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3월 8일
제목 :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성구 : 창 3:1-10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
워하여 숨었나이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처음 지음을 받아 에덴의 낙원에
살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그들이 옷을 입고 있
었기 때문에 그들은 인간적인 옷을 입지 않아도 부
끄럽지 않았습니다.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
문에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을 해도 조금도 마음속
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자마자 거대한 변혁이 그들의
삶 속에 다가오고 말았습니다. 죄를 짓자마자 하나
님의 영광이 그들을 떠났고 그들은 즉시 벌거벗은
자신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온 몸이 벌거벗었
으므로 그들은 수치심에 몸을 떨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에덴에 오셔서 그들을 찾으셨을
때 그들은 나무 숲 속에 숨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벌거벗은 몸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
기 때문입니다. 수치와 공포심이 그들의 마음 속에
꽉 들어찼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들은 넓은 무화과
나무 잎으로 앞치마를 만들어 입었지만 햇빛이 강
렬하게 비췰 때 무화과나무 잎은 즉시 말라서 가루
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므로 그들은 그때
부터 수치와 공포심을 피할 수가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선 저들을 에덴에서 내보내시기 전에 처
음으로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가죽을
벗겨서 옷 만들어 아담에게 입히시고 하와에게도
가죽옷을 입히셨습니다. 이 사건은 오늘날 우리에
게 중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이 사건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
은 죄인은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옷을 입은 자와 옷을 벗은 자의 차이
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옷을 벗
었다면 그 수치심을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우
리는 벌거벗었기 때문에 마음에 불안과 공포가 가
득 찰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
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영혼이 하나님 앞에
벌거벗고 있는 것입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
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혼이 하나님 앞
에 설 때 수치로 몸서리치고 불안과 공포에 떨 것
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죄 사함을 받을 때 주님께서 제일 먼저 하시는 것
이 우리에게 입히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인
간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과 하나님이 인간을 보시
는 관점은 틀리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17절로 18절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유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네게 권하
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유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
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라고 말씀하
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오늘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유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라고 말합니다. 더구나 인본주의
사상이 투철한 교육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고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말하며 인간은
그 이성과 과학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자다, 물질적으로 부
자고 우리 생활 면에서도 옛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자다.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스스로 자만하
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보는 관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을 볼 때는
하나님은 인간을 그렇게 영광스럽게 보지 않으십니
다. 하나님은 인간을 보시고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
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존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
다.
왜 곤고합니까? 하나님께 내쫓긴 인생은 버림받
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아무리 지식이 많
고 부귀, 영화, 공명 속에 산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버림받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
구를 막론하고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
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우주 공간 가
운데서 버림받은 존재입니다. 방황하는 별들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존귀하다 하더라도 그가 길을 잃어
버리고 우주 가운데 잃어버린 존재로서 한 순간에
태어나서 잠시동안 살다가 순식간에 사라져서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는 이런 존재는 하나님 보시기에
곤고한 존재인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인간을 보실 때 가련하다고 하
셨습니다. 왜 가련합니까?
