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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2월 22일 제목: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성구: 마가복음2:1-12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강수와 같이 제사로 짐승의 피 를 흘리고 수양의 기름으로 하나님께 드린다고 해도 믿음 이 없이는 그 제사와 의식 형식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어떻게 얻으며 그 믿음을 어떻게 사용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 속에는 여기에 대한 좋은 교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을 우리가 자세히 살펴봄으로 함께 믿음 을 얻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여러분 성경에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말했습니다. 듣지 않고 는 복음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번에 인도에 가 서도 인도 사람들 대다수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 줄 평 생에 한 번도 못 들어 봤습니다. 그리고 영국사람들이 인 도를 점령할 때 대포와 총을 가지고 점령을 하고 그 뒤에 선교사들이 따라왔기 때문에 아예 기독교 복음에 대해서 굉장히 적대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포와 총을 가지고 들어와서 우리를 점령한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강제로 복 음을 증거했는데 우리가 그것을 들을 필요가 있느냐? 그 때 그들이 증거한 복음이 순수한 순복음이 아니고 많은 형 식과 의식적인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믿음이 들어가지 않 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우리가 복음을 들고 왔을 때 우리는 역사적으로 인도에 대포나 총을 가지고 가서 점령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 대한 굉장한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인도에 들어가면 말합니다. 옛날에 인도 문 화가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므 로 한국 국민들은 인도를 굉장히 사랑하고 고대 문명국으 로 존경을 한다. 가야시대에는 인도 여성이 와서 가락국 왕비가 된 적도 있다. 인도 여성이 왕비가 되어서 이 땅을 다스렸고 그 무덤이 아직도 김해에 가면 남아 있다. 그렇게 때문에 한국 36년 동안 일본의 통치하에서 시달 릴 때 인도의 시성 타골이 우리에게 놀라운 격려와 위로의 시를 주었다. "옛날 황금 시대에 찬란하게 빛나던 코레아 다시 일어나 그 등불을 비춰라 그러면 온 세상을 비추는 밝은 등불이 되리라" 이런 시를 우리에게 주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인도에 대한 굉장한 감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하니까 나를 체포하러 왔던 사람들이 나를 잡을 수 가 있어야지. 그곳에 있던 인도 사람들이 다 박수를 치고 환영하고 그리고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 니까 귀 기울여 듣다가 믿음이 들어온 것입니다. 전부 녹 음기 들고 내 설교 적어서 조건을 잡으려고 한 사람이 결 국은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증거했기 때문에, 정치 나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지 아니하고 그리스의 복음을 증 거했기 때문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다 보니 까, 체포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 믿게 되어 버리고 나 중에는 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위대한 힘인 것입니다. 복음은 전파되면 그 속에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일 은 전파하면 분쟁이 생기고 논란이 생기고 투쟁이 생기지 만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귀신을 쫓아내고 불신앙을 쫓아내고 믿음이 생산하는 기적을 베풀 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곳에 가나 그리 스도의 복음을 증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 서 나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이 가버나움에 있는 이 사람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복음을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정황을 살펴볼 때 상당히 잘 사는 부자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돈이 많으므로 자연 적으로 세상에 방종하고 방탕하며 많은 죄를 짓고 살았습 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인 사 불성이 되어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보니 반신이 마 비되고 이제는 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중풍이 되고 보니 옛날에 그렇게 사랑하던 친구들도 한 사람 다 떠나 버리고 사회적으로 이제는 소외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집안 식 구들도 중풍에 걸린 자기를 끝까지 부추겨 주지 않습니다. 외롭고 슬프고 절망적입니다. 온갖 약도 다 먹어 보고 온 갖 치료를 다 받아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절망적인 상황에서 죽음의 날만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누가 복음을 증거해 주었습니다. 야! 나사 렛에서 위대한 선지자가 출생했다. 그는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가 가는 곳마다 죄는 미 워하나 죄인은 사랑해서 죄를 용서해 주고 구원시키더라. 