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94. 6. 5
제목 :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성구 : 고전 13:1-8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느니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혼자 살지 못합니다. 항상 두사람 이상으로 밉든 곱든 집단으로 생활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는 지극히 중요합니다. 인간관계는 대개 의무적인 관계와 이해 관계로 성립됩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관계는 사랑으로 기름을 치지 아니하면 인간 대 인간의 관계는 너무나 냉정하고 살벌한 관계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율법과 의무 관계였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율법을 어기고 의무를 수행하지 않을 때 언제나 하나님은 무서운 형벌을 가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사랑의 관계는 용서와 긍휼이 따릅니다. 사랑이란 항상 이웃을 생각하고 섬기기를 원하고 이웃의 성공과 행복을 기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없는 방언과 천사의 말은 공허하기 짝이 없습니다. 자기 혼자 아무리 방언을 많이 말하고 천사의 말을 한다 할지라도 이웃과의 아무런 관계가 없으면 그것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예언이나 지식이나 믿음도 무의미합니다. 사랑 없는데 자기 혼자 아무리 예언을 하고 지식을 쌓고 그리고 믿음이 많다고 하더라도 이웃에 조금도 유익을 갖다 주지 못하는 것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랑이 없는 의무적인 구제나 희생도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 때문에 구제도 하고 희생도 해야지 그렇지 아니하고 의무적으로 할 수 없이 구제하고 그리고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구제하고 희생하는 이와같은 공리적인 것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만이 딱딱하고 냉정한 의무와 이해 관계의 살벌한 생존 경쟁터를 훈훈하고 인정의 띠로 묶어주고 이 가혹한 세상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화시켜 주는 힘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여러분 성경의 프리즘을 통해서 보면은 15개의 사랑으로 변화됩니다. 햇빛을 프리즘이라는 유리를 통하게 되면은 7가지 색깔로 변화되어 나옵니다. 비 온 후에 공중의 물방울이 프리즘 역할을 하여 하늘을 가로질러 햇빛이 분해되어 영롱한 적주황녹청남자 7가지 무지개 색깔로 그림을 그려놓은 것을 우리는 봅니다. 이처럼 사랑을 성경의 프리즘을 통하게 하면 15가지 요소로 분해됩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사랑의 요소를 살펴 봄으로 과연 우리 속에 사랑이 있는가 내가 사랑을 실천하고 사는가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만이 가장 위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적인 의식적인 신앙을 아무리 추구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인간의 삶의 가장 근원은 바로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15가지 요소를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우리가 한번 살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사랑은 오래 참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 아닙니까? 그런데 부모가 자식을 향해서 성급하게 자식이 온전하게 되지 않는다고 때려서 쫓아낸 것 보았습니까? 똥을 싸고 오줌을 싸고 못되게 굴어도 부모는 자식을 오래 참고 기다립니다. 그래서 똥을 치고 오줌을 치고 그 자식의 못된 것을 다 감내하고 돌보아 주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자식이 장성할 때까지 오래오래 참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과 제자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좋은 선생은 제자를 사랑합니다. 제자가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숙하고 공부하는 것을 잘 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더라도 선생은 그를 꾸짖어 쫓아내지 아니하고 오래 참고 가르치고 깨우치게 하고 돌보아 주고 이끌어 주어서 훌륭한 사람으로 길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성급하게 신속하게 안된다고 해서 성을 내고 심판하고 그리고 내어 쫓는 이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부부간의 사랑도 남편은 아내를 오래 참고 돌보아 주고 아내는 남편의 모든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 참습니다. 이웃간의 사랑도 서로서로를 용납하고 오래 참고 기다리는 이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성급한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둘째, 사랑은 온유합니다. 율법과 의무의 관계는 온유하지 않습니다. 율법과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준엄하게 심판하고 꾸짖고 그리고 냉정하게 대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용서와 긍휼의 관계이므로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율법으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해서 비난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용서해 주기를 원하고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따듯한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으로 대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그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몸 찢고 피를 흘려서 율법하에 지은 우리의 모든 죄, 우리가 다하지 못한 의무를 다 청산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 줍니다. 