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1990년 11월 4일
제목 : 바울의 최후
성구 : 딤후 4 : 6 - 8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바울 사도의 최후"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근번 베를린 대성회를 마치고 귀로에 로마에 들러서 사도 바울 선생의 순교지를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바울 선생은 유대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된 이후 약 2년 동안은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가운데 복음생활을 하면서 자기에게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을 전하면서 지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급기야 그는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고 그래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수감되는 감방으로 옮겨졌습니다. 저는 그 사도 바울 선생이 사형 받기 전에 기다리던 감방에 내려가 보았습니다. 그 감방은 지하에 있는 감방으로서 습기차고 어둡고 그리고 겨우 한 평쯤 되는 곳에 두 발을 뻗고도 잘 누울 수 없는 그러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바울 선생은 사형을 기다렸다가 사형의 날이 오매 그곳에서 끌려 나왔습니다. 손은 뒤로 묶임을 받고 그곳에서 언덕이 진 길로 약 50 m 걸어가서 사형 틀이 있는 그곳에 목이 얹혀지고 사형수가 도끼를 들고 그 목을 치매 바울의 목이 몸에서 떨어지자 언덕바지에서 세 번 뛰면서 뒹굴었습니다. 뛰는 곳마다 물이 솟아올랐고 그 물이 솟아오른 흔적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바울의 몸에서는 선지피가 끊어진 목을 통해서 로마 땅을 적셨습니다. 바울 선생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복음 사업을 위해서 그 일생을 내어 맡겼고 마지막으로 로마에 와서 그의 몸에 한 방울의 피도 남기지 않고 복음을 위해서 다 쏟아 부었습니다. 저와 인천순복음교회 최성규 목사님은 바울 선생의 처형당한 곳에 무릎을 꿇고 감격적인 기도를 오랫동안 드렸습니다. 바울 선생은 사형선고를 받고 난 후 디모데에게 최후의 교회서신을 기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의 마지막에 그는 영의 아들 디모데에게 드로아의 가보의 집에 벗어 놓았던 외투와 양피지로 만든 책을 가지고 속히 바울이 갇혀 있는 감방으로 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는 이제 나이 많고 혈기가 말라 습기 찬 감방 생활에 추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가보의 집에 두었던 자기의 겉옷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아마 겉옷은 수없이 매를 맞아 몸에서 흘리신 피가 자국자국 묻어있는 옷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오래 입어서 뚫어져서 곳곳에 기운 흔적이 있는 그런 옷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감방에서 마지막 죽음을 기다리면서 그는 추워 견딜 수가 없는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드로아의 가보의 집에 있는 자기의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양피지에 적은 책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 운명할 때까지 그는 하나님 말씀을 읽고 공부하며 기도하며 자기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정진하는 위대한 사도였었습니다. 사도바울 선생께서는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겨울이 오기 전에 속히 와 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겨울이 오면 추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또 겨울이 지나기 전에 그가 사형을 당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에게 겨울이 오기 전에 속히 내게로 와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바울 선생은 자기 자신의 최후를 눈앞에 보면서 담대한 신앙 고백을 했는데 이 신앙 고백을 가지고 오늘 우리는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당시의 파란만장했던 삶의 황혼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는 이미 피를 부어서 희생 제물이 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가 왔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일생을 회고해 보시고 이렇게 담대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째,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웠습니다."
여러분,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 나온 이후 인간의 삶은 끝없는 투쟁이요 싸움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설면서 생존하기 위해 자연과의 끝없는 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를 저지르고 난 다음 쫓겨난 세상은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세상입니다. 이곳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인간은 피눈물 나는 투쟁을 해야지 가만히 앉아 있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일생은 먹고살기 위한 끝없는 투쟁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인간은 질병과 투쟁해야 합니다. 가지가지 질병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죽이려고 합니다. 이러므로 인간은 끝없는 질병과의 투쟁으로서 생존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람 상호간에 서로 생존하기 위해서 생존 경쟁의 피눈물나는 싸움을 해야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나라와 나라간에 서로 살상하는 무서운 전쟁을 해야만 했고 지금도 그런 전쟁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싸움은 종국에는 이긴 자도 없고 패자도 없이 다 영원한 무의미로 돌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영국을 순회하면서 영국의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둘러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영국의 가장 위대한 왕들, 그리고 장군들, 영웅들, 위대한 지도자들이 죽었을 때 묻어놓은 무덤들이 있습니다. 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바로 성당 자체가 온 바닥이나 벽이 무덤인 것입니다. 저는 극소에서 과거의 역사를 움직였던 사람들, 과거에 전쟁터에서 위대한 승리를 가져왔던 사람들, 과거에 영국 사회를 개혁시키고 변화시켰던 사람들이 묻혀 있는 장면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생전에는 사람들이 박수와 환호를 하고 공격도 하고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기도 했지만 그들이 무덤에 묻힌 이후로 모든 과거는 역사 속에 묻혀 버리고 만 것입니다.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긴 자도, 진 자도, 위대한 자도, 위대하지 못한 자도 지나간 이후에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시간과 역사는 인간을 휘몰아 쳐가고 있고 그리고 한 세대는 지나가 버리고 잊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인간적인 싸움은 종국적으로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절망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싸운 싸움은 이러한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이 싸운 싸움은 바로 마귀와 대결해서 싸운 싸움입니다.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원수 마귀와 바울 선생은 피눈물 나는 투쟁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영원히 파멸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 영혼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마귀의 손톱과 발톱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그는 피눈물나는 싸움을 했습니다. 바울은 죄와 싸웠습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둘러 진치면서 감싸오는 죄악과 싸워서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보배로운 피를 의지해서 끝없이 죄악과 싸웠습니다.