병은 미워해서 끝까지 병자를 다 고친다. 귀신도 쫓아내고 심지어 문둥이조차도 순식간에 고침을 받더라. 죽은 자도 살아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평안이 일고 영원한 소망이 온다. 그분이 온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 여러 곳을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는데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따라오 며 그 분을 만난 사람마다 근본적인 인생의 변화가 다가오 더라. 너도 소망이 있다. 이 말을 듣자 이 중풍병 환자는 완전 절망 상황에서 마 음속에 희망이 솟아올랐습니다. 복음이 들어와서 그 마음 속에 희망이 솟아올랐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복음이 들 어오면 마음에 희망이 솟아오르고 뜨거운 소원이 솟아오릅 니다. 희망과 뜨거운 소원이 곧장 믿음으로 변화되는 것입 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가 바라는 목표가 분명히 있으면 그 목표를 향하여 뜨거운 마음으로 바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그것이 이미 마음에 이 룬 줄 꿈으로 마음속에 받아들여서 주야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바라보고 간절히 소원하면 그것이 믿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믿음이 들어오게 되요. 믿음이란 마치 총에다가 화약을 넣어서 방아쇠를 당기면 꽝하고 나 가는 것과 같습니다. 화약을 장전하지 않고 아무리 방아쇠 를 당겨도 그것은 소용이 없습니다만 화약을 장전해야 방 아쇠를 당기면 총이 나가는 것처럼 믿음은 화약과 같습니 다. 화약이 생겨야 주님께 나아갈 때 폭발적인 기적이 일 어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먼저 복음을 듣고 거기에 희망을 가지고 꿈을 꾸며 간절한 소원을 가질 때 마음속에 믿음이 생깁니다. 이러므로 이 사람은 그리스도의 이 복음을 듣고 난 다음에 마음에 희망이 생기고 뜨거운 소원이 생겼습니다. 어찌하 든지 나를 예수께 좀 데려다 다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자 동차도 없고 들것에 들고서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도 모 르는데 동서사방으로 돌아다닐 수가 없습니다. 뜨거운 소 원이 있고 안타까웠으나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기도를 하 며 예수님 만나기를 열렬히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문이 들렸습니다. 바로 자기가 사는 가버나움 동네에 예수께서 오셔서 하루 저녁을 주무신다는 소문이 들렸어요. 그는 그 소문을 듣자 그는 후닥닥 자리에서 일 어났습니다. 이것은 나의 기회다. 내가 소원하고 바라고 꿈 꾸던 그 기회가 왔다. 나는 예수님께 기어코 나가서 예수 님을 만나 봐야 되겠다. 그래서 자기 친구들을 불렀습니다. 건장한 친구들에게 일당을 주고 나를 들것에 들고 예수님 이 계신 곳으로 데려다 다오. 나는 이곳에서 이대로 죽을 수 없다. 나는 예수님을 만나야 되겠다. 그래서 그 마음속 에 간절한 소원과 꿈과 믿음을 가지고 그는 들것에 실려서 가버나움에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가보니 까 벌써 인산인해요. 예수님이 계신 곳에 집안에도 사람이 꽉 들어차고 집밖에도 사람들이 꽉 들어찼습니다. 여러분 인산인해라 하면 저만큼 인산인해를 많이 본 사 람도 없습니다. 대개 해외에 나가보면 구라파에 나가면 오 천명에서 만여명의 사람이 오지만 아프리카나 아시아 일대 에 나가면 최소 단위가 오만명에서 십만명입니다. 정말로 말이 쉬워 그렇지 십만명만 모여도 끝이 안보여요. 인산인 해입니다. 거기다 이십만 삼십만이 모이면 인산인해죠. 절 대로 군중 가운데 나갔다가는 뼈도 못 찾습니다. 인도 사 람들은 보니까 그 나라에는 이렇게 성자들을 만지는 습관 이 있어요. 성자들을 만지면 복이 온다고 하기 때문에 너 무 만지려고 달려들기 때문에 강단에서 내려와서 갈 기회 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헤쳐 놓았을 때 싹 뛰어나와서 차 를 타야지 한번 잡히면 옷 다 뜯깁니다. 인정사정 없어요. 이때가 기회라고 옷이라도 찢어가야 하겠다고 하기 때문 에. 이러므로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이 계신 곳에 너무나 사 람들이 많이 모여 왔으므로 예수님이 배를 타고 바다 속으 로 도망을 치시고 동네 안으로 못 들어오시고 동네밖에 계 시고 한 그 이유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천국 가시기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행한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 내가 아버 지께로 감이라 그래서 그것을 제가 느낍니다. 예수님 살아 생전에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여도 만 여명이 모였는데 지 금은 수십만명이 모이니 예수께서 보좌 우편에 계셔서 성 령을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더 큰 일을 하도록 주님께서 역 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들것에 들려서 가보니 예수님이 가버 나움의 어느 집에 들어가 앉아 있는데, 집 안 밖에 사람들 이 인산인해로 둘러서 있으니까 들어갈 수가 없지요. 어지 간한 사람같으면 에이 안되겠다 집으로 돌아가자 이렇게 하겠는데, 이 사람은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믿은 이상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예수님 앞에 나아가야 되겠 다. 그래서 그 네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지붕으로 올라가 자. 그리고 집 지붕을 뜯어내고 그 위에서 나를 밧줄로 묶 어서 침상채로 주님 앞에 내려다오! 여러분 남의 집 지붕을 뜯을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 내용을 여기에 상세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 이 사 람이 그 집주인을 불렀을 것입니다. 내가 아무래도 당신의 지붕을 뜯고 밑으로 내려가야 되겠는데 집 값은 내가 지불 하겠다. 오라 이 때에 갑절로 받아야 되겠다. 