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0월 4일
제목 : 불의한 재판관과 하나님
성구 : 눅 18:1∼8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불의한 재판관과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금요일 여러분은 잠실 스타디움에서 정말로 기도를
잘해 주셨습니다. 한 시간동안 우리 성도들이 함께 모여
그처럼 고함치고 집요하게 기도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
니다. 어떤 이들은 기도하다 말고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도
있고 다른 이들은 중도에 자리에 뜨는 사람도 있고 또 어
떤 사람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러
나 절대 다수의 성도들은 뜨거운 마음으로 열심을 가지고
끝까지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이제 이 기도가 개인과 생
활, 조국과 민족과 세계 장래에 크나큰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게 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기도하기가
힘이 들고 어려울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쉽게 쉽게
응답해주시면 좋겠는데 그렇게 힘들게 응답을 해 주실까
요?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가르치고 계십니
다. 한 곳에 불쌍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억울
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동네에 있는 재판관에게
가서 나의 억울한 사연을 공평하게 재판해 달라고 청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재판관은 피도 눈물도 없는 가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물며 과부는 더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한동안 그 과부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았습니
다. 그러나 그 과부가 하도 자주 와서 늘 부르짖고 그를
번거롭게 하는지라 그가 견딜 수가 없이 괴로웠습니다. 그
래서 하는 말이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
시해도 이 과부가 밤낮 와서 나를 번거롭게 하므로 내가
이 재판을 공평하게 해 주리라. 그래서 문제를 해결해 주
었다는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께서는 기도에 대한 깊은 내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여기에 우리 주님께서는 예수 믿는 사람을 과부
로 비유했습니다. 과부는 남편을 잃어버려 의지할 자가 없
이 외롭고 슬픈 상태를 말합니다. 또 인간적으로 무력하고
나약한 처지에 있는 것을 표시하며 나쁜 사람들에게 업신
여김을 당하고 불이익을 당해도 대항할 힘이 없음을 대표
적으로 상징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이 과부와
같은 느낌이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린 문제를 걸머지고
와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데 너무나 너무나 힘이
들고 괴롭습니다. 너무나 내가 무력하게 느껴집니다. 그리
고 원수 마귀가 와서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킨
다고 해도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쌍한 처지에 있
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성도들이 죄와 악한 습관의 포로
가 되거나 마귀에게 억압당하거나 병들거나 생활에 실패하
고 절망하거나 죽음에 위협을 당했을 때 성경 속에 이 과
부와 같은 나약함을 절실히 마음속에 느끼게 되는 것입니
다. 이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로 부르짖는데
우리 하나님은 꼭 우리에게 불의한 재판관같이 느껴집니
다. 나의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주소서. 기도해도 하나님
은 우리의 기도를 무시해 버립니다. 우리의 기도가 천장에
부딪쳐서 자꾸만 떨어집니다. 기도하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듭니다. 땀이 납니다. 마음이 집중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중심이 흔들립니다. 아무리 내
가 기도해도 소용이 없는 것 같이 생각이 듭니다. 마치 불
의한 재판관에게 나아간 연약한 과부와 같은 심정이 될 때
가 많습니다. 나의 문제는 너무나 크고 나는 너무나 허약
하게 느껴지고 그리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나의 부르짖음은
무시를 당하고 멸시를 당해버리고 마는 기분이요 그런 심
정이 될 때가 많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때문에 기도를 하다가 포
기해 버리고 맙니다. 아이고. 나 같은 사람의 기도 누가 들
어줄 것이냐. 나는 기도해도 무력하게 아무 쓸모 없는 이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서 응답해 주겠느냐. 내가 생각해도
무정한 하나님 같다. 몰인정한 하나님 같다. 우리 하나님께
서는 우리 같은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조소 당하는 기분이다. 이러므로 나는
기도를 할 수가 없다. 나는 기도가 안 된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마귀는 자꾸 와서 속삭입니
다. 너의 기도는 응답하지 않는다. 너 같은 게 무슨 기도를
하느냐. 하나님은 너 같은 것 알지도 못한다. 너는 멸시당
하고 무시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괜히 쓸데없이 기도하지
말고 그만 둬라. 쓸데없는 짓 그만해라. 이러한 속삭임이
계속해서 마음속에 다가옵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나갈 때 이 과부처럼 너무나 외롭고
슬프고 너무나 무력하고 나약하고 너무나 업신여김을 당하
고 불이익을 당해도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처지에 있다고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간에 알아볼 것은 과연 우리 하나님께
