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성령께서 맺으시는 열매
날 짜 : 1992년 11월 8일
성 구 : 갈라디아서 5장 22절 -24절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성령께서 맺으시는 열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장 8절로 9절에 이렇게 기록하셨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으나 예수님을 믿고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일은 그 자체가 성령님이 행하시는 기적적인 역사인 것입니다.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이 아니고는 결코 예수님을 깨달을 수도 없고 믿을 수가 없으며 구주로 고백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치 바람이 우리와 함께 있는 것처럼 성령은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 임재하여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를 회개시키고, 예수님을 믿도록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그때부터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 속에 천국 복음의 깊이를 이해하고 강한 믿음과 헌신을 하도록 인도하시며, 우리들의 인격 속에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게 하는 성령님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들을 통하여 맺으시는 열매를 알아보고 기도와 믿음으로 성령께 순종하여 이 하늘의 보배로운 열매로 우리 삶이 가득해야만 하겠습니다. 아무리 외면적으로 훌륭하게 보이는 신자라도 그 인격의 내부에 성령의 열매가 없으면 그는 마치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예수님의 저주를 받아 말라버리고 말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2절에 보면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맺기를 원하시는 열매를 우리 하나하나 알아보고, 그 열매를 사모하고, 그 열매를 맺도록 성령과 우리 믿음으로 협조해야 하겠습니다.

첫째 열매는 사랑입니다.
성령께서 맺으시는 사랑은 정욕적인 사랑인 에로스가 아닙니다. 헬라어에 에로스의 사랑은 정욕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우정의 사랑인 필레오 사랑이 아닙니다. 친구와 친구간에 사랑하는 그런 사랑도 아닙니다. 부자간의 사랑인 스톨케 사랑도 아닙니다. 이와 같은 사랑은 모두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주고받는 조건부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내게 주시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은 즉 아가페 사랑인 것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희생적으로 주는 사랑인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일방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려 하는 것은 아가페 사랑인 것입니다. 희생적으로 주신 사랑이요, 무조건적인 사랑이요, 하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향해서 조건없이 일방적으로 사랑해준 사랑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 때문에 성령께서 기적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 맺어주는 열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가페 사랑이 기본에 깔려야만 건강한 가정, 건강한 사회, 국가 및 세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성령께서 우리의 생애 속에 아가페 사랑을 맺을 수 있도록 간구하고 성령께 협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께서 우리의 삶 속에 맺으시는 사랑은 희락의 역사인 것입니다.
성령께서 맺는 희락은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그 때문에 마음속에 일시적으로 기뻐지는 그런 희락이 아닙니다. 지휘가 높아져서 환희에 차서 부르짖는 그런 희락도 아닙니다. 명예가 오므로 말미암아 자랑스럽고 기뻐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환경이나 육체를 통해서 오는 그런 희락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희락은 변화무쌍한 환경으로 인해 곧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맺으시는 희락은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영혼 속에서 솟아오르는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런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기쁨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희락의 열매는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이 생활 속에 맺어지는 열매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쁨이 삶을 건강하게 하고, 능력있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 살면서 그 마음속에 기쁨을 잃어버리면 삶의 의욕을 상실합니다. 삶의 용기도 잃어버린 것입니다.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끊임없는 엑스타시, 마음을 황홀케하는 기쁨이 언제나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얻는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가슴속에 성령으로 부어주시는 기쁨은 영원한 기쁨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 선생은 감옥에 들어앉아서 고통과 괴로움 속에 있으면서도 에베소 교인들은 향해서, 혹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기쁨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맺어주시는 기쁨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말씀을 사모하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성령이여 우리의 영혼 속에 성령이 주시는 기쁨의 열매를 맺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늘 기도해서 우리 마음속에 광채를 가지고 기쁨을 가슴속에 가득히 담고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열매는 화평의 열매인 것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화평은 환경이 갖다주는 화평이 아닙니다. 어느 부자가 화평을 묘사한 그림을 얻기 위하여 유명한 화가들을 집에 청하여 대접을 잘 하고 그림을 그리도록 했습니다. 당선되는 작품은 고가로 사겠다는 약속은 물론 했습니다. 그래서 화가들이 열심을 다하여 이 부자가 그것을 쳐다볼 때마다 마음에 화평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을 그리려고 전력을 기울이고, 그 그림을 완성하고 난 다음에 그 부자 집 정문에 와서 이 그림을 전시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사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그림 앞에 부자가 섰습니다. 