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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983년 9월 18일 제목 : 고난이 가르치는 교훈 성구 : 롬 5 : 1 - 5 저는 여러분과 함께 '고난이 가르치는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욥은 말하기를 불티가 하늘로 올라감같이 인생은 고난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말했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는 피할 수 없이 인생에게 삼중고의 무거운 형벌을 짊어지고 살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혼의 죽음과 육체의 죽음과 생활의 저주 거기에서 파생되는 먼지와 티끌과 같은 수많은 고난 중에서 인간은 역사 이래로 이 땅에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죄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조차도 그 일생동안 고생과 고난으로 점증된 삶을 살았고 나중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시는 가장 비극적인 고난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고난은 어쩔 수 없으나 우리들은 그 고난이 우리에게 파괴적이 되게 할 수도 있고 이 고난이 우리에게 위대한 성공과 풍성한 인생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안내자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에 대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태도야말로 고난을 나의 주인으로 삼을 수도 있고 나의 종으로 삼아서 그를 통하여 위대한 인생을 살아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고난을 오히려 우리의 종으로 삼아서 그를 통하여 우리가 더욱 성공적이고 향상된 삶을 살수 있는 길을 이끌어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여러분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어떠한 마음의 태도를 가져야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면 울부짖고 원망하고 탄식하고 혹은 절망하고 낙심하여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평범한 모든 사람들이 반응하는 고난에 대한 태도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를 사랑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고난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어떠한 삶의 자세와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성경에는 야고보서에 분명히 말하기를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할 때는 우리가 기도가 부족해서 기도하라고 할 때 고난을 허락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세상에 너무 바빠서 사업한다고 정치한다고 세상일 한다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에 취해서 떨어져 갈 때 주님께서 이것이 도저히 더 이상 허락할 수 없다고 생각을 들 때 고난을 보내는 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위험이 경계 수위에 도달할 때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보내주셔서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기도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어느 사람 치고 고난이 다가오게 되면 사람들은 밖으로 향한 자기 관심을 자기 중심으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가기 전까지는 모든 세상일에 심취해서 자기 자신의 문제에 정신차릴 수가 없었으나 고난이 다가오게 되면 자기 생활을 돌보게 되고 자기가 발걸음이 잘못 되었는지 잘 되었는지를 누구를 불구하고 생각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고난 당할 때는 바로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지시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우리 고난을 통하여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내가 회개해서 잘 못된 삶을 다 청산해 버리고 예수께로 돌아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범을 배워서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의 그 길과 그 진리와 그 삶을 쫓아 우리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18절로 19절에 보면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다 의인은 고난을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 도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고난을 당하지 않은 사람도 없고 또 의인으로 의롭게 살려면 고난이 많아도 주님께서는 그 모든 고난에서 다 건져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 마음을 상하게 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며 중심에 통회할 때 주님께서 이런 사람을 멸시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또한 나아가서 고난이 다가올 때 우리는 깨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굳어진 마음을 깨뜨리기 위해서 보내는 한 마와 같은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여러분 야곱과 같은 아주 마음이 교활한 사람도 고난을 통해서 깨뜨린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형님을 팥죽 한 그릇으로 속여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었으며 아버지가 눈이 어두운 것을 기화로 에서의 옷을 입고 장자의 축복을 받고 난 다음에 형과 충동해서 형이 죽이려고 하며 외 아저씨 집으로 달아났다가 20년 동안 외 아저씨 집에 살면서 속이며 속는 교활 일변도의 삶을 살다가 나중에는 처자를 거느리고 거기에 있는 재산을 가지고 야간 도주해서 오다가 외 아저씨의 쫓아오는 군대에 잡혀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외 아저씨의 손을 피해서 그는 약봉 나루터까지 온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다시 형에게 자기가 돌아온 다는 소식을 전하자마자 형은 400인의 군대를 거느리고 20년 동안 벼르고 간 칼을 가지고서 동생을 죽이러 옵니다. 