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월 19일
제목: 제물은 죽여 드려야 한다.
성구: 로마서 12:1-2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제물은 죽여 드려야 한다"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구약 시대 때 사람들이 하나님께 속죄제나 속건제나 화목죄나 감사제나 번제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양이나 염소나 송아지나 비둘기 등을 가지고 오면 제사장은 그 짐승을 제단 앞에 가지고 와서 반드시 잡아서 피를 제단에 쏟고 그리고 제사를 드립니다. 결코 산체로 하나님께 드려서 버둥거리는 그 짐승이나 그 새로써 제사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산 체로 드리는 제물은 결코 받지 않습니다. 죽여서 피를 흘리고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께서는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들이 가르쳐 주는 진리가 대단히 깊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거나 크고 작은 사업이나 일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은 그 사람이나 그 사물을 반드시 받아서 상징적으로나마 죽여서 제단에 얹게 하시고 그리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다시 살려서 산 제물로 만드시고 축복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일에 대해서 여러분 우리가 좀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구약에 보면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장면을 우리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아 네 독자 네 사랑하는 아들을 내가 지시하는 땅, 산에 가서 번제로 드려라' 이거 대단한 명령입니다. 100세에 낳은 자식을 이제 17,18세쯤 되어서 모든 아버지의 가사를 돕고 아버지가 친구가 되었으니 아버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한 자식입니다. 그러니 이삭을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에 가서 그를 잡아 각을 떠서 불로 태워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명령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 주시기 전에는 반드시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야 그 다음에 축복을 해 주시지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내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에게도 얘기하지 아니하고 그 아들을 데리고 사흘 길을 걸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땅을 찾아서 사흘 길을 걸어가는데 그 아들이 아버지를 부축해서 걸어갈 때 아버지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 사실을 아들에게는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가 가고 해가 지니 주막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에게 물을 떠와서 발을 씻겨 드리고 식탁을 준비해 드리고 잠자리를 준비해 드리고 아버지 다리 아프다고 만져 주고 어깨를 두들겨 줄고 할 때 아버지의 가슴은 메어지는 것입니다. 이 아들을 내가 죽여서 제물로 드리자니 차라니 내가 죽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제 충분히 하나님의 명령이 어떻다는 것을 깨달아 안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절대 복종, 절대 순종만이 있지 거기에 인간적인 논쟁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 하루 길 걸어가서 또 다시 그렇게 지내고 3일째 되는 날 산밑에 내려가서 종들에게 너희는 여기에 있으라 아이는 나와 함께 가서 제사를 드리고 오리라. 그러고는 산을 올라가는데 이제 이삭이 장작을 어깨에 걸머지고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들고서 올라가는데 이삭이 생각해 보니 이상하거든요? 제사를 드리려면 반드시 제물이 있어야 하는데 제물이 없거든요? '아버지 여기에 장작도 있고 불도 있고 칼도 있는데 제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마음이 털컥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태연한 척하고 '음, 음, 제물은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신다' 그래서 모리아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장작을 내려놓고 그 아들과 함께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베어다가 거기에 깔고 그리고 난 다음 아버지가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버지 왜 저를 바라보시지요?'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기를 너를 잡아서 제물 드리라고 했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잡아야겠다. 손을 내밀어라!' 두말하지 않고 이삭은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버지는 이삭의 손을 묶고 발을 묶고 이삭을 들어서 그 제단의 장작 위에 올려놓고 그의 눈에는 눈물이 한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 가슴에 슬픔으로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칼을 들고 떨리는 손으로 그 아들을 내려다 보니 아들은 눈을 감고 아버지가 죽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칼을 높이 들어서 그 아들을 내려치려고 했습니다. 이미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그 아들을 이미 잡은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임하여서 그 팔을 잡았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아들 죽이지 말아라' 그래서 아브라함이 칼을 놓고 그 아들의 묶은 끈을 풀고 그를 제단에서 내리고 보니까 그 옆에 풀 섶에 산 양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해 놓았습니다. 그 산양을 잡아다가 죽여서 피를 흘리고 번제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여기에서 이미 아브라함의 마음은 이 아들 이삭을 죽인 것입니다. 이 이삭도 하나님 앞에서 그 마음으로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죽여서 드려야 하는데 이삭은 칼만 안 꽂혔다 뿐이지 이미 아브라함의 가슴속에서 죽은 자식입니다. 자기도 하나님 앞에 죽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예컨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에서도 죽었고 이삭의 마음에서도 죽은 자식을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물로 바친 그 자식을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난 다음에 그 다음 하나님께서 축복을 명하셨습니다.
