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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983년 10월 2일 제목 : 무엇이 진정한 십자가인가? 성구 : 마 10 : 34 - 39 "무엇이 진정한 십자가인가?"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 자기 십자가일까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와야 주님께 합당하다고 말씀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육신의 병의 들려 고통 당하고 있으면서 이 육신의 질병의 내게 십자가라고 말합니다. 과연 질병이 십자가일까요? 또 어떤 사람들은 생활의 빈곤을 십자가라고 합니다. 적빈하고 가난해서 헐벗고 굶주리면서 이 빈곤은 나에게 십자가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런 것이 십자가가 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 인생에 부딪쳐 온 여러 가지 고난을 십자가라고 말하면서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진정한 십자가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신앙 생활 중 진정한 십자가는 반드시 짊어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아닌 것을 십자가로 오인하고 헛된 고난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진정한 십자가인가? 어떤 고난은 십자가가 아닌 고난도 있고 다른 고난은 십자가의 고난도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우리가 짊어져야겠지만 십자가가 아닌 고난은 우리가 단호하게 물리쳐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간에 첫째로 무엇이 십자가가 아닌가부터 먼저 알아봅시다. 예수님께서 대속하신 은혜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 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여러분과 나를 면해 주기 위해서 당신이 직접 십자가를 걸머지고 몸을 찢고 피를 쏟아서 값을 지불한 것 그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십자가가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죄,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담으로부터 유전되어 온 그 원죄까지라도 예수님께서 다 짊어지고 주님이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죄를 짓고 난 다음에 그 대가로 다가오는 고난을 받으면서 이는 십자가의 고난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얼토당토 안한 말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말입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께서 홀로 전적으로 짊어져서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만이 우리의 구원의 바탕이 되고 우리의 의지할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십자가를 통해서 청산해 주셨으므로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죄가 십자가가 될 수 없습니다. 죄는 예수 믿고 용서받고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청산해 버려야 되지 이는 십자가로서 걸머질 성질이 못됩니다.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아 당하는 고통은 십자가 고통이 아닙니다. 그 다음 질병으로 당하는 고난도 십자가 고난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병들어서 고생하면서 이것이 나의 십자가라고 말하는데 천만에요. 이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왜? 십자가는 주님께서 짊어지고 따라오라고 하셨지 벗어버리고 따라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내게 따라오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는다고 말했는데 십자가 같으면 병을 짊어져야죠. 병이 십자가 같으면 여러분 병원에 가면 안됩니다. 주님이 짊어진 십자가를 의사보고 내러달라면 어떻게 합니까? 병이 십자가이면 약 먹으면 안됩니다. 십자가는 걸머지라고 준 것인데 이것을 약을 먹어서 벗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만일 진정코 병이 십자가이면 일평생 짊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게 합당치 않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병은 십자가가 아니고 병은 원수가 갖다주는 것이든지 혹은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님께 매맞는 것이지 십자가는 아닙니다. 이러므로 병은 없애버려야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그의 사역의 삼분지 일을 병 고치는 데 사용하셨으며 12제자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치고 너희는 귀신을 쫓아내고 문둥이를 깨끗이 하며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라고 말씀하셨으며 주님께서 70인의 제자들에게도 둘씩 둘씩 보내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너희에게 내어 주는 것을 먹고 그 가운데 있는 병을 고쳐주라고 말씀하셨으며 마지막 부활 승천하시기 전에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말씀하셨으며 야고보를 통해서 야고보서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는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말씀하시므로 병은 십자가가 아니라 병은 고침을 받아야 할 것이요 옮겨 버려야 할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주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병을 짊어지고 가셨으며 우리 연약함과 병을 다 청산하신 주님이기 때문에 우리는 병을 십자가로 받아들여서 걸머지고 가서는 안됩니다. 