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1990년 6월 24일
제목 : 아! 6.25 그 참담했던 전쟁
성구 : 사 54 :14 ~ 17

전 여러분과 함께 "아~ 6.25 그 참담했던 전쟁"이라는 제
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전쟁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 볼 때는 로맨틱하고 흥미롭습
니다. 그러나 그 전쟁을 체험한 사람들에게는 몸서리치는
악몽입니다. 1950년 6월 25일에 벌어졌던 동족상잔의 전쟁
도 이제 40년의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 오늘날 대
다수의 우리 국민들은 역사책에서나 읽는 과거의 전쟁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그 전쟁은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고 가슴속에 현실로 살아있
는 전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전쟁의 시작은 이러했습니
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240km의 동, 서로 잘라 놓
은 3.8선 일대에 순식간에 스탈린과 김일성이 주재한 전쟁
의 폭풍우가 휘몰아쳤습니다. 북한 김일성은 적화통일의 야
욕을 채우기 위하여 우리 대한민국보다 수적으로 배나 월등
한 군대를 거느리고, 242대의 T-34 탱크와 198대의 비행기
와 226문의 122mm 곡사포와 36문의 고사 포와 각종 박격
포로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우리
나라는 어떻습니까? 탱크 한 대가 없습니다. 전투기 한 대
도 없고, 곡사포 한 대, 고사 포 한 대도 없으니 무장한 수
적으로 월등히 열세였던 국군은 순식간에 경을 떼고 말았습
니다. 뭐, 상대가 안돼요. 어른과 어린아이의 씨름입니다.
그래서 3.8선은 무너져 버리고 노도와 같이 전 3.8선 일대
에서 북한군은 공격을 계속 해 왔습니다. 그 전쟁은 마치
창을 솜을 뚫듯 파죽지세로 인민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진행
되었습니다. 그 비극적인 전쟁은 3년을 계속했고, 그 결과
로 남한은 초토화되고 국군, UN군, 경찰 및 민간인 56만 1
천 5백여 명이나 죽고, 부상자는 106만 9천여 명, 실종자
는 35만 5백여 명, 전재민이 362만 ,전쟁 미망인이 29만
명, 전쟁 고아가 5만 9천여 명이 거리를 헤매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수치스럽고, 비참한 우리 민족사에 영구히 잊지 못
할 동족이 동족을 죽인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러한
전쟁은 우리 대한민국은 막지 못했나요? 능히 막을 수 있
는 전쟁이 아니였나요? 6.25 사변은 제 2차 대전 후 세계
정복의 혈안이 되었던 소련의 스탈린과 그의 충복 김일성에
의해서 치밀하게 준비된 전쟁입니다. 1945년 8월 15일 해
방이 되자, 북에는 소련군이 진주하고 남에는 미군이 진주
했습니다. 3.8선이 갈려졌습니다. 그 때부터 시작해서 즉시
소련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해서 북한을 소비에트로 하고 그
리고 군대를 창설하고 계속해서 군비 증강을 했습니다. 스
탈린은 2차 대전 이후에 동구라파를 야금야금 먹어서 다
소비에트로 한 다음에 이제는 중공을 적화시키고 난 이후에
대한민국을 소비에트로 하고 나아가서 아시아 일대의 약소
국가를 다 공산화하려는 계획 가운데서 치밀하게 계획을 하
고 준비한 전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쟁은 오늘날 역사
가 기록한 그 것과 같은 비극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충분히
예방할 수도 있었습니다. 소련과 김일성이 적화 통일의 모
험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그 틈을 주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도둑이 집으로 들어오는 것은 집에서 충분히 도
적을 미리 방지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충분히 북한의 모든 계획을 알고 거기에 대처를 했으면 전
쟁을 막을 수 있었고, 전쟁이 일어나도 이렇게 비극적으로
강토가 모두 짓밟히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왜? 감히 스
탈린과 김일성이 한국을 넘볼 수 있었나요? 그것은 그 당
시에 혼란하고 무질서했던 한국 사회의 형편이 능히 적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유혹이 된 것입니다. 해방 후 한국 사회
는 좌익과 우익이 갈라져서 온 전체가 소용돌이쳤습니다.
