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1992년 1월 19일
제목 :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자
성구 : 갈 5 : 16 - 26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불광동에서 교회를 개척 할 당시에 박수미 자매라는 아주머니가 계셨습니다. 그는 청상과부가 되어서 외아들 한 사람을 데리고 행상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처음 예수를 믿고는 얼마나 기뻐하는지 몰라요. 지금도 제 눈에 선히 보입니다. 그렇기 찬송을 부르고 기도할 때마다 타월을 가지고 와서 눈물로 기도를 합니다. 새벽기도, 주일예배, 수요일예배, 금요일예배를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잘 믿던 사람이 하루는 제게 오더니만 "나 이제 예수 그만 믿으래요." 그래요. 왜 그러냐고 하니까 "예수 믿기 전에는 내가 행상을 하고 다녀서 거짓말도 좀 하고 물건도 쓱싹하기도 하고 그래서 먹고살았는데 그래도 내 마음이 괴롭지 않고 편안했어요.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는 조금 거짓말을 하고 와도 밤새도록 잠이 안 오고 마음이 괴롭고 남의 물건을 바구니에 집어넣고도 너무너무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만 안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안 믿을 때는 죄를 지어도 편안했는데 믿고 난 다음에는 죄를 지으면 너무 괴롭기 때문에 애 다 키워 놓고 죽게 될 때 내가 예수를 믿겠습니다." 그는 절실한 고뇌를 가지고 와서 제게 와서 그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 선생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는 속사람과 겉사람,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의 끝없는 투쟁에 관해서 로마서 7장 14절로 24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것이 바로 위대한 사도의 자기탄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영이 죽어 있고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육의 노예가 되어 살았기 때문에 내적 갈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영이 살아나고 하나님의 법을 깨닫게 되면 육과의 투쟁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영과 육의 갈림길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영육간의 갈등이 없는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과 육의 갈등이 있다는 것은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성장에는 끊임없이 육의 사람을 십자가에서 죽여버리고 신령한 사람이 장성하는 것이 신앙의 성장 요소인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로, 우리 육의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지 육의 사람의 특성을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을 살펴보고 육의 사람이 다가올 때 그를 대적하고 물리쳐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육신에 둘려서 살고 있기 때문에 육의 사람,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와 손을 잡고 우리 속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육의 사람의 공격은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우리 원수가 누구인지를 알고 대적해야겠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육의 사람의 성품은 먼저 음행이 그 성품의 처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음행이란 무질서한 성적인 행위로서 성생활을 부부에 한정하지 않고 방종 하는 것을 음행이라고 말합니다. 육의 사람의 나타남은 벌써 음행으로 시작되고 더러운 것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부도덕하고 음탕합니다. 이러므로 육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육과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생각과 말과 행동이 부도덕하고 음탕함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호색합니다. 무절제하게 성적 욕망에 빠져서 그것을 추구하다가 몸도 마음도 가산도 탕진하는 그러한 삶을 삽니다. 육의 사람은 우상숭배를 합니다. 하나님 이외에 자연이나 인간이 만든 것을 신으로 섬깁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복 받는다면 해 앞에도 달 앞에도 물 앞에도 나무나 돌 앞에도 굽신거리는 이것이 육의 사람인 것입니다. 육의 사람은 술수를 행합니다. 육신적으로 주술을 통해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행위인 것입니다. 입으로 주술을 외우면 운명이 변화되고 복이 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육의 사람은 원수를 맺습니다. 화해를 거부하고 대적합니다. 오늘날 세상에 이렇게 미움과 원한이 꽉 들어차고 조금만 하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육의 사람이 살아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육의 사람은 분쟁을 잘 합니다. 이해가 상반하여 다툽니다. 이해와 타협과 양보가 없습니다. 요사이 여러분 우리 한국에 노사 분쟁 같은 것은 육의 사람들이 모여서 그렇게 싸웁니다. 조금이라도 서로 이해하고 타협하고 양보가 있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인데 이해가 상반하면 좌우간 남은 죽고 나는 살아야 된다는 그러한 욕심 가운데서 서로 분쟁을 합니다. 육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육의 사람은 시기합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마음에 쓰디쓴 마음을 품고 좋아하지 않습니다.
육의 사람은 분을 냅니다. 미움이 폭발하여 공격적이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걸핏하면 공격적이 되어서 분을 내어서 사람을 패 죽입니다. 육의 사람의 행위인 것입니다.
그리고 육의 사람은 당을 짓습니다. 파당을 지어서 화합을 깨뜨립니다. 조금만 하면 파당을 지어서 서로 대결하고 싸웁니다.
