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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7월 10일 주일 설교 성경말씀: 누가복음 5장 1∼11 설교제목: 축복을 구하는 것은 잘못인가? '축복을 구하는 것은 잘못인가?' 이러한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날 심심치 않게 기복 신앙에 대한 비판하는 신문이나 잡지를 우리가 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아가서, 교회에서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근원적으로 잘못된 신앙입니까? 또 그렇게 가르치는 것은 신학적으로 잘못된 것입니까? 어떤 종교학 교수님은 신문에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영혼의 잘됨, 범사의 형통, 몸의 강건이라고 하는 삼박자 구원이 목사님 교회의 주된 메시지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사랑이 없다는 희생정신이나 산상보훈의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삼박자 구원이 주 이데올로기 가 될 때 기독교는 이기주의적이고 교회 중심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사회적 성숙을 이룩하지 못한 채, 소아마비를 앓은 거인 같은 괴물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즉, 뿌리가 없는 나무는 그 위 부분이 아무리 이상적이고 찬란해도 곧 말라죽는 것처럼 기독교 신앙에서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서 가장 기초적이고 근원적인,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한 축복의 체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나아가서 남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의 자원을 갖지 못하게 되고, 그리고 사회적인 성숙을 이룩할 만한 그러한 여유도 갖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삼박자 축복에 대한 말씀을 증거하고 있지만 우리 예수 믿는 신앙 전체가 삼박자 축복이라고 저는 말하지 않습니다. 삼박자 축복이란 우리 신앙을 하는데 있어서의 가장 기초적인 이데올로기입니다. 오늘날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삼박자 축복의 은혜를 받아서 이 기초로부터 이제 출발해 가지고서 우리는 십자가를 걸머지고 희생적인 봉사를 하며 사회적인 성숙을 가져오는 위대한 신앙 단계로 성숙해서 출발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우리가 농사를 지을 때 먼저 씨를 심고 나면 줄기가 나고, 잎이 나고, 그 다음에는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서 '줄기도 소용없다, 잎사귀도 소용없다, 열매만 맺어라, 열매만 맺어라'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곡식을 거두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 생활에 아직 까지도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만남을 통하여 자기의 운명과 자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 보고서 '너는 십자가를 걸머지고 희생적인 생활을 해라, 너는 사회적으로 성숙을 하라'고 아무리 두들기고 때려봤자 그것은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학자들의 탁상공로로는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실제적인 신앙 생활인 것은 여러분, 자기의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난 다음에야 남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가 있고 그리고 십자가를 걸머지고 나아갈 수 있고 사회적인 성숙을 이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여러분 성서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증거해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베드로의 체험을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졌습니다. 초저녁에도 그물을 던지고, 밤중에도 그물을 던지고, 아침 햇살이 뿌옇게 떠오를 때도 그물을 던졌습니다만,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손은 부르트고, 물은 덮어써서 한기는 나고, 굶주린 배에 시장 끼도 나고, 인생이 아주 허기가 찼습니다. 그는 낙심을 해서 햇빛을 잔뜩 않고 배를 저어서 갈릴리 호숫가에 대었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찢어진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마음속에 염려와 근심이 안개구름 같이 퍼져나갔습니다. '장모님은 지금 앓아서 드러누워 있으니 약값이 보통 밀리지 않았고, 빚쟁이는 와서 빚 달라고 할 것이고, 밥 달라고 기다리고 있는 그 처자가 있는데 이렇게 고기는 잡히지 않고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살아 갈 수 있을까?' 그의 마음 속에 염려와 근심이 가득 찼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앞세우고 모여 와서, 주님이 해변가에 오자 군중이 둘러싸므로 견딜 수가 없어서 베드로의 배에 성큼 탔었습니다. 그런 다음 배를 좀 육지에서 조금 떼게 하라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서 예수께서 군중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는데 베드로는 그 말씀이 끝날 때까지 웅크리고 앉아 있으면서 예수님의 말씀이 그 머리 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었습니다. 그는 현재의 문제가 너무 어려웠었습니다. '약값을 어디에서 마련하고 빚쟁이들을 어떻게 만나 보고 어떻게 생활을 해 나갈까?' 그래서 그 염려와 근심에 짓눌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대한 계시,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자기의 배에서 전파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기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질 않았었습니다. 한참만에 예수께서 "베드로야!" 하는 바람에 소스라쳐 놀랐었습니다. 