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1983년 10월 9일
제목 : 바울 선생의 성공적 삶의 비결
성구 : 빌 3 : 12 - 14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바울 선생의 성공적 삶의 비결"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세계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향력과 업적을 남긴 이는 바로 사도 바울 선생이신 것입니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였던 고 토인비 박사도 그의 역사 연구에서 사도 바울이 구라파로 타고 간 그 배에 오늘날 구라파의 모든 문화를 함께 싣고 갔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종교가로서 사상가로서 복음증거인으로서 감탄할 만한 성공을 이루신 분이었습니다. 무엇이 바울 선생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초인적인 위대한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만들었을까요? 오늘 우리는 그 비결을 바울 선생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빌립보서 3장 12절로 14절의 말씀을 분석하므로 밝히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간 우리 함께 마음 문을 열고 바울 선생의 성공 비결을 우리 개인들의 인생생활에 성공 비결로 받아들여서 우리도 바울 선생과 함께 위대한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십시다.

첫째로, 바울 선생의 위대한 성공 비결은 바울의 겸손한 마음과 생활 태도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이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바울 선생은 자기가 현재 이루어 놓은 것을 보고 그것에 만족해서 자기 그릇이 넘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다 오직 나는 예수께 잡힌 그것을 잡으려고 앞을 향해서 전진 전진할 따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조그마한 성취만 하면 그만 거기에 자기 도취가 되어서 자기 자랑을 하고 자기 선전하기에 바쁩니다. 물론 오늘날 시대는 자기 PR시대라고 하지만 자기 스스로를 자랑하고 높이는 것은 벌써 그 사람의 그릇이 꽉 들어찬 것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부흥회를 인도하겠다고 신청을 해오는데 그 신청 편지에 보면 자기 자랑을 꽉 들어차 있습니다. 나는 그런 자기 자랑을 읽을 때 그만 마음속에 현기증이 생기고 구역질이 생깁니다.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 치고 온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왜? 그는 벌써 자기 성취로 말미암아 도취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귀가 왜 마귀가 된 줄 아십니까?
이사야 14장 12절로 15절에 보면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들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 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로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지리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 중에 가장 아름답게 지은 루시퍼가 사탄이 되어서 하늘에서 쫓겨나게 된 유일한 이유는 그가 그만 자기의 아름다움을 보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으신 목적을 달성하기에 애쓰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가 하나님과 동등 되겠다고 하다가 내어 쫓김을 받아서 사탄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멸망의 앞잡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 개인이나 가정, 한 사회나 국가나 하나님 앞에서 교만해지면 벌써 패망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올무는 성공했을 때 교만해지는 것이 가장 큰 올무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경은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 주겠다고 베드로전서 5장 5저로 6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젊은 자들이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를 높이시리라"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개인이나 교만한 국가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를 주님께서 도와주시고 일으켜 주시고 축복하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울 선생의 위대한 점은 그의 학문으로 봐서나 그가 성취한 일로 봐서나 스스로 자랑할 수 있고 또 자랑한다 한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서 교만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일을 성취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아직 붙잡았다 함도 아니라 나는 오직 주님께서 부르신 사명을 위해서 뛰어갈 따름이라는 겸비한 삶의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위대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큰 일을 하든 적은 일을 하든 우리의 성취한 것은 모두 하나님께 맡겨 버리고 겸비하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열심히 뛰어 나가는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우리의 인생을 성공을 향해서 달려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또 우리 바울 선생에게서 배울 것은 바울 선생은 과거의 부정적인 인생 경험을 잊어버릴 수 있는 그러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말씀하기를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린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과거의 모든 슬픔, 고통, 괴로움, 원한 같은 것을 낱낱이 다 기억하고 이것을 마음에 접어놓으면 이러한 사람들은 부정적이 되고 파괴적이 되고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없고 인생에 성공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들이 현재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는 과거에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것을 가슴에 잔뜩 안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이 