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2월 2일
제목: 이런 사람에게 복이 있나니
성구: 마태복음 5:1-12

오늘은 "이런 사람에게 복이 있나니" 하는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산상보훈의 나머지 4가지 축복에
관해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주일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8가지 복 중 4가지를 이미 여
러분과 함께 음미해 보았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마
음이 가난한 자의 복, 애통하는 자의 복, 온유한 자
의 복,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을 깨달아 알았
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가르치신 우리가 이 세상에
서 복 받고 살수 있는 마음의 기본바탕을 오늘도 4
가지 남은 축복에 관한 것을 들음으로 확립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
님이 주시는 모든 축복을 누리고 살 수 있는 자격
을 구비할 수가 있습니다.

다섯 째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했습니다. 긍
휼히 여기는 자는 자기의 연약함과 죄 많음을 깊이
깨달은 자가 남을 긍휼히 여겨줄 수 있습니다. 타
인의 연약과 죄 많음을 보고 깊이 동정하고 도움을
베풀 수 있습니다. 자기가 아파 본 사람이 다른 사
람의 아픈 것을 보고 동정합니다. 자기의 배가 고
파본 사람이 배고픈 사람의 사정을 압니다. 자기가
외롭고 슬퍼 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외롭고 슬픈
사정을 아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우리
스스로가 긍휼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남의 용서가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하고 동정이 필요하고 위로가
필요하고 긍휼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
저 남을 긍휼히 여겨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
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콩 심은 데 콩 나
고 팥 심은 데 팥 납니다. 긍휼을 심은 사람에게
긍휼이 다가오지 미움을 심어놓고 난 다음에 긍휼
을 거둘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가 되는 것입니
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를 들어서 이
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여리고에 내려가
다가 도적을 만났습니다. 있는 것 다 빼앗기고 벌
거벗기고 죽도록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어서 쓰러
졌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한 제사장이 지나가면서
이 사람을 보고 건져줄 줄 알았는데 그는 오히려
꾸짖고 지나갔습니다. 제사장은 율법을 지키는 자
인 것입니다. 율법의 수호자입니다. 율법이란 사람
의 잘못을 비평하고 평론하고 심판하고 벌을 주는
것이 율법의 역할이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는 것
은 율법의 역할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율법을
주장하는 제사장은 이 사람을 바라보고 이 사람의
잘못한 것을 꾸짖고 정죄하고 심판하고 지나가지
절대로 이 사람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율
법의 속성입니다. 이러므로 율법주의자들은 절대로
사랑과 동정과 긍휼을 베풀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
음에 레위인이 그 근처를 지나가는데 레위인도 보
고 난 다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지나갔습니다.
레위인은 종교적인 의식을 집행하는 자입니다. 종
교의식을 집행하는 사람은 사람이 굶주리든지 죽든
지 병들든지 고통을 당하는지 상관할 것 없습니다.
