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1983년 10월 23일
제목 : 그리스도를 보는 신앙의 눈
성구 : 요 6 : 1 - 14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를 보는 신앙의 눈"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똑같은 인간의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만 그러나 그 사람들의 생활 위치에 따라서 예수님을 이해하는 각도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지상에 오셔서 일하실 때 로마 사람들이 예수를 볼 때는 하나의 유대의 초라한 종교인으로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의 총독 빌라도 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정치적인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고 유대인들이 예수를 잡아왔을 때 어찌하든지 예수를 놓아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를 볼 때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단의 괴수로서 유대교를 파괴하려는 위협적인 존재로 보고 어찌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잡아죽이려고 했습니다. 헬라인들은 철학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위대한 종교 철학자로 생각했고 헬라로 모시고 와서 선생을 삼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제자들과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 세상에 오실 구세주로 알고 전적으로 섬기며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눈이 그 사람들의 생활 위치에 따라서 각각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보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은 올바르게 설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통하여 여러분과 나에게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우려고 애를 쓰고 계십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6장 1절로 14절의 말씀을 통해서도 성령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 눈을 열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이해하는 도움을 주시길 원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올바르게 이해할 때 우리에게 크나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번은 제자들을 데리시고 너무 피곤하셔서 쉬시기 위해서 벳새다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소문이 하도 크게 난지라 피해서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벳새다 광야로 가는 것을 본 유대 사람들은 전부 동리에 말을 해서 도보로 뛰어서 벳새다 광야로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니까 인산인해가 되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남자만 오천 명이니 부녀자 합치면 최소한 2만 명이 상의 군중이 뱃세다 광야에서 장사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쉴 여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전부 모아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시고 난 다음은 일일이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내어쫓아 주셨습니다. 이러다 보니까 하루해가 다 저물어서 날이 기웃기웃하게 되었습니다. 저녁이 다 되자 비로소 군중들은 배가 고픈 것을 느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시켜서 군중들을 다 집으로 보내려고 하는데 군중들 중에서 부녀자들은 허기증이 나서 길거리에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고 저들을 굶겨서 보낼 수 없다고 하시고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중에 빌립에게 "빌립아, 이들에게 어떻게 하여 먹을 것을 줄꼬?"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무엇을 할 것을 다 알고 계셨지만 빌립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가 시험해 보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빌립은 빨리 열심히 계산을 해보더니만 예수께 나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주님, 이들에게 조금씩 먹이려고 해도 2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떡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돈이 없어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 때 안드레가 그 군중들 가운데 갔다가 어린아이의 도시락 가운데서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겸연쩍은 얼굴로 "주여, 이 많은 군중들에게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가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만 그러나 제가 할 수 있는 도리는 다 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으셔서 군중들을 다 앉혀 놓고 난 다음 하나님 앞에서 축사하시고 떼어주시니 이 군중들이 다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거두니 무려 열두 바구니에 가득히 찼더라는 이 위대한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이 기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 거대한 계시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한 가지 평범한 사건으로서 지나간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계시를 받으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와 지식을 얻게 되므로 말미암아 위대한 믿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사람은 신앙이 더 깊다. 이 사람은 신앙이 깊지 않다"고 판단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한 사람은 그리스도에 계시를 더 깊이 받아서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깊어지면 신앙이 깊어집니다. 그러나 건성으로 교회에 왔다갔다하면서 예수에 대한 계시가 깊어지지 아니하고 예수를 깊이 이해하지 못할 때는 그 신앙은 형편없이 얕은 신앙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벳새다 광야에서 예수님께서 남녀 어린아이들까지 2만여 명의 군중들에게 배불리 떡을 먹인 그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은 바라보는 깊은 계시를 여러분과 받아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 주님께서 이 광야에서 이 위대한 기적을 베푸신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야말로 참 하나님이시오 참 사람되심을 나타내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세계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 종교를 창시한 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사람이었습니다. 