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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월 26일 제목 : 이런 사람에게 복이 있나니 성구 : 마 5:1-12 오늘 저는 "이런 사람에게 복이 있나니"란 말씀으로 은 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복은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사람에게 다가옵니다. 마 음에 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되지 않은 개인이나 민족에게는 오던 복도 달아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산 에 오르사 당신에게 찾아온 제자들에게 복 있는 사람이 마 땅히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에 대해 명쾌하게 말씀을 하셨 습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마음에 감동이 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께서 주신 이 산상 복음 을 깊이 음미해 보므로 우리의 마음의 자세가 정말 복을 받을 수 있는 자세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주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가난이 란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양식이 떨어져서 가난합니다. 옷이 없습니다. 집 이 없습니다. 생활해 나갈 수단이 없습니다. 이런 가난을 체험하게 되면 대단히 고통스럽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를 불구하고 물질적으로 육신적으로 가난하기를 원 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하나님께서는 가난을 만드신 적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 시고 에덴을 창설하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주실 때 가난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에덴은 문자 그대로 낙원이었습니다.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실과가 풍성히 나고 환 경이 지극히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물질적인 환경적인 가난을 만드 신 적이 없습니다. 물질과 환경의 가난은 사람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마귀와 손을 잡고 불신하고 불순종하여 저주를 받아 결국 가난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심령이 가난하기를 원하십 니다. 여러분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마음에 있어야 할 것이 없을 때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을 배반하고 타락한 후에 마음에 있는 귀중한 보화를 다 잃어 버렸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 보화를 잃고 난 후에도 그 보화를 잃어버린 것조차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 람들이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 마음속에 있 어야 할 보화가 없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는 사람인 것입 니다. 여러분 심령에 있어야 할 것은 삶의 의미와 가치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왜 사는지 그 의미를 알고 가치를 알아 야 삶의 뜻이 있지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사는 것 은 동물의 삶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평안, 기쁨이 있어야 하고 믿음, 소망이 있어야 하고 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또, 이 세상을 살 고 난 후에 죽고 난 후에 사후의 세계에 어떠한 일이 일 어날 것인지에 대해서도 우리 마음속에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에 있어야 할 근원적인 것에 대한 것이 없으면 마음에 병적인 현상이 나타납니다. 영양실조와 같 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허무와 무의미를 느끼게 되고 아무 리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을 다 가지고 있어도 그 마음 깊은 곳에 늘 안타까운 심정, 아쉬운 마음이 끊임없이 연 기처럼 피어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불안합니다. 슬프고, 미움이 있고 절망이 있고 공허 등의 고통을 마음 속에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에 있어야 할 것 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통을 물질로 얼버무려 덮어 버리지 않고 가슴 아프게 느끼는 자가, 그 사람이 복이 있 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영혼의 부르짖음, 영혼의 공허를 그만 세상의 부귀, 공명, 영화, 세상의 권력, 이런 것들로 채워 얼버무리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슴의 욕구를 눌러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그 마음에 있 어야 할 것이 있지 않고 쓰레기로 꽉 들어차서 쓰레기 더 미 안에서 살다가 일생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마음에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을 뼈져 리게 느끼고 마음의 공허를 가지고 삶의 의미를 찾고 삶의 의미와 기쁨,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사후의 세계의 실상을 간절히 찾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 니다. 왜? 이러한 사람은 예수를 믿게 되고 이러한 사람의 마음에 천국은 반드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의 가난함, 이것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 다. 이 마음의 가난함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에 필요한 것 을 채우지 못한다면 인간은 동물적인 존재요, 육체만 가지 고 살다가 육체가 세상을 떠날 때 그와 함께 파멸되고 마 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마음의 세계를 잃어 버리고 육체적으로 만 부귀와 공명을 가지고 채워넣은 사람을 보고 이렇게 말 씀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17절로 20절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 자라 부유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 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 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유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 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 니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고 마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적인 부요를 가지고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랑 하는 사람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통렬히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의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과 가난한 것과 비 참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왜냐? "너의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 오늘 일을 자랑하지 말라. 