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1월 27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고린도후서 1:19∼22
설교제목: 긍정적인 생각의 축복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긍정적인 생각의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는 부정적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없나니"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에게는 부정적인 것이 있을 수 없냐하면, 하나님은 전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계신 곳에는 하나님이 무지한 곳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계신 곳에는 무지란 부정적인 것이 있을 수 없음과 동시에 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하나님은 무능이란 그와 같은 부정적인 면이 하나님께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셔서 하늘 끝에서 땅 끝 어느 곳까지 다 임재하여 계시므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그와 같은 부정적인 장소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죠, 하나님은 의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진리가 되시고 하나님은 형통이 되시며 하나님은 구원이 되시고 하나님은 바로 성령을 충만히 갖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진실로 하나님 안에서는 누구든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될 수 있는 확고한 긍정적인 신념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께 의지해서 가지는 긍정적인 생각이 아니고는 그와 같은 인간적인 긍정적 생각이란 그렇게 힘이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럼 왜 우리가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우린 하루종일 생각을 하고 삽니다. 한시라도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머릿속에 잡다한 생각들이 구름처럼 지나가는 것입니다. 혹은 긍정적인 생각도 들어오고 혹은 부정적인 생각도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킬만한 것보다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됩니다. 성경은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지켜야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확실히 알아봐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보신 분이 있나요? 못 봤습니다. 하나님을 손으로 만져보셨나요? 못 만져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을 기록한 성경책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각에 접합니다. 교회 와서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각을 비로소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생각이 여러분의 생각에 접붙여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음으로, 설교를 들음으로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에 접붙여져서 그래서 하나님의 생각이 내 마음속에 뿌리를 내릴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생각을 지켜서 하나님의 생각이 여러분의 생각을 점령하도록 하는 것은 절대로 중요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하나님의 생각이 여러분의 마음의 생각을 점령하여 그 속에 믿음을 발생하지 아니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인 말씀으로 충만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변화된 생각을 통해서 역사 합니다. 에베소서3장 20절에 보면『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저의 생각이 확실해져야 이 생각의 그릇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여러분과 나의 생활 속에 역사 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생각에 부정적인 것을 꽉 채워 놓고 난 다음에 아무리 주님께 철야하면서 기도해도 하나님께서는 응답할 그릇이 없기 때문에 응답하지를 못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철야하며 금식하며 부르짖을 때 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드릴 수 있는 우리의 생각의 그릇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 마음의 생각 속에 아직 없는 것이 이미 믿음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처럼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져서,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망했다'는 생각을 하지말고 하나님의 응답을 이미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 긍정적인 말로서 꽉 붙잡을 때, 이와 같은 그릇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저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일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넘치게 채울 수 있는 그릇을 소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내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고 했는데 우리의 육신의 입을 넓게 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 마음을 넓게 열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제가 앉으나 서나 여러분과 저의 생각을 부정적인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긍정적인 생각으로 꽉 채워 놓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여러분의 현재와 여러분의 미래의 삶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끊임없이 긍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로 긍정적일 수 있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길거리에 걸어가는 아무나 붙잡고서 "당신 긍정적이 되시오, 당신 창조적이고 생산적이 되시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긍정적 일수 있는 자격이 되어야 우리가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자격을 소유하고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제일 먼저 외친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한 것입니다. 천국 속에는 긍정적인 것밖에 없습니다. 천국 속에는 용서가 있고, 성령 충만이 있고, 치료가 있고, 형통이 있고, 재림이 있고,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긍정적인 세계에 들어오는 첫 조건으로써 회개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회개라는 것은 '메탈로얄' 헬라어로써 우리의 죄악에서 우리 스스로를 돌이킬 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감정조차도 모두다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회개인 것입니다. 마음을 고쳐먹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난 다음에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설한북풍이 불어오는데서 "긍정적인 생각만 하면 옛날로 돌아가겠지. 그러므로 우리는 저주 안 받았다고 생각하자. 우린 안 쫓겨났다고 생각하자. 우린 행복하다고 생각하자. 