바울은 또한 육체와 싸웠습니다. 우리 영혼은 육체를 입고 있는 이상 육체의 여러 가지 유혹을 끊임없이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생은 우리 속사람과 겉사람과의 갈등이요 처절한 전쟁인 것입니다. 이 싸움을 바울은 끝없이 싸우면서 육체를 쳐서 정복하고 굴복시키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불신앙과의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이 세속적인 것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앙을 빼앗아 가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신앙을 잠재워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불신앙과 바울은 끊임없이 싸우면서 자기의 신앙을 불붙이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참으로 사는 길을 보여주고 신앙의 불꽃을 붙이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바울의 일생은 이와 같은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 전심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가 마지막 사형 선고를 받고 사형 날짜를 기다릴 동안에 그는 디모데에게 담대하게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따 싸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몫에 태워진 우리의 싸움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것을 얻기 위한 싸움은 아무리 싸워봤자 나중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생존을 위한 싸움이나 질병과 투쟁이나 인간 생존의 싸움이나 전쟁 이것은 이긴 자나 진 자나 모두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밀려서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마귀와 싸워 이기고 죄와 싸워 이기고 육체와 싸워 이기고 불신앙과 싸워서 이긴 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오는 영광의 문을 열어주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싸움은 우리가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 선생께서 "나는 선한 싸움을 따 싸웠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도 일생을 통하여 우리의 마귀와의 싸움이나 죄와의 싸움이나 육체를 대결한 싸움이나 불신앙과의 싸움은 쉬지 말고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싸움에 우리는 져서는 안됩니다. 이 싸움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배로운 피로 싸워 이겨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일생이 끝날 동안에 우리도 바울 선생처럼 "우리도 선한 싸움을 따 싸웠다"고 담대하게 말하고 우리를 위해서 예비한 천국의 아름다운 영광에 들어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바울 선생은 그의 편지에 "나는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갔다"고 담대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바로 길이요 그 인생은 바로 그 길을 달려가는 것입니다. 모두다 그 길을 열심히 달려왔고 또 앞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는 세상 길이 있고 천국 길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 길을 달려가면서 세상에서 무엇을 얻기 위해서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합니다. 사람들은 지위를 얻는 길을 뛰어갑니다. 혹은 명예를 얻기 위해서 피투성이의 싸움을 하면서 뛰어갑니다. 권세의 길, 부귀의 길, 쾌락의 길을 사람들은 뛰어가면서 이 길에서 성공하려고 피눈물을 흘립니다. 요사이 우리 신문을 펼칠 때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정치가들이 서로서로 출세를 얻기 위해서 대권을 얻기 위해서 니전투구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지위를 얻기 위해서 명예를 얻기 위해서 권세를 얻기 위해서 부귀를 얻기 위해서 쾌락을 얻기 위해서 목숨을 바쳐 뛰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뛰어가는 길이 무엇입니까? 그 길은 마지막은 멸망과 파멸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로 마귀는 예수님조차도 이와 같은 길을 가라고 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십 주 사십 야 금식하고 난 다음 주렸을 때 마귀가 와서 예수님을 꾄 것은 무엇입니까? 부복을 채우는 길을 걸어가라, 명예를 얻는 길을 걸어가라, 권력을 얻는 길을 걸어가라 이 길로 가는 것이 제일 좋다, 세속의 길로 마귀는 꾀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그 길로 가는 것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어가지만 그러나 이 길의 종착역은 죽음과 허무와 무의미와 지옥의 영원한 절망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뛰어가야 될 길은 무슨 길일까요?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영생 길, 천국 길을 뛰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생 길은 예수님 박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라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만이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영원히 천국 가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그 안을 통해서 하늘나라를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천국 가는 길은 열려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나가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갔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달려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달려가지 아니하고 세상 길은 달려갔다가는 세상과 함께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 있든지 예수 안에서 서서 예수의 길을 달려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길을 달려가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늘 나라를 먼저 구하고 하늘 나라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먼저 구할 것과 나중 구할 것을 우리는 분명히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 세상 모든 것은 먼저 구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연적으로 보태어 준 나중 구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하늘 나라를 먼저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복음을 믿고 따르는 또 전하는 그 길로 뛰러가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보다 귀한 것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다 손에 쥔 것 같으나 나중에는 물거품으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복음만이 여러분이 쥐고 나면 이것은 영원히 영원히 여러분을 이끌어 천국 영생 길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고 따르며 이 복음을 전하는 길을 따라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께서는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갔다"는 것은 바로 그는 예수를 믿음 그 순간부터 예수님의 길을 달려갔으며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길을 달려갔으며 복음을 믿고 따르며 전하는 그 길로 일생을 그는 뛰어갔던 것입니다. 