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1995년 7월 16일
제목 : 우리의 삶을 실패케 하는 것들
성구 : 출 15 : 22-25

우리의 삶을 실패케 하는 것들이란 제목으로 말
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홍해 수를 건
너서 수르 광야에 들어와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목이 마른 백성들이 모두
다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여 물을 달라고
하는데, 마침 그 때 연못물을 발견했는데, 사람들
이 가서 그 연못물을 마시니 연못물이 써서 모두
다 배를 안고 뒹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모세
가 하나님께 기도하매 그 연못물 곁에 나무하나를
지시하는지라. 그 나뭇가지를 꺾어서 연못물에 던
지니 그 연못물이 달아져서 모두다 배불리 마시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사실은 비유로써
우리 가운데 중대한 교훈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
다. 우리도 광야를 지나는 행인과 나그네인 것입
니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서 세상이란 광야를
지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천국으로,
믿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우리는 우리가 모르
는 사이에 우리의 가슴속에 많은 쓴 연못물이 생
겨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연못물을 마시고 그
인격이 달라지고 그 생활이 고통 속에 떨어지고,
낭패와 실망을 당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연못물을 우리가 달게 하고 살지 아니하면 우
리 인생은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기대하는 행
복을 절대로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가슴
속에 생겨나는 이 쓴 연못물이란 도대체 어떠한
것일까요?

첫째로 우리의 가슴속에 생겨나는 쓴 연못물은
미움입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미움이 들어오면 우리의 모든
행복을 빼앗아 가는 마수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
니다. 미움이라는 마수는 우리의 가슴을 휘저어놓
고 마음의 기쁨과 평안을 다 빼앗아 가버리고 마
는 것입니다. 미움이 들어오면 악한 복수심이 마
음에 들어오게 되고, 그 악한 복수심이 들어오면
끊임없는 고통으로 심령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가
인과 아벨을 보십시오. 가인의 제단에는 하나님이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아벨의 제단은 응답했기 때
문에 하나님께서 아벨을 사랑하는 것을 증거 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가인의 마음속에 혹독한 미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동생에 대한 질투와 시기
와 분노가 그 마음의 극에 차자, 그는 밖에서 동
생을 돌로 쳐서 죽여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가정에 맏아들 가인이 둘째 아들 아벨을
쳐서 죽이는 비극이 미움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
입니다. 성경에는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
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
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목회 중에서 미움
이 얼마나 사람의 가슴속에 파멸을 가져온 다는
것을 여실하게 대표적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한
35살쯤 먹은 자매님이 그 어머님의 손을 잡고 저
희 교회에 찾아와서 저에게 신앙상담을 왔습니다.
그 어머니는 연방 눈물을 흘리면서 저에게 절을
하며 우리 딸을 고쳐달라며 간청을 했습니다. 그
딸은 정신이 좀 들어있었으나, 마치 안개 속에 헤
매는 여인과 같았습니다. 사인을 들어본 즉 그 남
편이 가정을 돌보지 아니하고 밖에 나가서 딴살림
을 살고 있는지라. 그 부인의 가슴속에 남편에 대
한 미움이 하늘을 찌를 듯 했다는 것입니다. 하루
도 쉬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편을 원망하고,
남편을 미워하다 보니까 점점 위장병이 심해지고
그 다음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심장병이 악화되고,
그 다음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
고, 그 결과로 정신이상이 생겨서 그 때로부터 시
작해서 정신병원에 들락날락하기를 7년인가 8년인
가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도저
히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고 폐인이 되고, 자식들
은 셋이나 있는데 돌볼 수도 없고 해서 그 친정어
머니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 여인을 데리고 왔습
니다. 제가 그와 카운셀링하는 가운데 마음속에
미움을 뽑아버리라고 했습니다. 미움이 있는 이상
은 절대로 아무리 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다고 말
하니깐. 그가 하는 말이 자기는 미워 안 할 수가
없다. 자기 힘으로는 미움을 뽑을 수가 없다는 것
입니다. 자기 일생을 망쳐버린 그 남자에 대한 한
없는 미움이 그 마음을 잡고 있기 때문에 자기는
아무리 인간의 힘으로 아무리 안 미워하려고 해도
