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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6월 5일 주일 설교 성경말씀: 고린도전서 11장 23∼32 설교제목: 나를 기념하라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나를 기념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아픈 자가 많고 병든 자도 허다히 많으며 천수를 살지 못하고 죽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무언가 모르게 저주의 먹장구름이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 가운데 들어와서 주의 백성들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농후하게 있습니다. 왜 이렇게 사망과 저주가 고린도 교회 가운데 횡포를 자행하고 있을까요? 그런데 거기에 대한 해답으로써 바울 선생은 명쾌하게 우리에게 이유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7절로 32절을 보면『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서 성찬을 잘못 지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대신에 약한 자와 병든 자와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심판을 받아 죽는 자가 허다하게 되었다고 탄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주께로부터 받는 이 성찬은 우리가 스스로의 심판에는 심판의 잔이 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거대한 축복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은총과 축복의 잔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진실로 우리 앞에 하나님께서 생명과 사망의 잔을 주었으며, 생명과 사망의 떡을 주었으며, 축복과 심판의 떡과 잔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심판을 받으려면 여러분, 하나님의 명령에 거역해서 성찬을 떼면 심판을 받습니다.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뜻을 쫓아 성찬을 잘 받으면 축복을 받습니다. 오늘 그렇기 때문에 성찬의 그 깊은 의미를 여러분과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이 성경에는 우리가 하나님께 축복 받기 위해서는 주의 몸을 분별하고 이 성찬을 먹고 마시라고 말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형식 적으로, 의식적으로 와서 이 성찬의 떡을 받아먹고 성찬의 잔을 마시는데 그로 말미암아 자기 스스로 심판을 먹고 심판을 마셔 드리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주의 몸을 분별하고 먹고 마시라는 의미는 바로 주의 몸이 깨어진 이후와 그 의미를 알고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단지 깨어진 떡 조각이 아닌 것입니다. 단지 한 컵의 잔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그 속에 잠겨있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먹고 마셔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 주 예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기를 떡을 떼어 주시면서 "이는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객관적 사실로 보게되면 예수님의 몸은 실제로 깨어졌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빌라도의 뜰에서 빌라도에게 사형 선고를 받고 난 다음, 빌라도의 군인들에게 끌려가서 그는 형틀에 묶여서 등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깨어지도록 얻어맞았었습니다. 진실로 주님은 그 자리에서 그 몸이 깨진 것은 사실입니다. 또다시 주님께서는 골고다 산정으로 끌려 가셔서 험한 십자가 위에 양손과 양발이 못 박히시고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높이 매달리심으로 말미암아 수족이 찢어지고 나중에 창을 받아 옆구리에 살이 찢어지고 심장이 터져 물과 피를 쏟으므로 말미암아 그 몸이 깨어진 것입니다. 왜 주의 몸이 이렇게 깨어졌을까? 이것은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 객관적인 사실일 뿐 아니라 이것이 주관적인 사건, 나의 속에서 깊은 의미를 가져오는 체험적인 사건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객관적인 사실만 가지고서 이 떡과 이 잔을 먹고 마시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 떡과 잔이 내게 무슨 직접 의미가 있는가? 이 깨어진 몸을 먹으므로 말미암아 내가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가? 그 사실을 우리가 주관적인 사실로, 체험으로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과 함께 주관적인 사실을 한번 들여다볼까요? 이 성경에는 주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 깨어진 것은 여러분과 저의 질병 을 짊어지기 위함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성경은 밝히 베드로전서 2장24절에『..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했었습니다. 성경 이사야서 53장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저로 상함 받기를 원하사 우리의 질고 을 당케 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17절로 18절 이하에 보면『..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아 그 몸이 깨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창에 찔려 그 몸이 찢어지고 깨어진 것은 바로 여러분과 제가 그 깨어진 몸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치료를 먹어들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건강을 받아먹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성찬의 떡을 먹을 때 '나는 치료를 받아먹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떡을 내가 받아먹을 때 바로 나는 건강을 받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믿음 위에 굳세게 서서 그것을 내 것으로 삼지 아니하면 여러분은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말면 주의 몸이 깨어진 아무런 의미도 없어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조심해서 주의 몸을 분별하고 먹으므로 말미암아 질병에서 놓여남 받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뿐 아니라 주의 몸이 깨어진 이유는 여러분과 나의 저주를 대속했기 때문에 깨어졌다는 사실을 뼈 속에 깊이 느껴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성령을 받게 된 