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993년 1월 17일 제 목 :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성 구 : 고후8:1-9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 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물질은 인간 생활을 풍성하게 하고 복되게 하며 하고싶 은 일을 하게 하고 또 여러 가지 생활의 속박에서 자유롭 게 하는 축복의 수단입니다. 우리는 최근 아프리카 소말리 아에서 식량 기근으로 수많은 어른과 어린이들이 영양실조 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는 것을 매스컴을 통하여 읽고 보았 으며 또 그들을 돕기 위해 물질적으로 직접 열심히 참여하 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궁핍과 가난은 그 자체가 축복일 수 없습니다. 오직 궁핍과 가난 속에서도 낙심치 않고 주님을 섬기는 그 신앙심이 고귀한 것이지 궁핍과 가난 그 자체가 하나님 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병적인 생각 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래 이 세계를 지었을 때 궁핍과 가난을 창조하지 아니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인류를 만드 시기 전에 풍요로운 우주를 지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짓기 전에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실과가 많이 나게 하는 상함도 해함도 없는 에덴의 낙원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오직 아담과 하와의 반역과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가 보는 가난과 저주가 이 세상에 횡 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2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 구주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사 아담과 하와의 반역죄를 예수님께 담당시키시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시고 몸을 찢고 피를 흘리고 죽으심으로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 로 말미암아 온 그 모든 결과를 마지막 아담인 예수께서 청산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 아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청산하시고 원수 됨을 다 청산하 사 하나님과 화해를 가져오시고 치료를 가져오셨으며 오늘 날 소위 말하는 가난과 실패, 저주도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짊어지고 옮겨버리셨습니다. 죽음과 지옥도 주님께서 철폐 하고 만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통해서 우리 영혼이 잘 됨 같이 우리 범사가 잘 되 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길을 열어놓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 서 포로된 자에게는 자유를, 눈먼 자에게는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는 자유케 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전 파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를 충만 히 받은 것처럼 우리의 삶 속에도 물질적인 축복을 풍만히 받아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 을 넘치게 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말한 것입 니다. 없어서 항상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동냥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가 흩 어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은즉 그 의가 영원히 있다고 하심 으로 우리가 복을 받아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베풀 때 복 받은 사람이 되고 의가 영원히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993년도에 성령으로 충만할 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축복도 넘치게 받아야 하는 것입니 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또 하나님이 이를 위해서 그리 스도로 하여금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짊어 지고 가게 하셨은 즉, 마땅히 우리는 진리를 깨닫고 물질적 인 가난의 저주에서 해방되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로부터 풍성한 물질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첫째로, 하나님께로부터 물질적인 복을 받으려면 받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그릇은 우리가 하 나님께 드림으로 준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물질적인 복을 구하는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 데 그 먼저 방법은 탕자적인 방법입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와서 "내게 속한 분깃을 내게 주소서 내게 주소서 내게 주소서" 그는 계속 자기에게 달라고만 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욕심이 주인이 되어 자기 욕망을 먼저 채우려고 강압적으로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자기 중심의 생활, 자기 욕심으로 빼앗으려고만 하는 이러 한 사람은 결국 물질을 얻어도 그것이 방탕의 근원이 되고 파멸의 원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 야고보서 4장 1절로 3절에는 "너희 중에 싸움이 어 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고 말했습니다. 자기 중심으로 자기 욕심으로 잘못 구합니 다. 그래서 물고 찢고 싸우고 죽이고 살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가 복을 받는 길이 있습 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먼저 드림으로 그릇을 준비하면 그 그릇에 넘치도록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에게 동냥을 얻 는 거지도 그릇이 있어야 얻어먹습니다. 쪽박도 없 고 빈 손 들고 나가서 달라고 하면 받아먹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 마태복음 7장 7절로 12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 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 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 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 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 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기 전에 먼저 남을 대접 하라! 