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6월 14일
제 목 : 하나님의 평강을 갖기 위하여
성 구 : 빌 4:4-7

오늘 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평강을 갖기 위하여"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부귀공명을 다 얻었다 하더라도 마음에
평화가 없으면 결코 행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 속
에 불안, 공포, 염려, 초조, 좌절, 미움, 절망이 가득 찬 이
상 삶의 기쁨이나 즐거움, 행복은 결코 얻을 수가 없습니
다. 그와 반대로 비록 부귀영화 공명이 없다 하더라도, 삶
의 환경이 초라하더라도 마음에 평강이 가득하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마음속에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평강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돈을
주고 살 수가 없습니다. 권력으로 소유할 수도 없습니다.
마음의 평강이라는 것은 공부를 많이 하고 지식이 많다고
해서 얻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의 깊은 평강은 예수 그리
스도를 믿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얻는데 바울 선생은 하
나님 앞에 나아와서 우리가 마음속에 평강을 얻을 수 있는
그 길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길을 여러
분께서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
화가 우리 마음에 가득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행복을 누
리고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을 얻을 수 있는 제일 첫째 길은 '주안에
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
고달픈 생존경쟁 속에서 기쁨보다는 좌절과 염려, 근심과
슬픔이 더 많습니다. 세상에서 항상 기뻐할 처지가 되어있
지 못합니다. 종종 기쁨이 다가오지만 순식간에 사라지고
더 많은 날 동안 염려와 근심과 불안과 초조가 우리 마음
을 짓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세상에서
기뻐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너희 환경에 따라서 기뻐
하라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과 환경을 떠나서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안에 들어오면 차별
없이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주시고 함
께 해주시고 우리 복의 근원이 되어주시고 영생의 보증이
되어주시므로 이러한 것들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성경에 기쁨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하
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그 우편에는 즐거움이 넘치
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안에 들어가서
기뻐해야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노아 홍수 때 온 천지가
홍수로 뒤덮였을 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어 들
어가라고 했는데 방주는 3층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1층에
는 음식물을 저장하고 2층에는 짐승들이 거하고 3층에는
노아와 그 여덟 식구가 거했는데 그 방주는 바깥에 창문이
없고 오직 천장에 한 곳에만 창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비가 오기 전에 방주에 들어갔기 때문에 노아는 비
도 보지 못했고 창일한 홍수도 보지 못했습니다. 산꼭대기
까지 물이 차 있는 것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창문이 없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안 보입니다. 오직 노아가 본 것은 밤이
나 낮이나 그 하늘 천장에 뚫린 창문을 통해서 하나님만
바라볼 따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와 그 여덟 식구는
실제로 홍수를 구경한 적이 없습니다. 홍수 전에 방주에
들어갔고 홍수가 끝나고 난 다음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을까요? 만일 노아와 그 여덟 식구가
비가 쏟아진 것을 보았다고 한다면 점점 물이 불어서 천하
가 물로 덮이고 산꼭대기까지 물에 덮이는 것을 보았으면
놀라서 기절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살아남지 못했
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바라보지 못하
게 하셨습니다. 오직 천장에 있는 창문을 통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찬미하고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기뻐하
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한가지입니다. 우리가 주위 환경만 자꾸 바라
본다면 환경으로 말미암아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많은 시간 하늘로 열
린 창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
보고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마음에 기뻐하기로 결심하면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넘치고 그를 통해서 평화가 다가오
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기뻐할 생각이 나거든 기뻐하라고 말하
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고 '명령'했습니다. 아무리 안 기쁘더라도 기뻐하라고 명령
한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하나님께서 기쁨을 주시려고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수돗물이 없었습
니다. 그러므로 수도 파이프를 박고 펌프로 퍼올리는데 그
펌프 핸들을 잡고 아무리 눌러봤자 물 한 방울 나오지 않
아요. 그러나 바가지에 물을 퍼서 그 펌프에 두서너 바가
지 잔뜩 부어넣고 펌프를 막 누르기 시작하면 얼마 있지
않아서 푹푹하고 생수가 솟구쳐 올라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쁨도 한가지입니다. 기뻐할 이유가 없습니다.