서 불의한 재판관 같이 우리를 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 성경에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이 불의한 재판관이
냐는 것입니다. 왜 이 자리에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관처럼
비유하고 있을까요? 실제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불의한 재판관이 아닙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
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지으시되 짐승처럼 지으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
양으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셨다
는 것은 여러분과 나는 영적인 모습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
으로 예배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같이
죽을 수 없는 영원히 사는 영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고
그것이 우리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우리 인
간만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얻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빛과 질서와 생명과 풍요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어두운
가운데는 빛을 지으시고 혼돈 가운데서는 궁창을 짓고 질
서를 지으셨으며 그리고 물 가운데서는 육지를 지으시고
모든 풍요한 오곡백과가 열매를 맺게 지으셨습니다. 생명
이 곽 들어찬 우주를 만드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은 우
리를 생명을 주시되 풍성히 주시는 생명의 하나님이신 것
입니다. 비록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해서 마귀의 종이 되고 슬프게도 죄악의 멍에를 짊어
지고 마귀의 사슬에 묶이고 질병의 노예요, 저주의 노예요,
죽음의 노예가 되어 이제 희망 없이 처절한 절망의 구렁텅
이에 빠져 있을 때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를
보내셔서 타락한 모든 죄를 그 아들에게 덮어씌워 그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몸을 찢기
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이미 600여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
사실을 너무나 밝히 보고 예언했습니다. 저가 찔림은 우리
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이 그를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웨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
을 그에게 감당케 하셨다고 예언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와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십자가에서 대신 청산하게 하시고 한
사람이라도 믿어서 구원 얻도록 만들어주신 하나님이시니
이 어찌 좋은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아무런 행위와 조건
없이 믿기만 하면 구원의 계약 속으로 들어가서 구원을 얻
고 영생을 얻게 만들어주신 것이 우리 하나님이신 것입니
다. 거기에다가 예수 믿을 때 하나님의 성령을 보내셔서
하나님 자녀된 것을 우리 마음속에 확증해 주시고 성령으
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만
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하신 '이레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의 갓 태어나서부터 영원한 천국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신 '야웨이레'이신 것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라파 하나님'으로서
병들 때 하나님을 부르짖으면 우리를 치료해 주십니다. 하
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대신 싸워주시는 '닛시 하나님'이십
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살롬 하나님'이십
니다. 하나님은 우리 목자가 되어서 우리를 소유하고 돌보
고 먹이고 이끌어주시고 보호해주시는 '로이 하나님'이십니
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찌드케누 하나님'이십
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는 '삼마 하나님'이
신 것입니다.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신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하나님이 이 성
경에는 왜 불의한 재판관으로 비유가 되었습니까? 무엇이
잘못된 것 아닙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불의한 재판관이 될
수 있습니까? 사람을 피하고 멸시하고 짓밟아 버릴 수 있
는 그런 재판관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까? 잘못된 것 아니
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불쌍한 과부 기독교 신자를 대변한
과부는 이 불의한 재판관 앞에 나가서 부르짖었다고 말했
습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좋으
신 하나님과 우리 사람 사이에 공중에 권세 잡은 악한 마
귀가 있습니다. 이 공중에 권세 잡은 악한 마귀가 우리의
기도를 막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못하게 하고 있습니
다.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
도하면 먼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보좌에 상달되기 전에
이 원수 마귀의 진을 뚫고 나가야 됩니다. 이 원수 마귀의
진에 부딪치니까 마치 우리의 느낌에는 우리의 하나님이