것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몸이 깨어 졌기 때문에 그 공로로 성령을 선물 받을 수 있으며, 또한 동일하게 그 깨어진 공로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제가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아브라함의 축복이 우리 가운데 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친구였으며, 믿음의 조상이었었으며, 아브라함은 장수했었으며, 자녀를 얻었으며, 그는 그의 생활 가운데 은과 금이 풍부하고 짐승들도 많아서 남에게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는 축복 받은 사람이었었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저는 이 깨어진 몸을 먹을 때 우리의 생활 속에 저주가 다 사라지고 아브라함의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분별하고 그 의미를 알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그러한 효과가 여러분 생활 속에 발생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또 주님께서는 잔을 주실 때 말씀하기를 "이는 내 피로 새운 새 언약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이 잔을 마실 때 하나님과 함께 언약의 관계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정하는 것입니다. 옛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라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와서 시내산에 왔었을 때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의 돌 판을 받아서 그것을 짐승을 잡아 우슬초에 피를 묻혀 돌 판에 뿌리고 백성에게 뿌려서 하나님과 함께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이 십계명의 언약은 행위의 언약인 것입니다. 그 행위의 언약을 지키면 살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는 언약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한사람도 그 계명을 지키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탄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늘날 여러분과 나에게 주는 이 새 언약은 주님께 불순종하고 불신앙하고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위해서 예수님이 대속의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 대신, 우리의 불의를 대신하여,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올라가서 그 몸을 깨어주시고 영원한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다 속량하여 청산하시고 이제는 죄인이나, 불의한 자나, 추악한 자나, 남녀 노소, 빈부 귀천,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직 믿음으로 예수께 나와서 그 보혈을 의지하고 구원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허락한다는 새로운 언약의 잔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 이 보혈의 공로가 아니면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 앞에 서서 구원받을 만한 아무런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죄 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자격이 없는 그대로 나와서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 앞에서 구원의 언약 속에 들어갔다는 것을 확정하는 것입니다. 이 잔을 믿음으로 마심으로 말미암아 이 잔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죄의 용서가 있으며, 이 잔 속에는 의롭다함을 얻는 은혜가 있으며, 이 잔 속에는 영생이 들어있으며, 이 잔 속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들어있으며, 이 잔 속에는 천국이 나의 삶 속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축복이 들어있다는 것을 우리가 분별하고 알아야 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이 잔을 마실 때는 용서를 마셔들이며, 의로움을 마셔들이며, 영생을 마셔들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마셔들이며, 천국의 상속을 마셔들이는 위대한 축복의 잔이므로 이 세상에서 어떠한 부귀 영화 공명으로도 바꿀 수 없는 기막힌 은총을 마셔들이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성찬을 참여할 때 자기를 살피고, 먹고, 마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스스로를 살피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이 성찬의 거룩한 떡과 잔이 심판의 떡과 잔이 되게 만들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성찬은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이요 그 흘리신 피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실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를 지켜보고 계시며 주의 거룩한 성령께서 그 자리에 임하여 계시며 천군과 천사들이 이 앞에서 날개를 움츠리고서 이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이야말로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그 깨어진 몸과 그 흘리신 피이기 때문에 이 얼마나 장엄하고 거룩하고 얼마나 떨리는 일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이 떡과 이 잔에 참여할 때 장난으로 의미 없이 참여했다가는 하나님이 손을 들어 치시므로 말미암아 약 한자와 병든 자가 많고,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일찍 죽는 자도 많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판의 성찬이 되기도 하고, 무궁 무진한 축복의 성찬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찬을 받기 전에 여러분과 저는 우리 자신을 살펴봐야 됩니다. 어떻게 살펴볼까요?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살펴보십시다.