병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 다음 특별한 이유 없는 궁핍도 십자가가 아닙니다. 여러분 특별히 이유가 있는 궁핍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유 없이 게을러서 가난하다든지 자기가 잘못해서 실패해서 가난하다든지 극심한 궁핍에 있어서 "이것은 나의 십자가이다. 가난하고 헐벗은 것은 나의 십자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절대로 궁핍이 십자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33년 동안 적빈한 삶을 사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산새도 집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궁핍한 삶을 주님께서 사신 이유는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사도 바울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저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저희 가난하심으로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게 하심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께서는 궁핍을 당신의 가난한 일생의 생활을 통해서 청산하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궁핍을 걸머지고 난 다음 주님이 짊어 주신 십자가라고 말하는 것은 대단한 잘못인 것입니다. 궁핍은 주님께서 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한다고 말씀하셨으며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므로 우리가 무엇이 있어서 주기를 주님께서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믿고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면 믿음의 씨앗인 십일조를 심고 주님께 헌물을 심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면 주님께서 그 씨앗을 통하여 30배, 60백, 100배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고 거두는 법칙입니다. 이 세상에 농부가 들에 나가서 씨앗을 심지 않고 거둘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십일조라는 것은 하나의 추수를 위한 씨앗인 것입니다. 주님께 우리의 십일조를 드리고 헌물을 드리는 것은 믿음으로써 추수를 위한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십일조가 구원과 관계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믿음의 씨앗을 심고 나면 그 씨앗을 통해서 주님께서 30배, 60배, 100배로 추수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을 대속한 것을 믿고 좋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기대에 꽉 들어찬 소망을 가지고 우리가 믿음을 씨앗을 심고 나면 우리 주님께서 궁핍을 면하게 해 주셔서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고 남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게 만들어 주어서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특별한 이유 없이 궁핍을 당하면서 십자가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짊어 주신 십자가가 아닌 것입니다. 또 생활에 낭패와 실망을 당해서 패배적인 인생이 되고 난 다음에 이것이 나의 십자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여러분 그것도 십자가가 아닙니다. 왜? 주님께서는 주를 믿는 사람들이 낭패와 실망을 당하여 패배적인 인생이 되어서 아웃에게 조롱이 되고 국가에 짐이 되는 그러한 인생이 되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혈로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낭패와 실망을 당한 버림받은 인생이 되고 혹은 마약중독자, 알코올중독자가 되는 것이 절대로 주의 뜻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저주에서 해방된 사람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하므로 우리 주 예수께서 여러분과 나의 절대적인 실패의 인생을 사는 저주에서 우리를 값주고 사셨다고 했는데 그러므로 주님께서 값을 주고 사주신 것을 누리지 못하고 그 저주를 걸머지고 이것이 나의 십자가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오해인 것입니다. 저주를 받아 실패한 인생을 사는 것은 십자가가 아닌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예수께서 그 몸이 깨어져서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대속하시고 우리를 건져내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통하여 우리를 거듭나고 성령 충만을 받고 우리는 병에서 고침을 받으며 우리는 형통의 축복을 받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매일 같이 영혼이 잘되면 그로부터 넘쳐 나오는 주님의 은총이 범사도 형통하게 하고 강건하게 하는 이런 축복이 다가오는 것은 우리의 성경에서 세계 역사 속에서 우리의 개인 경험 속에서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이와 같은 것들이 십자가는 아닙니다. 이런 것은 마귀가 가지고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부정적인 파괴적인 것입니다. 