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2월 28일
제 목 : 유라굴로라는 광풍
성 구 : 행27:9-26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유라굴로라는 광풍"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광풍을 만나 개인
의 삶과 국가가 난파를 당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우리나
라도 1910년 국가적 치욕인 한일합방을 강제로 당하여 나
라를 잃는 광풍을 만났고 여기에 대하여 국권을 회복하려
는 거국적 운동으로 1919년 기미년 3월 1일 독립만세 운동
이 전국 강산을 진동했던 사실이 있습니다. 그후 또 다시
해방된 조국에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당의 침략으로
견딜 수 없는 광풍에 민족과 국가가 송두리째 침몰할 뻔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이처럼 크고 작은 많은 광풍과 풍랑을 겪
으면서 살아왔습니다. 왜 우리에게 광풍이 다가오는 것일
까요? 우리 개인이나 가정, 우리의 생활과 혹은 국가에서
무엇 때문에 이 광풍을 당해야 할까요? 광풍을 피할 수는
없었던가요? 여기에 대한 해답으로 오늘 읽은 말씀을 통해
서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얻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 선생이 복음을 증거
하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루살렘 유대인들에게 잡혀 로마
의 황제 시저에게서 재판을 받기 위하여 죄인들과 함께 쇠
고랑에 묶여서 로마의 군인 백부장 율리오의 인솔하에 알
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항해 중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지중
해에 있는 그레데 섬에 도착해서 미항이라는 곳에 잠시 머
물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양식과 물을 공급받고 배를 돌
보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바울 선생이 기도 중에 하나님께
계시를 받았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고자 하는 것은 하나
님의 뜻이었지만 가는 도중에 모든 일을 하나님이 돌보시
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그 길을 정할지라도 그 발걸
음을 옮기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보좌에 앉아 영적인 일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적인 삶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돌보시
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
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중의 한 마리라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했습니
다. 우리의 머리털 수까지 세신 바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현실적인 삶에 무
한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비
록 죄수가 되어 쇠고랑에 묶이어 죄수들과 함께 로마로 압
송 당하고 있지만 그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7장 10절에 보면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
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그러므로 겨울동안 지중해를 항
해하지 말고 그레데 섬의 미항에서 과동하고 가는 것이 좋
다...그렇게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
배를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로마의 백부장 군인 율리오는
바울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지 아
니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편안한
데 무슨 잔소리냐 바울이 무엇이기에 하나님 말씀이 이렇
다 저렇다 말하냐...그래서 그는 선주와 선장에게 물어봤습
니다. 선주와 선장은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바울이 뭐기에
그런 소리를 하냐 우리는 잔뼈가 굵어지도록 지중해를 항
해하면서 살았다 지중해를 왔다갔다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
는 우리들이 지중해의 물길도 알고 바람도 알고 형편도 알
지 바울이 뭘 아느냐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 좁은 미항을
떠나서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말했습
니다. 율리오가 가만히 그 말을 들으니까 그 말이 옳은 것
같거든요. 선장이나 선주나 전문가들의 주장이 옳은 것 같
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
님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선주와 선장이나 전문가의 말을
듣고 배를 떠나자 했습니다.
그래서 닻을 올리고 돛을 높이 달아서 떠났습니다. 마치
순풍이 불어오니 득의한 줄 알고 의기양양해서 떠났으나
얼마 있지 아니하여 열대성 거대한 태풍이 육지로부터 지
중해로 내리 불어닥치니 순식간에 배는 방향을 잃어버리고
지중해 한가운데로 몰려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력을
다하여 배를 바로 잡으려고 하나 안 되어 이틀만에 모든
화물을 다 물에 던지고 사흘 후에는 도구까지 다 던져버렸
습니다. 그래도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고 달과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바다는 그 무서운 포효하는 소리를 내고
지금이라도 배를 삼킬 듯 하고 온 천지가 아득했습니다.