우린 축복 속에 있다고 생각하자"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아무리 그렇게 한들 아담과 하와에게 운명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범죄해서 하나님 앞에서 쫓겨 나왔기 때문에 그가 회개하여 마음을 찢고 용서를 받고 하나님 앞에 영접함을 받지 않는 이상,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고 해서 그 긍정적인 생각이 환경과 운명을 변화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해야 그 긍정적인 생각의 그릇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에게 회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천하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개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화목 제물이 되셔서 이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오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용납해 주시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특별히 은혜의 시대에 우리가 회개하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집으로 살던 생활, 내 중심으로 살던 생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중심으로 살던 나의 생활을 하나님 앞에 통회하고 자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죄악의 생각을 버리고, 죄의 길을 버리고, 돌이켜서 하나님의 중심의 생활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교회에 아무리 왔다갔다하고 종교를 가진다고 할 지라도 자기중심으로 살고, 죄악생활 속을 그대로 탐심해서 산다면 이 사람은 회개가 아닌 것입니다. 회개란 마음의 생각을 바꿀 뿐 아니라 그런 죄를 저버리고 인본주의적인 생각에서 돌아서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오는 행위가 따라야 회개가 된 것입니다. 행위가 따르지 않은 회개는 입으로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회개하면 여러분과 나의 속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들어오셔서 여러분과 제가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자기 혼자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고 외친다고 한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긍정적인 역사가 일어나도록 도와 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고 주님 중심으로 사는 삶으로 돌아와야 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모시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식이 떡을 달라면 돌을 줄 자가 있겠습니까? 생선을 달라면 뱀을 줄 자가 있겠습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녀가 되어야 우리의 아버지가 나를 돌봐주신다는 마음속에 긍정적인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미 오랜 옛날 이야기지만 제가 하루 신문에서 사진을 보고 아주 마음속에 흡족한 생각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 고 케네디 대통령이 집무하실 동안에 그 대통령 집무실에 보니까 장관들이 다 모여 가지고서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미합중국 대통령과 미합중국 장관들이 모여서 회의하는 그 장소야 얼마나 장엄하고 엄숙한 자리입니까?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보니까 케네디 대통령의 아들인 존이 케네디 대통령이 앉아있는 그 책상 밑으로 들어가서 대통령 바지가랑이를 잡아당기고 있습니다. 보통 다른 사람이 그랬다가는 벼락이 나고 당장 체포되어서 경찰에 구금될 것입니다. 누가 감히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와서 중대한 국사와 세계 문제를 토의하는데 그 책상 밑에 들어가서 대통령 바지가랑이를 잡아당길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존은 그 아버지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아들이란 그 마음 속에 확신이 얼마나 강했던지 '내가 어떻게 해도 우리 아버지는 나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아 주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이 제 사무실에 들어오면 비서실을 통해서 미리 약속을 하고 여간 준비하지 않고는 좀처럼 들어 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도가 하도 많아서 한 사람 한 사람 다 마음대로 들어왔다가는 제가 아무 일도 못합니다. 그러나 제 방에 무상 출입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희제와 사무엘과 성제. 이놈들은 제가 집무하는데도 들어오고, 제가 바쁜 때도 들어오고, 제가 들어오지 말라고 팻말을 붙여놔도 들어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 방이니까 내가 들어간들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렇게 해서 용기 당당하게 들어옵니다. 들어오는 것을 쳐다보니 내 자식인데 제가 뭐라고 말합니까? 다른 사람 같으면 나가라고 하지만 내 자식이니까 나가란 말도 못 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아들이 되었다는 그 확신은 여간 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여러분과 내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다 하나님의 친아들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천당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딸이 있다는 말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자들은 천당에 못 가나요? 글쎄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모두다 구원받아서 천국가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을 것이라고 했는데 예수는 딸이 아니고 아들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모두다 하늘 나라에 가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닮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인즉 이러므로 여러분과 저의 마음에 각오 담대한 심정을 가지고 아들 된 확신을 가질 때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 하늘이 변하고 이 땅이 변해도 내 아버지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는 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니 내 아버지의 하늘이요, 땅을 내려다보니 내 아버지의 땅인데,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좋은 일 주실 것을 기대하고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마음속에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매일같이 긍정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일 수 있는 이유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이유가 다 있습니다. 우리가 "믿습니다" 라고 말하더라도 우리가 긍정적으로 믿을 때는 믿을 수 있는 이유가 있어야 그 믿음이 타당화되지, 아무 이유도 없는데 무조건 와서 "믿습니다"라고 한들 그것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들이라도 이유가 있어야 아버지께 고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아들이 오늘 제게 와서 "아버지 나에게 돈 만원 주십시오" 한다고 해서 절대로 만원을 주지 않습니다. 