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1983년 10월 30일
제목 :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성구 : 마 14 : 22 - 33

저는 여러분과 함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강한 믿음 풍성한 믿음을 갖기 원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강한 믿음이나 풍성한 믿음은 우연히 마음속에 생겨나지 않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믿음이 생겨지면 이것이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극심한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그 믿음이 유지되는가 되지 않는가를 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벳새다 광야에서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 기만 명을 먹이게 하셨습니다. 이 기적을 통해서 주님께서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이신가를 확실하게 주의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일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되심과 인간의 문제를 기적적으로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았고 또 진실로 주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깊이 마음에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한 감동을 받고 믿음을 얻어 마음이 감격한 이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그 믿음을 실천해 보도록 시험해 보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광야에서 배운, 얻은 그 믿음을 시험을 통해서 굳어지고 완전히 자기들의 소유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결정을 내리신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광야의 기적이 있고 난 다음에 제자들을 재촉해서 배를 타고 앞서 건너가도록 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항상 예수님께서는 평소에 늘 제자들과 함께 같이 계셨지 제자들 따로 배를 타고 먼저 건너가게 한 일은 한 적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요번에는 특별하게 주님께서 제자들만 따로 배를 타고 가라고 재촉하시고 군중들을 다 해산시키고 난 다음 주님께서는 산 위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믿음의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시라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시험을 통할 때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내가 시험을 무사히 통하고 승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항상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내게 한 단계 더 큰 믿음을 주시려고 할 때 필연적으로 여러분과 나를 시험 속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위대한 믿음은 가혹한 시험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지 시험을 통하지 않을 때 믿음은 얻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험을 통한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시험을 통할 때는 고독한 길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배에 태워서 그대로 몰아내 쳐버리고 주님께서 같이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시험이 다가올 때는 오직 절망적인 어려운 고통만 가슴에 부딪치고 고독하고 버림받은 심정으로 꽉 들어찹니다. 하늘도 땅도 세계도 나를 다 던져버린 그런 심정이 마음속에 꽉 들어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시험을 통할 때는 캄캄한 밤을 통합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건넌 것은 대낮이 아니라 밤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게 하신 것입니다. 동서사방이 어둡고 캄캄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그들은 배를 저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 것입니다. 시험이 다가올 때는 지척을 분간할 수 없습니다. 나의 개인과 가정과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분간할 수 없습니다. 오직 캄캄한 밤을 향해서 믿음으로 전진해 나갈 따름인 것입니다. 시험이 다가올 때는 풍랑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에 바람이 불어와서 풍랑이 일어 배를 칩니다. 배 안에 물이 들어오고 바람이 붑니다. 시험이 다가올 때는 연거푸 환경이 모두다 격랑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다 떠나가고 슬픔만 가슴에 꽉 들어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뿐 아니라 지칠 대로 지쳐 버립니다. 제자들은 배를 저어 갈릴리 바다를 나아가는데 밤 사경이 되었습니다. 밤 사경이란 새벽 두 시입니다. 이제는 지칠 대로 지칩니다. 병원에서 환자가 가장 세상을 많이 뜰 때가 밤 사경 즉 새벽 두 시라고 합니다. 도적이 집을 쳐들어 올 때도 언제나 밤 사경 새벽 두 시쯤 사람들이 깊이 잠이 들었을 때 도적이 들어옵니다. 일선을 지키는 군인들이 밤 사경 새벽 두 시가 되면 지쳤을 때 그 때 척후병들이 쳐들어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가장 괴롭고 지친 순간까지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내버려 놓는 것입니다. 왜 나는 이런 시험을 당합니까? 나는 왜 이런 환난과 풍파를 겪어야 합니까? 이런 질문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말씀과 성령으로 마음에 심어진 믿음이 우리의 것이 되도록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시험과 환난을 통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시험과 환난을 통하여 튼튼해지고 확고해진 그 믿음의 기반 위에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을 수 있는 위대한 축복을 더욱 증가시켜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여기에 물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십시다.