인간은 죄책감과 절망에 부딪힌 존재입니다. 그 죄
책감과 절망을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허무와 무의미의 벽에 부딪힌 것입니다. 아
무리 거대한 사업을 일으키고 위대한 일을 이루었
다고 하더라도 종국적으로 그것이 무엇입니까?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그 허무와 무의미
는 인간의 운명적인 절망인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은 결국 죽음과 무로 돌아갑니다. 죽음이란 벽에
부딪혀 그것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
음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
은 거기서 백골이 진토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죽
음과 무에 부딪힌 인간이 아무리 존귀하다 하더라
고 하나님보시기에 멸망하는 짐승과 무엇이 다릅니
까? 가련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을 보실 때 가난한 존재로
보십니다. 일시적인 것 이외에 영원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잘입고 잘 살고 잘 먹는다고 해도
그것이 얼마나 오래 갑니까? 영원한 보배를 가지고
있습니까? 더구나 오늘날 물질만능주의, 쾌락만능
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인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
에 빠져서 존귀한 영혼의 보배인 믿음, 소망, 사랑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더구나 천국의
영원한 생명 같은 것은 없습니다. 가지고 있다하나
물거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 그것이 무로 돌아
갈지 모르는 가난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을 보실 때 눈이 멀었다 하
십니다. 영적 세계는 보지 못하고 물질적 세계만
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모두다 벌레의 눈만 가지
고 있습니다. 벌레는 땅을 기며 꿈틀거리며 흙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인간은 새의 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높이 떠서 먼 미래를 바라보는 창공에
떠서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영적인 눈이 없습니
다. 그러므로 인간은 눈을 떠서 바라본다 하더라도
물질적인 썩어질 것만 보고 썩지 아니할 영원한 것
을 보지 못하니 하나님은 가련한 장님으로 볼 수밖
에 없는 것입니다. 너의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 있
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
화는 풀의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인간은 더 비극적으로 벌거벗었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벌거벗었습니다. 사람이 육
신의 장막을 벗을 때 하나님 앞에 벌거벗고 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벌거벗은 몸으로 교회도 올
수 없는데 하물며, 만주의 주, 만 왕의 왕, 의의 근
원 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영적으로 벌거벗고
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벌거벗었다면 불안과 공포로 자기 자발적으로 하나
님을 떠나 영원한 지옥으로 달음질처 가고 말 것
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비극적인 절망은 벌거벗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런 상황가운데에 하나님 없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발버둥을 쳐 왔습니다. 아담
이 숲에 숨은 것처럼 인간은 무신론의 숲을 만들어
자기 주위를 두르고 인본주의의 숲 속에 숨어 있으
며 이성 및 과학만능주의의 숲 속에 들어가 있고
물질만능주의의 숲 속에 절망적인 자신을 숨기고
'이제 나는 숨었다, 이제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
는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눈에 뵈지 않는다.'고 스
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이 무화과나무
잎으로 앞치마를 해 입은 것처럼 인간은 종교적인
무화과나무 잎을 만들어 여러 가지 종교로서 앞치
마를 해 입습니다. 인간이 만든 윤리와 도덕의 앞
치마를 만들어 입고 스스로를 감추려고 애쓰고 있
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자기 속임수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 앞
에 자신을 감출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무숲
속에 있는 아담을 부르셨습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아담이 어디 있는
지 몰라서 부르셨겠습니까? 속임수를 쓰지 말고 나
와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솔직히 무릎을 꿇으라
고 하나님께서 청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20세기
의 아담아, 어디 있느냐? 그런 인간적인 쓸데없는
속임수에 자신을 숨겨놓고 안전하다 생각하지 말라
심판이 다가오기 전에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들어 오라."라고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하나님
을 피해 도망치려해도 사람은 하나님을 피해 도망
칠 수 없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것이요, 땅이 하
나님의 것이요 시간과 공간을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하나님이 만드신 공기로 숨쉬고 하나님이 만드신
물을 마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둘
러 싸여 있습니다. 아무리 인간적인 숲을 만들어
그 숲에 있다 하더라도 그 숲 자체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인생이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 무관심하고 하나님을 없는 것
처럼 살고있는 사람도 영원히 하나님께 무관심하고
도피하여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결
국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도 시간의 흐름을 막
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종국적으로 자신이 이 세
상을 떠나야 할 시간을 연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
님의 심판은 시시각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하나님의 전능의 손에서
피하고 숨을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제가 목회를 시작한 후 35년 동안에 수천,
수만의 우리 성도들이 저의 손을 통해 천국에 갔습
니다. 그들도 이 교회에 와서 찬송을 부르고 저와
함께 말씀을 읽고 듣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마치
영원히 이 세상에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지금
도 최자실 목사님이 여기서 '조목사, 잘있어?'하고
나오실 것 같습니다. 그 분과 저는 30년이 가깝도
록 함께 일을 했습니다. 둘이 영원히 함께 살 것처
럼 천막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마니를 들고 직접 심
방을 다니곤 했는데, 제 마음속에는 바로 어제 같
은데 벌써 그 어른은 가버리고 저는 여전히 여기
있습니다. 다 요단강 건너편에 가버리고 마는 것입
니다.