주께서 말씀에 "베드로야,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고 말할 때 그것만은 귀에 들렸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님께서 제시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내가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잡은 것이 없으되, 선생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하면서 그가 바다에서 그물을 내려서 당겨 본즉 고기가 너무 많이 잡힌지라 자기 배에 가득 채우고도 남아서 이웃 동료를 불러서 그 배에도 가득 찼습니다. 생선이 배 안에 가득 차서 뛰는 것을 보자마자, 자기의 개인의 문제가 해결되었었습니다. 이제 빚쟁이에게 빚을 갚을 수가 있고, 자녀들을 먹일 수가 있고, 처자를 돌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즉시로 영혼의 관심사가 그 마음 속에 부딪쳐 온 것입니다. 그 뒤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계시가 그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일을 하시는 분은 보통 분이 아니다, 이러한 기적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분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자 자기 죄가 기억이 났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고기더미 위에 엎드렸었습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은 그를 통해서 예수께서 하나님인 것을 깨달아지고 비로소 우리 죄가 드러나게 되고, 회개하게되고,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계시를 받게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교회에 오자마자 교인들에게 영원한 관심사에 관해서 아무리 말해 봤자, 현실적으로 낭패와 실망을 더하고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영원한 관심사인 죄 사함과 천당과 구원과 이런 문제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같이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그는 그 가슴속에 벅차게 하늘의 계시가 다가왔고, 그래서 그는 죄인인 것을 깨닫고, 예수님께서 구주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인 것을 깨달았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배를 저어서 해변에 나오자 예수께서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니까 그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한 이후라 벌써 주님께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이 이루어져있고 자원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서 이제는 배도, 생선도, 그물도 다 내버려 던져버립니다. 주를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희생적으로 따라나서고 만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그리스도를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사회적인 성숙을 가지고서 자기 일생을 버리고서 따라나설 수 있는 이 믿음이란 것은 먼저 자기의 개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체험을 하고, 거기에서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고, 그 다음에 은혜를 받고, 그 다음에야 이와 같은 신앙적인 성숙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도 않은 신자를 데려다놓고 난 다음에 "아, 너희들은 십자가를 걸머지고 희생적인 생활을 하라" 또 그렇지 아니하면 "사회적인 성숙을 하라"고 아무리 외쳐봤자 그러한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 질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수많은 신학자들이 자꾸 우리를 보고 비평합니다. '순복음 중앙교회에서는 삼박자 축복을 증거해서 기복신앙을 조장한다. 사람들에게 교회오면 복 준다고 말해서 그래서 사람들이 알고 교회 오면 이기주의자를 만들고, 개개인의 주의를 만들고 그래서 소아마비 적인 괴물들로 만들어간다는데, 여러분 과연 우리 교회가, 우리 성도가 소아마비적인 괴물들이 되어야 하느냐, 여러분 우리가 먼저 와서 죄 사함 받고, 병 고침을 받고,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이 구주인 것을 알고, 내가 죄를 회개하게 되고, 은혜를 받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감격해져서 십자가를 걸머질 수 있는 마음도 생기고, 사회적인 성숙을 가져올 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 주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만한 그러한 위치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를 보고 그렇게 비난을 하는 사람이 많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우리교회만큼 개척 교회를 많이 세우는 교회, 우리교회 만큼 농어촌 교회를 많이 협조하는 교회, 우리교회 만큼 일선장병을 위해서 수고하는 교회, 우리교회 만큼 많은 교회를 세우고 가난하고 병들고 고아된 사람들을 위해서 협조하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평균 일년에 약 10억 이상의 돈을 사회 사업에 투자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라디오를 통하여, 텔레비전을 통하여 온 한국 강산에 복음을 증거하고, 일본과 온 미국과 온 세계를 향해서 복음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기주의적인 교회입니까? 이것이 자기교회 중심 적인 교회가 되고, 소아마비적인 괴물이 된 교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걸머지고 주를 따라가는 희생적인 성숙한 교회인 것입니다. 오늘날 이와 같이 희생적이고 성숙한 교인이 되려면 먼저 베드로처럼 빈배가 채워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자기 배가 비어 있는데, 염려와 근심이 회오리바람 치고 있는데 희생과 성숙이 거기에 따를 데가 어디 있습니까? 주의 능력이 와서 먼저 배를 채워 주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내가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체험을 하고 난 다음, 내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이제 자원이 생기면 그때로부터 주의 부르심을 받아 배도 버려 두고, 모든 그물도 버려 두고 주를 따라나설 수 있는 마음의 자신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오늘날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뭐라고 말해도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삼박자 축복이란 우리 기독교 신앙의 기초인 것입니다. 