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1992년 8월 9일 주일설교
제 목 : 내가 보는 십자가 하나님이 보시는 십자가
설 교 : 조 용 기 목사
말 씀 : 로마서 6장 1~11절 말씀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 찌어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내가 보는 십자가 하나님이 보시는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금번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제25회 올림픽게임에 전지구촌 사람들이 자국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보기위해서 TV를 열심히 시청을 했습니다. 아마 저도 최근에 TV 이번 올림픽 게임만큼 많이 본적이 없습니다. 전에는 TV보면 양심에 가책이 되어서 이 시간에 기도해야지하고서 뉴스만 보고 그다음 성경 읽고 기도했는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내가 응원을 해줘야 이기지 내가 응원 안 해주면 못이길 것이다 싶어서 그래서 TV를 보고 응원을 해주고 기도해준다고 TV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자국 선수가 경기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객관적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경기장에서 시합을 하는 당사자들이 느끼는 것과는 체험상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TV를 시청하는 자는 경기야 마음으로 참여하지만 실제로 경기를 하는 선수는 마음과 몸 전체를 다 바쳐 땀 흘리고 혼신의 능력을 그리고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눈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당하시는 예수님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심적으로 동참을 하고 있습니다. ‘아~ 날 위해서 십자가에 고난 당하셨구나!’그러나 실제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온 전신과 생명을 바쳐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며 고통을 당하고 피를 흘리고 몸을 찢기고 몸부림을 치며 괴로워하고 그리고 십자가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십자가를 객관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지식적으로만 믿지 말고 그리스도와 함께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그런 신앙을 갖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님은 물세례와 성찬예식이라는 이러한 제도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언제 바른 노선에 서도록 주님께서 만들어 주셨습니다.

<본론>
1. 물세례의 의미
첫째로, 우리 물세례의 의미를 깊이 깨달아 알아야 됩니다.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믿고 구원받았으면 되었지 구태어 물세례를 꼭 받아야 되느냐?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은 믿고 세례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고 해서 믿고는 물세례를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인즉 우리가 상대적으로 역사적인 사건을 바라보는 십자가에서 물세례를 통해서 주관적이고 체험적인 신앙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세례의 깊은 의미를 깨닫기 전에는 예수님은 멀리 계십니다. 저 갈보리 십자가에서 날 위하여 날 대신하여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죽었구나. 우리는 관망하는 자세입니다. 멀리서 바라보지요. 또 그 사건도 2천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지금 나와는 머나먼 옛날에 일어난 사건. 먼 옛날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날 위하여 고난 당하셨다. 그래서 거기에 시간이 관계가 있고 공간이 뜨여 있고 그리고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 지적신앙에 남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세례는 함께 참여하는 십자가를 주님께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우리가 물속에 들어갈 때 예수와 함께 장례지낸바 되었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올 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셔서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함께 앉은 사실을 극적으로 몸으로 체험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멀리 바라보는 신앙이 아니라 현재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몸으로 실제로 참여하는 사건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십자가는 저 멀리 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여러분과 제가 동참하는 사건으로 하나님이 보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보실 때는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것을 강조해서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물속에 들어가는 것 “너는 정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은 것이다. 그리고 장사지낸 것이다.” 물속에서 일어날 때는 “너는 진짜로 예수와 함께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한 것이다. 옛사람은 청산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 이 동참을 강조한 것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에 동참하고 세례를 통하여 그의 장사하심에 동참하고 세례를 통하여 그의 부활하심을 본받아 연합한자가 되고 옛사람이 청산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사 예수 안에서 이미 하늘에 앉아 있는 그런 실상을 몸으로 실제로 주님이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다는 것은 종교를 받아들이는 이상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하나의 신앙적인 형태를 받아들인 이상입니다. 여러분과 나의 존재적인 바탕에서 완전히 변화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동네에 가서 사망신고를 하면 호적에 빨간 줄을 그어 버립니다. 일단 빨간 줄을 그어 버리면 그 사람은 이제는 세금 안내어도 되고 군대에 안가도 되고 국가의 동원에 응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 죽어 버렸으니까. 이제는 국가와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극하게 해주시는 것은 실제로 옛 아담의 삶이 죽어서 빨간 줄을 그어 버렸다. 그리스도와 함께 옛 아담의 사람은 죽어 버렸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도 죽고 마귀의 나라에 대해서도 죽고 이미 장사지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부활했다. 이제는 아담의 자손이 아니라 예수의 자손이다. 세상 사람들은 아담의 자손이지만 우리는 모두다 예수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호적은 이 땅에 없고 이제 하늘나라에 우리 호적이 기록되고 우리의 속에는 이제 악령은 없고 하나님의 성령이 와서 거하시고 이제는 우리는 소망 없는 백성이 아니요, 하늘나라에 영광스러운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십자가는 하나의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의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의 이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온 몸으로 참여해서 실제적으로 우리 운명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와 버리고 만 것 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믿기 전에 여러분은 지금 예수 믿은 후에 여러분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아담의 자손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자손들인 것입니다. 