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1월 17일
제목 : 할렐루야, 야훼를 찬양하라
성구 : 시 146: 1-10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할렐루야, 야훼를 찬양하라' 이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현대 추수 감사
절의 기원은 영국의 청교도로부터 시작합니다. 1607년 영
국의 제임스 1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영국을 카톨릭교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그 곳에 있는 신교도들을 무섭게 핍박
했습니다. 그래서 제임스 왕의 핍박을 당하고 무서운 박해
속에 견디지 못한 신교도들 102명은 단체를 지어 180톤의
범선인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의 나라를 찾아서 대서양 횡단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거센 대서양의 파도와 싸우며 63일간 구사일생의
항해를 끝마친 후 1620년 2월 21일 미국 동부 플리마스록
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곧장 나무를 베어
교회를 짓고 자기들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농토를 개
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풍토가 다르므로 풍토병에
걸려 많은 사람들이 죽고 아메리칸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
또 많은 사람들이 죽어 처음의 100여명의 사람들 중 50여
명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 슬픔 가운데 그들은
남편과 아내와 온 자식과 친척의 무덤을 옆에 두고 열심히
땀을 흘려 땅을 개간하여 이듬해에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오히려 원망과 탄식과 불평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를 드리고 이웃과 인디
안들을 청하고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 일이 추수감사
절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역경과 고난과 인명의 상실에도
불구하고 원망과 불평 대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 그 위대한
신앙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쁘게 받으셨던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하나님은 이 일을 기념하게 만들
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역경에 처했으나 그 역경에 굴하
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민족을 들어 복을
주시고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부유한 나라로 만들어 주셨
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교훈을 통해서 감사의
제사가 하나님과 인생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지 깨
달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첫째로 원망과 불평은 마귀가 전문적으로 행하는
파괴 공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시고 에덴의 낙원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
와를 그 곳에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
해 만드신 동산이니 얼마나 잘 만드셨겠습니까? 상함도 해
함도 없었고 보기에도 먹기에도 좋은 열매가 나는 사람으
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극치의 낙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얼마든지 즐겁게 살 수 있었습니다만 아담과 하와는 하나
님이 베풀어주신 그 한없는 은혜와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
지 아니하고 "동산의 실과를 다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실
과는 먹지 말라 이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신 그
열매를 안 준다고 불평했습니다. 풍성히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아니하고 하나 안 준 것을 가지고 불평하고 원망
하고 있을 때 마귀가 와서 말했습니다. '네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너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된다.' 그 원망과 불
평이 결국 하나님을 반역하게 만들어 그들은 결국 선악과
를 따먹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저주와 형벌을 받
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지 아니하고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을 자꾸 바라보고 원망, 불평,
탄식하면 반드시 마귀의 시험에 걸립니다. 마귀의 시험에
걸리면 언제나 저주와 형벌 속에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생애를 보면 늘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언
제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감사할 줄 모르고 환경을 바라보
고 쉬지 않고 원망, 불평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보다 환경
을 바라보면 불평과 원망을 거듭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손을 의지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큰 편 팔과 권능으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
굽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그들은 눈으
로 보고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로의 마음이 달라
져 바로는 큰 군대를 거느리고 그들을 습격하려 뒤쫓아 왔
습니다. 앞에는 창해한 홍해수로 막혀있고 뒤에는 쳐들어
오는 애굽 군대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이 알
아야 할 것은 그 크신 권세와 능력으로 430년 종살이하던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온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기적을 베풀어 홍해 수를 건너가게 하실 것이란 것이었습
니다. 그래서 이를 알고 믿고 감사를 드려야 했을 것입니
다. 인간은 역사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동물은 역사성이 없
지만 인간은 과거를 생각하여 기억하고 그것으로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그렇게 큰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서는 반드시 홍해수가에서도 큰 일을 행하실 것을 생각하
고 오히려 감사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기적을 고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서 원망, 불평,
탄식했습니다.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여 가로되 "애굽에
장지가 없어 우리를 이곳에서 죽게 하느냐?"고 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잘못된 심성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모세
한 사람만은 하나님의 기적과 이사를 기대하고 믿고 기도
하며 감사하여 하나님께서 홍해수를 갈라 그들을 지나가게
해 주신 그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수르 광야에 들어가 사흘 동안 걸어가
는데 물이 없어 물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다가 연못을 발
견하였으나 그 물이 썼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또 다시 원
망과 불평, 탄식과 통곡을 했습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기
억하지 못합니까?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역사하신 것과 그
홍해수를 가르고 그들을 걸어가게 하신 위대한 하나님이라
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기억하
여 위험에 처할 때 더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위험을 위해
기적을 베풀어주실 것을 믿고 감사와 찬양을 드렸으면 얼
마나 하나님께서 기쁘게 역사하셨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모든 기적들은 잊어버리고 환경
만 바라보고 원망, 불평, 탄식했습니다. 그때도 모세가 기
도하매 하나님께서 한 나무 가지를 지시하시고 그 나뭇가
지를 꺾어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져서 마실 수 있게 되었
습니다.
