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1984년 6월 10일
제목 : 마음이 실망될 때
성구 : 빌 4 : 4 - 7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마음이 실망될 때" 이와 같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떤 고등학교 졸업생이 3번 대학시험에 낙방한 후 극도로 실망하여 분신 자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떤 부인은 생활고에 허덕이다가 실망한 후 남편과 자식들을 버려 두고 집을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떤 남자강 술을 마신 후에 공장에서 자기 동료들을 쇠파이프로 때려 중상을 입힌 후에 우물에 투신 자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떤 젊은 일본 실업가는 사업이 잘 안 되자 자동차로 70킬로 달려서 국회의사당 정문을 힘차게 들이받고 자살하려고 도모했습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우리가 매일 신문의 사회면에서 읽는 기사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와 같이 똑같은 실망이 여러분에게 엄습해 온다면 여러분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겠습니까?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절대로 없습니다. 우울증은 자기에 대한 실망, 타인에 대한 실망, 열등감, 실패에 다가오는 실망, 질병의 고통, 피로 및 노년의 실망 등에서 다가옵니다.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서 실망을 하게 되면 마음속에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남편에 대한 기대의 실망하든지 아내에 대한 기대를 갖다가 실망하든지 자식에 대한 실망, 부모에 대한 실망, 사회에 대한 실망, 상사에 대한 실망, 마음에 실망은 곧장 무서운 분노로 변합니다. 그 분노는 얼마 있지 아니하면 신세한탄으로 변합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어떻게 하다가 내가 이런데 들어왔는가." 신세한탄은 얼마 있지 아니하여 깊은 우울증과 침울증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depression 이 침울증과 우울증이란 것은 즉시로 당장에 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여러분, 여러분 마음속에 우울증이 다가오면 삶이 잿빛 하늘로 변하고 스산한 절망이 뼛속을 파고듭니다. 이 상태 속에서 신속히 빠져 나오지 않으면 우리의 인격이 파괴되고 우리의 생활은 살아있으나 무덤으로 변화돼버리고 맙니다. 이런 정신적인 절망인 우울증에서 우리가 고침을 받을 수가 있을까요? 인생을 살면서 이 우울증을 벗어날 수 있으면 행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서 피를 흘려가며 심령이 죽어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유신무신은 곧 막론하고 남녀 노유 빈부귀천을 불구하고 인간은 우울증의 노예가 되어서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해방될 수 있는 사람은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방을 못 얻는 사람은 한 평생을 눈물로써 지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오늘 이 시간에 우울증에 대한 치료와 그 처방을 여러분께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처방은 내가 여러분보다 더 위대하고 잘나서 얻은 것은 아닙니다. 나는 내 자신이 끊임없이 엄습해오는 우울증의 파도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내 자신을 고쳐낸 처방전이 오늘 여러분의 설교로 변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우울증을 처방하고 이김으로 마음속에 한없는 기쁨과 행복을 가지고 하루, 하루를 지금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울증을 이기는 첫째의 비결로써 범사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길이 제일 첫 경입니다. 여러분 우울증은 어떤 문제에 관해서 실망을 함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실망을 하면 분노가 다가오고 분노는 신세한탄으로 변하고 신세한탄은 우울증으로 변하는데 오늘 주님을 믿고 난 다음 우리에게 다가오는 여러 가지 실망스러운 일들이 하나님께서 종국에 가서 내게 유익 되게 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믿고 주님께 감사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보면 과거를 돌이켜보면 과거는 전혀 실망스러운 것밖에 없습니다. 감사할 조건을 하나도 내놓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우울증에 걸렸거든 종이를 내놓고 연필을 들고 과거에 무언지 여러분에게 감사하고 기뻤던 사실을 하나도 없이 다 적어야 됩니다. 그것을 적어놓고 그것을 벽에 붙여놓고 소리내어서 그것을 읽어보아야 됩니다. 현재 실망되는 일들을 하나 하나 들어서 감사를 돌려야되는 것입니다. 나는 얼마 전에 깊이 우울증에 걸린 상당한 인텔리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많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부인도 아주 인텔리입니다. 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들은 좋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수입도 좋았습니다. 생활도 부유하고 넉넉했는데 남편은 무서운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그는 왜냐하면 그의 부인하고 떨어져 있으면 서로 불쌍히 여기고 만나면 싸웁니다. 그 부인하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10년이 하루같이 싸우다 가니까 이제 그는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나에게 와서 그의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강하게 보이는 프라이드 강한 남자에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목사님, 나는 장가를 잘못 들었습니다. 마누라를 잘못 만났단 말입니다. 이젠 돌이킬 수가 없어요. 사회적인 내 지위도 있고 명예도 있고 내 자식들도 있는데 어떻게 돌이킵니까? 