불의한 재판관 같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조금 기도하다가 이 원수 마귀의 진에 부딪
쳐서 너무나 기도가 힘들고 기도가 잘 안되므로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포기해 버립니다. 실상은 여
러분을 사랑하고 기도를 응답해주시기 원하시며 기다리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공중에 권세 잡
은 원수 마귀가 불의한 재판관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치 불의한 재판관이 하나님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불의한 재판관은 하나님이 아니
고 원수 마귀인 것입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한 천
사장 루시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천사장으로 너무
아름답게 만들었기 때문에 자기 아름다움에 취해서 그만
교만해져서 자기가 하나님을 밀어내고 하나님이 되겠다고
생각하다가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하늘에서 쫓길 때 하나
님 천사 삼분의 일을 유혹해서 함께 타락해서 지금 공중에
권세 잡은 자로 있습니다. 마지막 때 그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곳에 던짐을 받을 것입니다. 지금은 공중의 권세를
잡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
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무시합니다. 그러므로 이
불의한 재판관은 이 루시퍼 원수 마귀를 상징합니다. 하나
님을 대적하고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
하는 원수 마귀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진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마귀는 사람 가운데 와서 영적으로 사람을 우상이나 자신
을 섬기게 합니다. 모든 우상 종교가 사실은 이 원수 마귀
가 사람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태어날 때
부터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찾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있는데 원수 마
귀가 이를 가로채서 참 진정한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우상
과 사신을 찾아 나가도록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원수 마귀는 사람들의 정신 속으로 들어와서 정
신적으로 교만하거나 무신론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래서 하나님은 없다 신은 죽었다고 말하게 만들고 인간이
하나님이 된 것처럼 교만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는 이 원수 마귀가 와서 사람을 억압해서 여
러 가지 병들게 합니다. 육신의 병의 대다수는 원수 마귀
가 가져다준 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권능을 기름 부듯하셨
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
린 모든 자를 고치셨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병들이 마귀에
눌려서 오늘 고통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귀신이 쫓겨나가면
병은 자연적으로 낫게 되는 것입니다.
또 원수 마귀는 사람들 속에 와서 세속을 따라 세상 풍
습에 따라 살게 합니다. 오늘날 보십시오. 라디오를 통해
서, 텔리비전을 통해서 신문잡지 모든 세상의 매스 미디아
는 홍수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하나님께로부터 돌이켜 세상
으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풍속을 좇고 이 세
상을 따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가게 만
들고 이 세속에 취해 있다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멸망 받게 하려고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
니다. 이 세속이 홍수와 같이 와서 사람들의 관심을 부여
잡고 세상 속에 취해서 세상으로 세상으로 떠내려가게 하
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영원한 멸망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약하게 만들어서 인생으로 하여금 파
멸되게 하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서 타락하게 만들었고 광
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셨고 종국에 가서는 예수님을 십자
가에 못박히게 한 장본인이 이 마귀요, 이 마귀가 불의한
재판관으로 성경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마귀가 하나님
보좌와 인간 사이의 저 공중의 권세를 잡고 결사적으로 우
리의 기도를 막고 있어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마치 하나님
께서 몰인정하고 무정하게 우리를 져버리고 돌보아 주시지
않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원수
마귀가 노리는 것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오해
하게 하고 사람들로부터 잘못된 생각을 하게 하고 그래서
결국엔 하나님을 져버리게 하고 돌아서게 하려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행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부는 어떻게 했
습니까? 과부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자기를 무시하고 멸시
하고 고개를 돌린다고 해서 쉽게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이 과부가 늘 와서 재판관을 괴롭혔습
니다. 밤이나 낮이나 이 재판관에게 찾아가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시옵소서. 이 재판관이 아침에 출근하
려고 나오면 그 대문간에 앉아 있다가 내 원수에 대한 원