그는 너무 급박했었습니다. 그래서 형을 마음 속에 회유시키려고 짐승 떼를 선물로 미리 보내고 만을 짐승 떼를 받지 아니하면 그러면 자기의 처자를 먼저 강 건너 보내어서 처자라도 보고 마음이 녹지 않고 치기 시작하면 자기는 튼튼한 두 다리를 이용해서 도망치려는 것입니다. 짐승도 보내고 처자도 강 건너 보내고 자기는 강 뒤편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있는 교활한 야곱 이였었습니다. 밤중에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야곱을 굴복시키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굴복하지 않고 자기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교활한 지각에 의지해서 살려고 했었습니다. 밤새도록 천사와 몸부림치고 다투어도 야곱은 항복하지 아니함으로 아침이 되자 천사가 손을 들어 환도뼈를 치매 환도뼈가 어그러져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었습니다. 야곱이 마지막 의지하던 튼튼한 두 다리 달아나려는 그 다리가 어그러지매 그 때는 절망에 처하자 그는 깨어졌었습니다. 다리가 어긋남과 동시에 깨어져서 하나님께 항복했고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사기꾼이란 야곱에서 이스라엘 하나님과 다투어서 이긴 자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는 해가 떠오르매 절뚝거리면서 이제는 죽으나 사나 주님을 의지하고 약봉 나루터를 건널 때 성경을 보니 태양이 떠올랐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교활할 때는 어두운 밤을 지났으나 그가 환도뼈가 어그러져서 깨어져서 '살던지 죽던지 흥하던지 망하던지 승하던지 쇠하던지 이제는 주님께만 의지하고 나갑니다'라고 나올 때 태양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도 우리가 인생의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다 벗어버리고 인간의 의지하던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전폭적으로 주님께 나오면 오늘날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과 나를 돌보아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들은 깨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험과 환난과 고난 보낼 때는 여러분과 나의 교만과 오만과 이기주의와 자기 중심을 깨뜨려서 하나님 중심으로 서기 하기 위해서 그렇기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로 9절에 보면 그는 육체에 계실 때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으로 엮어 그의 경외하심으로 인하여 들었음을 얻었느니라 그의 아들이라도 받으신 고난이라도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아들도 고난을 통하여 순종하는 그 마음이 온전히 증명되었다는데 여러분과 나야말로 고난 통하지 않고서 깨어져서 온전한 순종 생활 속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고난은 우리에게 다가와서 여러분과 나에게 하나님의 대한 새로운 계시를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시편 29편 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를 타고 오시는 것입니다. 홍수 위에 좌정하셔서 우리에게 오셔서 왕으로 우리를 다스린 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나에게 환난과 고통이 홍수와 같이 다가오게 될 때 그 홍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수레처럼 타고 여러분과 나의 생애 속에 오셔서 하나님의 그 영광을 우리에게 새롭게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 당하기 전에 하나님을 잘 몰랐으나 고난을 당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에 대한 깊은 계시를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는 통상적으로 잘 아는 사실인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고난을 통할 때 성령님을 도우심을 구하면서 우리는 고난을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인간의 지혜나 지식이나 수단이나 노력으로 고난과 대결해서 싸우려고 하다가 고난에 지쳐서 견디다 못하여 하나님도 버리고 신앙도 포기하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박살이 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고난에서 능히 이겨 나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너희와 너희를 고와와 같이 보내놓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오리라 내가 아버지께 고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라'고 하신 것입니다. 보혜사는 헬라우로 파라클레토스 그 말을 번역하면 '돕기 위하여 부름을 받아 항상 함께 계시니'란 것입니다. 