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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7월 3일 주일 예배 성경말씀: 요한1서 4장 16∼19 설교제목: 두려움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두려움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두려움은 인간의 마음에서 평안을 빼앗고 기쁨을 멸해버리고 맙니다. 두려움은 인간의 생명을 위축시키고 믿음을 짓밟아 버리며 소망의 등불을 꺼버리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지 안았다고 디모데후서 1장7절에 이렇게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바로 마귀가 갖다주는 파괴적인 심정인 것입니다. 그 때문에 두려움에는 무서운 고통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치고 그 마음속에 고통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인류에게 처음으로 두려움이 다가온 것은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자 그때 비로소 두려움이 들어와서 아담이 하와와 함께 저 나무 뒤에 숨고 그들은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에 오셔서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에 있느냐'고 했을 때 아담은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인간에게 들어온 두려움은 인간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들어온 저주요, 고통이요, 절망인 것입니다. 그 날 이후로 오늘날까지 두려움은 창고라는 유행병같이 우리들의 생명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주님께서 무려 80번 이상으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주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80번이나 성경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두려움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그 정체를 밝혀 놓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그 두려움을 처치해야 되겠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인 두려움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내적인 두려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인간은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 맘속에 있습니다. 월남 전쟁 때 월맹군에 포로가 되었던 미군 조종사들의 증언에 보면은 그들이 가장 무서운 고문이 독방에 감금한 것이었다고 말했었습니다. 아무 사람하고도 대화를 할 수가 없고, 누구도 말을 붙여주지 않는 좁은 독방에 캄캄하게 해놓고 난 다음에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석 달이고, 그대로 내버려 놓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앙이 없는 사람 치고 정신적으로 미처 버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내적 두려움 속에는 마음속에 고독의 두려움이 뚜렷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노년의 세월이 두려운 것은 왜 그런지 압니까? 노인이 되고 인생 은퇴를 하고 난 다음에 이제는 젊은이들 사회 속에서 떠나버리고 맙니다. 사회는 나를 옆으로 제켜놓고 그냥 전진하고 나 혼자 홀로 외롭게 던지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고독하게 된다는 것, 이것이 노년의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하나의 증상의 하나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인간들은 고독하면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보십시오. 오늘날은 도시화되고 산업화되어서 옛날에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고 알던 이웃끼리 살던 농경 생활과 함께 한 생활이 다 떠나고, 서로 경쟁하고 서로 물고 찢는 도시화, 산업화 생활 속에서 같이 살아도 몇 달이 지나도록 이름도, 주소도, 얼굴도 모르는 이러한 삶을 살 때 우리는 무서운 고독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없는데서 느끼는 고독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데도 가슴을 저미는 고독을 느끼며 인생들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가장 무서운 질병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소외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소외된다는 것은 따돌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그렇기 때문에 서로 인정해주고, 인정을 받고, 용납 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일가 친척 간이라도 소외되어서 따돌림을 받으면 그 마음 속에 고통이 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따돌림을 받을까 싶어서 크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사회 단체에서 소외되고 따돌림 받을까 싶어서 사람들은 자기가 원치 않은 일도 사회 단체에 용납되기 위해서 일을 합니다. 여러분, 어린 아이들이 실제 집에서는 그렇지 않은데도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려서 담배도 피고 술도 마시고 그리고 패싸움도 합니다. '네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하는가? 너는 집에서 곱게 기른 아들이요, 그럴 수가 없는데 왜 그러냐?' 부모가 탄식합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은 친구를 잘못 사귀면 그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고 용납을 받지 못하고 따돌림을 받을까 싶어서 두려워해서 그 친구들이 원하는 데로 함께 따돌림을 받지 않으려고 담배도 피고 술도 마시고 주먹질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자녀를 기르는 사람은 좋은 친구들과 자녀들이 교제하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은 부모로서의 정말 해야될 중대한 책임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그 다음 또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버림받는 두려움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가장 고통을 받으신 때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았을 때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한 몸에 짊어지고 대속할 때 주님께서 예수님을 버리셨습니다. 하늘도 땅도 다 예수님을 버려버렸었습니다. 이러므로 해가 빛을 비추지 아니하고 그리고 온천지가 어두워졌었습니다. 이럴 때 예수님은 그 고통의 극한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버리움에 대한 두려움이 예수 그리스도의 온 영혼을 전율하게 흔들어놓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오늘날 이 세상에 살면서 부모, 부부, 처자, 이웃 그리고 사회에서 버림받게되는 두려움이 가슴속에 응어리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면 마음에 고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독 할 때 고통이 다가오고, 소외될 때 고통이 다가오며, 버림받을 때 고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이와 같은 내적인 두려움에서 해방된 삶을 살아야 될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 분명하게 말하기를『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두려움은 형벌을 받는 것처럼 고통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내적인 이 두려움을 무엇으로써 해소할 수 있겠습니까? 