그들이 광야를 지나 르비딤에 왔을 때 또 물이 없었습니
다. 그들은 수르 광야에서 물을 주신 하나님을 또다시 잊
어버렸습니다. 물이 없다고 남녀노유 할 것 없이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통곡하여 울었습니다. 완전한 기억상실
증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이러한 기억상실증에 걸리면
안됩니다. 여기 기록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여러분과 저
에게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성경은 하
나님을 기억하고 우리의 삶이 위기와 환란에 처할 때 그
하나님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찬미하고 기적을 기대하고 믿
음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치는 교훈의 책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억상실증에 걸렸습니다. 또 다시 르
비딤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원망, 불평할 때 모세가 하나
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바위를 치매 단단한 바
위가 물을 홍수와 같이 토해냈습니다. 그들은 바위에서 솟
아나는 물을 마셨습니다. 결국 그들이 바데스가나야에 왔
을 때 모세가 열두 명의 정탐꾼을 세워 가나안 땅을 40야
40주 동안 정탐하고 돌아오라 했습니다. 40일 후 그중 10
명을 돌아와서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그 성은 높고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네피
림의 후손 아낙 자손들이라 우리가 보기에도 우리는 메뚜
기 같더라, 우리는 그 땅에 들어가 점령하지 못한다. 우리
의 처자들이 포로로 잡힐 것이다.'라고 말하자 온 백성들이
땅을 치고 울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여 말하되 '우리가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 다시 종살이하는 것이 좋
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도 하나님께서 처처에 기적과 이사를 행하시고 능
력을 베풀어 주셨건만 사사건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그
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눈은 땅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들은 현실적인
환경만 바라보고 원망, 불평, 탄식했습니다. 그럴 때에 하
나님께서 영광가운데 나타나사 부정적으로 말한 그 열 명
을 죽여버리고 원망, 불평하고 감사를 모르고 하나님을 찬
양할 줄을 모르던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다시 돌아가게
하시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여 그 곳에서 죽어 뼈가
햇볕에 바래지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기적을 믿고 하나
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 여호수아와 갈렙과 그 후손들만
인도하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
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기적과 이사와 능력을 기억하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 환경을 바라보고 절망하지 말고 환경보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계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 찬양, 기도하
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이 사람되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바로 이것
입니다. 좋을 때만 하나님이 계시고 곤욕을 당하고 어려울
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잘못된 신앙입니다. 이러므로 성경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의 말씀을 마음에 아로새기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
터 은혜 받은 것을 마음속에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항상
고난에 처할 때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와 찬양을 부르며
역경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성경은 "내가 비록 사
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 하시나이다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
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하나님께선 떠나시지 않습니다. 원수의 공격을 받는다고
해서 내가 버림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께
서 함께 계셔서 우리가 감사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을 의지
할 때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어서 우리를 건져 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버리고 마귀의 말을 뜯고 원망, 불
평만 한다면 스스로 파멸 당할 것입니다.

둘째로, 원망과 불평과 감사와 찬양이 우리의 생활에 어
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우리 마음을 부정적으로 만듭니다. 사람의
마음이 부정적이 되면 모든 것을 회의적으로 보게 됩니다.