공중에 권세 잡은 악령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 속에 성령이 들어와 계시고 이 세상 마귀의 종, 죄의 종이 아닙니다. 이제는 마귀와 죄에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미래가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갈 것이 아니라 미래가 영광스러운 예비한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된 것 입니다. 신분상에 거대한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온 사실을 주님께서 깨닫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에게 물세례를 받아서 그것을 깊이 신앙을 인식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십자가는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주관적인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내가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내가 실제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체험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종교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인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들인 것입니다.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인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의미를 하나님께서는 깊이 깨닫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과 저에게 물세례의식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머나먼 옛날 사건이 아니라 지금 내가 죽고 지금 내가 장사지내고 지금 내가 부활해서 지금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 승리의 새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두다 오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근본적인 변화가 다가온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 사람들입니다. 예수 사람들이 된 것을 알고 여러분께서는 강하고 담대하게 사십시오. 여러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이 땅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고 하나님과 기도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2. 성찬의 의미
둘째로, 성찬의 의미를 통해서 주님은 우리의 신앙을 또다시 바로잡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고전11:23~27에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찬은 단지 종교의식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찬을 통하여 예수님의 죽으심의 깊은 의미를 채득하고 이것을 주님 오실 때까지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한 것 입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면 ‘아~ 예수님께서 몸이 깨어지시고 피를 흘리셨구나.’ 그것을 지식적으로 종교적으로만 인식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과거적으로 봅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아서 우리 위해서 죽으셨고 또 우리의 그것으로 말미암아 결과적 축복도 미래로 봅니다. 장차 주님이 강림하실 때 우리는 그 고난의 모든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 지식적으로만 알기 때문에 정열과 뜨거운 사랑이 산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깨닫기 원하시는 것은 이 성찬을 통하여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란 2천년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분이 아니요,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사건이 아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히 지금의 사건으로 주님이 체험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깨어진 몸을 여기에 갖다 놓으셨습니다. 지금 흘리신 피를 갖다 놓았습니다. 2천년전 아득한 옛날의 일이 아닙니다. 또 장차 다가올 날에 받을 축복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 숨쉬고 행동하는 우리 앞에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이 놓여지고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에 놓여지고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므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참여하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의 열매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너무나 과거적입니다. 언제나 우리가 말할 때 2천년전에 예수님이 오셨다. 2천년 전에 십자가에 못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셨다. 또 우리는 언제나 미래적입니다. 장차 주님께서 오실 것이다. 장차 주님이 세우실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장차 우리를 무궁한 복을 누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현재는 공동상태입니다. 현재는 텅 비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잘못을 주님께서 불식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지금 현장에서 우리에게 갖다놓고 난 다음에 예수님은 과거의 예수님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해서 지금 예수님이요, 예수님은 장차 미래 예수님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해서 지금 우리의 구주가 되셔서 지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의 열매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찬의 깨어진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실 때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지금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장차가 아닙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먹고 용서를 마시며 용서의 살을 먹고 용서의 피를 마십니다. 지금입니다. 지금 내가 용서를 받습니다. 지금 내가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을 지금 먹고 피를 마실 때 지금 내가 화해와 사랑을 먹고 마십니다. 하나님과 나와 화해가 되고 하나님과 나와 사랑의 관계가 유지되고 화해와 사랑을 먹고 마심으로 화해의 영, 성령이 지금 내게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예수님이 우리를 치료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신 그 내 병을 치료하는 그 살을 지금 먹고 내 병을 담당하신 그 피를 지금 마십니다. 내 몸에 있는 병이 지금 현실적인 것처럼 그 병을 짊어지고 그 병을 파괴해버린 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먹고 지금 내가 마시므로 지금 그리스도의 치료의 능력에 내가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의 체험적인 신앙 속으로 하나님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아~ 우리가 축복을 받는다. 