내일 네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함이니라"라고 말 씀하십니다.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다." 풀 은 시들고 그 꽃은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가 지고 사는 인생 치고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러한 사람들이 마음의 공허를 느끼고 그리스도 예수 앞에 나가서 십자가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케 되야 하는 것입 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그리고 그리스도가 주시는 천국 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이 세상을 살 때 방향 감각을 얻게 되며 믿음, 소망, 사랑을 얻게 되고 의와 평 강과 희락을 갖고 참으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 그 마음속에 하늘나라를 갖고 삶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살 때 참된 인생이 되지 그렇지 아니하면 그것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것입니다. 양만 잔득 쌓아 놓았다가 심판의 날에 다 날아가고 남는 것은 하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 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땅에 사는 사람이 그 마음속에 천국을 갖고 살 때 비로소 복이 잇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땅만 바라보고 흙만 쥐고 사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버림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속에 천국을 가지고 살도록 예 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엎드려 우리 자신의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을 통회하고 자복하고 그리스도를 모셔서 복 받게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주님께서는 "애통하라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 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왜 애 통합니까? 그것은 자기의 삶에 부족한 점을 바라보고 애통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든 것이 만족하다고 생각할 때는 애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의 부족한 것을 바라볼 때 마음 속에 애통하게 되고 애통하는 사람이 발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애를 바라볼 때 우리가 불의 하고 죄 많음을 바라보고 우리가 의롭게 되지 못함을 애통 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진실하 고 정직하지 못하고 거짓 속에 살기 때문에 우리는 가슴을 치고 애통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실하지 못하 고 불성실한 삶을 사는 것을 애통해 해야 하고 거룩한 삶 을 살지 못하고 악한 삶을 사는 것을 애통해야 하고 용서 와 사랑이 부족한 것을 애통해야 하고 온유와 겸손하지 못 한 것을 애통해야 하고 탐욕을 벗어나지 못함을 애통할 때 이와같을 때에 참된 회개가 있고 이와 같은 애통함이 있을 때에 내일을 향한 발전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민족의 중대한 문제는 우리 민족이 그 동안에 교만해지고 스스로 만족해지고 애통하는 마음이 없어졌다 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더 발전하고 민족이 더 손과 손을 잡고 화합해서 대 선진국이 되겠다는 애통하 는 마음이 사라지고 그만 이 자리가 좋사오니 여기에서 그 치겠습니다. 하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허랑방 탕하고 과소비하며 물고 찢고 싸우고 대결하며 스스로를 저버리고 마는 이와 같은 상태가 큰 불행으로 다가오는 것 입니다. 애통하지 아니하는 개인이니 애통하지 아니하는 민족은 절대로 발전함이 없습니다. 현재로서 만족하고 이만하면 됐다고 주저앉아 버리는 사람에게는 내일은 없는 것입니 다. 여러분 사람은 애통해야 회개하게 되고 주 예수 그리스 도의 도움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애통하고 회개하는 상 태, 이것이 마음이 깨어진 상태인 것입니다. 시편 34편 18절에 보면 "야훼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 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셨고, 시편 51편 17절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 이라 하나님께서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취하시는 마음은 상한 심령, 애통 하는 마음, 깨어진 마음, 자기의 부족한 면을 보고 가슴을 치고 통탄하고 내일을 향해 발전하기위해서 '주여 나를 도 와주소서. 나의 힘으로 능으로 안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 움을 간구합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복을 내려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 이 있나니 저희가 주의 손길로 말미암아 위로함을 받게 되 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보혈로 애통하는 자 의 마음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애 통하는 자가 부족하게 느끼는 것을 힘을 주어 도와주셔서 우리의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며 생명 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앞으로 앞으로 향상, 전진, 발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우리는 개인뿐 아니라 국민 전체가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애통하지 아니 하는 사람은 그로써 벌써 끝이 난 사람입니다. 셋째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 다. 온유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온유란 뜻은 부드럽고 따 뜻하고 유순하다는 것입니다. 요새 사람들은 부드럽지 않 습니다. 강퍅합니다. 따뜻하지 않습니다. 몰인정합니다. 유 순하지 않습니니. 사납습니다. 무섭습니다. 요새 사람들 만 나는 것이 가장 겁이 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와 같이 강하고 냉정하고 사나운 성품을 가진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온유하고 유순한 성품을 가진 사람, 마 음이 잘 길들여져서 하나님께 조금도 반항하지 않고 순종 하며 믿고 따라가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온유한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연을 살펴보더라도 온순한 짐승일수록 사람과 함께 살고 사람의 도움을 받고 사나운 짐승은 사람 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깊은 산 속, 벼랑 끝, 이러한 곳에 서 삽니다. 사나운 사람일수록 운명이 사납습니다. 자기가 강성이고 냉담하고 사나운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인생도 그 렇게 됩니다. 그 사람의 인생은 거칩니다. 그러나 온유한 짐승, 소나 말이나 토끼나 개는 주인이 있습니다. 주인이 먹을 것을 주고 먹여주고 지켜줍니다. 