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희망을 향하여 행진하라
날 짜 : 1984년 10월 21일
성 구 : 왕하 7:3-8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희망을 향하여 행진하라" 라는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람 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사마리아 성을 첩첩이 에워싸서 벌써 날이 오래되매 성중이 크게 굶주려서 심지어는 자기 자식까지 잡아먹는 비극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은 견디기 힘든 내우왜란에 처하여 절망하고 말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원한을 하나님의 종 엘리사에게 풀려고하여 그 종을 보내 엘리사의 목을 베어 오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엘리사에게 오니 엘리사는 기상천하의 예언을 했었습니다. 그 예언은 내일 이맘때 사마리아 성문에서 밀가루와 보리가 넘쳐흐르리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장 극심한 절망 상황에 끝없는 유토피아적, 소망에 넘치는 예언이었으며, 절대적인 절망에 대한 절대적인 희망의 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와이 함께 온 장관과 함께 그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더구나 왕을 도와주는 그 장관은 말하기를 허허 하늘의 하나님이 창문을 여신 즉 어찌하여 내일 당장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겠느냐? 그렇게 비웃었습니다. 그때 이 불신앙의 말에 엘리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인간에게는 항상 두 가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적인 적과 외적인 적입니다. 내적인 적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불신앙으로 마음속에 불안과 초조와 절망과 의심으로 꽉 찬 마음, 이것이 내적 원수이고, 외적인 원수는 환경적으로 다가오는 고난과 시련의 역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두 가지 적을 어떻게 동시에 멸할 수 있을까요? 거기에 대한 귀한 교훈을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될 것인 것입니다.

첫째로, 내적인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위대한 가능성을 줄기차게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이 적은 외적인 적보다 더 무섭습니다. 내 마음속에 불안과 초조와 절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앙이 있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외적인 적보다도 무서운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먼저 내 마음속에 있는 내적인 적을 물리쳐야 되는데, 내적인 적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에 칠흙같이 어둡고 스산한 바람이 불어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외부 환경인 것입니다. 이 외부환경을 변활 시킬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말씀에 줄기차게 서서 나가면은 우리는 내적인 원수를 이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과 그 장관은 비참한 환경에 절망하여서 내적으로 항복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내적으로 붕괴된 사람은 어떠한 사람도 도와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느리라는 말씀 그대로 그는 말씀을 잡았었습니다. 그래서 절대 불가능에 도전하는 위대한 믿음의 말씀을 하나님께 받아서 그 말씀을 선포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오. 이것은 내적으로 절망상태에 처한 자에게 처한 자의 말이지만, 엘리사는 말하기를 내일 이맘때면 이 성문 밖에서 밀과 보리가 그리고 밀가루가 넘쳐 나리라는 믿음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끊임없이 두 가지 음성이 들려옵니다. 여기에 왕과 그 장관이 한 말과 엘리사가 한 말이 있은 것처럼 끊임없이 두 가지 말씀이 들려옵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길을 가시는데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서 간절히 간구했었습니다. 내 딸이 병들어 지금 죽게 되었으니 와서 고쳐주소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금 가서 고쳐주리라. 이래서 주님과 같이 갑니다. 아무리 빨리 발걸음을 걸어도 발걸음이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집 근에 오니깐 온 집안에 통곡소리가 천지에 진동합니다. 간이 털컥 내려앉는데 주인이 온다는 말을 듣고 종이 나오면서 옷을 찢어버리고 머리에 덮어쓰면서 고함 고함쳐서 울며 말하기를 주인이여,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더 이상 선생을 괴롭힐 필요가 없나이다. 이 말을 듣자 천지가 아득했습니다. 그만 회당장의 무릎이 흔들리고 심장이 중지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천지가 아득하여 쓰려지려고 했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옆에 와서 그 팔을 하면서 하는 말이 이 사람아,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자 여기에 이 사람에게 두 가지 음성이 들려옵니다. 