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3월 18일
제목 : 환난중의 형통
성구 : 시23:4-6

저는 시편 23편 후반절을 가지고 "환난중의 형통"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데 왜 환난이 다가옵니까? 내게 환
난이 다가오는 것을 보니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이
제 나를 버리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혹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시련을 겪게 하실까요? 이런 질
문들이 수없이 들어가면서 33년 동안 목회를 해 오고 있습
니다. 실제적으로 환난과 시련은 괴로운 것입니다. 환난과
시련을 경험할 때면 천지가 아득하고 정말 버림받은 심정
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상 알고 보면 그것은 환난
과 시련의 가면을 쓰고 온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이리와 사
자처럼 우리를 물고 찢는 것 같지만 환난과 시험을 견디고
나면 그 가면이 벗겨지자 말자 우리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오는 천사로 변화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환난을 통하여 더욱 큰 형통을 우리에게 가
져다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다윗이 우리에게 계시로써 보여준 환난중의 형통은
어떤 것인지 한번 알아 봐야 되겠습니다.

첫째로,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
한 골짜기로 다닐 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
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
하시나이다" 왜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녀야 할
까요? 우리의 생활 속에 크고 작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를 우리는 통하게 됩니다. 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해
야 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불순종이나 불
신앙의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불순종하거나 불신앙하고 또 하나님의 일
에 반역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안 되는 것입
니다. 왜냐하면, 어느 부모가 자식을 징계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영의 아버지께서 어찌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보시고도 징계하지 않고 내버려두겠습니까. 징계를 안 하면
그는 참 아버지도 아니요. 징계를 받지 아니하면 사생자지
참 아들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
자녀로 받아주신 이상 우리에게 징계하십니다. 이러므로 우
리는 완전한 인간이 못되기 때문에 불순종과 불신앙을 가
지고 하나님을 반역할 때 하나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로 통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깨어
지고 회개하고 자복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난과 시련의 풍파를 당했을 때 먼저
해야 될 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자복하는 일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환난과 고난의 풍파가 다
가오면 그때 엎드려서 회개하고 자복하고 하나님께 기도해
서 성령이여 감춰진 죄악이 있으면 다 드러나게 하여 주시
옵소서. 그리고 그 죄를 다 고백하고 자백하고 씻고 올바른
길로 돌아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젖과 꿀이 흐르는 곳에서 잘먹고 잘입고 잘살게 될 때 그
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과 사신을 섬기고 하나님께 반
격하자 하나님은 그들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국가적으
로 민족적으로 통하게 했습니다. 북방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고 남방 유다는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
민족적인 수난을 겪고 그들은 그곳에서 정결하게 되고 깨
어져서 나중에 고향 땅에 되돌아 왔을 때는 우상과 사신을
버리고 야웨 하나님을 섬기는 정결한 신앙인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정결케 하고 순종
하고 신실한 믿음을 가진 신자를 만들기 위해서 크고 작은
환난과 시험을 겪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환난과 시험은 마귀의 영을 통해서 다가오기도 합
니다. 마귀가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인데 우리의 약점을 바라보고 마귀가 총 공세를 가해서 우
리에게 환난과 시험을 가져다 줄 때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보면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
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동안 환난을 받
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
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욥의 시험을 보십시오. 욥은 정말 아들 딸 잘 낳고 사업
잘하고 부부간의 금술 좋게 잘 살았는데 마귀의 공격이 시
작되었습니다. 마귀가 그들을 시험하며 그 모든 재산 다 잃
어버리고 자식들은 다 환난 맞아서 모두 죽고 자기 몸은
동양성 문둥병에 걸려서 그는 잿더미에 앉아 기왓장으로
몸을 털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자기 부인이 와서 하는 말
이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저주한 다음 떠났습니다.
그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처절한 고난 속에 처했습니다. 그
러나 그럴 때 욥은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저주하
지 않고 인내하고 참으며 끝까지 기도했을 때 나중에 마귀
는 물러가고 하나님이 욥을 오히려 치료해주시고 복을 주
셔서 전보다 갑절의 재산과 전과 같은 수의 아들 딸들과
그리고 좋은 가정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
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풍성히 얻게 하려고 왔다고 예수
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마귀가 가져온 시험과
환난도 그때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신앙을 버리면
마귀에게 파멸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고 더 기도하고 더 찬미하고 더 긍정적인 태
도를 취하고 인내하면 마귀는 물러가게 됩니다.