이 길로 출발했다가 중도에 세상 길로 가는 이가 많이 있습니다. 바울 선생께서도 말씀하기를 디모데후서 4정 10절에 데마는 이 현세를 사랑한 나머지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 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착실한 제자로서 그와 함께 복음에 수고하던 데마는 나중에 복음에 지쳐버리고 세상 유혹에 빠져서 복음의 길을 저버리고 세상 길로 달려갔다고 했습니다.
2000년 전에 바울을 따르다가 버리고 세상 길로 간 데마는 세상에 가서 얼마나 많은 쾌락을 누렸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산 세월로부터 벌써 200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는 복음의 영광스러운 길을 저버리고 세상길로 가고 그 길은 마지막 멸망의 길이요 심판의 길이요 지옥의 길밖에 아닌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주님 가신 그 길로 끝까지 달려간다는 것을 마음에 깊이 결심하고 이 길을 한결같이 뛰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가신 그 길로 달려간 사람은 종국에 가서 말할 수 없는 영광과 행복과 기쁨을 우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바울 선생은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갔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무리 출발을 잘해도 끝까지 뛰어야 되는 것입니다. 중도에서 하차해 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중도에서 포기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끝까지 꿀려서 영광스러운 천국의 골인 지점까지 들어가시게 되기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바울 선생은 "내가 믿음을 지켰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사는 것은 힘이 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 백성이 된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선물로 받았으면 이 믿음을 힘차게 지켜야하겠는데 이 믿음을 빼앗으려는 원수 마귀의 역사가 끊임없이 계속됩니다. 요한일서 5장 19절에 보면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타락한 이후로 원수 마귀가 그 귀신과 함께 세계에서 왕노릇하고 이 세상 신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일서 2장 16절에 보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곧 육체의 쾌락과 눈의 쾌락을 좇는 것이나 재산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이라" 사람들마다 이 세상에 살면 마귀는 와서 '육체의 쾌락을 좇아라', '눈으로 보는 쾌락을 좇아라', '너희 가진 재산 소유를 가지고서 자랑하며 명예를 좇고 살아라', 그렇게 유혹하는 것입니다. 세속을 따라 살고 이 세상을 따라 살고 하늘 나라의 일은 잊어 버리라, 신앙 생활은 잊어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세상에서 오는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은 하나님 아버지께로 온 것이 아닌 것입니다. 세상과 그 세상을 따라간 결과는 요한일서 2장 17절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상도 가고 세상의 정욕도 다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세속에 취해서 살고 세상을 따라서 사는 사람은 세상이 흘러감과 함께 같이 흘러가 버리고 그 다음은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이 세상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마치 흘러가는 다리 밑의 물처럼 영원히 넘실거리며 흘러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넘실거리며 함께 타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세상과 함께 버림을 당하고 지옥으로 흘러 들어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그 믿음을 마음속에 힘차게 간직하고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말씀을 사랑해야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들음에서 나면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우리는 듣고 말씀을 읽고 말씀을 사랑해야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다가와서 온갖 변명을 다합니다. 시간이 없다, 바쁘다, 말씀을 들을 기회가 없고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의 믿음을 빼앗아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매일 같이 하나님 말씀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읽어야 됩니다.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속에 믿음은 간직되고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를 열심히 힘쓰고 해야 우리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교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를 살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 맡고 손으로 만지는 것들은 세속으로 꽉 들어차 있습니다. 