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2월 7일
제목 :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성구 : 마태복음 11:28-30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옛 시인이 읊은 시 한 절이 있습니다. '여보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
우랴 늙기도 서럽거든 짐을 조차 지실까' 이 시속에 젊은
이는 늙은 노인이 무거운 짐을 지고 땀을 흘리며 고생고생
하며 걸어가는 것을 보고 측은히 여겨 그 짐을 대신 짊어
지고 그 늙은이를 쉽고 편안하게 걸어가게 하겠다는 것입
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것을 보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
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
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에
쉼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멍에는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곳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쉽고 가
볍게 인생 길을 걸어가도록 우리의 짐을 대신 져 주시겠다
고 간절히 초청하고 계십니다. 이 얼마나 은혜로운 초청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로, 우리 인생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없었던 적
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에 낙원을 지으시고 아담
을 그곳에서 살게 하셨던 때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에덴의
모든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돌보
셨습니다. 아담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섬기며 살
면 그 외의 것은 하나님이 직접 책임져 주셨습니다. 그러
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질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다 돌보시고 책임지시는데 무
슨 짐을 질 수가 있겠습니까?
훌륭한 부모님 슬하에서 성장하는 어린이들은 무엇을 먹
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어디에서 잠을 자
며, 어떻게 살아나갈까? 등의 생각은 아예 전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은 부모님이 책임지고 돌보
아 주시기 때문에 그들은 염려와 근심에서 자유롭고 수고
하고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어 즐겁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장성하여 부모의 슬하에서 떠났을 때 그때
부터는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자기의 삶을 책임지고 돌보아야 하기 때
문입니다. 자기의 삶을 남이 돌보아줄 때는 편안하게 살
수 있지만 자기가 책임지고 자기가 돌보아야 될 때는 그
때부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생긴 이유는 선악과의 시
험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의 모든 환경을 다 정
비하고 예비해 놓으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기를 동산
의 모든 실과는 다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
는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너희들이 반드시 죽으
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선악과의 시험은 무엇일까요? 선악과는 하나님의 주
권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희가 선악과를 먹지 않으
므로 하나님의 주권 하에 살 것이냐, 선악과를 따먹고 하
나님의 주권을 벗어나서 너희 주권으로 살 것이냐' 이것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또다시 '하나님의 돌보심 하에서 살 것
이냐, 그렇지 않으면 네가 네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며 살
것이냐' 이것을 선악과 앞에서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데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꾀임을 받아서 그만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께 저항하고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살지 아니하고
이제는 '내가 나를 다스리며 내 스스로가 내 인생의 선악
을 판단하는 주권자가 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자
기의 운명은 자기가 돌보겠다, 하나님께 돌봄을 받을 필요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책임질 필요 없습니다. 내
인생 내가 돌보겠다' 그렇게 선언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주권이 거하시고 하나님이 지으시고 돌보시는 에
덴에 이젠 더 이상 살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의 독립을 선
포한 이상 에덴에서 쫓겨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에덴에
서 쫓겨난 이상 이제 자기의 운명은 자기가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가운데 보면 셋째로, 수고하고 무거
운 짐을 진 인생이 돼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날 인간을 하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간이
라고 말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을 진 인간으로 만들지 않았는데 이제는 인간이 스스로 선
택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간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일을, 짐을 자청해서 짊어졌습니다. 원래 일은 하나님의 것
이고, 원래 짐은 하나님이 짊어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은 홀로 일하시고 하나님 홀로 짐을 짊어지시고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순종하는 인생들에게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나 일에서 해방되어 살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하나님의 섭
리이지만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받들길 원치
않았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등지고 만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은 자연적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인간은 죄짐을
지게 된 것입니다. 에덴을 떠나고 난 후 자기들이 아무리
의롭게 살려고 애를 써도 마귀와 부패가 그들을 엄습해 오
는데 마귀와 부패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죄 짐을 무겁
게 걸머지고 죄악의 포로가 되고 죄의 사슬에 묶이게 되고
그래서 죄 된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죄 짐을 지고 나
중에 죄의 책임을 걸머지고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에 떨
어질 수밖에 없는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
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오자 사랑의 근
원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사랑의 근원이 사라진 이상
그들의 마음속에 미움이 꽉 들어찼습니다. 하나님과 인생
사이에도 원수가 되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원수 되었습
니다. 그래서 가인이 아벨을 돌로 쳐죽인 이후로 해서 인
류의 역사는 피로 물든 역사였습니다. 전쟁과 전쟁의 소문
이 나지 않은 해는 한 해도 없었습니다. 인간의 오늘날 문
명이라는 것은 전쟁을 하기 위해서 개발한 무기 체계를 중
심으로 해서 인간의 문명이 발달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미움은 온 인류의 역사를 완전히 짓
밟았습니다. 살인하고, 도둑질하고, 파괴하는 일이 인간의
본능처럼 되어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래서 미움의 무거
운 짐을 걸머지고 아무리 사랑하려고 발버둥쳐도 사랑하게
되지 않습니다. 이 미움 때문에 마음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룩해도 서
로 부부간에 사랑하려는데 미움이 들어옵니다. 부모 자식
간에 사랑하려고 하는데 미움의 문제가 들어옵니다. 형제
와 동기간에 사랑하겠다고 하는 데도 미움이 언제나 들어
옵니다. 이웃 간에 사랑하고 살려고 하는데 사랑보다 미움
의 무거운 짐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들을 갈라놓고 마는 것
입니다.