보름동안 배는 정처 없이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 떨어지자 배 안에 있는 모든 사
람들은 희망을 저버렸습니다. 거기에는 선장도 선주도 전
문가도 다 아무도 도움을 베풀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
들은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가다가 그 거대한 풍랑에 부
딪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이 율리오가 만일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알고 기도했더라면 바울의 말을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유라굴로의 풍랑을 피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도 종종 그와 같습니다. 우리는 천상을 향해서
인생의 배를 타고 갑니다. 삶이라는 배를 타고 만경창파하
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배를
타고 인생을 가는 것은 70년에서 80년인 것입니다. 이 동
안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계시를 준 것처럼 우리에게도 계
시를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시의 말
씀을 우리가 잘 받아서 마음에 간직하고 그것을 지키면 우
리의 일생에 유라굴로의 풍랑을 맞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최후에 맞이하는 죽음이라는 거대한 유라굴로와 거기에서
지옥이라는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입
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 계시는 오늘 전체에게 퍼지
고 있습니다. 이것은 회개하여 각각 예수를 믿고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구원을 받고 이 인생 배를 타고 항해를 해
야지 예수를 믿지 않고 우리가 인생의 배를 타고 가면 반
드시 유라굴로의 풍랑에 부딪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우리
의 죄 때문에 그 몸을 찢기고 피를 쏟았습니다. 그를 통해
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갚아주시고
우리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장차 다가오는 죽음이란 거
대한 유라굴로를 피해서 우린 하나님이 예비한, 눈물과 근
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원한 천국
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
스도를 거부하고 인본주의에 서서 인간의 이성이나 지혜나
지식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반드시 한번은
삶의 최후의 유라굴로의 풍랑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
는 심판이 있습니다. 죽음의 마지막 장면에 거대한 유라굴
로의 풍랑을 만나 인생은 파산되고 그 영혼은 심판을 받아
곤두박질 치며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끊임없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발걸음을 멈추고 돌이켜보고 예수를 구주로 믿고
구원을 받아 그 다음 하나님 말씀 안에서 이 인생을 살면
서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라, 이것이 삶의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이 세상
의 풍랑을 피하고 사는 가장 좋은 것입니다. 미워하고 서
로 할퀴며 사는 것은 반드시 풍랑을 맞이하고 사는 길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계명을 지키면서 살아
라.
계명이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계명이란 우리
에게 풍랑을 피하는 길인 것입니다.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신 대로인 것입니다. 마귀의 올무에 걸리지 않
는 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
명을 주시고 계명을 지키고 살아라, 네 앞에 다른 신을 두
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네 부모를 공경하
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
웃을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 이러한
계명은 우리가 인생의 대로를 걸어갈 수 있는 유라굴로의
풍랑을 피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해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음
성을 듣고 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으
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그레데에서 하나님
의 계시를 받은 것과 같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이 계시를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
고 이 말씀을 따라 살면 유라굴로의 풍랑을 피할 수 있다
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야 됩니다. 용서와 사랑으로 살아
야 됩니다. 계명을 지키고 살며 기도하고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마귀는 우리에게 정반대의 유혹을 하고 있는 것입
니다. 마치 선장이나 선주나 전문가가 바울의 말을 반대하
는 것처럼 원수 마귀는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정반대의 말을 우리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믿어라 혹은 믿을 필요도 없다 무엇을 믿느냐 오늘날 과학
이 발달된 이 세상에서 우리 이성과 자유를 가지고 인본주
의로 살 것이지 예수 믿고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그런 어리
석은 것이 어디 있느냐 믿더라도 이 세상 속에서 적당히
믿어라 그리고 용서와 사랑 같은 건 필요없는 것이다 무조
건 이거주의적으로 살아라 내게 주시옵소서 내 욕심만 채
우고 내 주먹에 움켜만 쥐지 용서해주고 사랑해주는 것 그
런 것도 필요없고 무조건 이기주의로 나만 잘 먹고 잘 입
고 잘 살면 된다 이렇게 생각해라 그리고 계명 같은 것 무
엇 때문에 지키냐 오늘날 같은 자유로운 세계에 자유분방
하게 방종하게 살지 왜 계명을 지키느냐 그럴 필요 없다.