안 미워할 도리가 없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어머니와 함께 기도원으로 보내서 일주일
동안 금식 기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그 마음속에 미움을 제하여 달라고 간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기도원에 가서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미
움을 쓴 물을 달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
는데. 금식기도 사흘만에 십자가의 능력이 그들
마음속에 임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미움이 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미움이 그 마음속에 뽑혀나
가고, 오히려 긍휼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남편을 용서해 주고, 불쌍히 여기사 오히려 하
나님이 구원해 주시도록 간절히 눈물을 흘리며 기
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그의 마음속에 놀라
운 평안과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그 다음 주간에
그 어머니와 딸이 저의 사무실에 왔는데, 제가 간
절히 위해서 안수하고 기도해주었는데. 그 길로
정신병도 나아버리고, 위장병, 심장병도 나아버리
고, 쾌활해지고, 명랑해지고, 행복해지고, 모든 삶
이 변화되어 버렸습니다. 그러한 변화된 인격을
가지고서 살아가니깐 그 남편도 회개하고 자복하
고 돌아와서 새로운 가정이 이루어진 모습을 보았
습니다. 이러므로 미움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은 예
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받아들이
는 길 밖에 없습니다. 미움의 쓴 물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던져야만 그 쓴 물이 달아질 수 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보혈의 능
력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지
않고는 우리 일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가슴에 고통을 가져오는 것은
공포의 쓴 물인 것입니다. 마음속에 불안과
공포가 들어오면 삶의 용기와 추진력을 다 빼앗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에 보면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
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
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라고 두려워하면
그 두려워하는 것만큼 형벌이 따라온 다는 것입니
다. 암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암이란 형벌이 따라
오고, 심장병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심장병의 두려
움이 따라옵니다. 생활이 낭패와 실망을 당할 것
을 늘 두려워한다면 생활에 실패가 형벌로 따라온
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습니다. 우리
가 두려워하면 그 두려워하는 대상이 우리를 따라
온다는 것입니다. 욥을 보십시오. 욥은 정말 자녀
를 많이 거느리고, 짐승 떼도 많고 재산도 많고,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욥의 가슴속에 두려움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너
의 자손들 다 잃어버리고, 너의 재산들 다 잃어버
리고, 너의 몸은 병들고 너의 가정은 파탄에 이를
것이라는 두려운 생각을 자꾸 가져다 놓았습니다.
욥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숨을 모아 쉬면서
두려워했었습니다. 그 부인이 "여보 자다가 왜 일
어나서 이렇게 숨을 모아 쉬는가"하면 "아니야 나
갑자기 악몽을 꾸었어. 나는 너무나 무서워. 내 자
손들이 다 죽고, 재산 다 잃어버리고, 내가 병들고
우리 가정이 파산된다는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 계
속 들어와" 욥의 마음속에 그 두려운 생각이 끊임
없이 들어왔는데, 욥은 이것을 물리치지 못했습니
다. 그 결과 그는 마귀의 공격을 받아서 그 열 자
손이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재산을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는 몸에 문둥병이 들었습니다. 그는
거름더미 위에 앉아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고 있었
습니다. 그 부인조차도 나중에는 욕을 하고 떠나
갔습니다. 천하에 가장 외롭고 처절한 절망에 처
한 자가 됐습니다.
욥은 욥기 3장 25절에 말하기를 "나의 두려워하
는 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더니 그것이 그 몸에 미쳤다고 하는 것입
니다. 그 마음속에 두려움을 내어쫓지 못했기 때
문에 두려움이 형벌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의 공격을 받았을 때 블레셋의 대장
군 골리앗이 그들을 위협했습니다. 골리앗의 고함
소리가 산천을 쩡쩡 울리면 이스라엘 군인들의 가
슴속에 두려움이 꽉 들어차서 그들은 다 도망을
치고 만 것입니다. 역전의 용사들이 앞다투어서
나무 뒤로, 흙더미 뒤로 숨어버리고 이스라엘은
패전이 짙었습니다. 두려움이 그 역전의 용사들을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초립동 다윗이 형
들을 위문하러 왔다가 그 장면을 보고 그는 분개
했습니다. 어떻게 저 할례받지 못한 저 이방인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가. 내가 가서 싸우겠다.