반드시 시험이 가장 깊은 곳에 빠져서 이제는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물위로 걸어오시는 것입니다. 벳새다의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 기만 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께서는 또다시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벳새다 광야의 주님은 갈릴리 풍랑 이는 바다에 주님도 되신다, 주님께서는 환경과 시간을 초월해서 우리와 같이 계신다는 것을 증거 하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풍랑 이는 바다 위를 제자들 앞에 걸어오시는 것입니다. 풍랑은 예수님의 수레임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과 풍랑이 다가오면 그 풍랑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줄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풍랑은 예수님이 타고 오시는 수레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말하기를 홍수 때 여호와께서 홍수 위에 좌정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를 타고 오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환경 가운데 풍랑이 다가오면 그 풍랑을 타고 예수님도 오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주님께서는 벳새다 광야에서도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 풍랑이 다가오면 바로 그 풍랑은 우리에게 부딪친 문제요 우리 주님은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곳에 주님께서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문제가 없을 때는 예수께서 찾아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을 때는 우리가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는 주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풍랑을 타고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도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시험과 환난이 다가와서 풍랑이 심히 세차게 불어올 때 바로 그 풍랑을 타고 주님은 여러분을 찾아오신다는 것을 아시기를 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께서 풍랑을 타고 오시니까 제자들이 바다에서 고생을 하다가 갑자기 예수님을 보고 놀랐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예수님께서 뿌연 빛을 내면서 파도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걸어오시니까 제자들은 즉각으로 예수님이 유령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일제히 유령이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선원들은 바다에서 유령을 보면 반드시 그 배가 침몰한다는 징크스를 앓고 있습니다. 이제 이 배는 침몰했다. 우리는 다 죽었다고 생각해서 제자들이 아비규환의 절망에 처하여 우리를 살려달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자기들을 절대로 버리지 아니하시고 문제를 해결하러 오시는 주님이시며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인데 벳새다 광야의 기적을 깡그리 잊어버린 것입니다. 예수께서 물위로 걸어오시니까 예수님이 결코 물위로 걸어올 수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유령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령이라고 고함을 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믿지 않고 예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중생의 기적을 체험하게 해 주시고 성령으로 채워 주시고 병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 주시며 생활 환경에 승리를 갖다 주시고 주께서 재림하신다는 이런 기적적인 역사를 베푼다고 할 때 현대주의자들, 신신학자들은 이것을 샤머니즘이다, 미신이다, 유령이다라고 고함을 치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께서 기적으로 우리를 도우실 때 그를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유령이라고 하는 자들은 주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현대에 아무리 지식이 발달되고 과학이 발달되고 학문이 발달되었다 하더라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지식이나 과학을 초월해서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우리 가운데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래 태어날 때부터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아버지 없이 성령으로 태어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33년 반 동안의 세월 속에서 성경에 기록한 백여 가지의 기적 중 3분지 2를 예수께서 다 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예수님께서는 없는 것을 있게도 만드셨습니다. 이러므로 예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므로 이 시간에도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 오셔서 우리 기도를 응답하여 주셔서 개인 문제, 가정 문제, 생활 문제, 국가 문제, 세계 문제에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기적을 기대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을 나타낼 때 이것을 샤머니즘이다, 미신이다, 유령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풍랑에 빠져 죽을 사람들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의 생활 속에 세차게 풍랑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풍랑이 다가올 때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서 기적적으로 풍랑 위를 걸어오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유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사람은 오늘날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에서는 우리 예수께서 오늘날도 풍랑 위를 걸어오는 기적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회개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병든 자가 낫고 귀신들이 쫓겨나가고 절망에 처한 자가 소망을 얻는 기적이 우리 가운데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을 바라보고 유령이라고 하지 말고 기적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역시 예수님은 사랑하는 주님이라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원한다 내네 두려워 말라. 