가만히 기다려서는 기쁨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
리스도 안에서 우리 아버지의 용서해주심과 품어주심과 사
랑해주심과 은혜주심과 복주심과 영생주심을 생각하고 억
지로 기뻐합니다. 아 기쁘다! 아 감사하다! 아 하나님 감사
합니다! 아 하나님 기쁩니다! 그렇게 억지로 기뻐하면 그
다음부터 기쁨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강제로 기쁨이 없는 곳에 기뻐하면 그 다음 하나님
이 기쁨을 주셔서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
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지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
다. 이렇게 강제로 기뻐해서 마음에 기쁨이 있을 때에 평
화가 그 마음속에 깃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기쁨이 없고
슬픔이 꽉 들어차고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사람에게 평화
가 깃들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 말
씀으로 말씀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억지로라도 기뻐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평화가
마음속에 깃들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에 관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기주의적 마음을 가지면 평화가
들어오지 못합니다. 이기주의적인 사람은 자기라는 색안경
을 끼고 사는 사람으로서 자기에게 맞지 않는 모든 사람은
다 배척하고 다 의심하고 미워하고 이렇게 함으로 마음에
깊은 갈등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이기주의적인 마음, 이것은 자기도 고통스럽고 남에게도
고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인생을 살면
서 나 혼자 살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과 함께 삽니다. 나
좋은대로만 살 수 없고 내 기호대로만 살 수가 없어요. 다
른 사람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이기주의란 안경을 벗어
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만 생각하지 말고 남도 생각
하는 관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 부부가 가정 안에 같이 살아도 남편은 자기만 생각하
면 가정에서 같이 살 수 없습니다. 또 부인은 자기 스스로
만 생각하고 자기란 안경만 끼고 산다면 함께 살 수 없습
니다. 끝없는 갈등과 대결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삽니다. 그러므로 이기주의라는 안경을 벗어 던져버리고
함께 우리가 살아가는 관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또한 탐욕을 가진 마음은 결코 평안이 깃들 수가 없어
요. 탐욕이라는 것은 자기의 분수를 잊어버리고 도에 넘치
는 욕심을 가지고 이 욕심을 달성하려고 시기하고 질투하
고 분노하고 헐뜯으며 또 삐뚤어진 불법적인 행위를 해서
결국에는 사망의 올무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욕심이 마음속에 잉태하면 반드시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
면 사망을 낳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얼마나
행복하고 좋았습니까? 그런데 그만 마귀가 그 마음속에 욕
심을 넣어줬어요. 너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바람
에 그만 탐욕이 들어왔습니다. 사람으로 살았더라면 그렇
게 행복할 수 있는데 그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다가 그 탐
욕 때문에 그만 비뚤어진 길로 행하여서 범죄하고 쫓겨나
가게 되고 모든 행복과 기쁨을 다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
다. 사람은 자기의 분수대로 살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이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
각하며 살아야지 자기의 분수를 뛰어넘어 욕심으로 무슨
일을 하면 그 다음부터 불안과 공포는 그치지 않는 것입니
다.
그리고 또 교만한 마음을 버려야 평화가 깃드는 것입니
다. 마음에 자기를 과대평가하여 남을 무시하고 자기 주장
만 하는 마음을 가진 교만한 사람은 마음에 평화가 깃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만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대적
합니다. 모든 사람이 시기하고 미워합니다. 그런 갈등 속에
서 마음에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마음에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한 것입니다. 관용은 어떠한 마음일
까요? 너그러운 마음입니다. 각박하고 몰인정하고 흉악한
마음을 가진 것이 오늘날 세대입니다. 인심이 얼마나 각박
합니까? 얼마나 사람들은 몰인정한지요. 그리고 포악한 마
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명을 벌레처럼 죽
이고 사람을 늑탈하고 사람을 폭행합니다. 이러한 마음속
에 평화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습니
다. 우리는 마음속에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큰마음을 가
지고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관용하는 마음이란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눈은 눈으로 갚
고 이는 이로 갚고 주먹은 주먹으로 갚고 너 죽고 나 죽고
해보자, 이러한 마음속에는 평화가 깃들 수가 없습니다. 우
리는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고 겉옷을 달라 하면 속
옷을 주고 오리를 가자 하면 십리를 가는 것이 굉장한 손
해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손해가 나는 것
이 아닙니다. 그러한 용서하는 마음이 관용하는 마음이요,
그러한 마음과 생활 속에 평화가 깃들어 오는 것입니다.