창세기 22장 16절로 18절에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하나님의 이 위대한 축복은 그 아들을 제물로 드려서 죽이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상징적으로 부활시키고 부활한 산 제물에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이스라엘이 선민이 되고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도록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둘째로, 알아보고 싶은 것은 우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산에서 제물 되게 하신 것을 우리는 깊히 생각을 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를 보내시사 우리에게 그냥 교훈을 하시고 좋은 말씀을 가르쳐 주어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었을까요? 그러나 성경에는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제물로 드리지 않고는 하나님은 죄 사함도 줄 수 없고 축복도 줄 수 없습니다. 반드시 제물로 드려야 하나님이 그를 죽여서 제물로 받으시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살리셔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은 반드시 죽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제물이 됩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라고 말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온 인류를 대신 해서 하나님 앞에서 제물이 되기 위해서 갈보리산 십자가에 올라가서 그는 죽었습니다. 피를 흘리고 죽어야 제물이 됩니다. 살아서는 절대로 제물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산 제물은 받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들이라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제사를 드리려면 죽어서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도 너무나 잘 알다시피 죄를 갚기 위한 제물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제물이 되셨음으로 그의 찢어지고 피 흘리심을 통해서 우리를 속죄하시고 주님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지은 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은 죄, 스스로 마음속으로 허약해서 지은 모든 죄를 영원히 주님께서 속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또한 동시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원수된 담을 다 무너뜨리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서 하나가 될 수 있는 큰 사랑을 가져오기 위해서 화목 제물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화목 제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품어주시고 안아주시고 하나님과 함께 깊은 대화와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에서 우리의 치료의 제물, 기쁨의 제물이 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도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치료의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주님께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고 우리의 모든 병을 다 갚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병 고침을 달라는 것은 막연하게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치료의 제물이 이미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제물을 받아드렸으므로 우리는 마땅히 당당하게 에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치료를 구하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치료를 해 주게 되어 있습니다. 왜, 제사를 받으셨으니 주님께서 치료해 주셔야죠?
그 뿐 아니라 더 놀라운 것은 우리의 마음에 기쁨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마음의 기쁨은 양약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약 공장을 돌립니다. 우리는 이 양약을 마음속에서 산출하면 우리는 모든 병에서 나음을 얻고 우리는 건강하고 젊고 활가차고 그런 삶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오늘날 병 없이 장수하기를 원하는데 병 없이 장수하는 가장 좋은 첩경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쁨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가시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슬픔을 다 짊어지고 가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셔야만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하면 어떠한 환경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역사하면 이것이 우리에게 양약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가 막힌 양약이 됩니다. 어떠한 약 공장에서도 생산할 수 없는 우리를 치료하고 젊게 하는 양약이 되어 젊고 건강하고 장수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축복의 제물이 되지 않았습니까? 모든 아담과 하와가 지은 저주를 다 짊어지고 율법의 저주를 다 예수님이 감당하시고 주님께서 축복의 제물이 되어서 그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흥건하게 제단에 흘렀습니다. 그 피가 외칩니다. 모든 저주는 청산되었다. 모든 가난은 청산되었다. 예수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허락되었다. 그 피가 부르짖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그 피가 부르짖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단에서 쏟으신 그 붉은 피를 보십시요. 그 피가 우연히 흐른 것 아닙니다. 값없이 흐른 것이 아닙니다. 이유가 있어 흐린 것입니다. 저주를 속하기 위해서 주의 피가 흐른 것입니다. 