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1991년 1월 13일
제목 :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였다
성구 : 롬 9 : 12 - 14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
하였다'는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한 부모에게 태어난 자녀들이라도 특별히 부모에게 사랑
을 받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부모의 눈밖에 나고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식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부모가
기뻐하는 삶을 선택해서 살면 자동적으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게 되지만 부모가 원치 않고 부모가 싫어하
는 일을 골라 가면서 하고 반역하는 자식은 아무리 내 속
에서 난 자식이라도 부모에게 질책을 당하고 눈밖에 나서
미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 생활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눈
에 들도록 살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눈밖에 나
면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한날 한시에 한 어머니 배에서 쌍둥이로 태어
난 두 아들인 에서와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분명하
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쌍둥이 형제를 보시
고 '나는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 그렇게 말했습
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까요? 야곱과 에서는 무
슨 점이 달랐기에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
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실까요? 어떠한 야곱의 성품이 하
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을까요?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봄으
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이 되도록 오늘
변화를 한번 시켜 봅시다.

첫째로, 에서와 야곱의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그들은 신앙심에 있어서 크나크게 대조되게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에서는 하나님께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다
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창세기를 읽어보면 에서의 생
애 속에서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에서는 사냥꾼
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전통을 걸어 메고 화살
을 잔뜩 넣은 다음에 활을 들고 나가면 하루종일 산과 들
로 뛰어다니면서 창을 던지고 활 쏘고 그렇게 해서 짐승을
잡아오면 그걸 요리해서 자기도 맛있게 먹고 아버지도 드
리니 아버지는 에서의 사냥요리 때문에 에서를 좋아했었습
니다만 에서의 생애를 통해서 볼 때 그가 하나님에 대한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고 에서가 기도했다는 말 한 마디
도 없습니다. 에서는 도무지 하나님께 관해서 무관심했습
니다. 기도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그에게는 아무런 관계
도 없었습니다.
야곱은 교활하고 꾀가 많은 사람이었으나 그는 하나님께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야곱의 생애는 늘 하나님
이라는 말이 그 주위에서 떠나지 않았고 야곱은 기도생활
을 했으며 야곱은 어머니와 함께 집에 있으면서 어머니를
통해서 많은 하나님에 대한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라디
오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고 신문도 없고 잡지도 없고 소설
책도 없기 때문에 듣는 이야기라는 것은 어머니가 이야기
들려주는 조부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 아버지 이삭이 어
떻게 신앙적인 체험을 했는가 이런 이야기를 들을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야곱은 그 마음속에 어
머니를 통해서 깊은 신앙심을 얻었습니다. 이러므로 여러
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대해서 전혀 무관심하고 하나님
에 대해서 사랑이 없는 에서는 미워하고 무관심하고 버렸
습니다만 비록 교활하고 성격이 꾀가 많은 약삭빠르며 인
격적인 결점이 많아도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가
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서 그 삶이 전개되어 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위에 얹혀지면 어떠한 사람의 인격도 변화될
수 있는 권능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사람의 성격은 문제
가 아닙니다. 사람에게 행위도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얹혀지면 성격과 행위는 하나님께서 토기장이가 진흙
을 변화시키듯이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잠언서 8장 11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
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시지 사랑도 안 하고 찾지도 않는데 하나님이 사랑
해 주고 하나님이 내가 여기 있다고 당신이 스스로 걸어오
실 리는 만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 시간
에 이 자리에서 배워야 할 것은 우리의 현실적인 윤리나
도덕적이나 우리의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
음속에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느냐 안 하느냐가 이것이 중
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아무리 윤리나 도덕적
으로 완전한 삶을 살아도 하나님은 그 사람을 버리는 것입
니다. 그러나 윤리나 도덕적으로 부실한 사람일지라도 하
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사
랑하고 붙잡아 주셔서 끝까지 따라가서 하나님께서는 윤리
와 도덕적으로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버리고 마는 것
입니다. 하나님 손에는 변화시키시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
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 가서 물을 변하여 포도주로 만
드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 인생을 변화시키지 못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품에 안기면 하나님
은 우리를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는 것은
야곱은 신앙심이 있었고 에서는 신앙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둘째로, 또 야곱과 에서의 대조되는 점은 꿈이 있는 자
와 꿈이 없는 자로 대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이삭
과 어머니 리브가는 두 아들에게 그들의 조부 아브라함의
소명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며 그 약속이 대를 이어 아
버지 이삭이 물림 받았고 또 이삭의 장남 에서가 하나님의
약속을 대물림 받아야할 장남임을 늘 말해 주었습니다. 그
러므로 그들 식구들은 저녁 먹을 때는 반드시 밥상에 둘러
앉아서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가 하나님에 대한 이
야기를 하는 것을 계속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되었고 이제는 장남
인 에서의 하나님이 마땅히 될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은 그
광대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이러한 이야기를 할 때 야곱은 눈이 샛별처럼 빛났습니다.