오늘날 성령께선 여러분과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보내심을 입어서 여러분과 내 곁에서 손을 내밀고 계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여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겠다'고 성령은 여러분과 나를 돕기 위해서 이 시간에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아무리 여러분과 나를 돕기 위해서 곁에 따라다닌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돕기 위해 계신 분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그리고 도움을 청하지 아니하면 도와주려고 손을 내 밀고 있어도 여러분과 나를 도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다른 점은 믿지 않는 자는 도울 자가 없지만 믿는 자에게는 눈에 안 보이는 성령 돕는 자가 여러분과 나의 곁에 계시고 우리 속에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보면 '이와 같이 우리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를 먹여주십니다. 사랑을 먹여주시고 희락을 먹여 주시며 화평을 먹여주시고 오래 참음을 먹여주시며 자비를 먹여 주시고 양심을 먹여주시며 충성의 열매를 먹여 주시며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여러분과 나의 속에 먹여주십니다. 추석이 다가오게 되면 오곡 백과 무르익고 우리 그 열매를 맛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성령의 열매를 가지고서 여러분과 나의 곁에 계셔서 우리가 성령의 도움을 구할 때 미움 대신에 사랑을 먹여 주시고 슬픔 대신에 희락을 먹여 주시고 불안 대신에 화평으로 먹여 주시고 초초한 마음 대신에 오래 참음으로 먹여 주시고 그리고 미움 대신에 자비로 먹여 주시고 악 대신에 양심으로 먹여 주시며 마음의 배반하고 싶은 마음 대신에 충성으로 먹여 주시고 마음의 성격이 급한 것 대신에 온유로 먹여 주시고 절제하지 못하는 대신에 절제로 먹여 주십니다. 이는 열매를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아먹고 일어날 때 우리는 초인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믿는 여러분 여러분과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초인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돕는 자 보혜사 성령께서 그 아홉 가지 열매를 가지고서 도움을 청할 때 신비한 능력으로 성령의 권세로 열매를 먹여 주셔서 성령의 삶을 살게 하시려고 지금도 여러분 곁에서 손을 내밀고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셋째로, 여러분 고난 당할 때 말씀의 계시 위에 굳세게 서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는 세상의 도움을 받을 데가 없습니다. 나의 실력이 벽에 부딪히고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붑니다. 친구들은 떠나가고 환경은 어수선해지고 파도가치고 모든 것이 어둡고 캄캄해 질 때가 온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무엇을 의지할 수가 있을까요? 고난 당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밖에 의지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를 보내셔서 노아와 그 여덟 식구를 그 방주에 속에 넣을 때 하나님은 방주를 만들 때 이상하게 만들게 하셨습니다. 방주 옆에 창문을 하나도 내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오직 천장에 창문 하나만 내게 한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은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 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손으로 만지는 환경에 좌우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홍수 때 노아와 그 식구가 한 사람도 홍수를 보지 못하게 하려고 노아의 홍수 올 때 방주의 옆에 창문을 못 만들게 했었습니다. 오직 공중 천장에만 창문 하나를 만들어서 아침 점심 저녁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 보좌만 쳐다보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홍수가 오기 전에 여덟 식구와 함께 일주일 전에 방주에 들어가 문을 닫았고 일주일 후에 비가 와서 온 세상이 물로서 창일 하게 되고 배가 물위에 떴지만 그 물이 ??때까지 노아와 그 여덟 식구는 홍수 중에 물 한 방울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보려고 해도 창문이 없으니까 볼 수가 없고 그 사십 조 사십 야 홍수가 온 세상을 뒤엎을 때도 오직 천장에 열린 창문을 통해서 하나님만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말씀만 바라보아야 시험과 환난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 위로 걸어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담대히 일어나서 칠흑같이 어두운 파도 이른 갈릴리 바다에 그는 용감하게 믿음으로 물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가 처음 나갈 때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의 말씀만 귀에 정정 울리게 듣고 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저벅저벅 물 위로 한참 걸어가다가 그만 베드로가 방향을 바꾸어서 예수를 보는 눈을 바람과 파도를 보고 그는 바람과 파도 소리를 들었었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 예수님과 그 말씀이 점령하지 아니하고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고 그 소리를 듣자마자 그 마음 속에 믿음 대신에 두려움이 들어오고 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두려워하자 그 즉시로 바람과 파도와 함께 그는 밀려서 물 속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는 '주여 내가 죽나이다'고 외칠 때 주님께서 그를 와서 건지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냐'라고 했는데 의심이 들어온 이유는 환경을 바라볼 때 의심이 들어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말씀 하는 것입니다. 