늘 짙은 안개에 눌려 있는 것 같고 부정적이고 삭막하고 외롭고 고통스럽습니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미움에 붙잡혀서 끊임없이 분노 속에 그 회오리바람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릴 때 자랄 때 부모에게 사랑 받지 못했으므로 말미암아 부모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거에 또한 친구들과 사업을 하다가 사기를 당해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 지나간 사실을 마음속에 울분과 분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거에 원한 진 사람의 그 죄를 기억하고 지금도 마음속에 분노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미 자기는 현재에 살고 있는데 과거의 미음이나 분노에 사로잡혀서 그 마음속에 무서운 부정적인 생각 속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주님께서는 성경에 우리가 우리 이웃의 잘못한 죄를 용서해 주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용서해 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왜냐? 이웃을 용서해 주지 아니하면 그 마음속에 미움이란 살인적인 부정적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들은 현재에서 긍정적인 태도로써 하나님과 함께 일할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과거의 미움을 다 해소하고 과거에 당했던 여러 가지 상처를 잊어버릴 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또 과거의 실패를 지식고서 현재에 살고 있으면서 과거의 실패를 자꾸 거듭거듭 생각하므로 말미암아 불안과 공포의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는 이미 현재에 살고 있는데 왜 과거의 것을 꿈을 꾸고 환상을 가져와서 과거에 비참하게 실패했던 자기의 모습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위축당하고 불안과 공포의 자녀가 되게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불안과 공포는 반드시 그의 준한 고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과거에 실패한 것을 생각하고 자꾸 불안과 고통을 가져오면 이 과거의 실패가 현재 생활에도 계속 따라와서 현재의 삶을 실패하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과거는 과거로 깨끗이 돌려보내 버리고 현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서 새로 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의 상처, 과거에 입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를 거부합니다. 원통함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고 과거의 마음의 상처를 부둥켜안고서 현재 눈물지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러므로 마음속이 불안 신경증에 꽉 들어차고 무언지 모르게 늘 초조하며 불면증에 걸려 고통하고 몸이 이유 없이 소화불량증에 걸리고 심장이 뛰고 여러 가지 질병에 걸리는 것은 과거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풀어버리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도 바울 선생처럼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릴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다리 밑에 흘러가는 물이 다리를 스쳐가지만 흘러가 버리면 영원히 떠나가 버립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과거의 미움이나 과거의 실패나 과거의 마음의 상처를 다리 밑에 흘러가는 물처럼 다 흘려 보내버리고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용서와 축복과 치료로 꽉 들어차 있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밑에 나가면 과거를 용서받고 치료받고 놓아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주님이 십자가에 걸머지시고 우리의 실패조차도 주님께서 책임지시고 우리의 모든 상처 대신에 예수님이 상처 입어서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히시고 갈보리산 하늘과 땅 사이에 높이 달려 찢기고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를 용서해 주시고 나를 용납하시고 나를 치료해 주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은혜와 사랑 가운데서 나도 과거에 나에게 미운 짓을 한 사람을 용서하고 분노를 놓아버리며 과거의 실패를 다 청산하고 공포에서 해방을 얻으며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을 수 있는 이러한 사람이 될 때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바울 선생같이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셋째로, 바울 선생이 성공적인 인생을 산 이유는 전력투구의 목표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선생은 말씀하기를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 바울 선생은 앞에 푯대가 있었습니다. 그는 인생을 전력투구할 수 있는 푯대를 두고서 그곳에 시간도 노력도 청춘도 금전도 전체를 다 집중시켜 뛰어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실패하는 이유는 푯대가 없어서 나아갈 방향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요동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소비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인생 실패자의 공통의 실증은 푯대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께서 실패하고 인생을 살고 있다면 하루 속히 하나님께 기도해서 여러분의 일생을 내어 던져 살아갈 수 있는 푯대를 결정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푯대가 있어야 달려갈 의욕이 생깁니다. 푯대도 없는데 무엇을 바라보고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 바쳐서 뛰어갈 수 있겠습니까? 푯대가 있어야 발전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푯대를 향해서 뛰어갈 때 나는 금년도에 이만큼 달성했다. 또 명년에는 이만큼 달성할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발전을 재 볼 수 있고 마음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푯대가 있어야 꿈을 꿀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갈 목표도 없는데 무슨 꿈을 가질 수 있습니까?