그 피를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 피를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당연히 우리 것으로 주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생, 부활, 천국을 위한 제물이 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실 수 없는 분이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없으면 죽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죄 짓기 전에는 죽을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자, 영혼이 죽으면 육은 따라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었기 때문에 절대로 죽을 수 없었습니다. 창을 찌르고 칼로 찔러도 예수님은 돌아가시지 않습니다. 게세마네 동산에서 인간의 죄를 다 들여마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영혼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육체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게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은 몸부림을 치며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요. 인류의 죄악의 잔을 예수님께서 몸서리를 치면서 마셨습니다. 그러자 그 영혼이 죽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육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과 육체가 죽어서 고난을 받고 난 다음에 그 사망을 다 청산하고 사흘 만에 부활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생명의 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여러분 우리는 이제 기쁘게 영생을 얻게 되고 부활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예수께서는 이제는 성령으로 오셔서 주께서 드린 그 제물의 결과를 여러분에게 누리게 하시려고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제사는 이미 주님이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그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그 제사 드린 결과는 여러분에게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오늘 말씀과 성령으로 여러분에게 깨우쳐 주시고 믿음을 넣어 주시고 기도하게 해 주시고 그 제물의 댓가를 여러분이 받도록 주님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셋째로, 그러면 이 성경에 주님께는 우리도 거룩한 산 제물이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러분 원래부터 살아 있는 제물은 제사가 아닙니다. 그 때문에 산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죽어야 주님이 부활시켜서 산 제물로 만들지요? 원래부터 살아 있는 버둥대는 제물은 제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어야 됩니다. 실제로 죽던지 상징적으로 죽던지 우리는 죽어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 믿고 난 다음 주님이 우리를 제물로 만드는 것은 물세례를 통해서 제물로 만듭니다.
물세례가 뭡니까? 우리가 물에 들어가서 주의 종에 의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물 무덤 속에 들어갑니다. 물 속에 잠기는 것은 이제 죽었다 그 말인 것입니다. 죽어서 물 무덤 속에 들어갔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이제는 죽어서 제물이 되었다는 큰 상징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다시 물 속에서 일으키는 것은 이제 죽기는 우리가 죽었는데 하나님이 다시 우리를 살리셔서 이제는 산 제물로 만들어서 하나님 소유로 삼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물 무덤에 죽어 장사 지내고 제물이 되고 주님의 능력으로 살아난 이 역사 없이는 산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로마서 6장 3절로 4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물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세례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제물된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리셔서 산 제물이 되게 하셔서 그때부터 주님께서 그 산 제물에 축복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을 나는 죽었고 나는 다시 사는 산 제물인 것을 마음에 인식하고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죽고 함께 산 사실을 우리가 깨달아 알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제물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께 제물 되어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살리심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나를 살려 주셨음으로 이제는 나는 산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마음속에 온전히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물로 받으신 사람을 먼저 상징적으로 죽으시고 그리고 난 다음에 상징적으로 부활시켜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날마다 죽고 날마다 하나님이 부활하셔서 제물 되어서 산 제물이므로 하나님의 산 제물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이 계속해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부활시켜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손 장중에 잡으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75세에 갈대아 우르를 떠나 왔는데 그가 자식을 달라고 했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자식을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생애를 온전히 제물로 받으시고 그 자식의 생명을 제물로 받으시기 위해서 먼저 죽고 그리고 제물이 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산 제물이 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힘으로는 이제 자식을 못 낳을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로마서 4장 18절로 22절에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여러분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기 위해서 그와 그 아내의 꿈과 기대가 죽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제물로 받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그가 나이가 75세에 출발한 그가 100세가 되어서 이젠 자신 자식을 낳을 희망이 없습니다. 