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1984년 11월 11일
제목 : 생각을 바꿔라
성구 : 잠 4:23

저는 여러분과 함께 "생각을 바꾸라" 이와같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된 것은 그 생각할수 있는 능력 때문인 것입니다. 체력으로 말하면 사람은 사자나 곰이나 호랑이나 심지어 소보다도 힘이 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 알려진 이 지구를 완전히 정복한 것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 만능의 시대를 만들은것도 또한 생각의 산물이며 동시에 인류 파멸의 위기까지 몰아넣은것도 인간 생각의 결말인 것입니다. 인간이 오늘날 생각을 올바르게 갖게될 때 발전하고 향상하며 행복을 가져올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은 개인이나 가정이나 나라나 세계를 파멸로 이끌어 들일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에는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인생을 똑같은 곳에서 똑같이 출발해도 그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서 한사람은 성공하고 다른사람은 파멸합니다. 한사람은 잘살고 다른사람은 못삽니다. 한사람은 행복하고 다른사람은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자원으로서 생각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그것이 우리의 현실과 미래의 운명을 판결짓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시간에 우리는 어떻게 생각을 바꿀까요? 어떻게 생각을 가질까요? 거기에 대해서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릴려고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라는 것은 희망의 사고인 것입니다. 범사에 어둡고 절망적인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밝은면을 찾고 환환면을 찾습니다. 그리고 끝없는 소망을 가지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긍정적인 생각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사람은 어느곳에가나 어두운점을 찾습니다. 태양이 쨍쨍 비취는 대낮에도 나무 그늘 밑에나 처마 그늘에 내려가서 어두운 그림자에서 울고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두운 면을 언제나 찾고 희망을 져버리고 언제나 절망속에 거해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람이 개인이나 그런 민족이나 집단사회는 파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데스 반야에 왔을 때 이스라엘 족장 열두명을 택해서 그들은 사십주 사십야로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오게 했습니다. 열두명은 같은 장소에서 출발해서 같이 먹고 같이 자면서 사십주 사십야를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가데스 뱐야로 돌아왔었습니다. 삼백만 이스라엘 백성은 저들의 보고를 듣기 위해서 애타게 기다렸었습니다. 그들이 와서 연단에 서자 모두다 귀가 토끼귀처럼 쪼삣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운명이 이 보고에 달려있습다. 그런데 그중 열명이 서서 보고하는 것은 기가막힌 부정적인 보고였었습니다. 그 하는말이 우리가 가보니깐 그 가나안땅은 산이 악산이 높고 계곡은 깊으며 땅은 박토라 사람을 삼키고 그리고 그곳에 있는 성은 철벽성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은 네피림인의 후손 아낙 자손이라 키가 장대한 장사라 우리 스스로 비교해 보아도 여치새끼 같이 보이더라 우리는. 그러니 우리가 들어가지도 못할뿐 아니라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고 파멸되고 말 것이다. 이런 절망적인 부정적인 보고를 듣자마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담이 서늘해지고 마음이 물을 부은같이 낙심했습니다. 밤새도록 울고 그다음 아침에 우리 장관을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한 것입니다. 어떻게 철저하게 부정적인 보고를 했는데 그런데 똑같이 사십주 사십야를 여행한 여호수아 갈렙은 일어나서 백성들을 안돈해서 말하기를 아니라 우리가 들어간땅은 과연 하나님 말씀한대로 젖이 흐르고 꿀이 흐르더라. 여호와의 낙원이더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우리가 지금 당장 들어가서 졈령할수 있으니 일어나서 들어가 점령하자. 똑같은 장소에서 출발해서 똑같이 사십일을 지내면서 어떻게 열명은 이렇게도 부정적이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렇게도 긍정적일수가 있는 것입니까? 열명은 그렇게 절망적이고 두명은 그렇게 희망적이며 열명은 어두운점만 봤는데 두명은 어떻게 밝은점만 봤습니까? 이것이 여러분 마음의 태도인 것입니다. 새파란 안경을 끼고 세계를 바라보면 다 새파랗게 보이지요. 빨간 안경을 끼고보면 온 세상이 불타는것같이 빨갛게 보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어떠한 생각을 가지는가가 여러분 똑같은 세계를 바라보는데 한사람은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다른사람은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바라본 사람에게 하나님 어떻게 했습니까? 