서 비참하게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는 고통 속에 떨어지게 될 것인 것입니다. 혀가 바로 흑암의 세계에 문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혀가 바로 여러분의 심령 속에 신앙을 다 파괴해버리고 안 믿는 자보다 더 못하는 비극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이 혀에 후년을 시켜 가지고서 혀를 자갈 먹여서 긍정적인 혀가 되도록 한번 만들어 보십시요. 눈에는 아무 증거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내가 비록 내 환경의 삶의 폭풍우를 통하고 할지라도 환경에 좌우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서 으깨어서 이 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시인하게 하십시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고 말씀하게 하여 주십시요. 성경에 있는 말씀대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말씀을 시인하십시요. 성경에 있는 7천여 가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위에 굳세게 서서 이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게 하십시요. 말씀이 여러분의 전 운명을 사로잡고 여러분의 영과 마음과 몸을 사로잡아 믿음의 코스를 향해서 일직선으로 가게 합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가 되고 사라가 90살이 되어도 그가 아들을 얻겠다고 말하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그들의 혀를 자갈 먹여버리셨습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사래는 사라로 여주인으로 혀를 자갈 먹여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이름을 바꾼 것은 그들의 혀를 자갈 먹여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시작해서 그들은 서로 이름을 부를 때 많은 민족의 조상이여 많은 자녀의 여주여 혀가 자갈 먹혀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아직 눈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이 없는 것이라도 입으로써 있는 것처럼 부를 때 이것이 부정적이면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긍정적이면 긍정적으로 위대한 창조가 여러분 생애 속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삶이란 우연히 이루지지는 않습니다. 첫째, 성령 충만한 삶이 있어야 하고 둘째, 분명한 꿈이 있어야 믿음이 생겨나고 셋째로, 뜨거운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하고 넷째로, 긍정적인 입술의 시인이 있어야 여러분의 믿음이 살아나고 믿음을 가진 실천적인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생활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간 생활 속에 나타납니다. 성경을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저가 살아 계신 것과 저에게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나니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기 도 -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새해에는 진실로 믿음의 삶을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고 마귀에게 짓눌린 이러한 생활 속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시인하고 그것에 포로가 되어 파괴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시고 운명과 환경을 창조하는 위대한 삶을 살게 도와 주시옵시고 세계적으로 휘몰아치는 모든 부정적인 환경과 경제적인 불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극복하고 정복하며 새로운 축복을 창조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두다 아버지여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꿈을 갖고서 살아나가며 간절한 기도를 하고 긍정적인 입술의 시인을 가지고서 실천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