교회에 와서 종교적인 의식만 베풀면 되지 종교의
식 자는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습니다. 그러
나 여기에 선한 사라마리아 한 사람이 여행을 하다
가 보고 빨리 짐승을 타고 와서 그 사람 곁에 내렸
습니다. 그 사람의 상처에 포도주와 기름을 붓고
붕대로 잘 처매어 주고 그리고 자기 짐승에 태워서
주막에 데려가서 잘 돌보아 주고 떠날 때 은전 두
닢을 주면서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이 사람을 돌보
아 주시오. 부비가 더 들면 내가 갚아 주리다. 그렇
게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 그
렇게 말했습니다. 말할 필요 없이 동정을 베푼 이
선한 사마리아인인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이 세
상에서 강도 만나 고통 당하는 인생들에게 선한 사
마리아인 같이 동정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자비를
베풀라. 그러면 우리가 나중에 필요할 때 우리에게
도 자비가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이제 국회의원선
거가 본격적으로 돌입하면 모든 국회의원들이 내가
당신들의 진정한 대변자요 내가 정말 당신들을 위
해서 일을 하겠오.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사람들의 말을 듣고서 평론할 것이 아니
라 그 사람들이 지금까지 지나온 동안에 우리에게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율법주의
자로 우리에게 평론이나 하고 심판이나 하고 우리
에게 판단이나 하는 사람이 아닌가? 의식주의자처
럼 무관심하게 자기만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면 된
다고 하면서 살다가 이제 와서 우리의 선량이라고
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정말 선한 사
마리아인 같이 우리의 괴로울 때 우리에게 찾아와
서 우리와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고통을 당하
고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이를 치료해 주고 처매
어 주고 우리에게 동정을 베풀어주고 자비를 베풀
어 준 사람인가 그 사람이 우리에게 어떠한 일을
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긍휼
을 베푼 그 사람이 우리의 참된 대표자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동정한 그 사람이 진실로
우리를 대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
우리는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면은 내가 긍휼이 필
요할 때 반드시 다가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심든
지 그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3절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
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
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친지 이웃에 긍휼을 베푸
십시오. 성경은 말씀하기를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
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
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끝임 없이 죄 사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끝임 없이 죄 짓잖아요? 그러
므로 우리에게 죄를 짓는 자를 우리가 먼저 용서해
주어야 우리의 죄도 용서받을 수 있는데 우리는 남
의 죄 용서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죄만 용서해 달라
고 하면 이렇게 잘못된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은 짧으면서도 깁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동
정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언제고 나도 다른 사람에게 동정을 받
고 자비를 받아야 될 때가 옵니다. 그때는 내가 긍
휼을 베풀고 살았으면 풍성한 긍휼이 나에게 다가
오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
인 것입니다.

여섯째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
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
상에는 두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믿기 전의 마음
과 믿음 후의 마음입니다. 믿기 전의 마음은 죄와
허물로 더러워진 마음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로 3절에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
데서 역사 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
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
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
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믿기 전의 마음은 불순종하는 마음, 불 신앙하는
마음, 반역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반역하고 불
순종하고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 마음은 세상 풍속을 좇는 마음이요 세속적인 마
음입니다. 세상이 꽉 들어차서 그저 세상 풍속대로
따라가고 세상의 모든 정욕대로 따라가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 마음은 육체의 욕심에 지배된 마음인
것입니다. 음란하고 방탕하고 세속을 따라가는 육
체의 욕심을 그대로 따라가는 마음인 것입니다. 육
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의 포로가
된 마음인 것입니다. 고삐 풀린 마음으로 그 마음
을 자기가 다스리지 못하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그
냥 방탕으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의 영이 지배하는 마음입니다. 마귀가 그 마음
속에 들어와 삽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그 마음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전혀 믿지 못하게 하고 그리스
도 예수를 알지도 못하게 하고 그 길로 그 길로 지
옥으로 일로 매진해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후의 마음은 어떤 것입니까? 예수그
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와서 그 마음을 펼쳐놓고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마음을 씻고 그리스
도를 구주로 믿으면 죄와 허물이 용서받고 그 마음
이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마음은 변화되어서 이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변화되고 하늘나라와 하나
님의 의를 쫓는 마음이 되고 이제 육체를 이기고
육체를 다스리는 마음이 되고 하나님의 길과 하나
님의 계명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어 하나님의 길을
따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살게 되고 성령이
충만한 그러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되면 하나님이 그 마음속에 임재하시므로
우리가 눈으로 보지 않고 손으로 잡지 않아도 하나
님이 마음속에 가득히 임하여 있는 것을 깨닫게 되
는 것입니다.
저는 늘 그런 체험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 깨어
져서 십자가로 내 마음을 정하게 씻고 말씀을 하루
에 5장 이상씩 읽고 1시간 이상 간절히 기도하고
나면 마음에 하나님께서 물댄 동산같이 가득하게
됩니다. 눈으로 안보고 하나님 말씀을 귀로 안 듣
고 손으로 만질 필요 없습니다. 내 마음속에 하나
님이 물댄 동산같이 가득하게 임하십니다. 하나님
의 평화,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의가 충만하고
믿음, 소망, 사랑이 가득해서 하나님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나와 함께 속에 거하시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좀 게을러져서 성경 읽는 것을 등한히 하고 기도를
좀 게을리 하고 그렇게 하면 세속이 파도처럼 쳐옵
니다. 세속이 파도처럼 쳐와서 그 마음을 부여잡습
니다. 그럼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희미하게 됩니다.