자기 아내가 90살입니다. 이제는 자기의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과. 완전히 죽었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의 삶을 제물로 받은 것입니다. 죽어야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이 부활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적으로 다시 그들을 젊게 만들어 주어서 그래서 이삭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혈통을 주님의 것으로 소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해서는 제물로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 제물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일단 죽임을 당한 후, 다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리심을 받아 산 제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 생활 중에 죽음의 고난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하나님께서 더 크게 축복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을 크게 제물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적게 축복하기 위해서는 적게 제물로 삼습니다. 크게 축복하기 위해서는 큰 제물로 삼게 하시기 때문에 크게 죽어야 됩니다. 죽고 난 다음 하나님이 부활시켜서 산 제물로 만들어서 축복해 주시지 산 제물이 안 된 것을 주님이 축복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여의도 순복음 교회 하나 세울 때도 하나님이 철저히 이 제물을 받으시기 위해서 이 사업이 죽고 절망에 처하게 하고 난 다음 죽은 것을 다시 부활시켜서 하나님께서 산 제물로 만들어서 교회를 완성시킨 것입니다. 우리 사업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업을 만들겠습니다 하고 사업체를 주님께 드리면 주님께서 그 사업체를 받아서 죽입니다. 먼저 죽여야 돼요. 죽여 놓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것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산 제물이 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퍼부워 주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무슨 일이든지 크고 작은 일에 크게 복을 받을 사람은 크게 제물이 되어야 하고 적게 복을 받을 사람은 적은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나 사업이나 물건이나 무엇이나 제물로 받으시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부활시켜서 산 제물로 만드셔서 주께서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죽지 않고 제물 되는 법은 없습니다. 제물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주는 법이 없습니다.
나는 그런 면에서 우리 21세기를 앞두고 우리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죽어가는 것,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줄로 생각합니다. 정치권도 경제권도 사용자도 국민도 우리 전 국민의 가슴속에 죽음의 고통을 당했습니다. 우리 한국 전체가 온 세계 메스컴이 다 한국은 이제 끝났다. 모두 다 죽음을 선언했습니다. 이제 한국을 하나님이 이 죽음으로 제물로 받으시면 하나님이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 아닙니다. 제물이 된 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리시고 산 제물이 되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고 축복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 제물은 살려 주지 않습니다. 죽여서 제물을 드려도 그대로 내던져 버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은 도로 살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성경이 말한 대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는 말씀은 먼저 우리를 죽여서 제물로 드리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살려서 산 제물로 만들어서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축복해서 하나님의 것으로서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야곱처럼 주님께서 복을 주셔서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당하거든 이상한 일 당한 것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요. 시험과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이 제물로 받으려고 할 때 죽으십시요. 반항하지 말고 발버둥치지 말고 죽어야 제물이 됩니다. 내가 죽으면 그 다음 하나님께서 살려주셔서 산 제물로 만들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셔서 여러분에게 복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조차도 하나님이 받으시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 제물이 되어야 되었습니다. 몸 찢고 피를 흘려 죽어서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고 제사 드리고 난 다음, 하나님이 살리셔서 산 제물로 삼으시고 그 다음 온 인류를 구원하는 위대한 은총과 역사를 베풀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용납 받기 위해서는 물로 세례 받아 상징적으로 죽고 제물 되고 난 다음 하나님이 다시 부활시켜서 산 제물로 만들어서 우리를 축복해 주시지 않사옵니까? 아버지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제물을 반드시 받아야 되옵니다. 사람이나 사업이나 모든 것을 우리가 하나님 제단 앞에 드리면 먼저 죽여서 제물 삼고 그 다음 하나님이 살려서 산 제물로 삼아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주시는 것인즉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 몸과 가정과 사업과 생활마다 아버지여! 죽음의 시련이 다가올 때 낙심하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고 이삭이 죽음을 체험하는 것처럼 기꺼이 죽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죽으면 하나님이 다시 살려 주시고 하나님께서 영광 받는 산 제물이 되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