육의 사람은 분리합니다. 본처에서 떨어져 나가 협력을 거부합니다. 자기 마음에 맞지 아니하면 대다수가 좋아하면 그것에 따라 가야 할 것인데 민주주의 원칙입니다. 그러나 육의 사람은 분리합니다. 자기 뜻대로 안되면 사분 오열이 되어서 물어 찢습니다.
육의 사람은 이단을 따라 갑니다. 말씀의 근원적인 진리를 벗어나서 암적 조직체가 되는 것이 이단인데 이 이단이란 하나님의 성경의 정상적인 가르침을 떠나서 자기의 욕심을 좇아 새로운 단체를 결성하고 따라나가나 종국에는 멸망당하고 말 것입니다.
육의 사람은 투기합니다. 자기보다 더 사랑을 받거나 인정을 받거나 성공하는 것을 마음속에 극히 시기합니다.
육의 사람은 술취함 속에 삽니다. 술취함이란 이성이 마비되어 정상적인 말과 행위를 잃어버립니다. 성경에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술이 취하면 방탕하게 되고 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합니다.
그리고 육의 사람은 방탕합니다. 방탕이란 무질서, 무절제한 생활로 인격을 상실해 버린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은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육에 잡혀서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 또 하늘나라를 이해 못합니다. 왜냐하면 육이란 마귀의 노예입니다. 그러므로 육과 마귀는 손을 잡고 우리 인생들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육은 일어나서 마귀와 손을 잡고 영적인 사람을 철저히 짓밟아 버리고 노예화하고 그리고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육으로 둘러 싸여 있는 이상 우리의 원수가 구만리 장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육은 마귀와 손을 잡고 끊임없이 우리에게 도전해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육신을 갖고 십자가에 못박아 육을 죽이고 장사해 버리고 신령한 사람으로 부활한 것처럼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을 때 우리의 육은 십자가에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육을 십자가에 계속 못 박아야 됩니다. 이것은 하루 이틀만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육은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의 생명인 신령한 속사람이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이 육과의 싸움은 우리의 육으로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기 때문에 성령이 눈에 안 보이지만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는 이 육의 일을 멸하고 신령한 신앙 생활을 절대로 못합니다. 여러분 이 추운 날에 이 교회에 와서 앉아 계신 것은 육의 모든 반발을 이기고 교회에 와 있다는 이 자체가 여러분 속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으로는 여러분 자신 스스로가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 속에 계셔서 여러분을 붙잡아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신령한 사람이 육을 정복하고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고도 할 수 없고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를 부를 수도 없고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육을 이기고 신앙 생활을 계속 할 수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예수 믿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우리 속에 보내 주신 이 성령님을 우리는 늘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성령께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 없는 사람은 비가 없는 구름, 불이 없는 화로와 같습니다. 열매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없이는 종교적인 의식이나 형식은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생명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왔다갔다하면서 교회 밖에 나가서는 예수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이 육의 생활을 합니다. 세상에서 썩어진 생활을 하고 어둡고 캄캄한 생활을 합니다. 그 사람은 종교는 있어도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요 육의 사람이 살아서 있습니다. 종교가 그런 사람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종교를 가졌을지라도 필경은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신령한 사람이 일어나서 성령의 힘을 입어 육의 사람을 정복하고 육의 사람을 죽이고 생활하면 이러한 사람은 어느 곳에 가도 빛이 되고 소금이 됩니다. 이러한 사람의 종국은 영원한 영광이요, 영생인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우리가 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성령의 사람이 되면 성령의 사람 속에 나타난 특성은 무엇인가 알아봐야 할 것입니다.
육의 사람의 특성을 알았은즉 성령의 사람의 특성은 무엇인가? 성령의 사람은 사랑의 사람입니다. 사랑이란 남을 귀중히 여기고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나를 섬겨달라고 내 중심으로 사는 이기주의는 성령의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사랑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또 이웃을 섬기는 삶, 귀중히 여기는 삶 이것이 사랑의 삶인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또한 희락의 사람입니다. 그 마음속에 소원이 있어요. 성령이 계시므로 그 뱃속에서 늘 즐거움이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슬픔과 고통은 십자가에 맡겨 버리고 늘 마음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제가 강단에 앉아서 보면 찬송을 부를 때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환해서 기쁨을 가지고 찬송을 부르는가 하면 어떠한 사람은 입이 길게 나와서 기쁨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성령의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희락이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화평의 사람입니다. 마음속에 평안이 있어서 세상에 많은 요란함이 있더라도 하나님께 늘 맡기고 의지하기 때문에 그 영혼의 깊숙한 속에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오래 참습니다. 성급하게 언어, 행동하지 않습니다. 육의 사람은 성급하게 언어 행동을 하고 파괴적이지만 성령의 사람은 오래 참습니다.