그리고 기도와 성령 충만, 성령의 인도 같은 것 그런 게
무슨 필요가 있느냐? 과학이 발달되고 학문이 발달되고 지
식이 증가한 이때에 인간의 지식, 인간의 이성, 인간의 경
험을 가지고 살지 무슨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인도 같은
것을 기다리냐? 이와 같은 마귀의 유혹과 비웃는 소리와
마귀의 사주가 우리의 귀에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는 것입
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택하겠는가 우린 신중하게
대처해야 됩니다. 우리가 잘못 택하면 우리의 삶의 길에
유라굴로의 풍랑을 만나서 난파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역사적으로 볼 때 1917년 소련은 볼세비키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막스 레닌주의를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은
없다 신은 죽었다 하고 모든 교육기관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교회 문을
다 닫아버리고 훼파해 버렸습니다. 완전한 무신론의 자리
에 섰습니다. 그래서 소련이라는 거대한 배는 막스 레닌의
무신론적인 공산주의에 귀를 기울이고 그를 따라갔습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70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 소련은 거대
한 유라굴로의 풍랑을 만났습니다. 소련은 정치적으로 경
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이 거대한 유라굴로의 풍랑을 만나서
그들이 살아온 모든 것이 다 바다에 던져버리고 나라의 운
영하는 방식 공산주의도 다 바다에 던져버리고 지금은 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소련이라는 거대한 풍랑을 만난 나
라를 바로 세우는 것은 너무나 너무나 힘든 처지에 있습니
다. 그들은 유라굴로의 풍랑을 만나고 지금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을 대적해서 출발했기 때문에 종국에는 이렇
게 되고 만 것입니다.
북한이 똑같은 처지에 있습니다. 여러분! 휴전선 저 북
방에 김일성과 김정일은 48년 동안 철권으로 나라를 다스
렸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기들이 하나님 자리에 들
어섰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을 죽이고 교역자들을 죽였습니
다. 교회를 훼파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에 서서
유물주의적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을 저버린 북한이 지금 유라굴로의 풍랑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심한 기근에 처했습니다. 양식이 없습니
다. 경제적으로 파탄이 났습니다. 국제적인 미아가 되고 고
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그들은 난
파되고 말 것입니다. 그들은 유라굴로의 풍랑을 만나고 있
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도울 수 없는 비참한
처지에 놓여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면 필연
코 풍랑을 만나게 된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우리 사회와 국가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됩니
다. 하나님의 말씀의 경보를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의 말씀을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따라갈
때 인간적으로 어리석게 보일 때도 있고 바보같이 보일 때
도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말씀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
롭고 하나님의 연약함이 사람보다 강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면 지금 손
해 같으나 끝에 가서는 이익이 되고 지금 패함 같으나 끝
에 가서는 승리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들은 이 유라굴로의 풍랑의 교훈을 통해서 반드시 하나님
의 말씀을 앞세워야 되고 인본주의 아닌 신본주의로 살아
야 된다는 것을 우리 마음속에 크게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
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을 보면 풍랑을 만나서 결국 남은 것
이 뭡니까? 그들은 보름동안 처참한 풍랑에서 그들이 돈벌
이하겠다는 모든 재화를 바다에 다 던지고 배의 도구도 다
던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제는 선주도 선장도 전문가
도 로마의 백부장 율리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그들은
처참한 절망과 참담한 실패에 부딪혀 있을 따름인 것입니
다. 이러한 처지에서는 누가 그들을 인도해 갈 수 있는 것
입니까? 비록 쇠고랑에 채워있는 죄수라도 하나님을 아는
사도 바울 선생 밖에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27장 20절로 21절에 보면 그가 일어나서 말했
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
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여러 사
람이 오래 먹지 못 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 하였느니라" 바울의 말
을 들었으면, 하나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다면 그들이
이러한 타격과 손상을 입을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을 저버