그 뿐 아니라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자 말자 질병의 무거
운 짐을 짊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한 번 나서
죽게 되어있지만 죽을 때까지 무거운 질병을 짊어지게 되
었습니다. 가지가지 질병으로 고생을 합니다. 아무리 과학
이 발달되어서 좋은 의약품이 많이 나왔다고 해도 그 약품
으로 도저히 정복할 수 없는 질병들이 우리 사회에는 꽉
들어 차 있습니다. 이러므로 인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질병
의 짐을 짊어지고 고통가운데 몸부림치며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습니다. 거기에다가 플러스해서 가난과 저주의
짐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는 무서운 굶주림의
대륙인 것입니다. 동남아의 대다수의 나라들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것입니다. 남미의 수많은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진실로 배부르게 먹고
잘입고 잘 사는 문명국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난 다음 이 땅에서 얻은 것은
가시와 엉겅퀴입니다. 그리고 가난과 저주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이 운명을 해결하려고 온갖 몸부림을 다 치고 있
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마지막
죽음과 절망의 짐이 인간을 눌러서 파멸시키고 마는 것입
니다. 인간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번 태어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는 심판이 있습니
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이 죽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죽음은 모든 인간의 성취를 무로 돌려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은 긴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라고 표
현합니다. 인생을 고해라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입
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인생들은 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러기 때문에 주님께서만이 우리보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인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 철학자들
조차도 인간은 절망적인 존재라고 말합니다. 죄책과 정죄
의 절망에 빠졌으며, 허무와 무의미의 절망에 빠졌으며, 죽
음과 무의 처절한 절망에 빠진 존재가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존재를 오늘 실존주의 철학
자들도 절망적인 존재라고 말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을 진 인생, 그리고 절망적인 존재, 이러한 인간에게 필요
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희망입니다. 개인이나 사회나 국
가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 때
필요한 것은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조국도 오랜 세월동안 고난과 괴로움을 겪
고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 민족에게 지금 가장 절실하게 필
요한 것은 희망입니다. 오늘 한국의 정치가들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도 국민에
게 희망을 주는 비전을 제시하고 오늘날 정치인들이 국회
의사당을 싸움으로 파쟁으로 보내지 말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정치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국민에
게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고 국민이 따라갈 것입니다. 희
망을 주지 않을 때 지탄을 받고 버림을 당하고 말 것입니
다.
이러므로 오늘 절망적인 인생,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인데 이 희망을 누가 가져다
줄 수 있습니까? 사람의 힘으로 어찌 죄악을 청산해 줄 수
있겠습니까? 미움의 문제를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해결
할 수 있겠어요? 질병의 문제도 해결 안됩니다. 가난과 저
주의 문제도 인간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죽
음의 절망은 아무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그러므
로 해결할 수 없는 절망의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는 것입
니다.

그런데 오늘 이 성경말씀에 보면 넷째로, 예수님께서 오
셔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 분이
누구입니까? 감히 어떻게 이분이 수고하고 무거운 절망에
처한 인생들을 다 내게로 오라고 그렇게 담대하게 초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을 쓰고 오시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와 더불어 여호와 하나님 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좇아 그가 말씀으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을 지으셨으며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이가 바로 예수
님이신 것입니다.