우리가 검은 안경을 쓰면 모든 것이 검게 보이고 붉은 안
경을 쓰고 보면 모든 것이 붉게 보입니다. 부정적인 생각
을 하면 그 후에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마음에 꽉 들어
찹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사람은 무능력하게 되고
무책임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환경에서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우
리의 마음은 긍정적이 됩니다. 그러면 '할 수 있다'는 마음
이 생기고 그 후엔 창조적이고 질서 있고 책임 있는 사람
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벳세다 광야에 나가셨을 때 남자만
5천 명, 부녀자까지 기만 명이 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증거하고 병자들을 고치시는
데 순식간에 날이 저물었습니다. 사람들은 배가 고파 풀밭
에 드러누웠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을 부르시고 "빌립아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
님께서 어떻게 하실 것을 알고 계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님께서는 여러분 생활 속에 어떠한 일이 다가와도 이미 해
결책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험을 해보십니
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을 시험해 보시고자 그렇게 말씀하
신 것입니다. 시험에 합격하면 주님은 능력을 베푸실 것이
요, 낙제하면 주님께서는 능력을 베푸시지 않을 거입니다.
그러나 빌립은 마음속으로 불평을 했습니다. '이 광야에서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이라고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
시는가?' 그 마음속에 불평이 있으니 부정적인 태도가 되
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나니 그 마음에 '도저히 할 수 없
다'는 생각이 꽉 들어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주님 먹
일 수 없습니다. 이 곳은 광야입니다. 떡 살 곳이 없고 모
두를 먹이기 위해 필요한 2백 데나리온도 없습니다. 이 사
람들은 보내셔서 각자 자기 먹을 것을 찾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에
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신다고 짜증을 내고 불평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자 모든 면에서 그렇게 못하는 이유만을 댔습니다. 만일
빌립만 있었더라면 그 곳의 모든 사람들은 굶었을 것입니
다.
그러나 그 곳에 안드레와 같은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는 데에
감사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사람들의 영혼의 문제에만 관
심을 가지신 것이 아니라 육신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고 계
시는구나' 하고 감사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태
도를 취하자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꽉 들어찼습니다. '무엇
인가 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해보자' 그래서 궁중을 헤치고
그는 먹을 것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한 어린이가 보리떡 5
덩이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진 것을 보자 그것을 취하여 예
수께 가지고 나가자 예수님은 기쁘게 안드레를 맞으셨습니
다. 왜냐하면 안드레는 감사와 찬양하는 마음과 긍정적인
태도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드레와 함께 하여 안드레의 것을
축복하시매 그 보리떡 5개로 기만 명의 사람을 다 먹이고
도 열두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똑같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광야에 있었습니다. 같은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다 같은 예수님의 제자였습니
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빌립이 아닌 안드레를 사용한 이유
가 무엇입니까? 빌립은 불평, 원망하고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할 수 없는 이유만 찾았습
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감사하는 태도와 긍정적인 마음으
로 할 수 있다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 보리떡 5개와 물고
기 2마리를 주님께 가지고 나왔습니다. 주님은 '할 수 있
다'하는 사람과 같이 하여 주셔서 어제도 오늘도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사는 세상이 광야입니다. 여러분이 당
하는 문제가 광야인지 모릅니다. 황량한 광야 같은 어려움
에 처한 지도 모릅니다. 광야에는 예수님이 안 계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벳세다 광야에 빌립과 안드레, 그리고
사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함께 계셨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광야와 같은 삶을 살아가도 그 가운데는
예수님께서 같이 계십니다.
