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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3월 1일 제목 : 보혈로 그린 자화상 성구 : 고후 5:16-17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보혈로 그린 자화상"이란 제 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지금으로부터 73년 전 1919년 기미년 3월 19일 우리 온 겨레가 일본 식민지 속박에서 자유와 해방과 독립 을 쟁취하기 위하여 비폭력적으로 독립만세 운동을 전국적 으로 일으킨 기념일입니다. 그날로부터 1945년 8월 15일 연 합군의 도움으로 해방을 얻은 날까지 우리 애국 선열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피 맺힌 대항을 국내외에서 전 개해 왔습니다. 우리 민족사에서 나라를 잃고 참으로 암담 하고 처절한 절망에서 자유와 독립을 얻기 위하여 전 민족 이 동시에 권리를 위하여 피로 한 맺힌 대한독립을 외치다 가 외경에 의하여 총에 맞고 칼에 찔리고 구타당하고 투옥 되고 죽임을 당한 수가 그 당시만 해도 2만 명이 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영원히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모든 비극은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정치 인들이 당쟁에 여념이 없고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사분 오 열되고 대원군은 쇄국 정치를 하여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 고 국력을 배양하는 일은 등한히 하고 국민들은 게으르고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 한 결과로 도둑을 불러들인 것입니 다. 집 단속을 잘하면 도적이 들어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삼일절을 맞이할 때마다 이 교훈을 뼈로 새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동시에 우리 인류 조 상 아담이 마귀의 꿰임에 빠져 타락하고 이 땅과 인류를 마귀의 노예로 내어주어 인간에게 절망을 안겨 주었으나 2000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들을 구원하신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성경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사람이 되었는지를 알아보고 자기가 그리는 자기 모습의 자화상을 완전히 정 립시켜야만 합니다. 인간은 모두다 자기가 자신을 보고 느 끼는 모습을 가슴에 품고 그 모습을 쫓아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삽니다. 자화상이 열등하면 열등의식에 잡히고 자 화상이 미운 모습이면 증오와 반항자가 되며 자화상의 모 습이 성공적이면 당당한 사람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의 보혈로 그리는 새 자화상, 새 모습 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 서 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쳐다보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사람이 되었는지를 알아봐야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말씀하기를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종교 를 믿는 것이 아니요 의식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형식 도 아니고 생명의 근본에서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새것이 되었으면 어떻게 새것이 되었는지 자기의 자화상을 분명히 정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로써 그린 나의 새로운 모습을 오늘 여러분은 함께 알아봐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십자가 밑에서 바라볼 때 그려지는 내 새로운 모 습은 용서와 의의 옷을 입은 모습인 것입니다. 죄인은 하나 님 앞에서 속사람이 벌거벗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 있다고 말하고 있습 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옷을 입지 않고 실오 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오늘 이 교회당에 와서 앉아서 예 배드리라고 한다면 여기에 나올 사람 없습니다. 하물며 벌 거벗고 우리가 대통령을 만나러 간다든지 높은 분을 만나 라고 하면 이것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안 하겠다고 할 것입 니다. 사람이 벌거벗는다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상태라고 말합니다. 영적 으로 벌거벗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십자 가의 보혈로 죄가 용서받고 주님은 십자가에서 의의 두루 마기를 우리에게 입혀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 으로 벌거벗지 않고 우리는 의로운 두루마기를 입게 됩니 다. 그러기 때문에 옷을 입었으니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부끄러움 없이 나아갑니다. 천사들 앞에 나가고 우리는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입은 자와 입지 않는 자 는 천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게시록 3장 18절에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 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 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피로 씻은 흰 두루마기를 선물로 받 아서 우리는 입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벌거벗 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 우리가 하나님을 만 나러 가게 되더라도 우리는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천국 을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들은 벌거벗고 있습 니다. 그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지위 명예가 높다고 할지라 도 하나님 앞에서는 벌거벗은 존재로서 그는 실오라기 하 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존재로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의 두루마기를 받아 입었으니 이 두루마기가 더러워지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죄를 짓지 않는 의 인은 없기 때문에 거짓말로 더러워지고 혹은 사기로 더러 워지고 혹은 범죄로 더러워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입은 두루마기를 빨아야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보혈로 회 개하므로 두루마기를 빨아서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 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 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새로운 모습이란 예수님의 피로 써 자기 마음속에 그린 자화상은 이제는 벌거벗은 자화상 이 아니라 의의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이요, 항상 의의 두 루마기를 보혈로 빨아서 희고 빛난 세마포가 되어서 우리 하나님 앞에 언제 서더라도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 사 랑 받는 존재로 자기의 모습을 마음속에 깊이 그려 놓아야 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십자가 앞에서 보혈로 그린 자화상은 보 혜사 성령과 함께한 모습인 것입니다. 죄인은 하나님께로부 터 떨어져 있고 마귀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자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 님을 멀리 떠나 외로운 존재가 되고 마귀의 종살이를 했습 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회개하고 구주로 믿으면 주님께서 우리를 보혈로 씻고 난 다음 우리 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항상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 란 말인데 우리가 그 말을 번역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 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하여 항상 곁에 계시는 분으로서 우리의 선생님이 되시고 변호사가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고 위로자가 되시며 능력을 주시는 자가 되고 거룩하게 하시 는 자가 되며 하나님을 깨닫게 하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자인 것입니다. 