그 그림을 보니 평화롭고 호젓한 전원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소는 누워서 여물을 씹고, 닭은 목을 쭉 벗고 정오의 시간을 알리게 큰 소리로 꼬끼오하고 울고 있고, 개는 한 곳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습니다. 거기에 불안한 징조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반드시 그 그림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부자는 그 앞에서 잠시 서 있다가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난 다음에는 지나가 버렸습니다. 두 번째 그림을 보았습니다. 두 번째 화가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자녀들이 함께 모여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아름다운 장면을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사랑과 정이 넘치고 화평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잠시 머물다가 부자는 지나갔습니다. 세 번째 그림을 보니 깊은 산중 호수에 바람 한 점 없는데, 하늘을 가는 구름 한 점이 물위에 둥실 떠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그것도 잠시동안 들여보다가 이 부자는 지나가 버리고 말았었습니다. 네 번째 그림은 나이아가라폭포처럼 천지를 진동하며 쏟아지는 폭포의 바위구석에 뻗어 나온 가냘픈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앉아있는 어머니 새가 있는데, 지금이라도 바람이 불어와서 물보라가 덮치면 그 둥지도 나뭇가지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그런 위험한 곳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는 그 어미 새의 눈 속에 불안과 공포가 하나도 없습니다. 평안한 마음으로 알을 품고 있습니다. 그 부자는 이 장면에 못 박힌 듯이 서서 보고 있더니 그는 고가를 주고 그 그림을 샀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불평을 말했습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평화냐, 지금에라도 당장 폭포의 물이 조금 바람에 날리면 나뭇가지도 꺽어지고, 둥지도 다 날아갈만한 위험에 있는데 이게 무슨 평화냐? 그때에 부자가 하는 말이 그 말이 옳다. 언제 바람이 불어 폭포의 물이 휩쓸어 와서 나뭇가지가 꺽어지고, 둥지가 날아갈지 모르는 그 위험한 상태에서도 이 어미 새의 눈을 보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알을 품고 평안한 가운데 앉아 있다. 이것이 이 세계에서 필요한 평화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언제 불안과 고통과 시험과 환난이 폭포처럼 다가올지 모르는 곳에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평화로운 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처럼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이게 참된 평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평화는 세상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는 하늘에 내려온 성령께서 내게 주는 평화의 열매인 것입니다. 성령이 주는 평화의 열매는 바깥 환경에 구애되지 않는 영혼의 깊은 곳에 가득히 채워지는 평화인 것입니다. 이 평화만이 두려움과 불안을 이기고, 강한 믿음과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성령이 충만하여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찬미하는 삶 속에 하나님의 성령은 끝없는 평화의 열매로 맺어지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평화가 있는 사람이 행복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힘이나 명예나 돈이나 온갖 것 다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여러분 평안이 없으면 행복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행복의 조건은 바로 마음의 평화이고,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네 번째 성령이 맺는 열매는 오래 참음입니다.
인내는 믿음의 바탕입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축복하시기 전에 항상 인내를 시험해 보십니다. 오래 참을 수 있는 사람인가, 없는 사람인가, 그리스도의 신자들은 반드시 오래 참는 성격을 가져야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기본 바탕입니다. 내가 말씀을 믿었으면,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그 말씀을 믿고 참을 수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라지지 않는 기대와 소망의 터전이 바로 인내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우리가 기대와 소망을 가졌으면 우리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워도 기대와 소망을 버리지 말고 당황하지 말고, 인내하면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전진해 나갈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추호의 의심도 없는 확신이 바로 인내인 것입니다. 내가 어둡고 캄캄한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갈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인내하고 참고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유대인이 유럽 독일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수용돼 있다가 사형장으로 나가기 전에 벽에 기록한 글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하늘에 구름이 끼어 태양이 보이지 않으나, 구름 위에 언제나 태양이 있는 것처럼 지금 스산한 환경 가운데 있으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 보이지 않으나, 그러나 하나님은 이 배후에서 항상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에서 시련이 다가오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눈에 보이지 않음 같아도 그 시련 뒤에 하나님의 손길은 언제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내의 믿음으로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은 우리 마음 가운데 오래 참는 인내의 믿음을 열매 맺게 해주는 것입니다. 인내가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은총을 베풀기 전에 언제나 크고 작은 시련을 보내어서 과연 참느냐, 과연 참을 수 있는가, 이것을 시험해 보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험해 보는 것은 자비의 시험이며,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내리시는 열매도 자비의 열매인 것입니다.