내가 만원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면 제게 와서 "아버지가 돈 만원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했으니까 약속대로 주십시오" 하면 그가 요구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타당하기 때문에 저는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과 제가 긍정적 일수 있는 이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에 근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다 죄를 짓고, 불의하며,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담대하게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셔서 그 독생자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여러분과 저를 대신하여 그 몸을 찢고 피를 쏟아서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우리는 당당하게 긍정적으로 기도하고 믿을 수 있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사기 위해서 돈을 지불했으면 우린 긍정적으로 담대하게 '그 물건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싣고서 올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 죽으셨으니 이러므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저는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서 "아버지 하나님이여, 나의 죄 사함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내 죄를 위해서 그 무시무시한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그 대가로써 나는 용서를 받고 이롭다함을 얻어야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긍정적일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만일 십자가에 못 박혀서 여러분과 저의 죄를 위해서 피를 흘리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아무리 와서 하나님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과 제가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 할 것 없이 일체의 죄가 다 용서함 받을 수 있는 당당한 이유가 십자가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는 마음속에 주저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나와서 죄의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긍정적인 이유를 가지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병들어서 고통 당하고 있으면서 치료가 필요할 때, 우린 예수님 앞에 나올 때 몸을 치료해 달라고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는 주저하지 않는 믿음의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병자들이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할 때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고 자꾸만 요행술을 바라고, 될는지 안 될는지 모르지만 기도해 보자는 이러한 마음의 작정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러지 말고 우리 주님께 나와서 병 고침 받기 위해서 기도할 때는 여러분과 제가 담대하게 믿을 수 있는 이유를 가지고 나와서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조금도 의심하지 말 것은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불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께 무엇을 고하여 얻을까 생각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 마음 속에 두마음이 품어져서 "믿어 볼까? 믿지 말까?" 또 믿음이 생기고 또 의심이 생기고 두마음이 품어져서 언제나 출렁거리면 하나님께서 응답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을 외 골수로 하고 한 믿음으로 뚫고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치료받을 수 있는 이유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시기 위해서 그는 로마의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 채찍에 맞았었습니다. 그는 등이 벗겨지고 갈기갈기 채찍에 맞아서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되었었습니다. 성경은 베드로전서 2장24절에『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에 영원히 있었다"고 말했었으며, 하나님은 "모든 일을 위해 그 말씀을 높였다"고 말씀하셨으며,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내 말은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저를 대신해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연약과 질병을 대속해 간, 이와 같은 조건에 서서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담대하게 긍정적으로 건강을 얻을 수 있는 그러한 자격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형통에 대해서 담대하게 믿을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저주를 받았는데 왜 제가 또 저주를 받습니까?『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었으니 오늘날 여러분과 저는 담대하게 긍정적으로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아브라함의 복에 참예할 것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긍정적일 수 있는 이유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언제나, 어느 곳에나, 형통하여서 남에게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는 삶 속에 들어가야 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 이유를 부여잡고 우리는 담대하게 생각하고, 담대하게 말하고, 담대하게 기도하고, 주장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올라갈 것에 대해서 담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나대신 죽어서 음부의 권세를 물리치고 부활하사 승천하셨으니 이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들은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을 단호하게 물리치고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이와 같은 긍정적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천국을 바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유 없이 주님께 부르짖어서 소용 있나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피 흘린 그 이유와 조건을 단단히 알고 난 다음에 그 이유에 서서 기도해야 될 것이요, 그 이유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우리가 알고 그 약속을 이유로 삼아서 우리는 긍정적으로 담대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없이 내 마음대로 부르짖어 봤자 그것은 허공을 치는 기도에 불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긍정적일 수 있는 조건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긍정적일 수 있는 자격을 얻었으면 긍정적일 수 있는 이유를 가지고 있고, 그 다음에는 긍정적일 수 있는 조건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조건은 순종의 생활을 해야되는 것입니다. 