열사람의 정탐꾼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쳐서 죽여버렸었습니다. 그리고 그와함께 부정적인 생각을 받아들여서 희망을 져버린 삼백만 이스라엘 백성을 회진시켜 광야로 보내어서 그들이 좋아한 부정적인 모든 것을 다 체험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죽어 백골이 진토되게 만들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사막에서 광야에서 사십년 방황할 동안에 하나님께서 그들이 긍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희망찬 그들을 들어 붙들어서 주님께서 건강하게 해주셨고 나이 팔십이 되어도 사십대 청춘 못지않은 건강을 주셔서 후손들을 데리고 그들이 희망한대로 젖이 흐르고 꿀이 흐르는 여호와의 낙토로 들어갈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환경에서 생각을 어떻게 하는가에 달라서 그들의 운명이 하늘과 땅처럼 달라졌다는 것을 생각하고 우리는 전율하지 아니할수 없습니다. 여러분과 나의 가슴속에서 일어나는 이 생각이 여러분과 나의 운명을 이처럼 다르게 만들어 놓을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그 어떻게 되었든지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마음속에 희망차야만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이 밝은면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태도를 취해야 됩니다. 왜냐 십자가 밑에 나온 사람치고 긍정적이 안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부정적인 세력에 휩싸여 살고 있습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며 추악하고 버림당한 인생들 우리의 죄를 아무도 스스로 처리할수 없습니다.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십자가 앞에 나와서 그리스도를 쳐다보게될 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몸찢고 피흘려 죽으신 그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가 하나없이 그곳에서 다 청산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어떠한 죄인도 부정적으로 나는 절망이라고 말할수없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배로운 피를 흘린 공로가 있기 때문에 그곳에 나오면 용서를 받고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희망을 얻을수가 있고 밝은면이 그곳에 있습니다. 또 사람들은 나는 무능하다. 능력이 없어서 이세상에 낭패와 실망을 당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도 여러분 그렇게 부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예수 십자가 앞에 나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성령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얻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신다고 말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바울선생은 말씀하기를 "내게 능력주시는자 안에서 내게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말했었습니다.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영이 와서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와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너희 속에 계신이가 세상에 있는이보다 크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무능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여러분 절망적인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나는 무능하니깐 못한다는 그런말은 있을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있다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끝없는 희망을 가지고 우린 운명과 환경에 도전해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게로부터 주어져 있습니다. 나는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속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도 꼭 같아요. 병이 들엇 절망에 처하고 병원에 입원해서 직장을 다섯달 여섯달 쉬고 도 돌아와서 이제는 집에 나와서 또 직장생활을 하다 또 아파서 또 도로 쓰러져 또 병원에 들어가고 그래서 직장을 가진 부인은 더 이상 직장에서 일하지 못하고 남편 병문안하고 자식들 돌본다고 생활에 쪼달리고 마음이 지치고 몸도 지치고 죽을판이 되어서 이제는 살 희망조차 끊어지고 젊은 가정에 어린 애기는 생겼고 남편은 꼬치꼬치 말라 뼈다귀같이 되었고 부인은 이제 희망을 잃고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모든 것이 부정적이고 회색빛 이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우리 조장 한사람이 책한권을 주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예수 믿고 나면 새생명의 길이란 책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그에게 희망의 밝은 빛이 되었었습니다. 