사울은 말했습니다. 너는 초립동이요. 저 골리앗은
어릴 때부터 장군인데. 네가 가서 감당하겠는가
그가 말하기를 내가 아비의 양을 칠 때, 곰이나
사자가 와서 아비의 양을 물고 달아나면 가서 빼
앗고, 덤벼들면 이 주먹으로 쳐서 죽였습니다. 저
골리앗도 그 곰이나 사자와 같은 짐승 중에 하나
에 불과합니다. 그 마음속에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그 마음속에 두려
움이 없고,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물맷돌 5개를 가지고 골리앗을 대적해 나가
서 골리앗을 물맷돌로 쳐서 죽이고, 칼로 그 목을
베었습니다. 그러자 두려움에서 일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블레셋을 치매, 대승리
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 무엇보다도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인 것입니다. 두려
움이 우리 사람을 잡으면 그 심장을 마비시킵니다.
그 생각을 마비시킵니다. 그래서 패배하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길 밖에 없습
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보혈의 능력
을 두려움의 쓴 연못물에 던져버리면, 두려움이
변하여서 확신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예
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앞에 나가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은바 되는 것입니다. 하
나님의 사랑이 마음속에 가득해지면 마음속에 용
기가 생기고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믿음과
용기가 있으면 어떠한 위험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다윗이 말하기를 내가 적진을 달리며 높은 담을
뛰어넘는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
마음속에 두려움을 내어쫓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에 " 하나님이 주신 것은 두
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
심하는 마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움은
원수 마귀가 주는 것이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
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
지하고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의 십
자가를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두려움의 쓴 물은 믿음의 단 물로 변화되어 버
리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의 가슴속에 생겨나는 부정적인 삶
의 태도인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면 그것
은 자기 자신을 이미 파멸로 이끌어드린 것입니다.
이번에 삼풍백화점 사고에서 최근에 살아 나온 사
람을 보니까 최근에 최명석 군이나 유지환 양이나
이 젊은 사람들 모두가 그 마음속에 굉장히 긍정
적이고 밝고 환한 심정을 가졌다고 매스컴이 말했
습니다. 그들은 살아날 수 있다는 그런 긍정적인
자세와 희망을 져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땅속에 매
몰되어 있으면서 근 보름 가까이도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람의 마음속에 부정
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첫째로 자기 마음
을 파멸시키고 자기 생명을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을 도와
주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
가는 경계선인 가데스 광야에 왔을 때 모세가 열
두 정탐꾼을 선택해서 그 땅을 정탐하고 돌아오라
고 했습니다. 그들이 사십 주 사십 야 가나안 땅
을 정탐하고 왔는데 그 중에 열 사람은 완전히 마
음속에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는 사람은 그의 모
든 생활 환경 속에 부정적인 것을 찾습니다. 아무
리 밝은 대낮에도 그림자를 찾으려면 나무 밑 그
림자도 있고, 건물처마 밑 그림자도 있고, 자기 몸
의 그림자도 있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것을 찾으
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열 정탐꾼은 가
나안 땅에 들어가서 부정적인 것만 찾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수기 13장 22절로 23절에 땅을 악평하고 말하
기를 우리는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할 것
이다. 그 거민들은 장대하므로 그들은 스스로 보
기에도 메뚜기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편없다
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박
토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이스라엘 백성
들은 밤새 울고 원망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
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다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야훼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고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
하냐 탄식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영광의 구름