자기 종이 와서 전해주는 음성은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이제 선생을 괴롭히지 마소서하는 환경에서 다가오는 절망적인 말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여기에서 이 회당장은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종의 말을 듣지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기로 선택을 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여러분 선택입니다. 믿음이란 무슨 뜨거운 감정이 올라와서 믿어지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눈에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환경이 스산해도 하나님 말씀을 믿겠다고 마음에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믿음이 없는 사람을 보고 왜 믿지 않았냐고 꾸짖는 이유는 우리가 믿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믿음이라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엄숙한 선택인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내가 믿음의 길을 선택하겠다고 결정하고 난 다음에는 오감각을 통해서 어떠한 느낌이 오든 환경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든 그것에 지배받지 않고 믿음에 지배에 지배받으려 믿음만 가지고 나가겠다는 이러한 태도가 진실한 태도가 진실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회당장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믿음을 택했습니다. 집에 들어가니까 아이가 죽었으므로 통곡하는 사람들이 둘러와서 사람들이 통곡하고 울고 야단입니다. 피리를 불고 괭과리를 치고 야단입니다. 예수님께서 와서 하신 말씀이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니깐 사람들이 다 비웃었었습니다. 예수님은 죽는 자를 죽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절망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죽는 자까지라도 주님께서 잔다고 소망 차게 말했었습니다. 그러자 우리 주님께서는 모든 의심하는 자를 다 내어쫓아 버렸습니다. 오늘날 주님께서는 의심하는 자와 함께 거하지 않습니다. 의심하는 자를 내어쫓아 버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의심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내어쫓든지 두 가지 중에 하납니다. 저 나사렛에서는, 예수님이 고향 땅에 들어갔으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의심하고 믿지않고 예수님을 데려다가 벼랑에 밀어서 죽여버릴려고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곳에서 큰 기적을 행할 수 없었고 오히려 쫓겨났습니다. 그러므로 불신앙은 예수님을 쫓아내던지 예수님이 의심하는 자를 쫓아내든지 둘 중에 하나지 타협은 없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불신앙이 들어와 있으면 그것을 선택하면 예수님을 여러분이 쫓아내어 버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이 들어와서 불신앙하는 그 불신앙을 내어 쫓아내든지 둘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의 집에 와서 이 불신앙의 사람들을 내어쫓아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제자들 중에도 가장 신아이 좋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셋 사람과 그 부모를 데리고 들어가서 그 죽은 딸을 보시고 손을 잡고 달리다굼, 딸아 일어나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자말자 그 딸의 영이 그 딸에게 들어오매 자다가 깨어나듯이 부시시 일어나서 일어서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 딸에게 무엇을 주어 먹게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죽은 자는 살리시지만은 밥은 안 먹여 주었었습니다. 왜 밥먹는 것은 지가 할 수 있으니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주님이 안 해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일인데 그것은 예수님이 살려놓고 난 다음 밥 먹이는 일은 부모보고 해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해야 됩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믿을 때 주님이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래서 여러분 우리가 내적인 원수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우리는 두 가지 음성 중에 하나님의 말씀의 귀를 트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세상이 아무리 뒤엎어질 것 같더라도 이 성경 말씀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선물이요, 가장 값진 계시가 성경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부지런히 읽을 때 이 성경 말씀은 어떤 때 우리 생각에는 기상천외의 말씀으로 생각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상천외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기 하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말씀의 길을 믿음으로 택해서 말씀 위에 서서 나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럴 때 마음에 있는 불안과 공포, 초조와 절망을 다 내어쫓아 버리고 위대한 신앙의 승리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여기에 크나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길은 문둥이들의 행진인 것입니다.