차라리 뺨 한 대 맞고 편한 것이 좋고 별 가치 없는 속옷
이나 겉옷 한 벌 주고 편안한 것이 좋고 오리를 가자는데
십리 좀 따라가 주고 편안한 것이 좋습니다. 이 세상에 분
쟁보다 우리의 마음속에 고통과 괴로움을 가져다주는 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용서하는 마음이 바로 관용하는 마음
인 것입니다.
그 다음 후덕한 마음이 관용하는 마음입니다. 이해심이
얕고 좁은 마음은 절대로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
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하고 자기 고집만
부리면 도저히 평화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대
총같이 좁아서 다른 사람들을 그 속에 용해할 수 없는 이
런 마음, 이러한 마음은 평화를 가질 수 없습니다. 마음이
후덕하여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동정하고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는 이러한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겸허한 마음이 관용하는 마음입니다. 자기를 낮추어
서 낮은 사람도 중간 사람도 높은 사람도 다 거리낌없이
수용할 수 있는 겸허한 마음, 이러한 마음이 관용하는 마
음인 것입니다. 성경은 마음에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이 관용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용하
는 마음에서 너그럽고 용서하고 후덕하고 겸허한 마음을
가지면 거기에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 수가 있다는 것입니
다. 평화란 아무 곳에나 깃드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나 귀
한 것이 평안이기 때문에 그 평안은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준비를 한 마음 속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의 마음속에 거하기 위해
서는 주께서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이름은 야웨 샬롬입니다. 하나님은 평안이
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
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가까이 계시죠. 그런데 우리가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기를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주님은 너희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에 있겠노라고 말
씀하셨습니다. 오늘 여기에 수만 명이 모였으니 예수님이
이 자리에 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
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공기가 우리와 같이 있
으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공기가 우리 속에 들어와
있으나 우리가 공기를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
은 우리와 같이 계시나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시나 우리가 손으로 잡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와 같이 계시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결
정적으로 주님께서 우리와 가까이 계신 것을 여러분이 느
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해야 됩니다. 말씀
이 예수님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에 거
하십니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
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
씀을 등한히 하면 예수와 멀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늘
읽고 듣고 하면 예수님이 말씀을 통해서 나와 같이 계시는
것을 절실히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내
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
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생활에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할 때 성령의 은혜 속에서 예수
님이 24시간 우리 속에 깊숙이 같이 계신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 안에서 같이 계시는 주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란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세상적인 이
야기는 세상 사람들과의 대화인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아
무리 이야기 해봤자 하나님과 대화가 안되면 안됩니다. 예
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리 호수를 지나가는데 제자들
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기 바빠서 그만 예수님과 얘기를
안 했습니다. 예수님은 혼자 멍하니 앉아 계시다가 심심하
니까 그만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갈릴리 호
수에 바람이 불어 풍파가 치매 배가 물이 가득하여 가라앉
게 되었습니다. 그때에야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들 힘으
로 도저히 구제 받을 수 없는 것을 알자 배 가운데에 예수
님이 계신 것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 일으킨 것
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늘 같이 계셔도 예수님과 말 한
마디 안 나누므로 예수님께서는 주무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의 생애 속에 예수님이 와계신데 기도를
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끊어지고
예수님을 주무시게 만들 때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
이 반드시 거리가 가까이 있다고 서로 친밀해지는 것은 아
닙니다. 오늘날은 부부가 같이 몸을 서로 맞대고 살아도
대화가 부족해서 서로 알지 못하고 마음이 갈라져서 싸우
고 이혼한 사람이 많습니다. 부모자식간에도 대화가 없으
면 남남이 되는 것입니다. 한 솥의 밥을 먹으면서도 남남
입니다. 이와같이 주님이 우리와 항상 같이 계셔도 기도하
지 아니하면 주와 대화가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가까이 계
신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촉구합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되었든 하루에 최소한도 1시간 이상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
다. 아침에 기도하든지 저녁에 기도하든지 점심때 기도하
든지 하루에 한시간 이상 주님께 기도하면 주께서 여러분
에게 가까이 계신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신 것을 알면 마음속에 평안이 다가옵니
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신 예수님이 같이 계
시므로 주님께 의지하고 주님께 부탁하고 주님과 함께 하
면 마음에 평안이 넘칩니다.