그 다음 환난과 시험이 다가오는 것은 더욱 깨어지고 겸
손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4절에서 16절을 보면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
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
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
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
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께
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 할 때 우리를 깨뜨려서 복을 받
을만한 그릇을 준비하려고 할 때 시험과 환난을 통하게 하
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릇이 준비 안되었는데 하나님이
복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 그릇을 크게 하고 정결케
하려고 하니까 우리를 불을 통하고 물을 통하게 하는 것입
니다. 불을 통하고 물을 통할 때 우리의 찌꺼기가 정하게
되고 그릇이 커지고 그래서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
다. 예수님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과 환난을 통하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저들을 낮추시고 시험에서 마침내 저
들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
은 시험과 환난을 잘 견뎌내면 그 차후에는 시험과 환난과
동등 혹은 그 이상의 복이 반드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 환난 당할 때 여러분은 죽는 시늉을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결국 여러분과 나를 연단하고 깨뜨려서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자격을 주기 때문에 시험과 환난을 당
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성경에는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시험과 환난을 우리에게
밥으로 주셔서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굳세
게 되는 것입니다. 몸은 운동을 해야 근육이 튼튼해집니다.
우리 영혼은 시험과 환난의 밥을 많이 먹어야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가나안의 원수들은 모두 우리의 밥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여
러분 누구든지 밥상 앞에서 불평 많은 사람은 건강이 좋지
못합니다. 건강이 좋은 사람은 무슨 음식이든지 잘먹고 편
식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면 이를 받
아들여서 소화해 버리고 감사하고 나가면 시험과 환난은
우리의 영양분이 되지 우리에게 해독이 되지 않습니다. 그
러나 시험과 환난을 받아 가지고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발
버둥을 치면 이것은 우리에게 영양분도 되지 못하고 오히
려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의 무기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갈렙은 환난과 시험
을 영양분으로 먹었기 때문에 자기와 같이 애굽에서 나온
사람이라도 다 광야에서 죽을 때라도 여호수아와 갈렙은
죽지 않고 팔십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
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은 말씀하기를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시험과
환난을 통할 때 주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시험과 환난
당할 때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심정이지만 그러나 구름이
가려도 그 뒤에 태양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숨어서 잠잠
하게 우리와 같이 하시면서 우리를 보시고 우리가 해를 받
지 않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기서 말하기를
환난과 시험을 통해 우리가 형통하게 되는 이유는 주의 지
팡이가 우리를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환난과 시험인줄 아는
데 실상은 그 가운데 주께서 같이 가셔서 주께서 환난과
시험을 우리의 지팡이로 삼으셔서 우리를 큰 형통으로 인
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무슨 환난과 시험이 우리를 이끌
어 가느냐.
여러분 요셉 보십시오. 요셉이 만일 환난과 시험을 안 당
했으면 목동으로 일생을 보내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환난과 시련을 요셉을 인도하는 지팡이로 삼
으신 것입니다. 지팡이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받아서 가나안 대상들에게 팔려서 애
굽의 종으로 팔려가고 애굽의 종으로 있다가 보디발의 아
내에게 참소를 받아서 시위대 뜰에 갇혀졌고 거기에서 기
약 없는 감옥살이를 하다가 나중에는 애굽 바로왕의 채택
을 받아서 국무총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요셉의 일생은
한없는 시련과 환난과 눈물이었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니
그 시련과 환난과 눈물이 요셉을 이끄는 지팡이가 되어서
애굽의 국무총리를 하였고 나중에 전 팔레스타인에 거대한
기근이 다가올 때 자기 아버지 가족을 다 불러다 잘먹고
잘입고 잘살도록 도와주는 기회가 되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세계도 보십시오. 시험과 환난을 안 당
할 때는 자행자제하고 제 마음대로 행하였으나 시험과 환
난을 당할 때 깨어져서 자기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복
하여 복받고 올바른 사람이 되어 걸어온 체험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시험과 환난을 당하기 전
에는 우리가 범죄하고 살았으나 시험과 환난을 당하고 난
다음 변화 받아 하나님 뜻대로 사는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
고 형통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줄 때가 한 두번이 아닌 것
입니다. 시험과 환난 동안에 하나님께서 또한 주의 막대기
즉, 권세를 보입니다. 목동은 막대기를 가지고 짐승들이 다
가오면 치고 짐승을 죽이고 양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환
난을 통하여 주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또 풍성한 신앙과 축
복의 세계에 들어온 간증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또 여러분 모든 생활이 평탄하면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체험할 수 없어요. 인
생에 거친 시험과 환난이 다가올 때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폐병 삼기에 떨어지지 않았으면 죽음에서
살리고 절망에서 치료하는 하나님을 결코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권능의
지팡이를 체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돌이
켜 보십시오. 여러분이 병들었을 때 여러분의 집안에 우환
과 질병이 있을 때 사업이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고통스러
울 때 그때 여러분은 금식하고 엎드려 기도했고 그러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권능의 지팡이를 체험하게 되고 여러분
의 신앙이 크게 자란 체험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시편 91편 15절에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
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
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환난은 우리를 파멸시
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영화롭게 하기 위한 하나
님의 수단인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
다. 이러기 때문에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도 하
나님은 환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더 큰 형통을 허락하여 주
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성경은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
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
다. 그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원수에게 당하는 시
험과 환난 때인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원수가 우리를 시험
하고 우리를 공격하면 원수만 바라보고 원수의 사나운 눈
을 바라보고 원수의 사나운 손톱과 발톱을 보고 우리는 그
만 아우성을 치고 절망에 쳐합니다. 원수가 왔으니 우린 이
젠 절망이라고 말합니다. 우린 세상에 살면서 수많은 환경
과 역경과 사람과 대면할 때 그들이 원수가 되어서 우리를
물고 찢기 위해서 다가올 때가 많은 것입니다.