성경 말씀에 보면 이삭의 두 아들 중에서 에서와 야곱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다 육체적인 사람이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한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그것은 에서는 인생의 푯대가 없었습니다. 에서는 낮에 가서 사냥해서 짐승을 잡아와서 모닥불을 피워 짐승을 구워서 갈비를 뜯고 포도주를 마시고 낮잠 한숨 자고 난 다음에는 그저 인생을 즐기는 푯대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에서는 해가 가고 또 해가 가도 자기의 나아갈 푯대는 없이 오직 짐승 잡아 갈비 뜯고 포도주 마시고 잠자는 것밖에는 에서 에게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교활하고 꾀 많고 자기뿐이었지만 그러나 그는 인생의 푯대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 조상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대를 이어서 자기도 장자의 대를 이어야 되겠다 이와 같은 마음의 푯대와 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는데 야곱은 이상이 있고 꿈이 있는 사람이요 그 푯대를 향해서 뛰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그가 잘못한 일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푯대도 없고 꿈도 없고 이상도 없는 에서는 버리시고 야곱은 택하셔서 그를 변화시켜서 바로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의 아버지 이삭의 대를 이은 야곱이 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께서 푯대를 가지고 그리고 여러분께서 꿈과 이상을 가지고 나가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꿈이 있고 이상이 있고 삶에 푯대가 있는 목표를 가진 인생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성공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넷째로, 바울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불타는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은 말하기를 "잡으려고 좇아간다"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바울은 가만히 앉아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낮잠만 자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슬렁어슬렁 걸어간다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앞에 있는 푯대를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두 번이나 말했습니다. 여러분 좇아가는 사람은 그 마음속에 불타는 소원이 있기 때문에 좇아가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푯대를 두고 그 마음속에 좇아갈 수 있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 성공합니다. 의욕이 없는 사람은 아무 성취도 할 수 없습니다. 의욕이 없어서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고 난 다음에 해가 중천에 떠서야 어슬렁어슬렁 일어나고 밤이 늦도록 쓸데없는 일만 하고 돌아다니고 이런 사람들이 아무 일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든지 성취하는 사람은 그 마음속에 의욕이 충천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눕더라도 전력투구하여 열심히 뛰는 그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이지 게으른 사람 치고 성공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사기를 잃어버린 군인이 전쟁할 필요도 없이 항복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몇 번 실패했다고 그것을 기억하고 사기를 잃어버리고 죽지 부러진 새와 같이 주저앉아서 '나는 못해요. 나는 안 되요. 나는 할 수 없어요.'하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말을 하고 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울 선생은 넘어지면 일어나고 잡혀 얻어맞으면 또다시 일어나고 감옥에 들어갔다 풀려나면 또 그 길을 달리고 그는 좌절할 줄 모르고 꺾일 줄 모르게 불타는 소원을 가지고 뛰어간 것입니다. 불타는 사랑과 의욕이 충천할 때 만난을 무릅쓰고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는 예수를 뜨겁게 사랑해야 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에 미친 듯이 사업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는 목사라 성공하려면 자기 목회와 교회를 사랑하되 미친 듯이 사랑해야 됩니다. 바울 선생이 말하기를 내가 미쳐도 그리스도를 향해서 미쳤고 정신이 온전해도 너희를 위해서 정신이 온전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자기가 하는 일에 미치지 아니한 사람 치고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완전히 미쳐 버릴 정도로 열정을 가지고 거기에 전력투구하는 그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바울은 자기가 증거 하는 복음 사업에 미쳐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그는 일생을 내어 던져서 자나깨나 먹으나 못 먹으나 그는 전심전력으로 뜨거운 사랑으로 주의 복음 사업을 위해서 뛰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속에 불타는 소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가 무엇을 하든지 성공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업가든지 학자든지 선생이든지 군인이든지 목사든지 무엇이든지 자기 하는 일에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왜 나는 인생을 성공하고 살지 못했는가 이 질문을 해보신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내가 미칠 정도로 이것을 사랑하고 이를 위해서 온 정열을 다 쏟았는가 쏟지 않았는가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학생이 공부하는 사람은 자기 공부 할 때 공부에 미쳐야 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좋아해야 됩니다.