그는 그 책을받고 조장의 권면을 받아서 우리 교회 출석하게 되고 그 교회에서 메시지를 듣고 끝없는 마음속에 희망을 얻고 긍정적이되고 집에 들어가서 남성 구역예배때 남성구역장들 구역원들이와서 병들어 죽어가는 남편에게 손을 얹어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주고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서 나아버리고 말았었습니다. 절망은 변하여 소망이되고 죽음은 변하여 생명이 되었었습니다. 그렇게도 절망적이던 부정적인 가정이 그렇게도 긍정적으로서 희망찰수가 없다. 그래서 이제는 남편과 그 아내가 그 가정이 희망이 꽃이 피었습니다. 여러분 병든 사람도 그리스도 앞에 나오면 희망을 가질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기 때문에 저가 채찍에 맞았으므로 우리가 병고침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희망찰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생활에서 우리 예수믿는 사람이 여러분 저주에서 허덕인다는 것은 말이 아닙니다. 오늘날 일본 교회가 그렇게도 무력하고 무능력한 것은 교회가 굉장히 가난합니다. 일본의 기업체들은 그렇게 부자고 국가도 부자고 일본 일반사회가 부잔데 교회는 얼마나 가난한지 말로 형용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목사들에게 월급조차 잘 줄수 없고 교인들은 열다섯명 스무명 밖에 없습니다. 왜 일본 교회의 전통이 기어꾸 마사쓰 마사쓰다. 그말은 뭐냐하면 정결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다. 잘못 가르친 거야. 기어꾸 마사쓰다. 깨끗하게 가난하게 거지로 살아라. 그래 가지고서 얼마나 거지가 되었던지 교회당 건물도 옳게 세우지 못하고 이백년 기독교 역사에 일억 이천만 인구에 기독교인 백만도 안된다. 잘못된 가르침은 마귀에서 나옵니다. 깨끗하고 가난하게. 오늘날도 여러분 우리 한국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기만 하는 기복신앙 이라고 하지 말라 합니다. 그걸 가르치는 사람 자체를 찾아가 보십시오. 그걸 가르치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남에게 줄것이 아무것도 없고 자기 자신은 기도도 안하는 사람이 그런 소리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나무에 매달려서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가시와 엉겅퀴를 다 걸머지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니 이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믿음으로 성령을 선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께서 여러분과 나에게 관심이 계셔서 우리의 저주와 가난과 절망을 주님이 실제로 짊어지고 청산했는데 왜 예수 안에서 축복의 희망을 못가져요? 예수 안에서 축복의 희망을 못가지고 늘 교회 나가면서 가난하고 깨끗하게 가난한데 깨끗하기는 뭘 깨끗해! 가난하면 지저분하고 더럽지! 이와같은 잘못된 신앙은 사탄에게 잡혀서 하는 소리인 것입니다. 모든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일을 넘치게 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저가 흩어 가난한 자에게 주었은즉 그 의가 영원히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데 주는 자가 받는자보다 복이 있다고 했는데 늘 받아 얻어만 먹서 무슨 복을 받아요! 이러므로 오늘날 생활에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절망한 사람도 십자가 밑에 나오면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짊어지심으로 그곳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용기를 얻고 끝없는 긍정적인 태도로서 희망을 가지고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나아질 것을 믿고 나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죽음조차도 우리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죽는다고 할지라도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쫓아 강림하시리니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우리들이 변화될 것임이요 그리고 주와 함께 공중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이 예비한 세계를 영원히 상속해서 살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이 어디있습니까? 죽음이 무슨 절망적인 세력이 될수 있습니까? 