갑절로 안 받 고서 자기 지붕을 뚫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 집주인은 비싼 값을 불렀을 것이고 이 사람은 그 비싼 값도 상관없 이 그 값을 다 지불하고 그리고 난 다음 그는 지붕으로 올 라갔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입니다. 그리고 지붕을 뜯기 시작하는데 예수님이 설교를 하다가 보니까 막 지붕 위에 서 꿍꿍 소리가 나더니만 먼지가 비와 같이 쏟아집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함을 치고 손가락질을 하며 저 놈을 죽여 라 저 나쁜 놈이 어디에 있느냐? 남의 집을 저렇게 부수고 내려오는 놈이 어디에 있냐? 그렇게 해도 예수님은 아무 말도 안 하시고 쳐다보고 계십니다. 한 참 만에야 예수님 의 머리 위에 구멍이 이렇게 뚫렸습니다. 예수님도 먼지를 다 덮어 쓰셨습니다. 거기에 내려 와서 보니까 예수님 앞 자리에 침상을 내릴 자리가 있다. 네 사람이 밧줄로 침상 을 묶어서 내립니다. 보통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전부 다 쳐다보고 있는데 이 사람이 달려서 예수님 앞에 내려 왔습니다. 반신이 불수이니까 잘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냥 간신히 주님 앞에 갔습니다. 성경이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저의 믿음을 보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믿음이란 마음속에 생기지만 마음속에 있는 믿음이 예수님과 연결되기 위해서 는 행동으로 보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이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듣고 마음속 에 만나기를 소원하고 꿈꾸고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 도 그가 들것에 들려오고 지붕을 뜯고 밧줄에 묶여서 내려 오는 행동하는 믿음, 실천적인 믿음, 이런 믿음이 없었으면 예수님과 연결이 안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앉아서 이 사람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대단히 주님께서 감동을 느 꼈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하는 믿음이 그리스도와 연결을 가져옵니다. 여러분 인도에 가서 힌두 교도들을 예수께로 인도하면 당장 체포되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제가 한국을 떠날 때 인도 대사관에게 나는 인도에 가서 한 사람의 힌두교도도 예수께로 인도하지 않겠습니다. 하는 서약서에 사인을 했 었습니다. 그럴 정도로 엄격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복 음을 증거하고 난 다음에 회개한 사람들 그 자리에 일어나 라 일어났으면 앞으로 나와라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입 니다. 힌두교도들 자신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개종해서 예수를 믿게 되면 집안에서 쫓겨나게 되고 몰매 를 맞게 되고 여러 가지 생활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으로 설교를 듣고 나는 앉아서 남 몰 래 예수 믿겠다. 이것은 되지 않습니다. 왜냐? 예수님께서 믿음을 보셔야 구원을 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을 보지 않고 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중 앞에서 일어나라 그리고 앞으로 나와라. 힌두교 여성들은 모두 다 이마에다가 빨간 점을 찍습니다. 그런 빨간 점을 찍은 그 여성들이 앞으로 물결치듯이 나옵니다. 그럴 때 나는 힌두 교를 이미 부인하고 힌두교를 등지고 예수께로 나온다는 눈에 보이는 믿음을 가지고 나옵니다. 보통 힘든 일이 아 닙니다. 다른 힌두 교인들이 다 보고 있습니다. 힌두교 사원 책 임자가 와서 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믿음 이런 행동하는 믿음을 가지고 나올 때 주님은 그 사 람을 내 믿은 대로 될지어다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행동하는 믿음으로 우리가 움직여야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지 행동하지 아니하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 니다. 우리도 예수 믿고 교회에 나오는 그것이 눈에 보이는 믿 음입니다. 나는 집에서 혼자 앉아서 믿는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주일날 성경 들고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기 위 해 나오는 것, 눈에 보이는 믿음입니다. 또 내가 십일조를 교회에 드릴 때 내가 벌은 돈 중에 수입 중에 십분지 일을 교회에 드릴 때 그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요사이 저는 경리국에서 우리 1년 동안 십일조를 낸 그 결과를 우리 주의 종들, 장로님, 안수 집사님, 우리 평신도 들 중에서도 고액의 십일조를 낸 사람들 기도해 달라고 저 의 방에 컴퓨터에 적어서 내어놓았습니다. 그 서류를 보면 눈에 믿음이 환하게 보입니다. 이 사람이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가 일년 동안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모습 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물론 많이 낸 사람들도 있고 적게 낸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생활의 수입에 달려 있지 만 매달 마다 내느냐 안내느냐 어떠한 사람들은 가위로 머 리를 자른 것처럼 듬성듬성 내어놓습니다. 한번은 내었다 가 다음 번에는 안 내었다가 또한 두 달 있다가 내었다가 그것은 듬성듬성 믿음입니다. 제가 그것을 보고 느낀 것은 주의 종들 중에도 십일조 한푼도 안 내는 사람이 있고 우 리 교회의 최고 기름 부음 받은 장로님들 중에서 십일조 한 달도 안 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장로님들이 강단 에 서서 기도할 때 내가 뒤에 앉아서 뭐라고 하겠습니까? 아무리 기도해 봤자 소용없다. 왜!