예수와 말씀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환경을 바라보면 두려움이 여러분 마음 속에 들어오고 되고 두려움은 믿음의 반대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며 고통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께서 위대한 섭리의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하늘 열린 창문인 말씀 중심으로 여러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둡고 파도가 요란스럽게 쳐도 하늘을 향해서 열린 창문인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약속 위에 굳세게 서서 그 말씀을 주장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고 그 말씀을 따라 나갈 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고 좌우의 날씨 어떤 것보다 예리하여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위대한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은 일지면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역사와 운명적인 추장 자이신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과 나를 붙들어 주기 때문에 환난과 시련 통할 때 말씀의 계시 위에 굳세게 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로, 여러분께서 고난 당할 때 마음 속에 슬퍼 탄식하지 말고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지만 우리가 항상 마음 속에 기뻐한다는 것은 밝고 맑고 환한 마음의 긍정적인 기대를 가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절망이 다가올 것을 알고 있으면 기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뻐한 다는 것은 로마서 8장28절을 믿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협력하여 좋은 일도 협력하고 나쁜 일도 협력하고 성공도 협력하고 실패도 협력하고 건강도 협력하고 병드는 것도 협력하고 그래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우리가 믿을 때 고난 당할 때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잠시 고난과 환난의 소용동이 속에 있지만 얼마 있지 아니하여 이것이 합동하여 유익이 되어 나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수를 놓는 자매 님이 수를 한참 놓을 때 그 뒷면에 보면 푸른 실, 빨간 실, 무슨 노란 실, 흰 실이 엉망으로 얽혀서 나갑니다. 그것을 보고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수를 다 놓고 난 다음 수틀을 탁 들춰놓으면 정말 아름다운 시냇물이 흐르고 꽃이 피고 나비가 날고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그림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고난 당할 때 우리는 울긋불긋한 실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의 실이 얽히고 설 켜서 나갈 때 우리는 그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환난과 고난의 실을 통하여 아름다운 인격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이것을 알고 우리는 믿음으로 기뻐해야만 할 것입니다. 고난 당할 때는 점점 사람들이 자기에게 없는 것을 생각합니다. 이제는 희망도 없다. 친구도 없었다. 돈도 없었다. 지위도 없다. 건강도 없어졌다. 사랑도 없었다. 없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환난 당할 때 없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있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것을 생각해야 되고 그 아들 예수님 구원이 있는 것을 생각해야 되고 성령 보혜사가 계신 것을 생각해야 되고 내가 영생을 얻는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충만히 받은 것을 생각하고 그리고 죄 사함 받은 것을 생각하고 내 앞길에 천국의 영광이 있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할 때 주님은 주십니다.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자는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는 자들에게는 달을 주시고 달을 보고 감사하면 태양을 주시고 태양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천국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있는 것조차 빼앗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고난은 반드시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함이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환난이 다가오면 인내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인내란 것은 강인한 힘이란 것입니다. 사람이 시련과 고난을 통해야 그 신앙이 인내를 얻어서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운동 선수가 열심히 뛰어야 강한 심장을 그래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역기 선수가 무거운 것을 늘 들고 놓고 고난을 육체에 주어야 그 육체가 인내를 얻고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의 신앙은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강인하게 되기 때문에 주님께서 큰 일을 맡기기 전에는 반드시 시험과 환난의 고난을 통해서 강인한 신앙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고난이 다가올 때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기 위해서 강인한 신앙의 인격을 양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인내는 연단을 가져옵니다. 연단이란 경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일선에 나가기 전에 군대에 나가면 훈련소에서 굉장한 연단을 시킵니다. 