이 내적 두려움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음속에 개인의 구주로 모셔들일 때 여러분,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과 제 속에 성령으로 와서 거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품에 품어줄 뿐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저의 속에 와서 내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나와 하나가 된 교제 가운데 들어가게 될 때, 고독은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화가 없을 때 고독한 것인데 전지 전능,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과의 대화가 이루어지게 되자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의 가슴속에 고독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다가오는 고독이란 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의 교제 속에서 능히 다 극복해 버리고 말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한 그 사랑이 넘쳐남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그 사람은 손을 뻗어서 고독한 사람들을 붙잡아주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는 마음속에 자원을 가질 수가 있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고독을 이기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소외감에서 완전히 제쳐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소외감이라는 것은 빼돌림을 당하는 것인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품에 안겨버리고 맙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음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온가족이 나를 소외해 버리고 온 사회가 나를 소외해 버리더라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내가 돈 있고, 지위가 있고, 명예가 있으면 일가 친척, 친구들이 모여듭니다. 그러나 내가 고독해지고 외로워지면 이 사람들 다 추풍 낙엽같이 떨어져 가버리고, 정말 소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길거리에서 만났어도 외면하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죄짓고 불의하며 추악하고 버림받아야 마땅할 소외된 인간들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시면서 받아 주시고 품어주시고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 날에는...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이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든 소외감이 다 사라집니다. 온 세상 다 날 버려도 주는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이러한 심정이 생기기 때문에 오히려 소외된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함께 우리는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만이 이 세상에 나가서 저 버림받은 사람,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감옥에 있는 사람, 헐벗은 사람들을 나가서 그들을 거두어주고, 그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을 사랑해 줄 수 있는 것은 내가 스스로 소외감에서 이겨놓았기 때문에 소외된 사람들을 돌봐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오면 우리는 버림받은 감정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 안에서는 버림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8장 38절로 39절을 보면『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천하 무엇이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여러분과 저를 끊을 힘이 이 우주에는 없습니다. 이러므로 우린 버림받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버려도 하나님은 우리를 덥석 품에 안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안아 주고,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면 세상 사람이 아무리 버려도 나는 버려지지가 않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속에 버림받은 감정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밝고, 맑고, 환한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랑 속에 믿음이 생기고 소망이 생깁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마음의 자세가 생깁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내적인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나면 우리의 마음속에 고통이 사라지고 내적으로 믿음, 소망, 사랑과 함께 평안과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토록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영양 실조에는 걸리지 안았을지는 몰라도 내적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내적으로 불안합니다. 내적으로 두려워합니다. 내적 고통의 상황 속에 있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평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면 비록 온 세상은 나를 고독에 몰아넣고, 소외시키고, 나를 버린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용납 당하여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행함으로 소외되지 아니하고, 따돌림 받지 아니하며,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도 그리스도 안에서 버리지 아니하는 하나님께서 끝까지 나를 붙들어 줌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우리는 나가서 고독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돌봐주고, 그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줄 수 있는 치료받은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나사렛 예수를 모셔들이십시오.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안에서 이 시간에 여러분 앞에 손을 내밀고 여러분을 붙잡길 원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인생에 대한 두려움은 자리에 대한 두려움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름철에 한번, 들로 나가보십시오. 여름철엔 별로 새들이 지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봄철에 나가면 그렇게도 요란스럽게 새들이 즐깁니다. 까치가 '까악까악' 거리고, 까마귀는 '까옥까옥' 하고, 뻐꾸기는 '뻐꾹' 하고, 참새는 재잘거리고, 봄철에는 그렇게 새들이 요란스럽게 고함을 치다가 여름이 되면 잠잠하고 가을이 되면 더 잠잠합니다. 