옛날 시내산 계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따라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중심으로 해서 율법과 의무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의무를 깨뜨릴 때 하나님은 준엄하게 꾸짖고 심판하시고 결국은 앗수르와 바벨론의 포로로 잡히게 하고 예루살렘을 거름무더기로 만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갈보리의 언약은 맺은 하나님은 갈보리 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청산하시고 사랑을 베풀기 때문에 갈보리 언약은 사랑의 언약이요 이 사랑은 용서와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러므로 용서와 긍휼을 가지고 우리를 따뜻하게 대해 주고 부드럽게 대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나오면 하나님은 한사람도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그 크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가슴에 우리를 품어 주시고 우리를 꾸짖지 아니하시며 이 사랑 이 사랑의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사랑이 있으면 그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고 부드럽습니다. 사나운 남편, 사나운 아내를 가진 사람은 불행합니다. 집에 들어갈 때 아내가 사납게 남편을 대하고 비평하고 언제나 평론하면 남편이 쉴 곳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또, 남편이 사나워서 아내에게 냉정하게 대하고 비평적이면 아내가 쉴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냉담하게 되고 서로서로 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죄많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세상에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는 것은 인간 관계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사랑으로 용납해 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 치료를 받습니다, 위로를 받습니다. 힘을 얻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 셋째로,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합니다. 이해 관계속에 이루어진 인간 관계 속에는 이웃이 잘되면 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와 경쟁 관계에 있는데 나보다 잘하니까 투기하고 시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은 바로 그와같은 말인 것입니다. 사랑으로 대하지 아니하고 이해 관계 속에서만 인간 관계를 이루면 반드시 이웃이 못 되기를 바라고 잘되면 시기하고 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 속에서는 사랑하는 상대가 잘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부모가 자식 잘되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지 않은 부모 없습니다. 자기는 못 되어도 자식은 잘 되어서 성공하면 부모가 그 마음 속에 굉장히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사랑, 투기하지 않는 마음, 이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 되는 것 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은 잘 되기를 원합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원하고 우리가 잘될 때 하나님은 손바닥을 치면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을 가지고 우리는 이웃을 대해야됩니다. 이웃이 잘나거나 이웃이 잘살거나 행복하게 되면 시기하고 분노해서 그들을 위해서 올무를 파서 빠지게 할려고 하는 이러한 못된 심정을 우리는 없애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합니다.

넷째,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합니다. 서로 경쟁적인 관계에 놓일 때에는 서로 자기의 성취를 자랑해서 우쭐됩니다. '나는 너보다 낫다, 나는 너보다 잘했다, 나는 너보다 훌륭하다' 자기 성취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 속에서는 상대를 자랑해도 자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관계 속에서는 상대편의 장점을 드러내 주고, 상대편을 높여주고, 상대편을 인정해 주고 자기는 낮춥니다. 사랑은 자기를 자랑하므로 말미암아 상대에게 열등의식과 좌절감을 갖다 주지 않습니다. 결코 상대에게 열등의식이나 좌절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 상대를 돋보이게 만들어 주지 자기를 돋보이게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자기를 낮추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인간의 하나님처럼 될려고 교만을 떨다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에서 쫓겨나고 타락하지 않았습니까? 교만은 자기 분수를 뛰어 넘습니다. 교만은 자기 이상의 자기를 원해서 탐욕을 가지다가 넘어지는 것입니다. 경쟁적인 인간 관계 속에서는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고 교만하며 혹은 오만하게 행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 속에서는 자기를 낮추고 나타내지 아니하며 겸비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많은 사람일수록 언제나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편안합니다. 왜냐?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왜냐, 자기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자기를 겸비하게 낮추기 때문에 참으로 같이 있기에 편합니다. 그러나 오만하고 교만한 사람은 가시가 돋힙니다. 같이 있기가 굉장히 불편합니다. 언제나 그런 사람은 거만스럽게 행하고 불편하게 만들어 주고 상대에게 고통을 주고 멸시합니다. 무시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오만한 사람과 함께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 자기 자랑에 아예 귀청이 따갑습니다. 그러나 겸비한 사람과 같이 사는 사람은 마음이 편한하고 좋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얼마나 겸비해 졌기에 사람의 몸을 쓰고 오시고 사람으로 낮아졌음에 십자가에 죽기까지 희생하셨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 믿고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이 얼마나 편안합니까? 하나님께서 높은 데 계셔서 우리를 호령하고 짓밟고 발길로 차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육신을 쓰고 가장 낮은 처지에 오셔서 거지와 같이 걸식하시면서 모든 높고 낮은 인간을 다 품에 품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요,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므로 그리스도의 그 겸비함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편안합니까? 