성경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
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
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
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신
것입니다. 이 창조주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들
어서 2000년 전에 이 절망에 처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생들, 반역하고 떠나간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성
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인간으로 탄생하시
고 태어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문제는 인간이 해결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문제를 하나님이 짊어질 수
없습니다. 인간의 문제를 짐승이 짊어질 수 없습니다. 인간
의 문제를 천사들이 짊어질 수 없습니다. 인간의 문제는
사람이 와서 해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면서 창조주시면서 그 영광 다
벗어버리고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사람으로 태어났고 사람
으로 30살까지 모든 간난신고를 다 겪으면서 주님이 자라
났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오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그
가 일어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에서 소리 있어 가로
되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아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으시고 그리
고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아 광야에 들어가서 40일 주 40일
야 금식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주님께서 나와서
비로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지옥과 같은 절망에 주님께서 천국을 가지고 오신 것입
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율법이나 제도를 가져온 것이
아닙니다. 사회 개혁이나 그런 정치이념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이 땅에 천국을 가지고 와서
절망적인 존재,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는 곳마다 죄인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귀신은 쫓아내었습니다. 병든 자
는 고쳤습니다. 죽은 자는 살리시고 배고픈 자는 먹이셨습
니다. 불안과 절망에 떠는 자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사람
들의 마음속에 기막힌 희망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리
스도 곁에만 가면 희망이 하늘의 구름처럼 피어올랐습니
다. 그러기 때문에 절망에 처한 사람들이 그리스도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로 모여 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희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비록 나사렛에서 태어났
고 그 당시에 사람들이 인정하는 가문도 없었고 교육도 없
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예수의 말씀을
따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구원과 희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을 쫓아서 로마인들
과 유대인들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잡혀서 급기야 그는 십
자가에 올라가서 못 박힌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절
망적인 인간을 대속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 흘려 고난
당했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당할 것은 그리스
도 오시기 전에 600여 년 전에 이미 예언되었던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 사건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
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
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
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한 것입니
다. 이미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그리스도
오시기 600여 년 전에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를
위한 대속의 고난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의 오시기 1000
여 년 전에 벌써 다윗은 시편 22편에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그리스도 십자가
의 고난이 절정에 달한 것을 분명하게 시편에 기록하고 있
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의 죽음은 우연한 순교자의 죽음도 아니요
힘이 없어 잡혀 죽은 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과 작정에 의해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죽음에 내놓았는데
로마사람들과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시기하고 질투해서
그들의 손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고난 당하신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서 고난 당하신 것입니다. 창조
주가 피조물을 위해서 고난 당한 것입니다. 죄 없는 사람
이 죄 있는 사람을 위해서 고난 당한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전혀 없는 분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있는 인
간의 짐을 짊어지고 주님께서 대신 고난 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에 그 십자가의 멍에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악을 일생동안 청산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과거
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주님께서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주님께서 미움을 찢어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성령으로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이 그리스도의 예수의 사랑
을 가지고 사람들을 점령하므로 미움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질병의 모든 가시를 뽑아 버렸습니다.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습
니다. 예수님은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 당하
심으로 모든 아담 이후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고
아브라함의 복이 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다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시고
영생과 천국 문을 열어 제껴 놓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
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만이 오늘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절망에 처한 자에게 영원한 소
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소망이신 것입
니다. 예수의 복음은 우리에게 소망이신 것입니다. 예수 믿
는 것은 소망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나
가서 소망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만이 소망
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이뤄 놓으신 이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창조주로서 이제 배후에 서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
러분과 나의 인생의 운명을 친히 책임져 돌보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죄 짐도 주님이 책임지셨으니 우리가 책임질
필요가 없습니다. 미움도 주님이 짊어지고 책임져 주셨고
질병과 가난과 저주와 죽음도 예수님이 친히 짊어지고 책
임을 져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초청
하는 것은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도 젊은이가 늙은 사람보고 '여보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서러워
라 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하면서 늙은이 짐을 젊은이가
받아 짊어짐으로 늙은이를 짐에서 해방시켜 쉽고 가볍게
걸어가게 하는 것처럼 예수님 친히 우리에게 오셔서 그는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짐을 다 해결하시고 난 다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남녀 노유
빈부 귀천 동서양을 막론하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할렐루야! 주님께서 우리의 짐을 대신 책임
안 져주신다면 어떻게 우리가 쉴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과 나의 짐을 지시는 하나님이시며
여러분의 짐과 수고로움을 대신 짊어지고 문제를 해결하시
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한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
손하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란 마음의 온유와 겸
손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아담과 하와를 위
해서 돌보아 주고 그들의 인생을 책임져 주려고 해도 아담
은 고집스러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
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기 때문
에 다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
한 하나님이다. 내가 너희를 책임지고 너희 짐을 져 주길
바라니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나오라' 온유한 마음이란 부
드럽고 유순하여 잘 길들임을 받아서 주인을 따르고 믿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축들은 들짐승과 달라서 유순하고 길이 잘 들
여져서 주인을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죽이는데 끌고 가
도 꾸벅꾸벅 따라가는 것이 가축인 것입니다. 온유한 마음
을 가진 사람은 부드럽고 유순하여 주인을 믿습니다. 주님
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좀 믿어다오. 내가 너희의 모든
짐을 다 짊어졌으니 그러므로 나를 믿고 너희 짐을 내게
맡겨버리라"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
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지금
내가 볼 때는 나의 삶이 엉망이 되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인간의 척도로 재지 말라 하나님께서 창조적으로 모든 것
을 합동하여 유익이 되게 하실 수 있으니 온유한 마음으로
내게 맡겨라. 고집스럽게 네가 걸머지고 네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악과를 따먹고 네가 스스로 이게 좋다, 나
쁘다 그런 결정하려고 하지 마라. 온유한 마음으로 내게
맡겨라.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그리하면 저가 너
를 돌보시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그 길을 정할지라도 발걸
음을 옮기시는 이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와
사람의 판단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평가해서는 안됩니
다.