과거에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았지. 장차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우리는 축복을 받겠지.” 그렇지가 않습니다. 지금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시므로 지금 아브라함의 축복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니 이는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는데 바로 아담의 저주, 이스라엘의 저주, 이 모든 저주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갚아서 그 찢어진 몸과 흘리신 피로 청산했기 때문에 지금 그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는 것은 지금 아브라함의 축복을 먹고 지금 아브라함의 축복을 마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축복받을 것이 아니라 지금, 오늘 현장에서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축복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여러분 변화가 다가와야 됩니다. 지금 내가 그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는 것은 지금 영생복락을 먹고 영생복락을 마시는 것입니다. 장차 영생을 얻을 것이 아닙니다. 지금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몰라요. 죽어봐야 알지요.” 그것은 엉터리입니다. 지금 나는 영생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생을 지금 먹고 지금 마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저안에 거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는 자는 생명이 없거니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그 속에 생명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예수의 생명을 먹고 예수의 생명을 마셔서 지금 이 자리에서 영생복락을 내 속에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찬예식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과거적 사건으로 미루지 말고 미래적 사건으로 미루지 말고 오늘 이 시간에 내가 먹고 마시고 내 것으로 내속에 체험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을 아득한 과거에 곰팡이 핀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아득한 미래에 안개와 구름에 쌓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지금 현재 그 깨어진 몸을 먹고 현재 그 흘리신 피를 마시고 현재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현재 내 것이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물세례와 성찬예식을 통해서 우리 기독교 신앙이란 하나의 관념적인 것이 아니요, 지적인 것이 아니요 세례를 통하여 온몸으로 구원에 참여하며 내가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하고 함께 그리스도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다. 온몸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고난당하심은 현실적인 우리의 생명의 떡이다. 2천년전의 것이 아니요, 미래의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숨쉬고 살고 있는 이 현실에 먹어라. 마셔라. 그 용서를 먹고 마셔라. 그 화해와 사랑을 지금 먹고 마셔라. 그 치료를 지금 먹고 마셔라. 그 축복을 지금 먹고 마셔라. 그 영생을 지금 먹고 마셔라. 지금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와 같은 실제적인 긴장, 박력 있는 신앙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깨우치고 주기 위해서 우리가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물로 세례 받게 하고 성찬예식을 떼게 하는 것입니다.

3. 셋째로, 성찬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이 가르치기 원하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깊이 오늘 새겨야 되겠습니다. 이 의미는 무엇이냐
고후5:17에 기록한 말대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인간창조에 참여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옛 아담의 사람은 죽고 장사지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이제는 없습니다. 죽어서 장사지내 버렸는데 우리의 옛사람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사람으로 새로 지음을 받아 태어났습니다. 나는 예수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볼 때는 여러분의 모습 속에 예수님의 모습을 보지 아담의 모습을 보지 않습니다. 아담의 모습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옆에 있는 두 사람 이상에게 “당신은 예수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세요. 우리는 예수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서 우리는 새로 태어났습니다. 오늘 우리 며느리가 예배 보러 왔는데 우리 손녀딸을 안고 있으니까 우리 장로님 한분이 딱 보시더니 “아이고 할아버지 닮았네.” 그래요. 기분이 보통 좋지가 않아요. 내 손녀니까 날 닮아야지요.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면 “아이고 예수 닮았네.” 그것은 마땅하지요. 예수 믿고 예수 사람이 되었으니까 예수 닮아야지요. 할렐루야~ 그러므로 새로운 예수 사람으로 지음을 받았고 그리고 하나님이 알기를 원하시는 것은 이제 우리는 예수 사람 하늘나라 사람이므로 세상 사람같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이 말씀으로 살지 않습니다. 이것 없이도 살아요. 예수 사람 된 우리들은 감추인 만나가 바로 이 말씀인 것입니다. 감추인 만나를 먹지 않고는 살지를 못해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감추인 이 만나를 주셔서 이 말씀을 듣고 먹고 즐거워하며 사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고 이 만나를 보고도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은 그것은 구원 못 받은 사람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은 이제 새 사람된 우리들은 떡으로만 살지 않고 말씀으로 사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우리 속에 우리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와서 계시는 성령이 내주하신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령이 여러분 속에 계십니다. 여러분이 알든 모르든 성령은 와서 계십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이 여러분 속에 계십니다. 바람이 우리와 함께 있고 바람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성령은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 와서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여러분에게 오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지혜를 주시고 총명을 주시고 카운셀링을 주시고 재능을 주시고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고 하나님을 참으로 예비하도록 도와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또한 여러분은 선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엡2:10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된 우리들은 선하고 착한 마음을 가지고 선하고 착한 일을 하기 위해서 지음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속에 거대한 의식의 변화가 와야 됩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우리의 위치도 달라지고 우리의 운명도 달라지는데 이 생각이 안 달라지면 이것 큰일입니다.
