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6월 13일
제 목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성 구 : 엡 6:10-18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
한 것이 아니요"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모세의 인도를 받아 3백만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왔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의 복음은 해방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끊임없이 속박 가운데서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430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에서 온갖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던 이
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
어서 그들을 해방시켜서 그들을 이끌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던 중에 르비딤이라는 곳에 이르렀습니
다. 르비딤에 이르자 그 곳에 있는 아말렉 사람들이 나와
서 이스라엘을 쳤습니다. 긴 사막길 여행 동안 지치고 피
곤하고 목마르고 괴로웠는데 이제 아말렉이 와서 치니 이
스라엘 사람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모세는 여
호수아에게 말하기를 "너는 군대를 동원해서 내일 평지에
나가서 아말렉을 대적해서 싸워라! 나는 아론과 훌을 데리
고 그 전쟁터가 내려다 보이는 산에 올라가서 지팡이를 들
고 손을 들어 기도할테니 싸워라" 했습니다.
그 다음날 여호수아는 군대를 거느리고 아말렉을 대적하
여 평지에 나가서 전쟁이 붙었습니다. 그때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그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산 위에 올라가서 하
늘을 향하여 높이 지팡이를 들고 손을 들어 기도했습니다.
모세가 기도하자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에서 강한 바람 같
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임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군대들은 용기 백배하고 큰 힘을 얻어 나아가 아말렉을 밀
고 밀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팔이 아파서 팔을
내리고 기도를 쉬자 아말렉이 다시 힘을 얻어 이스라엘에
진을 치매 이스라엘 백성이 후퇴하고 많은 손해를 입었습
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졌습니다. 이것이 몇번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전쟁터에는 아비규환의 비극적인 장면이 일어났습니다. 그
러자 아론과 훌이 모세를 돌 위에 앉혀놓고 한쪽 팔은 아
론이 들고 다른 팔은 훌이 들고 해가 질 때까지 계속 손을
들고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매 하나님의 성령이 계속
이스라엘을 위해서 역사하매 아말렉이 져서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얻어 전리품을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우리의 삶의 배후에 영적인 힘이 우리에게 여실하게 작용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공기가
둘러싸여 있어서 그 안에서 사는 것처럼 우리는 영적인 분
위기 속에서 삽니다. 우리의 배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
적인 힘이 우리에게 긍정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고 부
정적이고 파괴적인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되 넘치게
주는 역사를 하시지만 마귀가 역사하면 귀신들로 더불어
우리에게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그러한 환경으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배후
의 세력이 현실적으로 우리의 삶을 형성해 가고 좌우한다
는 사실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원수와 대적한 싸움의 승패는 그들이
전쟁을 얼마나 잘 하느냐 무기가 얼마나 좋았느냐에 있지
않고 그들 배후에 영적인 기도가 마귀의 힘을 이겼느냐 이
기지 않았느냐, 여기에 달려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
울 사도는 말하기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 즉 인간에 대
항하는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어둠의 주관자
들과 공중의 권세 잡은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말한 것
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우리의 씨름이 영적인 것을 우리가 인
정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은 역사적인 사건이
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그 아내와 함께 하나
님이 예비한 에덴 동산을 쫓겨나서 황량한 가시밭길로 내
몰아쳐졌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그러
나 이와 같은 역사적이고 현실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이 일
어나기 전에 그들은 영적인 하나의 중대한 사건을 맞이했
던 것입니다. 그것은 눈에 안 보이는 마귀가 와서 그들에
게 영적으로 꾀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말고 하나님
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께 반역을 도모하
고 독립을 선포하는 사주를 받아서 그들은 이 마귀의 말을
듣고 눈에 안 보이는 영적인 세계 속에서 하나님을 반역하
고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역사적인 현실로서 에
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가시밭길로 내어쫓김을 받은 비극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의 현실적인
비극은 그 배후에 영적인 전쟁에서 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와서 복음을 증거할 때 가시는 곳마다 죄
를 용서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
를 살리시고, 인간의 환경과 운명을 다스리는데 그러기 전
에 주님은 영적으로 싸움에 이겼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는
요단강에서 세례 받고 성령으로 충만함 받은 다음에 광야
에 들어가서 40주 40야 금식하시고 원수 마귀와의 싸움에
서 승리한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께 육신의 정욕을 가지고
시험했으나 예수님이 이겼습니다. 안목의 정욕으로 시험했
으나 예수님이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생의 자랑을 가지
고 시험했으나 예수님은 유혹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예
수님은 광야에서 마귀와의 씨름에서 이겼기 때문에 그 승
리를 현실적인 세계 속에 가지고 오셔서 이 승리를 나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계속 영적인 고독의 투쟁에
서 이기지 못했더라면 현실 사회에 나와서 사람들을 고통
과 괴로움에서 해방시키는 위대한 사역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현실적으로 나타난 사역은
눈에 안 보이는 영적인 세계의 투쟁에서 이겼기 때문인 것
입니다.