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내 목적을 성취하겠다 이러므로 자나깨나 이른 아침 늦게까지라도 부지런히 해야 됩니다. 부모가 와서 고함 고함을 치고 멱살을 끌어 잡고 당겨서 책상에 앉혀야 깽하고 겨우 공부 좀 하고 학교에서 가서 선생이 숙제를 해오지 않는다고 몽둥이를 들고 종아리를 때려야 비로소 남의 숙제나 베껴서 내놓는 이러한 사람이 인생에 성공할 것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공이란 남보다 더 열심히 뛰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남보다 더 열심히 뛰기 위해서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남보다 더 뜨겁고 열렬하게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자기가 하는 일에 하루에 30분씩만 미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무슨 일이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루에 30분만 미치면 그 사람은 손대는 것마다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바울 선생은 "나는 잡으려고 좇아간다. 나는 잡으려고 좇아간다. 앉아 있지 않는다. 어슬렁어슬렁 가지 않는다. 좇아간다" 불타는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도움을 얻어서 불타는 소원을 가지고 일을 하지 미지근한 일을 하지 말게 되시길 주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너희가 뜨겁든지 차든지 하라 미지근하면 입에서 토해버리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섯째로, 바울 선생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성공 의식이 그 마음속에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울 선생은 좇아갈 때 벌받으려고 좇아가지 않았습니다. 쫓겨가려고 좇아가지 않았습니다. 바울 선생은 상을 받을 것으로 마음이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상으로 갚아 주신다. 그러므로 그 마음속에 상 받는 기쁨 하나님께 칭찬 받고 축복 받고 인정받는 그 기쁨으로 마음속에 충만했던 것입니다. 상을 받게 된다는 확신 이것이 바로 성공의식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 마음속에 자나깨나 나는 인생을 상 받고 산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인생을 더 상을 받고 살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 번이라도 실패의식으로 제 마음을 채워 놓고 산적은 없습니다. 내일 내가 실패할 것이다, 다음 달은 더 못하게 될 것이다, 명년은 낭패와 실망을 당할 것이다, 이러한 실패 의식이 저의 마음을 사로잡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었을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나와서 나의 모든 과거 인생을 청산할 때 실패한 조용기도 청산한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며 버림을 받아야 마땅할 조용기,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가난과 저주를 당하며 모든 일에 패배하는 조용기는 나는 십자가 밑에서 이미 청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한 나, 성령 충만한 나, 치료받은 나, 번영과 축복을 받은 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나로서 변모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변화를 받아 버렸기 때문에 이제 그 이상 상 받을 것밖에는 아무 것도 없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거나 벌을 받거나 쫓겨날 것은 없습니다. 오늘날 여러분과 네가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며 언제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마음으로 채울 수 있는 성공의식이 마음속에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공의식이란 상을 받게 된다는 확신이 바로 그것입니다. 성공의식은 적극적인 사고를 하게 됩니다. 내가 성공한다고 하는데 내가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나는 성공할 사람이기 때문에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 적극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라는 태도를 가지지 성공의식을 가진 사람이 나는 못한다. 안 된다. 낭패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또 성공의식은 실패와 패배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 성공한다는 의식을 받은 사람인데 내 환경에 아무리 실패가 다가와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다. 내가 성공으로 나아가는 길에 일시적으로 실패도 다가오고 낭패도 다가오지만 이것은 하나의 디딤돌에 불과하고 일시적인 현상이지 나는 이곳에 빠져 있을 수가 없다. 왜? 나는 성공자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마음에 성공의식으로 꽉 들어차 있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에도 실패에 붙잡혀 그 늪에 빠져 허덕일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성공의식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합니다. 