야곱은 그 마음속에 꿈을 꾸었습니다. 야곱은 이미 내일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와서 가나안 땅을 점
령하고 거대한 나라를 세울 것을 꿈꾸고 그는 마음속에 영
광이 꽉 들어찼으나 에서는 아버지, 어머니가 그 말을 할
때 한 말도 듣지 않고 그 마음속에는 뛰어가는 노루를 따
라간다고 그것만 생각하고 활을 쏘아 돼지를 관통시켜서
돼지가 꿀꿀거리고 곤두박질치는 그런 것만 생각했습니다.
야곱에게는 하늘 나라에 대한 거대한 찬란한 꿈이 있었지
만 에서는 전혀 하늘 나라에 대한 꿈이 없었습니다. 내일
에 대한 꿈이 없어요. 현재 창 던지고 활 쏘고 짐승잡고
먹고 마시는 그 취미 이외에는 에서에게는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꿈이 없는 에서를
좋아할 턱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한번은 에서가 사냥을 하고 배가 고파
서 왔는데 야곱이 열심히 팥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야곱
은 마음에 꿈이 있었습니다. '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
의 하나님, 에서의 하나님이 되면 안되겠다. 반드시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 내가 대물림을 받고 내가 하나님이 세우는
하늘나라의 조상의 반열에 들어가야겠다는 그 꿈이 불타
있었습니다. 언제고 내가 에서에게서 장자의 명분을 취해
야 되겠다.'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에서가 와서 "야, 배고
프다. 그 팥죽 좀 내놓아라", "아 형님, 공짜가 어디 있습니
까? 형님, 그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팔아요. 그러면 내가 팥
죽 한 그릇 줄 테니까." 형이 하늘을 쳐다보고 허허허 너
털웃음을 지었습니다. 배가 고픈데 뭐 그까짓 거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 있나? 옜다. 팔았다. 야곱은 얼른 팥죽을
잔뜩 담아서 형에게 주고 형에게 장자의 명분을 받았습니
다. 그때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서 보고 난 다음 "이 바보
멍청이 같은 놈아. 장자의 명분이 어떤 것인 줄 아느냐. 바
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이삭에게 주신 약속, 너에게
주실 약속이다. 이것을 야곱에게 팔아먹다니 네가 장차 어
떻게 위대한 축복을 빼앗긴지 아느냐? 이렇게 꿈도 없고
망나니 같은 짓을 하는 놈아. 아이구 이 자식아." 그러나
야곱을 보고는 "이 나쁜 고약한 놈아. 형에게서 그렇게 사
기를 쳐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는 법이 어디 있노. 그러나
기특하다, 기특해. 하나님의 그 거대한 나라에 대해서 너는
꿈을 가지고 기대를 가지고 좌우간 팥죽 한 그릇을 가지고
도 형의 장자의 명분을 사겠다고 한 그 마음의 꿈이 있어
장하다." 그래서 비록 에서는 윤리나 도덕적으로 나쁜 짓
을 한 적이 없지만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꿈
이 없었습니다. 그는 내일이나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없어
요. 현재 밖에 못 봐요. 그러나 야곱은 내일과 장엄한 미래
를 바라보고 있는 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꿈이 없는 에서는 버리고 꿈이 있는 야곱을 비록 그가 사
기를 쳤더라도 야곱을 하나님이 사랑하고 선택한 것입니
다.