그럼 둘째, 진정한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십자가며 우리가 벗어버리려고 하지 말고 걸머지고 끝까지 주님께 따라가서 합당할 것인가? 여러분 십자가라는 것은 사형 틀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죽는 것입니다. 유대 나라에도 나무에 매달린 것은 저주받은 사람을 나무에 매달고 로마의 법에서도 가장 극악한 죄수를 매달아 죽이는 형틀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매달려 죽는 형틀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매일같이 자기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고 극복하는 생활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라고 하니까 거창한 생각만 하지 마십시오. 매일같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내 뜻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주의 뜻을 따라 사는 이것이 여러분과 나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내 뜻은 거짓말을 하고 싶은데 주님의 뜻을 참말을 하라고 한다. 그러므로 내 뜻대로 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받아들여서 내 뜻을 십자가에 목 박아 버리고 주의 뜻을 따라갈 것인가? 여기에서 내 뜻을 따라 거짓말을 하면 내 육체가 살아나고 영이 질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자 여기에서 거짓말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고 내가 진리와 참을 말하면 ---- 그러나 주의 십자가는 의롭고 거룩함을 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네 몸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몸 속에 거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주의 뜻을 따라서 의롭고 거룩한 길을 따를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대로 음란한 길을 따를 것이냐? 내 생활의 십자가입니다. 내가 만일 술 취하고 음란하고 방탕하게 되면 내 육체는 살아나고 정과 욕심은 살아나고 영은 질식하고 맙니다. 그리고 난 다음부터 찬송을 불러도 찬송이 나오지 않고 기도가 나오지 않고 심령이 칠흑같이 어두워집니다. 왜? 십자가를 벗어버리면 육은 살고 영은 죽습니다. 십자가를 걸머지고 내 자신을 부인해 버리고 주의 뜻을 그 자리에 얻으면 내 영은 살고 육체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십자가란 내 영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매일 달려 있는 것입니다. 매일매일의 생활 속에 하늘의 길을 따를 것이냐 땅의 길을 따를 것이냐 땅의 길은 내 육이 사는 길이요 하늘의 길은 내 영을 살리는 길인데 매일같이 내가 십자가를 짊어지면 매일매일 내 영이 살아나서 깊은 기도를 깊은 찬미를 깊은 진리를 깨닫고 주와 갚은 교제를 하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매일같이 자기를 극복하는 생활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십자가는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아침에 깨어날 때부터 저녁이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매일 걸머져야 할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벗어버리고 예수 믿는 사람은 가짜 신자인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은 절대로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다고 형식으로 말만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자기 마음대로 주지육림 속에 살면서 "나는 신자"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로 신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절대로 주의 은총으로 받았지만 우리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정과 육을 못 박아 버리고 하나님을 순종해 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과 더 깊은 은혜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십자가는 주님을 좇기 위하여 자원해서 짊어진 고난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안 해도 좋은데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원해서 나의 일생을 던져 넣어서 주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는 것은 십자가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 같으신 분은 유명한 학자였습니다. 대학 교수로서 일생을 잘 살 수 있었고 손재간이 있어서 천막을 잘 만들었기 때문에 천막 깁는 사업을 했어도 거부가 되어서 바울 선생은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도 예수를 믿고 천당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선생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자원해서 교수직도 버리고 천막을 기워서 스스로 부자가 되겠다는 것도 버리고 자원해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며 강의 위험, 도적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광야의 위험 수없이 위험을 당하고 헐벗고 굶주리면서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세상에서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세상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다시 말하면 세상이 