석가모니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마호메트도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공자도 맹자도 다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이 유독히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벳새다의 광야에서 오천 명을 먹이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참 하나님 되심을 보여 주신 사건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여러분 단순한 종교가나 도덕주의가나 철학자 같았으면 이런 기적을 절대로 행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도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행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한 종교가로서 취급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므로 유대인의 지도적인 산헤드린 회원이었고 선생이었던 니고데모조차도 예수께 와서 고백하기를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분이십니다. 사람으로서는 이와 같은 일은 할 수가 없나이다."라고 감탄을 하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광야에서 어린아이의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서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 기만 명을 모아 놓고 난 다음 그들에게 다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어느 정도 먹였을까요? 그 당시에는 반찬도 별로 없었을 것인데 떡만 가지고 배를 불리자니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이 먹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많은 사람을 다 배불리 먹이고도 12바구니 남게 했으니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눈이 안 휘둥그레질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뮤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적인 하나님의 기적이요 보통 사람으로서는 결단코 상상할 수도 없고 손을 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는 육을 쓰고 와 계시지만 그 안에 계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 중에 제 2위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으로서의 이 땅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 뿐 아니라 그 다음에 갈리리 바다 위를 걸으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으로서 물위로 걸을 엄두도 못 내는데 주님께서 유유히 파도를 밟고 걸으심으로 그가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 주셨고 또 예수께서는 죽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살리고 또 죽은 지 나흘만에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도 불러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그는 참으로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알파와 오메가 되시며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장하는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우리 주님으로 부르고 예수님을 섬기는 우리 예수님은 종교가도 아니요 도덕주의자도 아니요 철학가도 아닌 것입니다. 그는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여러분과 나의 운명을 좌우하시는 하나님 되심을 알게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로 하나님 예수께서 여러분과 나의 구주가 되심을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기 위해서 벳새다 광야의 기적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만 남아 계신 것이 아니라 또 예수님은 참 사람인 것에 대해서 우리는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사람의 생활을 어떻게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어린 아기로 태어나시고 어린 아기로부터 장성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모든 인간이 체험하는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과 괴로움과 눈물을 다 체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할 필요도 없이 한없이 가난한 처지에 태어나셔서 일생을 산새도 들집이 있고 여우도 들어갈 굴이 있어도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방황하면서 인생을 사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주님께서는 인생고를 하나도 없이 뼈저리게 체험하므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나의 사정을 하나 없이 다 이해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벳새다 광야에서도 참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그 위대한 창조적인 기적을 베풀고 난 다음에는 또 참 사람으로서의 그들과 함께 앉아서 식사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무슨 식사를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참 사람이시기 때문에 당신이 베푼 그 기적을 통해서 만든 빵을 제자들과 함께 잡수셨습니다. 함께 식사하시고 피곤하셔서 예수님이 쉬시고 예수님도 우리처럼 주무시고 슬플 때는 우리처럼 예수님도 우리처럼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참 하나님임과 동시에 여러분과 나와 침상을 같이 하는 참 사람이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이신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입장을 우리에게 밝혀 주시게 되고 또 예수님께서는 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 편에 서서 여러분과 나 사람의 입장을 하나님께 고해 주시고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간절한 대속의 기도를 해 주실 수가 있게 되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참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 참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 이 안에서 하나님과 우리가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참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또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서는 참 사람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 참 사람이신 예수님 하나님과 사람이 한 몸에서 일치된 그 예수님, 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오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위대한 축복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 만이 우리 개인, 가정, 생활과 세계의 소망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 앞에 나오는 자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예수님께 기도하는 자만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벳새다 광야의 기적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종교라는 것은 인간의 일상 생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평범한 종교 같으면 인간은 영원히 죽어서 좋은 사람 낙원에 가고 좋지 않은 사람은 저 지옥 불에 떨어진다 이와 같은 종교적인 관심사를 중심으로 해서 인간 생활에서 윤리성, 도덕성을 주장할 따름인 것입니다. 