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2월 27일 주일 설교
성경말씀: 열왕기하 6:14∼17
설교제목: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의 생각은 감정을 격동시킵니다. 사람은 이성적으로 살지 않고 감정이 격동되면 감정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경험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꽉 들어차면 그것은 마음속에 놀랍게도 확신과 평안과 기쁨과 소망 등의 밝은 감정을 산출해 주고 그 사람의 살아가는 길도 밝고 맑은 길로 가도록 의지가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꽉 들어차면 그것은 결국에 공포, 초조, 불안, 슬픔, 절망 등의 감정을 격발시키고 파괴적인 감정을 격동시켜서 결국 그 의지적인 결단이 파괴적인 결단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제가 유럽에서 복음을 전도할 때 어떤 자매님 한 분이 제게 신앙 상담을 왔습니다. 대단히 우수 사례에 꽉 들어찬 모습으로 왔습니다. 얼굴은 깊은 염려 근심으로 주름살이 지고 완전히 초조와 불안이 그 심정을 휘어잡았었습니다. 그가 제게 하는 말이 "목사님, 저는 살 수 없습니다. 불안, 초조, 근심, 염려로 잠을 잘 수가 없고 완전히 미칠 지경입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도 치료가 되질 않습니다. 나를 좀 살려 주십시오" 그래서 그 자매님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제가 발견한 것은 그 마음속에 격동된 불안과 공포, 초조와 절망은 잘못된 부정적인 생각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근거도 없이 장래에 자기 남편이나 자기 자식들에게 무서운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혹은 죽지 않으면, 불치의 병이 걸리지 않으면 또는 무서운 사고를 당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 생각 때문에 번뇌하다가 이것이 감정을 격돌해서 그 감정이 불안, 초조, 절망, 우수 사례로 꽉 들어차게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그 감정을 격동하며 인간의 의지를 지배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여러분의 생각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여러분의 감정과 의지를 다스릴 수가 없고 여러분의 생사 화복이 잘못된 생각으로 말미암아 파탄을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길로 이끌어갈 수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께서 어떻게 하면 여러분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을까? 그것에 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여러분과 저는 보고 듣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지배를 받습니다.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는가' 이것이 내 생각을 형성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읽은 이 성경 말씀 가운데 보면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는 하나님께 깊은 계시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람 왕이 군대를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치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엘리사가 미리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고해줌으로 이스라엘 왕이 미리 군대를 파견해서 막아버렸었습니다. 아람 왕이 마음에 얼마나 화가 났던지 자기 신하들을 불러 모아놓고 "너희들 가운데 스파이가 있다. 내가 계획하는 것마다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는 자가 있으니, 누구냐?" 그럴 때 신하가 하는 말이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선지자 엘리사가 있어서 왕이 침실에서 혼자 생각하는 것조차도 모두 다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잡으라"고 아람 왕이 고함을 쳤습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그 종과 함께 도단 성에서 밤을 새운다는 말을 듣고 군대를 파견해서 도단 성을 첩첩히 둘러쌌습니다. 이른 아침에 엘리사의 종이 나와서 기지개를 펴고 숨을 크게 심호흡을 하고 살펴보니 그만 소스라쳐 놀랐습니다. 도단 성 주위에 아람 군대의 깃발과 창검이 수풀처럼 둘러 싸였었습니다. 그들의 말발굽 소리, 그들의 외치는 소리가 꽉 들어찼습니다. 그것을 보고 듣자, 이제는 절망이라는 생각이 마음에 들어오자 그는 오금이 오그라들고 그냥 온 전신이 산발해 있었습니다. 그는 벌벌 기어서 방에 들어와서 "엘리사 선생이여, 큰일났습니다. 아람 대군이 우리를 수풀처럼 둘러쌌습니다" 그렇게 벌벌 떨었습니다. 그럴 때 엘리사 선생이 종을 데리고 마당에 나와서 "네 눈에는 저 깃발과 저 창검밖에 보이지 않느냐?" "그것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이 사람의 눈을 떠서 보게 하소서" 그러자 성령이 임하셔서 그 영감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의 눈이 열려서 그 종이 보니 아람 군대와 엘리사 사이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이 불 말과 불 병거로 첩첩이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이것을 보자마자 마음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마음에 확신이 오고 근심이 사라졌었습니다. 그 감정이 평안으로 넘치게 되고 그는 당당하게 그 주인과 함께 그 사건을 대처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모든 사람들은 한 가지 눈을 가지고 삽니다. 아담의 후예로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다 육신의 눈만 가지고 봅니다. 그래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손으로 느끼는 이러한 현실적인 생활밖에 보지 못합니다. 이러므로 육의 눈만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살면서 염려와 근심, 불안과 초조, 절망을 피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있는 원수가 자기보다 크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엘리사의 종이 그 영 안이 열려서 본 것처럼 우리의 영이 눈을 떠서 우리와 같이 계신 자를 볼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2장 9절로 10절에 보면『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여러분과 저의 영 안을 열어 주셔서 우리와 같이 계신 이가 저 세상에 있는 이보다 더 크고 많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담대한 믿음을 소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영 안을 열 수가 있을까요? 