성경에는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앞서 보고 멀리 보는 눈이 없을 때는 패망하고 마는 것입
니다. 서양 속담에 '벌레의 눈을 가진 민족은 망하고 새의
눈을 가진 민족은 흥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벌레의 눈을
가졌다는 것은 벌레는 그 흙 속에 꿈틀꿈틀하고 다니니까
벌레는 지금 밖에 안 보여요. 지금 있는 흙더미, 지금 있는
더러운 것, 그것밖에 안 보여서 그것만 파먹고 있는 것입
니다. 그러나 새는 높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 미래가 보이
고 멀리 보입니다. 미래가 보이고 멀리 보이기 때문에 현
실의 삶을 언제나 미래와 멀리 보이는 그것에 조화를 해서
자기를 꿈에 앉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벌레는 미래도 안
보이고 멀리 안 보기 때문에 현재 속에 꿈틀꿈틀 했다가
자동차 바퀴에 치어 죽기도 하고 까마귀가 찍어가기도 하
고 언덕에 뒹굴어 떨어져 죽기도 하고 절단강산이 나는 것
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든 사람들이 내일을 바라보고 멀리 바라
보는 눈이 없는 사람은 개인이나 가정이나 한 민족이나 망
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멀리 바라보지 않습니다. 현
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육신의 정
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 지금 세상만 바라보고 자
꾸 벌레처럼 파고 야단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미래를 바라보고 멀리 바라봅니다. 장차 이 땅에 심판 받
을 것을 바라봅니다. 우리 죽은 후에 영원히 다가올 영원
한 세게를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만드는 새 하늘과 새 땅
과 새 예루살렘을 바라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내일을
바라보고 멀리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날이
다가올 것이기 때문에 그 날에 대비해서 지금의 생활을 회
개하고 자복하고 예수를 믿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경건하
고 절도 있게 살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미래를 바라보는 먼 앞날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꿈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내일과 멀리 바라보는 꿈이 없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해서 살다가 현실과 함께 멸망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모든 문제는 내일을 바라보는 눈, 멀
리 바라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 한국
의 정치적 현실은 어떠합니까? 여러분 정치인이 되려면 국
제 정세와 국내 사정을 남보다 앞서보고 멀리 보고 그래서
나라와 민족이 잘 살 수 있도록 현재 대책을 세우는 것이
정치인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우리 한국에 정치 형태
가 어떻습니까? 내일도 없고 멀리 보는 눈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현재 어떻게 하면 정치 권력을 많이 소유하고
대권을 손에 쥐고 현재 권력을 가지고 살까 이것만 바라보
지, 역사적인 우리 민족의 내일과 장차 먼 우리 민족의 앞
날을 바라보고 역사적으로 우리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일
하는 정치인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현
실 한국에서 제일 못난이로 취급되는 것이 정치인이고 제
일 기피하는 인물, 제일 싫어하는 인물이 정치인이라는 것
입니다. 왜 현실적인 우리 한국이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
에서 정치인이라는 것이 우리 나라의 내일과 우리 나라의
장차 먼 내일을 바라보고 거기에 따라서 모든 대책을 세워
야 합니다.
우루과이 라운드라든지 페르시아만 경제 상태라든지 장
차 한국의 경제라든지 남북 통일이라든지 이 멀리 바라보
고 멀리 바라보는 꿈 가운데서 우리 나라의 모든 현실적인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데 이런 것은 내동댕이
쳐버리고 임기웅변으로 문제가 다가오면 그제야 급해 가지
고서 야단법석을 하고 늦잠 자고 일어나서 책 보따리 싸고
학교 가는 애처럼 머리도 안 빗고 단추도 올바르게 끼지
않고 그냥 코를 뭉개고 책 보따리 싸 가지고서 그냥 야단
법석으로 뛰어나가는 이런 식으로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앞을 내다보지 않고 멀리 바라보지 못하는 꿈이 없는 정치
인 이런 사람들이 나라를 망치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
지방 자치제가 있고 명년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또 대
통령 선거가 그 다음에 있는데 여러분 제가 여러분께 말하
고 싶은 것은 여당도 야당도 찍지 말고 꿈이 있는 사람을
찍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지역 사회는 지역 사회의 내
일을 바라보고 지역 사회를 개발할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
을 찍어야 돼요. 그냥 정치 권력이나 손에 쥐고 거드름이
나 피우는 그러한 정치꾼들을 선택했다가는 우리의 운명을
좌초시켜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내일을 바라보는 눈을 가