이것은 외적인 적을 물리치는 방법인 것입니다. 여러분, 문둥이들의 상황을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사마리아 성이 극도로 지금 굶주림으로 허덕였을 때 문둥이 네 사람이 사마리아 성 밖에 앉아있었습니다. 문둥이라면 인간으로서 절망을 벌써 그 뼈 속까지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옛날에도 문둥병은 절망했거니와 오늘날에도 문둥병에 걸리면 인간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습니까? 처참한 지경에 벌써 절망적인 문둥이 네 사람이 사마리아 성가에 앉아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성에 들어가고자 할지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다. 자, 문둥이 비록 몸은 그래도 몸은 그렇게 처참하게 병들었지만은 그들의 마음은 어떠한 상황이었습니까? 우리가 절망인데 성중에 들어간들 성안에도 죽음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국 죽음을 찾아들어가는 것 밖에 없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세계를 향하여 들어가는 사람은 스스로 파면을 구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광야에 와서 모세가 정탐군을 보내었을 때 그 열사람은 벌써 그 마음속에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저 땅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 처자들이 포로로 잡힐 것이다. 우리는 연약하다. 무엇이든지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40주 40야를 정탐을 하고 나왔는데 부정적인 마음에 비취는 것은 부정적인 것 밖에 안 보였었습니다. 산은 높고 골을 깊으며 그 토지가 주민을 삼키고 그 성은 철벽 성이고 그 곳에 사는 사람은 내 네피림의 후속 아낙 자손이라 다 대장부인데 우리가 그 사람들하고 비교해보니 우리는 여치새끼같이 적더라. 그러므로 우리 처자가 포로로 잡힐 것이요, 우리는 폐한다.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느 곳에 들어가도 부정적인 것밖에 눈에 안보여요. 그러므로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부정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사람은 스스로 절망을 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주님께서 절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열 정탐군을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고 이 말을 듣고 같이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 사람들은 주님께서 돌이켜 광야로 들어가서 40년 동안 방황시켜서 모두다 죽여버리게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서 부정적인 세계를 자꾸 파헤치며 들어가는 사람은 주님께서 버리시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문둥이들은 비록 몸은 문둥이었지만은 그들은 부정적인 마음을 갖지 않았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안에 들어가면 거기에 죽음이 있을 것이라, 거기에 들어가서 같이 죽음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부정적인 세계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문둥이들은 절망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결심했었습니다. 그 다음 이 문둥이들을 보십시오. 여기에 앉아있어도 죽을지라. 그 백사지 땅에 앉아있습니다, 성밖에. 무엇이 있을까요? 앉아있으면 죽는다. 그러므로 앉아 있을 필요도 없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좌절된 그 백사지 땅에서 앉아있습니다. 목표를 상실하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좌절하고 절망한 사람은 정신적으로 이미 무덤에 들어간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어떠한 환경에서도 우리는 좌절하여 여기 앉아서 죽자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 앉아서 죽어요? 문둥이들은 충분히 앉아서 죽자고 할만한 그와 같은 운명적인 존재라도 그들은 여기 앉아 있어 죽자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지니 우리 목표없이 허망한 사람이 되지 말고 삶의 의욕을 버린 사람이 되지말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정신적인 무덤을 파헤친 사람이 되지 말자고 문둥이들은 말한 것입니다. 그 문둥이들은 무슨 말을 할까요?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군대에게 항복하자 살려주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까? 살던지 죽던지 희망을 향해서 나가보자 그 말인 것입니다. 살면 살고 죽으면 죽자. 그러나 희망이 있는 곳을 향해서 나아가자. 성안에는 굶주림의 손에 들어가면 죽을 것이요, 앉아서 좌절해도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차라리 일어나서 희망이 있는 곳을 향해서 살던지 죽던지 행진하면서 나가자. 여러분 희망으로 나가는 길에는 언제나 장애물이 있습니다. 문둥이들이 희망을 향해서 나가는데는 그 곳에 아람대군이 있어서 살려줄지 죽을지 모릅니다. 여러분과 내가 희망을 향해서 나아갈려고 할 때는 거기에 고달픔이 있고 괴로움이 있습니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늘 하는 말은 너희들이 앞으로 나가서 희망찬 자기 개인의 운명과 국가를 건설할려면은 희망을 향해 나가는데는 괴로움이 많다. 가시밭길 험한 길이다. 그러나 그것을 참고 애를 쓰고 공부를 하고 힘을 쓰고 수료를 하면은 그 희망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희망으로 가는 길에 여러 가지 가시밭 길이 있고 험한 길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보고서 두려워해서 그만 좌절해 버리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둥이들처럼 살던지 죽던지 성공할는지 실패할는지 모른다, 불확실하다. 그러나 희망이 있다. 그러므로 희망을 향해서 절대적으로 소망을 버리지 말고 긍정적인 태도로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이 있는 곳에 반드시 양식이 있습니다. 희망으로 나가는 그 곳에 양식이 있습니다. 희망 속에는 줄기찬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있습니다. 나는 이 문둥이들의 태도에 마음에 극히 감동했습니다. 우리 살려줄지 죽일지 모른다. 그러나 살던지 죽던지 희망만은 버리지 말자. 그리고 희망이 있는 곳으로 향해서 나아가자. 여러분, 제가 여러분께 늘 말씀드리는 것처럼 어떠한 환경에도 줄기차게 긍정적이며 적극적이며 창조적이며 생산적이며 희망적인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나아가자는 이유는 오직 그렇게 나아가는 마음의 태도만이 하나님께서 같이 하는 태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는 못 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죽는다. 나는 절망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마음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주님께서 내어 던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할 수 없다고 좌절해서 포기해버리는 사람도 하나님이 돌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비록 이 세상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고 버림을 받은 문둥이 같은 사람이라도 절망을 향하여 가지 아니하고 좌절하지 아니하고 희망을 향해서 살던지 죽던지 나아가겠다고 결심하는 그 개인이나 과정이나 민족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져야 할 것은 줄기찬 희망인 것입니다. 결코 부정적인 것을 택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절대로 좌절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비록 가시밭 험한 길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헤치고 우리는 희망을 향해서 나아가는 그런 마음의 자세를 반드시 취해야만 할 것인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구원을 보실까요?