그러나 우리 집사람은 나하고 사사건건이 맞지 않습니다. 좋은 여자예요. 그러나 나하고는 안 맞는단 말예요. 그저 내 말만 하면 내가 오른편으로 하면 우리 마누라는 왼편으로 그러면 내가 앞 하면 그러면 뒤로 돌아가 하고 나하고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싸우는 것도 이제는 한도에 찼고 진력이 났습니다. 이제는 마음속에 마누라의 대한 실망이 나중에는 분노로 변했고 분노하고 하다가는 신세한탄을 하고 그래서 못 먹는 술도 먹고 외도도 하고 세상으로 방종하고 다니니까 이제는 내가 지겨워지고 미워지고 이제는 만사가 잿빛으로 변하고 우울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직장에 나가도 재미도 없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아니하고 자식들도 귀하지도 아니하고 모든 것이 스산합니다. 인생을 이렇게 살 바에야 하루라도 빨리 끝장이 나는 것이 좋지 내가 빨리 죽든지 우리 집사람이 빨리 죽든지 하면 좋겠는데 나는 내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요. 죽더라도 보통 죽지 않고 처참하게 죽어서 우리 마누라가 보고서 마음에 콱 아프도록 하고 죽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가 "선생님, 그렇게 죽어야 되겠어요? 선생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실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는 남편 치고 자기 부인에게 실망 안한 남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안한 체 하고 있지 어느 부인 치고 자기 남편에게 실망 안한 부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실망했음에도 팔자 소간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지요. 모두다 실망, 그 실망은 분노를 가져오고 분노는 신세한탄을 가져오고 그 때문에 침울증이 다가옵니다. 이렇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우리보다 좀 자유로운 나라는 미국이나 구라파나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나라는 이혼율이 50%나 넘지 않아요? 그러나 당신 이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느냐. 감사를 하세요. 성경에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다 당신을 더 낫게 하기 위해서 더 훌륭한 교인 더 연단 받은 인격자가 되고 더 하늘나라에 상급을 많이 받고 더 축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주신 것 자꾸 반발하면 괴롭습니다. 감사를 드리십시요. 마누라를 위해서 감사하고 당신의 불행을 인해서 감사하고 당신의 현재 생활에 고통을 인해서 감사하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의 능력이 풀려나서 당신의 생활에 임하여서 당신의 생활에 변화가 다가옵니다. 믿건 말건 한번 실천해 보십시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올바르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해 보십시요." 그 분이 이제 결심을 하고 내 말대로 실천하기로 각오를 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서 그 날부터 마누라가 보니까 사람이 달라 보여요. 마누라가 막 바가지를 긁으니까 돌아앉더니만 "감사합니다. 아버지. 바가지 긁는 마누라를 인하여 감사합니다." 이것 누구 약올리려고 그러나 "뭐 어쩌고 어째" "하나님 저렇게 말해주니 감사합니다." 이 부인이 손을 쓸 수가 없어 그저 쥐어박아도 "감사합니다." 그저 앉아도 "감사합니다." 서도 "감사합니다." "저거 교회 가더니만 미쳤구나 사람이 실성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그 남자는 내게 와서 말하길 "목사님, 무언지 모르게 가슴이 열리면서 이 뱃속에서 조그마한 실개천 같은 기쁨이 흐르기 시작하더니만 이제는 기쁨이 큰 강처럼 변해지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그저 바가지를 긁든 물고 찢든 미워하든 쥐어박든 나는 자꾸 감사만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것도 다 날 잘되라고 하나님 하신 것이니 감사합니다." 그래 그 다음 부인이 자기만 괴롭고 남편은 너무나 좋아하니까 "당신 도대체 어떻게 됐어?" "교회 나가봐라. 나하고 같이 교회 나가면 감사할 일이 참 많다. 울어도 한평생 웃어도 한평생인데 까짓 거 나는 이제 울지 않고 웃고 살기로 했어. 그저 울고 싶거든 당신 혼자 울구려. 나 같이 울지 않을래 이제는.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 부인이 따라나왔습니다. 따라 교회 나와서 얼마 있지 아니하여 그 부인도 감사 바람이 불었습니다. 부인은 또 부인대로 "아버지 이 꾀죄죄한 남편 얻어서 감사합니다. 출중하지 못한 남편 얻어서 감사합니다. 그 둘이 모여서 서로 감사하기 시작하자 그 가정에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였고 그들에게는 우울증은 구름안개같이 사라지고 오히려 행복이 그 가정에 다가오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실망하고 분노하고 탄식하고 우울증에 빠지면 이것은 누구도 그 사람을 건져낼 수 없습니다. 이 잿빛 하늘아래 이 쓰라린 스산한 고통을 가지고 뼈가 썩어가던 고민을 가지고 사는 그 사람은 일생을 아무리 길게 살았다고 해도 쓰레기더미 속에서 헛산 것입니다. 양으로만 인생을 살지 말고 질로써 살아야 돼요. 우울증에 걸릴 만 하면 구약에 요셉보다 더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없습니다. 요셉은 자기 열 형이 종으로 팔았습니다. 17살 먹은 동생을 돈 30냥 받고 종으로 팔아먹었습니다. 종으로 팔린 요셉은 애굽에 끌려가서 보디발의 집 몸종이 되어서 갖은 곤욕을 다 당했습니다. 좀 살만하다가 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시위대감옥에 갇혀서 기나긴 17년의 세월 가장 좋은 청춘을 종과 감옥살이로 보낸 요셉이야말로 형들에 대한 분노와 실망과 신세한탄과 우울증에 걸려 신경쇠약증으로 남은 여생을 정신병환자로 보낼 수도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이 여러분 우울증에 걸려 정신병환자가 됐습니까? 아니요. 요셉은 승승장구하여 감옥에서 나와서 국무총리가 되었고 그가 전 애굽을 다스릴 때 형님들이 이제 양식 사러 온 것을 받아들여서 75인의 가족을 애굽에다 갖다놓고 나중 아버지 야곱이 죽었을 때 형들이 와서 혹시 복수할까 싶어 겁을 내어 무릎을 꿇고서 빌 때 요셉이 한 말을 들으십시요.