여러분! 욥의 비극을 보십시오. 욥의 비극은 현실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욥의 비극의 현실은 바로 그 배후에 영
적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큰 바람이
불어서 욥의 자녀들이 맏형의 집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다
가 집이 무너져 몰사했습니다. 일곱 아들과 세 딸이 한꺼
번에 죽었으니 욥이 당한 비극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꿈이 아닙니다. 현실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뿐 아
니라 적들이 공격해와서 짐승들을 빼앗고 벼락으로 양떼를
다 잃었습니다. 3천 마리의 약대가 적군들에게 다 빼앗기
고 5백 겨리의 소와 5백 겨리의 암나귀도 적들이 와서 다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양을 치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다
가오더니 소나기가 쏟아지며 벼락이 떨어져서 양 3천 마리
가 순식간에 불타버리고 만 것입니다. 비극에 비극이 다가
왔습니다. 거기에다가 설상가상으로 욥은 온 몸이 병들었
습니다. 그래서 모든 의원과 모든 약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동네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는 무더기에 앉아서 혼자
서 기왓장으로 그 병든 몸을 긁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그
아내가 와서 말했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
라!" 그리고 그 친지들이 와서 욥을 온갖 말로 괴롭혔습니
다. 이러한 것들은 현실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배후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도록 한 사건을 보여주고 있
으니 마귀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욥을 참소한 결과, 욥
을 마귀에게 내어주매 마귀가 와서 욥을 치매 욥에게 이와
같은 비참한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
로 욥에게 일어난 이 비극적인 사건은 눈에 안 보이는 배
후의 마귀의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역사가 있었다
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현실에 다가오는 여러 가지
문제를 현실로써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현실의 배
후에 있는 마귀와 귀신들의 역사를 우리가 기도와 믿음으
로 제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북의 김일성이 아무리 원
자탄을 만들고 새로운 미사일을 개발하고 군대를 훈련하고
독재 체재를 강화시킨다고 할지라도 전쟁은 그런 것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은 야웨에게 있
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김일성과 그 무리
들을 붙잡고 그들에게 힘을 주는 마귀 권세를 깨뜨려버리
고 하나님의 성령과 천사들이 와서 점령해버리면 순식간에
무너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
는 사람이 이깁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이 이깁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마귀를 제압하는 사람은 현실적인 세계에
서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천사들의 도움을
통해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영적인 싸움을 싸워서 먼저 이겨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현
실적으로 환경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하고 역사의 진행을
탄식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탄생시키고 영적인 세계
가 현실을 조성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
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안이 밝아져서 오늘날 현실적인 우
리의 삶과 역사가 배후에 있는 큰 세력이 이것을 조정한다
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의 싸움은 현실의 육과 혈에 대한
싸움이 아니고 기도와 믿음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기도와 믿음에 우리는 전력투구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그럼 어떻게 기도해야 될까요? 예수께
서 말씀하기를 마귀와 사탄과 귀신을 제어하는 것은 금식
과 기도 이외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
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상에 올라갔을
때 기도하매 그 얼굴이 햇빛같이 빛나고 옷이 희어져서 하
나님께서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아들이라는 증명을 하셨습니다. 기막힌 체험을 한 예수님
과 그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오매 산 아래에 있는 아홉 제
자들이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바리새 교인, 사두개인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고 한 아버지가 통곡하고 있다가 예수님
오시는 것을 보자 뛰어나와 그 앞에 엎드려 말하기를 "주
여! 내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왔으나 당신의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하더이다." 예수님께서 곧 데려오라 하매 귀신
들린 애가 예수님 발 앞에서 뒹굴고 거품을 물고 떠는지라
주님께서 귀신을 내어쫓으니 어린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
었습니다. 사람들이 죽었다 하나 일으키니 살아났습니다.