왜 그럴까요? 박물학자는 말하기를 봄철엔 새들이 모두다 둥지를 트려고, 그래서 경쟁적으로 이것이 자기 자리다, 자기 집이다, 자리다툼을 한다고 그렇게 요란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봄철에 자기 자리를 다 만들어놓고 나면 여름철엔 새끼를 까고 그리고 가을은 다 커서 나가 버리니까 조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연도 자기 자리차지 하려고 서로 다투는데, 인생에서 가장 두려움은 자리를 잃어버리는 것이 크나큰 두려움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리를 잃어버릴까 해서 두려워하고,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자리를 얻은 사람은 누가 빼앗을까 두려워하고, 그러므로 자리에 대한 두려움은 여러분과 저의 일생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내 영혼이 거처할 육체, 즉 내가 가장 근원적인 자리인 육체를 상실할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느 누구든지 병들까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사고가 나든지, 전쟁으로 육체를 상실할까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영혼은 이 육체를 자리 삼고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자리가 약하면 불안합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그리고 이 육체가 병들어 드러누우면, 육체를 잃어버리면 영혼이 떠나가야 되기 때문에 이 육체의 자리를 잃어버릴까 싶어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누가 육체를 잃어버릴까 싶은 이 두려운 자리에서 우리를 구출해 줄 수 있을까요? 사람은 그뿐 아닙니다. 사회적인 자리를 잃어버릴까 싶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 사람들은, 초등학교에 나가는 아이는 초등학교에 공부할 자리가 있어야 됩니다. 중학교는 중학교의 자리, 고등학교는 고등학교의 자리, 그 다음에는 여러분, 재수생이 되어 떠돌아다니는 사람은 자기 자리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재수생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한지 모릅니다. 어느 대학인지, 또 대학의 자리를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대학을 졸업하고 나온 사람은 직장에 자리를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직장의 자리를 얻지 못하고 빈둥빈둥 놀게 되면 그 마음속에 불안과 고통은 말로 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직장의 자리가 있고 나면, 또 그 앞에서 사회적인 자리를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회에서 선배, 후배 또는 상사, 하사의 자리를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자리를 얻기 위해서 불안에 떨면서 투쟁을 하고, 자리를 얻으면 또 그 자리를 빼앗길까 싶어서 전전긍긍하는 것입니다. 자리에 대한 불안, 자리에 대한 두려움, 이것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여러분 우리가 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시기를『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고 말하셨으니 사랑 안에서 이 자리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사랑 안에서 이 자리에 대한 두려움이 해소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 영혼이 거할 육체의 자리에 관한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육체가 병들어서 죽어가는 고통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그 사역의 3분의 2를 통해서 사람들의 육체의 병을 고쳐줌으로 말미암아 육체의 자리를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열두 제자와 칠십 제자에게 병을 고치라고 하셨으며, 주님께서는 마지막 승천하실 때 최후의 명령으로써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고 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의 육체를 고쳐줌으로 말미암아 내 영혼이 거할 자리, 육체가 병들어 고민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어떠한 질병과 고통에 있을지라도 죄를 회개하고 예수께로 나오십시오. 오늘날도 주님께서 여러분을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고나 전쟁으로 말미암아 육체를 상실할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을 믿고 주께 내어 맡긴 사람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면 머리털 하나라도 상처 입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제가 주님을 의지하고 믿고 순종하고 산다면 주님께서 때가 이르러 우리를 데리고 가실 때가 오지 않은 이상은,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보호하고 지켜주심으로 어떠한 사고나 어떠한 전쟁이라도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아 갈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셨으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내어 맡기면 하나님의 젖과 꿀이 흐르는 그 가슴속에서 우리는 자리의 불안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누가 밥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직장을 하나 할 것인가? 성경은 말씀하기를『..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우리 아버지의 손길이 우리를 돌보아주는 그 손길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 속에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살아가는 자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육체의 자리의 문제도 해결해 주시고, 직장의 자리, 사회적인 위치 등도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가장 높은 자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리를 주시고, 장차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라도 주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자리를 주시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만큼 자리에 대한 확고한 약속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더 안전하고 튼튼한 자리를 가진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높고 고귀한 자리를 가진 사람, 예수 믿는 사람 밖에 더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 셋째로 이제 가장 절망적인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 절망적인 두려움이라는 것은 죽음의 두려움인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이 세상 살다가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젊어서 죽는 사람도 있고, 늙어서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살면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때가 오면은 다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아,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처럼 인생은 다 시들고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가장 큰 슬픔과 절망이란 죽음인 것입니다. 