온 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 부드럽고 따뜻하고 유순하고 마 음을 길들여서 순종하고 믿는 사람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고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 다. 그렇기 때문에 온유한 사람은 결국 땅을 차지하게 되 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이 땅에서 쫓겨날 것 같고 인간의 생각으로는 사나운 사람이 주먹을 휘두르고 땅을 차지할 것 같은데 역사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온유한 사람이 천국을 소유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 다. 주님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 천국을 소유하는 것은 말 할 필요 없습니다. 온유한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생각과는 틀린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체험과 역사가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37편 11절에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 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라" 시편 37편 22절에 "주의 복을 받는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는 자는 끊어지리라." 주의 복을 받는 자는 바로 온유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지상에서 사라진 소비에트 연방을 보십시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스탈린 이후로 얼마나 세계평화에 위 협이 되었습니까? 그들은 강성이고 몰인정하고 사나왔습니 다. 무장하지 않은 KAL기를 쏘아서 수많은 생명을 수장하 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안하는 강성국가인 것입니다. 소련이 그 무시무시한 원자탄과 수소탄을 가지고 몰인정 하고 사납게 온 세계를 뒤흔들 때 땅은 소련이 차지한 것 과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 갔습니까? 자 세히 살펴봐도 흔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늘 지는 것 같고 어리석어 보이고 연약해 보이고 정이 많아 보이는 미국을 비롯한 자유 우방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땅을 차지하게 되 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북한과 남한이 끊임없이 대결을 했습니 다. 김일성이는 강성이고 사납고 몰인정한 사람입니다. 공 산주의를 선동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 동안 늘 공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웅산 사건을 일 으켜 수많은 한국의 지도자들을 죽였고 노동자들이 타고 오는 KAL기를 폭파했고 많은 태러를 자행했습니다. 그 나 라가 땅을 차지했을까요? 어림도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하 기를 늘 당하기만 하고 맞고 그리고도 가만히 참는 온유한 자들이 땅을 차지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고 보 싶시오. 며칠 후, 며칠 후, 북한은 우리에게 삼킨 바 될 것 입니다. 온유한 우리가 북한을 흡수해서 통일합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렇게 됩니다. 왜? 역사를 주장하고 인간의 운 명을 주장하는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있습니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차지할 것이요. 그러므로 예배 마치고 밖에서 버스 탈 때도 너무 강하게 하지 마시고 온 유하게 하십시오. 예배당에서 약하고 밖에서 버스 탈 때는 강하고 사나워서 살기가 등등합니다. 그러면 교회에서 받 은 복을 다 쏟아버리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받은 복을 그 대로 가지고 온유한 마음으로 버스도 타고 사회생활도 하 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의란 뜻을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진실한 의란 일생에 죄를 한번도 짓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번이라도 죄를 지으 면 그것은 의가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조 금도 부끄럽지 않은 것을 의라고 말합니다. 마귀가 추호도 참소할 수 없는 인품을 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의를 달성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두 가지 방법을 씁니다. 자기의 행위로 의에 도달하려는 모든 종교가 이 의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 의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 행위로 의롭게 될 사람은 지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길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 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위로서 의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모두 죄인으로서 버림을 받을까요? 이제 는 인간의 행위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온 의가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얻는 의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밖혀 몸을 찢고 피 를 흘리시므로 우리의 영원한 죄를 다 영원히 청산해 버리 시고 용서를 주시므로 의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는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 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를 믿 어 의롭게 되는 것이 어느 정도 의롭게 되느냐?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 없으시고 의로운 것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처럼 죄 없고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통 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처럼 의로워져서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 에 있게 되고 하나님과 자유롭게 교제를 해도 조금도 죄책 감을 느끼지 않고 정죄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의입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 는 것입니다. 이는 행위로 말미암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얻 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믿음을 통하지 않고 의를 얻을 사람은 천하에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하기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 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하신 것입니다. 의롭게 살려고 애를 쓰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지나 고 보면 지은 것은 죄 밖에 없습니다. 