창세기 50장 19절로 21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배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시게 하려 하셨나이다 당신은 나에게 해롭게 하려고 했으나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고백인 것입니까. 그래서 요셉은 원수갚지 않았습니다. 원수를 축복하라. 그는 시험과 환난 겪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화를 선으로 변화시킬 것을 알고서 종살이하실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시위대 뜰의 기나긴 세월을 갇혀 있을 때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사가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 그에게 임하여 그의 운명과 생활이 삼박자 구원의 승리에 들어가게 만들어 주고 말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감사로 제사를 드릴 때야 하나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실망될 때 그 실망을 들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약성경에도 가장 위대한 일을 한 사도 바울 선생 그야말로 실망을 하고 분노하고 탄식을 하고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 선생이 고린도후서 11장 23절부터 33절에 기록한 말씀 보면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와 같이 된 사람이 실망할 만 합니다. 주의 사업을 하는데 왜 이런 일이 다가옵니까? 실망하고 분노하고 신세한탄하고 침울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선생은 여기에 말하기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한 줄을 아시느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그 가운데 찬미하고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임하여서 오늘날 바울을 통하여 전세계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돼버리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정신병자가 되어 평생을 정신병원에서 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원망, 탄식을 하지 아니하므로 말미암아 우울증의 포로가 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와 같은 고난을 영원한 성공으로 나아가는 디딤돌로 삼았습니다. 고로 어떠한 환경이든 그것을 바라보지 말아야됩니다. 낙하산 투하 연습을 하던 낙하산 병들은 비행기가 3천 피트나 5천 피트에 올라가서 비행기문을 열어놓고 뛰어내릴 때 여러분 밑을 내려다보고 뛰라고 하면 한 사람도 못 뛰어내립니다. 기절합니다. 언제나 교관은 말합니다.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보라. 눈을 들어 먼 지평선을 바라보고 밑을 내려다보지 말라. 밑을 내려다보지 말라." 그렇게 합니다. 밑을 내려다보면 어지러워서 기절합니다. 낙하산을 들고서 먼 산을 바라봐요. 먼 지평선을 바라보고 하나, 둘, 셋 하고서 뛰어내립니다. 인생도 여러분 여러분이 직접 환경을 바라보면 기절합니다. 우리 남편, 내 아내, 내 자식, 내 환경, 내 직업, 아이구 사람 답답해 죽겠다. 그렇게만 돼요. 여러분은 먼 지평선을 바라봐야 됩니다. 신앙으로 말미암아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낫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멀리서 바라보고 그러므로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현재 내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워도...침울증에 떨어지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둘째로,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침울증을 이기고 살려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뚜렷해야 됩니다.