가운데 나타나서 그 열 사람을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벼락을 때려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백성을 광야로 회진시켜 40년을 방황하게 해서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죽어버리게 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것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두
정탐꾼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이 가서 긍정적
인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긍정적인 것을 찾았습니
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찾은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
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
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야
훼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
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
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들은 외쳤습니다. 여호
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긍
정적인 것을 찾아서 보고했으나, 부정적인 사람들
이 그들을 죽이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호
수아와 갈렙은 팔십이 될 때까지 살아서 남은 이
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광야 사십 년을 지나고 팔십이 될 때까지 살
아남을 수 가 있었느냐! 마음속에 긍정적이고 적
극적이며,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마음의 자세를 가
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속에 스스로
부정적인 것을 받아들이고 언제든지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못산다고 탄
식하면, 순식간에 그 사람은 파멸되고 마는 것입
니다. 자기 스스로의 생각이 자기를 파멸하고 또
그러한 사람을 주님께서는 결단코 복을 내려주시
지 않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
도 우리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흙더
미 속에 눌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살 수 있다는 긍
정적인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삶의 손길이 뻗쳐
진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부정적인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 부정적인 쓴 연못물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던져 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악을 정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헐어버리셨습니다. 예수님
은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습니다.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우리 사망과 음부를 철폐했습니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부정적인 것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1장 19절로 20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
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
가 되니 그러므로 우리가 그로 말미암아 아멘 하
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인생에 예라
는 긍정적인 것만 받아들여야지. 아니요 아니요를
받아들여서 부정 속에 살면 예수님도 우리와 같이
할 수 없고 하나님도 우리를 도울 수 없고 우린
파멸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나
가서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영접하
고 우리의 쓴 연못물이 달아져서 부정적인 마음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변화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넷째로, 탐욕의 쓴 연못물이 마음속에 생기면
우리는 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는다고 말했는데, 죄라
는 것은 정도에서 빗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욕심
이 들어오면 우리는 그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그
때부터 정의도 버리고, 정직도 버리고, 성실도 버
리고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왜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나요? 탐욕으
로 말미암아 적은 돈도 들이고, 철근도 적게 넣고,
시멘트도 적게 넣고, 적당하게 지어서 일확천금을
해보자는 탐욕 때문에 그 건물은 무너지고, 수많
은 생명을 빼앗아 갔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우리
가 당하는 비극이란 내부에 보면 탐욕이 들어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탐욕은 반드시 절망을 가져옵니
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는 이 진리의 말씀이 오늘 삼풍백화
점이 무너짐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러므로 백화점을 지은 사람이나 그것을 설계한 사
람이나 그것을 건축한 사람이나 그것을 감독한 사
람이나 그 가슴속에 탐욕이 들어와서 죄를 낳은