내 마음속에 할 수 있다의 마음이 꽉 들어차 있으면 사람들이 다 못한다 안 된다 하더라도 나는 기도하고 나는 하나님 앞에 구하면서 나는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못한다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지 않으셔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주십니다. 광야에서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 기만 명을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먹일 때 빌립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므로 말미암아 패배 의식으로 꽉 들어차 있을 때 하나님은 빌립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머리를 좋지 않더라도 성공의식으로 꽉 들어차서 주님과 더불어 일하면 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안드레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그는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에 예수님의 축복을 보태면 오천 명을 먹이고 부녀자 기만 명을 먹일 수 있다는 그러한 신념을 얻었기 때문에 그 아이디어를 통하여 주님께서 기적을 개발한 것입니다. 오늘날 인생을 살기 좋게 만들고 세계를 개발하는 사람은 모두다 사할 수 없다는 사람이 아니라 성공의식으로 꽉 들어차서 흑암에서 빛을 만들 수 있다. 절망에서 소망을 가져올 수 있다. 무질서에서 질서를 가져올 수 있다. 추에서 미를 창조할 수 있다. 가난에서 부요를 창조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이디어가 개발되어서 이 세상은 잘살게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자원 고갈로 멸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자원이 고갈해도 사람의 아이디어가 고갈하지 않은 이상 이 세상은 언제나 새로운 것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속에 아이디어가 말라버리고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할 때 그때 세상은 멸망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바울 선생에게는 할 수 없다는 말이 없습니다. "내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바울은 할 수 있다는 그러한 신념으로 꽉 들어차고 가는 곳마다 기발하고 위대한 아이디어를 개발해서 일을 성공시킨 것입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우리들 개개인의 작품인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대적, 사회적, 환경적 요건이 있겠지만 언제나 최종적인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개인이 어떠한 삶의 자세와 태도를 취하느냐 이것이 바로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것입니다.
배 두 척 바다에 둥실 떴네 / 불어오는 바람 따라 한 배 동으로 가고 /
다른 배 서로 가네 / 똑같은 배 똑같은 돛을 달고 / 똑같은 바다 위에 똑같은 바람 따라 가지만 / 그 돛단배의 돛의 방향을 따라가서 / 한 배 서로 가고 다른 배 동으로 가는 것입니다. 똑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이 살면서 한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살고 다른 사람은 실패하고 한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은 수치를 돌리는 사람은 왜 그럴까요? 그들의 마음의 자세가 어떠한 돛으로써 방향을 작용하는가 이것이 그들의 결과적인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사도 바울 선생처럼 여러분과 나도 모두다 겸손하고 과거의 모든 부정적인 것을 용서해 버리고 목표를 뚜렷이 가지며 마음속에 불타는 의욕을 가지고서 우리 전력투구하며 성공의식으로 충만하여 우리의 당한 운명을 성공으로 이끌어 나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살아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사도 바울 선생은 그의 신앙 고백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인생을 위대한 성공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그 길을 보여 주고 있사오니 감사합니다. 우리 개인, 가정, 생활, 사업, 모든 면에서 위대한 성공을 통하여 하나님의 크신 사업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도와 주셔서 우리 주님 먼저 그 발 앞에 엎드려 겸비한 인간들이 되게 도와 주옵시고 우리의 모든 과거의 부정적인 미움이나 원한이나 슬픔이나 실패를 다 잊어버릴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옵시고 전력투구의 목표를 갖고 뛰는 목표 있는 사람이 되게 도와 주옵시고 불타는 소원을 가져서 좇아가는 인생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성공의식이 충만하여 언제나 상 받을 수 있는 기대로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더 나은 상을 받을 기대로 꽉 들어찬 적극적인 이와 같은 성공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그 사람은 위대한 창조를 가져올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누구든지 다 예수 앞에 나와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 품에 안긴 사람은 바울 선생처럼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성공하도록 만들어진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 낭패와 실망을 당한 사람 십자가 밑에 낭패와 실망을 당한 넝마와 같은 인생을 다 던져 버리게 도와 주시옵시고 벗어버리게 도와 주시옵시고 바울 같이 새사람이 되어 새로운 성공적인 인생으로 출발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