또한 찬양 중에 주님이 계십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야웨여 야웨는 거룩하시나이다라고 말했
습니다. 우리가 찬송을 많이 부르면 찬송은 하나님이 앉으
시는 의자를 만들어 놓습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보좌를 만
듭니다. 이러므로 찬송을 많이 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그
속에 같이 계신 것을 절실히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른 종교보다 탁월한 것은 다른 종교
에는 찬송이 없어도 우리는 끊임없이 찬송이 있습니다. 이
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기 때문인 것
입니다. 이렇게 해서 주님께서 우리와 가까이 계신다는 이
4차원의 느낌, 주님께서 눈에 안 보이고 귀에 말이 안 들
리고 손으로 잡을 수 없어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마음속에 평강이 깃들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의 마음속에 평화가 깃들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고 살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 사는 것이 다 염려 근심입니다. 개인
문제, 가정 문제, 생활 문제, 자녀 문제, 사업 문제가 다가
와서 안개와 구름 같이 마음을 덮고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
오는데 이 염려와 근심을 하지 말라니 어떻게 된 것입니
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대신 염려와 근심을 맡아주기 때
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네가 염려한다고 문제가 해결
이 되느냐? 그게 안 되기 때문에 염려와 근심을 다 주께
맡겨버려라. 그리하면 저가 돌보시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염려를 하나님께서 맡아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
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수고
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땀을 뻘뻘 흘리고 고통을 당하
고 있는 사람보고 쉬어라 쉬어라,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
짐을 대신 옮겨주고 맡아주면 그는 짐에서 벗어나서 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그 말인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해주겠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기도와 간구로 우리의 모든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주님께 아뢰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염려와 근심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
가 걸머지고 바둥바둥하지 말고 기도로써 주님께 아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염려함으로 마음에 스트레스만 당하지
아무런 유익이 없고 염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6장 27절에 "너희 중에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 아무리 염려한다고 해서 키가 커지
는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기적이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오직 마음이 염
려에 눌릴 때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기도해서 하나님께 맡
기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
다. 우리가 염려가 올 때 일반적인 기도를 해서 염려가 사
라지면 좋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기도로 안되면 간구해
야 됩니다. 간구는 간절히 기도하는 것으로 철야하고 혹은
금식하면서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 염려와 근심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평화가 올 때
까지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은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기도하며 마음에 평화가 임할 때까
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거운 짐을 주께 다 맡겨
버리면 평화가 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짐을 안 맡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맡기
지를 않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전부 짐을 자기가 다 끌어
안고서 기도만 하면서 하나님께 맡기지를 않습니다. 그러
나 하나님께 철야하고 금식하고 간절히 부르짖고 기도하게
되면 하나씩 놓게 되는 것입니다. 놓아야 하나님이 책임을
져주죠. 내가 갖고 있으면 안됩니다. 놓아야 됩니다. 오늘
날 사람들은 기도는 많이 하면서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 중
대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는 너희 짐을 야웨께 맡겨버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
다.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자기가 살겠다고 버둥거릴 때
들어가면 영락없이 같이 빠져죽습니다. 요새 신문에 보면
동생이 물에 빠진 것을 형이 건지려고 들어갔다가 같이 죽
고 그 다음에 어머니가 건지려다가 같이 죽었다는 말 종종
나옵니다. 버둥거리는 사람에게 들어가면 잡혀서 같이 죽
습니다.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버둥대는 때는 하나
님이 절대로 우리의 문제를 맡으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여
주님 뜻대로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 내어맡기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 버둥대지 아니할 때 주님은 우리 마음속에 평