것입니다. 정의를 버리고 진실을 버리고 거짓을
가지고서 일을 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사망이 오
게 된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아담을 보십
시오. 하나님이 아담을 지어서 에덴 동산에 두었
는데 하나님께서 동산에 모든 실과는 따먹되, 선
악을 알게 하는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는데 그들은 탐욕 때
문에 마귀의 꾐에 받았습니다. 너도 먹으면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된다라는 탐욕이 들어왔습니다.
사람이면 사람으로 살아야지. 분수를 뛰어넘어 왜
사람이 하나님이 되려고 합니까? 그래서 그 선악
과를 따먹고 파멸로 떨어지고 그 후손들을 저주받
은 땅에 살게 만들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루마니
아에 가서 특별히 느낀 것은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크의 탐욕인 것입니다. 루마니아의 주석
궁은 어마어마합니다. 루마니아에 가서 우리가 보
면 사람들이 묻습니다. "북한에서 왔느냐? 남한에
서 왔느냐?"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몰매를 얻어맞
습니다. 그럼 남한에서 왔다면 친구라고 악수를
합니다. 왜 그러냐. 차우세스크가 북한 김일성의
초청을 받아서 평양을 다녀와서는 완전히 달라졌
다는 것입니다. 평양 김일성의 주석궁을 보고 난
다음에 김일성의 주석궁보다 2배나 더 큰 주석궁
을 지었습니다. 하루에 2만 명씩 동원해서 계속
짓는데 그것으로 말미암아 국가의 모든 자원을 다
낭비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김일성보다 더 큰 주
석궁을 짓겠다고 해서 국가의 재산을 낭비하고 김
일성에게 배워와 가지고서 온 국민들 앞에서 자기
와 자기의 아내를 우상화하고, 그러고 난 다음에
온 집을 다 헐고 온 도시를 아파트 천지로 짓겠다
고 하다가 돈이 없어 차우세스크시는 짓다가 만
아파트 천지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정말로
주석궁에 들어가 봤는데, 입이 벌려서 눈이 휘둥
그레집니다. 얼마나 화려하게 대리석으로 거창하
게 지었는지 요사이는 루마니아 정부가 그 건물이
쓸데가 없어요. 천하에 쓸데가 없는 거대한 공룡
입니다. 그래서 그 때문에 쓸모가 없어 걱정을 하
는데 나는 그곳에 가서 그 건물을 내게 줄까 빨리
도망쳐 왔습니다. 만일 그 건물을 준다면 그 건물
을 운영할 수 없어 망할 정도인 것입니다. 결국
차우세스크의 탐욕 때문에 김일성보다 더 큰 수령
이 되고 김일성이 보다 더 큰 주석궁을 건설하려
고 하다가 결국 국민들의 반발을 타서 데모대에
잡혀서 처참하게 죽고 만 것입니다. 탐욕은 곧 우
상숭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 3장 5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
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탐심의 노예가 되면 그로 말미
암아 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우리는 십자가에 탐심을 못박아 버려야 되는 것입
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나니 라고 했었으니,
우리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을 길은 예수님을 모
시는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들어와서 십자
가의 능력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탐욕을 다 제거해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항복하지 않는 마음이 우리 마음속
에 쓴 연못물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완
악해져서 자기 고집대로 살겠다고 하면은 그것이
쓴 연못물이 됩니다. 야곱이냐! 이스라엘이냐! 이
것이 우리의 중대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
은 자기 중심으로 살고, 자기 고집대로만 살았습
니다. 고향 땅으로 돌아올 때, 얍복 나루터에 왔을
때, 형이 400인의 군대를 거느리고 자기를 죽이러
온다는 말을 듣고, 처자를 다 강 건너 보내고 짐
승 떼를 다 보내고 자기만 강 이편에 남아있는데
밤에 천사가 와서 강 건너 가라고 압력을 하니 절
대로 안가겠다고 천사와 밤새워 씨름했으나, 천사
가 도저히 야곱을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자기
고집에 꽉 들어찬 깨어지지 않는 쓴 연못물을 가
진 사람이었습니다. 천사가 손을 들어 그 환도 뼈
를 쳤습니다. 절름발이가 되매 더 이상 도망칠 수
도 없고 야곱은 깨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천사가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바꾸
어준 것입니다. 하나님과 다투어서 이긴 자! 즉
자기가 깨어져야 하나님과 다투어서 이길 수가 있
는 것입니다. 깨어져야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 기
도를 들어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도 뼈
가 으스러져서 절름발이가 되고 난 다음에 야곱은
이스라엘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로
변화되자,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같이 하여 주셔서
형의 400인의 군대도 그를 호위하는 군대로 바뀌
어 주시고, 그의 일생을 하나님이 이끌어 준 것입
니다. 우리가 완악하여 우리의 뜻대로 살고자 하
면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줄 수가 없습니다만 깨
어져서 하나님께 항복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지도
해주시는 것입니다. 루마니아에서 이제 비행기를
타려고 버스를 탔는데 얼마나 더운지 말도 말아요.
버스에 나비 한 마리가 갇혀서 못날라가서 팔락팔
락 자꾸 창문에 부딪쳐서. 그 후에 보니깐 창문이
열려있어. 내가 인도해서 창문 밖으로 내주려고
하는데 이놈의 나비가 내 말을 들어야 말을 하죠.