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 진 그 분이 하나님께 나와서 대표 기도를 하는데 우리 하 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겠어요.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 아서 웃기지 말라. 그리고 우리 성도들 중에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 분인데 아주 놀랍고 성실하게 십일조를 내는 분들이 있어요. 그것 은 행하는 믿음이거든요. 그럼 우리 인간편으로 볼지라도 그것보고 야 그분은 믿음이 크구나 그 장로님은 정말 믿음 이 크구나! 이 집사님은 믿음이 크구나! 알 수 있는데 하 나님 보시기에는 뭐, 속을 꿰뚫어 보시는데 얼마나 분명히 보시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 음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1839년에서 1937년 동안 산 세계적인 기독 신앙인 미국 의 록펠러, 그 록펠러는 주급 1달라 50센트를 받던 사무원 이었습니다. 그 주급 1달라 50센트이니까, 한 일주일에 한 천원 받는 월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4주간이니까 사천원 을 받지요. 그런 사무원으로 들어간 사람이 그 1달라 50센 트를 받으면 꼭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계 속 축복해 주고 돌보아 주어서 그는 나중에 석유가 나오는 유전을 발견하고 스탠더드 석유 제국을 이룩했었습니다. 세계적인 대재벌이 되고 훗날에 세계 일류의 복지증진 목 표로 록펠러 재단을 설립하고 사회 봉사에 큰 기여를 했는 데 그가 남긴 말이 있습니다. 내가 주급 1달러 50센트였던 나의 첫 봉급에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다면 현재 몇 만 달러의 십일조는 결코 바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행한 믿 음입니다. 하나님이 그 행한 믿음을 보시고 록펠러에게도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는 세계적인 재벌이 되어도 계속해서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믿음인 것입 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사람이 그냥 앉은 자리 위에 지붕을 뚫고 먼지를 날리 고 내려와도 개의치 않은 것은 이 사람이 행함이 있는 믿 음을 가지고 내려 왔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서는 이 사람을 보고 대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과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이 사람을 보시고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대개 죄가 우리 에게 여러 가지 형벌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께서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또 그 사람이 말은 못하지 만 그 마음의 죄를 통회 자복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계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 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믿고 나올 때라도 우리 마음속에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법 을 어겨야 죄입니다. 법이 없으면 죄도 없습니다. 법을 어 길 때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유대인이 고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죄가 있 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항상 주님 앞에 나올 때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을 보고서 이 법을 어긴 삶을 살았으 면 회개해야 됩니다. 구원은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하 나님께 나가서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 에 막힌 죄의 담을 허물어야 됩니다. 네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명되 게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네 부모를 공 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 이러한 것들로 우리가 마음을 비춰보고 우리 마음에 거리 낌이 있으면 주님께 회개하고 자복하면 우리 주님께서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렇게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죄 사함을 받았을 때 주님 께서 네 침상을 걸머지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한 것입니 다. 여러분 치료와 용서는 손의 앞뒤와 같습니다. 원래 사람 은 병들도록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 가 하나님께 범죄 했을 때 주님이 말하기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이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 라는 말은 병들어서 죽어야 흙으로 돌아갑니다. 죄를 짓기 전에는 아담의 몸은 죽지 않는 몸이었습니다.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은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자 몸을 부패 시키고 몸에 사망이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 죄 사함을 받으면 병에서 고침을 받고 그 다음 부활해 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 가 병에서 고침 받는 것은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당연히 얻는 특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 네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니까 그 곳에 있는 사람이 세상에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지 사람이 어 떻게 죄를 용서한다고 말하느냐? 