그 다음 성령의 사람은 오래 자비심을 갖습니다. 불쌍히 여깁니다. 이웃에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 당하는 것을 함께 마음으로 짐을 지고 육신으로 함께 짐을 지고 고통을 당하며 최선을 다해서 협조하고 도와주려는 자비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이야 죽든 말든 내가 살면 되지 뭐 남에게 관심을 가질 것 뭐냐? 이것은 육의 사람의 행동인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양선한 사람입니다.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요. 육의 사람은 간사하거나 악합니다. 아주 악한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아주 양선 합니다.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성령의 사람은 충성스럽습니다. 배신을 하지 않고 마음을 다해 받들어 섬깁니다. 육의 사람은 배신합니다. 자기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고 은혜를 베푼 사람도 자기 이해에 부딪치면 눈물도 없이 배신하고 돌아서는 것이 육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사랑을 받고 은혜를 입었으면 자기에게 여간 불리하고 어려운 일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그는 충성스러워서 배신하지 않고 마음을 다해서 받들어 섬기는 이것이 바로 충성스러운 마음입니다. 성령의 사람의 마음인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온유합니다. 따뜻하고 유순하며 잘 길들여진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납고 무서운 육의 사람과 다릅니다. 따뜻하고 유순하며 잘 길들여진 성품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성령의 사람과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요. 성령의 사람과 같이 있으면 마음이 즐거워요. 그러나 육의 사람과 같이 있으면 마음이 불안해요. 편안하지 못합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절제합니다. 도나 분수를 잘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도나 분수를 잃어버린 사람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도네시아에 가 보고 놀란 것은 하루 종일 피땀을 흘리면서 일하는데 노동자들의 월급이 30불, 약 25,000밖에 안 합니다. 35도의 무더위에서 땀을 흘려가면서 하루종일 불평 없이 일하고 한 달에 약 25,000정도 받아 갑니다. 한 달에 100,000원 받는 월급이면 굉장히 좋은 직장입니다. 그래도 불평 없이 일하고 있어요.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 한국에는 한 달에 1,500,000원씩 평균 받는 직장에서 더 돈을 달라고 탐욕을 가지고 일을 집어치우고 분쟁을 하고 기물을 파괴하고 수많은 하청업체들이 일을 못하게 해서 거기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가족을 굶주리게 하는 집단 이기주의 이런 일이 횡행할 수 있습니까? 우리 민족이 지금 절제하는 성품, 영의 사람은 없고 도나 분수를 잘 행하지 않습니다. 자본가들은, 있는 사람들은 일확천금이나 하려고 하고 노동자들은 일은 안 하면서 돈은 욕심껏 분수를 넘어서 손의 쥐려고 하고 결국은 분쟁밖에 없습니다. 제가 홍콩에 가서 홍콩 신문을 보니까 홍콩 신문이 대서특필로 한 것이 뭐냐 하면 한국은 결코 일본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요 그리고 종국적으로 한국이 이와 같은 산업 분쟁 해결을 못하면 10년 이내에 동남아에서 가장 꼴지 가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평을 한 것을 보고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육백만 밖에 안 되는 홍콩 도시 국가가 4천 2백만 우리 한국 사람들보다도 1년에 수출량에 더 많습니다. 그러니 그런 소리 할 만하지 않습니까? 4천 2백만이 6백만에게 달랑 딸립니다. 왜? 사치하고 분쟁하고 일하지 아니하고 탐욕을 가지고 도와 분수를 넘어 행동해서 종국적으로 이와 같은 상황이 된 것입니다. 절대로 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고 요행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이 길로 가면 그들이 다 우리보고 평한 대로 5년 이내에 제일 꼬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구걸하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빨리빨리 정신을 차려서 우리는 절제의 삶을 살 수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생활도 절제하고 그리고 우리의 임금도 절제하며 우리 삶의 모든 행위도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울지 않고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민족이 살 수 잇는 길은 이 육의 사람을 정복하고 성령의 사람들이 살아 일어나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다 예수 믿고 우리의 육을 정복하고 우리의 속 사람신령한 사람이 일어나서 그래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와 같은 성품을 함양해서 살아갈 때 이러한 성품이 우리에게 영생으로 이끌 뿐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머리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 지라고 꾸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내적인 자원이 없이는 절대로 앞날에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지금 기로에 서 있습니다. 흥하느냐 망하느냐 위로 올라가느냐 밑으로 떨어지느냐 날개를 다느냐 날개를 꺾어 버리느냐 진흙 창에 빠지느냐 운명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금년 한 해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우리 스스로의 운명을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앞날을 포기하는 가장 열등한 그리고 복을 받고 살 수 있는 자격이 없는 민족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기후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동남아에 나가보고 절실히 뼛속에 느껴서 제가 오늘 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셋째로, 우리가 신령한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었다는 것은 하나의 종교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완전히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아예 육의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서 제쳐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지나간 때의 주인이 육의 사람입니다. 육의 사람은 지나간 때의 주인입니다. 