제자들이 나중에 조용하게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예수님께서 말씀
하기를 "이런 유는 금식과 기도 이외에는 나가지 아니한
다. 너희들이 금식도 아니하고 기도도 아니하고 그냥 육의
힘으로 영의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니 될 턱이 있느냐?" 먼
저 영적으로 금식하고 기도하여 영의 세계를 제압하고 나
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런 귀신들도 얼마든지 쫓
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21일 동안의 기도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 수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이 자기 민족과
역사를 위해서 불타는 마음이 있어 강가에 나와서 그는 금
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의 친구들과 함께 일
주일 동안 열렬히 했는데 일주일 동안 기도해도 아무런 응
답도 없고 역사도 없으매 많은 친구들이 떨어져 나갔습니
다. 그 다음 이주일 째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이젠 배고프
고 지칩니다. 또 많은 친구들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나중엔
다니엘 혼자 남았습니다. 그는 3주간 째 기도합니다. 19일,
20일, 기도해도 아무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
니엘이 21일 째 기도하자 갑자기 하늘 문이 열리고 영광의
천사가 다니엘에게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다니엘아! 네가
기도할 때 첫날에 너의 기도가 상달되어서 하나님이 응답
으로 나를 보냈으나 파사를 지배하는 영적인 세력인 마귀
의 군대가 나를 막으므로 나를 대적해서 20일 동안 싸우므
로 내가 공중에서 내려오지 못했으나 21일 만에 군장 미가
엘이 와서 나를 도우매 그 벽을 허물고 너에게 내려왔다"
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은 그가 기도할 때 그의 기
도하는 기도를 통해서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원수 마귀의 진을 훼파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낙심하지 아니하
고 마귀의 집이 무너질 때까지 일주일을 기도하고 이주일
을 기도하고 3주일을 버틴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다니엘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21일 동안 다니엘
기도를 아침에 하든지 저녁에 하든지 합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우리가 끊임없이 낙심하지 않고 마
음에 큰 인내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마귀의 진을 훼파
하는 중대한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조금만 하지 말고 인내를 가지고 하라는 것을 여러 번 우
리에게 권면했습니다.