세상이 홍수와 같이 우리에게 밀려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이기고 하늘 나라와 깊이 교제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속을 억압하고 살기 위해서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같이 시간을 내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리므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우리 마음에 충만하도록 늘 만들어야 이 세상을 이기고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이 충만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마귀의 미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 놓지 아니하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으니 예수를 믿자 말자 성령은 우리를 돕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속에 와서 계십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성령께 의지하며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 인간의 힘으로 결코 승리로운 신앙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깨닫게 하는 이도 성령이시오 기도하게 만들어 주시는 이도 성령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힘차게 받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속에 와서 거하시며 하늘 나라는 교회 가운데 와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와 계신 하나님 나라, 교회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우리는 힘차게 받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수주일을 하여 하늘 나라를 받들어야 하고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므로 하늘 나라를 받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봉사하므로 하늘나라를 받들어야 되고 전도함으로 하늘 나라를 받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을 우리는 끝까지 보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을 말씀하기를 "내가 믿음을 지켰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눈앞에 다가오는 사형을 두고서 그는 스스로 큰 안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믿음을 나는 끝까지 지켰다고 그는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음을 맞이할 때 마음이 동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죽음의 날을 맞이하면서 마음에 동요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지극히 담대하고 평안에 넘치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오직 다가올 세상에서 받을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과 칭찬과 그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그는 기뻐했었습니다.
저는 바울 선생의 갇혀 있던 어둡고 캄캄하고 습기 찬 감옥을 바라보고 그 안에 앉아 있으면서 바울 선생이 어떻게 이와 같은 담대한 편지를 쓸 수 있을까 마음속의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는 죽음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이제 내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지켰다. 나는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고 믿음을 다 지켰기 때문에 이제 의로운 재판관이 나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 나는 이제 얼마 있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리라 바울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말했습니다. 내게만 면류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고 바울 선생과 같은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도 동일한 상급이 있을 것을 그는 이 성경 말씀에서 선언한 것입니다. 나도 의의 면류관을 받지만 나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주님 재림을 고대하는 여러분들도 주님 재림의 그 날에 이 아름다운 의의 면류관을 받고 주님과 함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것이라고 그는 말씀을 했습니다. 저는 바울 선생의 순교지 앞에 비통한 심정으로 엎드렸으나 바울 선생의 신앙 고백의 낭랑한 음성을 영혼 속에 듣고는 신앙의 위대한 승리와 영광에 심취하여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앞에 할렐루야! 감사와 찬송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2000년 전에 바울 선생이 순교 당한 그 순교성지에서 저는 바울 선생이 마지막 그의 제자인 데모데에게 쓴 편지, 즉 다시 이방인의 성도인 우리들에게 쓴 편지를 마음속에 깊이 음미하면서 바울 선생에 일생동안 그가 어떻게 산 것을 생각하고 우리들도 그 신앙의 모범을 따라서 살아야 되겠다는 것을 마음에 다시 한번 되새김질하는 기회를 가졌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바울 선생과 똑같은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굳세게 지키며 나가십시다. 바울 선생은 그 당시에 바울을 핍박하던 제왕들도 그를 사형 대에서 도끼로 목을 쳤던 그 사람들도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지금 모두다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서 지옥불에서 불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핍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고 또 사형수의 도끼 칼에 맞아 목이 날아갔던 바울은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서 영원한 영광을 누리며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과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곳에서 의의 면류관을 받아 즐거워하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바울의 세대가 지나간지도 2천 년이 지나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눈 깜짝할 사이게 지나가고 우리의 일생은 종결짓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인생이 끝나는 그 순간 이 세상을 떠난 그 순간에 바울과 같은 담대한 신앙 고백을 하고 다가올 하늘 나라를 가슴속에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일생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이 세상에서 취하던 모든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사람이 추구하던 부귀, 영화, 공명이나 쾌락이 무엇입니까?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에 불과한 것입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면 종착역에는 영원한 영광과 기쁨과 소망과 영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이 영생의 길에서 벗어나는 자 한 사람도 없도록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옵소서. 오,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혹시 하나님 길을 버리고 예수님 길을 버리고 세상 길 따라가는 사람있으면 오늘 회개하고 예수님 길로 돌아서게 도와 주시옵소서. 믿음의 길을 달려가게 도와 주시옵시고 생명의 길을 얻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