옛날에 예수를 믿기 전에는 육의 사람이 완전히 주인 노릇해서 우리를 붙잡아서 마음의 욕심과 육신의 정욕대로 끌려가고 마귀의 종이 되게 만들었는데 십자가를 통하여 이 육의 사람을 우리는 죽여 버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속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신령한 살아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는 이 신령한 사람이 우리의 삶의 주인인 것입니다. 육의 사람이 주인이 아닙니다. 신령한 사람이 주인입니다. 이 주인이 성령의 힘을 얻어서 육의 사람 마귀와의 종의 된 육의 사람이 올 때 이를 쳐서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메지 마라. 다시 육의 노예가 되고 마귀의 종이 되지 마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육의 사람을 멸하고 마귀를 정복했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신령한 사람이 주인으로 살아 일어나고 신령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힘을 입어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신령한 사람은 그 가슴속에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의 법을 바로 새겨서 굳세게 잡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이라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길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용서받는 길 성령 충만 받는 길, 병 고침 받는 길, 그리고 축복 받는 길, 영생 얻는 길로써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을 바로 가자면 이 길을 지켜 주는 하나님의 계명과 성령의 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나라가 잘 살려면 군대가 있어서 대적을 막아 줘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길에 들어섰으면 이 길에서 떠나지 않도록 지켜줄 군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군대가 바로 하나님의 계명이요, 성령의 법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길에만 들어서서 자기를 지킬 수 없으므로 육체가 들어오고 마귀가 들어와서 그만 은혜의 길에 있는 우리들을 좇아내 버리고 길 잃어버린 자가 되고 도로 멸망 받게 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예수 믿고 우리가 길을 가졌으면 이 길을 지켜줄 수 있는 군대인 하나님의 계명과 성령의 법이 우리 마음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므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만 계명이 우리를 지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십계명과 성령의 법이 우리의 마음을 점령해서 원수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는 것입니다. 계명의 법과 성령의 법 이것이 바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예수만 믿을 뿐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십계명도 외우고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성령께 의지해서 계명과 성령이 우리를 둘러 진치고 우리를 지켜 주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길에서 떠나가지 않도록 그렇게 만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혹시 죄를 범하면 곧장 회개해야 합니다.
요한 일서 2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시라고 신속히 회개해서 육체와 마귀가 틈타지 못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하라고 했는데 성령으로 사는 생활이란 말씀이 충만한 삶이요 기도가 충만한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실하게 하나님 말씀을 늘 공부하고 읽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기를 힘쓰면 말씀 충만, 기도 충만하면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가 늘 성령님을 예배드리고 인정하고 환영하고 성령께 의지하면 계명과 성령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길속에서 걸어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해 주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마귀와 육체와 세상에서 지켜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올라갈 때까지 부활의 몸을 입을 때까지 육체 안에서 신음하며 끝없이 투쟁을 계속 해야만 합니다. 조금이라도 자만하거나 방심하면 옛 주인 육의 사람이 마귀와 손을 잡고 우리를 종으로 삼으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덤벼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 육체를 쳐서 십자가를 통하여 복종시키고 성령을 의지하므로 신령한 삶을 계속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참으로 빛과 소금이 되고 우리 주 예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육으로 태어났지만 그대로 있으면 멸망하고 맙니다. 예수를 믿어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것은 육신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태어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태어난 속사람, 영의 사람, 신령한 사람으로 우리는 태어나고 그리고 이 신령한 사람은 예수를 중심으로 삽니다. 예술의 길에 서서 살아 나갑니다. 예수의 길속에 바로 용서가 있고 성령 충만이 있고 필요도 있고 축복도 있고 천국도 있습니다. 예수의 길에서 우리가 살아나갈 때 끊임없이 육이 쳐들어오고 마귀가 우리를 도로 넘어뜨리려고 할 때 우리를 지켜주는 군대가 바로 하나님의 계명이요 성령의 법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으로 무장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무장하고 있으면 이 모든 육과 마귀를 쳐서 복종시켜 영광스러운 승리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한때는 육의 사람이요 마귀의 종이었는데 십자가를 통하여 이를 청산하고 신령한 사람이 살아나고 영원한 삶을 얻은 영의 사람이 살아나서 우리가 육의 사람이 아닌 신령한 사람이 되고 성령의 사람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지여, 성령의 사람으로서 우리는 다시는 타협하지 않고 죄와 육체와 마귀를 쳐서 복종해 버리고 성령과 손을 잡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으며 그리스도의 길,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그 길에 서서 천당까지 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