한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하여 불의한 재판관에게 와서
나의 원수된 원한을 갚아 달라고 할 때 이 불의한 재판관
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라
이 과부를 무시하고 들어주지 아니하였으나 이 과부가 매
일 와서 그를 번거롭게 하매 그가 괴로워 견딜 수가 없어
서 나중에는 이 과부의 호소를 들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
리고 주님은 말씀하기를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의
기도를 들어주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세상에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이와 같
이 꾸준히 인내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또 말씀하기를 밤중에 친구가 왔는데 먹을 것
이 없어 이웃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면서 나에게 빵 세 덩
어리만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나와
내 자식들이 이미 잠자리에 들어갔으므로 일어나 줄 수 없
으니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
은 계속 문을 두드렸습니다. 빵을 주십시오! 빵을 주십시
오! 빵을 주십시오! 그는 웅변하지 않았습니다. 연설을 하
지 않았습니다. 인류애에 호소한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기도하면 아주 굉장한 웅변을 해야되고 미사려
구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웅변을
하다보니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웅변에만 정신이 팔려서 기
도가 안되는 것입니다. 기도란 외마디 소리로 부르짖는 것
입니다. 복잡한 소리 할 필요 없습니다. 오 친애하는 친구
여! 내 친구가 밤중에 왔는데 배가 고프니 인류애를 발동
하사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수고스럽지만 일어나서 빵 세
덩어리만 주옵소서 그렇게 안 했습니다. 빵을 다오! 빵을
다오! 빵! 빵! 빵! 빵을 다오!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 철학자 거지 한 사람 있었습니
다. 이 사람은 밥을 얻으러 와서 밥 달라는 동냥을 하지
않습니다. 와서는 탁 꿇어앉아서 손을 내밀고 밥밥밥밥! 밥
밥밥밥! 다른 말 할 필요 없어요. 그 말만 합니다. 그리고
밥을 주면 아무 말도 안 하고 갑니다. 우리의 기도도 다른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리고 성을 도는 사람이 별소리
를 하고 돌았습니까? 매일 매일 여리고 성을 돈 것처럼 우
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단순한 부르짖음을 가지고서 계
속해서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일주일도 기도하고 이주일도 기도하고 삼주일도 기도해야
합니다. 이 사람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가 너의 친구됨
으로 인하여 떡을 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너무 나를 괴롭
히매 내가 일어나서 떡을 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괴로울 정도로 기도하라고 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괴로울 정도로 너희들이 끈질기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일어나 마귀의 진을 훼파하고
너희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베풀어주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일들이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므
로 잘못되어 갑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므로 우리 뒤에서 역
사하는 파괴적인 마귀의 일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러므로 첫째도 기도하고 둘째도 기도하고 셋째도 기도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산 위와 산 아래에 관해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봅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위에서 기도로 영적인 싸
움을 싸웠는데 여호수아 군대는 산 아래에서 실질적인 싸
움을 했습니다. 우리가 주일에 왜 예배를 드립니까? 주일
은 첫날입니다. 그 일주일의 산 위입니다. 일주일은 산꼭대
기입니다. 일주일이 산 위인 일주일의 첫날에 우리가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
하고 영적인 싸움에 이겨놓으면 그 다음 산 아래에 세상에
나가서 월화수목금토 싸움을 싸울 때 이미 우리는 승리를
등에 걸머지고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이겨놓은 싸움
을 싸우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축복을 등 위에 짊어
지고 싸우는 것이므로 우리는 승리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
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성수주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
지 않으면 또 주일에 오더라도 형식적으로 하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이 산 위에 올라갔을 때는 손
을 들고 기도를 했습니다. 손을 든다는 것은 항복을 말하
는 것이요, 손을 든다는 것은 자기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
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요, 손을 든다는 것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항복하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놓고 주의 능력을 의지하고 주님께
부르짖는 이와같은 기도가 주일날 이루어지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저 세상에 나가서 여호수아와 같이 아말렉을
대항하여 싸울 때 여러분은 이미 이겨놓은 싸움을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벽은 하루의 맨 먼저 산
위에 서서 싸우는 것입니다. 새벽은 그날의 첫 시간입니다.