하나님의 구원은 두 가지 조건이 준비된 곳에 나타난 것입니다. 엘리사와 같은 믿음인 것입니다. 처절한 굶주림으로 사라마이 자기 자식을 잡아서 삶아먹는 그런 처지에도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왕도 그 믿음을 포기하고 왕의 장관도 그 믿음을 포기하고 백성들도 다 절망하여 그 믿음을 포기했지만은 엘리사는 눈에는 아무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현실이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어도 그는 하늘을 지으시고 땅을 지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의 그는 부여잡고 낙심하지 않았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여러분께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여러분 환경을 믿는 것도 아니요, 감각을 믿는 것도 아니요, 여러분의 체험을 믿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믿음을 두는 것입니다. 말씀만이 여러분과 내가 믿을 수 있는 이유가 되고 조건이 됩니다. 말씀을 떠난 믿음이란 그것은 감정적인 것이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이 말씀의 믿음에 섰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믿음이 있을 때 역사하시고, 그 다음은 문둥이들의 희망으로 향한 결의가 충천했을 때 이 희망적인 마음의 태도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믿음과 마음에 흔들리지 않고 폐할 수 없는 희망에 대한 위대한 소신, 희망을 향한 행진,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의 믿음이 뒤에서 받들고 이 문둥이들, 살던지 죽던지 희망을 향해서 전진하는 결의가 충천했을 때, 하나님도 거기에 가담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문둥이들이 일어나서 스크램을 짰었습니다. 자 배도 굶었지요, 문둥이가 되어서 발가락은 떨어졌지요, 손가락도 문들어 졌죠. 걸음을 잘 걸을 수 있나요? 그래서 문둥이 네 사람이 스크램을 짜 가지고서 이제는 희망을 향해 전진합니다. 그들이 나가다가 후닥닥 한 사람이 자빠지면 모두 다 자빠집니다. 그러면 또 서로 일어나라, 열심을 내 또 일어나라. 가자, 희망을 향해서 가자. 그러다 또 다른 사람이 도랑에 빠지면 모두다 빠집니다. 또 건져냅니다. 그리고 또 서로 격려하고 서로 힘을 주어서 갑니다. 그런데 아람진에 대 소동이 일어나서 아람군대들이 황혼에 밥을 다 먹고 각각 천막에 들어가서 잠을 잘려고 하는데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납니다. 귀를 기울려보니 대 군대의 행진 소리가 들려옵니다. 군대가 보조를 맞춰서 오는 행진 소리가 들려오고, 전차소리가 와라락 와라락 천지를 진동합니다. 야, 이스라엘 왕이 외국 군대를 고용해서 우리를 포위하여 들어온다. 달아나자. 얼마나 급했던지 일어나서 허리띠도 못 묶고 팬티바람으로 맨발 벗고 그냥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달아났으니 그 달아난 길에 전부 신하고 허리띠하고 옷 벗어 던진 것이 그냥 길거리에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습니다. 문둥이 네 사람이 행진해 오는데 그렇게 겁날까요? 그러나 문둥이 네 사람이 희망을 향한 줄기찬 행진을 하고 그 뒤에 절대로 낙심하지 않는 엘리사의 믿음이 하늘에 충천하고 있으니깐 하나님의 그 엘리사의 믿음과 문둥이들의 희망을 향한 줄기찬 행진에 하나님이 함께 가담을 해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이런 믿음과 이런 삶의 태도가 있으면 하나님이 함께 가담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문둥이하고 같이 스크램을 짜고 행진하니깐 거기에다가 확성기를 대어 놓으니깐 문둥이가 자빠지는 소리가 큰 전차가 오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와르르 와르르 하고. 문둥이들이 서로 격려합니다. 일어나서 나가자. 힘을 내어라 하는 소리가 대 군대가 고함치는 소리로 들렸었습니다. 그리고 문둥이들이 걸어오는 그 발자국 소리가 하나님이 같이 발자국을 가지고 보조를 맞춰 행진하매 대 군대의 행진소리로 들려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행진을 하시면 어떠한 마귀도 다 달아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행진하시면 홍해수도 갈라지고 요단강도 갈라지고 여리고도 무너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생활속에 하나님께서 함께 행진해 주시는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엘리사와 같은 말씀을 선 믿음을 가지고 네 사람의 문둥이와 같이 절대로 부정적이 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향해서 살던지 죽던지 행진하는 그런 사람이 되면은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열고 내려 오셔서 여러분과 함께 스크램을 짜서 행진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행진 앞에 적들은 혼비백산 풍지박산 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 결과로 문둥이들이 보니깐 어렵쇼 원수가 하나도 없어요. 전부 천막이 비었는데 거기에 보니 보리하고 밀 뭐 밀가루가 산적해 있습니다. 어찌나 좋던지 실컷 먹고 감추고 남아서 그리고도 남아서 우리만 먹어서 안되겠다. 뛰어가서 사마리아 성에 보고를 하니 그것이 사실인 것이 인정이 되자 성문을 열어 제꼈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이 사자같이 그냥 덤벼서 밀려나오는데 이 장관이 그것을 막겠다고 앞에 서서 막다가 밟혀가 죽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믿지 않은 사람은 눈으로 보았으나 결국 밟혀 죽고 맙니다. 