하늘과 땅을 지은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예수 믿고 하나님께 나오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시장 앞에 나가도 옷깃을 여미고 대통령 앞에 나가도 우리 행동거지가 불편한데 하나님 앞에 나와서는 불편하지가 않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겸비하게 당신을 낮추셔서 우리를 품에 품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조금도 위협을 느끼지 않습니다. 교만한 자의 앞에서는 위협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불안합니다. 겸비한 사람 앞에서는 위협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편안합니다. 여러분께서 참으로 사랑이 있으면 상대방을 위협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사람들이 여러분 앞에 와서 위협을 느끼도록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여러분 앞에 평안한 어머니 품과 같은 그러한 심정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사랑을 가진 사람의 심정인 것입니다.

여섯째로,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상대에 대하여 전혀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일 때에는 무례한 언어 행동을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얼마나 무례합니까? 예의를 저버리고 행동합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대해서 무례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대해서 무례한 말을 미음대로 하면은 그 가정은 사랑이 식어지고 깨어지는 것입니다. 이웃간에라도 서로 예의를 지키고 서로 단정하게 지내면 그 이웃과의 교제가 오래 가지만은 무례히 행해서 자기의 주장만 하고 자기 고집만 하고 예의를 저버린 그런 행동을 하면은 이웃과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사랑은 상대를 존경하기 때문에 상대의 감정에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삼가고 언제나 예의 바르게 행동합니다. 남에게 불편을 주고 불쾌감을 줄까 싶어 늘 조심하고, 자기의 행동거지를 단정하게 하는 이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남이야 뭐 어떻게 되든 나만 좋으면 된다 그래서 남앞에 고생을 주거나 불결한 언어 불쾌한 언어 심사를 하고 도덕적인 어긋난 생활을 하고 하는 이런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요사이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하철에서 혹은 버스간에서 대중이 모인 자리에서 예의와 질서를 지키지 않은 것은 그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 속에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습니다. 예의 바르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일곱째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주의적입니다. 자기를 먼저 생각하고 타인을 생각합니다. 최근에 보십시오. 아들을 길러다가 미국 유학까지 보내 놓으니까 미국 가서 도박을 하여 돈을 잔뜩 빚을 지고 난 다음 아버지의 상속을 빨리 타서 빚도 갚고 사업도 하기 위하여서 잠자는 아버지를 칼로서 어머니와 난자해서 죽여 그리고도 뻔뻔스럽게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요.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세상입니까? 부모의 은혜와 사랑을 무조건 짓밟아 버리고 자기 유익을 위해서는 부모의 생명도 빼앗는 이 비극적인 세계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사랑을 잃어버린 세계입니다. 물질만능주의, 황금만능주의로 기르고 교육한 결과가 이렇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내가 참으로 부모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배웠더라면 그런 일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을 자꾸 달라고 하는 것이 사랑인줄 생각하면 큰일입니다. 'give me. give me.'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에게 주는 겁니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면 남편에게 주는 겁니다. 주는 것은 희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주고, 물질을 주고, 봉사를 주고, 노력을 해서 상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이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은 그러므로 자기의 이익을 구치 아니하는 희생적인 것이 사랑이지 자기 중심의 삶을 살면서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이기주의지 사랑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여덟째로, 사랑은 성내지 아니합니다. 율법적인 인간 관계 속에는 의무 관계가 손상이 되면 정죄하고 성을 냅니다. "왜 너 이것을 안지켰느냐? 왜 이것을 안했느냐?" 그렇게 고함치고 성을 내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을 율법적인 관계에 놓았을 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는 항상 용서와 불쌍히 여김이 따르기 때문에 잘못을 하면 불쌍히 여기고 안타깝게 여기고 타이르고 그리고 고칠려고 하지 성내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성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자식을 언제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봅니다. 그러므로 자식이 분명히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용서해 줄려고 하고 감싸줄려고 하는 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는 언제나 용서와 긍휼히 여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거들랑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 주라 7*7=49, 490번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해 주라' 이것이 바로 사랑의 마음인 것입니다. 용서해 주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이 마음이 있기 때문에 성내지 않습니다. 오직 안타까와 할 따름인 것입니다.