이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인 절망이란 있을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끝없는 희망으로 꽉들어차고 인생에 밝은면만 찾아야 될 수 있는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긍정적이 되지 않는 기독교 신자는 병든신자인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말하고 긍정적인면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은 병든 사람이요 그래서 다같은 기독교신자로 출발하지만은 여러분 부정적인 열명의 정탐꾼이나 삼백명 이스라엘인처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은 그런 부정적인 생각과 그 말을 먹고 파멸할 것이요 긍정적인 여호수아와 갈렙같은 사람은 희망을 져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젖을 먹고 꿀을 마시게 될것인 것입니다. 우린 로마서 28장을 믿는 이상 우리 기독교 신자들은 부정적이 될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종국에 선이 될것인데 왜 부정적이 되어요. 그러므로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이 긍정적인 끝없는 희망에 찬 인생에 밝은면을 바라보고 기대하는 그런 사고방식을 갖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십자가의 사고방식은 이것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됩니다.
적극적인 사고라는 것은 할수있다는 사고인 것입니다. 범사에 소극적이 되어 나는 못해 나는 안돼 나는 할수없어 이러한 소극적임 **** 소극적인 사람은 언제나 웅크러져 들어갑니다.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민족은 언제나 남의 민족에게 침략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를 볼 때 옛날에 고구려, 신라, 백제때 또 고구려의 장대한 기상으로 저 만주 벌판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나가면 얼마나 좋았습니까? 그러나 나는 신라가 삼국통일한 것을 생각하면 원통합니다. 하 저 경주 조그만한 구석에서 태어난 나라 소극적이 되가지고서 다른 나라 민족 끌어다가 대한민국 반도강산 겨우 통일해 놓고 만주 땅 다 내주고 말아요. 소극적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적극적인 생각이란 것은 어떤 것이냐!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할 수 있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세워서 실패를 생각하지 말고 성공을 생각하며 칠전팔기해서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이것이 적극적인 사고인 것입니다. 언제나 소극적이 되어서 나는 못해요. 나는 힘이 없어요. 나는 안돼요. 그러한 사람은 이 세상 경쟁에서 파멸돕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은 예수님께서 광야에 나가셨는데 남자만 오천명 그러니깐 기만명이 모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얼마나 꿀같이 달았겠어요? 하루종일 예수님의 말씀에 심취했습니다. 그리고 병고침을 받고 너무 기뻐있다가 가니깐 저녁이 되었습니다. 갈릴리 바다바람이 불어오는데 살을 에는 듯이 찹니다. 그러자 갑자기 허기증을 느낀 부녀자들이 길거리에 앉아서 걸음을 못걷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을 불러서 빌립아! 무엇을 가지고 이 사람들을 먹여야 될것인데 어떻게 할까?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예수님은 벌써 어떻게 하실 것을 알고 계셨으면서도 빌립의 사고방식을 주님이 시험해 보셨습니다. 빌립은 소극적인 사람입니다. 곧장 빌립은 계산을 해 보았었습니다. 햐 이 사람들에게 조금씩 먹일지라도 이백 데나리언이나 되는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이 생길리도 없고 이게 떡살것도 없고 여기에는 광야고 시간도 늦고 안된다. 목 먹여. 할 수 없어. 그래서 빌립은 소극적인 사람이라 예수께 나와서 뭐라 그랬습니까? 주여 이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떡이 있어야 되겠는데 그 돈도 없고 떡 살곳도 없습니다. 주님이시여 이곳은 광야요 시간이 늦었으니 흩어보내서 자기들이 사먹게 하는게 좋습니다. 소극적인 태도는 문제를 부딪혔을 때 이렇게 소극적으로 회피할려고 합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그렇지 않았었습니다. 안드레는 적극적인 사람 이었었습니다. 그는 할 수 있다. 예수께서 먹이라고 했으니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할수있다의 신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목표를 세워서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에게 가서 떡이 있는지 찾아보니깐 어린아이의 점심 도시락에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얻었었습니다. 이걸 가지고서 실천적인 신앙으로 실패를 생각하지 않고 성공을 생각하면서 예수님께 가지고 나왔었습니다. 