이 성령께서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아니하고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죄악 가운데 살 때는 인간은 외롭게 혼자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믿은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 만 바람같이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속에 계 셔서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의 생애 속에 이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 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십시오. 성령은 여러분을 도와주십 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경쟁사회에서 주님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백성이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있지 않고 남에게 꾸어주고 꾸지 않겠다는 것은 우리 에게 돕는 자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보 좌에 계시고 아들 예수님은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성령 보 혜사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과 함께 계시고 여러분 속에 와 서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은 고아가 아닌 성령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아의 모습을 분명히 그려 놓아 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외롭지 않습니다. 이제는 나 홀 로 인생을 걸어가지 않습니다. 열등의식이나 좌절감에 짓눌 러 살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속에 나는 못 한다. 나는 안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패배자다. 나는 성공하지 못한다. 나는 낙오자다. 이러한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열등의식을 깊이깊이 가지 고 있습니다. 열등의식을 가지고 패배적인 자아의식을 가지 고 있는 사람은 그가 무엇을 하든지 언제나 열등한 일을 하고 실패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할 때 가데 스바네아에 왔을 때 모두가 40일 동안 12명의 정탐꾼을 택 해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에 12명의 정탐꾼이 40일 동안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왔 는데 그 중에 열 명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가나안땅에 들어가면 성은 높고 골짜기는 깊고 그곳에 사는 사람은 네 피림 아낙 자손 대장부라 우리가 그들에게 비교해보니 우 리 스스로 보기에도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 자기의 자화상 이 메뚜기 새끼이니 메뚜기 새끼들이 무얼 하겠어요? 자기 가 자기를 보고 나는 메뚜기 새끼다. 적군들은 대장부다. 그러면 달아나는 길밖엔 없지요. 그러니 그 말을 들은 이스 라엘 백성들이 모두다 메뚜기 새끼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두다 비겁한 자가 되어서 대장을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 가자. 그러나 똑같이 정탐꾼으로 간 여호수아와 갈렙의 자 화상은 달랐습니다.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면 우리가 능히 들어가서 점령할 수 있다. 저들은 우리의 밥이 다. 이미 밥상으로 차려놓은 밥이다. 열 사람의 정탐꾼은 하나님 없이 인생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 마음속에 아주 열등의식으로 꽉 들어찬 메뚜기 같은 자화상을 가졌습니다 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함께 인생 을 살아가니 그 무서운 적군들도 밥상으로 보였습니다. 능 히 들어가 취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화상이 메뚜기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능히 들어가서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는 승리자의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나는 메뚜기도 못되고 귀뚜라미지요" 그러게 된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그 로써 절망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나는 메뚜기나 귀 뚜라미가 아닙니다. 우리 속에 보혜사 성령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내가 비록 사 막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 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러므로 여러분 보혜사가 함께 계시는 내 자아의 모습 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동남풍이 불어도 서북풍이 불어도 겁나지 않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겁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므로 나는 궁극적으로 승리하고 만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자화상을 바꾸십시오. 여러분 외로운 버림받은 인생의 열등한 자화상 을 벗어버리고 오늘 그리스도 앞에서 성령이 함께 계시는 자화상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다시 그려서 여러분의 가슴에 그려놓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얻는 자 화상은 치료받은 자기의 모습인 것입니다. 죄인으로 살 때 는 영은 죽었고 마음은 상처투성이고 몸은 병들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사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이사야 1장 2절에서 6절에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 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 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 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 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 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 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 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 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 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이것이 바로 죄인의 형상인 것입니다. 어느 한 곳에 상처가 없는 곳이 없습니 다. 누가 우리를 치료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힘으로 치료 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이렇게 하나님을 반역하고 상처투성이인 인류를 치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16절에서 17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면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사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 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을 바라보 십시오. 그 십자가에 못 박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그리스 도께서는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의 병을 짊어지고 가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잔뜩 쳐다보면 순식간에 내 연약함이 다 예수님께 옮겨지 고 내 병을 예수님이 다 담당해 버렸으니 이제는 난 예수 앞에서 담당할 연약이 없고 짊어질 병이 없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의 연약과 나의 병을 담당하고 짊어졌으니 내가 왜 또 짊어져야 됩니까? 우리는 예수 그 리스도 십자가 앞에서 나의 병든 모습을 다 훨훨 벗어 던 져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건강을 얻고 치료함 받은 새로 운 모습으로 자화상을 받아들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는 병든 내가 아닙니다. 영도 고침을 받고 마음도 고침을 받고 육체도 고침을 받고 가정도 생활도 치 료받은 나의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치료로 충만한 나 의 자화상을 십자가 앞에서 새로 그려야 합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나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건강으로 넘쳐서 할렐루 야 찬미하며 사는 자아의 모습을 가지고 내가 살아갈 때 그 자화상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건강과 생 명을 여러분에게 넘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네번째로, 우린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서 피로 그린 나의 자화상이 어떤 것인가를 다시 보아야 되겠습니다. 여 러분 죄인은 죄인으로 살 때는 저주하면서 살았습니다. 