행인과 나그네의 길을 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
님의 낯을 피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교만하
게 하나님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너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하고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둘째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것은 하나님
은 입히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벌거벗고 있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스스
로가 배반하여 우리는 벌거벗었지만 하나님은 우리
를 입히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
서 나올 때 짐승을 잡아 입히신 것처럼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그의 의의 옷
을 벗겨 우리에게 입히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
덴에서 짐승을 잡아 가죽을 벗기신 것은 예수 그리
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그의 의의 옷으로 우리에
게 장차 입힐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계시록 3장 18절에 이와 같이
권면하고 계신 것입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
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케 하고 흰옷을 사
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우리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인간의 지식이나 과학
이나 인간적인 종교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
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으리라"라고 하신 것처럼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악과 질병, 저
주와 절망과 죽음을 한 몸에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하나님 앞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셔서 우리
를 값 주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만이 우리
인생의 해답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
나 우리에게 문제의 해답이 없습니다. 금이나 은이
나 보석이나 인간의 지식은 문제의 해답이 되지 않
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기를 불
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케 하라 예수님께서 십자
가에 못 박히신 것은 불같은 시험을 당한 것입니다.
그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불같은 시험을 당하여 여
러분과 나의 죄악을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가 고통
의 극한에서는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몸부림을 치셨습니다. 불같은
시련을 통하여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금 같은 믿음
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죄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앞
에 나아갈 수가 있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되
었으며 우리의 미래는 소망이 넘치게 되고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고 천국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쉽게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보배로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고귀한 피로 이루
어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케 하라. 우리는 돈이 없고 살만한 능력
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내가 볼 때 너
희는 벌거벗었다. 그와 같은 상황으로는 하나님 앞
에 나설 수 없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
그러나 너희는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내가 너희를 입히기 위해서 십
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죄악을 다 청산하고
의의 옷을 만들어 너희에게 주었다. 믿음으로 말미
암아 내게 와서 흰옷을 사서 입어라.
입은 자와 벌거벗은 자 사이엔 현격한 차이가 있습
니다. 여러분이 옷을 입었기 때문에 교회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벗었으면 못나옵니다. 우리가 입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벌거벗은 죄인
들은 스스로 지옥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그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내고 그리스
도의 의로움을 우리에게 입히시고 우리는 흰 세마
포 옷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지고 우리의 속 사람
이 우리의 육신 속에서 나올 때 예수를 믿은 사람
은 순식간에 아름다운 나비처럼 찬란한 세마포 옷
을 입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옷은 주님께서 입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가
없는 사람은 그가 몸 밖에 나올 때, 가장 비참한
수치로 꽉 들어찬 벌거벗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
입니다.
성경은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고 하
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성령을 받으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면 비로소 우리가 하
나님을 알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성령을 깨닫게
되고 성경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안약은 성
령이 오셔서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혀주는 것을 말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탕
자가 아버지를 떠나서 먼 나라가서 허랑 방탕하다
기근을 만나 완전히 거지가 되었습니다. 돼지 속으
로 들어가 돼지를 치고 주염 열매를 먹으려 해도
그것이 없었습니다. 마음도 병들고 버림받은 존재
로서 올 데 갈데 없어 그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옵
니다. 다시는 안 돌아오겠다고 떠난 탕자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생이 하나님
께로 돌아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
니겠습니까? 종국에 그가 온 몸이 병들고 처참하게
되고 벌거벗어서 아버지께 돌아 올 때 아버지께서
는 그 아들이 아직도 거리가 먼데 그 아들인 줄 알
고 뛰어나가 그 아들을 품에 안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제일 먼저 종들에게 "너희는 가서 제일
좋은 옷을 입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버지가
벌거벗은 아들에게 제일 먼저 놓은 옷으로 입히시
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여러
분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제일 좋은 옷, 예수 그리
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짠 옷을 입히는 것이 아버지
의 역사인 것입니다. 제일 좋은 옷을 입혀라. 그리
고 난 후에는 그의 손에 가락지를 끼웠습니다. 옛
날의 가락지에는 가족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것
은 이제 우리 가족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의 흰옷을 입으면 성령의
가락지를 끼워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
에 역사 하셔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
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친자녀가 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권속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발에 신을 신키
라" 맨발로 가시밭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고