사람으로 볼 때 이거 기막힌 것이지만은 그러나 여기 안드레는 그 적어도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방책을 내세워서 할 수 있다 신념을 가지고서 실천적으로 성공할 것을 기대하고 나와었으니 이럴 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소극적으로 생각하는 빌립을 제껴버리고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안드레 편에서서 안드레의 떡 다섯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서 축복해 주시매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나중에 부스러기를 모으니 열두바구니가 남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날 소극적인 사람하고는 일하지 않습니다. 할수없다. 못한다. 안된다는 사람하고 하나님이 일할턱이 있어요? 할 수 있다. 하면된다. 해보자. 적극적인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실천하며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세워 행동하며 성공을 생각하고 실패를 생각하지 않는 이와같은 안드레식 그와같은 사고를 가진 사람하고 주님이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계 경쟁 속에는 누가 더 적극적인 ***해서 불가능을 변화시키는가! 여기에 성공 실패가 달린 것입니다. 슈울로박사가 늘 말하는 것처럼 사람이 걸어가다가 앞에 산이 막히면 산을 돌아갈 것이요 돌아서 못가면 터널을 뚫을 것이요 터널을 뚫지 못하겠거든 나는 온 산이 다 금덩어리가 되도록 아이디어를 개발하라고 말했었습니다. 우리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할수없다는 말은 우리 입에서 제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에게 주님이 같이 가셔서 축복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이제 창조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사고방식이란 것은 어떤 어려운 문제가 부딪혀도 그 문제에는 해결의 방책이 있다. 아이디어 개발인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경쟁은 아이디어의 개발입니다. 첨단과학기술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산업은 아이디어 산업인 것입니다. 오늘 온 세계가 무섭게 잡아먹히느냐 먹느냐의 경쟁사회입니다. 여기에서 오늘날 아이디어 개발을 한 민족은 살고 아이디어 개발을 못하면 낙후된 민족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에서 창조적인 사고방식을 펴야 되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옛날에 우리 할아버지도 그랬다 아버지도 그랬다 그래 나도 그 방법대로 산다. 천만에요. 그렇게 살다가는 파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수평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다가는 파멸해요. 새로운 기발한 아이디어 수직적인 기발한 아이디어가 와야돼요. 나는 옛날에 늘 우리 한국시골을 여행하면서 늘 가슴을 칩니다. 오천년동안 이 땅에서 이 민족이 살아오면서 오천년전에 짓던 흙집 그대로 지어요. 스타일도 안바껴 스타일도. 스타일도 좀 바꿀만한데. 흙집 그대로 스타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그러한 스타일 흙집을 그대로 짓고 그 지게 오천년동안 짊어진 그 지게 고대로 아이디어 하나도 개발하지 않고 그 지게 걸머지고 그 호미 가지고서 그 곡갱이 가지고서 그렇게해서 살아요. 우리 대한민국이 일본에게 먹혀서 삼십육년동안 고생했다는 것 여러분 원망할 필요 없습니다. 오죽이나 못나서 남에게 잡아 먹혀요. 조금 잘났으면 조금 배타고 넘어가면 대마도도 먹어버리고 일본도 먹어버리지 왜 안 놔뒀어요? 잡아먹히고 난 다음 우는 것 그만침 불쌍한 놈 없어요. 나는 우리가 일본에 내가 늘 가서 복음을 중거하고 일본 사람 내가 늘 원망하고 너희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혹했냐 꾸짖기도 하지만은 그러나 속으로는 내가 생각하기를 오죽이나 못났기에 잡아 먹혔노! 왜 우리 민족은 오천년동안 창조적인 생각을 안했었어요? 전통적으로 있는 그대로 살아왔어요. 싸움이나 하고 그러나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서 새로운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했었습니다. 그 결과 방대한 재산과 군비를 비축해서 한국을 먹고 중국대륙까지 먹고 온 동남아를 휩쓸었어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서 수르 광야에 나가서 사흘동안 걸으매 물이 없어 목마르다가 갑자기 우물 연못물을 발견한데 뛰어가서 먹어보니 물이 썼습니다. 그러니 온 백성이 물을 토하고 앉아가 다리를 뻗고 통곡하고 웁니다. 우리가 무엇을 마실꼬 애굽에 무덤이 없어 우리를 데려왔느냐? 아 문제가 다가왔으면 창조적인 생각을 가지고 이 물을 어떻게 달게 만들꼬 생각 안하고서 그냥 마셔 보고 물이 쓰니깐 두다리 뻗어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때 모세는 수평적인 사고가 아니라 수직적이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그 물을 달게하는 성분의 나무가 있어 그 나무를 꺽어가지고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그래 다 마셔서 살았습니다. 모세가 수직적인 사고방식으로 아이디어를 안 만들어 냈으면 모두 다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저는 신약성경에 보면 아주 재미있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서 집에 들었는데 사람이 인산인해로 와서 그만 마당까지 입추의 여지없이 사람이 들어갈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 중풍병자가 네사람의 친구에게 들것에 들려와서 자 수평적인 사고방식으로 평창적으로 생각하면 사람의 집에는 대문으로 들어가고 방문으로 들어가야 될 것 아닙니까? 