리니 그들이 타격과 손상을 입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것을 꾸짖는 것입니다. 지금도 풍랑이 대작합니
다. 지금도 해와 달과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먹구름이 하
늘을 덮고 거대한 파도가 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 기
절초풍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바울은 담대하
게 말했습니다. 내 말을 듣고 여러분이 그레데의 미항에서
떠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다 그랬으면 이런 손해와 타
격을 입지 않았을 것 아니냐 그러나 안심하라 하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
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
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여기에서 바울의 말은
이제 그들에게 소망의 말입니다. 빛입니다. 그들에게 생명
의 오아시스인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이렇게 담대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그 풍랑 가운데 서서 말하기를 간밤에 나
의 속한 바 나의 섬기는 하나님이 사자를 보냈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소속감이 확실했습니다. 하늘이 떠나갈
것 같고 바다가 넘쳐날 것 같아도 그 환란 가운데 바울은
자기의 소속감이 분명한 것입니다. 나의 속한 바 하나님,
바울은 그가 어디에 속해있는지 알았습니다. 예수를 구주
로 모시고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을 알았습
니다. 흑암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
겼으며 이는 혈통으로나 육적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있는 것
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았습
니다. 자기 스스로에게도 속해 있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하
나님 아버지께 속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
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 속해 있었으므
로 바울은 이 세상이 뒤엎어질 것 같아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자기가 소속돼 있는 하나님이 계시므로 그는 움직이
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풍랑 중에 지극히 고독해졌습니
다. 믿지 않는 사람은 소속감이 없습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모릅니다. 그가 소속해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육신의 생명에 소속해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환란에 처하자 그들은 소속감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지극히 고독하게 되고 버
림받은 바 되고 마는 것입니다. 소속감이 없다는 것은 환
란과 고난을 통하면 버림받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분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은 너무나 소속감
이 뚜렷하기 때문에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천지
가 무너져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바울은 말하기를 나의 섬기는 나의 하나님
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야말로 사라지지
않는 삶의 의미와 목적이 있습니다. 돈을 섬기는 사람은
돈 섬기면 버림받게 됩니다. 권세를 섬기는 사람은 권세가
10년이나 10년 이내에 떠나고 자기는 목적과 방향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부귀와 영화가 죽음의 처지에 있을 때 그
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부귀와 영화를 섬긴
사람은 부귀와 영화가 떠나갈 때 그는 처참하게 버림받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이 70년 내지 80년을 살면서 사람은 그 무엇인가 섬
기며 삽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육신의 정욕과 안
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섬기고 혹은 우상과 사신을
섬기는 사람은 어리석은 우상이나 거짓말하는 사신을 섬기
고 삽니다. 그러나 여기에 바울 선생은 뭐라고 말했습니
까? 나는 하나님을 섬긴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그 하나님
을 섬긴다 우리를 사랑해서 예수를 보내어 십자가에 몸 찢
고 피를 흘리기까지 해주신 그 하나님을 섬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섬기고 살면 돈이 있으면
가치 있게 쓰고 없으면 그뿐입니다. 권력이 있어도 가치
있게 쓰고 없으면 그뿐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
을 섬기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 모든 것이 있어도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나님을 위해서 쓰고 없어도 타락하거나 낙심
하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정치하는 사람은 정치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술을 하는 사람은 예술을 통해서 하나
님을 섬기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가치가 있습니다.