풍랑을 바라보지 말라, 그리고 어두운 칠흑 같은 밤을 바라보지 말라. 잘못된 생각을 하지 말라, 내니 두려워 말라, 나는 너희들 유익을 위해서 오는 사람이니 두려워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너희 자식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자가 있겠는가?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온 세상이 칠흑같이 어둡고 우리의 앞길이 캄캄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계시면 안심하고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결단코 여러분과 나에게 해를 끼치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내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풍랑을 당해서 고뇌 속에 있는 사람에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물위로 걸어오셔서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님이시오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이시오 사랑하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보장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셋째로, 여기에 용기 있는 베드로의 태도를 알아봅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서 당장 고함을 쳤습니다. "만일 주시어든 나로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여러분 이것이 예수님 12제자들 중에서 베드로 혼자만이 외친 것입니다. 베드로는 벳새다 광야에서의 기적을 바라보았고 물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주시어든'이라고 한 것은 만일 진짜 주시라면 이 주님은 문제를 해결하시는 주님이시오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이시오 사랑을 해 주시는 주님이기 때문에 이런 주님이면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베드로의 확신이 그 마음속에 넘쳐 났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진실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주님,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 사랑하시는 주님이면 여러분과 나는 예수에게 모든 문제를 내어 맡기고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 종국적으로는 빠져서 죄책과 절망에 허무와 무의미에 죽음과 무에 빠져서 버림받고 마는 것입니다. 이 바다를 유능하게 건너갈 수 있는 길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바다위를 걸으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죄악의 파도를 밟고 질병과 절망과 죽음을 밟고 걸어가실 수 있습니다. ----문을 열어 주셨으니 문제를 해결하시는 주님이시오 기적적으로 우린 인간의 상상을 초월해서 다가오시는 주님이시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기 때문에 예수께 여러분의 일생을 내어 던져 맡길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성경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으니 여러분의 짐을 예수 앞에 맡기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때 베드로는 "나를 명하여 물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외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사랑하시는 주님이면 이제 베드로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람이 불고 칠흑 같이 어둡고 파도가 쳐도 이런 예수님이 계신 이상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이래서 베드로는 초자연적인 신앙 세계를 인정하고 자기도 예수님과 함께 이제는 기적을 행하면서 살 수 있다는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조건을 구했습니다. "주여, 나로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믿음이라는 것은 믿을 수 있는 조건이 있어야지 무조건하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그것을 붙잡고서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믿을 수 있는 조건을 구하자 예수께서 오라고 하시니 베드로는 일어나서 예수님의 말씀을 그래도 받아들이고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그 말씀을 믿고서 나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같은 배 안에 12명이 탔는데 오직 오라고 말한 것은 베드로만 보고 오라고 했지 다른 사람을 보고는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여러분께서 주님의 기적을 원하시면 주님의 기적을 구해야지 안 구하는 자에게 주님은 기적을 주시지 않습니다. 주님께 달라고 구해야 주님이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12명의 제자들이 다 그 배에 탔는데 오직 베드로에게만 주님께서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달라고 해야 주님이 내게 구원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내가 병고침을 기도해야 치료를 주시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을 간구해야 주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가만있는데 주님께서 다 주시지는 않습니다. 12제자가 똑같은 갈릴리 바다에 똑같은 배를 타고 있는데 오직 베드로에게만 주님께서 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주님께 구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 여러분과 내가 용기 있게 주님께 구하면 우리 주님께서 오라고 명령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말씀을 읽고 기도할 때 성령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깨우침을 주시고 여러분을 알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 기도할 때 성령이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게 하고 오늘날도 말씀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문제에 부딪쳤을 때 베드로처럼 '주님이시여 주께서 오늘날도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시니 나로 오라 하소서 문제를 해결하소서' 주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주님께서 오늘도 말씀을 주셔서 여러분과 나의 환경에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려도 믿음으로 나갈 수 있는 말씀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말씀 그대로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실패의 교훈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될 큰 것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보고 생각하는 것을 통해서 그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란 말씀을 듣고서 예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바람도 바라보지 아니하고 파도도 바라보지 아니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의 오란 그 말만 생각해서 마음속에 그 생각이 가득 찼을 때 베드로에게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이 주는 믿음에 서서 그는 배에서 일어나서 배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마 제자들이 다른 친구들이 베드로의 옷을 잡아당겼을지도 모릅니다. "이 사람아,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이 어두운 밤에 이 갈릴리 바다에 맨발로 걸어 나가다니 그럴 수가 있느냐? 