마음이 흔들흔들 해지고 그만 세상 마귀가 와서 들
어오려고 문을 막 두드리고 여보시오 문 여시오 문
여시오 도둑질 하는 마귀, 방탕한 마귀, 타락적인
마귀, 세속적인 마귀가 문 열라고 막 두드립니다.
그러다가 문을 열면 그때로부터 세상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떠나갑니다.
마음은 얼마나 야속스러운지 모릅니다. 어제까지
하나님이 충만히 임하여서 '주여, 주여' 하다가 오
늘 세속이 들어오면 언제 하나님 믿었다는 듯이 싹
돌아서서 그만 세상을 따라 세상을 따라 흘러갑니
다. 세상에서 가장 믿지 못할 것이 인간의 마음입
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께로부터
점령되어 있기 위해서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씻
고 말씀으로 청결하게 하고 성령이 충만하게 해서
하나님이 늘 마음에 거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할수록 하나님이 임재하여 주셔서 하나님과 함
께 사는데 뭐 하나님이 있나 없나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일곱 번째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
나니 저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이라는 것은 화해와 평화를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화해와 평화가
없습니다. 사람들마다 부딪치고 사람들마다 서로
경쟁사회에서 원한을 가지게 됩니다. 이제 오늘날
은 온 세계적으로 미국과 소련이 대결하고 싸우고
냉전을 하던 그 체제가 변화되어서 화해의 기분이
온 세계에 넘실거리고 있는 것은 참으로 우리가 전
쟁의 위협을 면하고 원자탄 수소탄의 지구멸망의
전쟁을 피하고 사는 좋은 시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화해는 원래 하나님의 뜰에 있었으나
마귀와 죄가 이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아담과 하와
는 하나님과 화해와 평안 가운데서 지냈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와서 아담과 하와를 꾀어서 하나님
을 불순종하게 하자 죄가 들어오고 죄가 들어오자
이 세상에서 화해와 평화가 사라졌습니다. 죄가 들
어오자 마귀는 죄를 통해서 하나님과 불화 하게 만
들었습니다. 여러분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과 불화
하고 인간이 어떻게 잘 살겠습니까? 하나님께로부
터 쫓겨 나와서 하나님과 불화하고 하나님과 대적
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아담과 하와는 곧장 부부간
에 서로 싸웠었습니다. 아담은 아내에게 원망하고
아내는 뱀을 원망하고 부부간에 불화 하게 되었었
습니다. 그리고 형제간에 불화 하게 되었습니다. 그
들이 낳은 첫 아들 가인과 둘째 아들 아벨이 서로
싸워서 가인이 아벨을 쳐죽이는 비극이 생겼습니다.