성경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내게 주셨다" 하시
고 "볼찌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같이 하리
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노라" 하신 주님은 오늘 이 자
리에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운데 불평하고 원망하며 부정적인 마
음의 태도로서 할 수 없다하며 못할 이유만 찾는 사람은
광야에서 패배자가 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 사람이 기도할 때 주님은
기적을 나타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
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는 것을 잊지 말게 되시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원망과 불평은 우리의 꿈과 희망을 빼앗아 가고
감사와 찬송은 꿈과 희망을 심어줍니다. 꿈과 희망을 잃으
면 방자히 행하고 이는 될 대로 되라는 종말 현상을 가져
옵니다. 마귀는 언제나 원망과 불평을 가지고 와서 우리
마음속의 꿈과 희망을 빼앗아 버립니다. 사람에게 가장 위
대한 것은 꿈과 희망입니다. 우리는 꿈과 희망을 먹고삽니
다. 이것을 빼앗기면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파멸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정치가가 국민들에게 꿈과 희
망을 심어주면 그 백성들이 일어나 용기 내어 일합니다.
그러나 잘못 된 정치로 국민의 마음의 꿈과 희망을 짓밟아
버리면 백성들은 낙심하고 방자히 행합니다. 그래서 사회
에는 범죄가 난무하고 부정과 부패가 성하며 종말적인 현
상이 나타납니다. 개인이나 국가에 꿈과 희망은 절대적으
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원망과 불평은 이 중요한 꿈과 희
망을 다 빼앗아 가 버립니다.
그러나 감사와 찬송은 꿈과 희망을 마음속에 심어줍니
다. 왜냐하면 감사와 찬송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어 가
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꿈과 희망
을 심어주십니다. 성경은 성령이 오시면 젊은이에게는 환
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심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감
사와 찬양이 우리 각자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나가고 성령
이 우리에게 오시면 성령은 언제나 우리에게 꿈과 희망이
있게 합니다. 사람에게 꿈과 희망이 있으면 무서운 힘이
생깁니다.
아브라함이 75세로 이미 노인이 되어 은퇴하여 손자들의
재롱을 보며 여생을 보낼 나이가 되었는데 하루는 하나님
께서 찾아오셔서 "아브라함아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
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
루고 네게 복을 주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
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
니 너는 온 땅의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아브라함은 이 그리스도의 꿈을 얻은 후 일시에 변화
되었습니다. 그는 75세의 노인임을 잊어버리고 새 청춘을
가지고 일어나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나이 80세로 허리는 굽어졌고 머리는
백발에 눈은 어두워졌습니다. 마음의 모든 정열은 사라지
고 이제는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호렙산 가시 넝쿨 가운데 활활 타는 불길 속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모세에게 새로운 꿈을 주셨습니다. 80세의 노
구에 꿈을 받자마자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눈이
빛나고 온 몸에 뜨거운 피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팡이 하나 짚고 애굽으로 건너가 40 청춘에 일으키지 못
한 혁명을 일으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어 광야를 지
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는 위대
한 종교가이자 혁명가, 정치가가 되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육신이 늙어 늙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젊은 사람도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면 늙은 사람이 되고 마
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육신이 늙은 사람이라도 꿈과
희망이 그 마음속에 가득하면 그는 늙은 사람이 아니라 젊
은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원망과 불평은 우리를 빨리 늙
게 합니다. 꿈과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젊은 청춘에
벌써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
나 감사와 찬양을 끊임없이 하면 아무리 늙은 사람도 젊은
이 못지 않게 창조적인 인생을 꾸려 나갈 수 있는 것입니
다. 이러므로 원망과 불평을 내어쫓고 희망과 꿈을 주는
감사와 찬양의 생활을 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그리고 감사와 찬양의 삶은 우리를 신앙의 길로 이끌어
가지만 원망과 불평은 우리를 불행의 길로 이끌어 갑니다.