정치도 좌, 우익이 갈라지고 사회도, 학교마다 좌, 우익이
갈라져서 매일 테러요, 매일 같이 싸움이요, 매일 같이 데
모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남로당이 사
주한 대구를 중심으로 한 영남 일대의 폭동은 지금도 가슴
이 섬짓합니다. 그 이후에 대한 민국 정부가 성립되고 난
다음에도 여수, 순천 반란 사건이 일어나서, 수많은 양민이
학살되고, 경찰서가 파괴되고, 경찰과 군인 가족들이 죽임
을 당했습니다. 이래서 하루도 평화로움이 없는 곳에 격렬
한 노동자들의 정치성 파업은 계속하고, 공산 게릴라들 때
문에 극히 사회가 혼란하고 경제적인 불안은 극에 달했습니
다. 한국의 생산시설이란 전쟁 이후에 조금 있는 것! 다 노
사 분쟁으로 문을 닫고, 그리고 밀수가 성행해서 그 당시에
마카오 신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카오에서 이 천을 밀수
해서 그 당시에 마카오 천을 가지고 옷을 해 입으면 마카오
신사라고 굉장히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인
불안 가운데서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 얼마나 무력합니까?
1948년 8월 10일에 남한 자체의 선거를 통해서 제헌국회
가 탄생한 이후로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건국되
고, 제 1공화국이 탄생되어 국회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선택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 1공화국 탄생 후 1년 8개월 10일
만에 전쟁이 발발했는데, 이와 같은 전쟁이 비극적으로 발
발한 것은 우리 한국의 대통령 이하 그 당시 정치 지도자들
이 조금도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해안이 없었다는 것입니
다. 영국 처칠에게 지도자는 어떠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
까? 물으니까 처칠이 대답하기를 "적어도 1년 후의 일을 바
라볼 수 있는 꿈이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말
했습니다. 멀리 못 바라본다 할지라도 적어도 1년 후에 일
어날 것은 미리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 국가와
민족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
도대체 그 당시에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어떻게 1년 후 아
니라 하루 앞일도 바라보지 못하는 무능력한 정치를 했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련을 업고 끊임없이 적화야욕을 키워
오던 김일성의 침략준비를 하나도 간파하지 못한 것입니다.
1945년 해방되지 말자, 1950년 6월 25일 전까지 북한에는
끊임없이 소련에서 무기가 수송되고, 군대가 훈련을 받고
있고, 침략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도 그것을 간파하지 못했
다는 것은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 것입니다. 정치 싸움에 국방력 배양은 안하고 여념이
없었던 그 때 상황이 눈앞에 훤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한국의 군인들은 어떠한 상황이 있었습니
까? 그 당시의 우리 한국은 국방경비대로써 조직되어서 한
국군도 약 10만에 가까운 육군과 해군이 있었습니다. 그런
데 6.25 사변이 터지는 그 앞날에 참모총장인 최병덕 소장
은 6월 24일 밤새도록 춤을 추고 술에 곯아떨어져서 25일
아침 전쟁 발발의 전화를 아무리 걸어도 전화조차 못 받을
만큼 술에 곤드레 만드레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정보가 없
는 국군을 데리고 싸움을 할 수가 있나요? 최병덕 소장이
참모 총장이라고 하면서 6월 25일 새벽에 일어난 전쟁의
정보도 못 받고 6월 24일 밤새도록 술을 처먹고, 곤드레
만드레가 되어 가지고서 6월 25일 아침에 전쟁 났다고 아
무리 전화해도 전화를 못 받아요. 그러니 나라가 성하게 되
었습니까? 국방부 장관 선생모는 아예 일요일에는 방해받
지 않는다고 해서 전화를 내려놓았습니다. 자기는 영국 신
사라고 하면서 일요일에는 일하고 논다고 전화기를 내려 놨
습니다. 전쟁이 나서 국방 장관에게 보고하려고 일선에서
전화를 해도 받는 사람이 없어요. 거기에다가 전군 작전 실