진 꿈이 있는 그런 정치인을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제인도 한 가지입니다. 경제적인 격렬한 경쟁 사회에
서 내일을 바라보고 멀리 바라보고 미리 기술을 개발하고
경영 기술을 개발하고 시설 투자를 하고 그리고 노사 관계
에서 앞서 보고 멀리 보며 일을 해 나가는 경제인들이 필
요합니다. 현재 일확천금하기 위해서 내일이나 멀리 보는
눈은 없고 막 현재 부동산 투기나 하고 재테크나 하고 현
재 돈이나 끌어 모으자 그렇게 하다가 오늘날 우리 경제가
이모양 이꼴이 된 것입니다. 그냥 순식간에 돈을 끌어 모
으기 위해서 내일도 바라보지 않고 멀리 바라보지 아니합
니다. 세계는 벌써 무섭게 전진하고 발전하여 새로운 기술
이 개발되고 새로운 상품이 개발되고 새로운 마케팅 기술
이 발전하는데 그것은 제쳐놓고 현재 땅만 보고서 지금 그
냥 돈 끌어 모으기에 정신이 없다가 보니까 벌써 쳐져 버
렸습니다. 내일을 바라보고 준비한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나은 새 기술에 새 상품에 새로운 마케팅 기술에 훨씬 앞
서 뛰고 이제 그들을 따라 잡으려니 따라잡을 수 없고 팔
아먹을 물건이 없고 수출이 안되고 경제는 어려워지고 물
가는 높아지고 사람들의 욕심만 잔뜩 커지고 진탕에 빠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경제적인 현실은 한국
의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내일을 바라보고 멀리 바라보는
눈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벌레의 눈만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오늘날 현실적으로 이렇게 되고 하나님이 도와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근로자도 한 가지죠. 무조건 임금이나 높이고 근로 조건
을 위한 투쟁이나 하지 말고 회사의 생존, 생산성 향상,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협동 등 앞을 내다보고 멀리 보는 꿈을
가지고서 대화와 타협을 하면 너도 살고 나도 사는데 회사
야 망하든 어떻게 되는 임금이나 내가 많이 받아야 되겠
다. 현실적인 환경은 고려하지도 않고. 그래서 결국에는 상
품이 코스트가 올라가서 물건이 팔리지 않고 회사가 도산
하는 그때는 내가 알게 뭐냐. 내일을 바라보지 않고 현재
만 욕심을 채우면 내일에 가서 울게 됩니다. 직장도 잃어
버리고 그리고 자기 손에 들어오는 수입도 없어져 바리고
마는 것입니다. 내일을 바라보는 노동자들이 되어야 됩니
다.
일반 국민도 한 가지입니다. 개인이나 국가의 먼 장래를
바라보는 눈은 까막눈이 되어 현실의 욕망이나 쾌락 및 만
족에 들떠 과소비에 사치에 향락에 떠들썩하면 내일은 절
망뿐인 것입니다. 내일에 꿈이 없는 자에게는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누가복음 6장 24절로 26절에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
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
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
에게 이같이 하였느니라" 지금 벌써 배불렀고 지금 벌써
만족했고 지금 웃음을 웃고 지금 모든 사람이 너 잘났다고
하면 그 사람은 벌써 내일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지금 배
고픈 사람은 내일을 위해서 애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지
금 고통스러운 사람은 내일의 평안을 위해서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현실적인 문제는
여기에 야곱과 같이 내일을 바라보는 꿈을 하나님 앞에 가
져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말세에 하나님께서 남종과 여종과 모
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 주리니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요엘서 2장)고 말한 것입니
다. 미래와 내일에 대해 멀리 바라보는 눈은 다시 말하면
꿈이요, 환상인 것입니다. 이 꿈과 환상이 없는 개인이나
나라는 미래가 이미 버림받은 것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한 것은 야곱은 내일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일에 대한 멀리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거기에 따라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내
일이 없었습니다. 멀리 바라보는 눈이 없고 현실에 안주해
서 현실의 쾌락만 누리고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에서를 버렸습니다.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에서와
같이 사는 민족은 하나님이 버리시는 것입니다. 야곱과 같
이 내일을 바라보는 꿈을 얻어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같이 하십니다. 바로 성경은 꿈의 책입니다. 성경은 바로
다가올 내일에 대한 꿈과 환상을 주는 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이 새해에 하나님의 은
총과 복을 받고 살려면 여러분이 말씀과 기도 중에서 먼저
보고 멀리 보는 눈을 얻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멀리 바라보고 현실을 거기에 조화시켜서 우리가 살게 될
때, 꿈이 있을 때 그 꿈도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그러한 사
람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내일에 대한 멀리 바라보는 눈이 없
는 사람에게는 내일도 장래도 하나님이 다 빼앗아 간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거룩한 야심을 두고볼 때 에서와 야곱은 굉장히
틀립니다.