한을 갚아주소서. 퇴근할 때는 그 재판소에 앉아 있다가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주소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날이 조용하나 항상 재판관 주위에서 끈질기
게 그는 원한을 갚아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므로 나
중에 재판관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경
에 보니까 이 재판관이 말하기를 나를 번거롭게 하니 정신
적으로 불안하고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
다. 그가 한동안 그 과부를 무시하나 과부의 끈질긴 기도
와 그를 번거롭게 하는 계속된 간청에 그만 견딜 수가 없
었습니다. 그는 이제는 자나깨나 과부의 모습이 마음에 떠
나지 않았습니다. 그 과부의 간절한 간청을 떨쳐 버리고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과부의 기도를 들어주기
로 작정했습니다. 그대로 재판을 해주었다고 성경에는 기
록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이 과부의 기도 작전을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할 때 쉽
게 기도 응답 받지 않는다고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
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해서 이 비유를 들
어주셨는데 우리가 기도할 때 과부처럼 늘 와서 하나님 앞
에 와서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원수 마귀의
진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한번 흔들어서 무너지지 않는 바
위도 자꾸 흔들고 자꾸 밀어 흔들면 그 바위가 흔들립니
다. 우리를 막고 있는 원수 마귀는 이미 십자가에서 무장
이 해제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원수 마귀
는 그렇게 힘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과 그 보배로운
피를 의지하고 말씀으로 우리가 계속 원수마귀의 진을 침
노에 들어가면 원수 마귀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세례요한으로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을 침노해 들어갑니다. 침노란 뭡니
까? 전쟁하는 것을 침노라 하는 것입니다. 전쟁할 때 군인
들이 체면 살피고 전쟁합니까? 전쟁할 때는 결사적으로 전
쟁합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결사적으로 좌우 살피지 아니
하고 있는 힘을 다해서 진격해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이와 같이 침노해야 하는 것입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를 향하여 우리는 집중적으로 결사적으로 있는
힘을 다해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그래서 자주자주 번거롭
게 할 정도로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
람들이 기도를 심미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예술적으로 생각
합니다. 기도는 전쟁입니다. 전쟁이 무슨 심미적이고 예술
적일 수가 있습니까. 전쟁에는 너 안 죽으면 내가 죽습니
다. 네 것을 안 빼앗으면 내 것을 빼앗깁니다. 이러므로 기
도는 마귀의 진을 훼파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쟁취하
는 것이기 때문에 심미적인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결사적
인 각오를 가지고 절대로 뒤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마음에
굳은 결심을 가지고 이 과부가 했었던 것처럼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하는 것입니다. 한번 기도하고
또 두 번 기도하고 또 세 번 기도하고 계속해서 적진을 향
해서 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가 괴로워
견딜 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뒤로 물러서고 마귀의 진이 무
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다니엘 보십시오. 다니엘은 자기의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서 기도하기를 각오하고 강가에 나가서 친구들과 함께 기
도하는데 한 주일을 기도해도 아무 소식도 없고 멸시와 무
시를 당한 심정이었습니다. 두 주일을 금식하고 기도해도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치 이 과부와 같이 무
력하게 느껴지고 비참하게 느껴지고 버림받은 심정이었습
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낙심하고 뒤로 물러가도 다니엘은
계속에서 3주간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스무 하루만에 하
늘 문이 열리고 찬란한 광채를 내는 천사가 그 앞에 나와
서 지극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다니엘아 네가 첫날 기도
했을 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네게 보냈으나
공중의 권세 잡은 파사국군이 나를 막으므로 내가 그들과
이십일 동안 대치하였으나 스무 하루만에 군장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적진을 헤치고 내가 응답을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스무 하루동안 그는 계속에서 끈질기게
기도하고 계속해서 기도하고 계속해서 침노하고 계속 두드
리고 계속 찾고 찾으니 결국에는 원수의 진이 무너지고 마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는 여리고성 돌듯이 끈질
기게 인내를 갖고 계속 기다려야 합니다.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고 세 바퀴 돌고 네 바퀴 돌고 다섯 바퀴 여섯 바
퀴 마지막에는 한꺼번에 일곱 바퀴를 돕니다. 끊임없이 낙
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주님께 부르
짖으면 하나님은 이미 응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리고 불의한 재판관 같은 원수 마귀의 진은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가 불안하고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 없어 나