대문으로 아무리 좀 들어갑시다. 방문으로 들어갑시다 해도 뭐 사람이 꽉 들어차서 용신할 수가 있어야지 들어갈수가 없습니다. 그럼 보통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들어갈래도 들어갈수 없으니 그는 집으로 돌아가자. 그랬을 것인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한 창조적인 태도를 취했었습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했었어요. 이건 뭐 반드시 대문으로 들어갈수가 필요가 있느냐? 대문으로 못들어가고 방문으로 못들어가면 천장으로라도 들어가자. 그래서 이 사람들은 수평적인 사고가 아니라 수직적인 기발한 아이디어를 개발해서 그만 그 들 것을 들고 지붕에 올라가서 기왓장을 제끼고 구멍을 뚫어 가지고서 그거를 예수 앞에 내려 놓았어요. 예수님이 그 믿음을 보고 죄를 용서하고 병을 고쳐줌으로 말미암아 건강하게 되어 나갔습니다. 이 새로운 아이디어 문제에 대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아니었으면 이 사람은 평생에 중풍병으로 앓다가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 할아버지가 이길을 택했다. 우리 아버지도 이길을 택했다. 그러므로 나도 이길을 택한다. 그런 법이 없어요. 언제나 문제에 대하면 비상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개발해서 창조적으로 대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엇이든 문제를 당하던지 안된다고 하지말고 문제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해결책이 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개발하십시오. 인간이 자본고갈로 절대로 멸망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아이디어가 고갈할 때 인간은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이디어가 살아있는 이상 창조적으로 모든일에 대하는 이상 인간은 절대로 자연고갈로 죽지는 않을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시간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다 모든일을 당할 때 창조적인 사고를 얻으십시오.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저가 주시리라. 지혜가 바로 아이디어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만큼 여러분 위대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얻을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 사람은 세상적인 지혜로서 아이디어를 개발하지만은 우리 예수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나오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창조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셔서 위대한 수직적인 하늘에서 내려온 아이디어로서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우리 예수 믿는 사람 마음속에 수많은 아이디어가 지나갑니다. 우린 그것을 창조적으로 대하지 않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오더라도 이 전통적으로 틀렸다고 내어 던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여러분 우리에게 끊임없이 하나님이 성령으로 부어주시는 이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신중히 검토하고 받아서 이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창조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 우리는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않는 민족과 백성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인간 세상에서 누가 먼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하느냐? 문제에 대해서 창조적으로 대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해서 첨단으로 나아가느냐? 이것이 오늘 전세계에서 더 잘살게 되느냐 못살게 되느냐의 관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창조적인 사고를 꼭 가지고 할수없다는 그러한 무지막지한 소리를 하지말아야 될것인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는 생산적인 사고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수많은 시간 공간 물질 에너지등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비 생산적인 사고와 삶의 태도인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요사이 얼마나 많은 우리 가족들이 저녁 먹고 난 다음 테레비에 앉아 그 바보통 앞에서 입을 떡 벌리고 세시간이고 네시간이고 있다가 잠잡니다. 