사는 이유를 확실히 밝혀놓지 않으면 환경 적인 실망을 우리를 삼켜버리고 맙니다. 무엇 때문에 살아요? 돈 많이 벌기 위해서요? 지위를 높게 얻기 위해서요? 좋은 집을 하나 사 보기 위해서요? 물로 그런 목적도 필요하지요. 호위호식하고 잘 사는 것 그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사람은 처참한 실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집이 영원히 만족이 안되고 지위나 명예가 영원한 만족이 안됩니다. 나는 수많은 부자들을 보았습니다. 부귀영화가 그들에게 행복을 준다면 여러분 그들은 누구보다도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부귀영화가 그들에게 행복을 준 것 나는 한 사람도 못 봤습니다. 모두다 피나는 고난과 슬픔 속에 있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오늘날 여러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을 가져야 행복할 수 있습니까?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 이것이 여러분 참된 삶의 만족이 옵니다. 이 땅에 살면서 돈도 지위도 명예도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는 것처럼 다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살아도 여러분께서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 이것 얼마나 멋있습니까? 사람이 여러분 양적으로 많이 갖다 놓는다고 해서 행복한 것 아닙니다. 질적으로 살아야 돼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산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 사랑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에 대한 기대는 조만 간에 실망을 가져오지만 하나님에 대한 기대는 여러분 실망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나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이 긍지가 있을 때 어떠한 사람도 부럽지 아니하고 누가 무엇을 말해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하나님 믿고 사는데 얼마나 맘이 든든합니까. 그리고 난 다음에 범사에 이웃을 돕기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사업이나 장사나 공무나 남을 돕기 위해서 해야 됩니다. 내 욕심만 채우기 위해서 장사하는데 두부를 만드는데 횟가루를 섞고 콩나물에 농약을 쓰고 과자의 양을 줄이고 이렇게 해서 남을 속여서 얼마간의 금전은 얻을지 몰라도 자기의 양심은 그것을 알고 자기를 배척합니다. 자기에게 배척을 당하고 자기에게 용납을 받지 못하고 참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게 되는 그 사람에게는 그래서 아무리 물질과 지위와 명예를 갖다 놓아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장사를 해먹어도 정말 내 물건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 물건을 가지고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그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먹는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사가는 사람을 더 행복하고 더 유익 되게 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이웃을 돕기 위해서 사는 삶, 이 삶 속에는 가치를 느낍니다. "사는 것이 가치 있다. 오늘 오늘도 하루종일 일했지만 나는 이웃을 돕기 위해서 살았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갖다 주기 위해서 살았다. 그러므로 나의 삶이 가치 있다."고 이렇게 마음속에 가치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그 사람에게만이 참 삶의 행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자기가 배척하고 용납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것은 결단코 인생을 살아가면서 행복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어떤 구역장님 한 분을 압니다. 이 구역장님들 ??? 세 자녀를 낳고 열심히 인생을 살았습니다. 부지런히 돈벌이하고 남편 섬기고 자식들 고등학교, 대학까지 다 공부시키고 마지막에 막내딸을 시집보내고 난 다음 이 자매님은 갑자기 무서운 우울증에 떨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마지막 딸을 시집보내고 집에 턱 들어오니 이제 집이 텅 비었습니다. 이제남편을 쳐다보니 다 늙어빠진 남편이 자기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거울에 앉아서 얼굴을 한번 살펴보니 옛날에 젊고 예쁘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온 눈 끝에 주름살, 얼굴에 주름살 투성이고 손을 바라보니 주름살 투성이고 그리고 인생을 바라보니까 여태까지 살아온 것이 속아서 살아온 감정입니다. 마치 거미가 새끼 알을 이고 있다가 새끼가 깨고 나오면 거미 속을 다 파먹고 나가듯이 속이 텅 비었습니다. '이게 무슨 인생이냐. 아니 남편이 무슨 나에게 가치가 있으며 자식들 다 나가버리고 나는 뭐냐. 그러면 이거 속아서 살지 않았느냐.' 그래서 그는 인생에 실망을 했습니다. 인생에 실망하자 속아서 산 감정이 생겨서 분노가 끓어올랐습니다. 분노가 끓어오르고 신세한탄을 하기 시작하자 그는 깊은 침울증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옛날에 안 아프던 온몸이 다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가도 병명을 모릅니다.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됩니다. 남편하고 다툽니다. 살기가 싫습니다. 온 인생이 잿빛으로 변했습니다. 