아홉번째,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치 않습니다. 자기 중심의 삶에는 남에게 어떻게 되든 자기 본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악한 생각도 서슴치 않습니다. 내 중심으로 살고, 내 본으로 사는데 여기에 거슬리면 상대를 살인하는 마음까지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생각을 마음대로 하는 이 세상에 사랑은 상대방이 선하게 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악한 것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데 어떻게 악한 것을 생각합니까? 사랑하는 남편을 어떻게 못되게 합니까? 사랑하는 아내를 어떻게 괴롭힙니까? 사랑하는 자식이 올무에 빠지도록 어떻게 만듭니까? 사랑하는 이웃이 불행하도록 어떻게 만듭니까? 사랑은 이웃에 대해서 악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선한 생각을 합니다. 요사이 세상이 얼마나 악합니까? 악한 사람이 많습니다. 이 악한 사람은 이웃을 끊임없이 괴롭힙니다. 이웃을 못살게 만듭니다. 이와 같은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사랑이 돌아오면 그 악을 저버리게 되고 선한 사람이 되고 그렇게 되면 이웃을 선하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같이 살기 좋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치 않습니다.

열째로,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합니다. 탐욕은 인간을 불의하게 만듭니다. 욕심이 생기면 그 욕심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냥 법도 버리고, 도덕도 버리고, 윤리도 버리고, 그리고 불의를 행합니다. 탐욕이 언제나 불의를 행합니다. 욕심이 들어오면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 분수를 따라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분수를 뛰어 넘으면 현실이 불안하고 불행하고 고통스러워서 더 얻을려고 온갖 부정과 부패를 다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남을 이용하여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므로 인간 관계에서 의롭지 못한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웃을 사랑하는데 내가 탐욕으로 그것을 빼앗고 불의하게 짓밟고 고통을 주면서까지라도 내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불의를 행하지 않습니다. 의롭게 삽니다. 정당하게 삽니다. 오히려 나의 것을 나누어 주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열한째로,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므로 마귀의 지배하에 있으면 항상 거짓속에 살게 됩니다. 온 세상이 오늘날 악한 자에게 속해 있으므로 온 세상에 거짓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오늘날 마귀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으면 없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만 따라서 살면 된다고 거짓을 말합니다. 이 거짓에 솔깃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이 세상을 따라, 세상 풍속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거짓말은 처참한 파탄을 가져옵니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고 영혼은 심판받아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오늘날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말씀해 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지 아니하면 영원히 멸망받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경고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진리시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가운데 들어오면 진리를 사랑하게 되고 진리가운데 들어오면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임과 동시에 진리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이 있으면 참을 사랑하고 거짓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열두째로, 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기 때문에하나님을 의지하고 참습니다. 유대민족들이 독일사람에게 잡혀서 아우슈비츠의 수용소에 들어가 있다가 가스실에 들어가서 집단 살해를 당했는데 그 아우슈비츠의 그 수용소에 이렇게 글을 적어 놓은 것입니다. '비록 구름이 끼어 태양이 보이지 아니할지라도 구름위에 태양이 있는 것처럼 지금 현실이 어둡고 캄캄하고 절망일지라도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습니다. 왜냐? 종국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 눈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열셋째로,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왜냐? 로마서 8:28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겨 놓으면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과 나쁜 것, 비오는 날과 잠잠한 날, 햇빛드는 날 바람부는 날 그리고 건강할 때 병들 때를 다 합쳐서 종국적으로 보면 좋게 만들어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현실을 바라보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모든 것에 믿음을 가지는 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은 믿음을 줍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있습니다. 미워하는 사람 믿을 수가 없죠. 믿음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하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열넷째,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봅니다. 사랑은 낙심치 않고 긍정적이 되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끝까지 소망을 바랍니다. 