원수가 우리를 공격할 때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면 원수가 다가올 때 절망
하고 좌절하고 부정적이 되어서 도망치지 않습니다. 왜냐하
면 하나님의 뜻을 알면 하나님은 원수의 바라는 것의 정반
대로 해 주시는 것입니다. 원수가 우리에게 올 때 하나님은
그것을 계기로 삼아서 원수를 아예 하나님께서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수가 오면 원수는 우리가 고통
당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수가 올 때 오
히려 고통 대신에 평안과 축복의 잔치상을 베풀어줍니다.
원수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려고 애를 쓰는데 하나님은 오
히려 원수 앞에서 우리에게 평안과 축복의 진수성찬 차려
놓은 다음 우리로 그것을 누리게 하면서 원수보고 용용 죽
겠지. 용용 죽겠지.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
님의 승리라는 것은 원수가 원하는 것의 정반대로 해주시
는 것입니다. 원수는 우리가 망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원
수가 쳐들어오면 하나님께선 오히려 우리에게 형통하고 흥
하는 잔치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원수의 목전에 잔치
상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원수는 우리가 망하기를 바라고
온갖 도적질하고 죽이고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원수 앞
에서 우리에게 형통과 흥하는 잔치상을 베풀어서 원수가
오면 올수록 우리는 더 살찌고 더 부흥하고 더 발전하는
것입니다. 원수는 우리가 죽기를 원하나 하나님께서는 그
기회를 이용해서 오히려 우리를 살리게 하고 더 강성하게
하여 잔치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원수하고 대결해 싸우다가 도망치고
상처입고 절망에 처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원수가 죽이거든 먹이고 목마르면 마시우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원수를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원수가 올 때 오
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원수를 저주하지 말고 복 빌어줄
것은 원수를 통해서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를 축복의 기회
로 삼아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지금까지 해방 이후 북한이 계속해서 우리
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북한은 6.25 사변도 그렇고 시시때
때로 늘 우리를 괴롭힙니다. 북한은 우리를 고통 당하기를
바라나 하나님은 오히려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 중에서 북
한보다 더 편안하게 살도록 우리를 만들은 잔치상을 베풀
어 주셨고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우리가 망하기를 바랬으나
하나님은 오히려 북한보다 더 흥하고 경제적으로 더 유력
하게 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우리
를 죽이기를 원하나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를 살려주시고
우리의 생명력이 강성해져서 여러분, 세계 올림픽대회를 한
국에서 이끌고 전세계로 뻗어 가는 기상을 하나님께서 허
락해주시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경은 무엇이
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선물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원수가
오거든 원수를 보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앞에 우리에
게 진수성찬을 차리는 수단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원수가
원하는 것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원수가 원하지
않는 것을 우리에게 이루셔서 원수가 그 앞에서 연기되어
사라지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 원수 앞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름으로
머리에 발라 잔이 넘치게 한다고 했습니다. 기름을 바른다
는 것은 능력을 준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기름이라는데 성
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많은 원수들이 공격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능력을 주어서 원수 앞에서 우리가 유능한 사람이 되어서
우리 모든 하는 일에 성공하여 잔이 넘치게 하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쁨의 잔이 넘치고, 소망의 잔이 넘치
고, 사랑의 잔이 넘치고, 믿음에 잔이 넘치고, 평화의 잔이
넘치고, 형통의 잔이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도
못 마시고 빈 그릇만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잔
이 넘치면 자기도 마시고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수가 오면 원수의 목전에서 원