무 책임자인 장창국 대령은 며칠 사이 이사를 가 주소도 전
화도 불문이었답니다. 세상에 전국군 작전 실무 책임자가
이사를 가서 집이 어디 갔는지, 전화가 몇 번인지도 국방부
에서도 몰라. 육군 본부에서도 모르고, 콩가루 집안도 되게
콩가루 집안입니다. 새벽 4시에 전쟁이 터졌는데, 아침 10
시가 되어도 지휘부가 텅 비었습니다. 4시에 전 전선에서
탱크가 막 물밀 듯이 밀려오는데 총 지휘부에서 참모 총장
으로부터 시작해서 다 텅텅 비었습니다. 거기다가 철저히
한국의 국방부와 아니면, 육군분부에 공산 끄나풀이 들어온
것이 틀림없는 것이 6월 25일에 전쟁이 일어날 것인데, 6월
25일이 주일인데 농촌 일손 돕기 명목으로 국군의 1/3 정
도가 휴가를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선에
있는 모든 장병들을 지휘할 그러한 장교들이나 사병들 중에
중요 간부들 1/3이 전부 휴가를 가버렸습니다. 전쟁이 터질
것인데 그 앞날에 전부 휴가를 가버렸습니다. 이건 틀림없
이 한국 군 내에 철저히 이북 스파이가 들어와서 이와 같은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니깐 전쟁이 터지니 파죽지세로
인민군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다가 미국은 일찌감
치 한국을 버렸습니다. 소련은 철저히 북한을 붙잡고 무기
원조를 주고 군사 원조를 해서 군대를 감쌌는데, 미국은 우
리 한국에게 무기를 주지 않습니다. 탱크 한 대, 비행기 한
대, 곡사포 한 대를 안줍니다. 거기다가 1949년 6월말까지
한국에 있는 미 고문단만 남겨 놓고, 미군은 다 철수해서
텅텅 빈집만 남겨놨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이 생각해도 한국
은 지킬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략적으로 한국은
미국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요사이도
미국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1950년 1월 미 국무장관 애치슨이 미국 내셔럴 프레스 클
럽에서 아시아의 위기라는 연설을 할 때, 미국의 방위 권은
알류산열도에서 일본 오키나와를 걸쳐 필리핀을 연결하는
선까지이며, 이 선 밖에 일어나는 군사적 도발은 미국은 아
무런 책임이 없다고 해서 한국은 아무리 쳐들어와도 미국은
책임지지 않겠다. 그렇게 선언한 것입니다. 알류산열도로부
터 일본과 오키나와와 필리핀은 지키지만 한국은 지킬 전략
적인 가치가 없다고 해서 미국이 한국을 버린다고 공식으로
선언했습니다. 이 연설을 들은 스탈린과 김일성은 남한 적
화통일의 천우신조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뛰고 굴리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므로 6.25를 일으킨 것은 한국 자체의
정치적인 무능력과 군사적인 태만에도 있지만 미국이 한국
을 전략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버렸기 때문인 것입
니다. 옛말에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자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도 미국의 일각에서는 한국은 지금 미군이
주둔해서 지킬 아무런 전략적인 가치가 없다. 한국이 미국
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 군대를 지금이라도 빨리 철수하자
는 이론이 굉장히 비등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 민족이던
지,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지키지 아니하고 남에게 지켜주
기를 원하고 스스로 일어나서 살려고 노력해서 살려고 아니
하고 남이 살려주기를 원하는 사람은 언제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 이 시점에서 진실로
6.25가 지난 40년 이후에 지금 깨달아야 될 것은 미국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소련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는 하나님만 믿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우리
를 살려 줄 자가 없고 우리 스스로가 살겠다고 정신을 차리
지 아니하면 아무도 살려줄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우리