아무리 어둡고 캄캄해도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좋게 만들어 줄 것을 믿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다섯째로,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고난중에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그 고난이 의미가 있음을 믿고 기도하며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고난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그 고난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의미를 잃어버리면 삶은 파탄이 납니다. 가정에서 부부간에 살아갈 때 서로 불신하고 미워해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면 가정이 깨어지든지 자살을 하든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일하는 것은 그 일에 의미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무리 고통이 다가와도 결과적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는 의미를 깨달을 수 있으면 고통을 이겨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님께서 어둡고 캄캄한 고난 속에서 같이 하셔서 나를 결과적으로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는 이러한 의미가 있으면 어떠한 고통도 '믿습니다'하고 참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중에 아무런 의미가 없으면 '무엇 때문에 내가 고통 당하느냐?' 그러므로 고난을 피하기 위해서 자살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하고 있으면 모든 것을 견뎌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힘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가장 우주의 위대한 하나님께서 그 가장 극치의 사랑으로 그 아들을 보내셔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몸찢고 피를 흘려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게 하시고 우리를 부르사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은혜로 구원을 받게 하는 이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랑이 아니면 우리가 구원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죄인이요, 죄를 짓고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를 붙들어서 무조건하고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우린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 때문에 소망가운데서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도 사랑의 힘인 것입니다. 사랑만이 인간의 삶의 바퀴에 기름을 쳐서 삶이 평탄하게 잘 굴러가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의 마음 속에 가장 길이길이 남는 것이 사랑입니다. 왜 우리는 아버지보다 더 어머니가 더 깊이 생각이 됩니까? 그것은 아버지는 율법적이지만 어머니는 그 깊은 따뜻한 사랑으로 우리를 길러 주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깊은 감동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모든 것 다 가진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텅빈 것에 불과합니다. 부귀와 영화와 공명이 좋다고 하지마는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하나의 쓰레기더미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짓고 좋은 음식을 먹고 산다고 하더라도 그 가운데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생지옥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장 우리의 삶을 기쁘게 하고 환희에 넘치게 하고 소망차게 하고 가치있게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안길 때 우린 무한한 사랑의 은혜 속에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우리를 붙잡아서 구원해 주시고 그 사랑 속에 들어가서 우리가 믿음과 기도로 살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영원히 가치있게 되는 것입니다.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고난 중에 낙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 사라이 나를 붙잡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이 나를 붙들어 주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는 사랑 속에서 용납함을 받고 인정을 받고 은혜를 받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아들여서 영원한 구원과 축복을 받고 그 사랑으로 우리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인생을 살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다 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은 사랑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 사랑이 없는 것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을 잘 압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기도하오니 모두 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신 그리스도안에 있는 무한한 사랑을 예수를 믿고 받아들이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 사랑안에서 내가 변화 받고 변화받은 내가 사랑을 가득 담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의무적인 관계나 이해 관계에만 있지 말고 사랑의 기름을 쳐서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사랑의 열다섯가지 요소가 우리의 삶속에 다 나타남으로 참으로 행복한 인생을 건설해 나가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