수를 멸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보다 우리를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서 우리를 능하게 만들어서
우리 모든 생활에 잔이 넘치게 만들므로 말미암아 원수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
다. 우리는 기도합니다. 하나님 원수를 없애 주소서. 하나님
은 원수를 없애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수를 보내놓고 원수
앞에서 우리를 유능하게 만들어서 기름 부어 주셔서 우리
생활에 잔이 넘치는 승리와 성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
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원수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죄는 원수입니다. 마귀도 원수고 질병도 원수고 저주도 원
수입니다. 또, 우리의 적도 원수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
람들은 바로 원수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
나님께서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에게 성령을 부으셔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더 유능하게 해주시
고 우리의 모든 생활에 잔이 넘치게 간절히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할 수 있게 되길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잔
이 넘쳐야 남과 나누어 먹지 잔이 없는데 어떻게 남과 나
누어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므로 오히려 하나님은 원
수 앞에서 우리를 형통하게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죽음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형통하게 하십니다. 다
윗은 말하기를 나의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
령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웨 집에 영원히 거하리라. 사람은
여러분 한번 낳아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나서 심
판을 받는 것입니다. 불신자에게는 죽음은 인생의 끝을 의
미합니다. 모든 삶의 종결이요. 그러므로 죽음은 긍극적인
공포요, 슬픔이요, 절망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
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죽음이 우리에
게 굉장한 형통의 세계를 열어 주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
람에게는 죽음이 절망인데 우리는 죽음이 소망이요 안 믿
는 사람은 죽음이 끝인데 우리는 죽음이 시작이요, 안 믿는
사람은 멸망인데 우리는 영광인 것입니다. 왜냐 죽음을 통
해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을 시작하는 것이기 때
문입니다.
빌립보서 1장 21절에서 24절에 바울이 말하기를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
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
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바울은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들과 같이 있으
면 내가 너희들에게 전도도 하고 너희들에게 위로하기 때
문에 너희들은 유익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차라리 몸을
떠나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겁을 내지마는 바울 선생은 오히려 육신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것을 좋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5장 8절에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
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몸을
떠나면 사라질 줄 알지만 우리가 육신의 장막집을 떠나면
우린 그 다음에 곧장 주 예수와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죽음이 절망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와 함께 사는 크
나큰 영화로움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가장
오늘 어려운 것은 있을 곳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보십시오. 땅값이 폭등하고 집값이 폭등하고 하니까 전셋값
이 오르고 삭월세 값이 올라서 집 없는 사람의 서러움이
하늘에 닿았습니다. 저도 최근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편지
받습니다. 목사님 도와달라고. 그런데 제가 참 괴롭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삭월세 집에 사는데 당장 나가서 전셋집으
로 만들지 안으면 나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달에 50만원
60만원 삭월세로 사는데 지금 당장 전세로 바꾸라고 하는
데 천만원이 필요합니다. 이천만원이 필요합니다. 목사님
천만원만 도와주십시오. 이천만원만 도와주십시오. 얼마나
답답해야 내게 그런 편지를 내겠으며 또 그 편지를 읽는
내 마음은 얼마나 답답합니까. 막 마음에 분노가 생깁니다.