내게 대해서 죽고 나도 세상에 대해서 죽고 세상과 관계없이 나는 예수만 위해서 사는 그런 희생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일들은 우리 역사 속에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앨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명문 대가의 집에서 태어나서 훌륭하게 공부도 많이 하고 좋은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또 공부를 많이 해서 문학박사가 되었으며 철학박사가 되었으며 음악박사가 되었으며 신학박사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의학박사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공부해서 논문을 써서 다섯 개의 박사 학위를 얻는다는 것은 보통 쉽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이 앨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천재적인 사람이며 그만한 박사 학위를 가지고서 유럽에서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똑같은 하나님의 자손이요 아담의 후손인데 저 아프리카 정글 속에는 수많은 사람이 문둥병에 걸려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가며 고통 하는 인류가 있다. 저 아프리카 정글에서 고통 하는 인류가 있는 이상 나는 구라파의 문명 지대에서 호의호식하며 살 수 없다. 그래서 자기의 모든 편안한 생활을 다 포기하고 스스로 자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고난을 걸머지기로 작정하고 그는 저 아프리카의 오지 속으로 뛰어들어서 일평생 문둥병 환자들과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돌봐주기 위해서 고통을 당하면서 자기 생애를 바쳤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자원해서 십자가를 걸머진 것입니다. 자원해서 가난하고 자원해서 외롭고 자원해서 문명 지대에서 떨어지고 자원해서 고통 당하는 것을 선택하므로 말미암아 그는 스스로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을 밟은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께서 정말로 칭찬할 십자가인 것입니다.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꼬 같은 사람은 그는 자기의 한평생을 던져서 빈민굴에서 살았습니다. 빈민굴에서 빈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그 가난과 쪼들린 절망 상황에서 함께 살면서 그는 빈민들에게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가가와 도요히꼬 같은 사람이 빈민굴에 들어가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그 길을 택했습니다. 스스로 십자가를 걸머졌습니다. 스스로 가난하기로 작정하고 스스로 헐벗고 스스로 굶주리기로 작정하고 십자가를 걸머지고 빈민굴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스스로 택한 십자가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크게 영광으로 생각하십니다. 오늘날도 제3세계 선교를 나가는 선교사들 저 아프리카나 그렇지 않으면 인도네시아나 저 태국이나 위성시설도 없고 문명 시설이 없는 곳에 자기의 처자를 거느리고 예수의 복음을 전하겠다고 가도를 하고 사명을 안고서 들어가는 사람 이러한 사람은 십자가를 스스로 걸머지고 들어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통 사랑하지 않고 이러한 사람이 하늘에서 얻을 상급은 보통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오늘날도 우리 교회 주의 종들에게 저 인도나 인도네시아의 정글이나 태국의 오지나 이곳에 선교사를 보내려고 아무리 선교사 나오라고 해도 우리 교회 3백 여명 교역자 중에 한 사람도 안 나옵니다. 왜? 십자가를 걸머지기 꺼려하기 때문에 아무도 안 나온다고요. 자원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서 우리가 오늘 제3세계 그 오지에 선교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무도 안 가려고 하니 어떻게 합니까? 그는 십자가를 다 피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피한다고 해서 천당 못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걸머질 때 그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면 참여할수록 부활할 때 나중에 위대한 부활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상급이 큰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원해서 십자가의 길을 택하는 것이 십자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십자가는 주님 때문에 당하는 핍박입니다. 예수 믿고 난 다음 예수 때문에 가정에서 핍박을 받아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더구나 우리 교회 보면 자매님들 예수 믿었다고 해서 남편에게 얻어맞고 시어머니, 시아버지에게 얻어맞고 성경이 다 찢기고 할퀴고 내어 쫓겨서 울면서 제게 신앙 상담을 옵니다. 보낼 데가 없어서 기도원에 보내서 기도를 시키고 가정이 가라앉도록 까지 기다리는 이런 적이 비일비재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당하는 십자가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이런 십자가는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십자가는 오면 우리가 걸머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또 십자가는 직장에서 당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직장에서 멸시를 당하고 천대를 당합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직장에서 고통을 당합니다. 