그러면 남에게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된 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서 가르치는 것이고 선지자를 통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먼저 대접하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가서 자꾸만 주시옵 소서 주시옵소서 탕자적인 기도를 하면 하나님도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우리가 먼저 드림으로 그릇을 준비하면 하나님께서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게 해주 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한국의 고사에서 참으로 성경적인 가르침과 똑같은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한 가난한 과부가 자식들을 데리고 삯바느질을 해서 사 는데 추운 겨울날 애들은 밖에 놀러가지 못하고 삯바느질 하는 어머니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밖에 눈은 오 는데 배가 고프고 군것질이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웃집 은 잘 사니까 떡을 만들기 위해서 떡방아를 찧고 있습니다. 그래서 애들이 엄마에게 떡을 달라고 조릅니다. 실상을 모 르는 애들이 엄마에게 강요하니까 엄마는 과부로서 외롭게 혼자 살면서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사는데 너무너무 슬퍼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자 애들이 잘못했다고 하자 그는 빨리 부엌에 나가서 얼마 없는 보리쌀을 씻어서 솥에 넣고 잘 눌러 누룽지를 만들었습니다. 보리 누룽지를 큰 바구니 에 담아서 한 보따리를 만들어서 아이에게 이웃 아주머니 에게 갖다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큼직한 보리 누룽지 그릇을 들고 이웃집에 가서 아주머니에게 주길래 그 아주머니가 보따리를 펼쳐 보니 자기 집에서는 개도 안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보리 누룽지에 담겨있는 정 성이 고맙지 않습니까? 아주머니는 부엌에서 따끈따끈한 시루떡을 잔뜩 담아서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집에 돌아올 때는 의기양양하여 김이 무럭무럭 나는 시루 떡을 가지고 와서 잘 먹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먼저 주니까 그 다음에는 돌아오는 것입니다. 주지 않고 그냥 가서 우리 애들도 떡 좀 먹게 해달라고 간청했더라면 욕을 먹든지 쫓겨났든지 거지 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러나 비록 보리 누룽지라도 그릇에 담아서 드리니까 거기 에 시루떡이 실려서 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 도할 때 우리 하나님 앞에 선물을 드릴 수 있는 그릇을 준 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빈손 들고 하나님께 자꾸 주시옵소 서만 하면 하나님이 귀찮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가 그릇을 준비해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그릇에 차 고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릇 준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 리가 드리는 마음,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그릇을 제시하 는 것입니다. 둘째로,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복 주실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이유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 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마치 못 사는 집에 시집간 딸이 친정에 왔다가 나중에 다시 시집에 가는데 눈물을 흘리고 징징 울 때, 친정 어머 니가 그 딸에게 쌀을 바구니에 담아 흔들어서 다시 눌러서 넘치게 해서 보따리를 싸주는 심정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그냥 주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후히 되어 눌러서 흔들어서 넘치게 해서 안겨주리라! 이 하나님의 심 정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에 게 참으로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 게 하기를 원하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수 있는 이유를 우리가 제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돌려드리는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드려야 돌려줄 수 있지 드리지 않는데 돌려줄 수가 없습니 다. 이것이 하늘나라의 법입니다. 엘리야는 건장하고 영양실조도 안 되고 잘 먹고 튼튼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들어 수많은 사람이 굶어죽고 영양실조 에 걸려 허덕이는데 그가 사렙다에 갔습니다. 그 곳에는 과 부 한 사람이 있는데 먹을 것이 다 떨어지고 한 웅큼 남은 밀가루와 조금 있는 기름으로 과자를 구워 먹고 죽겠다고 어린아이와 함께 나무를 줍고 있습니다. 그 불쌍한 과부 앞 에 나아가서 엘리야는 말했습니다. "무엇을 하는가?" "마지 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과자를 구워서 먹고 죽으려고 합 니다." "내가 당신에게 명하노니 그 과자를 빨리 구워서 물 한 사발을 가지고 나에게 가지고 오너라. 그래서 내가 그것 을 먹고 너에게 축복할 터이니 이 가뭄이 지날 때까지 밀 가루 통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기름병에 기름이 마르지 아니하리라" 너무나 가혹한 말입니다. 이 가뭄에 굶 주려 죽어가는 과부와 그 아들이 마지막 과자 하나 먹고 죽겠다고 하는데 이 건장한 엘리야가 그것을 요구하다니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실상 알고 보면 여기에 하 나님의 법칙을 작동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란 드려야 돌려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과부의 집에 하나님께서 축복하기 위해서 엘리야를 보내시사 드리 고 받는 법칙이 작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돌 려준다는 하늘나라의 법칙은 절대로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있는 것 주면 하나님이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과부는 마지막 남은 과자를 물 한 그릇과 함께 가지고 왔 습니다. 엘리야는 인정사정 없이 그들 앞에서 그것을 다 먹 어버렸습니다. 가혹하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이 그 때부터 작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에게 주 었은즉 그때부터 하나님이 돌려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가뭄이 다 지날 때까지 그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기름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작동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먼저 드리고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법칙을 어기고 하나 님께 드리지 아니하고 자꾸만 달라고 고함을 치면 이것은 탐욕에 서서 부르짖는 것이요, 하나님이 응답할 수 없는 것 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든 우주의 법칙이 심고 거두는 법칙이 라는 것을 압니다. 농부들은 너무나 잘 압니다. 