생과 저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발에 신을 신키라
는 것은 다시 저주를 받지 않게 하라, 고생을 면케
하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신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먹고 즐기자고 하시
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우
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
을 얻되 넘치게 얻는 풍성한 삶을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살찐 송아지는 하나님은 잡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기쁨과 평안의 살찐 송아지, 의와 축복의
살찐 송아지 속에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잡아 하나님은 연회를 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벌거벗은 수치를
면하고 입고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입은 자로 살려면 하나님께로 의
의 옷을 받아 입었으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예
배드리고 기도 드리고 찬미하는 일을 우선으로 해
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못
나갑니다. 모두 벌거벗어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숨
어버렸는데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갑니까?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다 흰옷을 입
고 있는 것입니다. 의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우리
는 하나님 앞에 의의 옷을 받아 입었으므로 이제는
하나님 앞에 나가 예배라고 찬미하고 기도하는 일
을 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시고
구원하신 것은 우리와 함께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원하십니
다. 천사로 만족하지 못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
리를 지으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께서는 여러분과 매일매일 교제하기를 원하시기 때
문에 입은 자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가 예배드리
고 기도하고 찬미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입은 자들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벗은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합니다. 벗은 그대
로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서면 버림을 받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그리스도 앞에 나와
죄 사함을 받고 옷 입힘을 받으시오."라고 증거 해
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옷을 입은 자가 벗은 자
를 향해서 회개하고 예수로 옷을 입으라고 가르쳐
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세례 받은 자는 그리
스도 예수로 옷을 입힘 받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온 힘을 동원해서 영적으로 벌거벗고 사는
사람들, 영적으로 하나님을 피해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그리스도로 믿고, 옷 입고, 돌아
오기를 간청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정의가 없는 곳에서 정의로운
삶을 살고 거짓이 꽉 들어찬 곳에서 진실 된 삶을
사라야 하고 게으른 곳에서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합
니다. 더러움이 꽉 들찬 곳에서 옷 입은 자로서 거
룩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미움이 들
어찬 곳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사
랑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요, 온유와 겸손으로
옷 입고 살아야 할 것이요,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
이 주시는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를 지키면서 사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말로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
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
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필
요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국회의원, 대통령도 하
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하자는 이유가 그 마음
속에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정
치인과 대통령이 정의로운 양심이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는 무너집니다. 정의가
사라진 국가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정의의 토대 위
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마음속에 정의를 실천할 자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
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을 전적으로 애써야 합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
가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세
운 구원성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가 현재 눈에
보이는 천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을 합쳐 교회를 왕성하게 하고
더 세우고 하늘나라가 교회를 통해 나타나도록 전
력을 기울여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은 현세와 내세에 벌거벗은
삶입니다. 돈과 지위, 명예와 부를 다 가졌다 해도
그것은 형식일 뿐 참된 믿음, 소망, 살, 의, 평안,
기쁨을 입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내세
는 또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용서받은 의의 옷
을 입지 않고 벌거벗은 몸으로 수치와 공포로 몸을
떨며 하나님을 피하여 영원한 어둠으로 피할 수밖
에 없는 것이 구원받지 못한 자의 미래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가는 곳마다 '회개하라, 예수님께
서 찾으신다. 그 보배로운 피를 믿고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의로운 옷을 입고 벌거벗은 자의 수치를
면하자.'라고 우리는 외쳐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찾고 계십니다. "아담
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여 나는
벌거벗었습니다. 나를 입혀주시옵소서. 예수 십자가
앞에 나옵니다. 나를 용서해 주시고 나를 입혀주시
옵소서. 그리고 영원한 운명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
옵소서.' 그렇게 나오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주 예
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 아버
지여 그 크신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
습니다. 우리의 조상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
께 등을 돌리고 벌거벗은 수치를 알고 나온 이후로
인류는 이 벌거벗은 수치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의가 없고 정직이 없
습니다. 성실이 없고 거룩함이 없습니다. 용서도 사
랑도 온유도 겸손도, 분수를 따라 사는 삶도 없습
니다. 벌거벗은 인생들입니다. 하나님이여 하늘나라
의 영광으로 옷 입혀 주시옵소서. 예수 십자가 앞
에 나와 모든 그 많은 죄를 용서받고 의의 옷을 받
아 입고 하나님 앞에 기쁘게 예배드리며 살다가 입
은 자로서 당당하게 부끄럼 없이 두려움 없이 천국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
옵소서. 사람은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하셨는데 아버지, 깨닫지 못하고 짐
승처럼 멸망당하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게 도와주옵
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
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