오직 하늘나라는 믿는 자에게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믿지않고 의심하는 자에게는 아무리 눈으로 봐도 자기 손에 넣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굶주린 사마리아 성은 밀가루와 밀과 보리가 넘쳐나게 되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극한 상황, 인간으로서 절대 절망은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 소망이 되고 인간으로서 불가능은 하나님께 가능이 되므로 이 전지전능 무소부지하신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결로 낙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인 자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에 우리 주를 믿는 사람은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좋지 않은 것은 우리가 이 말씀을 믿고 있는 이상 하나님께서 함께 역사해서 하나님께서 좋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은 여러분에게 두 가지 사항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신앙이 엘리사처럼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이 되든지 얼마나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오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떠나지 마십시오. 말씀을 져버리지 않은 이상 하나님이 여러분을 져버리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하늘에 굳게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하나님의 이름 위에 말씀을 높여 놓았기 때문에 믿음이란 말씀 위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회당장에게 말한 것처럼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여러분의 귀에 끊임없이 부정적이고 절망적이고 파괴적인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와 함께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도 들려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정적인 음성을 버리고 회당장처럼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택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께서 말씀을 부지런히 읽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매일같이 몇 장씩 읽으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교회 와서 들으십시오. 말씀을 연구하십시오. 이래서 어떠한 일이든지 말씀을 알고서 그 말씀 위에 매달릴 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말씀이 여러분 마음속에 믿음을 주고 여러분 믿음의 길을 선택하고 나가면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말씀은 기어코 승리를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문둥이들처럼 행진하십시오. 아이고 목사님, 가문도 없고요, 몸도 약하고요, 지식도 없고요, 가진 돈도 없고요, 나는 뭐와 같다고요 문둥이 같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문둥이를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둥이와 같이 스크램을 짜고 행진을 했는데 여러분 같은 사람들하고 스크램을 짜고 행진을 안 할 것이라고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절대적으로 낙심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십시오. 어떠한 일에도 희망차게 말하십시오. 희망을 바라보십시오. 희망을 보고 행진하십시오. 그 행진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스크램을 짜 주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위대한 승리로서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 남에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삶을 살게 되실 것입니다.

- 기 도-
살아계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어제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하나님 아버지시오. 우리 아버지께서는 오직 우리가 줄기찬 말씀에 대한 믿음과 끝없이 희망을 향해서 나아가는 행진을 원하시옵나이다. 말씀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를 가질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 가운데 역사하여 주셔서 모든 일에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시옵시며, 위대한 승리를 갖다 주심을 생각할 때 감사하옵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제 3부 예배에 출석한 우리 성도들 어떠한 형편과 환경에 섰을지라도 오늘 이 두 가지 태도를 져버리지 말게 도와주시옵시고 이 교훈을 통해서 사마리아 성이 절망에서 소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슬픔에서 즐거움으로 변한 것처럼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 성도들에게 다가오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믿음 없는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시고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 것을 희망을 저버린 태도를 취한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늘 성령으로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