야심이란 말을 나쁘게만 종종 쓰기 때문에 억양이 좋지
않지만 그러나 좋은 야심이 없는 사람은 쓸모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이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야 그
사람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다 그 사람 호인 아닌가." 그
러나 법이 없어도 살 사람, 호인을 만나 보십시오. 어떠한
사람이냐 자기 밥벌이도 못하는 무능력자인 것입니다. 오
늘날 호인이나 법이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 야심
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좋게 하고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떠내려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
러분 거룩한 야심에 있어서 에서와 야곱은 틀립니다. 왜냐
하면 에서는 야심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팥죽 한 그릇
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다니... 야심이라고는 털끝만치도
없습니다. 장자가 되면 아버지의 축복을 받고 아버지의 재
산을 상속으로 받는데 거기에 대한 야심도 없습니다. 그는
전혀 하루하루 쾌락만 위해서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
기 때문에 장자의 명분에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았던 에서
는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야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야곱
은 너무 교활하고 사기성조차 있었지만 그러나 거룩한 야
심에 불탔습니다. '나는 어찌하든지 장자가 되야 되겠다 아
버지에게 장자의 명분을 받아야 되겠다. 하나님 앞에서 장
자로서의 복을 받아야 되겠다'는 그 야심이 마음속에 이글
이글 불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야심이 좀 빗나가서
팥죽 한 그릇으로 형에게 장자의 명분을 사고 혹은 형의
옷을 대신 입고 가죽털을 손에 붙이고 목에 붙여서 털이
부슬부슬 나게 해서 눈이 어두운 아버지에게 자기가 에서
라고 해서 기어 들어가서 장자의 명분의 축복도 받고 그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지만 그러나 그 마음속에 거룩한 야심
이 불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학생들도 그렇습니다. 마음속에 거룩한 야심이
있는 사람은 불철주야 애를 쓰고 공부를 하고 노력합니다.
부모님이 "야 공부해라 공부해라. 잠만 자지 말고 놀지만
말아라." 그런 말 할 필요가 없어요. 그 마음속에 야심이
있는데 그 야심이 있기 때문에 그는 앞으로 앞으로 뛰는데
부모가 말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야심이 없는 사람은
앞에 태산같은 문제가 다가오는데 밤늦게 놀고 아침에 해
가 중천에 뜨도록 잠을 자고 공부는 안 하고 책에 먼지가
쌓이고 그런 자식을 가진 부모는 죽을 지경입니다. 아무리
타일러도 소용이 없어요. 그 마음속에 야심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이 오늘날 어떠한 정황에 놓여 있습니
까? 우리 한국에 올림픽이 오기 전까지는 우리 민족은 정
말 우리도 잘 살아 보자, 우리도 선진대열에 들어가 보자
는 야심이 팽배했습니다 그래서 정치인이나 경제인, 노동
자, 국민 전체가 마음속에 잘 살아 보겠다는 야심으로 피
땀을 흘리고 노력을 하고 열심히 일을 하고 좋은 물품 생
산하고 열심히 마케팅하고 온갖 일을 다 했습니다. 그러나
올림픽을 치르고 난 다음에 온 세상 사람이 다 와서 "왔
다. 너 잘 한다. 너 잘 산다. 너 훌륭하다. 너 제법 되었
다." 하니까 그만 우쭐해져 가지고서 "야, 이제 다 됐구나.
에라, 이제부터 일하지 말고 놀아보자.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고 병들면 못 놀노리로다." 젊어서 놀면 늙어 병들
어 버리면 또 놀고 항상 놀고 말지. 그래서 야심을 우리
한국 민족이 버 리자 그 다음에 다가온 것이 무엇입니까?