국민은 신속히 깨달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6.25 사변 때
우리를 살린 것은 하니님이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6.25
사변의 전쟁은 하나님이 싸워주신 전쟁이었습니다. 왜냐하
면 인민군 공격 부대의 2일의 지체는 지금도 전략상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6월 25일에 전 전선을 공격하러 나온
6월 26일에 벌써 의정부를 점령했습니다. 의정부와 서울간
에는 엎드리면 코 닿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의정부에 와서
이틀동안 머뭇거렸다. 이건 도저히 군사 전략상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실수를 북한군이
했습니다. 의정부에 들어와서 그 막강한 탱크 부대를 거느
리고 서울 점령에 이틀동안 머뭇거리면서 소모를 했다. 그
래서 6월 28일에 서울을 점령했을 때는 벌써 패전한 국군
들이 상당히 한강을 넘어와서 영등포 일대에서 재편성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6월 28일날 서울에 들어온 인민
군들은 그대로 밀어 붙였으면 우리 한국은 꼼짝못했을 것인
데, 서울에 들어오고 난 다음에 엿새 동안 서울에서 머뭇거
렸습니다. 그것은 일단 서울을 점령하면 온 남한 일대에 민
중 봉기가 일어나서 자동적으로 대한민국이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고 민중 봉기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엿새 동안 머
뭇거렸다. 그럴 동안 영등포 일대에서 다시 재편한 한국 국
군들이 엿새 동안을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UN군이 들
어와서 한국의 군대 편성을 할 때까지 서울을 내려오지 못
하게 막았다. 이것이 이북 인민군의 역사에 남는 천추의 한
이 되는 실수를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싸워주신
전쟁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그렇게 안 해 주셨으면 안돼
요. 독일의 롬멜이나 미국의 패턴 장군처럼 전광석화와 같
이 밀어붙였으면 순식간에 적어도 2주일 이내에 부산까지
점령당하고 미국이나 UN군은 손도 쓰지 못하고 한국은 적
화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안 하도록 하나님이
공산군 지휘부에 바보 같은 생각을 넣어 주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의정부에서 이틀을 머뭇거리고 서울에 와서 엿새를
머뭇거리는 바람에 벌써 전광석화와 같이 한국을 밀어젖힐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한국군은 재편성되고 미군이 7
월 5일날 제 1차로 상륙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공산군의
적화야욕의 꿈은 거기서부터 꺾어지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전선에서 1대 실수인데, 이 실수는 하나님이 하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전쟁은 하나님이 싸워서 이겼
지. 하나님이 안 도왔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그 다음 보면
곧장 UN 안전보장이사회가 소집되는데 1950년 6월 25일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은 한국의 전쟁이 일어나고 소련이 한
국을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즉시로 안전보장이사회의 소
집을 요구하고 그날 오후 2시에 UN군 파견을 찬성 9, 기권
1, 결석 1 로 채택했습니다. 원래 미국이 한국은 방위선 밖
에 있다고 한 다음에 전쟁이 일어나서 한국을 밀물 듯이 밀
려오니깐 트루만 대통령이 생각하기를 만일 한국을 놓쳐 버
리면 그 기세로 동남아 일대의 약소국을 다 먹을 것이다.
그러므로 별 도리 없이 미국은 한국에 참전해야 되겠다. 그
래서 UN의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했는데, 안전보장이사회
는 전 이사회 국가들이 만장일치가 되어 결정합니다. 한 나
라라도 거부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인민군을 침략군으로 지
정하고 온 UN이 일어나서 한국에 군대를 돕자는 결의안을
하는데 그 때 소련을 UN 대사 마리끄가 불참을 했습니다.