그러니 뭐 사람이 일년이 지나고 십년이 지나도 조금도 발전이 안돼! 사람이란 자기 스스로에게 부가가치를 붙여서 사회에서 존경을 받고 가치가 나가는데 이것은 끊임없이 그 공부하고 연마하는데 있습니다. 아 밥먹고 배꺼질 때 한 삼십분동안 테레비 봤으면 됐지 그 다음에는 성경을 읽더라도 좀 많이 읽어서 구역장이 되더라도 눈알이 좀 빤질빤질한 구역장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전문서적이라도 좀 읽고 공부해서 말 한마디라도 확실하고 똑똑하게 말하고 자기에게 부가가치를 점점 부가해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기회가 있으면 더 승진할 수 있는 그러한 준비를 해야지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고서 완전히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더구나 우리 한국은 이 식생활 문제가 굉장히 비생산적입니다. 저는 제가 처음 1964년도에 미국에 갔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에 미국 사람이 한국에 많이 왔을 때 나는 미국 사람 대접할 때 우리 집에 청하면 막 우리집이야 한달을 굶든 말든 그날 막 상다리가 뿌러지도록 막 스무가지 서른가지 음식을 가지고서 대접을 했다고. 그럼 대접 받기 전에 미국 사람이 원더풀 원더플 하고서 먹었다고 그럼 나도 이제 미국가면 그렇게 대접해 줄줄 알고서 내가 대접을 굉장히 많이 해준 미국사람집에 가서 척 가서 앉았습니다. 에게게 닭다리 한 마리가 요만한게 나와요. 그래서 내 생각에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고 요게 시작인줄 알고서 날랑 먹었더니 그게 끝이라. 닭다리 한 마리 가지고서 그래서 내 속으로 어찌나 마음속에 괘씸하게 생각하는지 한국에 왔을 때 진수성찬으로 대접을해 주었는데 세상에 사람을 무시해서 요 닭다리 한 마리 밖에 없다니 그래 나중에 다른 집에도 가보니깐 다그래. 하하 이사람들의 식생활이 그렇구나! 아주 식생활이 생산적입니다. 여러분 일본에 가서 한번 밥먹어 보시오. 일본에 가서 밥 먹으면 반드시 공기밥을 먹지요. 공기밥 반드시 떠가지 지먹을만치 먹지 한국처럼 이 사발이에다가 그냥 떠서 막 먹다가 꾹꾹 눌러놓고 그다음 냉장고에 넣다가 나중에 먹으면 침이 당분이 되서 먹으면 들큰하게 돼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공기밥 딱 먹을대로 먹고 그런데 반찬을 얼마나 적게 주는지 계산을 해야 돼요. 일본에는 반드시 밥하구 요반찬하고 발란스가 맞도록 계산해서 밥먹고 반찬하고 조금씩 계산하지 그냥 밥 한술 더먹고 반찬 한번에 먹어버리면 나중에 맨밥 먹어야 돼. 맨밥. 그렇죠. 장로님! 나는 일본에만 가면 계산하다구 계산 요건 몇숟가락에 요거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그러기 때문에 일본의 식생할이란 것은 먹고 나면은 설거지 할것이 없어요. 다 싹 쓸어버린다구 싹 쓸어버려. 우리 한국에 식생활 이것은 진짜로 고쳐야돼. 이 때문에 주부들이 부엌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갖가지 만든다고. 조 목사 한번 심방하겠다고 하면 밤새도록 잠을 안잔다고 스무가지 서른가지 만든다고. 한두가지만 있으면 될걸 가지고서 나는 이런 이야기 들었어요. 논산 훈련소에 가니깐 너희들중에 식당에서 일한사람 손들어라 하니깐 한사람이 손을 딱 들거든 그래 하 이 식당에서 밥짖고 하는 그런 사람 필요하니깐 나오라. 무슨일했나? 예 서울의 일류 식당에서 무슨일했어. 예 젓가락 가지고 밥풀 갈려내는일 했습니다. 여러분 그말이 무슨 말인지 압니까? 식당에 가면 여러 가지 종류의 식사가 많이 나오는데 그 전부 그냥 숫갈가 퍼먹고해가 밥풀이 막 섞여있는 것 그것 다시 또 다른 상에 또 채릴려고 부엌에서 밥풀 주워냅니다. 그 젓갈가지고서. 그래 가지고서 솔직히 말해서 삼천만의 침을 다 석어가 먹고 있다고 지금 삼천만의 침을. 이게 우리 한국의 비 생산적입니다. 자기몫에 나온 것 홀딱 먹어버리면 더럽지가 않지. 그냥 남 먹은 것 또 부엌에 가서 밥풀 다 덜어내고 또 석어 또 가져나오고 또 가져나오고 삼천만의 침을 다 석어가지고서 먹으니. 그 유행병 걸려 안죽는게 다행이라구. 이것도 우리가 생산적인 사고를 해야돼. 식당제를 해가지고 사니깐 그게 통과안돼 이 생산적인 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우리 주부들도 여러분 부엌에서 해방이 되고 우리 한국에도 그 많은 음식의 낭비를 피할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도 마르다야 마르다야 니가 많은일로 염려하는구나. 한두가지만 하던지 한가지만 족한다. 하나님도 반찬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러는데 사람이라고 뭐 스무가지 있을 필요 어디있어요? 예수님도 한두가지만 하라 캤는데. 오늘부터 여러분께서 집에가서 반찬 하거들랑 한두가지만 하세요. 막 주인께서 말하시거든 조목사가 이렇게 하라더라구 말하십시오. 항의하거든 조목사에게 전화하라고 그러십시오. 뭘 스무가지 서른가지를 해요. 또 우리 생각도 좀 생산적으로 생각해야 돼요. 옛날에 실패한 것 안된 것 그것만 자꾸 생각하면 그 무슨 소용이 있으며 그저 늘 불평하고 원망하고 탄식하고 비난하고 이러것 정말 비생산적입니다. 저는 원래부터 남의 말을 하기를 좋아해서 참 큰 **였는데 요사이는 그거 진짜로 고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남의 말은 속에 들어온 꿀것이 재미가 있어요. 그 옛날에 내가 한 이십년전에 그 경고를 하나님께 받았는데 저가 이 신학교 가서 강의할 때 추운 겨울날 아침에 일찍 학교가서 추워서 스토브 가에 전부 불을 쬐고 있는데 그 선생들이 딱 둘러 앉았습니다. 그럼 내가 또 남의 말 하겠다고 그 아무개 목사말야 그러니깐 그 이선생이란 사람이 뭐 푹 일어나 나가요. 아니 이선생 왜 나가? 