여러분 자비란 것은 무엇일까요? 자비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바로 자비심입니다. 부모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전에 애처롭고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사랑이란 그냥 사랑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애처롭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언제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었을 땐 처음에 그 마음속에 사랑과 자비심을 가지고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죄와 마귀가 인간 속에 들어와서 그 사랑과 자비심을 완전히 파괴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원수를 맺게 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서로 미워하고 서로 저주하고 파괴하려는 그런 마음이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분쟁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타협과 양보를 거부하고 서로 물고 찢고 싸우는 마음입니다. 시기하는 마음이 있어 남이 잘되는 것이 보기 싫고,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서 남을 해치는 마음입니다. 분노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남을 폭행하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파당을 지어서 서로 갈라지고 분리하는 이러한 마음들이 우리에게 가득히 있어, 우리에게 불행을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 자비로우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사두개 교인, 바리새 교인, 율법주의자들이 끌고 와서 다 죽이라고 할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그 말에 모두다 간담이 서늘해서 다 도망을 치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너를 정죄하는 자가 있느냐? 여자가 말하기를 없나이다. 나를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죄를 짓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비를 베풀고, 살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이기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맺으시는 열매는 이같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며, 사람을 살리려고 하는 마음, 이 마음을 성령의 열매로 주님께서 맺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하나님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맺게 하는 열매는 양선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천성이 선량하고 양순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포악하고 악질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 중에서 성품이 점점 포악해지고 거칠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이 점점 사람의 가치를 등한시하고, 물질만능 황금만능 시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점점 사람들이 물질화하고, 포악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에 담기조차 치가 떨리는 강도, 강간, 납치, 인신매매, 근친상간 등 정말 인간 종말의 현상을 우리는 신문 지상을 통해서 매일같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말세가 가까이 왔구나하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중에서도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양선의 열매를 맺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량한 마음이 될 수 있는 그런 열매를 하나님의 성령께서 맺게 하는 것입니다. 양선의 열매가 가득한 사람들은 착한 남편이 되고, 착한 아내가 되고, 착한 자녀들이 되고, 착한 이웃이 되고, 착한 성도는 참으로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보배들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바로 이와 같은 착한 마음 선량하고 양순한 마음의 열매를 우리의 영혼 속에 맺을려고 오늘도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마음을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째는 성령은 충성의 열매를 우리 마음속에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충성심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변절하지 않고, 한결같이 섬기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 충성심이야말로 얼마나 필요한지 오늘날 사람들은 만나면 자기의 이해상관으로 곧장 변절합니다. 그리고 배반합니다. 그리고 서로 서로를 비난합니다. 그러나 점점 이와 같은 충성심을 이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들어 집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가룟 유다는 적나라하게 예수님을 배반했고, 열한 제자 중에도 생활환경이 억압을 당하고, 어려워질 때 그들은 다 변절하고 도망친 경험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세 충성심을 상실한 세대가 올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로 4절에 보면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는" 시대가 온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사람들이 마음속에 충성심을 빼앗아 가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본사회가 강한 것은 일본 사람들은 그들이 소속한 집단에 대한 충성심이 말할 수 없이 뜨겁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을 이루어 놓고 만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회의 크나큰 병폐는, 우리 한국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집단에 대한 충성심도, 사회에 대한 충성심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에 가장 부족한 것은 충성심의 부족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죽도록 충성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배신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성령께서 주님의 백성들의 마음속에 이 충성스러운 마음의 열매를 맺으려고 애를 쓰고 계십니다. 성경 요한계시록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네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를 믿는 사람만이라도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 교회에 대하여 그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며 충성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여덟째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맺으시는 열매는 온유의 열매인 것입니다.
온유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 잘 길들임을 받아 순종하는 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산과 들에 사는 사나운 짐승은 대개 거칠고 험한 삶을 살고, 늘 위험에 노출됩니다. 곰이나 사자나 호랑이나 여우나 이런 온유하지 않은 길들임을 받지 않은 짐승들은 험산 준령 바위틈에 살고, 낮에 들로 내려오지 못합니다.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고, 심한 어려운 환경가운데 고통을 받고 삽니다. 그러나 온유한 짐승들 보십시오. 사람이 기르는 가축은 온유한 짐승들이며, 길들임을 잘 받은 짐승들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보호와 돌봄을 받아 평안하고 복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사람의 생각에는 사나운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잘살 것같이 생각합니다. 협박하고 공갈하고 폭력을 사용하고 남에게 해를 가하는 사나운 사람들이 잘 살 것 같지만은 그러나 아직 우리의 경험 속에 보면 이와 같은 사나운 사람, 폭력배들이 이 땅에서 화평을 즐기고 잘사는 것을 우리가 보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약속한 것은 무엇입니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고, 풍부한 화평으로 즐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온유한 사람은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돌보아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약한 자를 대적치 말라고 하셨으며, 오른 뺨을 치면 왼 뺨을 돌려되며,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고,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주고라도 악한 자와 싸우지 말라고 했었습니다. 온유한 사람이 현실적으로 눈에 보기에는 언제나 손해를 보고, 상처를 입는 것 같지만은 먼 눈으로 보면은 땅을 차지하고 풍부한 화평으로 사는 사람은 온유한 사람, 온유한 민족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성령이 맺기를 원하시는 이 온유의 열매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그와 더불어 우리에게 넘치는 복을 내리어 주시는 것입니다.