이 놈의 나라 정치를 어떻게 해 가지고선 이렇게 서민 대
중들이 그냥 전셋값 폭등에 삭월세값 폭등에 이렇게 고민
하느냐. 그 편지들 보면 절절히 원한에 사무쳤습니다. 잘사
는 사람들에 대한 원한 말입니다. 어떤 놈은 하루에 몇 억
씩 벌고, 잘살고, 우리는 이렇게 못살고 이제는 전셋집까지
쫓겨나게 생겼습니다. 온 가족이 길가에 나가서 집단 자살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나라는 정치를 잘해야 되요. 그래야
전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보
고 내가 마음에 아주 고통스럽기가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요사이에 내 주머니에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
털어 주어 가지고서. 저에게 그렇게 오는 편지들 어떻게 합
니까? 천만원은 못 주더라고 십만원은 줘야 될 것 아닙니
까? 기도만 해서 뭘 합니까? 가난은 나라도 못 감당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인 위기가 다가오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도 전셋
집이 비싸고 삭월세 값이 비싼데 천당에도 전셋집 내노라
하면 어떻게 합니까. 사람이 이 세상 살면서 있을 곳이 없
는 것이 가장 괴롭습니다. 사람이 있을 곳만 있으면 안정이
되기 때문에 먹는 것은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가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 크나큰 안
심이 되는 것은 이 육신의 장막을 벗어놓은 다음에 우리는
전셋집에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
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
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이제는 쫓겨 나가지 아
니하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
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14장 1절에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전셋집이 많도다. 혹은 내 아버지
집에 삭월세 집이 많도다. 그렇게 말하지 아니하시고 내 아
버지 집에 맨숀이 많도다"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맨숀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너희 있을
곳을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있을 곳을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려 하심이니라. 할렐루
야. 그러므로 우리가 육신을 떠난다는 것은 이제는 영원히
거하고 다시 빼앗기지 아니하는 주께서 친히 만들어 예비
하신 맨숀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우리는 죽
음조차도 우리에게 형통함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를 당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계
시를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장차 들어가 살 곳을 하나님이
미리 요한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에서
7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바다는 순종하는
인생의 환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환난이 없는 그런 세
계인 것입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
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너무너무 우리가 살 새
예루살렘이 멋있는지라 말하기를 신부가 그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더라. 여러분 여자의 일생에서 가장 자기를 멋
있게 화장하는 때가 시집가는 때인 것입니다. 아마 우리 한
국에서 결혼주례를 많이 한사람을 세어보라면 그 중에 제
가 둘째 가라면 서러울 것입니다. 참 33년 동안 주례를 많
이 했는데 그러나 제가 주례할 때 보면 평소에는 참 잘나
지 못한 아가씨들이라도 정말 신부로써 연지곤지 다 찍고
드레스 입고 오면 안 이쁜 여자가 별로 없어요. 주례를 하
면 서로 얼굴 얼굴 대고 나를 보고 서니까 바로 앞에, 모두
다 예쁜데 그런데 간혹 가다가 안 이쁜 여자도 있어요. 그
러면 제가 탄식을 합니다. 이렇게 화장을 하고도 안 이쁜데
진짜로 살아갈 때 못난이보고 어떻게 사노. 그런 걱정이 내
마음 속에 생길 때도 있어요. 그러나 대개 신부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전부 치장을 해서 예쁩니다. 여기에 요
한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한 우리가 거
할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정성으로
만들었던지 신부가 그 남편을 위해서 예비한 것 같다고 말
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 큰 음성이 나서 가
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
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
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
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
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
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
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
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것이 여러분 우리가 죽음 저 건너편에 가서 거
할 영원한 세계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는가 하면 새
하늘과 새 땅의 서울이 바로 새 예루살렘입니다. 오늘날 우
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서울인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어찌 아름답고 영화로운 것이 아닙니까.
이러기 때문에 바울이 말한 것처럼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
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렇
게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다윗이 외
치는 것처럼 내가 야웨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인생의
마지막 길에는 내가 하나님의 집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과
극낙의 세계 속에서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
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우
상 섬기는 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한 것입
니다. 육신이 죽는 것이 첫 사망이고 영혼도 죽어서 하나님
께 버림받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짐을 받은 것은
둘째 사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차라리 믿지 않고
두 번째 사망을 당하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았습니다.
오늘 그래서 시편 기자 다윗을 통해서 보면 우리는 환난
날에 형통하게 하는 하나님을 보고 환난을 오히려 즐겁게
느낄 수 있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잃어버리거나
원망하거나 불평을 하면 환난은 우리를 파멸합니다. 그러나
환난 때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은 환난을 통하여 오히
려 더 큰 형통을 가지고 오신다는 것을 알고 믿고 감사드
리고 기도하며 회개하며 연단을 받으며 깨어지며 인내하고
더욱 순종하면 환난은 오히려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크나큰
영광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서 18절을 보면 "우리의 잠시 받
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
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
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환난의 지극히 작은 것이
영광의 지극히 중한 것을 이룬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
러분 진주가 왜 귀합니까. 나중에 천당에 들어가면 새 예루
살렘에 들어가는 12문은 모두 다 진주로 되어있다고 했습
니다. 왜 진주로 되어 있을까요? 하늘나라 문은 진주로 되
어 있습니다. 그것은 환난을 통해서 진주가 되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문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진주는 어떻게 생겼나
요? 조개 혀 바닥 밑에 모래가 들어가서 조개가 움직일 때
마다 모래가 자꾸 살을 파먹어 들어갑니다. 그러니 조개가
아파서 견디지 못하고 자꾸 분비물을 내어서 그 모래를 감
싸고 모래를 감싸고 모래를 감싸기 때문에 동글동글하고
영롱한 진주가 되어 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 혀를 파서 살
을 파먹는 모래가 들어가지 않고는 진주를 조개는 절대로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우리의 인격이 귀한 진주가 되고 보
석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 환난이 다가오므로 우리가 환난
을 통해서 하나님께 회개하게 되고 부르짖어 기도하게 되
고 말씀 읽게 되고 또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되고 우리의
생애 속에 하나님의 영광스런 진주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우린 귀하고 아름다운 인격을 생성하게 되
는 것입니다.