이거 남이 말하는데 사람 인격을 무시해도 분수가있지 나가기는 왜나가 하니깐엔 아니 조목사님 미안합니다. 나는요 어찌 남의말을 잘하는지 난 듣고 나면은 막 밤새도록 그 말 안하고는 못견디는데 그럼 조목사님 말한 것 내 그사람에게 반드시 난 전화해서 전달합니다. 전달하게 되면 난 부풀어서 말하게 되고 그다음에는 그사람하고 원수되고 조목사하고 원수될때니깐엔 난 안들을래요. 안듣는게 좋아요. 나는 거기에 크게 느꼈습니다. 진짜요. 저도요 남의 말 듣고 나면은 하지 말라는 말까지 다 전달한다고. 듣고 나면은 그 하고싶어 견딜수가 없어. 그 속이 간질간질간질해 그냥 그러니깐 안듣는게 좋다구. 그래서 요사이는 나도 남의말 많이 하는데 가면은 안듣는다구 막 일어나 나간다고. 안들어야 내가 안전하지. 듣고야 안전할 수가 있나?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정신적인 사고에도 생산적으로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남을 헐뜻고 비난하고 공격하지 말고 남의 잘난점을 들어서 이야기하고 그리고 건설적이 되야 하는 것입니다. 좀 서로 서로 건설적이 되면은 이렇게 낭비 정신적인 낭비를 가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좀 주안에서 생산적이 되면 우리의 시간도 그렇고 우리 생활도 그렇고 우리의 사고도 그렇고 건설적으로 살아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하는 것은 눈에 안보이는 가장 큰 재산이요 자원입니다. 이 가장 큰 재산과 자원을 우리가 낭비해서야 되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만 재산이고 자원이라고 생각하면 오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별 수 없는 것입니다. 눈에 안보이는 이 생각하는 것이 진짜 재산이요 진짜 자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생각할수 있는 자원이 고갈하지 않는 이상 인류는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잘못 생각 가지면은 똑같이 인생을 출발했으나 한사람은 성공하고 다른 사람은 실패하고 한사람은 잘살고 다른사람은 못살고 한사람은 영광을 얻고 한사람은 수치를 얻습니다. 오늘 이시간에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절대로 십자가 밑에 변화를 받아서 우리의 사고를 변화시켜 희망을 져버리지 않고 밝은면을 찾아나가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수없다고 하지말고 할 수 있다 하면된다 해보자의 생각으로 목표를 세워 계획을 세우고 실패를 생각하지 말고 성공을 생가하며 칠전팔기하여 실천하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갖게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범사에 전통적으로 생각해서 전통적으로 안되면 안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받아서 그래서 모든 문제에는 해결책이 있으니 창조적인 태도를 취해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아이디어 개발을 하는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서 일을 실천하므로 말미암아 여러분께서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개발해 나가고 더 풍성하고 행복한 세계를 가져오는 창조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피곤한 생활 가운데 끊임없이 연구해서 무엇이든지 생산적이 되십시다. 시간도 생산적이 되고 가정생활도 생산적으로 우리 언어 심사 행동도 생산적으로 파괴를 가져오지말고 건설을 가져와서 더 큰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이와같은 사람을 우리가 영위하도록 생산적인 사고를 늘 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은 사람과 같이 하여 주셔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해 주실 것입니다. 내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것은 우리의 생각의 입을 넓게 열라는 것입니다. 긍정적이며 적극적이고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입을 넓게 열 때 하나님이 채워주셔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얻어 모든 사람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않는 그러한 개인과 민족이 되기를 주님께서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우리에게 주신 생각은 황금보화로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재산이요 자원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재산과 자원을 수없이 낭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일에 희망찬 긍정적인 마음의 생각 모든 것에 할수있다의 적극적인 생각 아이디어를 개발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창조적인 생각 아버지 낭비가 없는 생산적인 생각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생각이 바로 인생의 삶의 그릇이오니 이 그릇에 올바른 하나님이 축복을 채워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