그럴 때 어느 누가 열심히 전도해서 교회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교회 데리고 나와서 교회에서 비로소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그렇다. 이젠 이 세상 다 끝장났다. 나 거짓말이다. 이제 하나님이나 잘 믿고 열심히 주님 섬기다가 천당 가는 것밖에 소망이 없다.'고 인생의 목표를 새로 설정하고 난 다음에 주일날 나오고 철야도 나오고 금식기도원도 가고 나중에는 구역장이 됐습니다. 구역장이 되어서 그때부터 아침을 먹고 난 다음에는 열심으로 병든 자, 상처 입은 자, 슬픔을 당한 자, 괴로운 자를 찾아가서 예배봐주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집으로 모아서 성경말씀 가르치고 그때부터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습니다. 저녁에는 성경이라도 몇 구절 읽어야지요, 낮에는 아침에는 밥을 먹고 난 다음에 집안 다 청소해놓고 그 다음 사람들 심방하지요, 그 다음 주일날 오지요, 수요 일날 다가오지, 금요 일날 다가오지, 또 기도원에도 가야지, 그 다음에 내가 만났을 때는 얼굴이 그냥 확 피어서 얼마나 젊어졌어요. 그래서 내가 "아니 구역장님, 그렇게 얼굴에 슬픔을 띄고 내게 신앙상담을 오시더니 이렇게 젊고 환해졌네요. 이제는 침울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목사님 말씀 마세요. 너무 바빠 가지고서 침울할 여가가 없어요. 아침밥 해먹고 난 다음 심방 다니고 교인들 돌보고 교회 오기도 얼마나 바쁘고 그리고 사람들이 나에게 구역장님, 구역장님, 하고 내 설교도 듣고 내 기도도 받고 그리고 목사님 요사이 내가 안수하니까 병도 다 나아요. 야, 얼마나 멋있는지." 그래서 그는 마음속에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침울증에서 벗어나서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은 여러분에게 실망시킬 것입니다.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세상도 궁극적으로 그것이 목표가 되면 여러분은 처참한 실망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믿음으로 내 이웃을 도와주기 위해서 사는 삶으로 변화시킬 때 여러분은 그래도 나는 인생에 가치 있다고 생각이 되고 나를 용납하는 그 바탕에서 여러분은 침울증을 이기고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사람은 여러분 자기 영상을 따라 삽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자기 마음속에 자기의 이미지를 만듭니다. 자기 영상, 자화상을 마음속에 그리면서 삽니다. 사람은 그 자화상을 따라서 살지 실제로 자기 모습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여러분마다 모두다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못났다. 나는 공부도 못했다. 나는 우리 부모도 잘못 만났다. 나는 그러므로 용기도 없고 희망도 없다. 나는 못난 사람이다. 바깥을 봐서는 그런 게 안 보여요. 그러나 그 사람은 속에 그런 자기 모습을 가지고 살아요. 그렇기 때문에 말할 때도 못난 사람처럼 말하고 패배자로 말하고 화내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얼굴 모습 가지고 살지 않는다는 것을 뚜렷이 알아야 돼요. 어떤 사람은 얼굴은 되게 못났고 형편없는 사람이라도 그 얼굴에 빛을 내고 광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20년을 목회 하니까 참 사람들 많이 만나고 이야기함으로 인생철학자가 안될 수가 없어요. 어떠한 사람들을 보면 부인들이 아주 맑고 밝고 아주 얼굴이 깨끗하고 인물이 잘난 부인들도 있어요. 옷도 잘 입고 차 보면 '야, 정말 이쁘구나. 아예 정말 장미꽃같이 이쁘다.' 그런데 만나보면 아주 얼음장같이 찹니다. 그런 부인들이 신앙 카운슬링 옵니다. 예쁘게 치장하고 왔는데 그만 자화상은 이쁜 것이 아니라 형편없습니다 .와서 말하다 보면 부모에 대한 원망, 남편에 대한 원망, 신세한탄, 타령, 얼굴은 이쁜데 속은 얼망진창으로 깨어져 있습니다. 자화상이 어그러졌기 때문에 그 이쁜 얼굴이 나중에 카운슬링하고 돌아갈 때는 '아이구 나가니까 속 시원하다.' 싶은 생각이 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평범한 사람, 그저 몸이 둥둥하고 얼굴도 살이 쪄서 얼굴은 이쁜 것이 하나도 없고 모습도 없어도 아주 그 모습 속에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왜냐. 그 말을 들어보면 하나님에 대한 감사, 가정에 대한 감사, 소망, 믿음, 본 몸 모양은 별 수 없는데 마음의 자화상이 아주 밝고 맑고 환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 모습에서 매력이 넘쳐 나옵니다. 인생의 남녀간에 여러분 바깥 인물이 좋고 여러분 좋은 옷을 입고했다고 그 사람,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않습니다. 자기의 자화상이 밝고 맑고 환할 때 그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받고 자화상이 일그러지면 바깥을 아무리 잘 치장 해 놓아도 얼마 있지 아니하면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성경은 잠언서 23장 10절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러므로 자기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여러분 이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요. 내게 신앙상담 왔었을 때 소복을 입고 왔습니다. 흰 저고리에 흰 치마를 입고 흰 고무신을 신고 소복을 하고 왔는데 눈이 부실만큼 얼굴이 이쁜 부인이었습니다. 나이는 서른 안쪽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게 와서 그는 핸드백을 열어놓고 난 다음에 붕대로 잘 감은 것을 내 놓았는데 그것은 비수였습니다. 갈고, 갈고, 갈고 갈아서 아주 날카로운 비수였습니다. 그는 앉아서 나를 쳐다보는데 그 이쁜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목사님, 친구가 나를 이곳에 보내서 내가 왔습니다만 나에게는 이제 인생이란 없습니다. 