인간의 생활 가운데 여러 가지 슬프고 고통스러운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는 종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여기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현실적인 생활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 고달픈 인생의 문제를 직접 관여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광야에 가서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 기만 명이 말씀을 듣고 배가 고파 허덕이는데 이 대 군중을 그저 너희들이 말씀을 들었으니 그 다음은 배가 고프든 쓰러지든 기절을 하든 너희 마음대로 하라고 내던져 버리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 나라와 하늘 의를 먼저 구하면 벳새다 광야에 나온 무리들처럼 그리스도의 말씀을 먼저 듣고 그리스도를 흠모하고 섬기는 자들에게 빈 손들고 굶주려서 보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저들을 굶주린 대로 보낼 수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주의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들을 돌보셔서 하나님의 그 능력 많으신 손길로 도우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벳새다 광야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계시하시기 위하여 제자들을 주위에 부르시고 특별히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은 그 제자들 중에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빌립아, 이 많은 사람에게 무엇을 주어서 먹게 할꼬?" 이것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인간의 의식주 생활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빌립은 간단히 계산해 보고 난 다음 "이 많은 사람에게 조금씩 먹이더라도 2백 데나리온이라는 돈이 필요한데 우리가 무슨 돈이 있습니까? 주님이 종교가지 무슨 사업가입니까? 그러므로 못 먹입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빌립은 생각하기를 예수님은 종교가요 도덕주의자요 그리고 천국에 대해서 가르치시기 때문에 지상문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안드레와 같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알아듣고 난 다음에 군중에게 가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나와서 주님께서는 말씀만 증거해서 영혼의 문제만 해결할 뿐만 아니라 빵의 문제도 해결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고서 가지고 나왔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종교적인 문제만 관심을 가지고 땅의 문제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빌립과는 일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여기 하나님께서는 빵의 문제도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도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해 보자는 안드레와 주님은 같이 일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의 땅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크나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빌립처럼 되지 말고 안드레처럼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도 가지고 나와서 "주여 땅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주님.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소서." 주님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베드로의 배를 빌리시고 난 다음 그 말씀을 다 증거하고 난 다음 베드로의 빵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고 하시고 주님께서 함께 배를 타고 들어가서 빌립과 베드로와 함께 그물을 던지시고 주님께서 그물을 당기니 고기 에운 것이 많아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었습니다. 여기에도 역시 빵의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 주님의 모습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인간의 노력을 다하고 주님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빵을 허락할까요? 우리 주님께서는 기적을 통하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인간은 이성이나 과학이나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만 우리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인간의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하고 하나님을 기대할 때 주님께서는 오늘날도 서슴지 않고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교회 나오는 장정자 자매님의 간증을 들어보고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 자매님의 남편은 운전 기사입니다. 버스 운전을 하십니다. 아침 일찍 남편을 출근시키고 난 다음에 모교회에서 부흥성회를 인도하는데 낮 시간에 은혜를 받으려고 참석을 했습니다. 그래서 앉아서 기도를 하는데 다른 기도는 안나오고 갑자기 마음의 불안해지고 마음이 끓어오르고 초조해지면서 '하나님이여 우리 남편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우리 남편이 만일 사고가 나서 세상을 뜬다면 나는 자식들을 데리고 어떻게 삽니까? 또 우리 남편이 사고를 낸다면 하나님 아버지여 사고 당한 사람에게 우리는 보상해 줄 돈도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 남편을 도와주옵소서.' 그런 얼토당토안한 기도가 속에서 솟아오르는데 자기도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짓누르고 고통스러우니까 그 자리에 엎드려서 낮 시간에 아직 강사가 나오기 전에 우리 남편을 도와달라고 기도했는데 한 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고 기도하고 나니까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참 별난 기도 다 했다. 무슨 사고가 났나?'하고 그 날 저녁에 집에 들어갔는데 남편이 일찌감치 들어오면서 얼굴이 핼쓱해서 들어옵니다. "당신 어떻게 된 거예요?" 하니까 "오늘 살아서 들어오는 게 기적이야." 버스를 타고 가파른 길을 올라가다가 엔진이 꺼졌습니다. 손님들 다 내리고 난 다음 돌을 고여 놓고 조수와 함께 자동차 엔진을 고치는데 갑자기 돌이 빠지면서 자동차가 뒷바퀴 질을 하는데 이 경사가 깊고 그 뒤는 벼랑이라 그대로 굴러나가서 벼랑에 떨어지면 그 밑에는 집들이 있어, 집 위에 덮쳤으면 수많은 생명들이 죽을 것인데 버스가 뒤로 가니까 이를 스톱시키려고 빨리 뛰어서 핸들을 잡고서 브레이크를 잡으니까 브레이크가 들어야지 그 길로 쏜살같이 버스가 굴러서 벼랑까지 내려가는데 이젠 죽었다. 하나님 날 살려달라고 고함을 쳤는데 그냥 서슴지 않고 벼랑으로 내려가서 어디만 걸렸느냐? 앞바퀴가 벼랑에 딱 걸려서 달려 있었습니다. 앞바퀴가 벼랑에 걸려 있어서 버스가 달랑달랑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 버스에서 운전사와 조수가 나오고 나중에 기중기가 와서 버스를 들어올리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만일 그 버스가 그대로 굴렀으면 운전사도 기사도 죽었을 것이고 그 밑에 있는 집들을 덮쳐서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사랑하고 믿는 그 부인을 통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해서 하나님이 도울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 주리라 너희가 무엇이든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오늘날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제 가운데서 승리해서 기적을 행하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낙심하지 말고 주님께 계속해서 나와서 벳새다 광야에서 안드레의 기도를 통해서 주님이 기적을 행하신 것처럼 오늘날도 주님이 광야 같은 세상에 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적을 행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으로 예수님을 계시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인간을 사랑하는 예수님을 이 벳새다 광야를 통해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했지 영혼만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말하기를 복음이란 것은 영혼의 구원만 증거 해야지 육신의 건강의 문제나 의식주의 문제에 관해서는 설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사랑하는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 영만을 사랑하는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을 때 사람을 영만 지어 놓으신 것은 아닙니다. 