현실의 생활에서 내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주일날 교회 와서 하나님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등산이나 가고, 낚시나 가고, 놀러가면서 '주여 모든 것이 잘될 줄 믿습니다' 하는 것은 이것은 엉터리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수주일하고 그리고 또 하나님 앞에서 십일조 도둑질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물질이 있는 곳에 내 마음도 있다'고 말했는데 사람들은 말하기를 십일조는 율법시대의 잔재라고 말하는데 율법이 오기 430년 전에 아브라함도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이삭도 십일조를 드렸으며, 야곱도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십일조란 하나님과 축복의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리고, 그리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가족과 이웃에게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는 이와 같은 순종의 생활을 해야 우린 로마서8장 28절처럼『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오늘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표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수주일이라 하여 하나님께 예배도 안 드리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나요? 하나님께 십일조도 안 드리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나요?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순종의 생활을 할 때 비로소 여러분과 저는 마음을 활짝 열어 놓고 긍정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우리가 긍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분명히 명령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 체면 때문에, 인간의 욕심이나 조건 때문에 이것이 장애가 되어서 성령님의 명령에 불순종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분명하게 성령께서는 "너는 오늘 교회 가거라"고 말씀하는데 그러나 집에 손님이 오고, 또 여러 가지 조건이 나쁩니다. 이러므로 성령님의 명령보다는 내 현실적인 집안 문제가 바쁘니깐 "성령님 나는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긍정적으로 믿겠습니다." 이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내게 손해가 가는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말씀하시면 성령께 순종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 긍정적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해 줄 것을 우리는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과 제가 일생을 살면서 긍정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믿고 내어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쥐고서 초조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도와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내어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려고 할 때, 물에 빠져서 살겠다고 마구 허덕이고 발버둥칠 때, 건지겠다고 뛰어들어가서 그 손에 잡히면 영락없이 같이 빠져 죽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그냥 발버둥치고 허덕일 때 내버려두었다가 이 사람이 물에서 척 늘어져서 가라앉으려고 할 때, 그때 가서 덥석 않으면 그대로 가만있습니다. 그때 건져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인간의 지혜와 수단과 방법으로 살겠다고 마구 발버둥칠 때 하나님이 건지면 하나님도 같이 붙잡고서 가라앉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사람은 그대로 내버려 놓습니다. 그래서 자기 혼자 발버둥치다가 이제는 완전히 진이 빠져 가지고서 '이제 하나님이여, 살던지 죽던지, 흥하던지 망하던지, 성하던지 쇠하던지 주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내어 맡길 때 주님이 책임져 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믿고 내어 맡길 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는 좋은 하나님이시므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해 질 것을 믿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조건으로 순종의 생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생활, 믿고 내어 맡기는 생활을 할 때 긍정적으로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긍정적인 태도도 자기의 숨은 능력을 개발하는 적극적인 사고를 산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안 믿는 사회에도 오늘날 사람들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적극적으로 생각하라, 창조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로 살아도 자기 속에 있는 능력이 개발되는데, 하물며 하나님 안에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가 긍정적인 생각과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보혈 공로와 하나님의 약속하신 그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분과 저의 생활 속에 나타나 역사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성령 받고, 치료받고, 형통하며, 주님의 은총에 참여하는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놀라운 은총이 우리의 생활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파괴적이고 절망적이며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말고 여러분의 마음속에 긍정적일 수 있는 자격을 얻고, 긍정적일 수 있는 이유를 붙잡고, 긍정적일 수 있는 조건을 성취하고, 매일매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활을 하십시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 달보다, 내년은 금년보다 위대한 축복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일체의 모든 생각에 부정적인 것을 제하여 버리고 긍정적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살아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모두 아담의 자손으로서 부정적인 생활환경 속에서 태어나서 늘 부정적인 것을 보고 듣고 말하며 살았습니다. 많은 생활 속에 파괴를 얻어 왔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 아버지 앞에서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긍정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길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하나님 안에서 마땅히 긍정적인 자격을 얻었으며,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그 구속의 은총을 통하여 약속의 말씀을 통하여 긍정적일 수 있는 이유를 얻었으며, 우리의 생활이 순종과 믿음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삶으로 말미암아 긍정적인 삶을 살수 있는 조건을 구비했으므로 우리 아버지, 매일매일 우리의 생활 속에 우리는 어두움 보다 밝음을, 절망보다 소망을, 죽음보다 삶을, 질병보다 건강을, 낭패와 실망보다 위대한 승리를 꿈꿀 수 있게된 것을 감사하옵나이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오늘4부 예배에 출석한 성도들 중에 한사람도 남김없이 모두다 오늘 마음을 씻어내어서 초 긍정적인 신앙의 사람들이 다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