포복을 하고 산 위에 뛰어가고 찬 물 속에 뛰어 들어가고 뒹굴고 총을 쏘고 이런 연단을 통해서 경험을 얻어놓으면 그 사람 일선에 가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죽지 아니할 확률이 많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여러분과 나에게 많은 경험을 쌓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나중에 더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이를 능히 감지하고 이겨나갈 수 있는 실력자가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경험을 많이 해면 그 다음에는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주시매 소망은 뭐냐 이렇게 해서 연단 되고 그리고 힘있는 신앙을 가지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더 나은 소망은 주는 것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년 달 보다 내년은 금년보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소망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신학교 졸업하는 학생들이 제게 와서 한 번씩 인터뷰하기를 다 원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큰 청혼의 꿈을 갖고서 우리도 나중에 순복음 중앙 교회와 같이 큰 교회를 세워서 목회를 하겠다고 아주 마음속에 각오를 합니다. 나는 그런 각오를 다 갖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모두다 그러한 놀라운 꿈을 갖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가 한마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순복음 중앙 교회와 같은 큰 교회의 목회를 하기 전에 우리 주님께서는 이러한 목회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수많은 고난과 환난을 통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밥을 먹게 하고 환난의 눈물을 울게 하고 잠 못 이루는 밤에 몸부림치게 하고 이래서 고난을 통해서 인내를 배우게 하고 인내를 통하여 연단을 시키고 연단을 시키고 난 다음에 이와 같이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고난의 대가를 지불하지 아니하고서 큰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형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솔직한 인간으로서의 고백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25년을 겪어온 이 과거를 다 알고 난 다음에 현재 하나님께서 재출발을 시켜서 '너 다시 25년의 길을 걸어오면서 지금과 같은 큰 교회를 세우라'라고 한다면 저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 빌고 '날 대신 다른 사람으로 세우십시오. 나는 조그마한 그릇의 조그마한 집 먹고 천당 갈랍니다.' 그렇게 말하고 말 것입니다. 왜? 걸어온 길을 돌아 볼 때 원망하고 후회할 것은 없지만 너무나 많은 시험과 환난 죽음의 고비 환두뼈가 어그러지는 체험을 했기 때문에 다시 이 길을 돌이켜 걸어오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왜냐 그러나 이 시험과 환난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그릇을 준비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시험과 환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경을 통해서 주께서 사용한 사람치고 시험과 환난을 안 통한 사람을 보았습니까?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수없이 많은 시험과 환난을 그는 25년 동안 통했었으며 야곱은 20년 동안 고난을 통했었으며 요셉은 13년 동안 감옥살이에 종살이했으며 모세는 40년 광야에서 버림받은 슬픔과 고통을 당하고 난 다음에 깨어지고 연단 받은 그릇을 만들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위대한 소망을 심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과 고난 다가올 때 '나는 버림받았다. 나는 절망이다. 나는 죽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 더 위대한 소망을 창조하기 위해서 그릇을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 당할 때 낙심하지 말고 즐거움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저는 저의 신앙 생활을 통하여 과거를 돌아볼 때 가장 추억되고 그 결과적으로 가장 유익을 가져올 때가 고난을 잘 통과했을 때인 것입니다. 고난만큼 저의 인생을 새롭게 하고 발전시키고 더욱 성화 시키고 승리롭게 한 것은 없었습니다. 이러므로 고난은 여러분과 나를 멸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나에게 더 위대한 삶을 형성시키기 위해서 더욱이 위해서 보낸 종에 불과한 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는 사람 치고 고난을 당하지 않은 사람 없습니다. 더구나 예수 믿는 사람이 고난을 당하지 아니하면 그는 사생 자요 버림받은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받으시는 자식마다 채찍질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제 2부 예배 출석한 우리 성도들 도와 주셔서 고난 당할 때 회개하는 기회로 삼게 도와 주시옵시고 깨어지는 기회 삼게 도와 주시옵시고 더 위대한 하나님을 체험하는 기회로 삼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또한 고난 당할 때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상처 없이 승리로 고난을 통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고난 당할 때 말씀 위에 서서 요동치 않는 신앙의 연단을 얻게 도와 주시옵시고 고난 당할 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의 자세로서 기뻐하며 지나가는 우리들이 다 도와 주시옵소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가져오고 이 소망을 통해서 하나님은 더 위대한 삶을 선물로 준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