왜냐하면 원망과 불평을 하다보니 모든 환경과 땅만 바라
보게 되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
앞에서 멀어지고 신앙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
나 억센 역경과 어둡고 캄캄한 절망에도 굽히지 않고 하나
님께 감사, 찬양을 드리면 그 사람은 환경을 바라보지 아
니하고 환경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므로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그 역경을 변화시켜 주시고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이러므로 '벌레의 눈을 가진 민족
은 망하고 새의 눈을 가진 민족은 흥한다'는 말이 옳습니
다. 벌레는 흙만 바라보고 꿈틀거리므로 흙만 바라보고 원
망하다 망하지만 새는 하늘 높이 떠서 희망과 꿈을 가지고
멀리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러한 새의 눈을 가진 민
족은 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문제가 없는 인생이란 없습니다. 크고 작은 파도
와 문제가 늘 다가옵니다. 그 문제를 바라보고 울고불고
하면 파멸됩니다. 우리는 문제를 극복케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길은
감사와 찬송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이 칠
흑같이 어두워도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와 찬송을 부르면
여러분은 어둠을 헤치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
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믿음을 부어주시고 기적
을 일으키십니다. 바울과 실라를 보십시오. 빌립보에서 복
음을 증거 하다가 잡히어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많이 얻어
맞아 상처가 생기고 피가 철철 흐릅니다. 배를 굶고 감옥
에 들어가서 착고에 결박되어 있는데 벼룩은 기어 올라와
몸을 괴롭힙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원망, 불평, 탄식을 얼
마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했으면 빌립보
그 감옥에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도하
고 밤중에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을 불렀습니다. 온 죄수들
이 잠에서 깨어 그들의 찬송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빌립보 옥토가 지진으로 흔들리어 그들의 모든 착
고가 다 풀리고 감옥 문이 다 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들의 찬송을 통해서 자유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천사를 보
내어 쇠고랑을 다 풀어버리게 하시고 감옥 문을 다 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유의 몸이 되어 나왔습니
다.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찬송을 부르자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빌립보 옥에 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질병과 죄악의 쇠사슬에 묶이고 가난과
여러 시험과 환란의 차고에 매였다 할지라도 그것을 바라
보고 원망, 불평, 탄식을 하면 그것들이 여러분을 파멸시키
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기억하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천사들
이 임하여서 여러분의 착고를 푸시고 자유롭게 해 주실 것
입니다.
성경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
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여 버림을 받아
마땅한 우리들을 위해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 있는 우리들을
대신하여 몸을 찢어 피를 흘리시고, 채찍을 맞아 피를 흘
리시고, 가시관 쓰셔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어
6시간 동안 고난을 당하면서 우리 죄를 다 속하고 율법의
심판에서 건지시고 마귀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시고 병을 다 짊어지고 가시
고 저주를 멸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내리시며 사망과 음
부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이 예수님만 생각해도 감사할 것
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이 예수
님 안에서 놀라운 은총과 축복을 받고 난 후에 어떻게 감
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도 원
망, 불평을 한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울면서도 웃고 고통
중에도 감사하고 절망 중에도 환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
수님께서 그와 같이 위대한 구원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
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께서 오늘날도
마귀의 시험에 빠진다면 아담과 하와같이 저주와 형벌 속
에 빠지고 말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처럼 광야에서 멸망하
고 말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나와 다른 사람의 무덤을
파헤치지만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는 바
요, 즐거워하시는 것이므로 그 감사, 찬양하는 사람에게 하
나님께서 구원을 베풀어주십니다.

추수감사절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그 어려운 역경 속에
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제사를 드린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쁘시게 받으셨던지 미국을 축복하셔서 세계 최대
의 강대국이자 부유한 나라로 만드시고 그 이야기를 지금
도 강단에서 말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을 하
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감사 절기만 그렇게 하지 말고 여러분의 전 생애를 통
해 원망과 불평을 오늘 이 시간에 빗자루로 싹 쓸어버리십
시다. 그리고 이후로는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 잎에
감사와 찬양의 제사를 드리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감사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의 기
도를 받으시고 능력의 팔을 펼치사 우리 영혼이 잘 됨 같
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
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야훼께 감사하고 야훼를 찬양
합시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이 할 마땅한 본분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천 번 만
번 죽어야 마땅한 우리들을 아버지께서 불쌍히 여기사 건
져주셨으니 이 은혜와 사랑을 무슨 말로 다 감사하오리까?
야훼 하나님이여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오늘 감사로 제사
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성령으로 변화시켜 주
옵시고 마음의 무덤 같은 원망과 불평을 다 내쫓아 버리게
도와주시고 감사히 찬송을 부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야훼
하나님의 오른 팔의 능력으로 주의 백성들을 붙잡아주시고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부르는 대 군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늘 문을 여시고 감사와 찬양을 하
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