옛날에 시골에 있는 처녀를 서울 큰 부자 집에 며느리 감으로 갖다 놓으니까 부엌에 와서 밥을 안짓고 고민을 하고 자꾸 밖에 들락날락 하더랍니다. “얘야~ 왜 밥을 안 짓고 왜 들락날락 하느냐?” 하니까 “아무리 정원에 봐도 샘이 없어요. 이웃에 가봐도 우물이 없습니다.” 밥을 지어야 되는데 샘이나 우물에서 물을 길러야 되겠는데 도시에 수도가 있지 우물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정원에 갔다가 밖에 갔다가 부지런합니다. 울상이 되었습니다. 물이 없으니까 어떻게 물을 길을 수 있나. 그 며느리보고 “며늘아~ 시골에서는 우물에서 물을 길러서 밥을 짓지만 이제 도시에 왔으니까 우리 집에는 이 수도꼭지 여기에서 물이 나온다.” 부엌에서 물을 켜니까 물이 싹 나오니까 기절할 지경입니다. “야~ 이렇게 편한 세상도 있느냐?” 저녁에 이제 밥상을 차려서 밥을 먹어야 되겠는데 부산하게 안방으로 갔다가 건너 방에 왔다가 마루 밑을 들여다봤다 야단입니다. 왜하냐고 하니까 “램프가 없어요. 램프가 있어야 거기에 심지에 불을 붙여서 저녁 먹을 붙을 켜야 되는데 이건뭐 호롱도 없고 램프도 없으니 이것 어디다 갖다 놓았습니까?” “며느라, 시골에서는 호롱에다가 불을 켜든지 램프에다 불을 켜지만 이제 도시에 와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전등을 탁 켜더니 “이것 봐~” “아~” 전등불을 켰습니다. 여러분 지금 웃지만 저도 어릴 때 제가 처음 도시에 나와 가지고서 저녁에 밤에 자는데 우리 사촌들이 불끄라고 했습니다. 베개를 놓고 전등을 아무리 부니 꺼집니까? 훅 훅 훅. 제가 그랬다구요. 그러니까 우리 사촌들이 촌놈이라고 얼마나 배를 안고 웃는데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본적이 없으니까 촌놈이지. 항상 시골에서 호롱불만 봤지 내가 전등불 처음 봤으니까. 의식이 달라져야 됩니다. 우리는 옛날 아담의 자손 때 살던 그러한 전통적인 의식을 가지고 살면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 사람된 우리들이 사는 방식하고는 틀립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세례로 이미 변화 받은 사람입니다. 성찬을 통해서 새사람이 된것입니다.