우리는 우리 눈앞에 일어날 일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영
원을 보시고 우리의 운명을 주님께서 이끌어 가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발버둥치지 말고 반항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
고 원망하지 말고 온유한 마음으로 내게 맡겨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으나 그들은 고집스러웠습니다. 하나
님이 인도해 가는데 왜 이 길로 인도해갑니까? 왜 길이 험
합니까? 왜 괴롭습니까? 왜 만나를 줍니까? 고집스럽게 저
항을 했습니다. 그 결과로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온유
해야지 고집스럽게 불평하고 원망하고 탄식하고 저항하고
반항하지 말고 주님께 전폭적으로 부드럽게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물에 빠진 사람이 발버둥을 치는 동안에 그를 건지러 들
어가면 건지러 들어가는 사람까지 잡혀서 죽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축 늘어져서 온유하게 그 몸을 맡길 때에야
건져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께서 온유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깨어져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흑
같이 어두워도 주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나를 사랑하사 십자가를 짊어지신 분이시니 나의
모든 인생의 험한 길을 주님께 내어 맡깁니다. 주님께 짐
을 맡깁니다.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겸손하다고 말했습니
다. 아담은 자기도 하나님이 되겠다는 교만이 꽉 들어차서
순종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겸손하니 너희도 겸손해서 자기를 낮추고 주님께 순종하
라. 아담처럼 자기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교만해 가지고서
목이 뻑뻑해서 불순종하는 그런 것 하지 말고 이제는 너희
들도 겸손하라. 내 십자가를 보았지. 내가 얼마나 온유하게
하나님께 내 운명을 내어 맡겼으며 내가 얼마나 겸손하게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였는가!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멍
에입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나는 십자가의
멍에를 메고 하나님께 죽음까지라도 완전히 믿고 맡겼다.
십자가에 올라가는 것까지라도 나는 완전히 순종했다. 그
러므로 너희들도 이제는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나
처럼 온유하여 앞길이 칠흑같이 어둡더라도 하나님께 내어
맡기라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
까 통곡하면서라도 믿고 맡겨라. 그리고 하나님께 순복하
라. 그러면 하나님이 내게 부활을 가져온 것처럼 내가 너
를 책임져 주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
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내가 너의 모든 문제를
책임져 주므로 너의 마음에 쉼을 얻으리니 나의 멍에는 쉽
고 나의 짐은 가벼우니라 누구든지 나의 부탁을 받고 나의
무겁고 고된 문제를 책임지고 돌보아 준다면 나는 그 짐에
서 놓여남을 받고 삶을 쉽고 경쾌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나의 수고하
고 무거운 짐을 책임지고 돌보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그 발 앞에 엎드려 온유
하게 그 품에 모든 것을 믿고 내어 맡기고 겸손하게 성령
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면 우리의 마음속에 큰 쉼을 얻고
평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고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일하
여 주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끝에는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를 향하는 나의 마음은 환란이 아니고
평안이요 너희에게 소망을 주려는 것이라고 예례미아서에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고개 숙
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조금도 잘 나지 못
한 우리가 고집이 세어 가지고서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
고 완악하고 교만해서 불순종한 성품을 우리 조상 아담 하
와 때부터 받아 가지고 하나님을 저항하고 반역하고 대적
하고 살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찢기고 밟히
고 짓눌려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예
수님께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사람으로 오셨고 하나님
앞에 온유한 마음으로 죽음까지도 다 믿고 맡기고 처절한
고통에도 순종하고 따라가므로 우리를 구원에 인도한 것처
럼 우리도 예수의 멍에인 십자가를 걸어지고 나를 십자가
에 못박고 온유하고 겸손하여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순종하고 따라가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자꾸만 왜
이리 갑니까? 왜 이렇게 됩니까? 왜 나를 이렇게 합니까?
그런 질문하지 말고 온유하게 맡기고 묵묵히 순종하고 따
라가면 우리 주님께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만유를 다
스리는 지혜를 가지고 종국에 터널을 지나서 우리를 밝은
아침으로 이끌어 갈 줄로 믿습니다. 이러므로 아버지여 우
리에게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르쳐 주옵소서. 오늘 성
찬을 땔 때 바로 그 십자가에서 주님이 온유하고 겸손해서
이 몸을 찢고 이 피를 흘린 것처럼 우리가 이 몸을 먹고
이 피를 마실 때 주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을 받아들이
게 도와주시옵소서. 온유하게 믿고 겸손하게 따르는 우리
가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