출발점인 것입니다. 출발하지 아니하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으며, 기초를 닦지 아니하고 건물을 완성할 수 없는 것처럼, 삼박자 축복을 받지 아니하고서 희생적인 십자가 짊어지는 신앙생활이나 사회적인 성숙을 가져올 수 없고, 여러분 삼박자 축복의 체험을 하지 않고 신앙의 완성이란 건물을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삼박자 축복을 받으라고 강조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삼박자 축복을 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제가 말씀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 날기 전에 먼저 기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희생적인 신앙 생활, 곧 사회적인 성숙이란 날개를 펴기 전에 먼저 내 개인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기어갈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지도 못하는 놈을 보고서 자꾸 날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러므로 우리 교회는 먼저 기는 것부터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남을 돕기 전에 벌써 내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처지에 누구를 해결합니까? 옛날 공자님도 가정을 다스리는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예수님께 나가면 우린 그리스도를 만나서 십자가에서 먼저 내가 변화된 사람이 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아담의 후예인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서 그 영이 죽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고 그 다음 육체를 보고도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육체가 병들고 늙어서 썩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은 가시와 엉겅퀴 나며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사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예인 우리들은 똑같습니다. 우리는 영혼이 죽은 상태에서 태어나고 우리의 육체는 태어날 때부터 병들고 늙고 죽어 버리고 마는 것이며, 우리의 생활은 수고와 고통 가운데, 가시와 엉겅퀴를 헤치면서 살아가는 험악한 삶을 살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들이 여러분 예수를 만날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종교적인 이상이나 철학이나 윤리나 도덕이나 사회적인 규범을 주러 오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실제적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눈물과 피와 땀과 먼지와 티끌 속에 뛰어들어와서 죄인의 죄를 실제로 용서하시고, 병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내어쫓아 주시고, 죽은 자를 살려주시며, 배고픈 자를 먹이시고 주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예수님은 급기야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높이 매달려 살을 찢고 피를 흘리신 것은, 그것은 바로 여러분과 저의 영혼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씀했을 때 성경은 말씀하기를『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죄, 우리 조상의 원죄를 다 십자가에서 청산해 버리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예수를 만나게 되면 값없이-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그대로 이지만-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옷을 벗어버리고, 의에 옷을 받아 입으며,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혼의 대속을 위해서 예수님께 십자가에 고난 받으셨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오르기 전에 빌라도의 뜰에서 형틀에 묶여서 옷이 찢어지고 등을 맞아서 갈기갈기 등과 가슴팍이 파헤쳐지고 찢어져 피를 줄기줄기 흘린 것은 성경에 말씀하기를『..그가 채찍으로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태는 마태복음 8장17절에 말하기를『(저가)..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했는데 예수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담당하신 것은 우리가 담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요, 예수께서 우리 병을 짊어지신 것은 우리가 그 병을 짊어지지 않기 위한 것이니, 이 예수를 내가 구주로 모시고 예수 앞에 나왔다면 연약함과 질병을 우린 두렵지 않게 버려야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담당한 것을 왜 내가 담당하며, 예수께서 짊어지신 것을 왜 또 내가 짊어집니까? 여러분 부모가 오셔서 여러분의 빚을 다 청산해 주었는데 왜 여러분 또 그 빚을 2차로 3차로 갚을 필요가 있나요?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여러분과 저의 육체는 치료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을 통해서 우리도 장차 부활의 영광을 얻게됩니다.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의 몸으로, 죽을 몸이 영생의 몸으로 변화 받는 이와 같은 은총도 예수를 통해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환경적인 대속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 예수께서 왜 일생을 가난하게 살았나요? 말구유에 태어나서 거기에 강보에 싸여 누이시고 그리고 그가 33세...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서 그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은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고린도후서 8장9절에『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뼈가 으스러지게 고생을 해서 재산을 모은 것은 자식들 때에는 헐벗고 굶주리지 말라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그렇게 해서 재산을 모았으니까 그 재산보고 자식도 우리 부모의 발자취 따라서 우리도 헐벗고 굶주리며 뼈가 으스러져 고생하며 살자고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깔고 그 위에 산다면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부모는 자식들이 그런 생활 아니하게 하려고 그런 고생했는데 자식이 그 부모의 은혜를 받아주지 안는다면 부모의 고생이 헛것이 되고 말지 않겠습니까? 