나는 이미 버림받은 인생, 이 구겨진 인생, 나에게는 원한에 서린 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나는 모 대학을 다닐 때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가문이설에 속아서 그 사람과 결혼했고 결혼하고 보니 처자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난 체념을 하고 그 사람과 살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친정식구들에게 버림받고 친구들에게 눈총을 받아 동창회도 못 나가면서 살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발견한 이 사람은 자기 본처하고 이혼을 하고 또 다른 여자하고 정식 결혼을 했습니다. 나는 거기에서 무서운 분노를 느꼈습니다. 사람을 짓밟아도 이렇게 짓밟을 수 있느냐. 나는 피어나지도 못하고 짓밟혀서 구겨 쓰레기통에 집어놓은 여자니까 좋다. 너 죽고 나 죽자." 그때부터 남편은 겁을 내서 이제는 자기 집에도 못 살고 도망치며 다닙니다. 이 부인은 칼을 갈아서 품에 품고 이 남자만 만나면 그 염통을 찔러버리고 자기도 찔러서 죽을 것을 각오하고서 그것만 가지고 다니다가 얼굴이 그냥 초췌해지고 처참하게 된 상황 속에서 친구의 안내를 받아 내게 왔습니다. 그의 얼굴 모습은 다 이쁘고 아름다웠지만 그 마음의 자화상은 열등의식, 좌절감, 절망의식, 원한이 서려 구겨질 대로 구겨졌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나를 고쳐줄 사람 없습니다. 나는 이제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내가 자매님께 말했습니다. "자매님, 나는 자매님께 할말이 없습니다. 자매님에게 위로의 말을 할 것도 없고 격려의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처지에서 내가 무슨 말로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한 마디 말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집에 돌아가서 당신 주무시기 전에 거울을 들여다보고 그렇게 한번 말하십시요. 하나님은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 주무실 때 당신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시고 죽으신 예수님께서 당신을 품에 안고 내 딸아, 일그러지고 깨어지고 절망적이지만 내 품에 안겨라. 내가 너를 다시 붙잡아서 수선해주마.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그 품에 안기는 당신 모습을 얼굴로 그려 보십시요. 그리고 예수님 품에 안겨서 주무십시요. 아침에 깨어 일어나서 세수하고 화장하기 전에 화장대에 앉아서 다시 거울을 보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역시 너를 사랑한다. 이 말을 자구 반복하십시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우리들도 당신을 사랑하고 기도해줍니다. 나는 이 이상 더 할말이 없습니다. 믿든지 말든지 이대로 해보든지 안 해보든지 그건 당신 자유에 달려 있어요. 마음대로 하세요." 그리고 기도하고 보내주었습니다. 세월이 자나고 난 다음 이 자매님이 내게 왔을 때는 눈에 눈물이 가득 해서 왔습니다. 얼굴이 달라졌습니다. 얼굴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이제는 소복을 입지 않고 아주 좀 더 좋은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 칼을 내게 와서 내 놓았습니다. "목사님, 믿든 말든 목사님 시킨 대로했습니다. 너무 괴로워 너무너무 사는 게 잿빛 하늘같아서 괴로워 견딜 수 없어서 반신반의로 그때부터 거울에 앉아서 하나님은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목사님이 시킨 대로 잠자리에 들어가기 전에 잡념이 떠오르는 것을 막고서 예수님이 날 위해서 죽어 날 품에 안아서 구겨진 나를 다시 펼쳐 주는 것을 그려보고 잤습니다. 희한하게도 그대부터 교회 아서 말씀을 들으니 눈물이 앞을 가리고 폭포같이 쏟아지고 모두다 내 말하는 것 같아요. 깨어져서 울고, 울고, 울고 이제는 희한하게 미운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나를 몹쓸게 구는 그 남자도 불쌍하게 보여서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이 그도 회개하고 올바른 사람되게 기도하고 이제 마음이 편안하고 이제는 소화불량증도 낫고 심장 뛰는 것도 낫고 불면증도 고침을 받고 이제 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마음이 기쁩니다." 자화상이 예수로 말미암아 고쳐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얼굴이 환하고 만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걸음걸이도 생기가 있고 쉬이 얼마 있지 아니하여 그는 정말 좋은 ka자를 만나서 아주 멋있게 결혼을 하고 그 다음 지방으로 그 남편이 직장이 옮겨서 간다고 인사하러 나에게 찾아와서 최 격려로 내게 인사하고 "목사님, 첫째 하나님의 은혜와 둘째 목사님의 은혜를 백골난방으로 잊지 못하고 나는 지방으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그는 지방으로 내려갔습니다. 여러분 사람이란 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의 영상을 바꾼다는 것이 인생전체를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만일 여러분이 나는 못났다. 나는 안 된다. 나는 절망이다. 나는 버림받았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못한다. 