갈5:1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의식이 달라져서 이제는 우리 종이 아니요, 자유인이라는 것을 알고 죄에서 자유를 갖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죄의 어떠한 유혹이나 죄의 어떠한 세력도 우리를 붙잡을 힘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악의 세상에서 죽어 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죄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한 남편의 밑에서 부부의 결혼의 계약으로 묶였다가 부인이 죽어 버리면 그 결혼의 계약에서 해방되어 버립니다. 부인이 죽었다가 다시 환생을 하면 전에 있던 그 남편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는 따로 자기가 원하는 데로 시집갈 수 있어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마귀와 율법의 남편에게서 죽어 버렸습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환생을 했습니다. 환생한 우리들이니까 죄의 옛날 남편하고 상관이 없어요. 죄는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물러갈찌어다. 나와 상관이 없다. 의식의 변화를 가지면 예수를 통해서 우리는 죄와 마귀와 율법에 대해서 죽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 친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친 자녀가 되어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으니 옛날은 나의 힘으로 살았으나 이제는 아버지가 예비해 주시는 은혜를 받고 우리 산다는 것을 알고 늘 아버지께 나가서 기도해야 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마귀의 억압과 질병에서 우리는 자유 합니다. 예수께서 마귀를 멸하고 질병에서 우리를 해방시켰는데 우리가 왜 예수와 함께 질병에 대해서 죽고 다시 부활했는데 질병의 노예생활을 합니다. 마귀나 질병이 오면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와 나는 상관이 없다. 내게서 물러갈 찌어다. 나는 훨훨 털어 버리고 너희하고 상관이 없다. 미련도 갖지 말고 믿음으로 털어 버리고 나가면 따라오다가 그만 달아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의식의 변화를 가져 오십시오. 나는 못산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저주를 받았다. 나는 패배자다. 이것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것은 옛날 아담의 자손이 생각할 것이고 이제 우리 예수 사람으로써 일어난 것은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가시와 엉컹퀴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낭패와 실망과 가난과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자유된 사람이요,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침에 일어날 때도 나는 예수 안에서 복 받은 사람이다. 나의 생활에도 나는 복 받은 사람이요, 저주가 나를 잡지 못한다. 하나님이여 나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나를 복 받은 곳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러한 신앙의 담대함을 가지고 선언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옥의 멸망에서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죽음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장막 집 무너지면 이미 예수 안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이미 하늘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도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이 육신의 장막 집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알기 때문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는 사망을 조롱하면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믿음이 충만하고 늘 소망이 충만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확실히 알게 하기 위해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현실적으로 물로 세례받게 하고 현실적으로 매달마다 성찬을 떼게 하므로 우리의 신앙이 현실적이고 지금 현재 살아있는 신앙으로 의식변화를 가져오기를 주님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는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에 생각이 새사람으로 달라져야 그 새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달라졌는데 마음과 생각이 달라지지 아니하면 구태의연하여 실제는 새사람이 되었으나 살기를 옛사람으로 살게 되면 이것은 비극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마음이 새로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를 깨달아서 우리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 된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우리의 신앙이 형식화 되고 생명력을 잃은 종교의식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오직 과거의 역사적 지식으로 남고 오직 장차 죽은 후에 소망을 주시는 것으로 알고 현실의 삶은 공동화 해버리고 맙니다. 지금 나와 그리스도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께서는 물세례와 성찬예식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매일 생명력이 넘치는 구원의 은혜가 넘쳐나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과 부활은 지금 여러분에게 관계가 있습니다. 그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는 지금 여러분의 영적인 생명의 양식이 되고 해방이 되고 승리가 되고 자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시는 눈으로 여러분을 보십시오. 여러분이 보는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여러분을 보는 눈은 전통적인 옛 아담의 혈통에서 태어난 패배적인 인간을 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보실 때는 십자가를 통하여 새롭게 된 여러분을 보십니다. 성찬예식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먹고 마신 새사람으로 하나님이 보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는 근원으로 나를 보고 그 지식을 갖고 그 용기를 갖고 일어나서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신앙을 가지고 운명과 환경을 이런 믿음으로 무장해서 정복하고 물리치고 새로운 가나안을 창조하면서 승리로운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삶이란 운명의 노예가 되고 환경의 노예가 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 부는데로 물결 치는 데로 따라가는 삶이 아닙니다. 내가 어떠한 사람인 것을 알고 그 믿음에 굳세게 서서 내 운명과 환경을 기도와 믿음으로 변화시키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진리를 알고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고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여러분의 믿음대로 될찌어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호세아가 말한 것처럼 내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했는데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구원의 지식이 없으므로 형식적인 신앙을 가지고 왔다 갔다 하다가 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버지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된 것을 알게 도와 주시 옵소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하셔서 이제는 새사람으로 새시민으로 산다는 것을 알고 자유인 된 것을 알게 도와 주시옵시고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므로 용서를 먹고 마시고 화해와 사랑을 먹고 마시고 치료와 건강을 먹고 마시고 축복과 승리를 먹고 마시고 영생과 천국을 현재 먹고 마시는 것을 알게 도와 주시옵시고 그 힘에 의지해서 이 광야의 세상을 승리로 지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