산꼭대기입니다. 새벽에 우리가 일어나서 교회에 나오든지
못 나오든지 집에서라도 우리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를 드리면서 내 마음을 주님께 내어놓고 하
나님만을 나의 의지로 삼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맡기
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루의 산꼭대기에서 우리는 이미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면 산 아래의 그날의 하루종일의 삶
동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시고 아말렉은 물러가고
하나님의 영광이 같이 하여주셔서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
으며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한 역사가 일
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서 많은 위대한 일들이
기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기도하지
않고 인간의 혈과 육에 의지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
나가려면 낭패하고 실망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무슨 일
을 하기 전에 먼저 많이 기도하고 영적으로 평안과 확신을
얻은 후에 실천할 때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선에서 싸우던 여호수아는 자기들의 이기고
지는 것이 자기들의 노력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상을 알아보면 그들의 노력의 효과가
생기는 이유가 산 위에서 배후에서 기도 드리는 모세와 아
론과 훌의 기도가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마음이 숙
연해졌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자는 이유는 열심히 기도해야 산 아래에서
싸우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지 아니하고 원망과 불평만
한다면 우린 우리의 무덤을 스스로 파는 것입니다. 우리가
위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라와 민족의 책임을 진 사람
이 나라와 민족을 잘못 이끌어가면 우리가 다 고통을 당하
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지도자가 일어나면 지도자와
나라를 움직여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되
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산 위에서 하나님
이 기도를 들으시고 승리해서 산 아래에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에게 이김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되 오직 나
의 신으로 말미암아 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들은 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치 말아야 됩니
다. 우리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나라와 민족을
다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북한에 있는 동포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저 선교사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구라파에 나가서 성회를 하면 성회가 참 잘됩니
다. 놀랄만치 잘됩니다. 저는 황인종보다도 백인종에게 가
면 집회가 잘 돼요. 그래서 미국이나 남미나 구라파에 가
면 굉장한 성회가 됩니다. 왜 그렇게 굉장한 성회가 되느
냐? 저는 그 이유를 압니다. 한국 여의도 순복음 교회 산
꼭대기에서 여러분이 기도를 해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
기에서 우리 성도들이 기도를 해주기 때문에 산 아래에 나
가서 복음을 증거할 때 많은 사람들이 오고 회개하고 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나고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저만큼 복음 증거하기 쉬운 사람
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어느 종이 저만큼 기도
해주는 사람을 많이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세대에 제가 복음을 증거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로부터
화를 만날 이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산 위에서 수많은 성
도들이 믿음을 합쳐서 기도를 해주고 있는데 산 아래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나아가서 전쟁에서 아말렉을 쳐서 물
리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것입니
다. 이러므로 우리는 기도와 실천적인 행동으로 나아갈 때
승리에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인간대 인간의 씨름이요 싸움이 아니라는 것입
니다.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공중의
권세 잡은 악한 영들에 대한 대항이라고 했는데, 간단히
말하면 공중에 있는 원수 마귀와 타락한 천사들과 이 땅에
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귀신들에 대
한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이 싸움을 이기면 우리 눈에 보
이는 현실적인 생존경쟁에서 이기고 이 영적인 싸움에서
지면 현실적인 생존경쟁에서 우리가 올무에 빠지고 상처
입고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무장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셨으며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으며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으며 우리에게 그리
스도의 보혈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그 피를 흘려 마귀의 무장을 해제하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
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고 보혈을 의지
하며 말씀을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강하게 불퇴전
의 심령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
며 밀고 또 밀고 나아가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하나님은 개인의 운명과 역
사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천지
와 만물을 지으시고 전지전능하시지만 오늘날 인간 사회는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만 역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사용하는 손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날 우리의 씨
름은 눈에 보이는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
달았습니다. 우리 배후에 있는 영적인 세력이 우리를 잘
되게도 하고 못 되게도 합니다. 우리가 기도해서 하나님과
함께 손을 잡으면 우리에게 승리와 영광이 다가오고 우리
가 기도하지 아니하고 내버려두면 마귀의 영적인 세력에
휩싸이고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기도의 줄을 잡게 도와주옵소서. 기
도의 줄을 놓치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오늘날 많은 성
도들이 기도의 줄을 놓쳐버리고 기도의 줄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때가 많습니다. 오늘 원하오니 예수 그리스
도의 이름으로 기도의 줄을 잡고 또다시 맹렬하게 기도할
수 있게 도와 주시옵시고 성령께서 기도를 도와 주시옵소
서. 예수님의 보혈이 기도의 능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기도로 이기면 현실로 이깁니다. 기도에 성공하면 현실로
성공합니다. 기도에 평안하면 현실로 평안합니다. 기도에
건강하면 현실로 건강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성도
들이 기도의 용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
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