소련이 참석을 했으면 우리 한국은 못 살아났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전 세계의 적화야욕에 불타는 소련이 어떻게 해서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을 침략자로 결정을 내리고
UN군 참전을 결의하는 그 중대한 결정에 마르끄가 참석을
안 했습니다. 참석을 했으면 UN군은 파견 안되었습니다.
한국은 구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하나님이 싸
워주신 것입니다. 바로 UN 사무실에서 이 소련 사람들이
거처하는 곳이 거리가 멀지 않습니다. 오후 2시에 회의가
있는데 마리끄가 일찌감치 가려고 하니깐 보좌관들이 "뭐
오후 2시에 회의가 있는데 그렇게 빨리 갈 필요가 있습니
까? 차만 타면 금방 가는데, 그러니깐 천천히 가도 좋습니
다." 보좌관이 자꾸 말렸습니다. 그래서 한 시간 여 시간을
두고서 천천히 차를 타고 뉴욕길바닥으로 출발을 했는데 차
가 중간에 와서 땅에 붙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고장이 났어
요. 적어도 UN대사가 타는 차가 고장이 나서 붙어 버린다
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차가 고장이 딱 났어요. 그래
서 기사가 나가서 고치는데 시간은 다가옵니다. 그래서 이
거 택시라도 잡아타고 가야겠다고 하니깐 조금만 하면 고칩
니다. 조금만 하면 됩니다. 하는 게 그만 길바닥에 앉아서
UN 총회를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차를 고쳐서 타고
오니깐 이미 다 끝났습니다. 만일 그 때 차가 고장 안 나서
그대로 타고 왔으면 우리는 갔습니다. 차 고장나는 것도 참
중요하다고요. 하나님께서 그 차를 고장 안 냈으면 마리끄
가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해서 그 표를 던졌으면 UN군은
창설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6개국이 우리 한국에 군대를
파견해서 공산과 싸워주는 일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
나 그 결과로 맥아더 장군이 UN군 총사령관 총사령관이 되
고 영국, 미국,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캐나다 , 남아프리
카, 터키, 태국, 그리스, 네덜란드,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필리핀,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이 군대를 파견하고 원조를
해서 3년 여 동안의 처참한 전쟁을 통해서 공산군의 의도
를 깨뜨려 버리고 만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또 하나님이 싸
워 주신 것은 낙동강 전선입니다. 약 30만 대군으로 한국을
내려 젖힌 인민군은 기어코 7, 8월에 와서는 낙동강 전선으
로 목을 쬐었습니다. 남은 것은 대구, 부산 요 일대 밖에
안 남았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부산에서 살았습니다. 그리
고 피난을 가서 저 울산에 가서 있을 때, 매일 같이 포탄이
여기까지 와서 떨어집니다. 밤이면 산에 게릴라들이 주동하
고 기관총이 불꽃놀이 같이 총탄이 날아오고, 계속해서 포
탄소리가 나고 비행기가 와서 계속 폭격을 하는 그 가운데
저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쟁 상황을 너무나 여실히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은 7, 8월이면 우기입니다. 그
때 이승만 대통령이 경산남도 도지사 관사에 있었는데 전
피난민 목사와 또 부산에 있는 주의 종들을 불러 모아놓고
부탁을 했습니다. 내 친구 맥아더 사령관이 끊임없이 동경
에서 B-29를 보내어서 융단폭격을 해주겠다고 하는데, 적
군에게 융단 깔듯이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7, 8월에는 한국에는 우기가 오는데 비가 오면 비
행기가 못 뜨면 하루라도 비행기가 못 뜨면 우리는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너무 공산군의 압력이 강하기 때문에 하루
라도 견뎌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비가 안 오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운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 때 제 기억
으로는 그 때 목사님들이 열흘동안 모여서 밥도 안 먹고 물
도 마시지 아니하고 밤낮을 쉬지 아니하고 하나님이여 이
민족을 살려달라고 기도했었습니다. 그 때 대신동 모 교회
에서 모였는데.. 그 결과로 정말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서
그 6.25 사변 그 당시 7. 8월에 하루도 구름이 끼고 비가
온 적이 없습니다. 하늘이 푸르고 내가 매일같이 하늘을 쳐
다보면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늘을 새까맣게 덮은 B-29가
날아와서 낙동강에서 그냥 비오듯이 폭탄을 떨어뜨렸습니다.