아 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에덴에서 쫓겨났을 때 성 경은 말하기를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너희는 이마에 땀을 내야 먹고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류는 그 때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저주의 가시채를 헤치며 살아왔 었습니다. 공산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국제주의 인간의 모 든 주의는 이 저주의 가시를 제하고 어떻게 하면 인간에게 충분히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있을 수 있는 곳을 줄 수 있 는가 그것을 찾는 정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인간주의 로써 몸부림쳐봤자 완전히 가시채를 없앨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에 저주를 제한 분이 나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 나님 아들이 모든 아담 이후 있는 저주를 당신이 그 가시 채로 온 몸을 감쌌습니다. 머리에 가시채를 쓰고 다시 쇠가 시에 찔리고 쇠창에 찔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가시의 모든 세력을 주님께서 제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 하였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 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 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 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하고 있 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바 라볼 때 우리의 온 몸을 칭칭 감고 있는 가시가 철렁철렁 떨어져 나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시채에서 벗어 나고 아브라함의 축복이 우리 위에 찬란한 태양처럼 비쳐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서 이제 다시 저주받은 자기의 모습을 그대로 걸머지고 다 녀서는 안됩니다. 저주받은 것은 옛날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벗어버리고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새로운 모습으로 마음속에 자화상을 그려야만 되는 것입니 다. 그리고 매일같이 그 자화상을 바라보고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복인이다. 그렇게 외치고 살아갈 수 있어야 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화상을 따라서 자기 운명이 결정 되는 것입니다. 동일한 것은 동일한 것을 끌어당깁니다. 여 러분 마음의 자화상이 아브라함의 축복으로 가득하면 아브 라함의 축복을 끌어당깁니다. 여러분 자화상에 저주가 가득 들어차면 일어서나 앉으나 낭패와 실패, 곤고와 절망을 끌 어당깁니다. 그곳으로 여러분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 간에 마음속에 자기가 자기를 보고 있는 모습이 어떠한 것 인가는 운명을 좌우하는 놀라운 힘이 그 속에 있는 것입니 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아브라함의 축복의 자화상을 가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섯째로, 우리는 십자가 앞에 서서 주를 바라볼 때 부활 의 주님과 함께 변화되는 미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 다. 죄인으로 살 때 모든 것이 죽음으로 종말 짓습니다. 세 상에 부귀영화 공명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죽어서 관속에 들어가서 흙 속에 파묻히고 나면 구더기가 몸을 먹어버리 고 그것을 절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인으로 사는 사람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자화상은 너무나 비참하기 때문에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생각 안 한다고 해서 죽음이 안 다가오나 요. 죽음이 다가옵니다. 늙는 길 막대로 치고 오는 백발 가 시로 막으려고 해서 됩니까?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 수를 믿고 난 다음에는 우리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왜냐하 면 예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다시 죽 음을 보지 않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도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화 되어서 부활의 새 생명을 얻는 자화상을 가질 수 있는 것 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에서 44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 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 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 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 이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 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약한 것을 벗어버리고 강한 자가 되 고 육을 벗어버리고 신령한 자가 되며 더러운 것을 벗어버 리고 영화로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을 몸, 영생 의 몸으로 변화되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 에서 우리를 위해서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사람은 죽음 으로 말미암아 종말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 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육체를 입고 사는 것입니다. 육체의 장막 집을 벗어 버렸을 때 부활한 몸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낙원으로 갈 것이냐 그렇 지 안으면 영원한 지옥의 불타는 곳으로 떨어질 것이냐. 이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는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 하는 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 일획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부활의 영광을 누리고 그리스도의 밖에 있는 사람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곳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 있을 동안에 운명의 십자가 밑에 서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십자가 피로 그린 새로운 자화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모습과 익숙해지고 이 모습과 일체가 되어 이 모습대로 생 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새로운 피조 물이 새 것이 되어 새로운 위대한 능력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옛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 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보라 이전 것 은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새 것이 되었습니다. 오늘 십자가 앞에서 새 것이 된 자기의 자화상을 피로 그려서 마음속에 그려놓고 이 자화상에 익숙해져서 그 자화상을 따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믿어서 그 자화상대로 위 대한 능력을 받고 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 다. - 기도 -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종교를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의식을 받아들인 것도 아니고 예수 그 리스도 안에서 함께 죽고 장사 지낸 바 되고 옛 사람을 벗 어버린 예수 안에서 새사람을 이루므로 운명이 달라져 버 리고 맙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완전히 운명이 달라져 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 예수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여 자기가 어떤 모습인가를 분명히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십자가의 피로 그린 자화상이 어떤 것인 가를 알고 그 자화상과 친숙하게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 래서 새로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살면서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 치게 얻는 승리적 삶을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 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