무사 안일주의, 광적인 소비향락, 노력 없는 일확천금을 위
한 이와 같은 무기력한 사회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 한국 민족이 새로운 꿈을 얻음과 동시에 마음속에 다
시 잘 살아 보겠다는 그러한 야심이 불타지 아니하면 이대
로 내버려두면 죽은 나무 몽둥이 바다 물에 떠돌아가듯이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추운데 사는 민족들이 잘 살고 더운데 사는 민족
들이 대개 못삽니다. 북방 경제가 남방 경제보다 발달한
이유는 추운데 사는 사람은 야심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겨
울에 처자와 더불어서 따듯한데서 살고 따듯한 옷 입고 잘
먹고 살아야겠다는 그 마음속에 욕망과 야심이 있기 때문
에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러나 더운데 사는 사람은 365일
늘 덥고 뭐 걱정할 것 없으니까 잠자다가 야자나무에 올라
가서 야자 턱 따 가지고 깨서 물 쭉 마시고 바나나 턱 쳐
서 바나나 먹고 일할 필요 없습니다. 옷이란 것은 셔츠 하
나에 팬티 하나면 365일 그대로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까 자동적으로 게을러지고 일하지 않기 때문에 낙후되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 사람이 남미에
이민가면서 벌꿀을 가지고 갔습니다. 벌꿀 통을 가져갔어
요. 한국 벌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꿀을 많이 모으니까 그
남미에 따뜻한데 가면 365일 따뜻하니까 막 계속 벌꿀을
많이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좋다고 벌꿀 통을 가지고 갔
는데 일년동안 벌이 열심히 일을 하더래요. 왔다, 이게 웬
일인고. 꽃이 이렇게 많노. 그래서 365일 벌들이 열심히 일
을 하더니 이년째 가니 벌이 이상하다 겨울도 안 오는데
그래 좀 게을러지더니만 삼 년째는 도무지 꿀을 안 딴다는
것입니다 벌이 그냥 앉아 놀기만 해요. 왜? 가만히 있어도
늘 꽃이 있으니까 꿀을 모을 필요가 있나요. 날아가면 있
는 것이니까 그 자리에서 먹지. 이래서 한국 벌조차도 남
미에 갔다놓으니까 게을러빠지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사람
이 춥고 배고프면 야심을 가져요.
요번 여러분 대학 입시에 뭐 일등으로 합격했다. 과별
일등을 했다는 그 자녀들 신문에 난 것 보십시오. 아버지
가 세차장에서 일한다. 어머니가 바느질해서 먹고산다. 굉
장히 가난하고 어려운 춥고 배고픈 집안 자녀들이 다 일등
을 했습니다. 왜, 춥고 배고프니까 그 마음속에 어찌하든지
이 가난과 운명을 극복을 해 보자. 이 슬픔을 극복하고 사
람답게 살아보자는 그 마음속에 불타는 야심이 있기 때문
에 열심히 애쓰고 힘써서 그들은 일등을 한 것입니다. 사
람이 그 사람 천재다. 그 사람 둔재다. 종이 한 장 차이입
니다 얼마나 노력하는가 그것이지 그렇게 큰 천재도 없고
그렇게 못한 둔재도 없어요. 얼마나 집요하게 노력하느냐
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춥고 배고프면 야심이 살아
나는데 등 따습고 배부르면 아이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 재
산도 있고 하니까 그까짓 것 일 안 해도 내가 상속으로 받
으면 밥이야 안 먹겠나. 그러니까 뭐 걱정할 것 있나. 무엇
때문에 내가 괴롭게 일 하겠나. 이래서 야심을 버리기 때
문에 그 사람은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
심이 없는 사람을 저 버립니다. 그리고 야심이 있는 사람
을 택해서 쓰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거룩한 야심에 불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들어 사용했지만 에서는
야심이 없고 그냥 현실적인 생활에 안주해서 바람 부는 대
로 물결치는 대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저를 버린 것입
니다.

넷째로, 회개하고 깨어짐과 그렇지 않은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66장 2절에 "나 야웨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
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
고하려니와"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의 생활을 보
면 에서는 모든 것이 남의 탓이지 자기 탓이 아닙니다. 장
자의 명분을 빼앗은 것도 야곱이 교활하게 나의 장자의 명
분을 빼앗았으니 야곱 탓이다. 그 다음에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도 야곱이 형을 속이고 형의 옷을 입고 나가서 아
버지께 받았으니 야곱 탓이다. 야곱을 죽여 버려야 되겠다.