저렇게 하나님을 욕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참람하다. 그렇게 말할 때 예수님 이 그 말을 이미 알아들으시고 너희 주위에서 어찌하여 내 가 죄를 용서한다고 말함으로 참람하다고 말하느냐? 내가 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는 것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 네가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는 말과 네 침상을 걸머지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 어느 것이 쉽겠느 냐?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은 말로 하는 것이니까 결과가 눈에 안 보이니까 쉽다고 생각하지만 죄를 용서했으면 그 다음에 병을 고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죄 를 용서함으로 죄로 말미암아 오는 병을 고침 받게 하는 것을 알게 하겠다. 너는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 이 사람 은 당장 일어나서 침상을 들고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게 될 때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하나님 아들로 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죄가 용서받으면 병도 따라서 낫는 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고 죄 사 함을 받았으면 그것은 당연하게 병고침을 달라고 기도할 자격이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붙잡아서 병들게 할 권한 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았음에도 병고침을 받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약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마귀에 게 속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연하게 주님께 죄 사 함을 받으면 병고침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 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고 우린 마귀에게 속아서 우리의 육체의 부분을 마귀에게 점령당하여 병으로 고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호한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해서 마귀를 멸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주님께서 내 이 름으로 내가 귀신을 쫓아내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은 마귀의 권세를 십자가에서 다 무장해제하고 마귀를 무력하 게 만들었지만 쫓아내는 것은 우리에게 쫒아내라고 하셨습 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가 진리를 알고 진리로 무장해서 단호하게 일어나서 마귀를 쫓아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들어올 때는 인산인해가 되어 길이 열리지 않 았습니다. 도저히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죄 사 함을 받고 병고침을 받고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게 되니까 침상을 들고 가니까 길이 쫙 열립니다. 그는 침상을 들고 유유히 기쁨과 즐거움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는 것입 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께 나와서 죄 사함을 받고 오중 복음과 삼중축복을 얻고 난 다음에 우리는 나가면 막혔던 길이 트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이 사람의 가는 길이 환하게 열려진 것처럼 우리에게 용서의 길도 열리고 치료의 길도 열리고 축복의 길도 열리고 형통 의 길도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이 러한 변화가 우리의 삶의 역정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 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 말씀을 듣고 믿음을 행동으 로 옮겨야 됩니다. 기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고 죄 사함을 받 으면 그 다음부터 우리의 삶 속에 영혼이 잘 되는 길도 열 리고 범사에 잘 되는 길도 열리고 강건하게 되는 길도 열 리고 형통의 길이 열려서 무엇이든지 하는 일마다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한 사람의 중풍병 환자가 영적으로도 죽었고 심적으로 절 망에 처하고 육신은 병들고 생활은 완전히 포기된 상황에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을 얻고 그 믿음 을 행위로 실천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치료를 받자 그 인 생 길은 환하게 열려 버린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 는 역사가 일어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을 볼 수 있습 니다. 아버지 우리도 말씀을 듣고 마음속에 믿음을 얻었으면 그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우리 주님께 믿음으로 나와서 기도해서 죄도 사함 받고 치료도 받고 주님의 축복을 받아 서 우리의 막힌 담이 다 무너지게 하여 주시옵시고 막힌 길이 다 열리게 하여 주옵시고 형통의 길이 열려 지게 하 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과 함께 걸어감으로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한 삶이 나타나게 도와 주옵소 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