못 나간다."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그 말씀 위에만 서서 그 믿음으로 나가자 희한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물에 발이 닿자말자 발은 탄탄한 물위에 서게 된 것입니다. 물에 가라앉지 아니하고 베드로의 발을 받쳐준 것입니다. 베드로는 물위로 저벅저벅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을 동안에 그는 조금도 두려움 없이 물위로 저벅저벅 걸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얼마 안 있어 베드로가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를 보고 마음에 두려워하자 물 속에 빠져버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던 눈을 돌이켜서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고 그의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을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사람인데 사람이 물위로 어떻게 걸어가나?' 부정적인 생각을 받아들이자말자 그는 마음속에 의심과 공포가 꽉 들어차고 그대로 물에 빠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기에서 조금 전까지 물위로 걸어가던 베드로가 이제 물 속에 빠져버리게 된 것입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생겨날까요? 오늘날도 여러분과 내가 잘못보고 잘못 생각하면 금새까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던 사람이 잠시 후에 기적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때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실 때 그 방주 옆에는 창문을 내지 말게 하셨습니다. 오직 천장에만 창문을 내게 하신 것입니다. 어느 배를 치고 옆에 창문이 없고 천장체 창문이 있는 배를 보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노아 방주를 만들 때 그렇게 만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홍수 때 노아의 여섯 식구가 방주에 들어가고 난 다음에 홍수가 와서 그 방주에 노아가 얼마나 있었느냐? 열 달을 있었습니다. 10개월을 그 방주 안에 있으면서 한 번도 홍수를 본 적도 없고 비바람을 본적도 없습니다. 오직 저 천장에 뚫린 창문을 통해서 하나님 보좌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기억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10개월을 지남으로 말미암아 홍수가 다 가라앉았을 때 아라랏 산에서 나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 노아의 여덟 식구가 창문을 내놓고 난 다음 천지가 물로 꽉 들어차고 오직 인력편주 배만 바다에 떠있는 것을 바라보았으면 기절해서 죽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그 다음 생각하는 것에 환경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눈으로 부정적인 것을 보고 머릿속에 부정적인 것이 들어오면 사람들은 마음속에 의심과 두려움이 들어와서 그만 기적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으로 항상 하나님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 마음속의 생각에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꽉 들어차면 믿음이 생겨서 이 사람은 기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께서 기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노아와 같이 여러분의 감각의 창문을 닫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시험과 환난이 다가올 때 어려운 고통이 다가올 때 그것 다 바라보고 그 소리 다 듣고 그것 다 느끼면 여러분께서는 잘못된 것을 바라보고 두려워서 빠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어려운 시험과 환난을 통할 때는 밖으로 향한 창문을 다 닫으십시오.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지 환경이 어떻게 되든지 어떻게 칠흑같이 어두운지 그것에 대해서는 창문을 닫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창문 하나만 열어 놓고 하나님 말씀만 생각하고 말씀 위에 서서 걸어나갈 때 여러분은 홍수를 지날 수 있고 파도 위에 걸어갈 수 있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고 오늘날도 기적적인 역사가 여러분의 생활 속에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느냐 내가 무엇을 듣고 마음소속에 생각하고 있느냐 이것이 여러분과 나의 신앙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시험을 통하셔서 제자들에게 보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뼈에 사무친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올바르게 보라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랑하시는 주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문제를 바라보든지 그리고 인간의 불가능한 것을 바라보고 절망적인 상황을 바라보면 그 사람은 믿음을 낱낱이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께서는 무엇을 바라보고 사는가를 다시 한 번 마음속에 점검하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봅니까? 여러분에게 중생을 주시고 여러분에게 성령 충만을 주시고 치료를 주시고 여러분에게 형통을 주시며 영원한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해서 재림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십자가를 통하여 바라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떠한 역경에 처해 있어도 십자가를 통하여 좋은 하나님을 힘차게 바라보고 그 다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마음속에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올바르게 생각할 때 믿음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생각하고 감각이나 환경의 위협에 눌려 의심하거나 공포심을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여러분과 나는 믿음으로 살지 감각으로 살게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주웠으면 그 말씀에 서는 것입니다. 