제가 군대 생활할 때 지금은 예수 믿는 사람 주일날 예배 보러 나가도 좋지만 우리 시대만하더라도 예수 믿는 사람 주일에 예배 보러 나갔다 들어오면 늘씬하게 얻어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다고 주일날 예배 보러 나가면 간물 함이라고 해서 내 옷이라든지 철모라든지 단검이라든지 총이라든지 전부 내 앞에 내 것이라고 해 놓은 것 가보면 다 훔쳐가 버립니다. 그러니 내 간물 통에서 철모라든지 옷이 없어졌으니 그 다음에는 날보고 하는 말이 "이놈아. 예배 가서 이런 일이 생겼으니 너도 가서 훔쳐 와라." 그래서 못 훔쳐 오면 늘씬하게 얻어맞았습니다. 그래도 또 주일날에는 교회를 갑니다. 그것은 왜냐? 예수를 믿기 때문에 그러한 단체에서나 직장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그것은 예수 이름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기 때문에 이것은 오히려 얻어맞아도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성령이 같이 계십니다. 이런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과 타협해 버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을 금지하는 국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다가 고난 당하는지 압니까? 제가 요번 암스테르담에 가니까 소련에서 나온 사람인데 25년 동안 감옥살이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여러분 하루 이틀도 무서운데 25년을 햇빛을 보지 못하고 감옥 속에서만 살다가 그 다음에 해방을 얻어서 독일로 건너나온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25년 동안 그의 젊은 청춘을 다 보냈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나오고 나니까 자기의 아내도 없어졌고 자식들도 없어졌고 모든 사람이 다 없어졌습니다. 25년의 세월 동안 흔적이 없이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자기 혼자 자유의 세계 속에 나왔습니다. 나는 그 사람과 대화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찬미하고 기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이마에 주름살이 꽉 들어차고 그 온 몸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 당한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참된 십자가는 자기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를 극복하고 주의 뜻을 매일매일 살아가는 이와 같은 생활에서의 십자가 주님의 뜻을 좇기 위하여 자원해서 걸머진 고난의 길을 택하는 이 십자가, 주님 때문에 당하는 핍박, 가정에서 직장에서 신앙을 금지하는 국가에서 당하는 고통 이런 것이 십자가이지 죄를 짓고 난 다음에 당하는 고통이라든지 병으로 당하는 고통이라든지 그렇지 않으면 극심한 궁핍이나 일생에 절망적인 낭패와 실망을 당해서 이것을 십자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적인 잘못인 것입니다. 그런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다 청산하셨기 때문에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물리치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걸머지고 가야될 십자가는 매일 같이 나를 부인하고 내 뜻대로 말고 주님 뜻대로 사는 이 십자가를 걸머지고 가야 될 것이요 주님을 좇기 위해서 자원해서 어려운 일도 걸머지고 고통을 당하는 이 십자가를 걸머지고 가야 될 것이요 예수 때문에 고난 당할 때 굽히지 말고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신앙을 금지하는 국가에서 꿋꿋이 고통을 당하면서 예수를 믿고 나갈 때 이것이 우리가 걸머져야 될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러면 셋째로, 십자가를 걸머질 때 어떠한 일들이 우리 생애 속에 일어나게 될까요? 여러분 십자가를 걸머지고 살면 주님께 합당하여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걸머지지 않으면 내게 합당치 않다고 말했는데 여러분께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나가면 주님께 합당하므로 말미암아 성령이 충만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힘있는 기도와 믿음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여주여 해도 그 주여주여가 힘이 없는 이유는 십자가를 걸머지는 삶을 살지 않을 때 주 앞에 합당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유력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분 십자가를 걸머지면 십자가 그 다음에 다가오는 것은 부활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십자가를 걸머지면 십자가와 함께 부활의 생명도 자꾸만 퍼부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십자가를 걸머지고 살면서도 유쾌함과 즐거움으로 살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로 11절에 보면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의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는 삶을 살면 그와 함께 예수를 부활케 한 부활의 생명에도 참예하게 되므로 영적으로 부활해서 성령으로 충만하고 마음의 부활의 생명이 돋아나서 믿음, 소망, 사랑이 넘쳐나고 육체조차도 부활의 능력이 다가와서 생기 발랄하고 질병에서 치료받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십자가를 걸머져야 부활의 생명이 옵니다. 여러분께서 우리 목사들 설교를 듣더라도 또 전도를 하는 사람들의 전도를 듣더라도 어떠한 사람은 외국 가서 석사가 되고 박사가 되고 아주 박식하고 굉장히 유창한 말을 하지만 그럴 때 하품이 나오고 듣기 싫은 사람이 있지요? 