육신을 만들어서 영혼을 부어 넣어 주시고 에덴 동산에 살게 하시므로 한 인간을 하나님이 지어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이 마음을 드리고 육체 속에 살게 하시고 에덴에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반역하고 타락했을 때 영만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전 인격이 타락한 것입니다. 그 영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져서 죽고 그 육체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저주를 받아 병들게 되고 그 환경은 에덴에서 쫓겨나서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세상으로 내어 쫓겨서 생활은 저주받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 인격적인 타락을 했지 영만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므로 예수께서 오셔서 여러분과 나를 구원하실 때 영만 구원한 것이 아니라 영과 마음과 몸과 생활 전체 전 인격적인 구원의 능력을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요한삼서 2절에 있는 말씀같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는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벳새다 광야에서도 이 삼박자의 축복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말씀을 증거 하시고 난 다음에 병든 자를 다 고치시고 베고픈 자를 다 먹여 주시므로 말미암아 오늘날도 하나님의 구원은 삼박자 구원을 보여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 벳새다 광야의 예수님은 성경에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광야같은 세상에서 주님은 오늘날도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병을 고치시고 그리고 땅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삼박자 구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계시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십자가를 통하여 이 위대한 사랑을 인간 전체에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짊어지심으로 말미암아 그는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 인간의 죄를 다 대신해서 청산하실 뿐 아니라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병과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마귀의 일을 멸하여 주셨고 주님께서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가시와 엉겅퀴의 넝쿨 속에서 여러분과 나를 건져내어서 저주에서 해방되어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자리로 이끌어 주셨으며 죽었다가 부활하시므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다 멸하시고 주님께서 영원한 천국의 문을 여셨으며 성령으로 충만한 능력을 받게 해서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성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의 위대한 능력을 주십니다. 중생의 축복, 성령 충만의 축복, 치료의 축복, 형통의 축복, 재림의 은총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순서가 영혼이 먼저 잘 되는 것을 찾으면 그 다음 범사에 주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강건하게 해 주셔서 여러분과 내가 승리로운 삶을 살도록 주님께서는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벳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시되 인간의 한 부분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전 인격적인 인간을 사랑한다, 영혼을 사랑하고 그 육체를 사랑하고 그 생활을 사랑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께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여러분의 삶이 어떠한 벳새다 광야같은 자리에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치료하시고 범사에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고아와 같이 버림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광야 같은 인생을 산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함께 계십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내가 너를 결코 떠나지 아니하며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볼찌어다 세상 끝날 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함께 하신 예수님은 달라진 예수님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 벳새다 광야에서는 육신을 쓰고 계셨지만 이제 부활한 예수께서는 더 친밀하고 더 가깝게 여러분과 나에게 오늘 이 시간에도 함께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영원토록 동일하신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영의 문제, 우리의 육체적인 질병의 문제, 우리의 생활의 문제를 가지고 와서 간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20C 문명의 광야에 살고 있습니다. 그 옛날 벳새다 광야의 예수님은 오늘날 문명된 사회의 예수님도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빌립처럼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안드레처럼 꿈과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 후에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된다고 말할 때 주님은 그 사람과 같이 일하지 안 된다고 포기하고 주님은 영적인 문제나 도와주지 현실적인 문제는 안 도와 준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빌립을 따돌려버린 것처럼 오늘날도 따돌려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 기 도 -
살아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벳새다 광야에서 참 하나님이시오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시고 우리의 빵의 문제, 전 인격적인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으로 계시해 주시고 진실로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계시해 주신 것을 감사하옵나이다. 아버지, 예수님은 종교적, 도덕적, 철학적 차원에서만 보지 말고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참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살리시는 삼박자 축복을 주신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을 갖다 주신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오늘 이 시간에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옵소서. 주의 사랑과 큰 능력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