예수님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
를 대신 짊어지고 우리의 불의와 추악과 죽음을 대신 짊어
지고 십자가에서 한없는 환난을 당하셨습니다. 못박혀 수족
의 피를 흘리고 창에 맞아 심장이 터져 물과 피가 다 쏟아
졌었습니다. 예수님이 당한 환난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
습니다. 그래서 죽어 무덤에 들어간지 사흘만에 예수님은
부활하셨을 때 그 환난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구원하는 구원의 원천이 되었고 하나님은 예수를
높이시매 모든 이름 위에 높은 이름으로 얻고 하나님의 영
광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은
당신이 환난 당한 것을 돌아보고 오히려 크게 기쁘게 여기
시고 만족하게 여기신다고 성경에는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
니다. 이러므로 환난은 잠시 당하나 환난 이후에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는 복은 영원하고도 영광스럽고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환
난이 오히려 변해서 우리에게 크나큰 영광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게 된 것을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환난당할 때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반항하지 말고 긍정적이고 적
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태도를 가지고 환난 때 기
도하고 오히려 감사하고 찬양하십시오. 눈에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
고 내 앞이 칠흑같이 어두워도 하나님만 생각하고 환난을
통하여 영광을 이루며 환난 가운데 형통을 주신 하나님을
찬미하게 될 때 얼마 있지 않아 안개구름은 확 사라지고
온 세계가 청량하게 비치는 하나님의 영광의 세계가 우리
앞에 전개될 것입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
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시편 23편을 볼 때 평
상시에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고 환난 때는 환난을 통해서
더 큰 영광으로 형통하게 해주심을 감사드리옵나이다. "내
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 내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이니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목전에서 내 상을 베푸
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진
실로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
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하나님 아버지
여 감사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은 모든 성도들이 이 땅
에 살면서 크고 작은 환난당할 때 낙심하지 말게 도와 주
시옵시고, 오히려 다윗의 계시를 통해서 형통하게 하신 하
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감사하며 찬송하며 밝고 맑고 환한
마음을 가지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태도를 가
지고 인생을 살아 하나님의 영광을 선물로 받게 도와 주시
옵소서. 우리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 드렸사옵니다. 아멘.

-신유기도-
만군의 야웨 우리 하나님 아버지 죽을 병에 걸린 우리를
건져 주신 하나님 아버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처한 우
리를 불러내어서 예수님의 피 뿌림을 받아 죄사함 받고 구
원을 얻게 하신 하나님이여 기사와 이적을 베푸시는 하나
님이시여 우리와 같이 하셔서 우리를 치료하시고 우리를
질병에서 건지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여. 나는 너희 병
을 치료하는 야웨라고 선언하신 하나님이시여. 오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아버지 앞에 간구하오니 주의
백성들이 아픈데 손을 얹고 주를 앙망하고 있습니다. 아버
지여 고쳐 주시옵소서. 하나님 기적이 나타나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치료가 임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
나 주시옵시고, 아버지여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고쳐 주시옵
소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주님께서 우리를 경계하고
경계한 말씀대로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 중심으로 돌아가오
니 주여 주의 손을 베풀어 안수하여 주시옵시고 마귀의 일
을 멸하여 주시옵시고 가지가지 질병에서 놓여남 받게 도
와 주시옵시고 온전한 건강과 생명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병에서 놓여남을 받을지
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왔습니다. 개인 가정 생
활 자녀 사업의 이 무거운 짐을 주님 발 앞에 내려놓았사
오니 주여 맡아 주시옵소서. 주여 이 짐 옮겨 버려 주시옵
소서. 우리 아버지여 기적이 일어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좋
은 일이 나타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께 부탁
하오니 주님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이름
으로 기도 드렸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