난 평생 그렇게 많은 비행기가 떼를 지어 날아가는 건 그
때 보고 아직까지 본 적이 없어요. 하늘을 새까맣게 덮어서
비행기가 날아옵니다. 날아 와서는 전부 폭격을 하고 그 다
음 새까맣게 덮어서 날아가고 그렇게 융단폭격을 하는데 아
무리 공산당인들 견디어 낼 수 있습니까? 그래서 낙동강
전선에서 공산군의 주력부대가 허리가 부러졌습니다. 그 틈
을 타서 9월 16일에 맥아더 장군이 인천 상륙을 했고, 그
리고 포위를 당한 북한군은 괴멸되고 도주하기 시작했습니
다. 이래서 10월, 평양이 수복되고 압록강 두만강까지 진격
했으나, 그 후 중공군 개입으로 다시 후퇴했다고 현 휴전선
에서 1953년 7월 29일 전쟁이 중지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
서 우리는 3년 여 동안의 가장 처절한 민족사에 길이 길이
수치스럽게 남아있는 동족상련의 전쟁을 치렀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 대다수는 6. 25를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6.25를 체험하신 분은 손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
도 많이 있군요. 그럼 6.25를 전혀 체험하지 못하신 분은
손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대다수가 6.25를 체험하지 못했습
니다. 전쟁은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전쟁보다 더
큰 비극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제 공산주의는 소련
의 고르바초프에 의해서 와해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1917
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공산주의는 이제
70년만에 완전히 실패작으로 들어 나고 소련에서부터 공산
주의가 와해되고 동구라파가 자유를 선포하고 동독과 서독
이 통일하고, 이러한 판에 아직까지도 끝까지 남아서 공산
주의를 하겠다고 붙들고 있는 것이 이북의 김일성인 것입니
다. 자유화의 물결이 조금만 들어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지구상에서 사라지나, 김일성 주체 사상의 20
세기 특유의 김일성 황제 독재 정권과 침략 야욕과 군사 도
발 위험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절대
로 모든 것이 가만히 있어서 그대로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
면 안됩니다. 독 안에 든 쥐는 고양이도 뭅니다. 지금 온
세계가 다 민주화되고 자유화되는데 자기 혼자 공산 독재를
하고 있자니 이젠 마지막 소외되고 몰렸습니다. 여태까지
준비한 그 많은 군사, 무기, 그 많은 군대가 그대로 스스로
풀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막다른 골목에 쳐하면
쥐도 고양이를 무는데 김일성이 위험을 한 번 도발해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순 없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사회는
안정되어야 합니다. 극단적인 노사분쟁이나, 무분별한 화분
소유나, 사회혼란을 야기하는 집단 행동은 지양되어서 사회
가 안정되면 어떠한 침략군도 침략할 수 없습니다. 오랜 역
사를 통해서, 외부 침략을 통해서 망한 나라가 없습니다.