내 평생 살아온 길 뒤를 돌아보니 걸음마다 자국마다 다 죄뿐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뒤를 돌아보아서 우리가 어깨를 으쓱하고 자랑할만 한 삶을 산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습니까? 돌아보면 평생 살아온 것은 부끄러움뿐입니다. 그런 가운데 내가 어떻게 하면 더욱 의롭게 되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우리가 의에 주리 고 목마르면서 의를 간절히 찾을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소개해 주시겠 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의롭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예수님이 계시 해 주시지 죄악 가운데서 자기 마음대로 먹고 마시는 사람 에게 그리스도가 계시되지 않습니다. 의를 찾는 자에게 의 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을 계시해 주셔서 예수를 믿음으로 일생의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하게 해주셔서 의인을 만들어 주시고 내 마음속에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서 의의 영이신 성령께서 오셔서 이제 나에게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실제 생활에서도 죄를 이기도 극복하고 의 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지게 되고 그래서 의를 갈급 히 구하는 마음에 만족함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진실로 근본적으로 마음속에 복을 받 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적으로 복 받았다고 하 면 갑자기 지위가 높아지고 돈을 많이 벌고 행운이 다가오 고 영화를 얻으면 복 받았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것도 복 입니다. 그러나 그런 세상 복은 기초가 없을 때 오히려 화 가 되고 또 얼마 안가서 그 세상 복은 먼지와 티끌 같이 날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팔복을 말씀한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기초적인 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초가 없 는 집은 무너집니다. 기초과학이 없으면 어떠한 실천과학 도 발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예수님이 주신 이 기초적인 팔복이 마음 에 뿌리를 내리지 아니하면 세상의 모든 다른 복은 신실한 복이 안됩니다. 복같이 보이나 그것은 오히려 허무하고 화 로 변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오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깊이 음미 해봐야 하겠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 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 로함을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 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임이라. 이와같은 복을 받을 근원적인 마음을 우리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으면 그 다음에 복은 그 위에 차곡차곡 쌓여져서 진실로 우리에게 큰 위로와 복으로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 다. 주님께서 설명하신 필복 중에 오늘 네 가지를 살펴보았 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과연 우리는 복 받을 틀을 닦았 는가? 스스로 질문해 보는 귀한 시간을 가져봅시다. 내 마 음은 가난한가? 내가 정말 애통하고 있는가? 내가 정말 온 유한가? 내가 과연 의에 주리고 목마른가? 이것을 생각해 보고 우리의 마음의 바탕을 새로이 하는 귀한 시간을 삼 아야 하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 에 주님을 통해서 참으로 인생에 복을 받고 살기 위해서 반드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의 터전, 마음의 근본적인 자격을 보여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이 세상 에 일시적으로 다가오는 복만 바라보고 그것을 쌓아 놓을 기초가 없는 사람은 아무 소용도 없게 된다는 것을 세상은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이 땅에서 물질적 복만을 따르지 말게 하시고 마음이 가난한 것을 깨 닫게 하여 주옵소서. 마음이 얼마나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 한 것을 알고 마음을 부요케 하는 길을 찾게 하옵소서. 자 기의 잘못된 것을 늘 성찰하고 애통해 하고 회개하고 자복 하는 마음을 주셔서 그리스도 앞에서 큰 위로를 받게 하여 주옵소서. 강하고 몰인정하고 사납고 무서운 사람 되지 않 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겸비한 사람, 자기의 마음을 잘 길 들여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여 때리는 자는 망하나 맞는 자는 흥합니다. 차는 자는 망하 나 차이는 자는 흥합니다. 짓밟는 자는 망하나 오히려 짓 밟히는 자는 흥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기쁜 마음으 로 주를 의지하고 나아가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의를 사모하고 의를 갈급히 찾는 우리들이 되어 서 의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을 깊이깊이 모시고 용서받은 의인들이 되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하나님과 함께 사 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보혜사 성령님이시여 하 나님의 말씀을 우리 모든 영혼 속에 깊이 깊이 새기게 하 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 멘. -신유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시여,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 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고 성령 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어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하 나님의 사랑을 받은 주의 백성들이 모였습니다. 아버지 심 신이 병들어 아픈 사람들 아픈데 손을 얹고 앙망하오니 주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병을 다 고치신 그 능 력으로 오늘 마음의 병과 육신의 병을 다 고쳐 주시옵소 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 주시옵 시고 치료의 놀라운 역사가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도 네시아 수많은 군중들이 치료를 받은 것처럼 그 치료의 역 사가 오늘 우리에게도 운행하시고 역사해 주시옵소서. 우 리가 치료함을 받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 험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수고하고 무거운 짊을 지고 온 사람들 아버지 하나님,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능으로 그 짐을 지려 하지 말고 그 짐을 예수께 내려놓게 도와 주시 옵소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께서 수고하 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짐을 맡아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치료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 지의 은총으로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