화를 주시고 문제를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
리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
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주
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기도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사는 사람
인 것입니다. 기도로써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사람인 것
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
고 사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 믿
는 사람들이 기도를 사용하지 아니하면 그는 믿음을 이해
하지 못한 사람인 것입니다. 기도는 세상 사람들은 하지
못합니다. 기도는 세상 사람들은 할 줄도 모릅니다. 기도는
예수 이름으로 세상 사람들이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
를 믿고 그 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이 예수 이름으
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짐을 맡아주시고 우리의 염
려와 근심을 없애주시고 하나님은 친히 우리를 위해 일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사를 베풀어주
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은 기도를 사용해야 됩니다. 이 세상의
공기로 숨쉬고 물을 마시고 우리가 햇빛을 받아들이고 양
식을 먹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기
도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망하지
요. 기도하는 사람이 좌절이나 절망할 수 없습니다. 왜? 하
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꼭 우리가 생
각하는 대로만은 안하시지요.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을 다 아시므로 하나
님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자꾸 따라다니면서 왜 이렇게 합니까? 왜 저
렇게 합니까? 왜 이 길로 갑니까? 이렇게 물으면 하나님이
귀찮아서 못 견딥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
리는 양인데 기도로 맡기면 하나님이 알아서 풀밭으로 이
끌어가고 쉴만한 물가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일단 하나
님께 맡겼으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따라가야지 자꾸만 간섭하고 왜 이렇게
합니까? 왜 저렇게 합니까? 왜 이 길로 갑니까? 왜 저 길
로 갑니까?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이끌어서 하나님 보시기
에 최선의 길로 문제를 해결하시고 승리를 가져다주시는
것입니다. 이래서 마음의 평강은 우연히 다가오는 것은 아
닙니다. 미술가가 그림을 그리듯 음악가가 악보를 오선지
에 그리듯 평강을 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신 평강의 원리를 실천할
때 참으로 어떤 삶의 폭풍이나 풍랑도 잠잠하게 하는 평강
을 마음속에 간직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평안을 얻는 방법으로 첫째로 너희
는 주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
했습니다. 둘째는 너희 관용하는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알
게 하라. 셋째는 주께서 가까우신 것을 알라. 넷째는 너희
모든 구할 것을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
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복잡하고 요란한 세상에 많은 슬픔이 있고 많은 오해
가 있으며 많은 대결이 있고 상처가 있는 이 곳에 마음속
의 평화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습니까? 평화를 얻지 못하
면 삶의 모든 의미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는 것
이 귀찮아지고 고통스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
수 믿는 사람은 세상 사람이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그곳
에서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평화는 하나
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평화는 아
무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 평화가 우리 마음속에 가
득하면 우리는 부귀영화 공명이 없어도 세상에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귀한 것이 없어도 영혼 속에 한없는 평화를
가지고 기쁨을 가지고 행복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
니다. 이러므로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기뻐하시고 예수 그
리스도 안에서 관용을 베푸시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함
께 계신 것을 아시고 예수 안에서 항상 쉬지 말고 기도하
여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 기도 -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에는 슬픔
이 많습니다. 고통도 많고 염려와 근심이 우리 마음을 짓
누르고 우리 속에 참된 행복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사람
이 천년을 살고도 마음의 행복이 없이 산다면 사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기쁘게 즐겁게 행복을 가지고 가치 있게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여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다가오는 모든 눈물과 고통과 근심과 괴
로움을 극복하고 마음속에 세상이 모르는 기쁜 평화를 가
지고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게 도와주옵소서. 그래서
이 평화로운 삶이 천당까지 계속하게 도와주옵소서. 오 야
웨 우리 하나님이여 오늘 예배에 출석한 모든 성도들 영혼
속에 평화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