천지가 뒤엎어지고 세상이 다 변화되어도 우리는 거기에 아랑곳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며 없는 것을 있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에 선 이상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운명을 변화시키고 개척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늘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 위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변화무쌍하며 사람들의 말이란 전부 거짓말이고 나라와 나라끼리의 조약도 믿을 수 없지만 그러나 이 성경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인친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만은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생각하면 그 말씀을 좇아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믿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올바르게 보고 올바르게 생각하면 여러분과 나는 믿음을 가지고 기적적으로 걸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갈릴리 바다에 물위로 걸어가다 빠진 베드로를 보십시오. 똑같은 베드로였고 똑같은 갈릴리 바다였는데 올바르게 예수님은 바라보고 오라는 예수님 말씀만 생각할 때는 믿음이 있어 물위로 걸어갔지만 똑같은 그 베드로가 똑같은 그 바다에서 똑같은 시간에 그가 바라보는 눈이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고 그 마음속에 잘못된 생각이 들어와서 그만 불안과 공포가 들어오자 물속에 빠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과 내가 어제까지 위대한 신앙 승리의 생활을 하던 사람이 오늘에는 그만 신앙에 낭패할 수 있습니다. 오늘 신앙에 낭패하고 시험에 들었다가 교회 와서 말씀을 보고 말씀을 듣고 믿음이 생겨나면 당장 일어나서 어제까지의 실패를 툭툭 털어 버리고 오늘은 위대한 승리를 가지고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교회에 출석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의 성공과 실패가 마음의 생각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온다"고 말한 것입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는가 이것이 여러분과 나로 하여금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승리자냐 패배자냐 성공이냐 실패냐 생명이냐 사망이냐가 여러분이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 촉구합니다. 여러분과 나는 오늘 이 시간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십자가를 통하여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말씀 위에 흔들리지 말고 굳세게 설 때 우리는 이 세상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 기 도 -
살아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할 때 만입이 있은들 무엇으로 다 감사하고 찬송하오리까? 우리 다 이 세상 풍랑을 지나쳐갑니다. 조그마한 인생의 배를 타고 이 풍랑 이는 바다 인생 바다를 항해해 나가는데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께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찾아와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벳새다 광야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되심과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심과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심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증거 하신 주님께서는 풍랑 이는 바다 위에서도 또다시 예수님은 하나님 되심과 기적을 행하시는 것과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시라는 것을 다시 보장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베드로와 같이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잘못 보고 잘못 생각하면 마음속에 의심과 불안이 들어와서 믿음을 잃어버리고 물속에 빠져버리지만 예수님만 바라보고 그 말씀만 기억하고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동요하지 아니하고 눈에는 아무 증거 보이지 않고 귀에는 아무 소리 들리지 않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은총을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말씀을 생각하고 그 말씀을 믿고 서서 나가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는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남을 감사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예배에 모인 성도들, 이제 눈을 들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위하여 대속해 주신 예수님을 서로 바라보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 피로 죄를 사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 채찍으로 질병을 짊어지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도와 주시옵소서. 나무에 달려 그 저주로 우리의 모든 저주와 실패를 짊어지고 가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도와 주시옵시고 죽음으로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철폐하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도와 주시옵소서. 좋은 예수를 바라보게 도와 주시옵소서.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를 바라보게 도와 주시옵소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도와 주시옵시고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도와 주시옵시고 이 예수님의 약속에 굳세게 서서 바깥으로 향한 창문은 다 닫아 버리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두다 물위로 걸어가는 신자가 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인생의 파도의 물에 빠져 들어가는 신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