자기의 고집을 자꾸 부립니다. 내가 이끌어서 위
로 갖다놓으면 밑으로 나가버리고 또 올려 주려면
옆으로 나가고, 그래서 내가 '야 이놈아 이 바보
녀석아. 너는 저 위에 열린 창문이 안보이지만 나
는 사람이니깐 보인다. 이 놈아! 창문으로 내가
이끌어주려고 하는데 나에게 맡기면 내가 너를 살
길로 이끌어 주면 맡기지 않고 네 고집대로 자꾸
만 날개를 치며 창문을 때려봤자 네 날개만 부러
지지 네가 나갈 수 있느냐' 내가 그렇게 말했습니
다. 그러나 나는 구라파 여행을 하는 파리를 보았
습니다. 내가 한 번 김포공항에 있는데 파리 한
놈이 자꾸 나를 따라다녀. 그래서 내가 떨쳐버려
도 또 날아오고 떨쳐버려도 또 날아와요. 이놈의
파리 한 놈이 왜 자꾸 따라 오냐 그 파리는 구라
파 여행을 하기로 작정한 파리였습니다. 그래서
내 어깨 위에 딱 올라타고 내가 비행기를 딱 올라
타니깐 나와 함께 어깨에 올라타고 비행기표도 안
사고 공짜로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아 그래서
비행기 안에서 구라파까지 날아가는데 밥 나오면
날아와서 밥도 먹고, 또 우리가 자면 붙어서 자고,
또 간식이 나오면 또 날아와서 간식이 있는데 또
달라붙어 먹고 그러고 나니깐 구라파에 와서 비행
기문을 여니깐 또 내 어깨 위에 타고 같이 구라파
에 나와서 횡하고 날아갑니다. 한국 파리가 구라
파 여행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파리 자기 힘으
로 절대로 날아서 구라파까지 못갑니다. 그러나
내 어깨 위에 올라타니깐 구라파도 가더라는 것입
니다. 우리 힘으로 절대 되지 않을 일도 주님께
의지하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
으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가 주님께
의지하면 주께서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수고하
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
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
리의 마음속에 항복하지 않은 마음을 깨뜨려 버리
고 주님께 항복해야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고집대로 사는 쓴 연못에 받아들여
서 달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
을 버려서 죽기까지 순종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로 11절에 보면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
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
의 모양으로 나타났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
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
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
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
셨느니라" 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
으면 하나님이 살려 주시고, 우리가 깨어지면 하
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놓으면 하나님이 우리
를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생을 살면
서 우리의 가슴속에 쓴 연못물이 많이 생겨납니다.
미움의 쓴 연못물, 그리고 공포의 쓴 연못물이 마
음속에 생겨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항복하지 않
은 자기 외고집의 쓴 연못물도 마음속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못물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
자가를 던지면 달아집니다. 사람의 힘으로 아무리
수양과 도덕을 닦아도 안 되는 것이 십자가의 나
무를 던지면 달아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들이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혼을 변화시켜주는 것입니다. 쓴 물을 달게 만
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미움 대신
에 사랑을 공포대신에 마음속에 믿음을 넣어주시
는 것입니다. 불신 대신에 순종의 마음을 마음속
에 넣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
우리 쓴 연못물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
오십시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여
러분이 모셔들이면 그리스도가 기적을 베풀어주시
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변화를 받아
우리를 낭패하고 실망케하는 것을 다 제쳐 버리고,
우리를 성공하게 하고 기쁘고 평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역사를 받아들이게 되시기를 주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진실로 고맙고 감사
합니다. 우리들은 가슴속에 쓴 연못물을 가지고
그 물을 마시면서 불행과 슬픔 속에 살 때가 많습
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마음속에 생겨난 미움의
쓴 연못물도 달아져야 되겠습니다. 공포의 쓴 연
못물도 우리 아버지여. 달아져야겠습니다. 부정적
인 생각에 쓴 연못물도 하나님이여 십자가를 던져
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달아져야 되겠고, 탐욕
의 쓴 연못물도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정상적
인 마음으로 달아져야겠습니다. 아버지! 완악한
불순종의 쓴 연못물도 달아져야겠습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아무리 수양과 도덕을 닦아도 달아
지지 않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받아들이면
쓴 물이 달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수르
광야에서 마라의 쓴 물이 나무를 던져서 달아진
것처럼 인생 광야에서 쓰디쓴 연못물이 된 우리
가슴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던져 넣게 도와 주
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도하도록 도와 주
시옵소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에게
간구하고 모셔들임으로 우리의 쓴 물이 다 달아져
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됨 같이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