동생을 죽이려고 하매 할 수 없이 어머니가 외삼촌의 집으
로 피난 보낸 것입니다. 동생이 돌아올 때까지 이십 년 동
안 에서는 동생 탓으로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하고서 그는
동생을 죽이려고 칼을 갈고 동생이 온다는 말을 듣자 사백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동생을 죽이려고 나갔었습니다. 에
서는 자기의 처지를 살펴보고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고 깨
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떠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
에 하나님은 에서 편에 서서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비록 교활하고 사기성이 있고 잘못된 놈이지만 그
러나 그는 마음이 가난했고 통회하고 자복할 줄 알고 하나
님 말씀 앞에 떠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이 얍복 나루터에
서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을 하고 난 다음 하나님이 그를
치매 환도뼈가 어그러지므로 하나님 앞에 크게 회개하고
하나님을 붙잡고서 "나를 축복해 주지 않으면 당신을 놓지
않겠나이다." "너 이름이 뭐냐?" "야곱, 사기꾼입니다." "이
젠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라.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긴
자라고 하라." 그렇게 이름조차 바꾸어 주어서 하나님이
같이 하므로 형이 아무리 동생을 죽이려고 사백 인 군대를
가지고 와도 하나님이 야곱과 같이 행하매 형이 동생을 죽
이지 못하고 그 마음이 녹아져 버려서 오히려 동생을 호위
하고 가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무엇이든지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자기
가 회개하고 깨어지지 않으면 그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당해도 언제나 이것이 남의 탓이 아니라 내 탓
이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 내가 가슴을 치고 통회하고
자복 하고 내가 깨어지고 내가 변화되면 그 사람에게는 내
일이 약속되는 것입니다. 잘 되면 자기 탓이요, 잘못 되면
나라 탓이라고 자기의 잘못을 항상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
님 앞에서 겸손히 깨어지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잘못되는 것마다 이것은 나라 때문에 부모 때문에 형제 때
문에 이웃 때문에 교회 때문에 목사 때문에 장로 때문에
집사 때문에 전부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자기는 타당화 합니
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이 져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하며 자기가
모든 일에 통회하고 자복할 줄 알고 하나님 말씀 앞에 떨
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이런 사람은 귀하고 아름답
게 생각해서 전능한 하나님이 뒤에서 손으로 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내일이 약속되는 것입니다. 여러
분 사랑을 받고 미움을 받는 것은 다 자기 탓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서가 버림받은 것도 자기 탓이요, 야곱
이 사랑 받는 것도 자기 탓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여 살면서 에서와 같은 생활 태
도를 버리고 야곱과 같은 생활 태도를 우리는 취하고 사십
시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관심을 가지고 24시간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과 함
께 사는 그런 마음의 태도를 가져야 될 것이요, 우리는 모
든 일에 내일을 바라보고 먼 장래를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성경을 읽고 장차 다가올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
을 바라보고 장차 강림하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거기에 비
추어서 오늘 우리 현실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삶 자체도 생활도 사업도 현재 당장 일확천금
할 것을 생각지 말고 내일을 바라보고 멀리 눈을 바라보고
먼 미래 큰 수확을 얻을 수 있도록 지금부터 천천히 천천
히 단계적으로 일해 나가는 그러한 꿈이 있는 삶을 살아야
될 것이요, 우리는 마음속에 거룩한 야심을 가지고 기도하
고 힘쓰고 애쓰고 노력하고 땀을 흘려 항상 발전하겠다는
야심을 저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야심이 없으면 하나님
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회개하고 깨어지고 하나
님 말씀 앞에 떨면서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낮아져서 살게
될 때 이 한 해 동안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
분과 같이 계시고 야곱을 높이 들어 하나님의 위대한 종으
로 삼은 것처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여러분의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생활 태
도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한 해를
살 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는 흥할 것이요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자는 망하고 맙니다.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
는 망한다는 동양의 말도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에서처럼 되지 말고 야곱처럼 되어서 사랑을 받고 하나님
께서 붙들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그러한 삶을 살
도록 도와 주옵소서. 그래서 이 한 해 동안에 큰 하나님의
은총과 영광을 누리며 살게 도와 주옵시고 하나님께 크나
큰 영광을 돌리며 살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