아무리 곡 식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손에 쥐고 있어서 복을 달라고 한다고 수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심어야 수확의 법칙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한 올을 심든 한숨을 심든 심으면 수확 의 법칙이 역사해서 싹이 나고 줄기가 나고 잎이 피고 꽃 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수확의 법칙은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심지 않고는 이 수확의 법칙을 작동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물질적인 축복 도 자연법칙과 같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 니다. 성경에 고린도후서 9장 6절로 10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 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 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 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 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 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히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 하게 하시리니" 그러므로 꼭 농부가 밭에 씨앗을 심는 것처럼 이 성경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헌금을 드리는 것이 바로 믿음 의 씨앗을 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 나님의 사업을 위해서 십일조와 헌물을 심을 때 수확의 법 칙이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이제는 열매 맺는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도 심지 않고 그 냥 앉아서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 님의 법이 작동 안 하는데 역사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우리의 사랑 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8절에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름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라" 사랑이란 증명되어야 합니다. 사랑이 가 짜인지 진짜인지 증명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어떻게 증명됩니까? 사랑은 증명되지 않고는 아무리 입술로 사랑 한다고 해도 가짜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주셨으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한 것은 주심으로 증명됩니다. 무엇을 주었느냐? 독생자를 주심으로 하나님 의 사랑의 극진하심을 증명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아무리 입술로 외쳐도 시간도 드리지 않고 몸 도 드리지 않고 십일조와 물질도 드리지 않고 주여! 주를 사랑한다고 말해봤자 그것은 공기를 울리는 허탄한 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증명하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을 참으로 알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경 에는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하나님이 우리의 사랑을 보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우리를 죄에서 건지고 질병에서 건지고 저주와 낭패와 가난에서 건지고 지옥에서조차 건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진실되게 증명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주여 주여 합니다. 저 는 35년 동안 목회하면서 많이 보았습니다. 어떠한 사람은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되어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정말 시 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몸을 드려 충심으로 주님을 섬 기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의 생활 속에는 주님을 사 랑하는 증거가 뚜렷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과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교회에 나 오면서 교회 직분은 높아졌지만 하나님 앞에 인색하여 몸 도 물질도 시간도 드리지 아니하고 교회에서 잔소리만 하 고 불평만 하는 사람 많이 봤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주를 사랑한다고 해도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짓된 사랑이 요 진실한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축복해 주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1993년도에 주를 사랑하는 것을 보여드려야 주님께서 그 사랑에 입각해서 역사합니다. 남편 이 아내를 사랑하게 되면 무엇을 해주어도 아깝지 않습니 다. 또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면 온 몸과 마음 다 드려 섬겨 도 아깝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 자식에게 모 든 것을 주고 싶지만 사랑이 식어지면 우리는 주고 싶지 않습니다. 내 손에 움켜쥐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게 되면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 랑하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산울림과 같아서 사랑을 주면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금년도에 주님께로부터 넘 치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 사랑으로써 실천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드리는 것은 믿음의 행위적인 표시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 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상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빈손으로 돌려보내길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영 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한 삶을 허락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을 믿어야 만 된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믿을까요? 야고보서 2장 17절로 18절에 "이와 같 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 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 라" 여러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다고 하면 우리 믿는 증거를 내놓아야 합니다. 행 함이 있어야 돼요! 믿음의 척도는 바로 드림에 있는 것입 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어도 하나님께 드리는 데 인색하면 그 믿음은 보잘 것 없는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벳세다 광야에 나가서 설교하실 때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 기만 명이 와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져갈 때 하루종일 예수와 같이 있은 그 무리들은 배가 고파서 집에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빌 립을 부르셔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했습니다. 