이러한 구겨진 영상을 가지고서 산다면 여러분은 그런 인생으로 살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모두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나와서 그 보혈로 씻음 받아 적어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적어도 성령으로 충만하고 적어도 영생을 얻고 이래봬도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민이 되고 이래봬도 하나님의 귀한 자녀가 되는 것을 알고서 여러분의 마음에 자화상을 완전히 그렇게 생각해서 다 바꿔놓고 구원받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의롭다함을 입은 사람으로 영생 얻은 사람으로 영원한 소망을 가진 사람으로 소망 중에서 여러분을 바라보고 웃고 활기차게 살게 되면 여러분의 운명과 환경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의 자화상을 밝고 맑고 환하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며 생산적이게 성경을 통하여 자화상을 바꾸십시요. 그러게 될 때 자화상이 바꾸어짐과 동시에 여러분의 보는 세상 듣는 세상 말하는 것 행동이 다 바뀌어지고 사람들이 여러분을 달리 대해주고 일생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침울증에서 이겨날 수 있는 것은 사랑을 체험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사랑에 굶주린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여러분과 나는 사랑에 굶주린 존재입니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인간은 사랑에 굶주린 존재입니다. 여러분 저 감옥에 가서 수많은 죄수들 보지요. 왜 죄지었습니까? 여러 가지 죄가 있지만 근원적으로 보면 모두다 그 속에 깊은 큰사랑의 굶주린 사람들 그 사랑을 삐뚤어지게 받으려고 하다가 죄수가 된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사랑을,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부모는 자식의 사랑을, 이웃은 이웃끼리의 사랑을, 그래서 이 세상에 가장 귀한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 속에 있으면 여러분 삽니다. 뉴욕에 가면 유대인 아동병원이 있는데 유대인 아동병원에서는 최선을 다하여 어린애들을 키웠습니다. 고아가 된 어린애들을 갖다놓고 그 시설을 잘하고 우유를 먹이고 모든 간호원들이 다 청소하고 의사들은 전부 청결하게 해서 어린애들을 돌보는데 어린아이들 태반이 죽어나갑니다. 그러나 멕시코의 똑같은 어린이병원이 있는데 거기 멕시코는 아주 병원도 더럽고 병원도 침울하고 간호원들도 별로 훈련받지 못하고 의사들도 별로 훈련받지 못하고 약도 별로 없고 여러 가지 면에 봐서 제일 사망률이 많이 날 것인데 어린아이가 거기 들어오면 거의 다 살아서 성장해 나갑니다. 그래서 미국 뉴욕의 유대인병원에서 사람을 보내서 조사해본 결과에 그곳에는 어린아이들에게 젖을 먹일 때 반드시 간호원들이 품에 꼭 껴안고 우유 병을 입에 넣어서 등을 두들겨 주고 이렇게 얼러주면서 키웁니다. 사랑을 먹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위생환경이 나빠도 사랑을 먹여주니 어린아이들이 다 힘을 얻고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뉴욕 유대인병원은 그렇게 청결하고 깨끗하고 하지만 어린아이들 먹을 때 병 하나 입에 물려서 병 잡고 먹게 한 것입니다. 어머니 사랑 없는 병을 어머니로 삼고 삽니다. 그래서 그는 불안정하고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신경병적되어 어려운 것이 다가오면 살아갈 의지를 잃어버리고 죽어버리고 맙니다. 사랑은 이것은 인간을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살게 하는 원동력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부부간에 서로 사랑해 주십시요. 나는 부부간에 몹시 싸우는 대학교수 한 가정을 카운슬링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남편은 늘 말하기를 부인이 자기를 사랑 안 해준다고 합니다. 나보고 "조금만 사랑해주면" 그가 말하기를 "그러지 말고 당신이 책임이 있소." "왜 조 목사는 나만 만나면 내가 책임 있다고 그래요?" "성경에 보니까 남편은 아내의 머리됨이라 머리가 몸의 책임이 있지 몸이 책임 있는 거 아니니까 당신 아내가 잘 났든 못 났든 그것은 머리의 책임이요. 머리가 고쳐야지 몸이 고치는 법은 없소. 그러므로 당신 책임이요."그러니까 "조 목사님만 만나면 기분이 좋지가 않아." "기분 좋지 않은 그것이 처방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머리니까 부인을 사랑해줘라"니까 "목사님 그건 자격이 없어 내 사랑 받을 줄도 몰라요. 나 조금만 사랑해 준 다면요 내가 막 달려들어서 엄청 사랑해줄텐데 그 사람이 내 사랑을 안 받자나요." 그래서 내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내가 당신에게 말하겠는데 오늘부터 하나님께 기도하고 당신 부인에게 가서 엄청 좀 사랑해 주십시요. 그러면 당신 부인이 당신 사랑할거요." 어떠한 한 부부가 내게 카운슬링을 왔는데 아주 인텔리고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고급스런 그런데 그 부인이 신경쇠약증에 걸렸습니다. 얼굴에 그냥 잔 깨가 많이 나고 초췌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나보고 하는 말이 "목사님, 참 내 알 수 없습니다. 철철이 내가 옷 해주지 그리고 나서 무슨 좋은 영화나 음악프로그램 있으면 표 사서 착 보내주지, 또 그리고 용돈 척 주지 내가 뭘 안 해줘요. 다 해줘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게 불만이 있습니다. 그 불만이 사탄입니다. 마귀예요. 목사님 쫓아내 주십시요." 그래서 내가 불러서 "무슨 불만입니까? 남편 말 들으니까 철철이 옷 해주지, 영화, 외식도 하지 그 다음 용돈도 주시는데." "목사님, 나요 철철이 옷 안 해줘도 시집올 때 온 것 그것 다 꼬매 서 입어도 좋아요. 그리고요 나 외식, 나는 집식 해도 좋아요. 외식 안하고. 난 그런 것 없어도 좋아요. 철철이 그런 것 다 필요 없어요. 나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이 필요해요. 저 사람은 말이지 목사님, 그런 물질 환경만 만들어주면 그것이 다 된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목사님. 그런데 저 미련둥이가 저것을 몰라요. 아무리 말해줘도." 그래서 그 구역님을 "아니 당신 왜 분방해. 