아홉째 열매는 절제의 열매인 것입니다.
절제는 분수에 맞게 조절하고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넘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좌로 우로나 치우치면 그것은 나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도 절제가 있어야 좋아지는 것입니다. 뜨거운 신앙은 좋은 것입니다만, 그러나 절제를 잃어버리고 뜨거운 신앙을 갖는다고 해서 가족과 생활을 저버리고 도를 넘치게 되면 광신이 됩니다. 나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를 주의 종으로 써달라고 내가 서대문에 있을 때 사무실에 왔는데 제가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슨 자격으로 우리 교회에서 일하기를 원합니까? 그러니깐 나는 뜨거운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뜨거운 신앙을 가진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러니깐 나는 예수를 위해서 우리 처자를 분토와 같이 버렸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내가 앉아있다가 나도 당신을 분토와 같이 버립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분수를 뛰어넘은 조절이 안되는 신앙인 것입니다. 그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자기 처자를 분토를 같이 버린 것이 그게 신앙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대단한 잘못된 병든 신앙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시한부 종말론에 빠져서 광신적으로 날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모두 절제를 잃어버린 신앙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이 강요하신다면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아버지는 아버지의 일을 하고, 어머니는 어머니의 일을 하고, 자식은 자식의 일을 하고, 생산직은 생산직에 종사하고, 사무직은 사무직에 종사하면서 예수를 잘 믿고 있으면, 주님이 오시면 그대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대로 혹은 자다가 올라가고, 혹은 일하다가 올라가고, 혹은 아침밥 먹다 올라가고, 언제고 내가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성실한 인생을 살아가면 어느 자리에라도 올라가지 날짜를 정해놓고 떴다 놓았다 집안을 다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모여 가지고서 열광적으로 고함을 치고 이래서 잘 믿는 사람이라는데 이런 사람을 주님께서 데리러 오지 않습니다. 주님이 정말 강림하신다면 이런 사람은 버리는 것입니다. 절제 있는 신앙, 아담한 신앙, 정상적인 신앙, 이런 신앙을 하는 것이 참된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물질세계나 영적인 세계에서 똑같이 정확한 질서와 평온의 법도로 다스리고 계신 것입니다. 나쁜 일은 말할 필요 없거니와 좋은 일에도 언제나 절제와 발란스 즉 평형을 잃어버리면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수아 1장 7절에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치우친 신앙은 좋은 것이라도 그것은 즉 나쁜 것으로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중농지도를 취할 줄 아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절제의 영이신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의 모든 삶에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분수를 깨닫게 해 주시고, 우리 인생을 조절해서 살며, 절제심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열매를 맺어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 안에는 당장 성령께서 들어오셔서 그때부터 열매맺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성령의 소원을 쫓아 열매 맺기를 소원하고 그 열매를 간구할 때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에게 충만한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시기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8절로 9절에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열매맺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실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면서 우리의 삶 속에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처럼 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응답해주기는커녕 와서 저주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성도는 성령을 우리 속에 모시고 있습니다. 성령은 여러분이 알든 모르든 바람같이 이미 여러분 곁에 있고 여러분 속에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을 통하여 이 열매를 맺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러한 것을 금할 법이 없나니라. 성령의 열매가 얼마나 풍성하고 많은 가에 따라서 여러분의 기도가 얼마나 많이 하늘에 상달되며, 얼마나 여러분을 하나님이 많이 축복해 줄 수 있는 자격을 구비했는가 아닌가의 관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믿되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서 주님께 영광되고, 세상에 하나님의 빛된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간절히 사모하고 기원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이 인간 농사를 지으시는데 예수님의 가지된 우리들을 통해서 성령의 열매 맺기를 아버지는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잘라 버리겠다고 말했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그 열매를 맺기를 위해서 돌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열매를 맺는 자는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예수 이름으로 고하면 다 응답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 있는 성도들이 교회는 열심히 나오고 기도도 열심히 하지만은 너무나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맺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기적으로 맺는 열매지만은 성령의 열매 맺기를 우리가 소원하고 하나님께 간구해야만 이루어지옵니다. 우리 아버지여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도록 기도하고 간청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은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게 도와주시옵소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가득한 성도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자랑스러운 우리가 되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