예수께서 헐벗고 굶주린 생활을 하신 것은 여러분과 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굶주리고 헐벗은 생활을 하지 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는데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고생을 헛되게 하고 있지 않겠습니까?『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는 이 말씀은 여러분 만고의 불별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린 것, 이것도 여러분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라디아서3장 13절로 14절, 여기 주님께서 여러분 나무십자가에 못 박혀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께 저주받은 자는 나무에 매 달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로서 나무에 매달려 저주를 받으신 것은 여러분과 저의 생활 가운데 가시를 제하기 위한 것이요, 엉겅퀴를 제하기 위한 것이요, 여러분과 저의 삶 속에 저주를 제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를 받게 하려고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에는 여러분과 저의 가난과 저주에서의 대속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모르고 살아서 영혼이 죽고 육체가 병들고 생활에 가난과 저주에 짓밟힐 사람이 십자가 밑에 와서 예수를 쳐다보고 예수를 구주로 모실 때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삼박자의 축복이 넘쳐 나는 것은,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축복이 십자가에서 다가오게 되는 것이며 이것을 구하는 것은 기복 신앙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이면 마땅히 구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은 종교나 의식을 받아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에 고린도후서 5장17절에『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영도 거듭나 버리고 여러분과 저의 생활의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을 얻고 육체는 건강한 이것이 신앙 생활에 기초입니다.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이것은 내 개인에게 일어나는 하나의 기초적인 문제요, 출발점인 것입니다. 이러한 출발점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좋은 하나님인 것을 깨닫고, 예수께서 나의 구주인 것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체험을 하게되면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고마움과 감격이 마음에 꽉 들어차고 그래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나갈 수 있는 마음의 자원이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께서 날기 전에 먼저 기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처럼, 여러분께서 성숙하기 전에 먼저 개인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만나서 삼박자 축복을 통하여 문제가 해결 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총을 알아서, 그래서 이것을 믿고 순종하고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엔 잡히는 것 없어도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 하지말고 굳세게 믿고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시인하고 밀고 나가면 하나님 성령께서 함께 역사 하셔서 그 따라가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가장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앞에 삼박자 축복으로 채워놓고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여러분 새로운 사람으로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제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신앙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와 같이 삼박자 축복을 받은 것은 출발점이요, 기초입니다. 이것이 이제 서로 출발을 해야하는데 어디로 갈까요? 이제 여기에는 우리가 십자가를 걸머지고 이제는 주를 따라가는 사회적인 성숙을 이루는, 성장하는 신앙으로 출발해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기를 "순복음 중앙교회에서 는 삼박자 축복만 전하기 때문에 이기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괴물이 되어 간다고 하지만 하나 모르는 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순복음 중앙교회는 좋은 하나님과 삼박자 축복만 주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함 받으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하면 성경은 여러분과 저를 이기주의적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개인주의적으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 끝까지 나아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축복 받았으면 이웃과 나누고, 이웃과 나누면 나라와 나누고, 나라와 나누면 세계와 나누도록 성령은 이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성령의 충만함을 주장하는 것을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성령은 이기주의적인 영이 아니요, 성령은 개인주의적인 영이 아닌 것입니다. 성령은 일어나서 우리를 일으켜서 온 천하 만국을 향하여 우리의 받은 축복을 나누게 만드는 것입니다. 똑같은 요단강 물을 받는 갈릴리 호수는 거울과 같이 물이 맑습니다. 그물은 단물입니다. 생선들이 놉니다. 