어머니 배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눈은 그 육신의 눈으로써 그 눈으로써는 영의 세계를 전혀 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들일 때, 우리 마음속에 영생이 들어오면서 영의 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했으며『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생이 들어오자마자 영의 눈이 띄어져서 영의 세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성령으로 충만한 세례를 받은 다음에는 뜬눈이 확 밝아져서 그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서 깨달을 수 있는 영의 세계가 열려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만 가진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보아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마이동풍으로 전혀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사의 종이 육신의 눈으로만 볼 때는 아람 군데와 그 깃발과 그 창검 밖에는 안 보였지만 그가 영의 눈이 뜨이자마자 하늘의 군대와 하늘의 병거들이 눈에 보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육신의 눈만 가지고 살면 세상의 염려, 근심거리 밖에는 안 보이지만 영의 눈이 뜨여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되면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기막힌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을 수 있는 축복을 예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게되면 여러분의 마음이, 이 엘리사의 종이 평안해진 것처럼 마음에 평안함을 가지고 동남풍이 불던, 서북풍이 불던,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둡던지 두려워하지 않고 '믿습니다'로 만면에 희색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우리가 열린 영 안을 가지고 무엇을 보고 들을까요? 우리의 영 안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므로 열리고 밝아지면 우리가 집중적으로 바라보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이 엘리사의 종은 아람 군대의 깃발이나 창검을 바라보지 말고 아람 군대와 엘리사 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불 말과 불 병거만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를 바라볼 때 마음속에 평안과 용기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예수 믿고 영 안이 열리고 성령 충만하여 영 안이 밝아지면 우리가 바라보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바라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루어 놓은 것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십자가 밑에서 태어났고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사물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 밖에 있지만 여러분과 저는 십자가 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통해서 우리는 사물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그럼 어떻게 바라볼까요?
우리는 용서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마귀는 여러분을 죄만 바라보게 합니다. "너는 죄인이다, 너는 죄 책을 가지고 있다, 너는 하나님 앞에 나올 자격이 없다" 죄만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너의 죄, 나의 죄, 우리의 모든 죄를 그 한 몸에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몸을 찢고, 살을 찢고, 피를 쏟으므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대속해 주신 그리스도의 용서를 바라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용서를 바라보게 될 때에 여러분과 저는 죄 책에서 놓여남을 받고, 좌절감에서 놓여남을 받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당당히 나올 수 있는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우리는 악마에 대한 승리를 바라보아야 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역사만 바라봅니다. 마귀가 나를 유혹합니다. 마귀가 우리 가정을 파괴합니다. 마귀가 우리의 생활에 회오리바람을 가져옵니다. 마귀는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한다고 마귀를 자꾸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성경에는『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제가 바라보아야 될 것은 마귀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마귀의 머리를 깨뜨린 것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에 보면 여인의 후손이 오면 뱀의 머리를 깨뜨리겠다고 했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여 돌아가실 때 마귀의 권세를 깨뜨려버리고 마귀의 무장을 해제해 버리셨습니다. 성경은 밝히 말하기를『..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으며, 성경은 또 말씀하기를『..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보면『..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이미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고 마귀를 무장해제 시킴으로 성경 말씀대로『..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라고 했으니 쫓아낼 것을 생각하며 또 주님께서『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우리가 권세 있는 자로서 마귀를 이길 것을 바라보아야 될 것입니다.