내부 분열을 통해서 망하죠. 우리 사회가 내부로 분열되고,
시끄러우면 그것은 외부에서 침략하기 너무나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보는 극단적인 노사
분쟁이나 사회혼란을 야기하는 집단 행동을 취하 해야 하
고, 무엇이든지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평화롭게 문제를 해
결하는 것을 우리 국민이 배워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폭력
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문제는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평화 위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배워서 한국 사회가 안정되어야 하는 것이고 정치적인
불안이 없어져야 합니다. 정치가들이 자기의 욕망을 다하기
위해서 국가와 민족은 생각하지 않고, 국민의 마음을 흥분
시키는 선동 정치를 하고, 국민을 져버린 집권 욕 아래서
정치 투쟁을 계속하고, 부정, 부패가 만연하고, 사회 정의
가 사라지고 국민과 정부간에 신뢰가 사라지면 어떤 나라도
망합니다. 어떤 나라도 외적이 쳐들어와서 먹어라 하고 대
문을 열어 젖힌 것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정치적
인 불안이 없어져야 하고, 오늘날 우리 정치인들은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제력과 국
방력은 언제나 갖추어 져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제국주
의로써 남의 나라 침략하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또 공산
주의와 민주주의, 사상 투쟁의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이제
는 경제 전쟁의 시대에 돌입했습니다. 잘 사냐, 못 사냐가
그 나라가 설립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지
금 소련이 북한을 버리고도 우리 대한민국과 대화를 하고
수교를 하겠다는 것은 우리 한국의 돈이 좋아서 그렇지, 한
국이 이뻐서 그런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낙후하면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습니다. 국민들이 마음을
다 합쳐서 과소비를 버리고, 근검절약하고 힘써서 일해서
조국을 경제적으로 강력하게 건설하면 소련도 오고, 중공도
오고, 남북 통일도 동독과 서독처럼 평안하게 되어 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 한국 사람들 너무
빨리 샴페인 터트렸다고 하는 것처럼 너무 너무 빨리 과소
비 욕에 들떠 있고, 너무 신속히 일 안하고 평안하게 살려
고 하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가 잘못
되어 가고 있고, 생산이 되지 않고, 수출이 되지 않는 이유
는 바로 우리 국민들의 잘못된 생각 때문인 것입니다. 여기
에서 우리는 진실로 회개하고 진실로 근검 절약하며, 열심
을 다해서 일해서 경제적으로 강력한 부국으로 달성하면 오
늘날 우리 한국은 세계에서 인정 받는 나라, 대우 받는 나
라가 될 것이고, 또 하나님이 우리 나라를 사용해서 온 세
계 만방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하늘나라를 이룩하
는 위대한 일을 이루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온 세계에서 기
도를 많이 하는 나라, 가장 급속히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 가장 이 마지막 때에 온 세계에 선교사를 보낼 수 있
는 가능성이 있는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으로 손꼽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위해서는 경제적인 힘이 바탕이 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6.25 40돌을 맞이해서 우리
민족적으로 이 비극을 생각하고 다시는 6.25 같은 것이 없
도록 우린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안에서 단결하는 우리들이
되어야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지 아니하시
면 우린 살 수 없습니다. 6.25도 실제 전쟁은 하나님이 싸
워준 전쟁이요. 하나님의 손길로 말미암아 우리가 멸망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1백만 밖에 없던 성도들이 이
제는 천만이 넘었으니 천만이 넘은 성도들이 모두다 하나님
께 기도하고 빛과 소금이 되어서 자기 직분을 다한다면 이
와 같은 전쟁은 다시 한국에 일어나지 아니할 것이요, 우리
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으로 강성한 나라가 되고 마지막
주님 오시기 전에 그리스도의 사역을 맡아 하는 제사장의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시며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전쟁
의 피바다, 전쟁의 시신의 산더미 위에서 오늘날 한국을 건
설했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다시 생각해 보기도
끔찍스럽고, 몸서리 쳐 지는 6.25 전쟁이었습니다. 우리 아
버지 하나님이시여, 원하며 기도하오니 하나님이 도와주셔
서 다시는 이 땅에 이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도와
주시옵시고, 우리 정치인들이 깨닫고, 우리 군인들이 깨닫
고, 우리 시민들이 깨닫고, 우리 청소년들이 깨닫고, 우리
국민 전체가 깨달아서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근검절약하
고 과소비하지 말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우리
들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나라 이 민
족을 붙들어 주셔서 이제 주님 오시기 전에 온 세계에 주
님의 복을 증거하고 생명을 나누는 나라와 민족이 되게 도
와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