그 물을 대어서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요단강 물은 이스라엘이나 요르단이나 그 물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똑같은 요단강 물을 받는 저 사해는 물을 받아서 물을 하나도 안 내놓고 가두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자꾸 물은 갈릴리 호수에서 넘쳐오는데 그것을 가두어 놓고 증발만 시키고 안 내보내기 때문에 소금기가 쌓여서 바다에 소금기가 많으므로 죽은 바다가 되어서 한 마리의 생선도, 어족도 살지 아니하고 사람들이 그 속에 뛰어 들어가도 '둥실' 뜨지, 가라앉지 아니하고 그리고 그 물을 대어 놓으면 곡식도 다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죽음의 바다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똑같은 헬몬산의 눈 녹은 물을 받는 요단강 물을 받았으면서 갈릴리 호수는 살아있는 단물이 되고 사해는 죽은 짠물이 되어버린 것은, 갈릴리 호수는 물을 받은대로 내보내 주지만 사해는 받고 내보내 주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 성령께서는 여러분과 제가 삼박자 축복을 받았으면 이것을 끊임없이 내어 주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구원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끊임없이 전도를 나누어주고, 범사에 잘 되어서 축복 받은 사람들은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고, 선교사업에 드리고, 이웃과 나누어 갖기 운동을 하며, 건강해진 사람은 그 건강을 가지고서 주를 위해서 힘차게 일해서 주고 또 주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고 또 주면 하나님께서 더욱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은 점점 더 우리가 받은 것을 가지고서 남에게 나누어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십자가를 짊어지게 되고 우린 더 사회적인 성숙을 가져오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갈보리 십자가에서 얻은 축복을 온 천하 만국에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순복음 중앙교회 성도들이 삼박자 축복을 받고도 개인주의자가 되지도 아니했고 우리의 교회가 개개의 주의가 되어서 우리만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겠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막대한 빚을 짊어지고라도 한국을 복음화하고, 세계를 우리의 교구로 삶고, 천하 만국에 복음을 증거하며, 가난한 사람에게 같이 나누어주고, 우는 사람과 같이 울고, 병든 자와 같이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교회는 지금 여러분, 성령의 손을 잡고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나가며 사회적인 성숙을 향해서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모두 다 삼박자 축복을 받아들여야 되고 거기에다가 성령의 불 세례를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축복을 받고 성령의 불 세례를 받으면 이 축복을 가지고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온 천하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리고 우리는 자라고, 그리고 주의 나라가 확장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복을 구하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신앙 행위입니다. 이것은 이상하지도 않고 잘못된 점도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될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복 신앙이란 나쁘지 않습니다. 학자들이 학문적으로 이를 공격하고 연필을 가지고서 테이블에서 논란하는 것처럼 그렇게 기복신앙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기복신앙을 얻어서 자기가 복을 받은 사람이 그 다음 일어나서 세계를 향해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베드로처럼 주를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단계를 거친 후에 성장한 신앙은 나래를 펴고 희생 정신을 나타내고 사회적 성숙을 가져옵니다. 아직 (날개를)펴지도 못하는 사람보고 자꾸 날라고 하면 날개 죽지만 부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다 주님 앞에 나와서 십자가 밑에서 예수를 만나십시다. 예수를 만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용서받고, 예수 안에서 병 고침을 받고, 예수 안에서 가난과 저주를 다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고 난 다음에 거기에다가 성령의 불로 충만한 세례를 받아서, 그래서 일어나 십자가를 걸머지고 땅 끝까지 주를 따라가며 주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사회에 나가서 성숙하며 그리스도 영광을 나타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살아 계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 다 죄인들을 불러 주셔서 십자가 밑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엉망진창이 된 인간들을 십자가 밑에서 용서하시고 치료하시고 축복을 허락하여 주셔서 새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고 거기에 불로 세례를 베풀어 주셔서 성령 충만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국에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 있도록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오늘날 예수 믿지 않고 성령의 불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사옵나이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사는 사람은 얼마 있지 아니하여 육신도, 이 세상도 다 잃어버리고말고 지옥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오늘 이 시간에 아버지여, 아직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이나 타락한 사람은 그 마음을 변화시켜 십자가에 들어와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그 일생이 변화를 받게 도와주시고 성령을 받아 하늘나라를 향하는 축복의 길에 들어서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