우린 태어날 때부터 죽음의 그림자에 쫓기면서 살고, 죽음의 그림자에 끌려가면서 살고있는 것입니다. 이 죽음의 두려움, 이 두려움에서 누가 우리를 해방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죽음의 두려움은 절실하고 절박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부귀영화, 공명을 얻어서 그를 담벼락처럼 쌓아놓고 난 다음에 그에게 죽음이 다가오지 않을 것처럼 착각을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믿지 않은, 그리고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그 마음의 양심 속에, 그 잠재 의식 속에 그가 죽고 난 다음에는 무언가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 심령 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었기 때문에 모두다 하나님을 찾는 심정이 근원적으로 더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 죽음의 두려움에서 우리를 누가 건져 줄 수가 있습니까? 죽음이란 모든 있을 곳을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육체의 있을 곳도 잃어버리고, 사회적인 있을 곳도 잃어버리고, 직장의 있을 곳도 잃어버리고, 모든 것 깡그리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가장 두렵습니다. 이것은 전부 잃어버리고 내 있을 곳을 다 빼앗겨 버리고 그리고 난 다음 영원한 미지의 속으로 내던져 버리기 때문에 죽음 보다 더 몸서리치고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1절에 말씀하기를『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게 될 때, 그래서 죽음이 나의 모든 있을 곳을 다 박탈하려고 할 때, 갑자기 하늘에서 광명한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마치 스데반 이 돌무더기 속에 들어갈 때 그가 고개 들어 하늘을 쳐다보면서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고 말한 것처럼 여러분과 저에게 예수님께서 손을 활짝 내밀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여 내게로 오라 이제부터 내가 너를 영원히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주를 믿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죽음의 그 순간에 요단강을 건너가기 전에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나를 통하여 천국으로 돌아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죽음이란 것은 그 영원하고 풍성한 나의 있을 곳으로 돌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처럼 내가 있을 곳을 얻기 위해서 싸울 필요가 없고, 있을 곳을 얻어놓고 난 다음에 빼앗길까 싶어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빼앗기고 난 다음에 절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육체도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아 영원히 육체가 죽지 않습니다. 이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추한 몸이 영화론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원하기 때문에 육체를 잃어버릴 두려움이 없습니다. 천국에 가서 직장을 잃어버릴 두려움, 사회적 직위를 잃어버릴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원히 그 속에서 살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활의 아름다운 몸을 주셨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올라 쫓아 강림하실 때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하고, 살아남은 우리들도 변화되어 공중으로 끌어올리어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는 이제 영원한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바울이 담대하게 말하기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곳이 어디 있느냐"고 사망을 향하여 질매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두려움에는 형벌이 따라옵니다. 여러분의 가슴속에 두려움이 있을 때는 정신적인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오며 잠 못 이루는 그 밤에 이리 치우고 저리 몸부림을 치며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으면 식욕이 사라지고 세상 만사가 다 귀찮아지고 행복이 다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그 자체가 무서운 형벌이 되는 것입니다. 형벌이란 바로 곧 고통을 당하는 것을 의미하는 아닙니까? 오늘날 사람들이 항상 크고 작은 고통가운데 괴로워하는 이유는 그들이 끊임없이 두려움에 둘러싸여 생활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예수 믿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람이 아무리 부귀영화, 공명이 많다고 할 찌라도 이 마음속의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유한하기 때문에 언제 내 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므로, 불안과 두려움은 언제나 있고, 언제나 그 고통은 사라지지 않아서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술을 먹어 보기도 하고, 세상 쾌락을 지내보기도 하지만 그러한 것이 마음속에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오늘 나와서 날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양손과 양발에 대못을 박히시고 피를 흘려 죽으셨다가 사망의 세력을 다 철폐하고 부활한 예수께서 '내게로 오라 내게로 오라' 할 때 그 품에 뛰어들어가 안기면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품어주고 마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품어주고 내가 하나님 사랑 안에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넘쳐날 때 성경은 말씀합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넘쳐날 때 비로소 우리들은 진실로 우리 영원을 뒤흔드는 평안과 기쁨과 만족 속에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립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우리가 얻고, 그 안에서 두려움을 다 짓밟아 버리고, 파괴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두려움이 없습니다. 지금도 없고 내일도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강물처럼 출렁일 따름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 우리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사옵나이다. 오직 여호와를 감사하고 찬미합니다. 여호와를 감사하고 찬양하며,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속에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그 큰사랑에 영도 마음도 몸도 내어 맡겨버리게 도와주시옵소서. 쓸데없이 내가 인생 문제를 걸머지고 발발 떨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이기 때문에 여호와께 일을 맡겨 버리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두려움을 배제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