이웃과 불화 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그 후예는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늘 인간은 서로 대결하고 싸
우고 죽이는 살육의 장이었습니다. 피가 강물같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와 마귀가 가져온
불화와 살육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참으로 화해와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오신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인 것
입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오셔서 여러분, 인간
과 하나님 사이에 화해와 평화를 가져오기 위하여
그는 십자가에 높이 매달렸었습니다. 인간들의 모
든 죄악을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시고 하나님을 대
적하여 지은 죄악을 대신 책임지고 십자가에서 형
벌을 받아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모든 죄를
다 청산하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
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케 하셨습니다. 오늘날 여러
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평을 가져오고 평화를
가져올 자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종교도 많고
철학도 많고 가르치는 자도 많지만은 하나님과 사
람 사이에 화해를 가져올 자는 우리 주 예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육을 쓰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고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인간의 죄악을 하
나님과 원수 된 그 장벽을 영원히 헐어버릴 자는
예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종교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철학
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와 철학이 하
나님과 우리를 화해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하나되게 만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
님과 화해를 가져오고 평화를 가져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고 우리가 하나님께 오니 비로소 이 세
상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힘이 생겨나게 된 것
입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며 불화를 가져
오고 파괴를 가져오는 마귀를 정복했습니다. 예수
님은 십자가에서 마귀와 싸워서 마귀의 모든 무장
을 해제하고 마귀의 모든 정사와 권세를 빼앗았습
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마귀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
님과 우리를 원수 되게 하고 사람과 사람이 원수
되게 하지만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보혈은
이 마귀를 멸하고 마귀의 권세를 빼앗고 그리고 사
람과 사람 사이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원수가 되
지 않도록 만드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평을 가져오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밖
에는 없습니다. 먼데 있는 우리가 예수의 피를 의
지해서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원수 된 자가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화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의 피 속에는 이 화해하게 하는 위대한 힘이 있습
니다. 하나님과 사람사이에도 화해케 했거든 이 피
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화해케 하는 놀라
운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를 노
래하고 예수의 피를 의지하고 예수의 피를 감사할
때 그리스도의 피는 오늘날도 놀라운 능력으로 하
나님과 인간사이 부부간 형제간 이웃 간 화해를 가
져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죄를
용서하고 불화케 하는 마귀를 쫓고 화평을 가져올
때 그 일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하는 일이요 하
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를 우리도 그 일을 하게 될
때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화해와 평화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만이 가져오는 것입니다. 마귀는 절대로 화해와 평
화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
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가는 곳마다 화해와 평화
를 가져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찬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덟 번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가 사는 세계는 두 가지 세계입니다. 죄의 세계이
고 또 의로움의 세계인 것입니다. 죄의 세계는 마
귀가 그 세계를 지배합니다. 그리고 죄의 세계는
마귀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게 만들거나 무관
심하게 만들고 오직 사람들은 물질만 바라보고 유
물론적 세계에 살고 허무주의 속에 살고 방종하며
살고 인본주의적인 자세로 사는 것이 바로 죄의 세
계인 것입니다. 이 죄의 세계는 하나님에 전혀 무
관심합니다. 죄의 세계는 그대로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처럼 불타서 사라질 것입
니다. 죄의 세계 속의 사람들은 하루살이와 같이
다 불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예수께서 2000년 전에 의의 세계
를 가져온 것입니다. 의의 세계는 회개하고 예수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은 백성들이 모여 사는 세계입
니다. 의의 세계는 예수님이 다스리는 세계요 하나
님을 인정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세계요 성령님을
모시고 절제하며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사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세계는 이 죄의 세
계에 사는 사람이 있고 의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죄의 세계를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이
있고 의의 세계를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
다. 마귀와 성령이 오늘날 끝임 없이 대결하는 세
계인 것입니다. 의의 세계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
이 회개해서 예수 믿고 구원받고 의의 세계에 들어
오게 하려고 하고 죄의 세계는 마귀가 그 사람들을
어찌하든지 한 사람이라도 더 유혹해서 타락시켜서
죄를 짓고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멸망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쉬지 않는 영적인 전쟁 속에 살
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 전쟁은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마귀와 죄와 불
신앙의 세계와 끝임 없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죄의 세계가 우리 속에 침투해 들어와
서 우리를 흔들기도 하고 우리가 또 이것을 쫓아내
고 죄의 세계에 들어가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건
져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끝임 없는
전쟁 가운데 있고 투쟁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이 죄
의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 의의 세계에 속한 사람들