그 다음 또 무엇을 바라보아야 될까요? 치료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심장병, 폐병, 위장병, 관절염, 신경통, 암, 이런 것들만 바라보고 '나는 이제 죽습니다. 나는 절망입니다. 나는 큰일났습니다. 이젠 모든 것이 끝장났습니다' 라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생각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절망 의식을 가져오고 여러분은 완전히 패배의식으로 감정이 격돌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바라볼 것은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치료를 바라보아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치료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신 것을 여러분이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빌라도의 뜰에서 채찍에 맞아서 갈기갈기 등이 찢어질 때 외쳐 말하기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바라보고 여러분께서는 여러분에게 진딧물처럼 달려있고 거머리처럼 붙어 있는 질병을 향하여 "너희 질병아,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묶음을 받을 찌어다. 너희 질병은 나와 상관이 없다. 예수께서 걸머지고 가신 것 나는 걸머지지 않는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게서 떠나가라" 물리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치료받은 여러분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바라보아야 여러분이 불안과 공포와 절망의 노예가 안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또 무엇을 바라볼까요? 축복과 은혜를 바라보는 습관을 들여야 됩니다. 여러분께서 이 세상이 다 불황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불황의 바람이 불어가더라도 이 불황의 바람이 여러분의 속에 불어오면 안됩니다. 세상에 아무리 불황이 불어와도 여러분 속에 불황이 불어 들어오지 아니하면 여러분은 그 불황의 바다 위를 걸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속에 불황이 들어오면 물 속에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처럼 불황의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불황이 들어와도 여러분의 마음에 불황이 들어와서 '이제 우리는 망한다, 우리는 헐벗었다, 굶주린다, 우리는 가난하다, 끝장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여러분은 방황할 필요도 절망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불황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3백만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시고 저 광야 40년을 양육하실 때 하나님이 불황을 당하셨습니까? 사막 가운데 농사도 짓지 못하고 아무것도 없는데도 40년 동안 만나로 먹이시고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바위에서 물이 솟아 마시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광야에 나가셨을 때 아무것도 없었지만 불황을 당했습니까? 남자만 5천명, 부녀자 기만명도 오병 이어로 먹였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4천여 명의 남자와 기만명의 부인들도 또 먹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불황을 당하지 않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하나님을 우리 속에 모셨은 즉 우리는 불황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성경의 이런 말씀을 여러분께서 붙여놓고 한번 묵상해 보십시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을 묵상하면 여러분 마음속에 부요 의식이 채워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이 말씀을 묵상할 때 내 생활 속에 저주가 붙어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께서 속량해 버렸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저주의 가시줄을 온 몸에 둘둘 감고 살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각이 변화되고 달라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네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한 삼박자 축복의 생각으로 가득 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각이 여러분의 마음을 점령하면 여러분, 그것이 일으키는 감정은 믿음, 소망, 사랑이요, 용기와 담력이요,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더라도 담대히 일어나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셋째로 이제 우리가 결론적으로 깊이 생각해 봐야 될 것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우리와 함께 한 자가 많다는 엘리사의 신앙 고백을 우리가 들어봐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엘리사는 아람 군대와 그 깃발과 그 창검을 보지 않았었습니다. 엘리사는 말하기를 "저들과 같이 있는 자 보다 우리와 함께 있는 자가 더 많다"고 말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이 신앙 고백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영원한 플러스를 얻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플러스 표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예수를 구주로 모실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아버지로 플러스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전지 전능,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친아버지가 되시고 이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 아버지가 나의 친아버지가 되고 하나님께서 나를 양육하는 부친이 되셨으니 이 어찌 우리에게 크나큰 플러스가 아니며 우리와 같이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더 크지 않습니까?