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살인하지 말라, 그리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우상을 섬기는 탐욕을 가지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이와 같은 일들을 여러분 우리 스스로의 생활 속에 비춰보고 내가 거리낀 것이 있으면 그 죄를 모두 다 주님 앞에 회개하고 난 다음에 여러분이 성찬에 참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가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얻어놓고 양심의 소리를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양심에 거리낌이 있는 사람은 그 마음 속에 평안이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사람들 앞에서 행복한 것처럼 하지만 그러나 그의 웃음은 쓴웃음이 될 것이요, 그의 눈동자 속에 평화가 없을 것은 양심에 가책이 없는 자에게는 판단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가슴속에 양심의 가책이 있으면 이 양심에 가책된 것을 모두다 통회 하고 자복하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고 난 다음에 성찬에 참여해야 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여러분과 저를 도와주기 위해서 우리 곁에 와 계시고 우리 안에 와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마치 우리 어머니와 같아서 우리의 모든 잘못을 다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변호사요, 우리의 스승이요, 우리의 인도자요, 우리의 위로자요, 안내자요,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여 제가 성찬을 받을 만한 오늘 마음에 준비가 돼 있습니까? 되어있지 않으면 성령께서 준비시켜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내 마음속이 고요하고 잠잠하게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 이것을 모두다 회개하고 청산하고 난 다음 마음에 준비가 된 상태에서 주의 성찬에 참여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찬을 장난삼아 참여했다가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약해지고 병들어지고 그리고 죽기까지 하는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고린도 교회가 그렇게 하다가 심판을 받은 것이요, 그로 말미암아 사망과 저주가 먹장구름 같이 그들의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에 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이 시간에 이 성찬이 심판 받는 성찬이 되지 말고 무궁 무진한 삼박자 축복을 받고 오중 복음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은총의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이 성찬이란 것은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을 주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 우린 그 사실대로 전도하는 위대한 복음 선언이요, 신앙 고백의 시간이 되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신앙을 철학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 돌려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신앙을 하나의 학문의 대상으로 삼아서 철학적인 희롱의 대상물로 삼으며, 형이상학적인 논쟁의 대상으로 삼아서 그래서 사람들에게 구원이 절실하게 예수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성찬은 구원이란 것은 저 공중에 뜬 철학이나 형이상학적인 논쟁이 아니라 현재 그 몸이 깨어지고, 현재 그 피가 쏟아지고, 그 몸을 내가 먹고, 그 피를 내가 마시고, 그리스도와 나 사이에 이 피의 언약의 관계 속에 들어간다는 절박하고 현실적이며 역사적인 이런 체험과 신앙과 이 신앙 고백을 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주의 죽으심을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 성찬을 통해서 우리는 보존합니다.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논란에서 이 복음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종교에 불과 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윤리적 종교요, 도덕적인 종교라면 오늘날 그리스도보다도 오히려 동양의 유교가 더 우수할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동양의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의 윤리나 도덕적인 철학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빼버리고 거기에 흘리신 보혈의 능력을 빼버리고 하나의 윤리적인 종교로, 철학적인 종교로 사람들에게 윤리나 도덕이나 수양을 가르치는 종교로 전략시킬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교회에 왔다갔다해서 선한 행위는 배우나,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성찬은 바로 그와 같은 윤리와 도덕일변도의 종교로 우리 신앙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깨어진 몸을 먹고 흘리신 피를 마셔서 십자가 밑으로 우리를 끌어오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여러분 종교적이고 이상주의에 떨어지지 않게 기독교를 현실적인 십자가 구원의 종교로 지켜지는 것이 바로 이 성찬의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기독교의 정신을 살려서 '이 정신을 가지고서 사회 개혁에 사용한다, 세계 개혁에 사용한다' 그래서 사회 복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무슨 역사적인 변혁을 가져오는 종교니, 정치종교니, 이와 같은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물론 그리스도 정신으로 말미암아 사회 정의를 가져와야 되고 또 세계가 평화 가운데 하나가 되도록 노력해야 되겠지 마는 그리스도의 근본적인 신앙은 죄인으로 하여금 십자가 밑에 나와서 예수와 만나게 하는 이것이 근본적인 목적인 것입니다. 이 근본적인 목적을 잃어버리고 난 다음,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무슨 사회를 개혁하고, 사회 정의를 가져오고, 그리고 평등한 사회를 가져오는 이런 운동을 전개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려면 우리는 잘못된 길로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필요 없다고 저는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그런 것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앞서서 죄를 짓고, 불의하며, 추악하고, 버림받아 영원히 멸망할 영혼을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영혼은 영원하지만 사회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영혼은 영원하지만 국가도 일시적인 것입니다. 