그때 안드레가 먹을 것이 있는가 찾아다녔는데 한 소년이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점심 도시락을 저녁에 먹 으려고 돌아앉아 풀고 있습니다. 여기에 안드레가 가서 그 에게 믿음을 촉구했습니다. "너 혼자 먹으면 너만 배부르지 만 만일 네가 이 점심 도시락을 예수님께 드리면 예수님이 이것을 받고 기적을 행하여 모든 사람이 다 배불리 먹게 할 것이라 그러므로 이 점심 도시락을 내게 빌려다오." 이 소년이 믿음이 없었으면 절대로 점심 도시락을 내놓 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배가 고픈데 내가 줌으로 나는 없 게 되고 마는 것인데 이것을 그냥 내놓으려고 합니까? 이 소년이 진실로 예수께서 이것을 가지고 기적을 행한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 믿음의 증거로서 자기가 꼭 먹어야 될 점심 도시락을 내놓은 것입니다. 믿음은 행함으로써 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소년이 앉아서 주님이 이 모든 사람을 먹여줄 줄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아무리 말 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믿음이란 행함으로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이 소년은 배가 고픔에도 불 구하고 그 점심 도시락을 안드레의 손에 맡기고, 안드레는 이 소년의 믿음을 의지해서 예수님께 이 도시락을 드렸습 니다. 에수님이 도시락을 받고 감동했습니다. 비록 조그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도시락이지만 성경에 서는 뭐라고 합니까?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더러 명하여 바다에 던지우라"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이 소년의 조그만 믿음이지만 주님은 그 믿음을 손에 잡았기 때문에 큰 역사를 베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주님께서 여러분의 조그만 믿음이라도 붙잡으 면 그를 통해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러나 이 믿음은 행함이 없을 때 이 것은 완전히 죽은 이론에 불과한 믿음입니다. 이 소년이 실천적인 믿음을 행할 때 예수님이 그를 받아 서 축사하시매 떼어서 그 많은 사람을 다 배불리 먹이고 남은 것을 거두니 열두 바구니가 되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시편 81편에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 우리라" 했는데 우리가 믿음의 행위를 하고 입을 넓게 열 면 우리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 도 햇빛을 주시고 비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하물며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피로써 언약 맺은 백성에게 무엇을 먹을 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데 부족하게 할 턱이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시편 기자 다윗은 말하기를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있어야 남과 나눌 수가 있습니 다. 성경에는 저가 흩어 가난한 자에게 주었은즉 그 의가 영원히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주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그 의가 영원히 있지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 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줄 수 있기 위해 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 기 위해서 금년도에는 하나님께 축복 받을 수 있도록 우리 가 그릇을 준비하고 하나님이 축복할 수 있는 이유를 제시 하고 믿음으로써 행위로 실천함으로 여러분의 삶 속에 영 적인 풍성한 축복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 모자람이 없는 넘치는 복을 받아야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리 스도 안에서 주신 것이므로 우리가 마땅히 소유해야 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 나니 침노하는 자가 빼앗느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은혜 속에 우리가 쳐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것을 빼앗아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소유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이것을 막지 못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 다. 어느 장로님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연초가 되니까 각 선교회에 모일 때마다 일년 간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 헌 금 작정을 하는데 이 장로님이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어떻게 할까요?"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기를 "네가 헌금 작정한 것은 하나님께 청구서를 내는 것이다. 일년 동안 하나님께 이런 사업을 하겠으니 도와주소서 하 고 청구서를 내는 것이다. 믿음으로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청구서를 내놓아라. 그러면 내가 그 청구하는 대로 복을 주 고 거기에 보태어서 너의 생활에도 부족함이 없이 해주마."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을 제게 간증해 주었습니 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상당히 감동했습니다. 사실입니다. 주를 위해서 일하겠다고 하나님께 작정하는 것은 하나님께 청구서를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입을 넓게 벌리는 것입 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채워주실 뿐만 아니라 넘치게 하 셔서 여러분의 삶 속에도 부족함이 없게 만들어 주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 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 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저가 부유 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하 심으로 인하여 너희로 부유케 하려 하심이라"(고린도후서 8:9) - 기도 -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오늘날 많 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영적으로는 부유하면서 물질적으로 는 심히 가난한 사람이 많습니다. 가난이 마치 신앙이 좋은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내 하나님 아버지시여! 모든 일 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사람이 의가 영원히 있는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마귀에게 빼앗긴 모든 부요를 금년도에는 도로 찾아오게 도와 주시 옵소서. 저주를 털털 털어버리게 도와 주시옵소서. 가시와 엉겅퀴를 제껴버리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 나님이 주신 놀라운 축복을 다 소유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 장하고 이웃을 돕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 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