성경에는 기도할 작정이거든 분방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분방해? 당신 부인 말 들으니까 당신 필요할 때만 잠시 왔다가 그 다음 분방 한다고 그랬소. 오늘부터 베개 들고 부인 방으로 들어가요." "아 뭐 귀찮고.." "무슨 소리야. 성경에는 두 몸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 지라고 했는데 당신 그럴 바에는 홀아비로 있지 결혼 왜 했어? 베개 들고 당신 부인 방에 가서 싸우더라도 붙어서 싸우고 좋아하더라도 붙어서 좋아해. 그리고 사랑이란 것은 여보시오, 철철이 옷 해주고 외식하고 그 다음에는 음악회 티켓 주고 그런 것 아니야. 사랑이란 따뜻한 동정이 이해하고 용납하고 하는 정신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있으면 당신 부인 그렇게 안 해줘도 당신 행복하게 될 수 있고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것 한번 try 해보십시요. 눈 딱 감고요." "그걸 이제 새삼스럽게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그러니까 어렵지. 기도한 다음 오늘 와서 엄청 사랑을 좀 해주라고." 사랑하는 부형님 여러분 여러분도 집에 가거든 여러분 부인을 한번 엄청 사랑을 해줘요. 부인 여러분도 남편 한번 엄청 사랑해줘요. 남편들은 늘 사랑에 굶주려 있어요. 옛날에 어머니 젖꼭지 물고 어머니 젖꼭지 만지면서 자라던 그것이 마음속에 그리워서 견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같이 사랑해줄 줄 알고 어떤 여자를 데려오니까 이렇게 무서울 수가 없어요. 일대일로 대하고 싸우고 말이지 이기려고 하고 꼭 고양이 같이. 그러지 말고 그 남편을 있는 그대로 한번 엄청 사랑을 해주면 남편이 내 아내가 달라졌다. 이럴 수가 없다. 그 다음부터 사람은 달라집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살지 다른 것으로 살지 않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침울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그 뿐 아니라 사람들은 신뢰하고 사랑하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가서 마음속에 있는 것 다 이야기하고 서로 이해를 받을 수 있는 친구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친구, 그래서 이 구역예배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구역예배가 그 무슨 소용있느냐. 그렇지 않아요. 구역예배 가서 우리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나누어 놓고 서로 함께 기도하고 서로 기도해주고 위로하고 하는 이런 것이 있어야 우리 마음의 침울증에서 이겨 나서 행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주일날 교회 와서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고 강물같이 넘쳐 나오는 성령의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 안에서 사랑을 체험하고 사랑을 누리고 사랑을 먹고 마시고 사랑을 남에게 나누어 줄 때 여러분에게 실망스러운 것 분노를 가져오는 것 신세한탄, 우울증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고 여러분은 햇빛이 영혼에 비춰서 찬란한 삶을 살 수 있는 은총과 사랑이 여러분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한평생 살고 인생은 일방통로의 길이라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주어진 천재일우의 기회의 인생을 울면서야 지내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번밖에 없는 인생 잘 먹든 못 먹든 잘 입든 못 입든 잘 살든 못 살든 이것은 우리 힘으로 노력을 하고도 다 하지 못하는 일이 많지마는 내 마음이야 강물같이 믿음, 소망, 사랑으로 채워놓고 살 수 있지 않겠어요? 이 마음을 침울증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첫째로, 범사에 감사하라. 둘째로, 분명한 삶의 목표를 가져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을 돕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라. 셋째, 십자가를 통하여 나의 자화상을 바꾸라. 넷째,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 사랑 가운데서 살아라.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 살면서 물질적인 환경이 내 이상적이 아니라도 참 만족을 갖고 살게 되고 또 그런 삶을 살아서 마음이 긍정적이며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 하여 여러분의 생활도 더욱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나아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마음속에서부터 오늘 침울증을 축출해 버리십시요. 여기에서 넘쳐 나오는 밝은 빛은 남편, 아내, 자식, 이웃, 생활 속에 아침 태양 빛이 어둠을 헤치고 번져 나오듯이 여러분의 삶을 밝고 맑고 환하게 번져 나갈 것입니다.

- 기 도 -

살아 계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인생은 살아야만 합니다. 구경하려고 보낸 인생도 아니고 가지고 탄식하라고 주어진 인생도 아닙니다. 일정한 기간에 왔다가 일정한 기간에 아버지 떠나가는 것이 삶이옵니다. 길게만 살지 말고 아버지여 풍성하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양으로만 살지 말고 질을 가지고서 살게 하옵소서. 이러기 위해서 우리 마음속에서 아버지 하나님, 실망되고 분노가 다가오고 그 길로 탄식하고 절망적인 침울증에 빠지는 이 모든 마음의 병을 오늘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고쳐 내놓게 하여 주시옵소서. 물댄 동산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