중에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도록 만들어 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이 그
뒤에 다가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친히 항상 기
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응답하는
자리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보고 항
상 기도해라 그리고 낙심하지 말라 끈질기게 기도하고 낙
심을 안 하면 결국에는 원수의 진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역
사가 다가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한동안 마귀는 저항
하고 버티지만 마귀는 영영 저항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혔을 때 그 보배로운 피로 말
미암아 마귀의 모든 정사를 다 무너뜨리고 권세를 빼앗고
무장을 해제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영구
히 우리를 대적할 힘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진정한 뜻은 우리가 체험하는 실
상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6절에서 8절
에 보면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
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
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
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
시니라" 주님이 오실 때 마지막 때에는 사람들이 타락하고
연약해지고 모든 것을 편한 것만 좋아해서 정말 이 과부와
같이 끈질긴 믿음으로 불퇴전의 결심으로 하늘나라를 향해
서 기도하고 나올 사람을 볼 수 있겠느냐고 예수께서 탄식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밤 낮 부르짖고 원한에
차도록 간절하고 그리고 끝까지 인내하는 믿음을 갖고 기
도할 때 불의한 재판관 같은 마귀의 진은 훼파되고 위대한
하나님의 응답과 승리가 여러분에게 봇물 터지듯이 다가오
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한동안 너무너무 응답
이 안 오는 것 같다가 응답이 오기 시작하면 이것은 마치
유수와 같이 밀려옵니다. 봇물 터지듯이 하나님의 응답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의 진이 무너
져 버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리고 성이 안 무너질 것 같
이 버티고 서 있지만 한번 돌 때도 두 번 돌 때도 세 번
돌 때도 엿새 동안 여리고 성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레
째 여섯 바퀴 돌고 일곱 바퀴 돌아도 버티고 있는 것 같지
만 마지막 일곱 번째 고함을 칠 때 순식간에 무너지고 마
는 것입니다. 원수의 진은 이와 같이 낙심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기도하는 사람 앞에 순식간에 무너지고 마는 것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은 다가오고 마는 것입니다.
가정이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귀신은 쫓겨 나가고 병은
고침을 받게 되고 문제는 해결되고 하늘나라의 축복은 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
님께서 놀라운 은총과 축복으로 여러분을 위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구하는 자가 얻는 것입니다. 구하
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마다 찾을 것이
요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 라고 말하는 것입니
다.
이러므로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고 절대로 낙심하여
뒤로 물러나지 않는 마음의 단호한 각오를 가지고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그냥 기도해서 안되면 철야 기도하고 철야
기도하다 안되면 금식기도하고 주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그
사람은 결국은 천국을 소유하게 되실 것입니다. 다같이 고
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날은 너무나 기도
가 없습니다. 마치 한발이 다가와서 비가 오지 않으므로
땅이 말라버린 것처럼 성도들이 기도 하지 아니하므로 성
령의 역사가 그쳐서 교회가 바싹 마른 논과 밭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역사가 사라지고 열매 맺는
역사가 사라졌습니다. 하늘이 비를 내리면 땅에는 열매가
맺는데 이 비는 성도가 기도해야 축복의 비가 내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개인의 생활이 마른 땅과 같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시고 우리의 가정이 마른 땅이 되지 않게
도와주시고 우리의 생활이 한발이 와서 마른 땅이 되지 않
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의 교회가 한발이 다가 오지 않
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러기 위해서는 자나깨나 기도하고
모일 때마다 기도하고 결사적으로 기도해서 천국을 빼앗게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시므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천국을 마귀에게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가 불쌍한 과부와 같은 느낌을 받을
지라도 하나님이 불의한 재판관처럼 우리의 마음에 느껴질
때가 있을지라도 계속해서 침노하여 이 불의한 재판관 원
수 마귀를 무너뜨리고 참으로 사랑하고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를 귀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를 허락하시
는 하나님의 품으로 뛰어들어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