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가 우리 것이 됩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며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에서 용서를, 질병에서 치료를, 절망에서 소망을, 저주에서 해방을, 지옥에서 천국을 플러스로 받아 들였었으니 우리와 같이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주님께서는 말씀하기를『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날 이 세상에 강림한 보혜사 성령은 지금 여러분과 함께 거하시고 여러분의 속에 와서 계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과 제 마음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되었으며 성령을 위로로 우리가 슬픔을 짓밟고 일어날 수 있으며 성령의 계시로 진리를 알게 되며 성령께서 하나님에 대한 지혜와 지식과 총명을 주시고 믿음과 용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성령께서 우리와 영원한 플러스 요건이 되어 같이 계시므로 세상에 있는 것보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 더 많습니다. 또 나아가서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 다 앞세워도 하루 아침 바람불면 다 사라지고 맙니다.『..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영원토록 변치 않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과 저에게 있는 이상, 이 말씀이 우리의 삶의 자원이 됩니다. 저는 26년 간 설교해 왔었습니다. 설교하면 할수록 이 하나님의 말씀이 더 귀하여지고 무궁무진한 생명의 자원이 된다는 것을 저는 느끼게 됩니다. 시카고에 대화재가 났었을 때 무디 목사는 자다가 신발도 벗은 채 잠옷 바람으로 성경책 하나만 들고 뛰어 나왔습니다. 신문 기자들이 몰려와서 야유를 했습니다. "무디 목사님, 당신 하나님은 왜 그렇습니까? 당신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왜 당신이 파자마 바람에 맨발 벗고 성경하나만 들고 뛰어 나왔습니까?" 그때 무디 목사가 웃었습니다. "나는 굉장한 자원을 가지고 있어요. 불이 나서 잃어버려도 걱정 안 해요" "아니 무슨 자원입니까?" "나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하나님께서 부요와 생명을 주는 약속을 담은 말씀입니다. 내가 파자마 바람으로 나온 이유는 내가 낡은 옷을 입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새 옷 사 입으라고 파자마 바람으로 내 보낸 것이며, 맨발 벗고 뛰어 나온 것은 새 구두 신으라고 하신 것이며, 주님께서 교회가 낡았으니 새 교회를 지으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제가 안 짓고 있으니까 주님께서 노임을 저축하려고 불로써 태워 주십니다. 이제 저는 좋은 교회를 지어 놓을 테니 두고 보십시오" 아니나 다를까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는 시카고에서 무디 성서 학원을 세웠었으며 그 다음 무디 연구소를 세워서 오늘날에 와서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성경은 여러분과 저에게 위대한 축복의 근원이 됩니다. 여러분께서 성서의 말씀을 의지하고 믿고 나가면 들에 나가면 들에서 복을 받고, 집에 들어오면 집에서 복을 받고, 떡 반죽 그릇을 만지면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성경은 나를 믿는 백성은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 줄 지라도 꾸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서에도 보면 확실하게 성경에『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에 우리는 감격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엘리사가 한 말대로 "우리와 같이 계신 자가 저들과 같이 있는 자들보다 많으니라" 여러분과 저는 세상과 마귀와 죄악과 질병과 슬픔과 죽음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가진 것이 세상이 가진 것보다 더 많습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여러분과 저는 마음속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생산적이 안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마음속에서 넘쳐 나오는 감정이라는 것은 믿음, 소망, 사랑이요, 기쁨과 평안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세상의 사람이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운명도 사주 팔자도 아닌 자기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인간 생명은 그 마음에서 넘쳐 나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잠언서 4장 23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번 따라 읽으시기 바랍니다.『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여러분과 저의 생명의 근원이 바로 여러분과 저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생각을 어떠한 것으로 채워 놓아야 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촉구합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생각의 그릇을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을 오중 복음과 삼박자 축복의 생각으로 채워 넣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원의 복음, 성령 충만의 복음, 신유의 복음, 형통의 복음, 재림의 복음으로 채워 넣고 여러분의 생활은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통하여 주어진 것을 바라보고 이것을 생각하고 이것을 믿고 이것을 고대하며 나아갈 때 이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마음에는 믿음, 소망, 사랑과 희락과 화평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우리의 눈과 귀를 통하여 생각을 받아들입니다. 그 때문에 '육의 눈으로 바라보고 육의 귀로써 들을 것이냐, 영의 눈으로 보고 영의 귀로써 들을 것이냐' 이것은 여러분의 현재의 운명과 미래의 삶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엘리사의 종이 육의 눈으로 보고 절망했으나 영의 눈으로 보자 위대한 믿음과 승리를 얻은 것처럼 육의 눈을 오늘 이 시간에 제쳐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충만함 받아 영의 눈을 뜨고 영의 눈이 밝아져서 여러분과 제가 영의 눈으로 보고 영의 지식을 가지고서 영의 위대한 믿음으로 운명과 환경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창조해나가며 불황의 파도 위를 걸어나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3부 예배에 출석한 성도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으로 채워 주셔서 육의 눈만 가지고 살지 말고, 엘리사의 종처럼 영의 눈이 뜨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영의 눈이 밝아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육의 눈으로 보고 듣는 것이 마음을 점령하지 말고, 영의 눈으로 우리가 보고 또 들은 말씀이 우리 마음을 점령하여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을지라도, 내 앞길이 스산스럽고 칠흑같이 어두워도 말씀을 통해서 본 믿음을 가지고 운명을 박차고 운명을 짓밟고 파도 위를 걸어가는 성도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