을 핍박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의의
세계에 사람들은 죄의 세계에 사람들을 불쌍히 여
겨서 기도하지만 죄의 세계의 사람들은 의의 세계
의 사람들이 곁에 있으면 어두움이 빛을 견디지 못
하기 때문에 자기들의 죄악이 들어 나고 불의가 들
어 나므로 견디지 못해서 의의 세계의 사람들을 쫓
아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계는 죄와
의가 결코 타협이 되지 않습니다. 물과 기름 같이
같이 있어도 섞일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절로 18절에 "너희는 믿지 않
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
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
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
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
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
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여기에
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악의 세상과 마귀와 타
협해서 함께 손을 잡고 함께 뒤섞여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배가 바닷물 위에 두둥실 떠 있지만 뱃
속에 물이 들어오면 배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배는
바닷물 위에 있으나 물은 뱃속에 들어오지 않습니
다. 우리가 세상에 사나 세상은 우리 속에 들어오
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떠나서 살수
는 없지만 그러나 세상이 우리 속에 들어오지 않도
록 우리 속에 예수를 모시고 성령 충만하고 하나님
을 우리 삶의 내용으로 삼고 살게 될 때 우리는 세
상에 떠다니지 세상이 우리 속에 들어오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 때 타협하지 않을 때
핍박을 받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28절로 29절에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난 자가 성령을 따라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
의 자손 중에 육으로 난 이스마엘은 나중에 하나님
의 약속으로 난 성령으로 난 이삭을 핍박했었습니
다. 이처럼 오늘날도 이 세상에 육으로 사는 사람
이 예수 믿고 영으로 사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그것을 이상한 것으로 생
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육으로 사는 사람하고 영으
로 사는 사람은 인생관이 다르고 세계관이 다르고
내세관이 다릅니다. 존재가 다릅니다. 그런데 다르
니까 어떻게 똑같이 섞여 살겠습니까 같은 것은 같
은 것끼리 삽니다. 까마귀는 까마귀끼리 백로는 백
로끼리 삽니다. 백로와 까마귀가 섞이지 않는 것처
럼 육으로 사는 사람과 영으로 사는 사람이 같이
있어도 섞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육의 백성이 영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성경에 보면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는 그것이 천국백성 된 증거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백성이기 때문에 세상
이 핍박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9절로 3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
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
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
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그리스
도의 복음 때문에 부모 형제 처자 전토를 잃어버린
사람은 하나님께서 백 배나 이 땅에서 주되 핍박을
함께 받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
은 천당은 반드시 올라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러므로 마태복음 5장 11절과 12절에 있는 말씀
대로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
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
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
같이 핍박하였느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핍박을 당할 때 하늘에서는 상이 쌓이고 이 땅에서
는 핍박당한 자에게 성령을 더욱 부어주심으로 마
음에 더욱 기쁨이 더욱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성령 충만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기쁨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쁨인 것입니다. 마귀
는 슬픔과 미움과 우울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하
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그 우편에는 즐거움
이 넘치나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내 마
음에 계시고 성령이 충만하면 마음에 기쁨이 충만
하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이 식어
지고 예수님이 희미하게 되고 성령 충만이 사라지
면 마음이 슬퍼지고 우울해 지고 사는 것이 귀찮아
지고 그리고 부정적이 되고 미움이 꽉 들어차게 되
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즉시
로 주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굳
세게 모셔들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며 기도
해서 다시 그리스도가 뚜렷이 들어오시고 성령이
마음에 충만해지면 그와 함께 기쁨이 파도처럼 우
리 마음속에 가득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의 참으로 살면서 기쁨
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기쁨과
즐거움이 마음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
리 삶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기쁨을 잃어버리면
삶의 용기와 희망과 힘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
다. 이러므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을 때 마음의
기쁨이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핍박
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본문에 주님께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
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 때문에 핍박을 받는 자의
복을 음미해 보았습니다. 참으로 고귀한 축복입니
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매일매일 주께서
가르치신 마음가짐을 갖고 주님이 주시는 복을 누
릴 수 있도록 늘 노력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는 주님 앞에 나와서 이 한해를 살 때, 우리
마음에 반드시 복 받는 자세를 가져야만 하기 때문
에 그것을 배웠습니다. 우리 마음에 긍휼히 여기면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
나님이시여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마음이 깨끗하
면 하나님을 보게 되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여 이 세상에 살면서 핍박을 받게 되면 하늘나라가
우리 것이 되고 성령이 충만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기쁨도 충만하게 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
여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팔 복을 좇아서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며 살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
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