그래도 아무 생명이 역사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지식만 있었지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부활의 생명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별로 공부를 못하고 학식이 없더라도 그런 사람이 서서 말씀을 하면 비록 문법이 틀리고 말은 잘 못해도 그 입에서 아주 은혜의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서 들으면 또 듣고 싶고 들으면 또 듣고 싶고 들어도 또 듣고 싶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는 사람도 있지요? 그 사람은 그 속에서 성령의 부활의 생명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그 사람은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살기 때문에 성령의 부활의 생명이 넘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사실은 교회에서 원하는 주의 종들이라는 것은 학식, 박식해서 얼음에 썰매 밀듯이 말만 잘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입에서 부활의 생명이 넘쳐 나오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설교를 들으면 마음이 우르르해지고 심령이 깨어지고 영혼이 진동하고 은혜가 되고 이러한 메신저가 필요하고 이러한 전도자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되려면 매일같이 자기 뜻을 거역하고 주의 뜻을 따라가는 십자가를 걸머지는 삶을 살고 자원해서 고난의 길을 걸어 십자가를 걸머지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자원해서 고난을 감당하며 혹은 고난을 받더라도 핍박을 받더라도 굽히지 않고 십자가를 걸머지고 나가는 이러한 죽음의 생활을 한 사람은 그 속에 또다른 면으로 부활의 생명이 솟아나서 그 사람의 기도는 부활로 충만하고 그 사람의 전도를 부활로 충만하고 그 사람의 찬송에는 부활이 충만하고 이러한 사람 속에서 생수가 강같이 흘러나와서 수많은 사람을 마시우고 살리우고 은혜를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십자가 없는 주의 종들은 진실로 사람들을 살리는 그러한 능력을 나타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 또 십자가를 걸머진 생활은 천국의 상급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산 사람은 매일같이 하늘나라에 상급을 쌓아놓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1절로 12절에 보면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예수 믿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원해서 십자가를 걸머지든지 예수 믿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을 당하더라도 타협하지 않고 꿋꿋한 신앙에 서는 이러한 고통 속에 산다면 이것이 무슨 유익이 있을까 싶지만 그러한 고통의 시간과 날은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계산해서 모두다 여러분의 영광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때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 남은 우리가 변화될 때 어떠한 사람은 별과 같이 반짝거릴 것이요 어떠한 사람은 달과 같이 비칠 것이지만 이와 같이 많은 십자가를 걸머지고 부활의 생명이 참여한 사람은 찬란한 태양같이 빛나게 되실 것입니다. 영광이 찬란할 뿐 아니라 그들이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상급과 칭찬도 무궁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상급을 바라고 오늘날 십자가를 걸머지고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삶에는 하늘나라 상급도 없고 십자가 있는 삶에는 하늘나라의 상급이 있습니다. 적은 십자가를 걸머진 사람은 적은 부활과 적은 상급이 있고 거대한 십자가를 걸머진 사람은 거대한 상급과 거대한 부활의 영광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신앙 생활 중 싸워 이겨야 할 고난이 있고 짊어져야 할 고난이 있습니다. 모든 고난을 다 십자가로 받아들여도 안되며 또한 모든 고난을 다 배척하여 자기의 십자가조차 던져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몸이 깨어지고 피 흘려서 청산해버린 이러한 죄나 병, 가난이나 저주, 죽음 같은 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단호히 예수 이름으로 떨쳐버리고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을 우리가 누려야 되겠지만 우리가 짊어져야 될 십자가는 매일같이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과 주를 위해서 자진해서 고통을 걸머지는 것과 예수 때문에 핍박을 당할 때 타협하거나 뒤로 물러나지 아니하고 굳건히 고난을 참고 이겨 나갈 때 이것이 여러분과 내가 감내해야 될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를 따를 때 주님께서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고 주께서 이러한 사람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기 도 -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십자가 없는 신앙생활이란 부활도 없고 영광도 없는 생활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걸머진 삶은 현실적으로 육체적으로 고독하고 괴로울지 몰라도 그 속에 무궁한 영광의 성령이 임하시고 부활을 체험하게 되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들이 모두다 십자가를 걸머지기를 주저하지 않게 도와주옵소서. 십자가 없는 삶을 살지 말게 도와 주옵시고 십자가를 걸머지고 날로 더 깊은 부활의 생명이 참예하는 성도들이 다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