영혼은 영원하지만 세계 역사도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한 영혼이 온 천하 보다 귀하다는 것은 사회도, 국가도, 역사도, 한 시간이 지나가면 사라져 버리고 말지만, 한 영혼은 영원무궁토록 천국에 가서 살던지, 그렇지 않으면 지옥 불에 불타던지 해야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은 인간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한 개인의 영혼의 구원은 사회보다 중하고, 국가보다 중하며, 영원한 세계보다 중한무게를 가지고 주님께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 사업이라는 것은 이 죽어 가는 영혼을 십자가 밑에 와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갈보리 십자가를 떠나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를 흘려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셔서 우리의 모든 죄와 불의, 흉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갚아 주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떠난 신앙이란 구원이 없습니다. 가인의 제단과 아벨의 제단을 보십시오. 가인이 세운 제단은 가인이 자기 손으로 노력해서 얻은 곡식을 잔뜩 쌓아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었으나 성령의 응답이 없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제단을 쌓고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을 것을 상징하여 어린양을 잡아 죽여 피를 흘려서 제물을 드리니 그 위에 하나님의 성령의 불의 응답이 임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십자가를 제쳐놓은 신앙인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없고, 세상의 영, 마귀가 그곳에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십자가 이외에 여러분과 제가 구원받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보혈 이외에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앞에 나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으며 성경에는 또한 "피 흘림이 없은 즉 죄사함이 없느니라"고 말했으므로 여러분과 저의 복음 증거는 자나깨나 예수 중심, 십자가 중심이 되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성찬 앞에 선 것은 바로 이와 같이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을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이 되지 않게,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종교로 전락하지 않게, 또 종교적 이상주의에 떨어지지 않게 십자가 밑으로 끌어오기 위해서 하나님이 성찬을 갖다놓고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나의 죽음을 절실하게 증거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에 동참하고 오늘 이 시간에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오늘 이 십자가를 가슴속에 깊이 받아들이는 동기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찬은 위대한 기념 행식인 것입니다. 이것은 2천년 전에 갈보리 산에서 일어났던 일대 역사적, 변혁적 사건을 오늘날에 와서 다시 체험하고 예수님 십자가 고난이 가져다준 중생, 성령 충만, 병 고침, 가난과 저주에서 해방되어 형통을 얻는 축복과 다시 우리를 데려오실,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 오중 복음을 이 자리에서 체험하는 의식이 바로 성찬 의식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이와 같은 십자가를 통한 대속의 은총이 이 성찬을 통하여 여러분의 생각을 꽉 채워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완전히 점령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것도 여러분께서 믿음의 생각을 가득히 채워서 하나님 앞에 올바른 생각으로 입을 열어 기도할 때 주님께서 채우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찬 앞에 우리는 모여서 생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 떡이 왜 날 위해서 떼어지는가'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의 연약과 질병을 대신 짊어지고 나의 저주를 대신 짊어진 이 떡이로다' 생각하고 그 생각을 받아먹고서 여러분의 생각이 변화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잔 앞에 여러분은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잔이 왜 나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렸는가를 생각하고 이 생각을 마셔들여서 여러분께서 죄 사함을 받고, 용서받고, 의로움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고, 천국 상속자가 된 것을 생각으로 마셔 들여야 될 것입니다. 이 성찬 앞에서 우리의 생애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계명이 어긋난 삶을 살지 않았는가, 성령의 음성을 거역하고 살진 않았는가, 양심을 짓밟고 살지 않았는가' 성찬 앞에서 엄숙하게 생각해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은 청산하여 뒤로 던져 버리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될 것입니다. 이 성찬 앞에서 '내가 진실로 복음을 올바르게 믿었는가' 생각해 보는 시간인 것입니다. '예수 중심의 복음인가, 진실로 십자가 중심의 대속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내 마음 속에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십자가 중심의 올바른 신앙에 섰으면 여러분의 생애 속에 오중 복음과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게 되는 삼박자 축복의 길을 이 성찬을 통해서 달려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성찬은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에게 주신 위대한 축복의 잔입니다. 변화 받는 잔입니다. 새 생명을 얻는 잔입니다. 성령의 불이 여러분에게 임하게 하는 잔인 것을 알고 성찬 앞에 옷깃을 여미고 새로운 위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체험과 동기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시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에 사는 우리들에게 하늘 양식을 먹고 하늘 음료를 마시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저 안에 거하나니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사는 것처럼 나를 먹는 자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나이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그 피를 마시고 그 의미 속에 들어가서 위대한 새로운 변화가 개인, 가정생활에 나타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