거대한 풍랑을 만나고 보니 믿지 않는 자는 풍랑이 앗아
간 세상 것 뒤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돈도 빼앗기고 지
위도 명예도 권세도 부귀도 영화도 풍랑 속에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처절한 절망과 공허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삶 속에 우리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누구를 섬기는
가 이 문제만 언제나 뚜렷이 하고 살아야 합니다. 나는 하
나님께 속해 있으니 언제나 하나님을 따라가고 나는 하나
님을 섬기기 때문에 세상의 부귀영화 공명이 아무리 나를
유혹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나는 떠나갈 수
없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영화
가 아무리 좋아도 예수님을 섬기는데서 빗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평안하고 좋을 때는 이런 것이 다 좋은 것 같지
만 유라굴로의 풍랑을 만나고 보면 나의 소속감과 나의 섬
기는 것 이것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선
생은 담대했습니다. 그는 파도보다 더 큰 하나님을 알았습
니다. 풍랑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나는 하
나님께 소속해 있고 나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고 그러므로
이 하나님께서 이 풍랑 가운데 이 지중해 가운데 간밤에
하나님의 사자를 내게 보내주셨다' 사도행전 27장 25절로
26절에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
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
에 걸리리라 하더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
씀을 보내주시고 성령을 보내주시고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 있어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을 하나님이 저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기 전
에는 아무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깁니
다. 그러므로 하늘에 가도 그 하나님이 계시고 땅에 있어
도 하나님이 계시고 새벽 날개를 타고 저 바다 끝에 가도
그 하나님이 계시고 음부에 자리에 펼지라도 그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중해의 거대한 파도 속에 모든
다른 사람들이 희망을 다 잃었습니다. 선주나 선장이나 전
문가들 모든 선원들이 희망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이
의지할 것도 없이 처절한 절망 가운데 있을 때 여기에 바
울은 희망이 넘쳤습니다. 그는 그래도 하나님께 속해 있고
그래도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보
내주셨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주셨고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분명하게 될 일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는 로마에
가겠다 시저 앞에 서야 한다 그리고 여기 모든 사람들은
내게다 맡겨라 너의 배는 잃어버리지 않고 생명은 손상 받
지 않는다' 이러한 하나님의 분명한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살면 우리 하나님께서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
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말씀을 통하여 기도할 때 성령
의 고요하고 잠잠한 음성을 통해서 또는 하나님께서 주의
사자를 보내어서 우리에게 갈 길을 이끌어주시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아와 같이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외
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상과 사신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
므로 하나님은 당신에게 속한 백성들을 돌보아 주시는 것
입니다. 이러므로 유라굴로의 풍랑도 우리는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삶의 유라굴로의 풍랑이 다가오면 인간의 지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자랑은 헌신짝처럼 버림받은바 되
고 마는 것입니다. 바울의 계시를 비웃던 선장과 선주도
그리고 모든 승객도 그리고 바울을 죄수의 쇠사슬에 묶어
가는 로마의 군인 백부장도 삶의 소속을 분명히 알고 끝없
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바울의 인도를 학수고대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 만이 이제 어둡고 캄캄한 곳에 소망의
등대가 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 세상의 빛이요 이 세상의 소금입니
다. 세상은 어디에서 와서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지를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를 확실히 아는 하나님께 소속되어 그 하나님을 섬기는 사
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
고 하나님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앉으라면 앉고 순종
과 믿음의 생활을 살아갈 때 우리는 세상의 유라굴로의 풍
랑을 피할 수 있으며 장차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가장 절망
적인 유라굴로의 풍랑이 다가와서 수많은 사람이 풍랑에
휩쓸려가며 지옥에 쓰레기더미처럼 내던지움을 당할 때 우
리는 그 풍랑을 피하여 하나님이 예비한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이러한 거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레데의 미항에서 바울에게 말씀한 그 하나님께서 오
늘 여러분에게 말씀합니다. 주 예수를 믿고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서 살아라,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고 살아라, 계
명을 지켜 계명의 대로를 따라서 살아라,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교훈을 지킨다면 우리
는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이 사회나 국가가 유라굴로의
풍랑을 피하고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영광스러운 삶을 살
게 될 것입니다.

-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들은 너
무나 고집이 셉니다. 자기의 지식과 지혜와 총명을 의지하
고 이성을 따라서 마음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유라
굴로의 풍랑을 만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은 죄악으
로 말미암아 풍랑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풍랑
은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지금도 사
자처럼 포효하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아버지여 원하오
니 우리가 깨어져서 진실로 하나님을 순종하고 믿고 따라
가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인본주의 아닌 신본주
의로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